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검은 볼테 안경을 밀더니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전 천신 그룹의 발전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생각해요. 비록 지금은 규모가 크지 않고 수익도 나지 않지만 전체적인 사업 구도가 아주 전위적이라고 생각해요. 자체 연구 개발 센터까지 설립할 계획이라고 들었어요. 해안 전체에서 감히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는 동종 회사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고, 성대 그룹이 그중 하나죠...”“그래서 앞으로 천신 그룹은 성대 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큰 회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시기에 제가 들어오는 것이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여자의 말은 고참직원들의 비웃음을 샀다.홍보팀 책임자는 심지어 대놓고 차설아의 체면을 구겼다.“아가씨, 아직 어려서 대표님을 잘못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잘 모르나 봐요. 우리 대표님은 기댈 수 있는 덕목이 못 돼요. 그저 비참한 운명을 가진 재벌가에서 쫓겨난 이혼녀일 뿐이죠. 지금은 계속 밀어주던 경수 대표님과 경림 부대표님도 돈을 빼돌리고 도망쳤는데, 이것이 무슨 신호인지 모르겠어요?”“여러분들이 떠나는 건 안목이 없어서죠. 전 제 안목을 믿고 설아 대표님의 능력을 더더욱 믿어요!”볼테 안경 여자는 고참 직원의 말에 전혀 영향받지 않고 확고한 말투였다.퇴직 절차를 마친 직원들은 차설아가 보는 앞에서 짐을 싸고 바로 떠났다.원래 백여 명의 직원이 있었던 천신 그룹은 지금 십여 명만 남아 있어 보기에 조금 초라했다.“대표님, 앞으로 무슨 일이 있든 저희는 꼭 대표님 곁에 남을 거예요. 저희를 해고하지 않는 이상, 평생 대표님을 위해 일할게요!”마케팅 부서 책임자 장기용은 주먹을 들어 야심 차게 선서했다.그의 행동에 차설아는 아주 감동적이었다.“네, 고마워요 여러분,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요.”그리고, 시선을 검은 볼테 안경 여자에게 돌려 부드럽게 물었다.“이름이 뭐예요?”“제 이름은 서윤입니다. 윤이라고 부르시면 돼요.”“어느 부서에 지원했죠?”“저는 대표님 비서직에 지원했
“확실히 퇴근해야 할 것 같아요. 키우는 고양이가 중성화 수술을 했는데, 집에 사람이 없어서 걱정돼서 빨리 돌아가 돌보고 싶어요...”“그래요, 어서 가봐요!”서윤은 두 발자국 걷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다시 돌아와 차설아에게 주의를 주었다.“대표님, 오후에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들으니 이 건물에 변태가 자주 나타난다고 했어요. 안전을 생각해서 너무 늦게까지 야근하지 마세요.”“걱정하지 말아요. 변태가 날 만난다면 위험한 건 변태니까요.”“하하하, 대표님은 꽃처럼 아름다우시니까 조심하셔야죠. 이상한 유형의 변태일 수 있으니 그래도 피하는 게 좋죠.”“알겠어요. 고마워요.”차설아는 고개를 들어 서윤을 향해 웃었다. 그녀의 관심에 마음이 따뜻해졌다.서윤이 떠나고 24층 전체에는 차설아 혼자만 야근하고 있었다.각 사무실의 불은 모두 꺼졌고, 오직 차설아의 사무실에만 불이 켜져 있어 썰렁하고 캄캄했다.“드디어 끝났다!”차설아는 기지개를 켜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난 역시 효율이 높단 말이야!’그녀는 일어나 불을 끄고 회사를 나와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 이미 졸려서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다.엘리베이터는 거침없이 내려가더니 6층에서 체크 무늬 셔츠를 입고 검은 볼테 안경에 컴퓨터 크로스백을 멘 남자가 들어왔다.차설아보다 키가 작았고, 다크서클은 짙게 내려와 눈빛도 흐리멍덩한 것이 딱 봐도 늘 코드와 전쟁을 펼치는 프로그래머 같았다.그는 차설아와 함께 지하 1층 주차장으로 갔다.두 사람은 말이 없다가 지하 1층에 거의 도착할 때 남자가 갑자기 차설아를 향해 말했다.“죄... 죄송하지만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네?”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눈썹을 치켜올리며 남자를 보았다.“휴대폰이 없어졌어요. 지금 집에 전화하지 않으면 다들 걱정하실 텐데, 전화 한 통만 해도 될까요?”남자는 보기에 아주 얌전하고 수줍음이 많았으며 얼굴까지 벌겋게 달아오른 것 같았다. 아마 큰 용기를 내서 꺼낸 말일
서윤은 집에 돌아와서야 열쇠를 회사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다시 천신 그룹으로 돌아갔다.건물 아래에 도착했을 때, 야외 주차장에 짙은 슈퍼카 한 대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와, 애스턴마틴 one-77이라니! 이건 전세계에 단 세 대 밖에 없는 차인데, 왜 여기 있지?”서윤은 보기에는 평범하고 책벌레처럼 얌전한 이미지이지만, 실제로는 반항적인 성격으로 어릴 때부터 스포츠카, 록, 익스트림 스포츠 같은 것을 좋아했다.그래서 이 차를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서 전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고, 얼른 휴대폰을 꺼내 사진 몇 장을 찍으려 했다.수십 장 정도 찍고 보니 차 안에는 주인이 있는 것을 보았다.서윤은 갑자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연신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죄송합니다. 폐를 끼쳐서 죄송해요!”그녀가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차창이 내려지더니 차갑고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혹시 천신 그룹 직원이에요?”“어떻게 아셨어요?”서윤은 자신이 아직도 천신 그룹 직패를 달고 있다는 것을 잊고 열정적으로 대답했다.“전 천신 그룹 직원이에요. 오늘 처음 입사한 차설아 대표님 비서예요.”갑자기 서윤은 눈을 반짝이며 남자를 가리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혹시 성대 그룹 대표, 성도윤 씨?”“대표님. 늘 존경해왔어요. 언젠가 꼭 뵙고 싶었는데 오늘 드디어 보게 되었네요!”성도윤은 입을 비쭉거리며 조금 어이가 없었다.“제가 연예인도 아니고 뭘 그렇게 오버해요.”“아닙니다. 대표님은 연예인보다 훨씬 빛나죠! 연예인은 해마다 수도 없이 생기지만 대표님은 유일무이한 존재시잖아요. 그야말로 완벽한 존재예요!”서윤은 입에 꿀 발린 말을 잔뜩 하더니 갑자기 말끝이 날카로워졌다.“하지만 어린 나이에 눈이 멀어 우리 대표님처럼 완벽한 여자를 놓치고 말았죠. 머리가 이상한 게 분명해요.”사실, 서윤은 성도윤을 아주 숭배했지만, 오늘 차설아와 함께 하루를 보낸 후, 그녀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만약 성도윤과 차설아
서윤은 매우 비협조적으로 대꾸했다.“전 설아 대표님의 비서이지 그쪽 비서가 아닌데 왜 제가 그쪽 말을 들어야 하죠?”“만약 당신 대표에게 별일 없길 바란다면 내 말대로 하세요. 시간을 더 지체하면 일이 번거롭게 될지도 몰라요.”성도윤은 절대 거절을 용납하지 않는 압박감이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남자의 살기를 느낀 서윤은 이내 겁을 먹고 휴대폰을 꺼내 차설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건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알림음뿐이었다.“왜 연결이 안 되지? 이 빌딩 신호가 안 좋나? 아니면 대표님 배터리가 다 되었나?”서윤은 좀 이상했다.만약 아직 회사에 있다면 휴대폰 배터리가 다 되었을 리가 없다. 그럼 지금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까?“답답해!”인내심을 잃은 성도윤은 스포츠카의 문을 열고 나와 곧장 빌딩 입구로 향했다.서윤은 어리둥절했지만 그의 뒤를 쫓았다.“저희 대표님 찾으러 가시는 거예요? 제 생각에는... 아마 집에 도착하셨을 거예요. 회사 불도 다 꺼졌어요.”“집에 갔을 리가 없어요. 날개가 달렸다면 모를까.”성도윤은 자신이 꽤 좋은 눈썰미를 가졌다고 자부한다. 절대 차설아가 나오는 것을 놓쳤을 리가 없다.서윤은 자신의 직원 카드로 엘리베이터를 열었고, 두 사람은 곧 24층에 있는 천신 그룹에 도착했다. 처음 천신 그룹에 온 성도윤은 눈썹을 찌푸렸다.“회사가 왜 이렇게 작아. 성대 그룹의 한 사무실 구역에도 못 미치잖아.”남자는 하찮은 말투로 비웃었다.“당신네 대표, 고작 이 정도 구멍가게로 성대 그룹을 상대하겠다고 큰소리친 거예요? 이 작은 회사는 핑계고, 나에게 접근해 다시 내 마음을 얻으려는 것이 진짜 목적이 아닌가 싶네요.”“풉!”서윤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서둘러 부인했다.“정말 오해세요. 저희 대표님은 단지 순수하게 사업을 하고 계시지, 그 쪽에게 다가갈 생각은 전혀 없어요.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은 넣어두시죠.”“흥, 나에게 딴 마음이 없다는 사람이 굳이 성대 그룹의 맞은편에 회사를 차려요?
서윤은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차설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이미 집에 돌아갔을 거로 생각해 차설아의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저희 대표님은 이미 댁으로 돌아가셨어요. 여기는 천신 그룹이니 외부인이 오래 머무는 건 곤란해요. 회사 문을 잠가야 하니 이만 일어나 주시죠.”성도윤은 긴 손가락을 맞잡고 턱을 괴고는 예리한 눈빛으로 말했다.“아니요. 아직 집에 돌아가지 않았어요.”만약 차설아가 집에 갔다면, 성도윤이 못 봤을 리가 없다.“집에 돌아가지 않았다면 대체 어디 가신 거죠?”어이가 없는 서윤은 용기를 내어 질문했다.“지금 나가지 않으시려는 건 회사 영업 비밀이라도 훔치려는 목적인가요?”성도윤은 하찮은 듯 콧방귀를 뀌었다.“구멍가게 영업 비밀을 굳이 제가 직접 나서서 훔칠까요?”그의 한 마디에 서윤은 반박할 길이 없었고 난처해서 말했다.“그러네요. 우리 회사가 아직 성대 그룹이 비밀을 훔치러 올 정도는 아니죠. 훔친다고 해도 대표님께서 직접 나설 필요도 없으시고. 그러니 지금 안 나가고 계속 앉아 계시는 건 사실... 우리 대표님을 잊지 못해서죠?”성도윤은 부정도 인정도 하지 않았다.“그럼 설아 대표님 댁의 전화번호라도 있으세요? 가족분들께 전화해서 집에 도착했는지 물어보면 되잖아요. 계속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이미 성도윤의 마음에 감동을 한 서윤은 작은 목소리로 제안했다.“이혼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집 번호를 어떻게 알고 있겠어요? 그리고 설아는 혼자예요. 연락할 가족이 없다고요.”성도윤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슬픔이 잠겼다.평소 소탈하고 왈가닥한 모습이지만 사실 고통스러운 일들을 겪은 차설아였다.요 몇 년 동안 혼자 분투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아, 깜빡했네요. 저희 대표님은 확실히 팔자가 기구해요. 가뜩이나 집안에 변고가 생겨서 힘든데 당신 같은 배신자한테 시집가서 어린 나이에 이혼했죠. 오늘 아침에도 사람들에게 이혼녀라고 무시나 당하시고!”“그런 일이 있었어요?”“당연하죠. 세상에 입 더
성도윤이 차가운 얼굴로 경비원에게 물었다.“알, 알겠습니다, 대표님!”경비원은 순순히 2호 엘리베이터 CCTV를 열었다.엘리베이터 내부에는 줄곧 차설아 혼자 있었는데 6층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가 올라탔다.남자는 차설아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차설아는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남자는 차설아에게서 전화를 건네받았다.이어서 차설아는 정신이 혼미해진 채 엘리베이터에 쓰러졌고, 체크무늬 남자는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젠장!”성도윤의 차가운 눈빛은 사람이라도 죽일 것 같았다.“이 사람 누구야? 당장 찾아내!”‘배짱도 크네, 감히 내 여자를 건드려? 차설아의 몸에 올려놓은 저 팔을 반드시 부러뜨리겠어!’경비원은 안경을 고쳐 쓰더니 호들갑을 떨었다.“이 사람... 이 사람 전에 저희가 잡은 변태잖아요. 여자 화장실에서 몰래 동영상을 찍던 변태예요. 회사에서 이미 저 사람을 잘랐는데 어떻게 돌아온 거죠?”CCTV 화면은 변태남이 차설아를 끌어안은 채 지하 1층 주차장으로 향하는 것까지 담겼다.“지하 주차장 CCTV는? 당장 재생해!”성도윤은 주먹을 꽉 쥔 채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어... 그게...”경비원이 쭈뼛쭈뼛하며 말했다.“대표님, 죄송하지만 지하 주차장 CCTV가 마침 고장 났어요. 이제 바꾸려던 참인데 이런 일이...”“뭐라고?”성도윤은 경비원의 멱살을 확 잡으며 말했다.“그렇게 중요한 걸 지금 바꿔? 지금 저 변태남을 돕고 있는 거 아니야? 설마 저 변태랑 같은 편인 거야?”“아니요, 아니요. 대표님, 노여움을 푸세요. 저희는 지하 주차장의 CCTV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오히려 더 고급 입체 카메라를 구매했어요. 공교롭게도 이때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저희...”“됐어요, 시간 지체할 수 없어요. 먼저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단서라도 찾을 수 있는지 봐야 해요.”서윤은 지금 성도윤보다 훨씬 더 차분했다.성도윤이 심호흡을 하고는 차가운 얼굴로 경비원을 놔줬다.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전구 하나만 번쩍번쩍하며 빛을 냈다.공기 중에는 습한 곰팡내가 났고, 쥐가 찍찍거리면서 쓰레기 더미 속을 뛰어다니고 있었다.차설아는 허름한 돗자리 위에 누워 있었는데 힘겹게 무거운 눈꺼풀을 떴다. 머리는 여전히 어지러웠다.“이쁜이, 드디어 깼어? 약 효력이 너무 세서 영영 못 깨어나는 줄 알았잖아.”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가 안경을 고쳐 쓰고는 차설아를 빤히 쳐다보더니 징그러운 미소를 보였다.차설아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팔다리가 밧줄에 묶인 걸 발견했다. 게다가 그녀는 온몸이 나른하고 힘을 줄 수 없어 사지가 밧줄에 묶이지 않았어도 일어날 힘이 없을 것이다.“당신, 당신 나한테 왜 이래? 당신에게 잘못한 일도 없을 텐데 말이야...”차설아는 모든 힘을 다해도 소리가 맥없이 나갔다.“이쁜이, 당연히 나에게 잘못한 거 없지. 다만 나 같은 변태를 만나서 운이 안 좋았을 뿐이야...”남자는 차설아 옆에 웅크려 앉더니 손을 뻗어 차설아의 얼굴을 만졌다. 부드러운 촉감에 그는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쯧쯧. 예쁜 얼굴, 부드러운 피부, 굴곡 있는 몸매... 한 번이라도 즐길 수 있다면 이생에 여한이 없겠네!”그가 말을 마치고는 차설아의 얼굴을 쓰다듬더니 마치 20년 동안 무수히 환상했던 일을 한 번에 누릴 수 있을 거라는 쾌감에 빠졌다.차설아는 헛구역질이 났지만 팔다리가 묶여 움직일 수도 없었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소용이 없어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법밖에 없었다.남자가 그녀의 얼굴을 만져도 그녀는 가만히 있었는데 눈으로는 주위 환경을 탐색하기 시작했다.이곳은 빛이 거의 없는 어두컴컴한 작은 땅굴이었는데 사방이 흙으로 되어 통풍이 잘되지 않았다. 아주 먼 곳에는 작은 사다리가 있었는데 아마도 외부로 통하는 것 같았다.만약 그녀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 작은 지하실은 눈앞의 변태가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혼자 몰래 파냈을 것이다.그리고 그녀는 첫 번째 피해자가 아닐 것이다. 주위에는 여자 옷이 있
변태는 예상 밖으로 똑똑했다. 그녀의 생각을 바로 눈치챘으니 말이다.차설아는 어쩔 수 없이 전략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내가 당신이라면 다른 여자를 납치해도 절대 나를 납치하지 않을 거야. 내가 누군지 알아?”“네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네가 아주 예쁜 미인이라는 건 알지. 게다가 싱글이잖아. 아니면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고 퇴근할 리가 없어. 너를 예뻐해 주는 남자가 없으니 내가 예뻐해 줄 수밖에. 나도 지금 좋은 일을 하는 거야!”변태는 차설아의 목에 뽀뽀를 퍼부으면서 차설아의 몸을 마구 만졌다. 그리고 역시 변태답게 역겨운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차설아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반항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말로 남자의 심리적 방어선을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성도윤을 알아?”“성도윤?”남자가 흠칫하더니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성도윤을 모르는 사람이 있어? 성대 그룹 대표잖아, 전체 해안시를 휘두르고 있는 일인자. 성도윤은 우리 남자들의 롤 모델이지. 그런 사람을 내가 모를 리가 있겠어?”“성도윤에게 사람들이 모르는 버릇이 있다는 걸 알아?”“무슨 버릇?”“성도윤은 결벽증이 있는 남자야. 자신의 모든 것에 대해 매우 강한 소유욕을 가지고 있다고. 그의 물건이나 사람을 건드리면 앞으로 살 길이 전혀 없어...”“그게 뭐 어때서, 설마 네가...”“맞아, 내가 바로 성도윤의 전처야. 믿지 못하겠으면 지금 인터넷 검색해 봐도 돼.”차설아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내가 성도윤 전처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때 성도윤의 여자였잖아. 감히 내 몸에 손을 대면 당신 절대 살 수 없을 거야. 당신이 손으로 나를 만지면 성도윤은 당신 손을 잘라낼 거고, 입술로 나에게 입을 맞춘다면 성도윤은 당신의 입을 틀어버릴 거야. 감히 나를 건드리면 당신이 곧 산산조각이 날 것이라고. 성도윤은 당신의 몸을 토막 내어 개 먹이로 줄 거야. 죽는 것보다 못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할 거라고, 평생 괴롭힘을 당하고 싶어?”차설아는 변태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
박서영은 그녀를 믿지 못하겠는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정말 기꺼이 두 눈을 내놓을 생각이 있으신가요?”그녀는 세상에 이렇게 바보 같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분명 무슨 속셈을 꾸미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제가 성진한테 빚진 걸 갚는 거예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어요.”차설아가 말했다.“저를 못 믿겠다면 제가 무사하다는 것을 굳이 알릴 필요 없어요. 다만 그때 가서 일이 커지면 알아서 처리하세요.”거짓말할 마음도 없는 차설아는 진심으로 이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었다.항상 성진의 헌신 덕분에 남의 인생을 도둑질한 것처럼 느꼈고, 가끔 즐거울 때도 불안한 마음에 죄책감을 느꼈다.이 기간에 성진에게 연락하지 않았지만, 밤이 깊어질 때마다 그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이 남자가 어떤 어둠 속에 처해있을지, 어떤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을지를 상상했다. 어쩌면 원수의 손에 잡혔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가능성이 마치 비수처럼 심장에 꽂혀 잠을 이루지도 못하고 고통스럽기만 했다.차설아는 더 이상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빚을 한 번에 갚고 싶어 했고, 그렇게 되면 그나마 좀 더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럼 어떤 방법으로 무사하다고 전할 건데요?”박서영은 차설아를 냉정하게 바라보며 여전히 경계하는 어조로 물었다.“SNS에 올리면 되죠.”차설아가 웃으면서 말했다.“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위험에 처했을 때 SNS를 올릴 마음이 있겠어요? 제가 SNS를 올려버리면 적어도 제가 안전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SNS만 올리게요?”박서영은 나름대로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SNS면 충분해요.”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차성철도, 배경윤도, 선우 시원도 각자 바빴기 때문에 그녀를 신경쓸 새도 없었다.이럴 때 SNS를 올리면 최소한 무사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좋아요. SNS 올리는 것만은 허락해 줄게요.”박서영이 여러 번 고민
“하하. 성도윤 씨랑 데이트하고, 선우가문의 도련님과 애정 어린 농담을 주고받고, 배씨 가문 도련님과 술 마시는 시간은 있으면서 저희 도련님을 찾을 시간은 없었나 보죠? 저희 도련님을 잊어버릴 정도로 바빴나 봐요.”서영이 흥분한 나머지 차설아의 목을 직접 움켜잡으면서 말했다.“그거 알아요? 당신이 성도윤 씨랑 얽히고설켜 있을 때, 저희 도련님은 좌절감에 스스로 인생을 끝내려고 했어요. 손목에 상처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아무리 칼날을 숨겨봤자 어떻게든 찾더라고요. 그렇게 강하던 사람이 이제는 약해빠져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요. 알아요?”차설아는 저항하지도 않고 박서영이 자기 목을 조르는 대로 놔두었다. 애처롭게 바라보던 그녀의 두 눈에는 핏줄이 보이기 시작했다.“흥. 절대로 당신이 쉽게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예요.”박서영은 그제야 차설아를 놓아주며 차갑게 말했다.“당신한테 죗값을 치르게 하려고 이 저택으로 데려온 거예요.”“켁! 켁! 켁!”차설아는 잠깐의 질식 때문에 기침하면서 숨을 헐떡이며 박서영에게 물었다.“제가 어떻게 죗값을 치르기를 원해요?”“아주 간단해요. 저희 도련님의 시력을 돌려주면 돼요.”박서영은 앞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그동안 저는 도련님을 위해 거부반응이 없고 잘 맞는 한 쌍의 눈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지만, 아쉽게도 찾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설아 씨의 건강 검진 데이터를 우연히 얻게 되었는데 아주 특별한 두 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마침 저희 도련님한테 빚진 것도 있으니까, 설아 씨의 눈을 저희 도련님의 눈과 바꾸는 거 어렵지 않겠죠?”차설아는 박서영의 최종목적을 듣고 침묵하고 말았다.“제 눈이 정말 성진한테 맞나요?”그때 성도윤이 실명했을 때도 눈을 물색하고 다녔는데 오직 혈연관계가 있는 성진의 눈만 거부반응이 없었다.그때는 성도윤이 빨리 낫기를 바라면서 성진을 신경 쓰지도 못했다.하지만 마음의 빚 때문에 계속 숨이 안 쉬어졌다.만약 자기 눈으로 성진의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면 마음의 위로 때문이라
차설아는 다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커다란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온통 흰색 인테리어인 낯선 이곳은 영안실에 온 기분이었다.“드디어 깨셨군요, 약효가 너무 강해서 무려 사흘 동안 혼수상태였어요. 이러다 죽어버리는 줄 알았어요...”창가에서 한 여자의 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에게는 생과 사가 그저 자거나 깨어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경계 태세로 창가를 바라보던 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당신이었어요?”그날 밤 병원에서, 몰래 차설아의 병실로 들어간 그녀였다.“저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네요. 영광이에요.”박서영은 창가에 앉아 꽃다발을 정리하고 있었다.그녀의 옆에 놓인 꽃병에는 이제 막 정원에서 따온 해바라기가 꽂혀있었다.박서영은 황금빛으로 만개한 해바라기 줄기를 비스듬히 잘라 하나씩 예쁘게 꽃병에 꽂아 넣었다.“저희 주인님께서는 설아 씨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해바라기라면서 정원에 해바라기를 심으라고 했어요. 이제는 만개했는데 볼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워요. 마치 다른 사람한테 보이지 않는 주인님의 마음처럼 말이에요.”이때 박서영은 눈빛이 차가워지면서 꽃가지를 단단히 잘라버렸다.“주인님이라 하면 성진을 말씀하시는 거예요?”차설아는 사고가 날카로운 사람이라 바로 상대방을 추측해 냈다.그녀의 기억 속에서 일편단심이면서 실명한 사람은 성진뿐이었다.“도련님을 아직 기억하고 계셔서 다행이네요. 도련님 정성이 헛되지 않았네요.”박서영은 차설아가 성진을 아직 기억하고 있어 그나마 그녀를 향한 증오가 줄어드는 듯했다.“정말 성진이에요?”차설아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려 했지만, 온몸이 무기력해 마치 마비된 것처럼 전혀 힘을 쓸 수 없었다.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박서영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저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걱정하지 마세요. 그저 마취제 때문에 잠깐 의식을 잃고 침대에 누워있었을 뿐이니까요.”차설아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마에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리 일어나고 싶어
진찬영은 배경윤에게 핸드폰을 건네면서 이 둘의 말다툼을 중단시켰다.“고마워요. 찬영 오빠는 역시 최고예요.”배경윤은 배시시 웃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차설아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정말 제가 좋다면 이제는 찬영 오빠라고 부르지 마요...”진찬영은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찬영 씨라고 불러요.”“아, 그게...”배경윤은 진찬영의 갑작스러운 감정변화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심지어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찬영 오빠는 팬분들이 불러주는 호칭인데 저희는 그런 사이가 아니니 이제부터는 찬영 씨라고 부르는 거 어때요?”“알았어요. 찬영 씨...”호칭을 바꿔 부른 배경윤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왜 이렇게 부끄럽지?’역시 호칭은 알게모르게 두 사람이 얼마나 가까운지 설명할 수 있었다.찬영 오빠라고 부를 때에는 팬이 연예인에 대한 애정으로 별로 부끄럽지 않았는데 찬영 씨라고 부르니 확 부끄러워지는 느낌이었다.옆에 있던 사도현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지금 저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거예요?”지금 사도현이 비꼬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느낄수 있었다.“너랑 무슨 상관이야. 보기 싫으면 나가든가.”배경윤의 말을 비수처럼 심장에 박혔고, 사도현의 체면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흥! 누가 설아에 대해 나쁜 말을 하라고 했어?’배경윤은 차설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계속해서 무응답 상태였다. 반복해서 네다섯 번을 걸었지만, 여전히 아무도 받지 않았다.“무슨 일이지?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지? 뭔가 잘못됐어.”비경윤은 불안한 예감에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지금쯤 병원에 있어야 하는 설아는 원래 지루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언제나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는데, 왜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 걸까? 분명 무슨 일이 있어!’배경윤이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에서 일어나려 한다.“제발 가만히 있어!”사도현이 다시 그녀를 침대에 눕히면서 말했다.“설아가 어린애야? 실력도 좋은데 무슨 일이 있겠어. 다른 사람을 건드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두세 시간 뒤에요.”진찬영이 대답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모든 독소를 제거하려면 세 시간 후에 전신 마취를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물을 마시면 안 돼요.”“아직 시간이 많네요...”배경윤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제 핸드폰은 어디 있어요? 설아에게 안부를 전해야 하거든요.”사도현이 배경윤을 다시 침대에 눕히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지금이 어떤 때인데, 너나 잘 챙겨. 설아를 챙기는 사람은 많고도 많아.”“누군데? 설마 너의 그 쓰레기 같은 친구 성도윤은 아니지?”배경윤이 무례하게 반박했다.“난 그 자식이 방해할까 봐 걱정돼서 설아랑 계속 연락하려고 하는 거야.”사도현은 무심코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도윤이 형이 대체 너한테 뭘 잘못했다고 그래?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그 두 사람은 딱봐도 재능과 미모를 갖춘 천생연분인데, 그냥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을 뿐이잖아. 우리 도윤이 형을 바람둥이라고 단정 짓지는 말지?”“그 사람이 바람둥이 아니면 누가 바람둥이인데!”배경윤은 격렬하게 반응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나 사도현과 따지려고 했다.“혼인 중에 바람을 피우고, 다른 여자를 임신시키고, 겨우 설아 마음을 되돌리더니 또 다른 재벌 딸과 약혼하고. 이게 바람둥이가 아니면 뭔데?”“설아도 너의 오빠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잖아. 요즘에는 선우 가문 도련님과도 뜨겁게 보내더니. 그리고 도윤이 형은 왜 이렇게 되었는데! 어떻게 실명하고 기억을 잃게 되었는지 설아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거야?”“그건 그냥 사고일 뿐인데 설아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는 거야. 원망할 거면 하느님을 원망해. 누가 그런 악행을 많이 저지르라고 했어. 하느님도 노해서 가만두지 않은 거지.”“배경윤,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나한테 막말은 해도 도윤이 형한테는 그러면 안 되지.”“내가 뭘 어쨌다고? 너도 방금 우리 설아한테 뭐라고 했잖아!”두 사람은 마치 싸움닭처럼 감정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이것은 두 사람이 계속 다투게 되는 주제라
진찬영은 사도현이 지금까지 만난 가장 자아도취적이고 오만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경윤 씨한테 물어봤어요? 당신과 저 사이에 도대체 누가 외부인인지.”사도현은 말을 끝내자마자 진찬영의 품에서 배경윤을 뺏어오려고 했다.이때 이미 힘이 풀린 배경윤이 입술이 약간 창백해져서 말했다.“싸우지 않으면 안 돼요? 계속 싸웠다간 제가 죽을지도 몰라요. 빨리... 저 좀 병원에 데려다줘요!”배경윤은 눈앞이 어두워지면서 의식을 잃고 말았다.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근처 병원의 환자 침대에 누워있었다.병상 앞에는 사도현과 진찬영이 앉아있었고, 분위기는 쓰러지기 전과 같았다.하지만 다행히도, 아직은 죽은 목숨이 아니었다.“경윤아, 깼어? 목말라? 물 따라줄까?”배경윤이 눈을 뜨자, 진찬영은 두 눈이 반짝거렸다.“이틀 동안 혼수상태였는데, 목마르냐고 묻는 시간에 이미 다 마셨겠어요.”사도현이 이 말을 할 때, 진찬영은 이미 따뜻한 물을 배경윤한테 건넸다.배경윤은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고 싶었지만, 오른손에 아무런 감각도 없어 전혀 힘을 쓸 수가 없었다.“내... 내 손...”그녀는 침을 삼키면서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손을 절단해야 하는 건가? 이제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걸까?’“걱정 안 해도 돼요. 괜찮아요. 독이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아서 마비된 느낌이 들 거예요.”진찬영은 부드럽게 그녀의 마음을 안심시켰다.“아... 깜짝 놀랐잖아요.”배경윤은 절단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도현은 배경윤에게 직접 물을 먹여주면서 대뜸 말했다.“24시간 이내에 독을 깨끗이 배출하지 못하면 신경이 마비되어 절단해야 할수도 있어.”“푸!”배경윤은 물을 다 마시기도 전에 뿜어내고 말았다.“뭐라고?”긴장한 채로 사도현을 쳐다보던 배경윤은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만약 손을 정말 절단해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아직도 이해 못 했어? 독이 말끔히 없어지기 전까진
야맹주를 확인한 배경윤은 신속히 잠수했다.“천천히 가!”사도현은 그녀가 걱정되어 조심하라고 말했다.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운 산호바다였지만 단면이 너무 높아 일부 산호는 쉽게 만졌다가 위험할 정도로 날카로웠다.하지만 이때, 동심의 세계로 들어간 배경윤은 마치 큰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흥분하면서 야맹주 위에 덮여 있던 산호초를 맨손으로 제거했다.그녀는 차설아가 평안 무사할수 있도록 이 야맹주를 선물하고 싶었다.“아!”배경윤이 야맹주에 손을 대려는 순간, 갑자기 산호초 틈새에서 은색 원형 물체가 튀어나와 그녀의 손등을 덥석 물었다.“바다뱀이야!”바다뱀이 배경윤을 물고 옆을 쓱 스쳐 자나가자 머릿속이 하얘진 사도현은 급히 잠수하여 그녀의 손을 잡았다.“봐봐...야맹주!”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배경윤은 그저 벌레에게 물렸다고 생각하면서 순진하게 사도현에게 야맹주를 자랑했다.“입 다물어!”사도현은 눈앞의 이 덜렁거리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그녀는 과연 이런 바다뱀이 독성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진찬영은 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긴 팔로 배경윤의 허리를 감싸고, 긴 다리를 쭉 뻗어 빠르게 수면으로 올라갔다.진찬영과 하늘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차례로 수면으로 떠올라 잠수 마스크를 벗었다.“여기 도와주세요! 보트를 준비해 주세요. 병원으로 가야겠어요!”사도현의 잘생긴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고, 잠긴 목소리로 육지에 있는 안전요원에게 외쳤다.“무슨 일이에요?”진찬영이 신속히 배경윤 곁으로 다가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아, 별거 아니에요. 그냥 벌레에게 물렸을 뿐이에요...”배경윤은 뱀에게 물린 손등을 들면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보였고, 오히려 사도현이 너무 예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일반적으로 뱀에게 물리면 독이 체내에 바로 퍼지지 않아 아직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그녀는 다시 야맹주를 들어 올리며,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다들 이것 좀 보세요, 제가
진찬영은 이런 중요한 기회를 사도현을 놓칠 수가 없었다.“저는 저의 파트너로 하늘 씨를 선택하고 싶어요.”진찬영이 사도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안전요원에게 이렇게 말하자 사도현과 배경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이 자식 뭐하는 거야. 포기라도 하는 거야?”사도현은 믿기지 않는지 진찬영을 째려보면서 말했다.“어떻게 하늘 씨를 선택할 수 있어요? 어쩌다 정면으로 승부를 겨룰 기회가 생겼는데 왜 포기하는 거예요?”진찬영이 사도현을 냉랭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지금은 잠깐 경윤 씨를 도현 씨한테 맡길게요. 꼭 잘 지켜주셔야 해요.”사도현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잠수복을 입고 하늘과 함께 바다로 뛰어드는 진찬영을 쳐다보았다.“왜 저래?”제대로 한판 붙어볼 줄 알았는데 도전장을 내민 사람은 자기뿐이라 갑자기 김이 새는 느낌에 불쾌하기만 했다.“갑시다. 파트너님.”사도현은 더는 생각하기도 싫어 멍한 표정의 배경윤한테 터벅터벅 걸어갔다.“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너랑 짝이 된 거야.”배경윤은 싫증난 표정을 하고있었다.진찬영과 손잡고 바다 경치를 즐길 줄 알았는데 말이다.그런데 아무리 봐도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도현한테 자기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아까 등산할 때까지만 해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는데 이 타이밍에 진찬영이 뒤로 물러설 줄 몰랐다.“난 다이빙 챔피언까지 땄던 사람이야. 기다려 봐. 오늘 야맹주를 꼭 찾아줄게.”사도현의 오늘 주요 목적은 야맹주를 찾는 것이었다.비록 전설일 뿐이었지만 만약 정말 찾아서 배경윤한테 준다면 이보다 더 의미 있고 로맨틱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사람들은 하나둘씩 바다에 뛰어들었다.하트섬은 물고기 떼, 가지각색의 산호초가 훤히 보일 정도로 수질이 좋았다. 더 깊이 내려가면 잭피시가 보이기도 했다.배경윤은 산소 호흡기를 꽉 깨물고 천천히 밑으로 향했다.파트너인 사도현은 그녀에게 무슨 사고라도 일어날까 봐 옆에 꼭 붙어있었다.진찬영은 몇 미터 밖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중이염을
이들은 어제저녁 약속한 대로 섬 근처에 있는 청정지역에서 스토클링하기로 했다.이때 감독 최빈이 말했다.“이 섬은 모양이 하트로 되어있어 하트섬이라고 불리는데 물이 맑아 산호초와 열대 물고기를 많이 볼 수 있을 거예요. 다들 오늘 운이 좋으면 하트섬 특유의 야맹주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보던 밤이면 빛이 나는 그런 야맹주요.”“정말 야맹주가 있는 거예요?”배경윤이 이번 스노클링이 점점 더 기대되었다.사실 그녀는 일찍 하트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섬 중앙에는 고가의 진주가 들어있는 천연 조개가 많다고 했다. 최빈이 언급한 야맹주는 그저 전설일 뿐이었다.전설 속에서는 야맹주를 찾은 사람이 평생 행복할 거라고 했다.신난 배경윤은 야맹주를 찾아서 차설아한테 선물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면 호객행위인지 몰랐다.“당연히 있죠. 수년 전에 섬에서 살던 분들이 발견했대요. 찾을 확률은 낮지만, 없는건 아니에요.”최빈이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했다.“그럼 뭘 기다려요. 저희 얼른 가요...”조급해 난 배경윤이 이때 대담하게 제의했다.“저희 스노클링하지 말고 아예 다이빙하는 거 어때요? 6미터 가까이 되는 그런 다이빙을 하면 야맹주를 찾을 수 있는 확율이 더욱 높지 않을까요?”“좋아요.”사도현이 손을 들면서 말했다.“스노클링을 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다이빙해야 얻고 싶은 걸 얻을 수 있죠.”“저도 좋아요. 저는 폐활량이 좋아서 물속에서 산소통이 없어도 몇 분씩이나 있을 수 있다고요.”하늘도 찬성의 의미도 손을 들었다.올림픽 금메달 수영선수로서 물을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오직 진찬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찬영 씨는 스노클링하실 거예요? 아니면 다이빙하실 거예요?”최빈이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진찬영에게 물었다.“저는 경윤 씨랑 같은 걸 할게요.”진찬영의 표정이 안 좋았던 것은 전에 중이염 수술을 받은 적 있어 수압을 견디지 못해 너무 깊게는 내려가지 못했다. 5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