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소이서의 말에 원장은 난처해 났다.몬테리 유치원 설립 초기, 가족 위원회는 입학 문턱을 높이고, 학생들의 소질을 보장하기 위해 공동으로 이러한 학칙을 제안했다.몬테리는 지금까지 이 학칙을 엄격히 시행하고, 한 부모 가정의 아이들을 절대 수용하지 않았다.원장은 비록 바르고 선량한 차설아와 총명하고 귀여운 원이가 아주 맘에 들었지만, 이렇게 많은 학부모 앞에서 관례를 어길 수 없었다.“왜 말을 못 해? 원장이란 사람이 앞장서서 학교의 규칙을 어길 수는 없잖아? 한 부모 가정의 아이들이 문제가 얼마나 많은데? 성격이 괴팍해서 정상적인 가정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분명 안 좋은 영향을 줄 거야! 절대 학칙을 어겨서는 안 돼!”소이서는 울분을 터뜨렸고, 주변 학부모들도 선동당해서 절대 학칙을 어겨서는 안 된다고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원장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여러분들 일단 진정하세요. 이 일은 제가 방법을 생각해볼게요.”“방법을 생각한다고요?”태도가 악랄한 한 학부모는 차설아 모자를 질겁하면서 말했다.“가장 좋은 방법은 이 두 모자를 당장 쫓아내는 거예요. 불건전한 가정의 아이를 들이는 건 몬테리의 조화롭고 따뜻한 교풍을 오염시킬 뿐이에요!”차설아의 얼굴은 순간 극도로 어두워지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 학부모를 쏘아보았다.“그 더러운 입, 당장 닥치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당신 아이도 부모 한쪽을 잃을지도 모르거든!”차설아의 카리스마가 너무 강해서 학부모는 순간 겁을 먹고 고개를 푹 숙이더니 차설아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그 학부모뿐만 아니라, 불평에 가득 찬 다른 학부모들도 모두 겁에 질려 소리 하나 내지 못했다. 간이 부은 소이서만 여전히 차설아 모자를 욕하고 있었다.하지만 결국 장시혁의 따귀에 제압당하고 말했다.차설아는 마음이 아팠다. 원이와 달이가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로 차별 대우를 받을 것을 예상했지만, 지금 사회가 그들의 정상적인 등교까지 제한할 줄 몰랐다.차설아는 원
하지만 오늘 원이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걱정거리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추측했고, 차설아는 순간 마음이 아팠다.“원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기에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어? 엄마한테 말해줄래?”차설아는 부드럽게 물었다.그녀는 두 아이에게 항상 자유로운 교육 태도로 일관했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며 간섭하거나 설교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유일한 요구는 바로 두 아이가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반드시 제일 먼저 그녀와 소통해야 하며, 절대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다.그래서 원이는 도도한 아이였지만 차설아와 속마음을 나누려 했다.원이는 고개를 떨구고, 작은 입을 삐죽 내밀고는 사슴 같은 눈망울로 차설아를 보며 말했다.“엄마, 원이가 똑똑하지 않아서, 착하지 않아서 아까 아저씨 아줌마들이 절 싫어하는 거예요? 절 유치원에도 못 다니게 쫓아낸 거예요?”차설아는 그의 말을 듣고 주먹을 꽉 쥐었다. 역시나 원이는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시무룩해 있었다.차설아는 가슴이 찢기는 것 같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아니야. 우리 원이가 얼마나 똑똑하고 착한 아이인데? 그분들이 안목이 없는 거야... 괜찮아, 우리를 환영하는 유치원으로 바꾸면 돼.”“엄마, 저 달랠 필요 없어요. 제가 아버지가 없어서 환영받지 못하는 거죠? 맞죠?”“음... 그게...”“그래서 계속 생각했어요. 아버지라는 사람은 별로 쓸모는 없지만, 그래도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오늘 같은 날 만약 아버지가 있었다면, 설사 식물인간이라고 해도, 우리는 온전한 가정이니 몬테리 유치원에 입학할 자격을 가질 수 있잖아요. 맞죠?”“그렇긴 하지...”차설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마음이 더욱 괴로웠다.그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지만, 아이들에게 빚진 어떤 부분은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역부족이었다.가끔 아무 남자나 만나 결혼해 볼까도 생각했었다. 적어도 원이와 달이에게 대외적으로 아버지가 있으니 오늘과 같은 차별 대우는 받지
깊은 밤, 짙은 어둠이 깔렸다.원이는 차설아가 이미 잠든 것을 확인하고 몰래 이불 속에서 빠져나왔다.그는 화장실에 숨어 무전기를 들고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긴급 상황, 긴급 상황. 미스터 Q는 답하라. 미스터 Q는 답하라.”잠시 후, 무전기 너머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미스터 Q 대기 완료. 원이는 말하라. 원이는 말하라.”“지금 바로 XX아파트로 와서 나와 집합한다. 지금 바로!”“알았다!”교류가 끝난 후 원이는 무전기를 접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아파트 정자에 가면과 검은색 바바리코트를 입은 훤칠한 키의 미스터 Q가 약속대로 도착해 있었다.원이도 자신의 작은 서류 가방을 들고 달빛을 받으며 서둘러 합류했다.“미스터 Q, 시간 약속을 아주 잘 지키네요. 역시 내가 점 찍은 남자다워요. 이 점에 10점을 더 드리죠.”원이는 산처럼 우람한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내가 원하는 건 갖고 왔어?”미스터 Q는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서더니 엄숙한 말투로 물었다.“당연하죠. 이번 물건이 얼마나 확실한데요. 분명 미스터 Q의 마음에 드실 거예요.”원이는 자신만만하게 말하고는 역시나 엄숙한 표정으로 되물었다.“그럼 제가 원하는 건 챙겨오셨나요?”“너의 요구대로 준비했어.”“좋아요, 그럼 교환하죠!”두 사람은 망망한 어둠 속에서 각자의 물건을 꺼내 서로에게 건넸다. 엄숙한 분위기는 마치 깡패 보스들의 접선을 방불케 했다.원이는 미스터 Q에게 사진과 짧은 동영상을 건넸다. 사진과 동영상의 주인공은 바로 그의 어머니인 차설아였다.“이번엔 완벽한 엄마의 모습을 찍었을 뿐만 아니라 잠자며 침 흘리는 모습까지 찍었어요. 그리고 브이로그까지 첨부했어요. 어때요? 제가 의리 하나는 있죠? 완벽한 물건이죠?”원이는 마치 어른처럼 자랑스럽게 턱을 치켜들었다.미스터 Q는 사진을 한 장 한 장 훑어보다가 차갑던 미간이 저절로 부드러워졌다.사진 속 여인은 때로는 귀엽고, 때로는 청순하고, 때로는 여성스러우며 게
그러다 보니 미스터 Q는 많은 경쟁자를 누르고 원이 마음속의 가장 적합한 ‘아버지’ 후보가 되었다.차설아의 적합한 ‘남편’이 맞는지는 원이는 좀 더 지켜봐야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미스터 Q, 할 말이 있어요...”원이는 열정적으로 게임 한 판을 하고는 갑자기 진지하게 말했다.“오늘 엄마랑 유치원에 갔다가 괴롭힘을 당했어요. 아버지가 없어서 그 유치원에 갈 수 없대요. 하지만 전 그 유치원이 좋거든요. 아주 속상해요. 아버지가 없으면 다른 아이들보다 레벨이 낮은가요?”미스터 Q는 갑자기 눈썹을 찡그리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네가 왜 아버지가 없어? 전에 배씨 가문의 배경수가 네 아버지라고 하지 않았어?’“휴, 이제 친한 사이가 되었으니 솔직히 말할게요. 경수 아빠는 제 아버지가 맞긴 하지만 친아버지는 아니에요. 그리고 지금은 엄마와도 헤어졌어요. 엄마도 제가 더 이상 경수 아빠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 앞으로 찾아갈 수도 없어요...”“헤어졌다고?”미스터 Q는 흥미가 생긴 듯 계속 캐물었다.“그럼 네 친아버지가 누군지 혹시 알아?”“당연히 알죠!”원이는 남자를 향해 손가락을 굽히더니 신비로운 표정을 지었다.“이리 가까이 와 봐요.”남자는 허리를 굽히고 귀를 가까이 댔다. 커다란 그의 몸집은 바짝 긴장한 모습이었다.원이는 큰 눈을 껌벅이여 말했다.“전 사실 아버지가 없어요. 엄마가 몇 달 동안 저를 영석에서 키워서 ‘펑’하고 튀어 나왔어요!”미스터 Q는 할 말을 잃었다.‘멍청하기 짝이 없군, 어린아이에게 놀림을 당하다니!’“미스터 Q, 안 믿어요?”“허허, 그럼 믿을까?”원이의 동그란 눈에는 순진함이 가득 차서 급히 설명했다.“사실이에요. 저희 엄마가 그렇게 말했어요. 못 믿겠으면 나중에 엄마한테 물어보세요.”비록 차설아가 원이에게 이렇게 설명했을 때, 원이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바보 같은 표현은 확실히 차설아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차설아의 말을 그대로 옮겼으니, 이건 거짓말이 아니지 않은가?
“그건...”미스터 Q는 두 손을 내밀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아쉽게도 얼굴에는 긴 흉터가 있어. 그래서 내가 가면을 벗으면 네 엄마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을 거야!”원이는 남자를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작은 얼굴을 찡그리고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작은 손을 내흔들며 말했다.“괜찮아요. 저희 엄마가 얼굴을 많이 보긴 하지만 제 의견도 존중해줄 거예요. 만약 다른 방면에서 충분히 훌륭하면 제가 엄마한테 잘 말해줄게요. 그리고... 미스터 Q는 가면 이외의 이목구비는 아주 완벽해요. 가면을 쓰고 있어도 멋있으니 저희 엄마도 맘에 들어 할 거예요.”미스터 Q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흥미진진해서 말했다.“네 엄마가 그렇게 외모를 많이 봐?”“당연하죠!”원이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아니면 왜 성도윤 그 나쁜 놈과 결혼했겠어요? 결국 나쁜 놈에게 괴롭힘만 당하고. 얼굴만 보다가 큰코 다친 거죠.”“얼굴이 아니라, 성도윤의 성격, 재능이나 능력을 좋아한 건 아닐까?”“말도 안 돼요!”원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구토하는 시늉을 했다.“성도윤을 몰라요? 해안에서 냉혈하고 무자비하기로 소문난 인간이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재능이나 능력 같은 건 없어요. 아니면 왜 저희 엄마처럼 좋은 아내를 내버려 두고 다른 여자와 어울리겠어요? 사람 보는 눈이 없어도 유분수지.”“네 엄마가 그렇게 말했어?”“그건 아니에요. 전에 경윤이 이모가 말하는 걸 들었어요. 저도 인터넷에 찾아봤더니, 성도윤은 제 엄마를 저버린 아주 나쁜 놈이더라고요. 만약 만나게 된다면 엄마 대신 혼 내주겠어요.”원이는 주먹을 꽉 쥐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자신의 아버지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는 언젠가 쓰레기 성도윤을 제대로 혼내주기로 마음먹었다.아쉽게도 해안에 온 지 이렇게 오래되었지만, 그는 성도윤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미스터 Q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능력이 강한 것도 일종의 매력이지. 그 사람에 대해 알아봤다면 성도윤의 업무능력
“좋지!”미스터 Q는 흔쾌히 대답하며 원이와 주먹을 부딪쳤다....이른 아침.차설아는 다급한 초인종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이 시간에 대체 누구야?”그녀는 하품을 하며 느릿느릿 문을 열었다.문을 열자마자, 학교 이사장을 비롯한 몬테리 유치원 고위층들은 정장을 입고 손에 꽃을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차설아를 향해 일제히 허리를 굽혀 인사하더니 이구동성으로 외쳤다.“차설아 씨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차설아는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이게... 무슨 상황이죠?”“차설아 씨, 어제 도련님을 데리고 우리 학교에 등록하러 오셨다가 불쾌한 일이 발생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이 사실을 전해 듣고 즉시 관련 인원을 엄중히 처리하였고, 또 제일 먼저 그 학칙을 폐지했습니다. 저희 몬테리의 전체 사생은 원이 도련님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이 선물은 저희의 작은 사과의 표시이니 부디 받아주십시오.”이사장은 말을 마치고 나서 직원에게 정교하고 귀중한 선물들을 차설아에게 전하라고 눈치를 주었다.차설아는 어리둥절해서 물었다.“학칙을 그렇게 쉽게 수정할 수 있는 것인가요? 이러시면 다른 학부모들이 불만이 있을 겁니다. 저한테 사과할 필요 없으세요. 제가 사전에 잘 조사하지 못한 탓이죠. 다른 유치원으로 바꾸면 되니 이렇게 번거롭게...”“아니요, 아니요. 틀린 학칙은 제때 수정해야죠. 저희의 무지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에게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를 주십시오.”이사장은 말을 마치고, 또 사람들을 이끌고 차설아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혹시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으셨나요?”고위층 인물들이 갑자기 터무니없는 학칙이 틀렸다는 것을 양심적으로 발견했을 리가 없다. 만약 폐지할 마음이 있었다면 진작 폐지했을 것이다.누군가의 압력을 받고서 움직였을 가능성이 크다.그렇다면 과연 누구의 압력을 받은 것일까?“협박이 아니라 저희가 진심으로 원해서 폐지한 겁니다. 정식으로 도련님을 우리 유치원의 일원으로 초대합니다. 부디 동의해 주십시오!”이사장과 여
“그쪽은 또 누구시죠?”차설아는 문밖에 서 있는 낯선 젊은 남자를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안녕하십니까, 차설아 씨. 저는 심부름센터 직원입니다. 저희 고객님께서 차설아 씨에게 따뜻한 아침밥을 보내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여기 사인해 주세요.”“아침 밥이요?”차설아는 더욱 멍해졌다.대체 어느 보살님이 아침 일찍 그녀에게 아침을 챙겨준단 말인가? 그녀의 인기가 이 정로도 치솟았단 말인가?“누가 보냈는지 알 수 있을까요?”“잠시 비밀로 해달라고 하셨습니다.”“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 아침을 어떻게 먹겠어요? 도로 갖다 주세요.”차설아는 경각심을 세웠다. 그녀의 주소는 매우 은밀해서 현재 배경수와 배경윤, 그리고 원이만 알고 있었다.그런데 오늘 갑자기 한 무리의 사람이 다녀갔으니 분명 어딘가 잘못됐다.“엄마 잠깐만요, 이 아침밥은 내가 특별히 다른 사람에게 시켜서 만든 거예요. 한번 맛보세요.”원이는 차설아의 손을 잡으며 진정성 있게 말했다.“엄마는 계속 아침밥을 안 챙겨 드시잖아요. 그래서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아침밥이 맛이 없나 해서 특별히 해안 최고의 셰프를 찾아 영양가 있고 맛있는 아침 식사를 맞춤 제작했어요. 제가 반드시 튼튼하고 건강한 엄마로 만들 거예요!”그리고 원이는 속으로 말했다.‘미스터 Q, 반드시 테스트를 통과해야 해요. 아니면 제가 난처해질 거예요!’“엄마의 보살님이 바로 너였구나! 역시 우리 원이는 너무 자상해.”차설아는 감동하여 울 지경이었다. 원이를 껴안고 몇 번 입맞춤을 한 후, 직원의 손에 있는 보온통을 받아들고 기세등등하게 말했다.“너의 효심을 봐서라도 엄마는 반드시 다 먹을 거야!”보온통을 열자, 두 모자는 모두 깜짝 놀랐다.생각보다 꽤 많은 음식이 들어있었다. 크고 작은 음식들이 수십 가지는 되는 것 같았다.찐빵, 팥빵, 죽, 달걀이 있는가 하면, 토스트, 과일 샐러드, 햄 볶음 등 서양 음식도 있었다.“원아, 해안 명셰프에게 부탁한 게 확실해? 이건 거의 식당 주인을 납치한 수
차설아는 택이가 괜찮은 것 같았다. 얼굴도 잘생겼고, 근육질 몸매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이해심도 컸다. 기꺼이 그녀의 해어화가 되려 했다. 바쁜 일들을 처리하면 다시 깊이 알아가도 좋을 듯하다.택이뿐만 아니라, 성진도 잘생겼다. 심심하면 쿡쿡 찔러 봐도 괜찮을 듯하다.성지훈도 괜찮았다. 게임을 할 때 함께 팀을 꾸릴 수도 있고, 바람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시간을 내서 그에게 2진법 코드 기술을 배워야 했다.차설아는 작은 만두를 집어 들어 한입 베어 물고는 속으로 다짐했다.‘흥, 성도윤은 절대 대체 불가한 인간이 아니야. 단지 이미 죽은 고목일 뿐이지. 절대 한 나무에 매달려 죽을 수는 없어. 세상은 크고 다양한 남자들은 눈앞의 아침 식사 만큼 널리고 널렸어. 많이 시도하다 보면 내 입맛에 맞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거야.”다만, 차설아는 씹으면서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젠장, 해안 명셰프가 찐 만두가 왜 이렇게 딱딱해?’그녀는 마치 강철 만두를 씹는 것 같아 이가 깨질 것 같았다.“엄마, 만두 맛있어요?”원이는 턱을 괴고 순진무구한 모습으로 물었다.“콜록, 괜찮아.”차설아는 아이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억지로 만두를 통째로 삼켰다.곧이어 베이컨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소금에 저린 듯 짜서 죽을 뻔했다.차설아는 잔을 들고 물을 들이켰고, 원이는 또 물었다.“엄마, 베이컨 맛은 어때요?”“이것도, 괜찮아. 먹고 나면 물이 좀 당기네?”이렇게 한 바퀴 맛보고 나니 차설아는 마치 ‘맛없는 요리’ 대회를 경험한 듯, 쉽게 삼킬 수 있는 요리가 하나도 없었다.“엄마, 배불러요? 이 셰프 요리 솜씨 어때요? 몇 점이에요?”원이는 기대에 차서 물었다.“배불러, 10점이야.”“와, 대박. 만점이네요!”원이는 이미 참지 못하고 환호성을 질렀다.이어서 차설아는 심호흡을 하더니 말했다.“100점 만점에 10점.”“네?”“원아, 네가 어디서 이 셰프를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효심은 엄마가 잘 받을게. 이 셰프에게 전해줘.
바람은 얇은 셔츠를 입고 서 있었고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네가 여기에 앉았을 때부터 뒤에 숨어있었어.”“너 바보야? 6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있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차설아는 투덜거리면서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바람은 차설아의 곁에 앉으면서 미소를 지었다.“힘든 줄 모르니까 이 시간까지 앉아 있었던 거겠지.”“난 생각할 것이 있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어.”“나도 똑같아. 네 얼굴을 보고만 있어도 재밌어서 계속 쳐다보고 싶었어. 6시간이나 지난 줄 몰랐거든.”“그런 장난도 지긋지긋하다.”차설아는 바람을 주먹으로 때리고는 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오후에 있었던 일은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오빠 생각에 미쳐서 주변 사람들을 전부 의심했던 것 같아. 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어도 그랬을 거야. 그러니까 마음에 두지 말았으면 좋겠어...”차설아의 말에 바람이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사과하지 않아도 돼. 난 신비한 컨셉이라 의심받은 적이 셀 수 없을 만큼 많거든. 그러니까 자책하지 마. 네가 속상해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거든...”바람은 차설아가 죄책감 때문에 자신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바람은 누구한테 의심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바람의 유일한 목표는 차설아와 결혼해서 선우 가문을 빛내려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쁜 짓을 하든 암암리에 손을 쓰든 중요하지 않았다. 차설아의 마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 바람은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누가 자책했다고 그래. 넌 여우처럼 교활하니까 당연히 의심받지. 아무도 너의 속내를 꿰뚫어 보지 못하잖아.”차설아는 바람의 이마를 툭 치면서 말을 이었다.“우리 둘이 그저 해커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합에 참가해서 상금을 타고 돈이나 벌었으면 복잡한 가문의 일을 해결하지 않아도 되잖아. 복수할 것도 없으니 해커 활동이나 하면서 편안하게 지냈으면 되었을 텐데 말이야.”“생각해 보면 너랑 같이 시합에 참가해서 겨루던 날들이 제일 재밌었어.”바람은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
병실을 나선 배경윤은 차설아를 데리고 비상계단 쪽으로 향했다.“그 반지... 성도윤이 끼고 있던 거지?”“맞아.”차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나한테 숨기는 거 있어? 저번부터 표정이 안 좋더라.”“그, 그러니까...”배경윤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성철 오빠가 수술을 받고 의식을 잃은 뒤에 누군가가 일부러 손을 쓴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성형 병원으로 다시 찾아갔고 간호사한테서 단서를 찾은 거야.”“단서라니?”차설아가 인상을 찌푸리고는 잔뜩 긴장한 채 물었다.“간호사의 말에 의하면 성철 오빠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의사가 윤설이랑 통화했다는 거야. 깔끔하게 처리하라고 했대. 그래서 나는 윤설이 촬영하는 곳까지 찾아가서 따졌고 윤설은 성도윤의 지시를 받은 것이라고 말하더라고...”배경윤은 긴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윤설이 일부러 거짓 정보를 흘렸을까 봐 증거를 더 모은 뒤에 너한테 알려주려고 했어. 그런데 갑자기 성도윤의 반지를 발견했으니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경윤아, 고마워. 사실 네가 알려주기 전부터 나는 줄곧 의심하고 있었어. 하지만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었어. 그래서 성도윤이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닐 거라고 나 자신을 속이고 있었던 거야.”“설아야, 너랑 성도윤은 아무 잘못도 없어. 성도윤은 너를 완전히 잊었으니 나처럼 그저 아는 사람일 뿐인 거야. 성도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배경윤은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위로해 주었다.“나, 나도 알아... 성도윤은 진작에 날 잊었지만 난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나를 기억해 주길 바랐어. 전부 내 탓이야!”차설아는 심호흡하면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을 삼켰다.“그럼 이제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성도윤과 맞서려고?”배경윤의 말에 차설아는 벽에 기대 한숨을 내쉬고는 차갑게 웃었다.“나도 잘 모르겠어. 오
“설아야...”차성철이 천천히 손을 뻗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설아야, 그동안 나 때문에 힘들었지? 정말 고생했어. 미안해...”“오빠, 그런 말 하지 마.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차설아는 차성철이 누워있는 병실 침대맡에 꿇어앉아 눈물을 흘렸다.“사실 의식을 잃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작은 상자에 갇힌 채로 꼼짝도 하지 못했던 거야. 상자를 열지 못해서 이 안에서 죽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자꾸 네 생각이 나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난 하느님께 정말 감사해. 나에게 기회를 주어서 널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야.”차성철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이번 사고로 인해 차성철은 많이 변했다. 예전처럼 날카롭고 예민하게 굴지 않았고 한결 부드러워졌고 말투도 다정해졌다.“뭘 자꾸 그런 말을 해! 오빠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면서 우리 달이랑 원이가 커서 결혼하는 모습을 봐야지. 손주도 봐야 하는데 불길한 말은 하지 마. 오빠는 그냥 오래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거야. 하느님의 힘을 빌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 다시 깨어나 줘서 정말 고마워... 오빠가 너무 보고 싶었어.”차설아는 눈물을 닦으면서 차성철을 와락 안았다.“그래. 너랑 달이, 원이를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지내야지. 앞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자. 우리 가족 모두 모여서 재밌게 지내자. 네가 하고 싶었던 걸 같이 하고 가족 여행도 가자.”“말한 대로 해야 해. 지금 약속하자. 앞으로 오빠가 또 다치면 다시는 나 못 볼 줄 알아! 그때는 오빠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남매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눈물의 약속을 했다. 보는 사람마저 눈물이 나는 광경이었다. 배경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생각났던 것이다.차설아의 말에 의하면 배경수는 아주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처음 보는 여자와 결혼했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걱정되었다. 차설아는 울다가 차성철이 베고 있는 베개의 아래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은반지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값이 꽤 되는
바람이 멈칫하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뭐, 뭐라고?”“네가 스파이지? 네가 사주받고 우리 오빠를 죽이려고 한 거잖아! 그렇지 않으면 왜 우리가 식당에 간 사이에 오빠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 거냐고!”차설아는 붉어진 두 눈을 하고서 물었다. 그동안 차성철의 상태에 대해 아는 사람은 바람과 차설아 두 사람뿐이었다.‘아무리 바람이 날 보살펴 주고 내 곁을 지켰다고 해도 누군가가 바람한테 지시해서 나를 감시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그래. 바람은 선우 가문 사람이니까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오빠를 죽이려고 했을 수도 있어. 그러면 차씨 가문의 자리를 빼앗을 수도 있으니까!’배경윤이 차설아를 뜯어말렸다.“설아야, 말이 좀 심하다? 바람 씨가 어떻게 사주를 받고 그랬을 수가 있어. 네 말이 사실이라면 바람 씨가 너한테 온갖 심혈을 쏟아부을 리가 없잖아. 성철 오빠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움직였겠지. 바람 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쳐다보며 물었다.“넌 알고 있었지?”“그, 그게...”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때 의사와 간호사들이 병실에서 걸어 나왔다.“의사 선생님, 오빠 어떻게 되었어요?”차설아는 사건의 배후에 대한 생각을 뒤로 하고 의사한테 다가가 물었다.“제때 발견한 덕분에 환자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어요. 호흡도 정상적으로 돌아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다행이에요. 정말 감사해요...”차설아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최근 차설아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울었다 웃기를 반복했다. 몸에 무리가 가면서 차설아도 점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들어가 봐도 돼요. 박 선생님의 말씀대로 곧 깨어날 것 같거든요.”의사의 말에 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감사해요!”차설아는 병실로 들어가 차성철을 바라보았다. 배경윤도 그 뒤를 따라갔지만 바람은 굳은 표정을 하고서 밖에 서 있었다.“바람 씨, 거기서 뭐 해?”배경윤이 고개를 돌려
검은 그림자는 다름 아닌 서씨 가문 서은아였다. 서은아는 그동안 차설아를 감시하고 있었다. 차설아가 식당에 밥 먹으러 간 사이에 차성철이 있는 병실을 책임지는 간호사에게 돈을 쥐여주었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수술을 마친 뒤, 침대에 누워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차성철은 살짝 다쳐도 부서질 것처럼 나약해 보였다. 서은아는 병실 침대 앞에 서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작은 물건을 차성철 베개 옆에 올려놓고는 산소마스크를 벗겼다.“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미안해. 당신이 식물인간이 되면 당신 여동생도 기가 죽어서 나대지 못할 거라고 믿었어. 그런데 박성훈이 와서 당신을 살렸지 뭐야? 성도윤이 박성훈한테 부탁한 거라면서? 정말 어이가 없더라. 보나 마나 차설아가 성도윤한테 부탁한 거겠지. 뻔뻔스러운 년이...”서은아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날 탓하지 마. 탓하려면 그 못난 여동생을 탓해. 차설아는 내가 성도윤과 약혼한 사이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 성도윤한테 달라붙으면서 날 괴롭혔어. 동생이 저지른 잘못은 오빠인 당신이 책임져야지. 안 그래?”서은아는 말을 마친 뒤, 감시 카메라를 피해 조용히 병원을 나섰다. 식당에 앉아 있던 차설아는 바람이 포장한 음식을 보면서도 어쩐지 불안해서 먹고 싶지 않았다.“설아야, 네가 제일 좋아하는 탕수육이야. 다른 식당에서 하는 건 눅눅해서 맛없지만 이 식당에서 하는 건 바삭하잖아. 바람 씨가 널 위해서 사 온 건데, 한 입이라도 먹어 봐.”배경윤은 불안해하는 차설아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바람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이 식당에 줄을 서려고 아침 일찍 깨어났어. 하지만 스파크가 좋아하는 거라면 눈이 오든 비가 내리든 사러 가야지.”바람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피식 웃었다. 그동안 차설아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쯧쯧. 바람 씨한테 설아를 맡겼다가는 뚱보가 되겠어. 한 달 안에 10킬로 찐다는 것에 내 머리카락을 걸겠어.”“스파크는 살이 쪄도 예뻐서 괜찮아. 지금처럼 귀여울 거
배경윤은 박성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박성훈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도윤이 데려온 의사라는 말에 성도윤처럼 나쁜 사람인 줄 알고 경계했다.“경윤아, 그러지 마. 박 선생님은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빠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준 분이야.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차씨 가문의 은인이 될 분이거든.”차설아는 다시 일어나더니 박성훈한테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박 선생님, 죄송해요. 경윤이는 늘 저를 아껴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이라 이런 일에서는 예민하게 굴거든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아요. 병원에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죠. 만나본 보호자 중에서 제일 정상적인 반응이거든요. 저는 이해해요.”박성훈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저 말고 성 대표님께 고맙다고 해야죠. 저는 수술할 생각이 없었는데 성 대표님이 간절하게 부탁했고 제가 좋아하는 바다낚시까지 같이 해주셔서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바다낚시 내기에서도 졌으니 성 대표님 말대로 수술해야 했어요.”“성도윤이 어렵게 모신 분인 건 알고 있었어요. 나중에 오빠가 깨어나면 인사하려고요.”“잘 생각했어요.”박성훈이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말을 이었다.“생각이 많으면 마음이 힘들 거예요. 사실 생각처럼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일은 없으니 마음 편안하게 먹고 환자분이 깨어나길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박성훈은 사무실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 오후 4시라서 박성훈이 말한 시간까지는 아직도 4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배경윤은 차설아가 또 쓰러질까 봐 걱정되었다.“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밥부터 먹자.”“괜찮아. 난 배고프지 않아. 오빠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 오빠가 일어나야 내 마음도 편해질 것 같아.”차설아는 병실 밖에 서서 침대에 누워있는 차성철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이러다가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오빠도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을 거야.”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배경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네가 말한 사람이 그 나쁜 놈은 아니겠지? 아니라고 말해.”차설아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그 사람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그래도 도움받았잖아.”“아...”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머뭇거렸다. 차설아한테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고는 목적, 증언, 사건 발생 시간으로 보았을 때 성도윤이 배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 없이 성도윤을 범인으로 몰아갈 수 없었다. 만약 이 말을 꺼냈다가 차설아와 성도윤이 싸우게 된다면 손해 보는 건 차설아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성도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설아야, 그저 네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성도윤을 너무 믿지 마. 성도윤이 어떤 사람인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진심을 드러내지 말고 계속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알겠지?”배경윤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했다.“나도 알아. 지금까지 성도윤을 용서한 적 단 한 번도 없어. 오빠 얼굴에 남은 흉터를 볼 때마다 성도윤이 떠올라서 화가 솟구쳐 오르거든... 성도윤이랑 잘 해볼 생각이 아니라 그저 좋은 의사를 데려와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차설아는 수술실을 바라보면서 말했고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눈에 핏줄이 가득 서렸지만 차성철이 나올 때까지 쉴 수 없었다. 성도윤에 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차설아의 마음이 아팠기에 더는 신경 쓰지 않았고 애매모호한 선을 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더 마주치지 않는 것이 두 사람을 위한 일이었다.“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더 이상 그 사람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알지만 항상 경계해야 해. 그 사람이 얼마나...”“알겠어. 곧 수술이 끝날 테니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오빠가 무사히 나오기를 바라면서 기다리자.”차설아는 배경윤의 말을 끊었다.“그래. 같이 기다려보자.”배경윤은 슬픔이 가득 서려 있는 차
사도현은 턱을 쳐들더니 거만하게 말했다.“내가 바로 배경윤 남자 친구예요.”사도현의 말에 같이 식사하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두 사람이 보통 사이가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회사 대표가 당당하게 공개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뭐?”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 사도현이 미친 짓을 저지를 줄 예상 못했는지 사도현을 향해 부르짖었다.“사도현, 너 정말 미친 거야?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헤어진 지 얼마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남자 친구라고?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찬영 오빠 앞에서 공개하다니... 정말 제대로 미친놈이구나. 내 미래의 남자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람한테 알려주려고 작정한 거야!’“내 말이 틀렸어? 우리 사귀는 사이 맞잖아.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온 첫 번째 날에 어떻게 같은 방, 같은 침대에서 잤겠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사도현이 피식 웃더니 부르짖는 배경윤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다. 배경윤의 시선을 느끼면서 이제야 자신의 것을 되찾은 것 같았다.“그, 그건...”배경윤은 말문이 막혔다. 설명하면 할수록 말려드는 것 같아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때 진찬영이 입술을 깨물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만약 두 사람이 한방에 들어가는 것이 사귄다는 증거라면, 사도현 씨는 배경윤 씨가 아니라 윤설 씨의 남자 친구인 것 같은데요? 윤설 씨 곁을 떠난 적이 없잖아요. 도대체 두 분 중에서 누구의 남자 친구인지 헷갈리네요. 아니면 두 분을 속여서 양다리를 걸친 게 아닐까 싶어요.”진찬영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반격할 수 있는 틈을 찾았다. 그러고는 도덕적인 면에서 사도현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맞아요! 같은 방을 쓰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날에 남은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랬어요. 우리 두 사람 모두 외양간에서 자기 싫었거든요. 그날 밤에 아무 일도 없었지만 윤설 씨랑 사도현 씨 사이는 각별했어요. 정성을 다해서 보살핀 여자랑 사귀는 것 같은데 왜 나를 언급하고 난리야! 난 너처럼 미친놈이랑 사귈 바
그 말을 들은 장윤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윤태가 다급히 뜯어말렸다.“집에 갈 정도로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죠! 그런 설정을 할 생각도 없었어요. 찬영이도 커플 설정을 원하지 않을 테니 강요할 수 없었거든요. 다들 장난치는 거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장윤태는 게스트들이 말하는 커플 중 한 쌍이 진찬영과 배경윤임을 확신했다. 옆에 앉아 있던 사도현은 굳은 표정으로 진찬영을 노려보고 있었다.“장 감독님,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에요.”배경윤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개인적인 일로 해안시에 다시 돌아가야 해요. 프로그램 촬영하는 동안 정말 재밌었어요. 게다가 찬영 오빠랑 커플로 촬영할 수 있다고 하면 더 행복했을 거예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해요.”“잘생긴 남자라면 다 좋아하나 보지?”말을 마친 사도현은 혼자서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장윤태는 배경윤을 설득하지 못하자 재빨리 다른 제안을 했다.“급한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죠. 곧 연애 예능 촬영이 있는데 그때 시간이 되면 우리 찬영이랑 같이 게스트로 출연하지 않을래요?”“좋아요!”배경윤은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진찬영과 함께 촬영할 수 있다면 무슨 프로그램이든지 무조건 출연할 것이다. 진찬영과 떨어지려니 아쉬웠지만 돌아가서 차설아의 곁을 지켜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작별 인사를 했다.“배경윤 씨랑 같이 출연한다면 저도 좋아요.”진찬영은 배경윤을 향해 말했다. 애초에 진찬영은 배경윤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이 마을까지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기에 배경윤이 있는 곳에 꼭 따라갈 것이다.“그럼 두 사람이 사인한 계약서 말고 다른 계약서를 준비할 테니 이제 만나서 얘기해요. 조건을 구체적으로 적으면 이 프로그램 계약서대로 하지 않아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요.”장윤태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너무 기쁜 나머지 술을 마시면서 껄껄 웃었다.“안 돼요.”사도현이 차갑게 말했다.“배경윤은 너무 바빠서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할 시간이 없을 거예요.”배경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