성심 전당포에서 돌아온 후, 두 아이는 눈에 띄게 즐거워했다.길에서 웃는 얼굴은 사라지지 않았고 설아의 손을 잡으면서 그녀더러 미스터 Q와 아이를 낳으라고 졸랐다. 동생이 갖고 싶은 모양이었다.“엄마 엄마, 언제 Q 아빠랑 결혼식 올려요? 나랑 오빠가 결혼식에서 꽃을 뿌려도 돼요?”“결혼식 올리면 우리 네 식구는 함께 살 수 있어요. 그럼 엄마랑 Q아빠는 나랑 오빠에게 동생들도 만들어 줄 수 있고요!”달이는 미스터 Q와 그들의 행복한 생활을 상상하고 있다.집안의 작은 공주로서 늘 다른 사람들에게 보살핌만 받았던 달이는 지금 동생이 생길 것을 생각하자 작은 마음에 동생을 지켜주고 싶은 책임감이 자리 잡았다. “달이 말이 맞아요. 두 분께서 더 잘 알아가신 후, 빨리 결혼식 올려야겠어요. 그때 가면 Q아빠는 저희랑 함께 지낼 수 있으니, 엄마를 보살펴줄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고 엄마가 좋아하는 해바리기꽃 심어주고 일 스트레스를 나눠주고 함께 성도윤 그 나쁜 놈을 상대할 수 있고 얼마나 좋아요. 완벽해요!”원이도 미래의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어, 너희들, 너무 멀리 생각하는 거 아니야?”설아는 조금 난처했다. 원래 미스터 Q와 사이좋은 부부 연기를 하면서 아이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했는데...이러다가 아이들이 이 거짓말을 알아차리거나 어느 날 미스터 Q와 연기마저 할 필요 없는 사이로 됐을 때 아이들이 얼마나 슬퍼할까!“엄마, 그게 어떻게 멀리 생각한 거예요. 엄마랑 Q아빠는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앞으로 자연스럽게 발생할 일이에요. 빠르나 늦으나 다 생각해 둬야 할 텐데 조금 이르면 뭐 어때요.”“맞아요, 엄마. 드라마에선 남주랑 여주가 사랑하면 결혼하는 거래요. 그리고 아이도 낳고요. 진짜 사랑한다면 미루는 것보단 빨리빨리 하고 싶을 거란 말이에요.”두 아이가 한사람이 한마디씩 내던지자 설아는 받아주기 힘들었다. 심지어 꽤 일리가 있는 말이라서 더 미안했다.“그건 맞는데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잖아. 엄마는
“어... 그게요...”다들 기쁨에 겨워 있는 것을 보자 설아는 몇 번이나 사실대로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어 꾹꾹 참았다.분위기가 가장 좋을 때 달이가 갑자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는데 사과처럼 귀여운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윽, 괴로워요. 엄마, 나 괴로워요...”달이는 가슴을 움켜잡으면서 호흡하기 어려워했다.순간, 아파트의 사람들은 비상사태에 들어갔다.“민이 이모, 약, 빨리 약 가져다주세요!”설아는 달이를 안고는 손을 아이의 가슴에 대고 위로했다.“달아, 서두르지 말고 먼저 호흡부터 조절해 봐. 자, 천천히 조절하자. 후, 후, 후, 후...약 금방 올 거야.”민이 이모는 재빨리 스프레이 모양의 약을 설아에게 건넸다.“아가씨, 여기요!”설아는 약을 받은 후 달이의 콧구멍에 대고 익숙하게 누르기 시작했다.그러자, 달이의 호흡은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왔고 창백하던 얼굴에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엄마, 잘못했어요. 달이 때문에 놀랐죠? 오늘 너무 즐거워서 약 뿌리는 거 잊어버렸어요. 달이가 정말 잘못했어요.”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가엽게 말하는 달이를 보자 그들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그게 왜 네 잘못이야. 엄마가 소홀했어. 달이한테 알려주는 거 잊는 바람에 우리 달이 힘들었지? 미안해!”설아는 달이의 이마에 입술을 대었다. 너무 가슴이 아팠다.달이는 원이랑 달랐다. 태어날 때 체중은 원이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고 선천적인 발육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히 페 쪽에 문제가 있었는데 계속 천식을 앓았다.이런 병은 생활 환경에 대한 요구가 매우 높았다. 특히 공기가 깨끗하고 오염이 없어야 했다. 조금의 먼지가 있더라도 쉽게 병이 도질 수 있었는데 만약 제때 치료하지 않는다면 생명에 위협이 있었다.달이는 어릴 때부터 해바라기 섬에서 살고 있었다. 공기의 청정도와 습도는 매우 완벽했는데 마치 온실 같았다.요 몇 년 동안, 민이 이모는 줄곧 약을 연구해 오면서 달이의 이 병을 완전히 치료해 주기 위해 애썼다.하
다음 날 아침 일찍, 설아는 서류를 가지고 비서 서윤과 어느 지하철역에서 만났다.“사장님, 저 여기 있어요!”서윤은 지하철 입구에서 나오면서 안경을 위로 밀었다. 그러고는 설아의 차를 향해 달려와 문을 열고 차에 앉았다.“사장님, 무사하신 거 보니 너무 기뻐요. 저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세요? 사장님이 저희를 버릴까 엄청 두려웠습니다!”서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설아를 보았는데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의 롤모델을 보는 것 같았다. 그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설아가 변태를 만난 후, 한 번도 회사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서윤이나 회사 기타 직원들은 설아의 상황을 매우 걱정했고 설마 무슨 일이 벌어졌나 예측했다.서윤은 입이 꽤 무거웠기 때문에 설아의 명성에 해를 끼칠까 봐 아무 말도 함부로 하지 않았다.설아는 담담하게 웃으며 여유로운 자세로 핸들을 돌렸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왜요, 월급 안 주고 도망갈까 봐 두려워서요?”“에이, 그건 아니죠. 남아 있는 직원들은 모두 사장님께 충성심이 가득하잖아요. 월급을 주지 않으셔도 달갑게 사장님을 따랐을 겁니다. 저희는 그냥 사장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봐 걱정했어요...”“걱정은 무슨. 이렇게 멀쩡한데 무슨 일을 당했겠어요.”“그럼 다행이에요. 참 다행이에요!”서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몇 번이나 참았다.설아는 서윤을 힐끔 보고는 그녀의 시선이 조금 이상하다고 여겼다.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할 말 있으면 그냥 해요. 소심하게 머뭇거리지 말고. 알잖아요, 난 시원시원한 사람 좋아한다는 거.”설아는 살짝 불쾌한 티를 내며 서윤에게 압박을 해주었다.서윤은 크게 숨을 들이쉬더니 입을 열었다.“저 실은 묻고 싶은 게 있긴 해요. 사장님, 그 성대그룹 대표님과 어떻게 되셨어요?”“그날 사장님을 되게 걱정한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소문처럼 차갑고 매정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 뭐예요. 그리고 끝까지 사장님 구하러 가셨잖아요. 아니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었어
설아는 자신이 그렇게 미워하던 성도윤이 그녀를 또 구할 줄 몰랐다.“그 변태가 경찰에게 잡혔을 때 이미 손과 발이 부러질 정도로 얻어맞았다고 했어요. 그리고 구치소에 있으면서 스스로 거기를 끊었다고 하네요.”“그런데요, 제가 보기엔 스스로 한 게 아니라 분명 성도윤 대표님께서 손을 쓰신 게 분명해요. 그 변태가 하필이면 대표님 여자분을 건드렸으니, 남자구실을 못하게 만든 것만으로도 부족하죠.”서윤은 여기까지 말한 후 도윤에 대한 숭배 감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사장님도 요 며칠 동안 성도윤 대표님에게 감동했죠? 그래서 함께 보내신 거예요?”“그럴 리가요!”설아는 단칼에 아니라고 했다.“난 요 며칠 그 사람 보지도 못했고 또 엮이기 싫어요.”“사장님께서 엮이기 싫어하시지만, 대표님께선 엄청나게 엮이고 싶어 할걸요. 그날 밤 저희 모두 눈치챘어요. 성도윤 대표님께서 사장님께 보통 감정이 아니라는 걸요.”“그건 그 인간 일이지 나랑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설아는 어지러운 생각을 접었다. 자신의 정서가 별로 가치 없는 사람에 의해 흔들리는 게 싫었다.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서윤을 보며 물었다.“내가 준 서류 다 봤어요?”“네, 다 봤습니다. 사장님.”“오늘 임무가 뭔지 알죠?”“네!”서윤은 자신 있게 말했다.“해안시 조씨 집안 조인성 손에서 차씨 집안 본가를 돌려받는 거예요!”설아는 차갑게 말했다.“조인성은 나이가 마흔도 넘었는데 조씨 집안이 해안시에서의 세력만 믿고 구역 계획국을 매수했어요. 그래서 그 구역을 오수 처리장으로 건설하려는 거예요. 정말 미쳤지.”“그러게요. 전 해안시에서 누가 몰라요. 차씨네 본가가 있던 저택 구가 도시에서 으뜸으로 가는 요양지라는 걸요. 거기 공기가 얼마나 좋은지 방송에도 나왔었잖아요. 심지어 다른 도시에서 그곳을 본받을 정도로 좋았는걸요. 근데 계획국 사람들 머리에 뭐가 들어찼는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이렇게 좋은 것에다가 오수 처리장을 건설할 궁리를 해요?”서윤은 화를
차는 대문에서 덩치 큰 경호원에게 가로막혔다.“누군데 함부로 이곳에 들이닥치는 겁니까?”설아는 차창을 천천히 내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의 두 눈은 마치 여우처럼 매혹적이었다.“안녕하세요. 저희는 조인성 씨와 이미 약속을 잡았어요. 그러니 들어가게 해주실 수 있을까요?”경호원은 설아와 눈을 마주친 순간,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그는 고개를 흔들면서 간신히 정신을 차린 후 물었다.“오늘 약속을 잡으셨다고요? 그런데 전 통지를 받지 못했습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확실히 조인성 씨 초대를 받았어요. 제가 거짓말하는 거로 보이세요?”“그게...”경호원은 설아의 예쁜 얼굴과 완벽한 몸매를 보더니 다시 온몸이 나른해지는 것만 같았는데 코피를 흘릴 기세였다. 이런 미인은 확실히 조인성이 몰래 부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만약 통행하지 못하게 한다면 저도 경호원님 난감하지 않게 바로 돌아갈게요.”설아는 아쉬운 듯 한숨을 쉰 후 차를 돌리려고 했다.“아닙니다. 제가 눈치가 없었습니다. 아가씨처럼 아름다우신 미인께서는 미리 예약하지 않으셔도 통행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드릴 겁니다. 들어오시죠.”경호원의 명령하에 철문은 열렸다.설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핸들을 잡고는 성공적으로 들어갔다.“어우, 깜짝이야. 진짜 놀랐다니까요!”조수석에 앉은 서윤은 아까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마치 새로운 목숨을 얻은 것처럼 설아에 대한 숭배 감이 흘러넘쳤다.“사장님, 너무 대단하세요. 보안이 그렇게 빈틈없는 여길 쉽게 들어오시다니!”“쯧쯧. 사장님 이 얼굴은 그냥 통행증에요. 가는 곳마다 사장님의 미모에 정복당하잖아요. 사장님께선 앞으로 제 롤모델이십니다. 죽기 전까지 따르겠어요!”설아는 차를 여유롭게 주차장에 세운 후 엄숙한 표정으로 서윤의 말을 끊었다.“됐어요. 자꾸 죽는다는 소리를 입에 담지 마요. 불길하니까.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잘 알고 있는 거 맞죠?”“네!”서윤은 주먹을 불끈 쥔 채 언제든 전쟁에 나갈 기세
안타깝게도 그녀는 너무 좋게 생각했다. 조인성은 아주 깊이 감추었는데 겉으로 보기엔 이 저택은 아무 문제도 없었다.서윤은 오랫동안 찾았지만 얻은 게 없었다.세 시간이 거의 지나갈 무렵, 그녀가 설아와 약속한 때도 다가왔다.서윤은 전에 약속한 곳에 와서 한참 동안 기다렸으나 설아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어떡해!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나신 건 아니겠지?”서윤은 사방을 둘러보며 설아에게 전화를 걸기에 바빴다. 하지만 받는 사람이 없었다.“진짜 신고해야 하나?”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서윤은 신고하는 대신 성도윤에게 도움을 청했다.“대표님, 지금 시간 있으세요? 빨리 조씨 저택으로 와주세요. 저희 사장님께서 지금 위험하십니다!”그녀는 도윤의 실력을 믿었다. 분명 경찰보다 효과가 좋을 것이다. 만약 조인성이 진짜 어떤 짓을 벌이더라도 성도윤의 이름만 들으면 분명 겁먹고 아무 것도 못할 테니까.전화 저편에 있는 도윤은 잠시 침묵하더니 확고하게 말했다.“기다려요. 지금 당장 갈 거니까.”또 한참이 지난 후, 도윤은 한 무리 사람들을 데리고 조씨 저택에 갔다.저택의 집사이자 조인성의 부하직원인 진석철은 기고만장하게 물었다.“성도윤 대표님께서 어떤 중요한 일로 이렇게 큰 소란을 피우며 여기까지 친히 오셨습니까?”도윤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놔.”석철은 웃는 듯 말 듯 하며 알아듣지 못하는 척 했다.“대표님께서 뭘 말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차설아, 내 전처. 조인성에게 알리는 게 좋을 거야. 만약 차설아 머리카락이라도 건드렸다간 조씨 집안 망하게 해줄 테니까.”무표정으로 이런 말을 해서 듣는 사람들에겐 아무런 영향도 없을 것 같지만 실은 무형의 압박감을 주었다.안타깝게도 큰 장면을 많이 보아왔고 또 조인성과 함께 갖은 나쁜 짓을 한 석철은 이미 눈에 뵈는 게 없었다.“대표님,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오늘 오전에 확실히 차씨 성을 가진 여자분께서 저희 조인성 님을 찾아오셨습니다. 조인성 님과 친구가 되고 싶다고
차설아는 우뚝 서 있는 성도윤을 보자 이내 얼굴이 굳어지더니, 살얼음 같은 차가움이 번지더니 비꼬듯 말했다.“어머, 여기서 뵙네요, 성 대표님. 대표님의‘좋은 형제’를 두고 왜 여기 나타나셨죠? 그분은 발을 다쳤으니 아마 형제의 정이 필요할 듯 한데요?”성도윤은 미간을 찌푸린 채 차설아를 외면하고는 옆에 있는 조인성을 향해 차갑게 물었다.“말해요, 이 여자한테 무슨 짓 했어요?”조인성은 40이 넘은 나이로, 꽤 영리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그는 애매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저랑 설아 씨는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성인 남녀 둘이서 3시간 넘게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죠.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고백하는 건 설아 씨의 선택에 달렸죠.”“저는 개인적으로 저랑 설아 씨만의 작은 비밀로 간직하고 싶네요. 앞으로 회억할 수 있는 좋은 추억이 되었으면 해요.”차설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더니 수줍은 뺨은 분홍빛을 띠며 난처해서 말했다.“인성 씨가 밝히기 곤란하다면 저도 당연히 말할 수 없죠. 우리 차라리 오늘 오후의 일을 비밀로 간직하겠다고 서로 맹세해요. 누설하는 자는 반드시 천벌을 받을 거예요.”“하하하, 저야 당연히 문제 될 것 없죠. 결정권은 설아 씨에게 있어요.”조인성은 말을 마치고 의미심장하게 성도윤을 보더니 여자를 다정하게 품에 안았다.“그래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다음에 또 시간 내서 좋은 시간 보내죠.”“그럼 차씨 저택의 일은...”“걱정 마세요. 이 일은 내가 반드시 직접 나서서 해결할 테니!”조인성은 차설아와 손을 흔들고는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성도윤, 차설아, 서윤 그리고 기세등등하던 키 큰 남자들은 모두 멍한 얼굴로 제자리에 서 있었다.“대표님, 진짜 깜짝 놀랐잖아요. 방금 전화했는데 받지도 않으시고. 저 분이 대표님에게 불순한 의도를 가진 줄 알았어요. 경찰에 전화해도 소용없을까 봐 급한 마음에 성 대표님께 전화해서 같이 온 거예요!”서윤은 감격스럽고 또 감동적이었다.“저는 성 대
그리고 성도윤은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차설아는 어리둥절했다.‘뭐야, 염치도 없어? 내 의견은 묻지도 않는 거야?”성도윤은 자신의 스포츠카로 다가와 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서윤에게 물었다.“운전할 줄 알아요?”“당연하죠. 명령만 하세요.”“설아 차 타고 돌아가세요.”성도윤은 카리스마 넘치게 명령을 내리더니 차설아를 향해 말했다.“당신은 내 차 타고 가.”“네, 알겠습니다. 아주 탁월한 계획이시네요. 그럼 두 분 식사 맛있게 하세요.”서윤은 눈치가 빨라 차설아의 차를 몰고 쏜살같이 떠났고, 혼자 남은 차설아는 흙먼지 바람만 쳐다보았다.“타.”서윤의 센스에 성도윤은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돌덩어리처럼 굳어진 차설아를 향해 외쳤다.차설아는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녀가 직접 고른 비서가 성도윤의 스파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안 타면 나 먼저 가?”성도윤은 이미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려 했다.차설아는 몇 초 동안 버텼지만, 결국 현실에 굴복하고 말았다.이곳은 황량한 야산이라 콜택시를 부르기도 어려우니 체면 때문에 몸이 고생할 수는 없었다.성도윤은 차가운 눈으로 앞을 보더니 핸들을 돌려 차를 몰고 떠났다.“나한테 감사하지 않아?”남자는 얼음처럼 차가운 여자를 힐끗 쳐다보더니 차안의 정적을 깨뜨렸다.“뭘 감사해야지?”“만약 내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분명 조인성의 장난감이 되었어. 당신을 한 번 더 구해준 셈이지.”성도윤은 턱을 높이 치켜들더니 오만스럽게 말했다. “푸훕!”차설아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자기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야? 나랑 인성 씨는 한창 분위기가 좋았어. 당신이 아니었다면 내 목적은 이미 달성했을 거야. 내 일을 망쳤다고 당신을 욕하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야.”“허, 분위기가 좋았다고?”성도윤의 안색은 잔뜩 어두워졌다.“그 인간이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진짜 모르는 거야?”차설아는 동의하지 않았다.“그 사람에 대한 소문은 들은 적
“차설아 씨, 지금 절 협박하는 건가요?”서은아는 주먹을 꽉 쥐고 분노에 차서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그건 아니에요.”차설아는 다시 한번 태연하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미소를 지었다.“은아 씨가 저를 반대하는 건 좋지만 본인이 억울한 것처럼 절 비난하지는 말라는 거예요. 은아 씨가 한 짓을 생각하면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아닌 듯싶어서요.”차설아도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분명 서은아에게 약속했었다. 성도윤의 세상에서 물러나 두 사람을 이어 주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전제는 서은아가 성도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를 위한 선택을 할 거라는 믿음이었다.그녀의 사랑이 이 정도로 극단적인 방식일 줄 모르고 말이다. 성도윤의 건강까지 해칠 정도라면 차설아는 더 이상 그를 서은아에게 맡길 이유가 없었다.“만약 언젠가 도윤 씨를 사랑하지 않게 된다면 그때는 또 어떤 짓을 할지 누가 알겠어요? 전 도윤 씨에게 그런 위험까지 감수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그녀는 한 마디 한 마디 또렷하게 말했다.이 세상에서 성도윤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무조건 차설아였다.그의 곁을 떠났던 건 서로 행복해지기 위해서였다.하지만 떠나고 보니 두 사람 모두 행복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깊은 고통에 빠졌다.그래서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두 사람이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어떤 장애물도 함께 극복해 나가는 게 그들에게 맞는 방식이었다.진정한 행복은 서로에게서만 얻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말도 안 돼!”서은아는 눈을 붉히며 집착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내가 도윤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럴 일은 없어! 난 평생 도윤이만 사랑할 거고 도윤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도윤이를 위해서라면 그를 망가뜨리는 일도 할 수 있다고!”“서은아 씨, 진짜 미쳤어요? 그쪽은 사랑이 뭔지도 몰라요. 서은아 씨가 사랑하는 건 서은아 씨 자신 뿐이에요!”차설아는 서은아의 광기 어린 발언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사랑이란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이해하는 것
서은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차설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추측을 더 확실히 하고 싶었다.“서은아 씨?”차설아는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드디어 절 보셨군요?”서은아는 팔짱을 낀 채 그녀를 조심스럽게 떠보았다.차설아의 감정이 너무나도 안정적이었기에 방금까지 확신했던 그녀의 생각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당연하죠.”차설아는 태연하게 의자에 앉아 옆자리를 가리키며 덤덤히 말했다.“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늦게 올 줄은 몰랐네요. 생각보다 멘탈이 좋은가 봐요?”서은아는 차설아의 반응을 보고 더욱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기에 겉모습은 눈이 먼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녀의 말과 행동, 표정 하나하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으니 말이다.서은아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차설아가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설아 씨도 멘탈이 대단하시네요. 알고도 모른 척하는 건지, 아니면 원래 이렇게 뻔뻔한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원수지간인데도 이렇게 친절하게 맞아주셔서 참 고맙네요?”서은아는 살짝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차설아는 아무 말 없이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뒤, 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달이야, 착하지? 엄마가 이 아줌마랑 잠깐 할 얘기가 있어서 말이야. 너는 민이 이모랑 잠깐 놀고 올래?”“싫어요! 이 아줌마 나쁜 사람 같아요. 아줌마가 엄마를 괴롭히면 어떡해요?”달이는 차설아를 꼭 껴안으며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서은아를 노려보았다.“게다가 이 아줌마 분명 아빠를 뺏으러 온 거예요. 전 절대 그렇게 되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거예요!”“걱정 마, 달아. 아빠는 영원히 네 아빠야. 그 누구도 달이 아빠를 빼앗아 갈 수는 없어. 엄마가 이 아줌마랑 얘기가 있어서 그래. 아빠에 대한 얘기 말이야. 그러니까 엄마 말 들어. 가서 민이 이모랑 놀고 있어, 알겠지?”“알겠어요. 위험하면 꼭 소리 질러요! 제가 바로 달려와서 엄마 지켜줄 거예요.”차설아가 여러
성도윤이 떠난 것을 확인한 서은아는 차설아의 집으로 몰래 들어왔다.그녀는 조용히 몸을 숨긴 채, 차설아가 달이와 함께 게임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대낮인데도 차설아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움직임도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설마...’“엄마, 한번 맞혀봐요! 달이가 뭘 그렸게요?”달이는 차설아 앞에 앉아 물감으로 나비 한 마리를 그렸다. 그리고는 귀여운 목소리로 물었다.“음... 강아지?”“틀렸어요! 달이가 그린 건 나비예요! 틀렸으니까 엄마 간지럼 태울 거예요!”달이는 해맑게 웃으며 차설아 품에 파고들어 그녀를 간질였고 두 사람은 잔디밭 위에서 장난을 치며 한바탕 웃었다.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가운데 그 장면은 무척이나 다정하고 따뜻해 보였다.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은아는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차설아, 넌 도대체 무슨 복을 타고난 거야? 성도윤이 온 마음을 다해 너를 사랑해 주는 데다가 너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 오빠도 있고, 또 배경수, 배경윤 같은 친구도 곁에 있고... 그것도 모자라서 이렇게 사랑스럽고 똑똑한 아이까지 있다니...’‘근데 나는?’서은아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녀의 아버지께서 애지중지 키우기는 했지만 어린 시절에 따뜻한 기억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가까운 친구나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고 게다가 최근 아버지께서는 밖에서 다른 여자들과 어울리며 사생아까지 낳았다. 앞으로 그녀가 받을 사랑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었다.‘그래서일까? 내가 성도윤에게 더욱 집착하게 된 것도.’서은아에게 성도윤은 어둠 속 유일한 한 줄기 빛이었다. 그 빛은 오직 그녀만을 비춰주던 것이었는데 차설아 때문에 모든 것이 망가져 버렸다.‘어떻게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어? 내 모든 걸 빼앗아 간 사람인데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냐고!’서은아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자신만의 것을 가로챈 사람들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싶었다.“엄마, 한 번 더 할래요! 그림을 그릴
차설아는 약간 비관적인 태도로 말했다.성도윤이 자신과 아이들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으며 언제나 그들 곁을 지키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약육강식의 세상이라는 것도 사실이었다.만약 성도윤이 이번 싸움에서 지게 된다면 앞으로 그 누구든 그들을 함부로 모욕하고 짓밟을 수 있을 터였다. 차설아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굳이 우리 곁을 항상 지키지 않아도 돼요. 우리가 같은 마음이라면 그걸로 충분해요.”차설아는 성도윤의 손을 꼭 잡고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알겠어.”성도윤은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네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힘이 나. 반드시 돌아와서 너랑 아이들한테 편안한 가정을 만들어 줄게.”그렇게 두 사람은 진심을 털어놓으며 서로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그러고 나서 성도윤은 차를 몰고 성대 그룹으로 향했다.차설아는 마당에 남아 그를 기다렸다.하지만 두 아이는 아직 어려서인지 성도윤을 이해하지 못하고 속상한 목소리로 물었다.“엄마, 아빠는 왜 또 가버렸어요? 또 우리를 버리려는 거예요?”달이는 눈가가 벌겋게 달아오른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빠를 많이 좋아하는 달이였기에 반복된 이별은 극도의 불안감을 심어준 듯했다.매번 아빠가 떠날 때마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그럴 리가. 아빠는 그냥 일하러 간 것뿐이야. 일만 끝내면 금방 돌아올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보자, 응?”차설아는 달이를 꼭 안아주며 부드럽게 달랬다.“달이는 아빠가 일 안 했으면 좋겠어요. 주말엔 쉬어야 하는데...”“그렇지만 달이 아빠는 대기업 대표님이시잖아. 많은 직원들을 책임지고 있어. 아빠가 일을 안 하면 그 직원들은 다 굶을 수도 있다는 거야.”“그리고 말이야. 아빠가 일을 안 하면 달이가 좋아하는 예쁜 원피스는 누가 사주고 맛있는 음식과 장난감은 누가 사주겠니?”차설아는 달이가 최대한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성도윤이
전화는 진무열이 걸어온 것이었는데 그의 목소리는 매우 엄중하고 다급했다.“대표님, 지금 어디 계세요? 오늘 주주총회가 열리는 날인데 꼭 참석하셔야죠! 사람들이 다 기다리고 있습니다.”“오늘?”성도윤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그제야 이 일을 떠올렸다.성대 그룹의 주주총회는 매년 연말에 열렸는데 회사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행사였다. 그래서 그룹의 운영진들은 이 주주총회를 준비하기 위해 보름 전부터 철저히 대비했다.성도윤은 성대 그룹의 현직 대표로서 책임지고 연간 운영 상황을 보고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가장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사람이었다.그러나 총회가 시작된 지 이미 30분이 지났는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주주들과 운영진들의 불만이 쌓여가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진무열은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는데 성도윤은 이제야 전화를 받았다.“네, 대표님께서 직접 날짜를 오늘로 변경하셨잖아요. 회사 문제에 대해서 의논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말이에요. 그래서 주주들도 그렇고 회사 운영진분들도 그렇고 일정을 조정해서 참석해 주셨는데...”“정작 대표님께서 지각을 하신 데다가 전화도 안 받으시니 다들 기분이 많이 상하셨습니다.”진무열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가득했다.그도 요즘 성도윤이 차설아와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 중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따로 전화를 걸어 성도윤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가 주주총회만큼은 기억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차설아가 곁에 있으니 권력과 사업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어진 듯했다.“오늘 바쁘니까 회의 시간을 다른 날로 바꿀 거라고 전해.”성도윤은 단호하게 명령했다.주말인지라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기로 약속한 날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제 막 차설아와 관계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런 순간에 자리를 비우고 싶지 않았다.“아니, 대표님... 바쁘신 건 이해하지만 다른 분들까지 일정 변경을 해야 하는 건 좀 너무 독단적인 결정 아닙니까?”진무열은 용기를 내어 반박했다.
성도윤은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들이 식사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누가 많이 먹고 먼저 다 먹으면 그 사람이 결정권을 가지는 거야. 그런다고 해서 체하면 안 돼. 알겠지?”두 아이는 다시 진지하게 밥을 먹는 것으로 경쟁하기 시작했다.“너희 먼저 먹어. 난 배불러서 잠깐 햇볕 좀 쬐고 올게.”차설아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녀는 우유 한 잔만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마당으로 가서 햇볕을 쬐었다.성도윤은 차설아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채고는 김정민더러 아이들을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녀를 따라 마당으로 나갔다.“무슨 일이죠, 주인님?”그는 차설아 옆에 서서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차설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분명 뭔가 신경 쓰이는 게 있을 텐데... 내가 한번 맞혀볼까?”성도윤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혹시 두 아이에게 미안해서 그러는 거야? 아이들은 가고 싶은 곳이 많은데 네가 함께 즐겁게 놀아줄 수 없어서?”차설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작은 얼굴에는 마치 어른에게 생각을 간파당했을 때의 아이처럼 놀라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어떻게 알았어요?”그녀는 자신이 감정을 꽤 잘 숨기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성도윤에게 들키고 말았다.그는 차설아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잘 알고 있어서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너무 많이 알고 있다고 경계해야 할지...’다른 사람을 너무 깊이 이해해 버리면 그건 양날의 검과도 같았다. 행복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고통스러울 때도 있으니 말이다.“오랜 세월을 함께했잖아. 부부이기도 했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이기도 했고 또 연인이기도 했어. 원수였던 적도 있지만... 내가 어떻게 널 모를 수 있겠어?”성도윤은 차설아 앞에 쭈그려 앉으며 그녀의 차가운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그렇게 많이 생각할 필요 없어. 네가 아이들이랑 뭘 하는지는 중
“그렇다니까?”서은아는 이를 꽉 깨물며 차갑게 말했다.“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바로 차설아한테로 갔어. 강아지처럼 따라붙더라고. 난 성도윤 얼굴조차 못 봤다니까? 진짜 한심하기도 하지. 내가 생각해도 내가 제일 바보인 것 같아. 안 그러면 이렇게 화내면서 극단적인 제안을 할 이유도 없잖아.”“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차설아는 어떤 반응이었어?”성진은 손가락을 살짝 움켜쥐며 계속해서 물었다.그는 자신의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최대한 무덤덤한 태도를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감정을 감추려 해도 자신이 차설아에 대한 마음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어떤 반응이겠어? 당연히 좋아하겠지. 가족끼리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거잖아.”서은아는 어이없어하며 성진이 뻔한 질문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불만을 쏟아내듯 말을 이어갔다.“두 사람은 처음부터 끊어지려야 끊어질 수 없는 사이였어. 우리가 힘을 합쳐서 엄청난 노력을 한 것도 맞긴 하지만 결국 두 사람 사이를 더 깊이 이어준 셈이지.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바보였던 거야. 어쩌면 우리가 해온 일들도 그들을 돕는 역할밖에 못 했던 거지. 우리는 그저 한낱 도구였을 뿐이라고!”서은아가 이렇게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는 단순히 속상해서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성진의 질투심을 자극해 성도윤과 차설아의 관계를 완전히 망가뜨리고 싶었다.“그렇다고?”성진의 눈빛 속에는 점점 더 강한 분노와 불만이 차올랐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럼 본때를 보여줘야지.”“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거야?”“네가 말한 거잖아.”성진은 주먹을 꽉 움켜쥐고 한 글자 한 글자 뱉었다.“성도윤을 완전히 무너뜨려서 빈털터리로 만들자며?”“그래, 좋아! 또다시 동맹을 맺게 됐네. 솔직히 너라는 놈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일 처리 하나는 잘하니까 말이야. 너랑 손잡는 게 제일 마음이 놓이네.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을게!”서은아는 기분 좋게 말했다.“너도 만만치 않지.”성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사랑해서
“눈이 다 나았다고 하길래 특별히 축하해주러 왔지.”서은아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성진에게 선물을 툭 던져주었다.“이렇게 신경 써주니 참 고맙네.”성진은 선물을 받으며 냉랭하게 말했다.“형이랑 결혼이라도 할 건가?”“성진아, 너 지금 나 가지고 노는 거야? 밖에서 떠도는 소문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건 아닐 거고.”서은아는 말하다가 화가 나서 소파를 두 번이나 세게 걷어찼다.“성도윤 그 배은망덕한 놈! 양심이 있으면 그러지 말았어야지... 내가 서씨 가문의 미래까지 걸고 도왔는데! 그땐 내가 눈이 멀었어.”“그렇게 화낼 것까지야... 나도 한때 그랬었어. 너도 그때 나랑 마찬가지인 거고. 이젠 헛된 꿈에서 깨어나 제대로 앞을 봐야 할 때인 거지.”성진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래. 진작에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근데 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감이 안 와. 너도 전에 그랬었다며. 조언이라도 해줄 수 있어?”서은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성진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욕심이 가득했지만 말이다. 사실 그녀가 성진을 찾아온 건 이미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다만 성진이 어떤 조건을 제시할지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럼 네가 뭘 해줄 수 있는지 말해봐. 원하는 게 뭔데?”“서씨 가문의 모든 걸 이용해서 널 도울 수 있어. 대신 내가 원하는 건 성도윤이 완전히 무너져서 빈털터리가 되는 거야.”“진짜 그렇게 하겠다고? 네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 아니었어?”“내가 독하게 굴지 않으면 성도윤이 깨닫긴 하겠어? 누가 진짜로 그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인지 알게 하려면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어.”서은아는 싸늘한 말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모든 걸 잃어 봐야만 내가 도윤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게 될 거야.”“재밌는 생각이네...”성진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솔직히 말해서 만약 차설아가 없었더라면 그는 서은아 같은 여자를 꽤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그녀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에 거침
민이 이모의 말을 들은 성도윤은 계속해서 물었다.“왜 따라 배우면 안 되는 거예요? 저는 설아의 부모님이 금슬이 좋다고 들어서 무척 부러웠거든요. 저도 설아랑 알콩달콩 지내고 싶어요.”그러자 민이 이모는 미소를 지으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금슬이 좋은 부부로 알려진 건 맞지만 두 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몰라요. 부부마다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다르기에 굳이 따라 배울 필요 없다고 한 거고요. 설아 아가씨랑 지금처럼만 지내시면 돼요.”“그러면 설아 아버지는 예전에 어떤...”“도련님, 죄송하지만 예전의 일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어요. 나이를 먹다 보니 기억력도 나빠졌거든요.”민이 이모는 성도윤의 말을 잘랐다.“저는 이만 가볼게요. 도련님도 일찍 쉬세요.”문을 열고 나가려던 민이 이모는 뒤돌아서서 성도윤을 향해 말했다.“혹시 알게 된 것이 있다고 해도 밝히지 마세요. 궁금한 게 있더라도 계속 조사하지 마시고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라요. 그럴 바에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요?”민이 이모가 나간 뒤, 성도윤은 생각에 잠겼다.‘이모님의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어. 비밀에 부친 일을 굳이 조사해 봤자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거야. 설아한테 더 이상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몇 분 후, 성도윤은 진무열한테 전화를 걸었다.“저번에 내가 부탁한 건 잠시 멈춰. 아직은 때가 아니야.”한편, 성진의 별장.어두운 불빛과 가라앉은 분위기는 성진의 기분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정말 네가 나한테 두 눈을 기증한 거라고?”성진은 책상 앞에 앉아서 기증자의 자료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현청아라는 여자와 사진 속의 여자를 번갈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도련님께 기증할 수 있어서 영광이에요.”현청아는 선글라스를 끼고 대답했다. 두 눈은 움푹 파였고 성진이 기억하던 그 여자의 목소리와 똑같았다.하지만 성진은 현청아가 수술 전에 얘기를 나누었던 여자와 같은 사람이 아닐 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