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설아는 성씨 저택을 떠난 후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어젯밤에 일어난 황당한 일들, 그리고 팔에 입은 화상 때문에 그녀는 머리가 어지럽고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두 아이와 민이 이모가 걱정하지 않도록 컨디션을 조절하고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이모, 요 며칠 일이 너무 바빠서 당분간은 돌아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일 끝나는 대로 돌아갈게요.”차설아는 민이 이모에게 안부를 전한 후, 주소록을 열어 누군가와 마음속의 우울함을 털어놓고 싶었다.하지만 주소록을 다 뒤져보았지만 배경윤 외에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그리고 공주 대접을 받던 서은아를 떠올리니 문득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배경윤은 실연당한 상처로 타히티로 휴가를 떠나, 적어도 보름은 지나야 돌아올 것이다.주소록을 뒤적거리다가 차설아는 머릿속에 갑자기 한 사람의 그림자가 스치더니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참, 그 친구가 있었지! 이 방면으로는 전문가잖아!”저녁 8시, 화려한 등불이 켜지고 네온사인이 반짝이며 밤 생활이 시작되었다.차설아는 선글라스를 끼고 세련된 메이크업을 하고 시크한 자태를 뽐내며 여자들을 위한 ‘보이 바’로 향했다.술집 내부는 예전과 다름없이 활기가 넘쳤다.무대에서 섹시한 춤을 추는 미남들을 둘러싸고 여자들은 열광적인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차설아는 술집 구석구석을 보았지만, 에이스 택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앞에서 가장 신나게 뛰는 한 소녀를 툭툭 치며 물었다.“오늘 택이 공연 있어요?”“당연하죠. 택이는 보이 바의 기둥인걸요. 택이가 공연을 안 하면 보이 바가 어떻게 돈을 벌겠어요? 저희 모두 택이 보러 왔어요. 이 잘생긴 남자들은 그저 맛보기에 불과해 전혀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어요!”차설아는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매일 밤 공연하나요?”“맞아요. 매일 공연하기도 힘들겠네요.”다른 여자들도 이러쿵저러쿵 말하기 시작했다.“들어보니 택이 가정 형편이 별로 안 좋대. 원래는 모범생이었는데 부모님
술집 사장은 아마 차설아의 요구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순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사람들 앞에서 춤추고 웃고 떠들게 하는 건 결국 돈 벌기 위함이잖아요. 그 돈을 제가 지금 한꺼번에 드리겠다는건데, 뭘 고민하는 거죠?”차설아는 돈이 만능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많은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적어도 돈에 눈이 먼 이런 인간들에게 돈은 특히 효과가 좋았다.“설아 씨 말씀이 맞지만, 택이를 파는 건 저희가 잘 상의해봐야겠어요. 제가 동업자와 상의한 후에 대답을 드려도 될까요?”술집 사장은 말을 마치고 방을 나갔다.동업자와 상의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성도윤의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택이를 산다고요?”이 말을 들은 성도윤은 흥미를 느꼈다.잠시 고민하더니 술집 사장에게 명령했다.“팔 수는 있지만 조건이 있다고 하세요...”“네네,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 그대로 전하겠습니다.”성도윤의 지령을 받은 술집 사장은 재빨리 휴게실로 돌아갔다.차설아는 이미 기다리다 지쳐서 재촉했다.“어떻게 됐어요? 되는지 안 되는지 한마디만 하세요.”“동업자에게 물어보니 돈을 받지 않고 택이를 팔아도 되지만, 설아 씨가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하더군요.”“돈을 안 받는다고요?”차설아는 좀 뜻밖이었다.‘이 술집 사장 의외인데? 돈 벌 수 있는 이렇게 좋은 기회를 마다한다고?’“말씀해보세요. 제가 어떤 약속을 지켜야 하죠?”차설아는 궁금해서 물었다.“첫째, 택이는 우리 보이 바의 기둥으로 술집에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었으니, 저희도 택이에게 정이 있습니다. 그러니 택이를 데려가시면 잘 보살펴주세요. 절대 힘든 생활을 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차설아는 눈썹을 치켜올렸다.“그거야 당연하죠.”“둘째, 택이는 자존심이 아주 강한 아이입니다. 설아 씨가 아무리 택이를 키운다고 하셔도, 택이가 싫어하는 일을 절대 강요하시면 안 됩니다.”차설아는 어이가 없었다.“안심하세요. 저는 그저 택이가 젊은 나이에 술집에 발목을 잡히는 것이 아까울 뿐 그 몸을 탐내
차설아는 택이의 집 주소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술집 근처에 있는 아파트였다.그녀는 오늘 기분이 나빴지만, 젊은 청년의 인생을 구해줬다는 생각에 강한 성취감을 느끼며 기분이 좋아졌다.차설아는 자신의 기억대로 택이가 있는 층에 도착해 벨을 눌렀다.잠시 후, 문이 열렸다.택이는 심플한 흰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잘생긴 얼굴에는 그가 공연에 자주 쓰는 하얀 깃털 가면을 쓴 채로 차설아를 오래 기다린 모습이었다.“오랜만이네요. 나의 여신님. 절 잊은 줄 알았어요.”남자는 부드럽게 말했다.차설아는 순간 봄바람에 마음이 흔들린 듯, 참지 못하고 남자의 턱을 치켜들며 웃었다.“지난번 너의 최면술 덕분에 편안하게 잠을 잤어. 한 번 더 최면술을 부탁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널 잊겠어?”“영광이네요. 안심하세요 여신님. 이번에는 더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요.”“역시 인기가 많은데는 이유가 있다니까!”차설아는 택이가 볼수록 더 마음에 들었다.‘쯧쯧, 역시 잘생기고 부드러운 남자가 힐링이야. 얼음처럼 차가운 성도윤에 비하면 택이는 그야말로 인간 세상에 내려온 천사네!’애석하게도, 차설아는 자기가 천사라고 여기는 사람이 바로, 죽도록 미워했던 전남편 성도윤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성도윤은 술집 사장의 보고를 받고 즉시 택이의 집에 도착했다.“택아, 오늘 우연히 너의 비참한 상황을 듣고 마음이 편치 않았어. 그래서 널 반드시 불구덩이에서 구하기로 마음먹었지...”차설아는 말하면서 계약서를 꺼냈다.“이것 봐봐. 맘에 들어?”“이... 이건?”성도윤은 계약서를 받아들어 능청스럽게 보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어깨를 살짝 떨며 슬픈 척 연기했다.“왜 그래? 감동 받아서 우는 거야?”차설아는 남자의 등을 토닥이며 호기롭게 말했다.“너무 고마워할 필요 없어. 돈도 쓰지 않았고, 기껏해야 앞으로 네 생활비만 주는 정도야.”“생활비요?”남자는 천천히 몸을 돌려 차설아를 보며 물었다.“그 말은 앞으로 저를 스폰하시겠다는 건가요?
“그 인간이 무슨 자격으로?”차설아는 원래 그렇게 화나지 않았지만,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왜 갑자기 그 인간을 들먹여? 재수 없게!”성도윤의 얼굴은 조금 어두워지더니 참을성 있게 물었다.“왜 그래요? 그렇게 성도윤이 싫어요?”“완전 제멋대로인 인간이야!”차설아는 이를 갈며 말했다.“내가 지난밤 자기를 덮쳤다는 걸 빌미로 날 협박하면서 자기 친구들에게 꼬치를 구워주라고 했어. 세상에 어디 이런 인간이 다 있어?”“단지 그 이유 때문에요?”성도윤은 어이가 없었다.때때로 차설아의 마음은 아주 복잡해서 도무지 그 속을 알 수 없을 정도였지만, 또 가끔은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것 같았다.바로 이런 모순덩어리 때문에, 성도윤의 마음도 모순되게 만들었다. 머리는 그녀를 멀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계속 그녀에게 접근하고 있었다.그래서 황당하게도 술집 댄서의 신분을 빌려 그녀를 가까이 하는 것이다.마치 가면을 써야 그의 모든 행동이 부끄럽지 않은 것 같았다.“당연히 그것뿐만이 아니지!”차설아는 갑자기 소매를 걷어붙이고는 성도윤의 악랄함을 마음껏 고발하려 했다.“팔이...”성도윤은 그녀의 팔뚝에 난 화상을 단번에 발견하고는 미간을 찌푸렸다.‘역시, 설아도 숯에 화상을 입었을 줄 알았어. 그런데 이렇게 데이고도 찍소리 한번 내지 않은 거야? 이 여자 참 독해.”“맞아. 화상 입었어. 아파 죽겠단 말이야.”차설아는 아픈 것을 티 내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택이 앞에서 그녀는 아이처럼 불쌍하게 말했다.아마, 택이는 이미 그녀의 사람이고, 그녀의 해어화이고, 무조건 그녀를 지지하고 옆에서 힐링할 수 있는 존재라 강한 척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이리 와서 앉아요!”성도윤은 차설아를 끌고 소파에 눌러앉았다.“왜 그래?”“움직이지 말아요. 약 발라 줄게요!”택이는 약상자에서 연고를 하나 꺼내더니 약간 강한 어조로 명령했다.“괜찮아. 이미 발랐어...”“말 들어요. 손 내밀어요!”성도윤의 목소리는 다소
성도윤이 열심히 연고를 바르고 있는데, 차설아는 다른 손으로 갑자기 강아지를 만지듯 그의 머리를 어루만졌다.“택아,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차설아는 부드럽게 성도윤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신비롭게 물었다.남자는 흠칫 놀라더니 고개를 들어 소파에 앉아 있는 이상한 표정의 여자를 보며 경각심을 세웠다.“어쩌시려고요?”“참, 왜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 안 잡아먹어.”차설아는 약간 얼굴이 붉어지더니, 잠시 감정을 추스른 후,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너처럼 인기가 많은 사람들은 연애 경험도 풍부할 것 아니야? 그러면... 그 방면도 대단해?”“어떤 방면이요?”“다 큰 성인들끼리 모르는 척하지 마. 당연히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경험이지!”차설아는 빙빙 돌리기 귀찮아 노골적으로 말했다.택이 앞에서 그녀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으로 무엇을 생각하든 숨김없이 표현할 수 있었다.“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봐요?”성도윤의 짙은 눈썹은 찡그려지더니, 입가에는 차가운 미소가 흘렀다. 다소 불쾌한 듯 보였다.‘이 여자가 대체 무슨 꿍꿍이야. 천한 신분의 술집 댄서에게 이런 사적인 질문을 하다니. 설마 약효가 아직 가시지 않아서 전문가를 통해 욕망을 표출하려는 거야?’“아, 오해하지 마. 그냥 내가 이쪽 경험이 적어서 약간 혼란스럽거든. 그래서 너처럼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 상담 받고 싶어.”차설아는 솔직하게 설명했다.그녀는 지금 27살로, 거의 서른이 되어가지만 연애 경험은 성도윤을 제외하고 거의 0에 가까웠다.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경험은 오직 성도윤과만 있었으니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그래서 계속 성도윤을 잊지 못하고, 그 사람으로 인해 기분이 좌지우지되는 이유가 연애 경험이 너무 적어서인지, 아니면 사랑을 나눈 경험이 적어서인지 궁금했다.“그렇군요...”성도윤의 눈빛은 한결 부드러워지더니 흥미를 느낀 듯 물었다.“뭐가 혼란스러운지 구체적으로 말해봐요.”“그건... 말하자면 좀 민망하고 부끄러워.”차설아는 조
그는 면봉과 연고를 한쪽에 놓고 긴 다리를 구부린 채 소파에 반쯤 무릎을 꿇었다. 차설아를 자신과 소파 등받이 사이에 가둔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렇게 궁금하다면, 한번 시도해볼래요?”차설아는 점점 다가오는 남자를 보며 바짝 긴장하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뭘... 시도해?”“다른 남자와 친밀한 관계를 가지는 느낌이 다를지 궁금하다면서요? 제가 경험이 많으니 어쩌면 그 해답을 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죠.”성도윤은 한쪽 팔로 소파 등받이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 여자의 턱을 치켜들며 느릿느릿 말했다.“그렇긴 한데... 이건 좀 곤란하지 않을까?”그녀는 이 방면의 경험이 정말 적었기에 선수를 만나니 더없이 둔해 보였다.“절 키워주시는데, 설아 씨를 위해 이 몸을 바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요?”성도윤의 깊은 눈동자는 가면을 통해 차설아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여자는 그의 붉은 입술을 보니 마음이 더욱 뜨거워졌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완벽하고 매혹적인 입술이 있을 수 있을까? 이브가 아담을 유혹하기 위해 먹은 빨간 사과처럼, 범죄를 부르는 입술이었다.“천만에. 내가 널 키우는 건 그것 때문이 아니야!”차설아의 얼굴은 더욱 붉어지더니 더듬거리며 설명했다.“아직 어린 나이에 술집에서 몸을 팔며 돈을 버는 게 안타까워서야. 난...”“그건 중요하지 않아요!”성도윤은 긴 손가락을 여자의 입술에 대고 속삭였다.“지금 중요한 건, 우리 사이에 전남편과는 다른 화학반응이 일어날 수 있을지예요.”“네 말이 맞아. 늘 그 답을 알고 싶었지만 마땅한 실험상대가 없었어...”차설아는 눈앞의 택이를 보며 감탄했다.‘그래, 아주 완벽한 실험상대야!’그녀는 늘 남자들과 거리를 두었고, 가까이 오는 모든 남자들에게 철벽을 치는 습관이 있었다.유독 택이와 있을 때, 매우 편안하고 저도 모르게 먼저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거부감이 들지 않고 심지어 마음을 빼앗길 정도였다.이것은 성도윤에게서만 느꼈던 기운이다.“
차설아는 배움에 목마른 학생처럼 성도윤의 세심한 가르침에 더욱 대담해졌다.공기 중에는 호르몬 냄새가 강하게 풍기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서로의 가쁜 숨결만이 들끓었다.두 사람이 마지막 선을 넘으려는 순간, 아직 남아 있는 한 가닥의 이성이 차설아를 멈추게 했다.“잠깐. 안 돼!”여자는 막강한 의지력으로 성도윤의 유혹을 뿌리치고는 힘껏 밀어냈다.그녀의 입술은 이미 키스로 인해 빨갛게 부어올랐고, 주황빛 아래서 특히 아름다웠다.물론 성도윤의 입술도 만만치 않았다. 입가에는 차설아가 기승을 부린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이 철석같은 증거들은 그들이 방금 얼마나 황당한 일을 했는지 충분히 보여주었다.“말도 안 돼. 미쳤어. 방금 우리가 뭘 한 거야!”차설아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차마 남자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미안해. 내가 잠시 미쳐서 너를 탐했어. 난 정말 짐승이야. 존엄이 있는 인간을 실험도구로 삼다니!”성도윤은 여전히 조금 전 격렬한 키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깊은 눈에는 뜨거운 정욕이 흘러넘쳤다. 약간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왜 멈춘 거예요? 설아 씨를 위해 이 몸을 바치는 건 제 사명이라고 했잖아요.”그는 여자의 손을 덥석 끌어당기더니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제 키스가 별로였나요? 아니면 기술이 어려워 배우기 힘든가요?”성도윤은 여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다시 여자의 입술을 훔치려 시도했다.“약속할게요. 이번에는 천천히...”“그만!”차설아는 고개를 돌리더니 숨을 크게 들이쉬며 어두운 얼굴로 설명했다.“키스는 아주 좋았어. 역시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 남다르네. 백 점짜리 키스였어.”“그런데 왜요?”“그냥, 내가 받아들일 수 없어.”차설아는 눈을 감고 방금 키스를 되새겼다.택이의 노련한 키스에 마음이 흔들렸던 건 사실이다.하지만, 그와 키스를 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성도윤의 얼굴이 떠올랐다.이건 택이를 완전히 성도윤의 대체품으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되니, 택이에게 불공평한 일이다.“우리 서로 홀
여자의 말에 성도윤은 생각에 잠겼다.그렇다. 사랑 없이 혼자 살아가는 것도 어쩌면 홀가분하다!그는 차설아보다 더 명석하고 이성적이며, 자신을 사랑에 빠져 걷잡을 수 없는 모습으로 변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차설아는 화상 상처가 거의 회복할 무렵 아파트로 돌아갔다.그녀를 너무 보고 싶어 하던 두 아이는 계속 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엄마, 일 너무 힘든 거 아니에요? 며칠 동안이나 야근하고 집에 돌아오지 않아서 달이랑 오빠가 얼마나 마음 아팠다고요. 달이가 안마해 줄게요.”달이는 말하면서 차설아의 어깨와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작은 손에는 힘이 별로 없어 간지러움을 태우는 것 같았다.“엄마가 이렇게 고생하는 걸 보니 제 계획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겠군요!”원이는 턱을 받쳐 들고는 얼굴을 찡그린 채 리틀 성도윤의 모습으로 진지하게 말했다.소파에 누워 맛있게 과일을 먹고, 달이의 안마를 즐기고 있던 차설아는 원이의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 물었다.“무슨 계획?”“엄마에게 남편을 찾아주는 계획이요!”“풉!”차설아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이렇게 오래 찾았는데, 성과는 좀 있어?”“제가 말했잖아요. 미스터 Q는 이미 제 테스트를 통과했어요. 시간 잡아서 엄마랑 만나게 할 거예요. 엄마에게 남편이 생기면 엄마를 챙겨줄 수도 있고, 일도 분담할 수 있으니 지금처럼 고생하지 않아도 돼요...”원이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그는 무엇이든 주도면밀하게 계획하는 편이었다.미스터 Q를 오랫동안 지켜본 결과, 그가 아버지로든, 차설아의 남편으로든 모두 훌륭하다고 판단했다.“내일 저녁 저와 달이가 유치원이 끝나면 함께 성심 전당포로 가요. 만나서 잘 이야기 나눠보세요.”원이는 말을 마치고는 미스터 Q에게 전화를 걸었다.“미스터 Q, 내일 저녁 시간 있어요? 엄마랑 함께 만나러 가야겠어요...”“시간 있다고요? 그럼 알겠어요. 내일 저녁 꼭 만나요.”차설아는 눈이 휘둥그레서 지켜보았다.“너 이 자식. 진심이야?”차설아는 하마터면 자기 침에
박서영은 이렇게 슬프고 비관적인 성진을 보며 마음이 아파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도련님은 그 여자 때문에 너무 많이 변했어요. 예전의 도련님은 이렇게 비관적이지 않았어요...”울먹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불만이 섞여 있었다.“그 여자 때문에 이렇게 변한 것이 아니라,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인 거야. 그녀를 만나면서 더욱 나 자신으로 변해버린 거고.”성진은 깊고도 막연한 초점 없는 눈으로, 미소를 지었다. 차설아를 언급할 때마다 표정이 부드러워지면서 행복감을 감출 수 없었다.“아니잖아요!”박서영은 이해되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렸다.“예전에 도련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이 세상에서 가장 의미 없는 감정은 사람을 얽매이게 하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고요. 분명 그때 성도윤 씨는 도련님을 상대로 패배했잖아요. 도련님이 조금만 더 냉정했더라면 지금 성대 그룹은 도련님이 지배하고 있었을 텐데, 결국엔... 그 여자를 위해서 어떻게 성도윤 씨한테 골수와 눈을 내어줄 수 있어요. 그 사람이 다시 일어설 때까지 저희는 구석에서 세월이나 한탄하면서 보름달을 구경하는 것도 사치가 되어버렸잖아요. 너무 억울해요!”박서영의 말을 듣고 있던 성진은 손가락을 움찔하면서 입을 꾹 다물었다.그렇다. 예전의 그는 사고가 명확하고,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세상의 모든 사랑에 눈이 멀어있는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이었다. 그저 배부른 나머지 할 일이 없어서, 하루 종일 사랑 때문에 죽지 못해 안달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지금의 자신이 가장 경멸했던 그런 사람 중의 한명이 될 줄 몰랐다.“도련님, 시간이 되돌릴 수 있다면, 그때와 똑같은 선택을 하실 건가요?”박서영은 흔들리는 성진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잘 모르겠어.”아주 진솔한 대답이었다.“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 사랑에 미친다고 하잖아. 나는 이미 그래봤으니까 또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과연 그런 용기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어. 어쩌면... 완전히 나쁜 사람이 되어버릴지도 몰라.
“그래요. 그러면 이따 올릴 거니까 일단 로그인해 주세요.”’박서영이 핸드폰을 건네면서 차설아더러 자기 SNS 계정에 로그인하라고 했다.핸드폰을 받아쥔 차설아는 매우 협조적으로 SNS 계정에 로그인했다.구조를 요청할 기회는 많았지만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다.박서영도 차설아가 진심으로 속죄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점차 믿게 되었고, 다소 놀라면서 말했다.“생각보다 자기 눈을 내놓을 만큼 결단력 있는 사람이었군요. 그래서 저희 도련님이 당신을 이렇게 미치도록 사랑했던 거군요. 당신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에요.”“저에게 주는 칭찬이에요?”차설아가 박서영을 쳐다보면서 피식 웃었다.“저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단지 남에게 빚지는 것을 싫어할 뿐이에요.”“저희 도련님께서 원하는 것이 바로 그거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도련님이 계속 바보 같이 지내는 것을 두고볼수 없어요. 박서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고통은 결국 도련님만 겪는 거잖아요? 이번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저는 도련님께서 좀 더 냉정해져서 설아 씨를 곁에 뒀으면 좋겠어요. 예전부터 그래왔으니까요. 연애의 신 같은 건 도련님한테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박서영은 어릴 적부터 성진 부모의 교육을 받아 성진 한 사람만을 위해 헌신하며, 성진을 위해 무조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녀의 기억 속 성진은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좋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그중에서 배회하는 사람이었다.이런 사람은 완전히 흑화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착한 모습을 보이면 끝없는 심연에 빠질 뿐이다.이번에는 박서영이 한눈파는 사이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것이다. 박서영은 이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한때 냉혹하고 교활하며 결단력 있는 성진이 반드시 돌아와야만 했다.차설아는 다소 어두워진 표정으로 박서영에게 물었다.“그동안 성진은 어떻게 지냈나요?”“시각장애인이 뭘 어떻게 지냈겠어요.”박서영은 고개를 저으며
박서영은 그녀를 믿지 못하겠는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정말 기꺼이 두 눈을 내놓을 생각이 있으신가요?”그녀는 세상에 이렇게 바보 같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분명 무슨 속셈을 꾸미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제가 성진한테 빚진 걸 갚는 거예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어요.”차설아가 말했다.“저를 못 믿겠다면 제가 무사하다는 것을 굳이 알릴 필요 없어요. 다만 그때 가서 일이 커지면 알아서 처리하세요.”거짓말할 마음도 없는 차설아는 진심으로 이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었다.항상 성진의 헌신 덕분에 남의 인생을 도둑질한 것처럼 느꼈고, 가끔 즐거울 때도 불안한 마음에 죄책감을 느꼈다.이 기간에 성진에게 연락하지 않았지만, 밤이 깊어질 때마다 그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이 남자가 어떤 어둠 속에 처해있을지, 어떤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을지를 상상했다. 어쩌면 원수의 손에 잡혔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가능성이 마치 비수처럼 심장에 꽂혀 잠을 이루지도 못하고 고통스럽기만 했다.차설아는 더 이상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빚을 한 번에 갚고 싶어 했고, 그렇게 되면 그나마 좀 더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럼 어떤 방법으로 무사하다고 전할 건데요?”박서영은 차설아를 냉정하게 바라보며 여전히 경계하는 어조로 물었다.“SNS에 올리면 되죠.”차설아가 웃으면서 말했다.“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위험에 처했을 때 SNS를 올릴 마음이 있겠어요? 제가 SNS를 올려버리면 적어도 제가 안전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SNS만 올리게요?”박서영은 나름대로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SNS면 충분해요.”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차성철도, 배경윤도, 선우 시원도 각자 바빴기 때문에 그녀를 신경쓸 새도 없었다.이럴 때 SNS를 올리면 최소한 무사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좋아요. SNS 올리는 것만은 허락해 줄게요.”박서영이 여러 번 고민
“하하. 성도윤 씨랑 데이트하고, 선우가문의 도련님과 애정 어린 농담을 주고받고, 배씨 가문 도련님과 술 마시는 시간은 있으면서 저희 도련님을 찾을 시간은 없었나 보죠? 저희 도련님을 잊어버릴 정도로 바빴나 봐요.”서영이 흥분한 나머지 차설아의 목을 직접 움켜잡으면서 말했다.“그거 알아요? 당신이 성도윤 씨랑 얽히고설켜 있을 때, 저희 도련님은 좌절감에 스스로 인생을 끝내려고 했어요. 손목에 상처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아무리 칼날을 숨겨봤자 어떻게든 찾더라고요. 그렇게 강하던 사람이 이제는 약해빠져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요. 알아요?”차설아는 저항하지도 않고 박서영이 자기 목을 조르는 대로 놔두었다. 애처롭게 바라보던 그녀의 두 눈에는 핏줄이 보이기 시작했다.“흥. 절대로 당신이 쉽게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예요.”박서영은 그제야 차설아를 놓아주며 차갑게 말했다.“당신한테 죗값을 치르게 하려고 이 저택으로 데려온 거예요.”“켁! 켁! 켁!”차설아는 잠깐의 질식 때문에 기침하면서 숨을 헐떡이며 박서영에게 물었다.“제가 어떻게 죗값을 치르기를 원해요?”“아주 간단해요. 저희 도련님의 시력을 돌려주면 돼요.”박서영은 앞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그동안 저는 도련님을 위해 거부반응이 없고 잘 맞는 한 쌍의 눈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지만, 아쉽게도 찾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설아 씨의 건강 검진 데이터를 우연히 얻게 되었는데 아주 특별한 두 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마침 저희 도련님한테 빚진 것도 있으니까, 설아 씨의 눈을 저희 도련님의 눈과 바꾸는 거 어렵지 않겠죠?”차설아는 박서영의 최종목적을 듣고 침묵하고 말았다.“제 눈이 정말 성진한테 맞나요?”그때 성도윤이 실명했을 때도 눈을 물색하고 다녔는데 오직 혈연관계가 있는 성진의 눈만 거부반응이 없었다.그때는 성도윤이 빨리 낫기를 바라면서 성진을 신경 쓰지도 못했다.하지만 마음의 빚 때문에 계속 숨이 안 쉬어졌다.만약 자기 눈으로 성진의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면 마음의 위로 때문이라
차설아는 다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커다란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온통 흰색 인테리어인 낯선 이곳은 영안실에 온 기분이었다.“드디어 깨셨군요, 약효가 너무 강해서 무려 사흘 동안 혼수상태였어요. 이러다 죽어버리는 줄 알았어요...”창가에서 한 여자의 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에게는 생과 사가 그저 자거나 깨어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경계 태세로 창가를 바라보던 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당신이었어요?”그날 밤 병원에서, 몰래 차설아의 병실로 들어간 그녀였다.“저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네요. 영광이에요.”박서영은 창가에 앉아 꽃다발을 정리하고 있었다.그녀의 옆에 놓인 꽃병에는 이제 막 정원에서 따온 해바라기가 꽂혀있었다.박서영은 황금빛으로 만개한 해바라기 줄기를 비스듬히 잘라 하나씩 예쁘게 꽃병에 꽂아 넣었다.“저희 주인님께서는 설아 씨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해바라기라면서 정원에 해바라기를 심으라고 했어요. 이제는 만개했는데 볼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워요. 마치 다른 사람한테 보이지 않는 주인님의 마음처럼 말이에요.”이때 박서영은 눈빛이 차가워지면서 꽃가지를 단단히 잘라버렸다.“주인님이라 하면 성진을 말씀하시는 거예요?”차설아는 사고가 날카로운 사람이라 바로 상대방을 추측해 냈다.그녀의 기억 속에서 일편단심이면서 실명한 사람은 성진뿐이었다.“도련님을 아직 기억하고 계셔서 다행이네요. 도련님 정성이 헛되지 않았네요.”박서영은 차설아가 성진을 아직 기억하고 있어 그나마 그녀를 향한 증오가 줄어드는 듯했다.“정말 성진이에요?”차설아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려 했지만, 온몸이 무기력해 마치 마비된 것처럼 전혀 힘을 쓸 수 없었다.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박서영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저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걱정하지 마세요. 그저 마취제 때문에 잠깐 의식을 잃고 침대에 누워있었을 뿐이니까요.”차설아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마에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리 일어나고 싶어
진찬영은 배경윤에게 핸드폰을 건네면서 이 둘의 말다툼을 중단시켰다.“고마워요. 찬영 오빠는 역시 최고예요.”배경윤은 배시시 웃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차설아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정말 제가 좋다면 이제는 찬영 오빠라고 부르지 마요...”진찬영은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찬영 씨라고 불러요.”“아, 그게...”배경윤은 진찬영의 갑작스러운 감정변화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심지어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찬영 오빠는 팬분들이 불러주는 호칭인데 저희는 그런 사이가 아니니 이제부터는 찬영 씨라고 부르는 거 어때요?”“알았어요. 찬영 씨...”호칭을 바꿔 부른 배경윤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왜 이렇게 부끄럽지?’역시 호칭은 알게모르게 두 사람이 얼마나 가까운지 설명할 수 있었다.찬영 오빠라고 부를 때에는 팬이 연예인에 대한 애정으로 별로 부끄럽지 않았는데 찬영 씨라고 부르니 확 부끄러워지는 느낌이었다.옆에 있던 사도현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지금 저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거예요?”지금 사도현이 비꼬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느낄수 있었다.“너랑 무슨 상관이야. 보기 싫으면 나가든가.”배경윤의 말을 비수처럼 심장에 박혔고, 사도현의 체면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흥! 누가 설아에 대해 나쁜 말을 하라고 했어?’배경윤은 차설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계속해서 무응답 상태였다. 반복해서 네다섯 번을 걸었지만, 여전히 아무도 받지 않았다.“무슨 일이지?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지? 뭔가 잘못됐어.”비경윤은 불안한 예감에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지금쯤 병원에 있어야 하는 설아는 원래 지루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언제나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는데, 왜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 걸까? 분명 무슨 일이 있어!’배경윤이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에서 일어나려 한다.“제발 가만히 있어!”사도현이 다시 그녀를 침대에 눕히면서 말했다.“설아가 어린애야? 실력도 좋은데 무슨 일이 있겠어. 다른 사람을 건드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두세 시간 뒤에요.”진찬영이 대답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모든 독소를 제거하려면 세 시간 후에 전신 마취를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물을 마시면 안 돼요.”“아직 시간이 많네요...”배경윤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제 핸드폰은 어디 있어요? 설아에게 안부를 전해야 하거든요.”사도현이 배경윤을 다시 침대에 눕히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지금이 어떤 때인데, 너나 잘 챙겨. 설아를 챙기는 사람은 많고도 많아.”“누군데? 설마 너의 그 쓰레기 같은 친구 성도윤은 아니지?”배경윤이 무례하게 반박했다.“난 그 자식이 방해할까 봐 걱정돼서 설아랑 계속 연락하려고 하는 거야.”사도현은 무심코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도윤이 형이 대체 너한테 뭘 잘못했다고 그래?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그 두 사람은 딱봐도 재능과 미모를 갖춘 천생연분인데, 그냥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을 뿐이잖아. 우리 도윤이 형을 바람둥이라고 단정 짓지는 말지?”“그 사람이 바람둥이 아니면 누가 바람둥이인데!”배경윤은 격렬하게 반응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나 사도현과 따지려고 했다.“혼인 중에 바람을 피우고, 다른 여자를 임신시키고, 겨우 설아 마음을 되돌리더니 또 다른 재벌 딸과 약혼하고. 이게 바람둥이가 아니면 뭔데?”“설아도 너의 오빠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잖아. 요즘에는 선우 가문 도련님과도 뜨겁게 보내더니. 그리고 도윤이 형은 왜 이렇게 되었는데! 어떻게 실명하고 기억을 잃게 되었는지 설아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거야?”“그건 그냥 사고일 뿐인데 설아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는 거야. 원망할 거면 하느님을 원망해. 누가 그런 악행을 많이 저지르라고 했어. 하느님도 노해서 가만두지 않은 거지.”“배경윤,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나한테 막말은 해도 도윤이 형한테는 그러면 안 되지.”“내가 뭘 어쨌다고? 너도 방금 우리 설아한테 뭐라고 했잖아!”두 사람은 마치 싸움닭처럼 감정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이것은 두 사람이 계속 다투게 되는 주제라
진찬영은 사도현이 지금까지 만난 가장 자아도취적이고 오만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경윤 씨한테 물어봤어요? 당신과 저 사이에 도대체 누가 외부인인지.”사도현은 말을 끝내자마자 진찬영의 품에서 배경윤을 뺏어오려고 했다.이때 이미 힘이 풀린 배경윤이 입술이 약간 창백해져서 말했다.“싸우지 않으면 안 돼요? 계속 싸웠다간 제가 죽을지도 몰라요. 빨리... 저 좀 병원에 데려다줘요!”배경윤은 눈앞이 어두워지면서 의식을 잃고 말았다.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근처 병원의 환자 침대에 누워있었다.병상 앞에는 사도현과 진찬영이 앉아있었고, 분위기는 쓰러지기 전과 같았다.하지만 다행히도, 아직은 죽은 목숨이 아니었다.“경윤아, 깼어? 목말라? 물 따라줄까?”배경윤이 눈을 뜨자, 진찬영은 두 눈이 반짝거렸다.“이틀 동안 혼수상태였는데, 목마르냐고 묻는 시간에 이미 다 마셨겠어요.”사도현이 이 말을 할 때, 진찬영은 이미 따뜻한 물을 배경윤한테 건넸다.배경윤은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고 싶었지만, 오른손에 아무런 감각도 없어 전혀 힘을 쓸 수가 없었다.“내... 내 손...”그녀는 침을 삼키면서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손을 절단해야 하는 건가? 이제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걸까?’“걱정 안 해도 돼요. 괜찮아요. 독이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아서 마비된 느낌이 들 거예요.”진찬영은 부드럽게 그녀의 마음을 안심시켰다.“아... 깜짝 놀랐잖아요.”배경윤은 절단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도현은 배경윤에게 직접 물을 먹여주면서 대뜸 말했다.“24시간 이내에 독을 깨끗이 배출하지 못하면 신경이 마비되어 절단해야 할수도 있어.”“푸!”배경윤은 물을 다 마시기도 전에 뿜어내고 말았다.“뭐라고?”긴장한 채로 사도현을 쳐다보던 배경윤은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만약 손을 정말 절단해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아직도 이해 못 했어? 독이 말끔히 없어지기 전까진
야맹주를 확인한 배경윤은 신속히 잠수했다.“천천히 가!”사도현은 그녀가 걱정되어 조심하라고 말했다.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운 산호바다였지만 단면이 너무 높아 일부 산호는 쉽게 만졌다가 위험할 정도로 날카로웠다.하지만 이때, 동심의 세계로 들어간 배경윤은 마치 큰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흥분하면서 야맹주 위에 덮여 있던 산호초를 맨손으로 제거했다.그녀는 차설아가 평안 무사할수 있도록 이 야맹주를 선물하고 싶었다.“아!”배경윤이 야맹주에 손을 대려는 순간, 갑자기 산호초 틈새에서 은색 원형 물체가 튀어나와 그녀의 손등을 덥석 물었다.“바다뱀이야!”바다뱀이 배경윤을 물고 옆을 쓱 스쳐 자나가자 머릿속이 하얘진 사도현은 급히 잠수하여 그녀의 손을 잡았다.“봐봐...야맹주!”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배경윤은 그저 벌레에게 물렸다고 생각하면서 순진하게 사도현에게 야맹주를 자랑했다.“입 다물어!”사도현은 눈앞의 이 덜렁거리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그녀는 과연 이런 바다뱀이 독성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진찬영은 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긴 팔로 배경윤의 허리를 감싸고, 긴 다리를 쭉 뻗어 빠르게 수면으로 올라갔다.진찬영과 하늘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차례로 수면으로 떠올라 잠수 마스크를 벗었다.“여기 도와주세요! 보트를 준비해 주세요. 병원으로 가야겠어요!”사도현의 잘생긴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고, 잠긴 목소리로 육지에 있는 안전요원에게 외쳤다.“무슨 일이에요?”진찬영이 신속히 배경윤 곁으로 다가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아, 별거 아니에요. 그냥 벌레에게 물렸을 뿐이에요...”배경윤은 뱀에게 물린 손등을 들면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보였고, 오히려 사도현이 너무 예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일반적으로 뱀에게 물리면 독이 체내에 바로 퍼지지 않아 아직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그녀는 다시 야맹주를 들어 올리며,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다들 이것 좀 보세요, 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