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짙은 어둠이 깔렸다.원이는 차설아가 이미 잠든 것을 확인하고 몰래 이불 속에서 빠져나왔다.그는 화장실에 숨어 무전기를 들고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긴급 상황, 긴급 상황. 미스터 Q는 답하라. 미스터 Q는 답하라.”잠시 후, 무전기 너머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미스터 Q 대기 완료. 원이는 말하라. 원이는 말하라.”“지금 바로 XX아파트로 와서 나와 집합한다. 지금 바로!”“알았다!”교류가 끝난 후 원이는 무전기를 접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아파트 정자에 가면과 검은색 바바리코트를 입은 훤칠한 키의 미스터 Q가 약속대로 도착해 있었다.원이도 자신의 작은 서류 가방을 들고 달빛을 받으며 서둘러 합류했다.“미스터 Q, 시간 약속을 아주 잘 지키네요. 역시 내가 점 찍은 남자다워요. 이 점에 10점을 더 드리죠.”원이는 산처럼 우람한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내가 원하는 건 갖고 왔어?”미스터 Q는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서더니 엄숙한 말투로 물었다.“당연하죠. 이번 물건이 얼마나 확실한데요. 분명 미스터 Q의 마음에 드실 거예요.”원이는 자신만만하게 말하고는 역시나 엄숙한 표정으로 되물었다.“그럼 제가 원하는 건 챙겨오셨나요?”“너의 요구대로 준비했어.”“좋아요, 그럼 교환하죠!”두 사람은 망망한 어둠 속에서 각자의 물건을 꺼내 서로에게 건넸다. 엄숙한 분위기는 마치 깡패 보스들의 접선을 방불케 했다.원이는 미스터 Q에게 사진과 짧은 동영상을 건넸다. 사진과 동영상의 주인공은 바로 그의 어머니인 차설아였다.“이번엔 완벽한 엄마의 모습을 찍었을 뿐만 아니라 잠자며 침 흘리는 모습까지 찍었어요. 그리고 브이로그까지 첨부했어요. 어때요? 제가 의리 하나는 있죠? 완벽한 물건이죠?”원이는 마치 어른처럼 자랑스럽게 턱을 치켜들었다.미스터 Q는 사진을 한 장 한 장 훑어보다가 차갑던 미간이 저절로 부드러워졌다.사진 속 여인은 때로는 귀엽고, 때로는 청순하고, 때로는 여성스러우며 게
그러다 보니 미스터 Q는 많은 경쟁자를 누르고 원이 마음속의 가장 적합한 ‘아버지’ 후보가 되었다.차설아의 적합한 ‘남편’이 맞는지는 원이는 좀 더 지켜봐야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미스터 Q, 할 말이 있어요...”원이는 열정적으로 게임 한 판을 하고는 갑자기 진지하게 말했다.“오늘 엄마랑 유치원에 갔다가 괴롭힘을 당했어요. 아버지가 없어서 그 유치원에 갈 수 없대요. 하지만 전 그 유치원이 좋거든요. 아주 속상해요. 아버지가 없으면 다른 아이들보다 레벨이 낮은가요?”미스터 Q는 갑자기 눈썹을 찡그리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네가 왜 아버지가 없어? 전에 배씨 가문의 배경수가 네 아버지라고 하지 않았어?’“휴, 이제 친한 사이가 되었으니 솔직히 말할게요. 경수 아빠는 제 아버지가 맞긴 하지만 친아버지는 아니에요. 그리고 지금은 엄마와도 헤어졌어요. 엄마도 제가 더 이상 경수 아빠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 앞으로 찾아갈 수도 없어요...”“헤어졌다고?”미스터 Q는 흥미가 생긴 듯 계속 캐물었다.“그럼 네 친아버지가 누군지 혹시 알아?”“당연히 알죠!”원이는 남자를 향해 손가락을 굽히더니 신비로운 표정을 지었다.“이리 가까이 와 봐요.”남자는 허리를 굽히고 귀를 가까이 댔다. 커다란 그의 몸집은 바짝 긴장한 모습이었다.원이는 큰 눈을 껌벅이여 말했다.“전 사실 아버지가 없어요. 엄마가 몇 달 동안 저를 영석에서 키워서 ‘펑’하고 튀어 나왔어요!”미스터 Q는 할 말을 잃었다.‘멍청하기 짝이 없군, 어린아이에게 놀림을 당하다니!’“미스터 Q, 안 믿어요?”“허허, 그럼 믿을까?”원이의 동그란 눈에는 순진함이 가득 차서 급히 설명했다.“사실이에요. 저희 엄마가 그렇게 말했어요. 못 믿겠으면 나중에 엄마한테 물어보세요.”비록 차설아가 원이에게 이렇게 설명했을 때, 원이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바보 같은 표현은 확실히 차설아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차설아의 말을 그대로 옮겼으니, 이건 거짓말이 아니지 않은가?
“그건...”미스터 Q는 두 손을 내밀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아쉽게도 얼굴에는 긴 흉터가 있어. 그래서 내가 가면을 벗으면 네 엄마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을 거야!”원이는 남자를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작은 얼굴을 찡그리고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작은 손을 내흔들며 말했다.“괜찮아요. 저희 엄마가 얼굴을 많이 보긴 하지만 제 의견도 존중해줄 거예요. 만약 다른 방면에서 충분히 훌륭하면 제가 엄마한테 잘 말해줄게요. 그리고... 미스터 Q는 가면 이외의 이목구비는 아주 완벽해요. 가면을 쓰고 있어도 멋있으니 저희 엄마도 맘에 들어 할 거예요.”미스터 Q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흥미진진해서 말했다.“네 엄마가 그렇게 외모를 많이 봐?”“당연하죠!”원이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아니면 왜 성도윤 그 나쁜 놈과 결혼했겠어요? 결국 나쁜 놈에게 괴롭힘만 당하고. 얼굴만 보다가 큰코 다친 거죠.”“얼굴이 아니라, 성도윤의 성격, 재능이나 능력을 좋아한 건 아닐까?”“말도 안 돼요!”원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구토하는 시늉을 했다.“성도윤을 몰라요? 해안에서 냉혈하고 무자비하기로 소문난 인간이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재능이나 능력 같은 건 없어요. 아니면 왜 저희 엄마처럼 좋은 아내를 내버려 두고 다른 여자와 어울리겠어요? 사람 보는 눈이 없어도 유분수지.”“네 엄마가 그렇게 말했어?”“그건 아니에요. 전에 경윤이 이모가 말하는 걸 들었어요. 저도 인터넷에 찾아봤더니, 성도윤은 제 엄마를 저버린 아주 나쁜 놈이더라고요. 만약 만나게 된다면 엄마 대신 혼 내주겠어요.”원이는 주먹을 꽉 쥐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자신의 아버지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는 언젠가 쓰레기 성도윤을 제대로 혼내주기로 마음먹었다.아쉽게도 해안에 온 지 이렇게 오래되었지만, 그는 성도윤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미스터 Q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능력이 강한 것도 일종의 매력이지. 그 사람에 대해 알아봤다면 성도윤의 업무능력
“좋지!”미스터 Q는 흔쾌히 대답하며 원이와 주먹을 부딪쳤다....이른 아침.차설아는 다급한 초인종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이 시간에 대체 누구야?”그녀는 하품을 하며 느릿느릿 문을 열었다.문을 열자마자, 학교 이사장을 비롯한 몬테리 유치원 고위층들은 정장을 입고 손에 꽃을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차설아를 향해 일제히 허리를 굽혀 인사하더니 이구동성으로 외쳤다.“차설아 씨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차설아는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이게... 무슨 상황이죠?”“차설아 씨, 어제 도련님을 데리고 우리 학교에 등록하러 오셨다가 불쾌한 일이 발생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이 사실을 전해 듣고 즉시 관련 인원을 엄중히 처리하였고, 또 제일 먼저 그 학칙을 폐지했습니다. 저희 몬테리의 전체 사생은 원이 도련님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이 선물은 저희의 작은 사과의 표시이니 부디 받아주십시오.”이사장은 말을 마치고 나서 직원에게 정교하고 귀중한 선물들을 차설아에게 전하라고 눈치를 주었다.차설아는 어리둥절해서 물었다.“학칙을 그렇게 쉽게 수정할 수 있는 것인가요? 이러시면 다른 학부모들이 불만이 있을 겁니다. 저한테 사과할 필요 없으세요. 제가 사전에 잘 조사하지 못한 탓이죠. 다른 유치원으로 바꾸면 되니 이렇게 번거롭게...”“아니요, 아니요. 틀린 학칙은 제때 수정해야죠. 저희의 무지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에게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를 주십시오.”이사장은 말을 마치고, 또 사람들을 이끌고 차설아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혹시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으셨나요?”고위층 인물들이 갑자기 터무니없는 학칙이 틀렸다는 것을 양심적으로 발견했을 리가 없다. 만약 폐지할 마음이 있었다면 진작 폐지했을 것이다.누군가의 압력을 받고서 움직였을 가능성이 크다.그렇다면 과연 누구의 압력을 받은 것일까?“협박이 아니라 저희가 진심으로 원해서 폐지한 겁니다. 정식으로 도련님을 우리 유치원의 일원으로 초대합니다. 부디 동의해 주십시오!”이사장과 여
“그쪽은 또 누구시죠?”차설아는 문밖에 서 있는 낯선 젊은 남자를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안녕하십니까, 차설아 씨. 저는 심부름센터 직원입니다. 저희 고객님께서 차설아 씨에게 따뜻한 아침밥을 보내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여기 사인해 주세요.”“아침 밥이요?”차설아는 더욱 멍해졌다.대체 어느 보살님이 아침 일찍 그녀에게 아침을 챙겨준단 말인가? 그녀의 인기가 이 정로도 치솟았단 말인가?“누가 보냈는지 알 수 있을까요?”“잠시 비밀로 해달라고 하셨습니다.”“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 아침을 어떻게 먹겠어요? 도로 갖다 주세요.”차설아는 경각심을 세웠다. 그녀의 주소는 매우 은밀해서 현재 배경수와 배경윤, 그리고 원이만 알고 있었다.그런데 오늘 갑자기 한 무리의 사람이 다녀갔으니 분명 어딘가 잘못됐다.“엄마 잠깐만요, 이 아침밥은 내가 특별히 다른 사람에게 시켜서 만든 거예요. 한번 맛보세요.”원이는 차설아의 손을 잡으며 진정성 있게 말했다.“엄마는 계속 아침밥을 안 챙겨 드시잖아요. 그래서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아침밥이 맛이 없나 해서 특별히 해안 최고의 셰프를 찾아 영양가 있고 맛있는 아침 식사를 맞춤 제작했어요. 제가 반드시 튼튼하고 건강한 엄마로 만들 거예요!”그리고 원이는 속으로 말했다.‘미스터 Q, 반드시 테스트를 통과해야 해요. 아니면 제가 난처해질 거예요!’“엄마의 보살님이 바로 너였구나! 역시 우리 원이는 너무 자상해.”차설아는 감동하여 울 지경이었다. 원이를 껴안고 몇 번 입맞춤을 한 후, 직원의 손에 있는 보온통을 받아들고 기세등등하게 말했다.“너의 효심을 봐서라도 엄마는 반드시 다 먹을 거야!”보온통을 열자, 두 모자는 모두 깜짝 놀랐다.생각보다 꽤 많은 음식이 들어있었다. 크고 작은 음식들이 수십 가지는 되는 것 같았다.찐빵, 팥빵, 죽, 달걀이 있는가 하면, 토스트, 과일 샐러드, 햄 볶음 등 서양 음식도 있었다.“원아, 해안 명셰프에게 부탁한 게 확실해? 이건 거의 식당 주인을 납치한 수
차설아는 택이가 괜찮은 것 같았다. 얼굴도 잘생겼고, 근육질 몸매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이해심도 컸다. 기꺼이 그녀의 해어화가 되려 했다. 바쁜 일들을 처리하면 다시 깊이 알아가도 좋을 듯하다.택이뿐만 아니라, 성진도 잘생겼다. 심심하면 쿡쿡 찔러 봐도 괜찮을 듯하다.성지훈도 괜찮았다. 게임을 할 때 함께 팀을 꾸릴 수도 있고, 바람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시간을 내서 그에게 2진법 코드 기술을 배워야 했다.차설아는 작은 만두를 집어 들어 한입 베어 물고는 속으로 다짐했다.‘흥, 성도윤은 절대 대체 불가한 인간이 아니야. 단지 이미 죽은 고목일 뿐이지. 절대 한 나무에 매달려 죽을 수는 없어. 세상은 크고 다양한 남자들은 눈앞의 아침 식사 만큼 널리고 널렸어. 많이 시도하다 보면 내 입맛에 맞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거야.”다만, 차설아는 씹으면서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젠장, 해안 명셰프가 찐 만두가 왜 이렇게 딱딱해?’그녀는 마치 강철 만두를 씹는 것 같아 이가 깨질 것 같았다.“엄마, 만두 맛있어요?”원이는 턱을 괴고 순진무구한 모습으로 물었다.“콜록, 괜찮아.”차설아는 아이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억지로 만두를 통째로 삼켰다.곧이어 베이컨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소금에 저린 듯 짜서 죽을 뻔했다.차설아는 잔을 들고 물을 들이켰고, 원이는 또 물었다.“엄마, 베이컨 맛은 어때요?”“이것도, 괜찮아. 먹고 나면 물이 좀 당기네?”이렇게 한 바퀴 맛보고 나니 차설아는 마치 ‘맛없는 요리’ 대회를 경험한 듯, 쉽게 삼킬 수 있는 요리가 하나도 없었다.“엄마, 배불러요? 이 셰프 요리 솜씨 어때요? 몇 점이에요?”원이는 기대에 차서 물었다.“배불러, 10점이야.”“와, 대박. 만점이네요!”원이는 이미 참지 못하고 환호성을 질렀다.이어서 차설아는 심호흡을 하더니 말했다.“100점 만점에 10점.”“네?”“원아, 네가 어디서 이 셰프를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효심은 엄마가 잘 받을게. 이 셰프에게 전해줘.
“긴급 상황! 긴급 상황! 미스터 Q는 답하라. 미스터 Q는 답하라.”원이가 호출을 끝내자, 미스터 Q는 무전기 옆을 지키고 있던 것처럼 대뜸 열정적으로 응답했다.“미스터 Q 대기 완료!”남자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아침은 먹었어? 나의 뛰어난 요리 솜씨에 깜짝 놀랐지?”“놀라긴 했죠. 아주 맛없어서 질겁할 정도로요. 엄마가 그 맛 없는 요리를 먹고 하마터면 경찰에 신고할 뻔했어요.”원이는 두 손을 펴고 힘없이 말했다.“맛이 없다고?”미스터 Q의 목소리는 차가워지더니 이해할 수 없는 기색이 역력했다.“그 아침 식사는 내가 모두 요리책에 따라 정성껏 만든 거야, 나의 열정과 사랑을 쏟았다고... 다른 건 몰라도 찐 만두는 반죽만 한 시간을 했는데 맛이 없다고?”원이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으며 엄한 어조로 말했다.“알겠어요. 성의는 알겠지만 요리에는 재능이 없네요. 이건 약점이니 최대한 빨리 보완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전 다른 사람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요... 엄마를 잘 돌봐줄 남편,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엄마를 튼튼하고 건강하게 해줄 수 있는 남편을 저는 찾고 있어요.”“다시 한번 기회를 줘. 다음 식사는 반드시 완벽하게 해낼게.”미스터 Q는 진지하게 약속했다.“기회는 당연히 드리죠. 이미 제 아버지로 점 찍었으니, 다만...”원이는 작고 예쁜 얼굴을 찡그리더니 난처한 표정을 보였다.“요리 솜씨가 형편없으니 다른 장점으로 보완해야 할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엄마에게 어필하기 힘들어요!”“다른 장점이라면...”미스터 Q는 몇 초 동안 고민하다가 물었다.“돈이 많은 것도 장점에 속하나?”“돈은 우리 엄마도 있어요!”“하지만 난 돈이 아주아주 많아. 네 엄마가 원하는 만큼 줄 수 있다고.”“이거 좋네요. 플러스 10점!”원이는 싱글벙글 웃으며 무전기를 향해 말했다.“분명 약속했어요? 엄마가 원하는 대로 주기로... 그럼 오늘은 일단 이 정도로 하고 다른 일이 생기면 다시 연락하죠. 바이!”미스터 Q는 할 말을 잃
‘X발, 이거 완전 답 없는 상황 아니야. 방법이 많아 보이지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어휴, 어휴, 어휴!”차설아는 머리를 긁적였는데 미쳐버릴 지경이었다.“엄마, 무슨 속상한 일 있어요?”원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한숨을 푹 쉬고 있는 차설아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봤다.“아니야, 엄마 엄청 기뻐. 천사 같은 너랑 달이가 있는데 엄마는 기뻐도 모자랄 판에 왜 속상해하겠어?”차설아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더니 햇살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엄마, 거짓말하지 마세요. 지금 억지로 웃고 계시잖아요. 거짓말하는 게 너무 티가 나요, 눈도 계속 끔뻑거리면서. 제가 세 살짜리 애도 아니고, 벌써 네 살 반, 거의 다섯 살이 다 되어간다고요. 제가 그렇게 우스워 보이나요?”“어, 그게...”차설아는 제 발 저린 도둑처럼 미소가 굳어졌다.하긴, 원이가 워낙 똑똑하기에 차설아가 서투른 연기를 선보이니 바로 원이에게 들통날 것이다. 그래서 차설아는 더는 연기하지 않고 원이에게 솔직하게 말했다.“원이야, 엄마에게 요즘 조금 까다로운 일이 생긴 건 맞아.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잠시 해바라기 섬을 팔아야 할 것 같은데, 너랑 달이는 동의할 수 있어?”해바라기 섬을 파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그녀 또한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해바라기 섬을 팔기 전에 그녀는 아이들의 허락을 구해야 했다.“당연히 동의할 수 없죠.”원이가 주저하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해바라기 섬은 우리 집이에요, 우리의 즐거운 추억이 있는 곳인데 당연히 팔면 안 되죠.”“하긴!”차설아는 이마를 ‘탁’ 치더니 의자에 확 누웠다.그녀는 맑은 두 눈으로 하얀 천장을 보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엄마가 생각이 짧았네. 엄마 원망하지 마. 해바라기 섬은 절대 팔지 않을 거야. 다른 방법을 더 생각해 볼게.”원이는 차설아의 팔을 잡고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엄마, 돈이 필요해요? 얼마나 해결하기 쉬운 일이에요. 제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돈이 엄청 많아요.
성도윤은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들이 식사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누가 많이 먹고 먼저 다 먹으면 그 사람이 결정권을 가지는 거야. 그런다고 해서 체하면 안 돼. 알겠지?”두 아이는 다시 진지하게 밥을 먹는 것으로 경쟁하기 시작했다.“너희 먼저 먹어. 난 배불러서 잠깐 햇볕 좀 쬐고 올게.”차설아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녀는 우유 한 잔만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마당으로 가서 햇볕을 쬐었다.성도윤은 차설아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채고는 김정민더러 아이들을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녀를 따라 마당으로 나갔다.“무슨 일이죠, 주인님?”그는 차설아 옆에 서서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차설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분명 뭔가 신경 쓰이는 게 있을 텐데... 내가 한번 맞혀볼까?”성도윤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혹시 두 아이에게 미안해서 그러는 거야? 아이들은 가고 싶은 곳이 많은데 네가 함께 즐겁게 놀아줄 수 없어서?”차설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작은 얼굴에는 마치 어른에게 생각을 간파당했을 때의 아이처럼 놀라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어떻게 알았어요?”그녀는 자신이 감정을 꽤 잘 숨기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성도윤에게 들키고 말았다.그는 차설아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잘 알고 있어서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너무 많이 알고 있다고 경계해야 할지...’다른 사람을 너무 깊이 이해해 버리면 그건 양날의 검과도 같았다. 행복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고통스러울 때도 있으니 말이다.“오랜 세월을 함께했잖아. 부부이기도 했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이기도 했고 또 연인이기도 했어. 원수였던 적도 있지만... 내가 어떻게 널 모를 수 있겠어?”성도윤은 차설아 앞에 쭈그려 앉으며 그녀의 차가운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그렇게 많이 생각할 필요 없어. 네가 아이들이랑 뭘 하는지는 중
“그렇다니까?”서은아는 이를 꽉 깨물며 차갑게 말했다.“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바로 차설아한테로 갔어. 강아지처럼 따라붙더라고. 난 성도윤 얼굴조차 못 봤다니까? 진짜 한심하기도 하지. 내가 생각해도 내가 제일 바보인 것 같아. 안 그러면 이렇게 화내면서 극단적인 제안을 할 이유도 없잖아.”“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차설아는 어떤 반응이었어?”성진은 손가락을 살짝 움켜쥐며 계속해서 물었다.그는 자신의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최대한 무덤덤한 태도를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감정을 감추려 해도 자신이 차설아에 대한 마음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어떤 반응이겠어? 당연히 좋아하겠지. 가족끼리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거잖아.”서은아는 어이없어하며 성진이 뻔한 질문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불만을 쏟아내듯 말을 이어갔다.“두 사람은 처음부터 끊어지려야 끊어질 수 없는 사이였어. 우리가 힘을 합쳐서 엄청난 노력을 한 것도 맞긴 하지만 결국 두 사람 사이를 더 깊이 이어준 셈이지.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바보였던 거야. 어쩌면 우리가 해온 일들도 그들을 돕는 역할밖에 못 했던 거지. 우리는 그저 한낱 도구였을 뿐이라고!”서은아가 이렇게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는 단순히 속상해서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성진의 질투심을 자극해 성도윤과 차설아의 관계를 완전히 망가뜨리고 싶었다.“그렇다고?”성진의 눈빛 속에는 점점 더 강한 분노와 불만이 차올랐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럼 본때를 보여줘야지.”“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거야?”“네가 말한 거잖아.”성진은 주먹을 꽉 움켜쥐고 한 글자 한 글자 뱉었다.“성도윤을 완전히 무너뜨려서 빈털터리로 만들자며?”“그래, 좋아! 또다시 동맹을 맺게 됐네. 솔직히 너라는 놈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일 처리 하나는 잘하니까 말이야. 너랑 손잡는 게 제일 마음이 놓이네.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을게!”서은아는 기분 좋게 말했다.“너도 만만치 않지.”성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사랑해서
“눈이 다 나았다고 하길래 특별히 축하해주러 왔지.”서은아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성진에게 선물을 툭 던져주었다.“이렇게 신경 써주니 참 고맙네.”성진은 선물을 받으며 냉랭하게 말했다.“형이랑 결혼이라도 할 건가?”“성진아, 너 지금 나 가지고 노는 거야? 밖에서 떠도는 소문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건 아닐 거고.”서은아는 말하다가 화가 나서 소파를 두 번이나 세게 걷어찼다.“성도윤 그 배은망덕한 놈! 양심이 있으면 그러지 말았어야지... 내가 서씨 가문의 미래까지 걸고 도왔는데! 그땐 내가 눈이 멀었어.”“그렇게 화낼 것까지야... 나도 한때 그랬었어. 너도 그때 나랑 마찬가지인 거고. 이젠 헛된 꿈에서 깨어나 제대로 앞을 봐야 할 때인 거지.”성진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래. 진작에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근데 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감이 안 와. 너도 전에 그랬었다며. 조언이라도 해줄 수 있어?”서은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성진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욕심이 가득했지만 말이다. 사실 그녀가 성진을 찾아온 건 이미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다만 성진이 어떤 조건을 제시할지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럼 네가 뭘 해줄 수 있는지 말해봐. 원하는 게 뭔데?”“서씨 가문의 모든 걸 이용해서 널 도울 수 있어. 대신 내가 원하는 건 성도윤이 완전히 무너져서 빈털터리가 되는 거야.”“진짜 그렇게 하겠다고? 네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 아니었어?”“내가 독하게 굴지 않으면 성도윤이 깨닫긴 하겠어? 누가 진짜로 그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인지 알게 하려면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어.”서은아는 싸늘한 말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모든 걸 잃어 봐야만 내가 도윤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게 될 거야.”“재밌는 생각이네...”성진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솔직히 말해서 만약 차설아가 없었더라면 그는 서은아 같은 여자를 꽤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그녀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에 거침
민이 이모의 말을 들은 성도윤은 계속해서 물었다.“왜 따라 배우면 안 되는 거예요? 저는 설아의 부모님이 금슬이 좋다고 들어서 무척 부러웠거든요. 저도 설아랑 알콩달콩 지내고 싶어요.”그러자 민이 이모는 미소를 지으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금슬이 좋은 부부로 알려진 건 맞지만 두 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몰라요. 부부마다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다르기에 굳이 따라 배울 필요 없다고 한 거고요. 설아 아가씨랑 지금처럼만 지내시면 돼요.”“그러면 설아 아버지는 예전에 어떤...”“도련님, 죄송하지만 예전의 일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어요. 나이를 먹다 보니 기억력도 나빠졌거든요.”민이 이모는 성도윤의 말을 잘랐다.“저는 이만 가볼게요. 도련님도 일찍 쉬세요.”문을 열고 나가려던 민이 이모는 뒤돌아서서 성도윤을 향해 말했다.“혹시 알게 된 것이 있다고 해도 밝히지 마세요. 궁금한 게 있더라도 계속 조사하지 마시고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라요. 그럴 바에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요?”민이 이모가 나간 뒤, 성도윤은 생각에 잠겼다.‘이모님의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어. 비밀에 부친 일을 굳이 조사해 봤자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거야. 설아한테 더 이상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몇 분 후, 성도윤은 진무열한테 전화를 걸었다.“저번에 내가 부탁한 건 잠시 멈춰. 아직은 때가 아니야.”한편, 성진의 별장.어두운 불빛과 가라앉은 분위기는 성진의 기분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정말 네가 나한테 두 눈을 기증한 거라고?”성진은 책상 앞에 앉아서 기증자의 자료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현청아라는 여자와 사진 속의 여자를 번갈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도련님께 기증할 수 있어서 영광이에요.”현청아는 선글라스를 끼고 대답했다. 두 눈은 움푹 파였고 성진이 기억하던 그 여자의 목소리와 똑같았다.하지만 성진은 현청아가 수술 전에 얘기를 나누었던 여자와 같은 사람이 아닐 거라
성도윤은 차가워진 밤공기보다 소영금이 숨긴 사실이 더 궁금했다. 민이 이모는 젊었을 때부터 차씨 가문에서 일했기에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도 있었다.“조금 쌀쌀해지긴 했어요. 마침 추웠는데 가져다주셔서 감사해요.”성도윤은 문을 열면서 미소를 지었다.“도련님한테 괜히 제가 더 미안해져요. 설아 아가씨는 어릴 적부터 고집이 세고 뒤끝이 길거든요. 아직도 도련님한테 화가 났는지 계속 오두막에서 지내게 하네요. 이 이불을 덮으면 따뜻할 거예요.”민이 이모는 침대 위에 이불을 펴주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이모님, 차씨 가문에서 일한 지 몇 년 되셨어요?”민이 이모는 멈칫하더니 어색하게 웃으면서 물었다.“갑자기 그런 건 왜 물으시는 거예요? 도련님이 궁금해할 줄은 몰랐어요.”“이모님처럼 한 가문에서 평생 일하시는 분은 드물잖아요. 게다가 진심으로 차씨 가문 사람들을 생각해 주고 보살펴주는 게 대단해서요.”“저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회장님과 사모님이 저한테 아주 잘해주셨어요. 그래서 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는 거고요.”“설아한테서 들었는데 이모님은 대대로 의학을 전공했다면서요? 이모님 아버지는 이름을 날린 의사였고 이모님 실력도 훌륭하다고 들었어요. 사용인이 아니라 의학의 길을 걸으셨다면 더 큰 재부를 누리셨을 텐데, 미래를 포기하고 차씨 가문에 평생을 바쳤다는 게 정말 대단하고 멋져요.”“설아 아가씨가 과장해서 설명한 것 같아요. 저의 실력은 어디 내놓을 만큼 대단한 수준이 아니거든요. 긴급상황이 벌어지면 머리가 하얘져요. 그리고 누군가를 보살피는 게 더 적성에 맞고요. 설아 아가씨는 저를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해 주셨어요. 설아 아가씨와 원이 도련님, 달이 아가씨를 보살피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해요.”민이 이모는 성도윤이 무언가를 물어보려고 한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말을 이었다.“도련님, 궁금한 것이 있으면 편하게 말씀하세요. 알고 있는 건 전부 알려드릴게요.”“역시 이모님은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계시네요.”성도윤은 어색하게
“무슨 사이냐고?”소영금은 성도윤이 이런 질문을 던질 줄 예상하지 못했는지 몹시 당황했다. 몇 초 후, 소영금은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무슨 사이긴, 사돈이지.”“엄마랑 설아 아버지는 그저 사돈 관계일 뿐이라고요?”성도윤은 소영금의 말을 믿지 않았다. 차설아의 아버지가 일기장에 기록한 내용을 보면 소영금과 차우진은 애틋한 사랑을 했던 사이였던 것이 분명했다.절대 단순한 사돈 관계가 아니었다.“도윤아, 지금 엄마를 의심하는 거야?”소영금은 덤덤하게 대답했지만 목소리에 분노가 깔려있었다.“그저 엄마한테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서...”“불안하다고?”소영금은 피식 웃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불안해할 필요 없어. 차설아는 너의 배다른 동생이 아니야. 네 동생이었다면 내가 너랑 차설아가 잘되게 계속 도와주었을 것 같아? 너도 참 단순하다니까...”“엄마는 내가 왜 불안해하는지 알고 있는 모양이네요. 엄마랑 설아 아버지는 예전에 연인 사이였던 거죠?”성도윤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소영금은 긴 한숨을 내쉬면서 지난날들을 떠올렸다.“그 사람은 이미 하늘나라로 떠나갔어. 나도 살면 얼마나 더 살까? 시간 앞에서 과거는 한없이 초라하고 보잘것없단다. 지나간 일은 그저 지나가도록 내버려둬야 해. 이 일에 대해서 더는 묻지 마.”“하지만...”“도윤아, 늦었으니 너도 일찍 쉬어. 엄마는 늙어서 일찍 자지 않으면 다음 날에 기운이 없어. 너는 그저 설아랑 잘 지내고 차씨 가문과 성씨 가문의 인연을 계속 이어 나가면 돼. 알겠지?”소영금은 성도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해줄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다.소영금은 차우진과 연관된 다른 얘기를 절대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몇십 년을 거쳐 겨우 아문 상처를 꺼내면 곪아서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다.“알겠어요. 엄마, 시간 될 때 원이랑 달이를 보러 오세요. 네 식구가 함께 지내니까 얼마나 행복
그 뒤로는 전부 차씨 가문에서 벌어진 일이거나 소소한 일상이 담긴 내용이었다. 성도윤의 어머니가 언급되지 않은 일기에서 성도윤은 차설아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알게 되었다.차설아의 부모님은 다정하고 상냥한 분이었고 차설아에게 모든 사랑을 퍼부으면서 행복하게 지냈다. 차씨 가문은 다른 재벌가보다 더 가족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문이었다.성도윤은 미소를 지으면서 일기를 읽었다.“오늘은 우리 설아가 3살이 되는 날이다. 내 자식이지만 이렇게 사랑스럽게 클 줄 몰랐다. 설아는 다른 아이들과 사뭇 달랐다. 세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블록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500조각이 되는 블록을 이용해 집을 만들었다. 무려 두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총명한 기질이 드러나서 얼마나 뿌듯한지 모르겠다.”성도윤은 몇 페이지를 넘기고는 계속해서 읽었다.“시간이 흘러 어느덧 설아의 12살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내는 설아가 더 이상 어린 여자아이가 아니라고 했다.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우리 설아에게도 그날이 찾아왔다. 설아는 여자라서 남자보다 더 많은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지금 느끼는 것보다 수백 배 강한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버지가 되어서 딸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한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고 슬프다. 좋은 남자를 만나게 되면 그 남자에게 설아를 잘 부탁한다고 말해주고 싶다.”성도윤은 눈물을 흘리면서 읽어 내려갔다. 성도윤은 차설아에게 행복한 삶을 선물하지 못했고 차설아가 다치지 않게 보호해 주지도 못했다.성도윤은 자신이 좋은 남편이 아니라고 자책했다.“장인어른, 정말 죄송해요. 그동안 설아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었지만 남은 생을 통해 반성하고 설아한테 모든 것을 쏟아부을 거예요. 설아를 보살피면서 행복하게 잘 살게요.”성도윤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두꺼운 일기장을 계속 펼쳐보았고 이상한 내용을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나 마지막
차설아는 성도윤의 말을 듣더니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그럴 일 없으니까 꿈도 꾸지 말아요.”“알겠어. 이만 가볼게.”성도윤은 풀이 죽은 채 뒷마당에 있는 오두막으로 들어가서 휴식했다. 그리고 오전에 발견했던 그림 한 장이 계속 마음에 걸려서 뭐라도 찾으려고 했다.단서가 될 만한 것은 전부 차설아의 아버지가 쓰던 오두막 안에 있기 때문이다.만약 차설아의 아버지가 성도윤의 어머니를 사랑해서 그린 그림이라면 성도윤과 차설아가 한 가족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성도윤은 불안한 마음에 문을 안에서 잠그고 서재를 샅샅이 훑어보았다. 낡은 일기장이 유독 눈에 띄었는데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성도윤은 일기장을 손에 든 채 어쩔 줄 몰라 했다.‘장인어른의 일기장을 내가 봐도 되는 걸까? 하지만 보지 않으면 그 그림에 대해 설명할 수가 없어. 설아에게 전부 얘기해주기로 했으니까 확인해야 해.’주저하던 성도윤은 결국 자물쇠를 풀고 단서를 꼭 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자물쇠의 비밀번호는 소중한 사람의 생일로 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성도윤은 차설아의 아버지, 어머니, 차설아의 생일을 순서대로 입력했지만 자물쇠가 열리지 않았다.“설마 어머니의 생일은 아니겠지? 그, 그럴 리가 없어.”성도윤은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만약 일기장 자물쇠의 비밀번호가 성도윤의 어머니 생일이라면 드라마틱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 뻔했다.성도윤은 저도 모르게 손을 덜덜 떨었다.소영금의 생일은 3월 31일이었고 별자리는 전형적인 양자리였다. 솔직하고 화끈한 성격에 착한 마음씨를 지녀서 매력덩어리였다.성도윤이 소영금의 생일을 입력하자 자물쇠가 기적적으로 열렸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성도윤은 차설아와 한 가족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머리가 하얘졌다. 그리고 잔뜩 긴장한 채 일기를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10월 17일, 날씨 맑음. 화창한 날씨와는 달리, 나의 마음속에 먹구름만 가득했다. 오늘은 나랑 영금이가 헤어진 지 5년이 되는 날이다. 나는 영금을 진작
차성철은 차설아를 설득할 수 없었기에 차설아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두었다.“설아야, 시간도 늦었으니 일찍 쉬어. 성도윤이 너한테 도움이 되면 이용해도 좋지만 계속 의지하고 기대면 결국 너만 힘들어져.”“그럼 도윤 씨랑 다시 만나도 간섭하지 않겠다는 뜻이야? 오빠는 역시 내 편이었어!”차설아는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차성철과 성도윤 사이의 원한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었다. 그래서 차설아가 성도윤과 다시 만나게 되면 차성철이 극구 반대할 줄 알았다.하지만 차성철은 두 사람을 응원하기로 했다.“내가 반대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잖아. 어차피 네 선택이니 나는 너를 믿어보기로 했어. 성도윤과 싸우면서 둘 다 크게 다쳤지만 성도윤은 결국 나를 구해주었지. 이제는 원한 따위 내려놓아야 할 것 같아.”차성철은 흉터 회복 수술을 받은 후부터 성도윤을 향한 원망과 분노가 사그라들었다.게다가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의식을 되찾았기에 생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차설아가 살아만 있다면 다른 건 더 바라지 않는 오빠의 마음이었다.“오빠, 고맙고 사랑해. 오빠가 나를 응원해 주니까 마음이 놓여. 정말 다행이야!”차설아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차성철이 반대할까 봐 성도윤을 다시 만난다는 소식을 차마 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른 차성철의 반응에 차설아는 감동했고 날아갈 듯이 기뻤다.“나는 응원해 준다고 한 적 없어. 성도윤이 믿음직스러운 남자인지 아닌지는 집으로 돌아가서 직접 보고 판단할 거야. 만약 내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한다면 집에서 내쫓을 테니까 각오하라고 전해. 내 동생이 좋아하는 남자라도 일단 내 눈에 들어야 해.”“알겠어. 오빠가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 오빠, 얼른 끝마치고 집으로 와.”차성철은 가라앉은 보물과 배를 찾고 당당하게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야만 성도윤과 대면했을 때 기죽지 않을 것이다.전화를 끊은 뒤, 차설아와 성도윤 사이에 오묘한 기류가 흘렀다. 차설아는 성도윤의 표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