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윤과 서윤은 원래 경찰서로 향하는 차에 앉았지만 가는 길에 성도윤은 계속 어금니를 깨물며 어떤 생각에 잠겼는지 미간을 찌푸렸다.경찰은 그가 너무 걱정하는 줄 알고 위로를 건넸다.“대표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별일 없을 거예요. 매년 오피스텔에 이런 변태가 많이 나타나요. 그리고 변태들이 겁도 많아서 기껏해야 사진 찍지 않으면 몸에 조금 손을 댈 뿐이에요.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하니 걱정...”“차 세워요!”성도윤이 차가운 눈빛을 보이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명령했다.“왜, 왜 그래요? 대표님?”“당신들 헛소리를 들을 시간이 없어요. 지금 당장 차에서 내려야 하겠어요.”성도윤은 경찰이 주절거리는 그 몇 분 동안에 새로운 단서를 발견했다. 하지만 더 경찰과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운전기사는 성도윤의 명령을 어길 수 없어 바로 길가에 차를 세웠다.성도윤이 차가운 얼굴로 차에서 내리고는 고개를 돌려 서윤에게 당부했다.“먼저 경찰서로 가서 조서를 작성하고 있어요. 그리고 내 소식을 기다려요. 이 일이 절대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돼요.”“네, 알겠습니다!”서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남자에게 약속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성 대표님. 저 입이 무거운 사람입니다. 오늘 밤 있었던 일은 절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을게요.”성도윤은 가장 빠른 속도로 오피스텔 지하 주차장으로 돌아갔다.왠지 모르겠지만 그는 차설아가 지금 심상치 않은 상황을 겪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지하 주차장에 가까워질수록 그 느낌이 강했다.그는 엘리베이터를 따라 지하 주차장을 차례로 살펴봤다.아니나 다를까, 남자는 예리한 눈썰미로 지하 주차장 안쪽,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다른 곳과는 조금 다른 부분을 발견했다.바닥 위의 도색 면은 옆과는 달리 다시 칠한 적이 있는 것 같았다.성도윤은 웅크려 앉더니 손가락으로 한 번 만져봤는데 이 자리의 밑부분은 텅 비어 있었고, 어떤 통로로 향하는 문과도 같았다.“젠장!”성도윤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 치의 망
“아닙니다, 제가 어디 그럴 배짱이 있겠습니까. 성 대표님, 살려주십시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살려주십시오...”“걱정하지 마, 네 목숨은 살려줄 거니까. 앞으로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맛보게 해줄게!”성도윤은 염라대왕처럼 위엄 있게 남자의 머리를 흙까지 짓눌렀다.그 변태는 감히 반항하지도 못한 채 곧 정신을 잃었다...차설아는 아직 돗자리에 누워 있었다. 몸을 묶었던 밧줄이 풀렸고 입고 있던 옷이 거의 다 벗겨져 희고도 분홍빛을 띤 속살을 드러냈는데 세상 가장 맛있는 음식보다도 먹음직스러웠다.그녀는 미꾸라지처럼 성도윤의 발을 더듬더니 뜨거운 두 손으로 남자의 늘씬한 두 다리를 끌어안고는 예쁜 얼굴로 비비적거리면서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성도윤, 정말 나타났구나. 이거 환각이야?”성도윤은 차가운 얼굴을 보이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자신의 두 다리를 꼭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는 여자를 보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이젠 안전해. 얼른 옷 입어, 장난치지 말고!”그는 차설아가 약을 먹어 정신이 흐릿해진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차설아의 눈에 자기가 몸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해독약이라는 사실은 더더욱 모르고 있었다.“나 안전한 거 아니야. 너무 괴롭고 몸이 뜨거워. 당신 좋은 사람이니까 나 살려줘. 제발 도와달라고...”차설아가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성도윤의 목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당신이 나의 해독약이잖아. 당신이 필요해, 제발 나 떠나지 마.”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녀의 옷이 자연스럽게 모두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는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모든 속살을 드러냈다.“콜록콜록!”성도윤이 아무리 인내심이 있는 남자라고 하지만 이런 차설아는 감당할 수 없었다.그는 차설아의 턱을 치켜들더니 그녀의 눈을 보며 차갑게 물었다.“잘 생각했어?”차설아는 몽롱한 눈빛으로 남자를 보고는 입을 남자의 귓가에 대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당
차설아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저 눈만 끔뻑끔뻑하며 멍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무... 무슨 일?”성도윤은 차가운 얼굴로 차설아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펴보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을 보였다.차설아는 몸에 아주 얇은 실크 잠옷을 입고 있어 바로 이불로 밖에 드러난 속살을 감추고는 계속 조심스럽게 물었다.“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좀 힌트를 주면 안 될까?”“나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서 물어?”성도윤은 침대 쪽으로 걸어가면서 차설아에게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아니면 일부러 모르는 척해서 이 일을 없던 일로 만들려는 거야?”“나 정말 기억이 안 나. 증거가 있으면 내놓아 봐. 나한테 누명 씌우지 말고.”지금의 그녀는 마치 머릿속의 일부 기억을 모조리 잃어버린 것 같았다.그녀가 기억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어제 퇴근 후 어떤 체크무늬 사내에게 휴대폰을 빌려준 것밖에 없었다. 그 뒤로 무슨 일이 있었던지는 정말 조금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그래서... 어젯밤에 자기가 욕구를 주체하지 못하고 짐승처럼 성도윤을 ‘괴롭혔는지’ 알 수 없었다.그녀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제발 아니어야 해. 제발 아니어야 한다고. 아니면 너무 부끄럽잖아. 앞으로 성도윤 앞에서 얼굴을 들지도 못하겠어.’“증거야 당연히 있지... 두 눈 뜨고 똑바로 봐!”성도윤이 말하고는 몸에 입고 있던 가운의 끈을 풀었다.구릿빛 피부가 서슴없이 드러났는데 초콜릿 같은 복근은 마치 명품 모델 같았다.차설아는 저도 모르게 군침을 꿀꺽 삼켰다.뚫어지게 쳐다보는 게 실례인 걸 알면서도 시선을 옮길 수 없었다.그리고 그녀는 남자의 피부에 아주 또렷한 ‘증거’들이 남아있다는 걸 발견했는데 그야말로 ‘장관’이었다.“여기뿐만 아니라 등에도 있어!”성도윤이 어금니를 깨물고는 가운을 아예 반쯤 벗고 돌아섰다.그의 튼실하고 넓은 등에는 온통 손톱자국이었는데 차설아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많았다.“그게... 그게...”차설아는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처럼 아주 작은
성도윤이 입을 삐죽 내밀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반항했지. 하지만 쓸모가 있겠어? 당신이 얼마나 싸움을 잘하는데, 내가 이겼을 리가 있겠어?”“그게...”차설아는 남자의 몸에 난 상처를 다시 보자 양심에 찔렸는지 목소리를 낮췄다.“그럼 당신이 옷을 너무 적게 입은 거 아니야? 좀 반성해. 나 꼬시려고 일부러 가볍게 행동한 거 아니야? 남자로서, 특히 흔히 볼 수 없는 우수한 수컷으로서 자신을 잘 지켰어야지. 맨날 여자를 꼬시니까 그렇게 당하는 거야.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한다면 누가 당신을 지켜주겠어. 그러니 그런 일을 당해도 싸지. 인터넷에 이 일을 올려도 네티즌들은 내를 욕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스스로 자초한 거라고 말할걸?”“...”성도윤은 어이가 없었다.‘차설아랑 이런 일로 다투고 있는 내가 정신이 나갔지.’하지만 차설아는 결국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쓰레기 남자들이 여자들을 달래는 말투로 말했다.“됐어, 됐어. 너무 속상해하지 마. 그 일은 내가 너무 충동적이었어. 당신의 마음도 고려하지 않고 말이야... 이러는 건 어때? 내가 이따가 돈을 이체해 줄 테니까 가서 당귀나 구기자, 굴이나 사 먹고 몸을 좀 보양해. 남자니까 씩씩해야지!”“...”성도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차설아는 그의 마음을 잘 달래준 줄 알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그녀는 몸을 일으켜 눈을 크게 뜨고는 방 안을 뒤지며 자신의 옷을 빨리 찾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아무리 어젯밤에 일어난 일이 황당하다고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고, 그녀가 기억할 수도 없으니 아예 없던 일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차설아는 성도윤과 그 어떤 관계도 맺고 싶지 않았다!차설아의 옷은 방 곳곳에 널려 있었는데 심지어 속옷은 소파 위에 걸려 있어 유난히 눈에 띄었다.“그게... 다른 일이 없다면 좀 자리를 비켜줄래? 나 옷을 입어야 하니까.”‘정말 눈치 없는 녀석, 내가 이런 것까지 직접 말해야 해?’성도윤은 순순히 그녀의 말을 따랐다.자리에서 일어서고는 여
“설아 쨩, 설아 쨩이 왜 도윤이 형 방 안에서 나와? 설마 두 사람...”그 사람들 중에 사도현도 있었는데 그는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그리고 강진우를 포함한 다른 명문 가문 도련님들도 모두 믿을 수 없는 얼굴을 보였다.차설아가 목을 가다듬고는 애써 덤덤한 척 도도하게 말했다.“나 일 때문에 찾아왔어요.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느니 다른 생각은 하지 마요.”잇따라 성도윤이 젖은 머리를 한 채 가운만 입고는 느긋하게 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차설아에게 말했다.“아직 안 갔네. 머리띠는 안 가져가?”차설아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버렸다.‘X발, 진짜 민망하네.’그는 남자가 건넨 검은색 머리띠를 건네받고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다행이야, 안 그래도 찾고 있었는데. 도윤 씨가 주었구나.”성도윤이 팔짱을 끼고는 차설아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당신은 그래도 머리를 푸는 게 예뻐. 어젯밤에...”“콜록콜록.”차설아는 미친 듯이 기침을 하면서 남자를 말리려고 했다.‘아니, 눈이 멀었어?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 게 안 보여? 그런 민망한 일은 왜 쓸데없이 자꾸 디테일하게 말하는 거야?’다른 남자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더니 사도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는 웃으며 말했다.“됐어, 설명할 것 없어. 우리 다 성인이잖아. 말 안 해도 알지.”강진우도 말했다.“우리가 잘못 왔네요. 지금 자리를 피해줄 수도 있는데.”“자리를 피해줄 것 없어.”성도윤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잘못 온 거 아니야. 이미 다 지나간 일이거든.”“도윤 씨!”차설아는 화가 나 어금니를 깨물고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위협했다.“헛소리를 하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하지만 성도윤은 두 팔을 안은 채 무심하게 벽에 기대더니 웃는 듯 마는 듯 말했다.“아니야? 그럼 당신이 했던 일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라도 할까?”“그렇게 하기만 해!”“나 피해자인데 못할 게 뭐가 있어?”“당신...”성도윤
성도윤이 차설아를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씩 끌어올렸다.“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차설아는 화가 치밀어 올라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나 저 사람들이랑 친한 거 아니잖아. 남정네들이 고기 하나 굽지 못해서 여자인 나를 시켜? 어이가 없어서...”“하긴!”성도윤이 웃는 듯 마는 듯 말했다.“어젯밤에 워낙 체력을 많이 소모했으니까. 나만 불쌍하게 되었지...”“닥쳐!”차설아는 능구렁이 같은 성도윤이 당장이라도 가운을 벗을 것으로 보이자 다급하게 그의 말을 끊고는 어금니를 깨물었다.“알겠어. 고기를 구울게. 구우면 되잖아!”마침 차설아는 이따가 사도현과 따로 나눌 얘기가 있었다.넓은 뒷마당에서.푸르고 평평한 잔디밭 위에 각종 식재료와 바비큐 그릴이 놓여 있었다.오늘 날씨가 좋아 성도윤과 친구들은 천막 아래 의자에 누워 있으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그들과는 달리 차설아는 그릴 앞에 앉아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남정네들을 위해 고기를 굽고 있었다.삼겹살이 기름지게 굽히고 있었고, 윙도 겉에 꿀이 발려 ‘겉바속촉’으로 굽혀져 있어 유난히 향기로운 냄새를 풍겼다.“X발,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벌을 받고 있나? 저 남정네들을 위해 여기서 고기를 굽고 있다니.”차설아는 멀지 않은 곳에 누워 있는 남자들을 보고는 화가 나 고기 위에 고춧가루를 잔뜩 뿌렸다.‘쯧쯧, 괜히 어젯밤 일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남자들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각자 지난날의 재미있는 일들을 회상했다.성도윤은 상대적으로 말수가 적은 편이었는데 존재감이 어마어마했다. 그들은 모두 성도윤의 일에 대해 수다를 떨고 있었으니 말이다.사도현이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했다.“도윤이 형, 대단한데? 그날 설아 쨩이 그렇게 화가 났는데도 이제 며칠이 지났는데 두 사람 화해한 거야? 나 두 사람 서로 영영 얼굴 안 보는 줄 알았잖아. 그런데 설아 쨩이 지금 형 말을 저렇게 잘 듣는다니.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우리에게도 경험을 전수해 줘.”
성도윤은 친구들의 부러운 눈빛을 받으며 으쓱한 얼굴로 윙을 한 입 베어 물었다.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매운맛이 혀끝에서 전해져 오더니 칼에 베인 것처럼 괴로웠다.“도윤이 형, 어때? 설아 쨩의 사랑이 가득 담긴 고기가 엄청 맛있지? 냄새만 맡아도 침이 나올 것 같아...”그들 중에서 나이가 가장 어린 추씨 가문 도련님인 추이준이 군침을 꿀꺽 삼키면서 부러운 얼굴로 물었다.“콜록콜록!”성도윤의 얼굴은 곧바로 굳어졌다.그는 고기를 씹지도 않고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매운맛에 정신이 어질했다.하지만 겉으로 온갖 허세를 부렸는데 맛이 없다고 말하면 체면이 서지 않을 것이다.전에도 이미 차설아가 인사도 없이 떠난 바람에 그는 많이 체면이 구겨졌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차설아를 찾겠다고 인적이 드문 섬까지 찾아갔는데 돈 한 푼 없이 부모의 도움으로 겨우 해안시로 돌아온 일은 아직도 친구들이 술안주로 일삼곤 했었다.오늘 겨우 체면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이렇게 빨리 들통나고 싶지 않았다. 아니면 그의 친구들은 또 분명 오랫동안 그를 놀릴 것이다.그래서 성도윤은 혀가 마비될 정도로 매웠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우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정성을 다해 구웠으니 정말 맛있군.”“그렇게 맛있어?”사도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의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도윤이 형은 분명 행복의 표정이 아니라 고통스러워 보이는데?’강진우의 눈썰미가 특히나 예리했다.“도윤아, 괜찮아? 왜 눈까지 빨개졌어?”“너무 맛있어서 그렇지. 눈물이 날 지경이야.”성도윤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차설아를 힐끔 보고는 어금니를 깨물며 말했다.“설아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겠어. 정말 그 사랑이 뜨겁다니까.”차설아는 얼굴이 벌게진 남자를 보며 하마터면 참다못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그럼. 당연하지. 내 사랑이 가득 느껴지지? 도윤 씨가 내 정성에 감동했다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먹어야 해.”‘하하하. 아까 고기에 고춧가루 반 통은 퍼부은 것 같은데 오늘 저 고기를 다 먹으면 입술
“하하...”차설아는 어쩔 수 없어 작게 한 입 베어 물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성도윤, 굳이 이럴 필요 있어? 너무 악독한 거 아니야?”“당신의 걸작이잖아. 당신도 한 번 맛을 봐야지.”두 사람은 윙 하나를 들고 이리저리 밀치며 귓속말을 주고받았는데, 오히려 한없이 다정하고 가까운 사이 같아 보였다.추이준은 흐뭇한 미소를 짓더니 휴대폰을 꺼내 다정한 모습의 두 사람을 사진 찍었다.“역시 사람들의 말이 사실이었네. 도윤이 형이랑 설아 누나,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어. 다정한 두 사람이 찍힌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야지.”“아니요, 함부로 사진 올리지 마요...”차설아는 일이 점점 커지자 다급하게 그를 말리려고 했다.하지만 추이준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사진을 올렸다. 그녀가 말리려고 해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차설아는 어쩔 수 없이 성도윤을 보더니 씩씩거리며 말했다.“왜 가만히 있어. 당장 사진을 삭제하라고 말해. 정말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면 우리 사이를 어떻게 설명하겠어?”성도윤은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이 덤덤하게 말했다.“설명할 수 없으면 설명 안 하면 되지. 어차피 우리가 완전히 깨끗한 사이였던 적은 없잖아.”“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차설아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폭발했다.“마음대로 해, 내가 언제까지 같이 놀아줄 줄 알았어?”그녀는 앞치마를 벗고 바로 자리를 뜨려고 했다.차설아는 처음부터 성도윤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녀가 해안시로 돌아온 후부터 그가 배치한 함정에 빠진 듯 그와 멀리하면 할수록 두 사람은 더 많이 엮여 차설아는 짜증이 났다.일이 점점 커지자 사람들도 조심스럽게 말했다.“설아 씨 화가 난 것 같은데 사진을 삭제하자. 설아 씨가 불쾌해하잖아.”성도윤의 얼굴이 점점 차가워지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마음대로 하든지.”사도현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성도윤더러 빨리 차설아를 쫓아가라고 재촉했다.하지만 성도윤은 상관없다는 듯이 차갑게 말했다.“저 사람이 있든 없든 별 차이
박서영은 그녀를 믿지 못하겠는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정말 기꺼이 두 눈을 내놓을 생각이 있으신가요?”그녀는 세상에 이렇게 바보 같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분명 무슨 속셈을 꾸미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제가 성진한테 빚진 걸 갚는 거예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어요.”차설아가 말했다.“저를 못 믿겠다면 제가 무사하다는 것을 굳이 알릴 필요 없어요. 다만 그때 가서 일이 커지면 알아서 처리하세요.”거짓말할 마음도 없는 차설아는 진심으로 이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었다.항상 성진의 헌신 덕분에 남의 인생을 도둑질한 것처럼 느꼈고, 가끔 즐거울 때도 불안한 마음에 죄책감을 느꼈다.이 기간에 성진에게 연락하지 않았지만, 밤이 깊어질 때마다 그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이 남자가 어떤 어둠 속에 처해있을지, 어떤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을지를 상상했다. 어쩌면 원수의 손에 잡혔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가능성이 마치 비수처럼 심장에 꽂혀 잠을 이루지도 못하고 고통스럽기만 했다.차설아는 더 이상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빚을 한 번에 갚고 싶어 했고, 그렇게 되면 그나마 좀 더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럼 어떤 방법으로 무사하다고 전할 건데요?”박서영은 차설아를 냉정하게 바라보며 여전히 경계하는 어조로 물었다.“SNS에 올리면 되죠.”차설아가 웃으면서 말했다.“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위험에 처했을 때 SNS를 올릴 마음이 있겠어요? 제가 SNS를 올려버리면 적어도 제가 안전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SNS만 올리게요?”박서영은 나름대로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SNS면 충분해요.”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차성철도, 배경윤도, 선우 시원도 각자 바빴기 때문에 그녀를 신경쓸 새도 없었다.이럴 때 SNS를 올리면 최소한 무사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좋아요. SNS 올리는 것만은 허락해 줄게요.”박서영이 여러 번 고민
“하하. 성도윤 씨랑 데이트하고, 선우가문의 도련님과 애정 어린 농담을 주고받고, 배씨 가문 도련님과 술 마시는 시간은 있으면서 저희 도련님을 찾을 시간은 없었나 보죠? 저희 도련님을 잊어버릴 정도로 바빴나 봐요.”서영이 흥분한 나머지 차설아의 목을 직접 움켜잡으면서 말했다.“그거 알아요? 당신이 성도윤 씨랑 얽히고설켜 있을 때, 저희 도련님은 좌절감에 스스로 인생을 끝내려고 했어요. 손목에 상처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아무리 칼날을 숨겨봤자 어떻게든 찾더라고요. 그렇게 강하던 사람이 이제는 약해빠져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요. 알아요?”차설아는 저항하지도 않고 박서영이 자기 목을 조르는 대로 놔두었다. 애처롭게 바라보던 그녀의 두 눈에는 핏줄이 보이기 시작했다.“흥. 절대로 당신이 쉽게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예요.”박서영은 그제야 차설아를 놓아주며 차갑게 말했다.“당신한테 죗값을 치르게 하려고 이 저택으로 데려온 거예요.”“켁! 켁! 켁!”차설아는 잠깐의 질식 때문에 기침하면서 숨을 헐떡이며 박서영에게 물었다.“제가 어떻게 죗값을 치르기를 원해요?”“아주 간단해요. 저희 도련님의 시력을 돌려주면 돼요.”박서영은 앞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그동안 저는 도련님을 위해 거부반응이 없고 잘 맞는 한 쌍의 눈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지만, 아쉽게도 찾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설아 씨의 건강 검진 데이터를 우연히 얻게 되었는데 아주 특별한 두 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마침 저희 도련님한테 빚진 것도 있으니까, 설아 씨의 눈을 저희 도련님의 눈과 바꾸는 거 어렵지 않겠죠?”차설아는 박서영의 최종목적을 듣고 침묵하고 말았다.“제 눈이 정말 성진한테 맞나요?”그때 성도윤이 실명했을 때도 눈을 물색하고 다녔는데 오직 혈연관계가 있는 성진의 눈만 거부반응이 없었다.그때는 성도윤이 빨리 낫기를 바라면서 성진을 신경 쓰지도 못했다.하지만 마음의 빚 때문에 계속 숨이 안 쉬어졌다.만약 자기 눈으로 성진의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면 마음의 위로 때문이라
차설아는 다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커다란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온통 흰색 인테리어인 낯선 이곳은 영안실에 온 기분이었다.“드디어 깨셨군요, 약효가 너무 강해서 무려 사흘 동안 혼수상태였어요. 이러다 죽어버리는 줄 알았어요...”창가에서 한 여자의 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에게는 생과 사가 그저 자거나 깨어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경계 태세로 창가를 바라보던 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당신이었어요?”그날 밤 병원에서, 몰래 차설아의 병실로 들어간 그녀였다.“저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네요. 영광이에요.”박서영은 창가에 앉아 꽃다발을 정리하고 있었다.그녀의 옆에 놓인 꽃병에는 이제 막 정원에서 따온 해바라기가 꽂혀있었다.박서영은 황금빛으로 만개한 해바라기 줄기를 비스듬히 잘라 하나씩 예쁘게 꽃병에 꽂아 넣었다.“저희 주인님께서는 설아 씨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해바라기라면서 정원에 해바라기를 심으라고 했어요. 이제는 만개했는데 볼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워요. 마치 다른 사람한테 보이지 않는 주인님의 마음처럼 말이에요.”이때 박서영은 눈빛이 차가워지면서 꽃가지를 단단히 잘라버렸다.“주인님이라 하면 성진을 말씀하시는 거예요?”차설아는 사고가 날카로운 사람이라 바로 상대방을 추측해 냈다.그녀의 기억 속에서 일편단심이면서 실명한 사람은 성진뿐이었다.“도련님을 아직 기억하고 계셔서 다행이네요. 도련님 정성이 헛되지 않았네요.”박서영은 차설아가 성진을 아직 기억하고 있어 그나마 그녀를 향한 증오가 줄어드는 듯했다.“정말 성진이에요?”차설아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려 했지만, 온몸이 무기력해 마치 마비된 것처럼 전혀 힘을 쓸 수 없었다.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박서영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저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걱정하지 마세요. 그저 마취제 때문에 잠깐 의식을 잃고 침대에 누워있었을 뿐이니까요.”차설아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마에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리 일어나고 싶어
진찬영은 배경윤에게 핸드폰을 건네면서 이 둘의 말다툼을 중단시켰다.“고마워요. 찬영 오빠는 역시 최고예요.”배경윤은 배시시 웃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차설아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정말 제가 좋다면 이제는 찬영 오빠라고 부르지 마요...”진찬영은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찬영 씨라고 불러요.”“아, 그게...”배경윤은 진찬영의 갑작스러운 감정변화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심지어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찬영 오빠는 팬분들이 불러주는 호칭인데 저희는 그런 사이가 아니니 이제부터는 찬영 씨라고 부르는 거 어때요?”“알았어요. 찬영 씨...”호칭을 바꿔 부른 배경윤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왜 이렇게 부끄럽지?’역시 호칭은 알게모르게 두 사람이 얼마나 가까운지 설명할 수 있었다.찬영 오빠라고 부를 때에는 팬이 연예인에 대한 애정으로 별로 부끄럽지 않았는데 찬영 씨라고 부르니 확 부끄러워지는 느낌이었다.옆에 있던 사도현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지금 저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거예요?”지금 사도현이 비꼬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느낄수 있었다.“너랑 무슨 상관이야. 보기 싫으면 나가든가.”배경윤의 말을 비수처럼 심장에 박혔고, 사도현의 체면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흥! 누가 설아에 대해 나쁜 말을 하라고 했어?’배경윤은 차설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계속해서 무응답 상태였다. 반복해서 네다섯 번을 걸었지만, 여전히 아무도 받지 않았다.“무슨 일이지?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지? 뭔가 잘못됐어.”비경윤은 불안한 예감에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지금쯤 병원에 있어야 하는 설아는 원래 지루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언제나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는데, 왜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 걸까? 분명 무슨 일이 있어!’배경윤이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에서 일어나려 한다.“제발 가만히 있어!”사도현이 다시 그녀를 침대에 눕히면서 말했다.“설아가 어린애야? 실력도 좋은데 무슨 일이 있겠어. 다른 사람을 건드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두세 시간 뒤에요.”진찬영이 대답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모든 독소를 제거하려면 세 시간 후에 전신 마취를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물을 마시면 안 돼요.”“아직 시간이 많네요...”배경윤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제 핸드폰은 어디 있어요? 설아에게 안부를 전해야 하거든요.”사도현이 배경윤을 다시 침대에 눕히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지금이 어떤 때인데, 너나 잘 챙겨. 설아를 챙기는 사람은 많고도 많아.”“누군데? 설마 너의 그 쓰레기 같은 친구 성도윤은 아니지?”배경윤이 무례하게 반박했다.“난 그 자식이 방해할까 봐 걱정돼서 설아랑 계속 연락하려고 하는 거야.”사도현은 무심코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도윤이 형이 대체 너한테 뭘 잘못했다고 그래?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그 두 사람은 딱봐도 재능과 미모를 갖춘 천생연분인데, 그냥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을 뿐이잖아. 우리 도윤이 형을 바람둥이라고 단정 짓지는 말지?”“그 사람이 바람둥이 아니면 누가 바람둥이인데!”배경윤은 격렬하게 반응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나 사도현과 따지려고 했다.“혼인 중에 바람을 피우고, 다른 여자를 임신시키고, 겨우 설아 마음을 되돌리더니 또 다른 재벌 딸과 약혼하고. 이게 바람둥이가 아니면 뭔데?”“설아도 너의 오빠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잖아. 요즘에는 선우 가문 도련님과도 뜨겁게 보내더니. 그리고 도윤이 형은 왜 이렇게 되었는데! 어떻게 실명하고 기억을 잃게 되었는지 설아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거야?”“그건 그냥 사고일 뿐인데 설아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는 거야. 원망할 거면 하느님을 원망해. 누가 그런 악행을 많이 저지르라고 했어. 하느님도 노해서 가만두지 않은 거지.”“배경윤,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나한테 막말은 해도 도윤이 형한테는 그러면 안 되지.”“내가 뭘 어쨌다고? 너도 방금 우리 설아한테 뭐라고 했잖아!”두 사람은 마치 싸움닭처럼 감정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이것은 두 사람이 계속 다투게 되는 주제라
진찬영은 사도현이 지금까지 만난 가장 자아도취적이고 오만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경윤 씨한테 물어봤어요? 당신과 저 사이에 도대체 누가 외부인인지.”사도현은 말을 끝내자마자 진찬영의 품에서 배경윤을 뺏어오려고 했다.이때 이미 힘이 풀린 배경윤이 입술이 약간 창백해져서 말했다.“싸우지 않으면 안 돼요? 계속 싸웠다간 제가 죽을지도 몰라요. 빨리... 저 좀 병원에 데려다줘요!”배경윤은 눈앞이 어두워지면서 의식을 잃고 말았다.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근처 병원의 환자 침대에 누워있었다.병상 앞에는 사도현과 진찬영이 앉아있었고, 분위기는 쓰러지기 전과 같았다.하지만 다행히도, 아직은 죽은 목숨이 아니었다.“경윤아, 깼어? 목말라? 물 따라줄까?”배경윤이 눈을 뜨자, 진찬영은 두 눈이 반짝거렸다.“이틀 동안 혼수상태였는데, 목마르냐고 묻는 시간에 이미 다 마셨겠어요.”사도현이 이 말을 할 때, 진찬영은 이미 따뜻한 물을 배경윤한테 건넸다.배경윤은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고 싶었지만, 오른손에 아무런 감각도 없어 전혀 힘을 쓸 수가 없었다.“내... 내 손...”그녀는 침을 삼키면서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손을 절단해야 하는 건가? 이제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걸까?’“걱정 안 해도 돼요. 괜찮아요. 독이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아서 마비된 느낌이 들 거예요.”진찬영은 부드럽게 그녀의 마음을 안심시켰다.“아... 깜짝 놀랐잖아요.”배경윤은 절단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도현은 배경윤에게 직접 물을 먹여주면서 대뜸 말했다.“24시간 이내에 독을 깨끗이 배출하지 못하면 신경이 마비되어 절단해야 할수도 있어.”“푸!”배경윤은 물을 다 마시기도 전에 뿜어내고 말았다.“뭐라고?”긴장한 채로 사도현을 쳐다보던 배경윤은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만약 손을 정말 절단해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아직도 이해 못 했어? 독이 말끔히 없어지기 전까진
야맹주를 확인한 배경윤은 신속히 잠수했다.“천천히 가!”사도현은 그녀가 걱정되어 조심하라고 말했다.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운 산호바다였지만 단면이 너무 높아 일부 산호는 쉽게 만졌다가 위험할 정도로 날카로웠다.하지만 이때, 동심의 세계로 들어간 배경윤은 마치 큰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흥분하면서 야맹주 위에 덮여 있던 산호초를 맨손으로 제거했다.그녀는 차설아가 평안 무사할수 있도록 이 야맹주를 선물하고 싶었다.“아!”배경윤이 야맹주에 손을 대려는 순간, 갑자기 산호초 틈새에서 은색 원형 물체가 튀어나와 그녀의 손등을 덥석 물었다.“바다뱀이야!”바다뱀이 배경윤을 물고 옆을 쓱 스쳐 자나가자 머릿속이 하얘진 사도현은 급히 잠수하여 그녀의 손을 잡았다.“봐봐...야맹주!”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배경윤은 그저 벌레에게 물렸다고 생각하면서 순진하게 사도현에게 야맹주를 자랑했다.“입 다물어!”사도현은 눈앞의 이 덜렁거리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그녀는 과연 이런 바다뱀이 독성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진찬영은 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긴 팔로 배경윤의 허리를 감싸고, 긴 다리를 쭉 뻗어 빠르게 수면으로 올라갔다.진찬영과 하늘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차례로 수면으로 떠올라 잠수 마스크를 벗었다.“여기 도와주세요! 보트를 준비해 주세요. 병원으로 가야겠어요!”사도현의 잘생긴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고, 잠긴 목소리로 육지에 있는 안전요원에게 외쳤다.“무슨 일이에요?”진찬영이 신속히 배경윤 곁으로 다가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아, 별거 아니에요. 그냥 벌레에게 물렸을 뿐이에요...”배경윤은 뱀에게 물린 손등을 들면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보였고, 오히려 사도현이 너무 예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일반적으로 뱀에게 물리면 독이 체내에 바로 퍼지지 않아 아직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그녀는 다시 야맹주를 들어 올리며,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다들 이것 좀 보세요, 제가
진찬영은 이런 중요한 기회를 사도현을 놓칠 수가 없었다.“저는 저의 파트너로 하늘 씨를 선택하고 싶어요.”진찬영이 사도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안전요원에게 이렇게 말하자 사도현과 배경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이 자식 뭐하는 거야. 포기라도 하는 거야?”사도현은 믿기지 않는지 진찬영을 째려보면서 말했다.“어떻게 하늘 씨를 선택할 수 있어요? 어쩌다 정면으로 승부를 겨룰 기회가 생겼는데 왜 포기하는 거예요?”진찬영이 사도현을 냉랭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지금은 잠깐 경윤 씨를 도현 씨한테 맡길게요. 꼭 잘 지켜주셔야 해요.”사도현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잠수복을 입고 하늘과 함께 바다로 뛰어드는 진찬영을 쳐다보았다.“왜 저래?”제대로 한판 붙어볼 줄 알았는데 도전장을 내민 사람은 자기뿐이라 갑자기 김이 새는 느낌에 불쾌하기만 했다.“갑시다. 파트너님.”사도현은 더는 생각하기도 싫어 멍한 표정의 배경윤한테 터벅터벅 걸어갔다.“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너랑 짝이 된 거야.”배경윤은 싫증난 표정을 하고있었다.진찬영과 손잡고 바다 경치를 즐길 줄 알았는데 말이다.그런데 아무리 봐도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도현한테 자기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아까 등산할 때까지만 해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는데 이 타이밍에 진찬영이 뒤로 물러설 줄 몰랐다.“난 다이빙 챔피언까지 땄던 사람이야. 기다려 봐. 오늘 야맹주를 꼭 찾아줄게.”사도현의 오늘 주요 목적은 야맹주를 찾는 것이었다.비록 전설일 뿐이었지만 만약 정말 찾아서 배경윤한테 준다면 이보다 더 의미 있고 로맨틱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사람들은 하나둘씩 바다에 뛰어들었다.하트섬은 물고기 떼, 가지각색의 산호초가 훤히 보일 정도로 수질이 좋았다. 더 깊이 내려가면 잭피시가 보이기도 했다.배경윤은 산소 호흡기를 꽉 깨물고 천천히 밑으로 향했다.파트너인 사도현은 그녀에게 무슨 사고라도 일어날까 봐 옆에 꼭 붙어있었다.진찬영은 몇 미터 밖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중이염을
이들은 어제저녁 약속한 대로 섬 근처에 있는 청정지역에서 스토클링하기로 했다.이때 감독 최빈이 말했다.“이 섬은 모양이 하트로 되어있어 하트섬이라고 불리는데 물이 맑아 산호초와 열대 물고기를 많이 볼 수 있을 거예요. 다들 오늘 운이 좋으면 하트섬 특유의 야맹주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보던 밤이면 빛이 나는 그런 야맹주요.”“정말 야맹주가 있는 거예요?”배경윤이 이번 스노클링이 점점 더 기대되었다.사실 그녀는 일찍 하트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섬 중앙에는 고가의 진주가 들어있는 천연 조개가 많다고 했다. 최빈이 언급한 야맹주는 그저 전설일 뿐이었다.전설 속에서는 야맹주를 찾은 사람이 평생 행복할 거라고 했다.신난 배경윤은 야맹주를 찾아서 차설아한테 선물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면 호객행위인지 몰랐다.“당연히 있죠. 수년 전에 섬에서 살던 분들이 발견했대요. 찾을 확률은 낮지만, 없는건 아니에요.”최빈이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했다.“그럼 뭘 기다려요. 저희 얼른 가요...”조급해 난 배경윤이 이때 대담하게 제의했다.“저희 스노클링하지 말고 아예 다이빙하는 거 어때요? 6미터 가까이 되는 그런 다이빙을 하면 야맹주를 찾을 수 있는 확율이 더욱 높지 않을까요?”“좋아요.”사도현이 손을 들면서 말했다.“스노클링을 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다이빙해야 얻고 싶은 걸 얻을 수 있죠.”“저도 좋아요. 저는 폐활량이 좋아서 물속에서 산소통이 없어도 몇 분씩이나 있을 수 있다고요.”하늘도 찬성의 의미도 손을 들었다.올림픽 금메달 수영선수로서 물을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오직 진찬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찬영 씨는 스노클링하실 거예요? 아니면 다이빙하실 거예요?”최빈이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진찬영에게 물었다.“저는 경윤 씨랑 같은 걸 할게요.”진찬영의 표정이 안 좋았던 것은 전에 중이염 수술을 받은 적 있어 수압을 견디지 못해 너무 깊게는 내려가지 못했다. 5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