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쪽은 또 누구시죠?”차설아는 문밖에 서 있는 낯선 젊은 남자를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안녕하십니까, 차설아 씨. 저는 심부름센터 직원입니다. 저희 고객님께서 차설아 씨에게 따뜻한 아침밥을 보내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여기 사인해 주세요.”“아침 밥이요?”차설아는 더욱 멍해졌다.대체 어느 보살님이 아침 일찍 그녀에게 아침을 챙겨준단 말인가? 그녀의 인기가 이 정로도 치솟았단 말인가?“누가 보냈는지 알 수 있을까요?”“잠시 비밀로 해달라고 하셨습니다.”“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 아침을 어떻게 먹겠어요? 도로 갖다 주세요.”차설아는 경각심을 세웠다. 그녀의 주소는 매우 은밀해서 현재 배경수와 배경윤, 그리고 원이만 알고 있었다.그런데 오늘 갑자기 한 무리의 사람이 다녀갔으니 분명 어딘가 잘못됐다.“엄마 잠깐만요, 이 아침밥은 내가 특별히 다른 사람에게 시켜서 만든 거예요. 한번 맛보세요.”원이는 차설아의 손을 잡으며 진정성 있게 말했다.“엄마는 계속 아침밥을 안 챙겨 드시잖아요. 그래서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아침밥이 맛이 없나 해서 특별히 해안 최고의 셰프를 찾아 영양가 있고 맛있는 아침 식사를 맞춤 제작했어요. 제가 반드시 튼튼하고 건강한 엄마로 만들 거예요!”그리고 원이는 속으로 말했다.‘미스터 Q, 반드시 테스트를 통과해야 해요. 아니면 제가 난처해질 거예요!’“엄마의 보살님이 바로 너였구나! 역시 우리 원이는 너무 자상해.”차설아는 감동하여 울 지경이었다. 원이를 껴안고 몇 번 입맞춤을 한 후, 직원의 손에 있는 보온통을 받아들고 기세등등하게 말했다.“너의 효심을 봐서라도 엄마는 반드시 다 먹을 거야!”보온통을 열자, 두 모자는 모두 깜짝 놀랐다.생각보다 꽤 많은 음식이 들어있었다. 크고 작은 음식들이 수십 가지는 되는 것 같았다.찐빵, 팥빵, 죽, 달걀이 있는가 하면, 토스트, 과일 샐러드, 햄 볶음 등 서양 음식도 있었다.“원아, 해안 명셰프에게 부탁한 게 확실해? 이건 거의 식당 주인을 납치한 수
차설아는 택이가 괜찮은 것 같았다. 얼굴도 잘생겼고, 근육질 몸매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이해심도 컸다. 기꺼이 그녀의 해어화가 되려 했다. 바쁜 일들을 처리하면 다시 깊이 알아가도 좋을 듯하다.택이뿐만 아니라, 성진도 잘생겼다. 심심하면 쿡쿡 찔러 봐도 괜찮을 듯하다.성지훈도 괜찮았다. 게임을 할 때 함께 팀을 꾸릴 수도 있고, 바람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시간을 내서 그에게 2진법 코드 기술을 배워야 했다.차설아는 작은 만두를 집어 들어 한입 베어 물고는 속으로 다짐했다.‘흥, 성도윤은 절대 대체 불가한 인간이 아니야. 단지 이미 죽은 고목일 뿐이지. 절대 한 나무에 매달려 죽을 수는 없어. 세상은 크고 다양한 남자들은 눈앞의 아침 식사 만큼 널리고 널렸어. 많이 시도하다 보면 내 입맛에 맞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거야.”다만, 차설아는 씹으면서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젠장, 해안 명셰프가 찐 만두가 왜 이렇게 딱딱해?’그녀는 마치 강철 만두를 씹는 것 같아 이가 깨질 것 같았다.“엄마, 만두 맛있어요?”원이는 턱을 괴고 순진무구한 모습으로 물었다.“콜록, 괜찮아.”차설아는 아이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억지로 만두를 통째로 삼켰다.곧이어 베이컨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소금에 저린 듯 짜서 죽을 뻔했다.차설아는 잔을 들고 물을 들이켰고, 원이는 또 물었다.“엄마, 베이컨 맛은 어때요?”“이것도, 괜찮아. 먹고 나면 물이 좀 당기네?”이렇게 한 바퀴 맛보고 나니 차설아는 마치 ‘맛없는 요리’ 대회를 경험한 듯, 쉽게 삼킬 수 있는 요리가 하나도 없었다.“엄마, 배불러요? 이 셰프 요리 솜씨 어때요? 몇 점이에요?”원이는 기대에 차서 물었다.“배불러, 10점이야.”“와, 대박. 만점이네요!”원이는 이미 참지 못하고 환호성을 질렀다.이어서 차설아는 심호흡을 하더니 말했다.“100점 만점에 10점.”“네?”“원아, 네가 어디서 이 셰프를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효심은 엄마가 잘 받을게. 이 셰프에게 전해줘.
“긴급 상황! 긴급 상황! 미스터 Q는 답하라. 미스터 Q는 답하라.”원이가 호출을 끝내자, 미스터 Q는 무전기 옆을 지키고 있던 것처럼 대뜸 열정적으로 응답했다.“미스터 Q 대기 완료!”남자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아침은 먹었어? 나의 뛰어난 요리 솜씨에 깜짝 놀랐지?”“놀라긴 했죠. 아주 맛없어서 질겁할 정도로요. 엄마가 그 맛 없는 요리를 먹고 하마터면 경찰에 신고할 뻔했어요.”원이는 두 손을 펴고 힘없이 말했다.“맛이 없다고?”미스터 Q의 목소리는 차가워지더니 이해할 수 없는 기색이 역력했다.“그 아침 식사는 내가 모두 요리책에 따라 정성껏 만든 거야, 나의 열정과 사랑을 쏟았다고... 다른 건 몰라도 찐 만두는 반죽만 한 시간을 했는데 맛이 없다고?”원이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으며 엄한 어조로 말했다.“알겠어요. 성의는 알겠지만 요리에는 재능이 없네요. 이건 약점이니 최대한 빨리 보완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전 다른 사람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요... 엄마를 잘 돌봐줄 남편,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엄마를 튼튼하고 건강하게 해줄 수 있는 남편을 저는 찾고 있어요.”“다시 한번 기회를 줘. 다음 식사는 반드시 완벽하게 해낼게.”미스터 Q는 진지하게 약속했다.“기회는 당연히 드리죠. 이미 제 아버지로 점 찍었으니, 다만...”원이는 작고 예쁜 얼굴을 찡그리더니 난처한 표정을 보였다.“요리 솜씨가 형편없으니 다른 장점으로 보완해야 할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엄마에게 어필하기 힘들어요!”“다른 장점이라면...”미스터 Q는 몇 초 동안 고민하다가 물었다.“돈이 많은 것도 장점에 속하나?”“돈은 우리 엄마도 있어요!”“하지만 난 돈이 아주아주 많아. 네 엄마가 원하는 만큼 줄 수 있다고.”“이거 좋네요. 플러스 10점!”원이는 싱글벙글 웃으며 무전기를 향해 말했다.“분명 약속했어요? 엄마가 원하는 대로 주기로... 그럼 오늘은 일단 이 정도로 하고 다른 일이 생기면 다시 연락하죠. 바이!”미스터 Q는 할 말을 잃
‘X발, 이거 완전 답 없는 상황 아니야. 방법이 많아 보이지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어휴, 어휴, 어휴!”차설아는 머리를 긁적였는데 미쳐버릴 지경이었다.“엄마, 무슨 속상한 일 있어요?”원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한숨을 푹 쉬고 있는 차설아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봤다.“아니야, 엄마 엄청 기뻐. 천사 같은 너랑 달이가 있는데 엄마는 기뻐도 모자랄 판에 왜 속상해하겠어?”차설아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더니 햇살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엄마, 거짓말하지 마세요. 지금 억지로 웃고 계시잖아요. 거짓말하는 게 너무 티가 나요, 눈도 계속 끔뻑거리면서. 제가 세 살짜리 애도 아니고, 벌써 네 살 반, 거의 다섯 살이 다 되어간다고요. 제가 그렇게 우스워 보이나요?”“어, 그게...”차설아는 제 발 저린 도둑처럼 미소가 굳어졌다.하긴, 원이가 워낙 똑똑하기에 차설아가 서투른 연기를 선보이니 바로 원이에게 들통날 것이다. 그래서 차설아는 더는 연기하지 않고 원이에게 솔직하게 말했다.“원이야, 엄마에게 요즘 조금 까다로운 일이 생긴 건 맞아.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잠시 해바라기 섬을 팔아야 할 것 같은데, 너랑 달이는 동의할 수 있어?”해바라기 섬을 파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그녀 또한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해바라기 섬을 팔기 전에 그녀는 아이들의 허락을 구해야 했다.“당연히 동의할 수 없죠.”원이가 주저하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해바라기 섬은 우리 집이에요, 우리의 즐거운 추억이 있는 곳인데 당연히 팔면 안 되죠.”“하긴!”차설아는 이마를 ‘탁’ 치더니 의자에 확 누웠다.그녀는 맑은 두 눈으로 하얀 천장을 보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엄마가 생각이 짧았네. 엄마 원망하지 마. 해바라기 섬은 절대 팔지 않을 거야. 다른 방법을 더 생각해 볼게.”원이는 차설아의 팔을 잡고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엄마, 돈이 필요해요? 얼마나 해결하기 쉬운 일이에요. 제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돈이 엄청 많아요.
“무슨 일인데? 왜 이렇게 숨을 헐떡여? 숨 고르고 천천히 말해.”차설아는 미간을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서고는 너무 흥분한 바람에 몸을 비틀거리는 배경윤을 부축했다.“오빠, 오빠에게 일이 생겼어!”얼굴이 창백해진 배경윤은 깊은숨을 들이쉬더니 말을 더듬었다.“전에... 전에 천신 그룹의 적자를 막기 위해 오빠가 흥신은행에서 대출을 받았거든. 담보물이 바로 부성 그룹의 지분이었어. 원래 상환 기간 전에 아무도 모르게 돈을 갚으면 되는데 이 일이 아빠 귀에 들어간 거야...”배경윤의 팔을 잡고 있던 차설아의 손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갔다.그녀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물었다.“그래서 어떻게 됐어?”“우리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언니도 알잖아. 화가 나면 가족도 안중에 없어. 우리 배씨 가문이 워낙 그레이존 사업으로 자수성가했잖아. 아빠가 지금 옛날에 조직에서 사용했던 방법으로 오빠에게 벌을 주고 있어. 오빠... 오빠 지금 거의 맞아 죽고 있어!”배경윤은 눈물을 흘리며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다.“언니, 방법 생각해서 우리 오빠 구해주면 안 돼? 아니면 오빠가 정말 죽을 수도 있어!”“그만 울고. 지금 경수가 어디에 있는데? 내가 바로 찾으러 갈게.”차설아는 배경윤을 위로해 주며 출발하려고 준비하기 시작했다.그녀는 배성준과 만난 적이 없었지만 그가 고지식하고 고집불통일 뿐만 아니라 수완이 있는 분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배경수는 배성준이 학수고대한 아들로서 줄곧 그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래서 배경수는 부성 그룹의 확실한 후계자였고, 부성 그룹에서도 두 번째로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주주였다.그런데 배경수가 말도 없이 지분을 담보로 갖다 썼을 뿐만 아니라 겨우 작은 하이 테크의 적자를 막기 위해서 썼으니, 배씨 가문의 가주인 배성준도 화가 났을 뿐만 아니라 배씨 가문과 아무 상관이 없는 차설아조차도 화가 났다!“배경수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했대? 아무리 나를 믿고 천신 그룹을 믿는다고 해도 부성 그룹의 미래를 걸지 말았어야지. 만약 우리 프
“여보, 더 때리면 안 돼요. 우리 경수 당신한테 맞아 죽겠어요...”강혜정은 울면서 아들을 꼭 끌어안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배성준에게 빌었다.“경수는 당신의 유일한 아들이잖아요. 이대로 때려죽이면 배씨 가문의 가업은 누구에게 맡길 거예요?”“엄마, 그 말 참 듣기 불편하네요!”배씨 가문 셋째 딸인 배경림이 눈을 부라리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우리는 뭐 배씨 가문 사람이 아니에요? 엄마가 길바닥에서 주워 온 애들이냐고요. 경수가 없다고 우리 배씨 가문의 대가 끊겨요?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남녀 차별을 하세요.”“경림이 말이 맞아.”배성준이 씩씩거리며 말했다.“나 배성준의 자식이 얘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이놈을 때려죽여도 딸이 여섯이나 있어. 딸들이 다 이 패가망신하는 놈보다는 낫지. 특히 우리 경림이, 내가 그동안 맡긴 업무를 얼마나 잘 해내고 있어. 내가 마음 놓고 우리 배씨 가문의 가업을 맡길 수 있을 정도라고!”배경림이 입꼬리를 씩 끌어올리더니 거실에 무릎 꿇고 있는 배경수를 향해 말했다.“경수야, 그때 돈을 받아 천신 그룹을 설립한 것도 여자를 꼬시려고 그런 거잖아. 그때 네가 곧 흥미 잃을 줄 알았는데 천신 그룹에 점점 더 많은 돈을 투자할 줄 누가 알았겠어? 네가 배씨 가문의 돈을 다 성도윤이 갖고 놀다가 질려서 이혼한 여자에게 갖다 바쳤잖아. 그래서 결국 네가 얻은 게 뭔데? 성도윤과 이혼한 여자가 너에게 고마워했어? 너랑 연애를 해준다고 했어? 잘 보이려고 몇 년 동안 고생했는데 뭘 얻었는데? 지금 네가 거의 맞아 죽고 있는데 그 여자가 눈곱만큼이라도 신경을 써?”배경수는 주먹을 불끈 쥐더니 벌게진 눈으로 배경림을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누나, 말은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보스는 내 목숨을 살려줬던 은인이야. 내 마음속의 신이라고. 계속 그런 보스에 대해 함부로 말한다면 아무리 누나라고 해도 난 안 봐줘.”그 말을 들은 배성준은 벌컥 역정을 냈다.“이놈의 자식, 진짜 마가 씐 거야? 나 배성준이 너 같은
“어머, 이게 무슨 일이래. 우리 아들을 제대로 홀려 정신줄을 놓게 만든 여자가 드디어 나타났구먼?”배성준은 차설아를 위아래로 훑어봤는데 마치 상품을 훑어보듯 눈빛이 매서웠다. 그러고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 말 진심이야? 정말 이 패가망신한 놈을 구하기 위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어?”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말했다.“저는 큰소리만 떵떵 치는 사람이 아닙니다.”“좋아, 그래도 양심은 있구먼.”차설아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니면 경멸하는 마음이 들었는지, 그녀를 바라보는 배성준의 눈빛이 복잡해졌고, 이어서 그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얼굴이 예쁘긴 하네, 우리 아들이 그렇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네...”바닥에서 무릎 꿇고 있던 배경수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보스, 나 상관하지 말고 얼른 여길 떠나. 아빠가 나를 아끼기 때문에 아무리 화가 나도 나를 죽이진 않으실 거야. 하지만 보스는 달라. 우리 아빠는 여색을 좋아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단 말이야. 보스한테 변태적인 일을 저지를 수도 있어!”배성준은 소문이 자자한 바람둥이였다. 일곱 명의 자녀 외에 그의 혼외자식은 수두룩했고, 많은 여자들을 울리기도 했다.배경수는 그런 아빠의 본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차설아가 걱정되는 것이었다.하지만 차설아는 아주 덤덤했고, 심지어 씩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변태는 많이 만나봤지. 한 사람 더 만나봤자 뭐 어떻게 되겠어?”그녀도 배성준에 관한 소문을 일찍부터 들은 바가 있었지만 자기에게까지 그런 변태적인 짓을 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닥쳐!”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배성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특히 어릴 때부터 예뻐했던 배경수가 여자에게 모든 걸 갖다 바치는 패가망신하는 놈일 뿐이 아니라 생각이 없는 바보라니. 마음속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모든 여자를 손안에 넣고 마는 그런 사람으로 생각했단 말인가?“내 요구는 아주 간단해. 이 패가망신한 놈이 너를 그렇게 오
사람들은 저마다 한시름을 놓았고, 또 차설아를 마구 비웃었다.“모두 닥쳐요. 설아 언니를 그렇게 말하지 마요. 나랑 경수 오빠의 목숨을 설아 언니가 구해준 거라고요. 우리 배씨 가문이 아무리 노력해도 설아 언니에 걸맞은 가문이 될 수 없을 거예요.”배경윤은 화가 난 나머지 얼굴이 빨개졌고, 한껏 흥분된 목소리로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빨리 보스 데리고 가!”고개를 푹 숙인 배경수가 주먹을 불끈 쥐고는 배경윤을 향해 명령했다.자기가 사랑한 여자가 이토록 가족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있으니 그는 부끄러워 차설아를 바라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아버지, 저를 오늘 제발 저를 때려죽이세요. 만약 죽이지 못한다면 저는 제대로 불효자식이 될 겁니다.”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배성준을 보며 경고했다.배성준은 그가 존경하는 아버지이기도 했지만, 그런 아버지가 제대로 선을 넘었으니 그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이놈의 자식. 이혼한 여자 때문에 감히 아버지에게 그런 불효의 말을 해? 그럼 네 소원을 들어주지. 죽을 때까지 때려주겠어.”배성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또 배경수를 향해 살갗이 찢어지도록 채찍을 휘둘렀다.강혜정은 울면서 그를 말렸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그만해요!”계속 침묵을 지키던 차설아가 무표정으로 말했다.“아버님 말씀 모두 지당하세요. 저도 동의합니다. 제가 이혼한 여자로서 경수와 거리를 둬야 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경수와 거리를 두기는커녕 오히려 가깝게 지냈고, 또 당연하다는 듯이 경수가 해준 모든 걸 그대로 누렸으니 제가 너무 이기적이었습니다.”“흥, 그래도 자기가 누렸다는 걸 인정하긴 하네.”배성준이 차설아에게 이토록 치욕스러운 수모를 안겨준 이유는 바로 차설아가 자기 신분을 확실히 알고 앞으로 더는 금쪽같은 자기 아들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하기 위해서였다.차설아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동안 경수가 저에게 쓴 돈, 그리고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은 모두 이자까지 더해서 갚겠습니다. 그러니 더는 경수를 탓하지 마
바람은 얇은 셔츠를 입고 서 있었고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네가 여기에 앉았을 때부터 뒤에 숨어있었어.”“너 바보야? 6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있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차설아는 투덜거리면서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바람은 차설아의 곁에 앉으면서 미소를 지었다.“힘든 줄 모르니까 이 시간까지 앉아 있었던 거겠지.”“난 생각할 것이 있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어.”“나도 똑같아. 네 얼굴을 보고만 있어도 재밌어서 계속 쳐다보고 싶었어. 6시간이나 지난 줄 몰랐거든.”“그런 장난도 지긋지긋하다.”차설아는 바람을 주먹으로 때리고는 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오후에 있었던 일은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오빠 생각에 미쳐서 주변 사람들을 전부 의심했던 것 같아. 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어도 그랬을 거야. 그러니까 마음에 두지 말았으면 좋겠어...”차설아의 말에 바람이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사과하지 않아도 돼. 난 신비한 컨셉이라 의심받은 적이 셀 수 없을 만큼 많거든. 그러니까 자책하지 마. 네가 속상해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거든...”바람은 차설아가 죄책감 때문에 자신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바람은 누구한테 의심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바람의 유일한 목표는 차설아와 결혼해서 선우 가문을 빛내려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쁜 짓을 하든 암암리에 손을 쓰든 중요하지 않았다. 차설아의 마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 바람은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누가 자책했다고 그래. 넌 여우처럼 교활하니까 당연히 의심받지. 아무도 너의 속내를 꿰뚫어 보지 못하잖아.”차설아는 바람의 이마를 툭 치면서 말을 이었다.“우리 둘이 그저 해커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합에 참가해서 상금을 타고 돈이나 벌었으면 복잡한 가문의 일을 해결하지 않아도 되잖아. 복수할 것도 없으니 해커 활동이나 하면서 편안하게 지냈으면 되었을 텐데 말이야.”“생각해 보면 너랑 같이 시합에 참가해서 겨루던 날들이 제일 재밌었어.”바람은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
병실을 나선 배경윤은 차설아를 데리고 비상계단 쪽으로 향했다.“그 반지... 성도윤이 끼고 있던 거지?”“맞아.”차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나한테 숨기는 거 있어? 저번부터 표정이 안 좋더라.”“그, 그러니까...”배경윤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성철 오빠가 수술을 받고 의식을 잃은 뒤에 누군가가 일부러 손을 쓴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성형 병원으로 다시 찾아갔고 간호사한테서 단서를 찾은 거야.”“단서라니?”차설아가 인상을 찌푸리고는 잔뜩 긴장한 채 물었다.“간호사의 말에 의하면 성철 오빠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의사가 윤설이랑 통화했다는 거야. 깔끔하게 처리하라고 했대. 그래서 나는 윤설이 촬영하는 곳까지 찾아가서 따졌고 윤설은 성도윤의 지시를 받은 것이라고 말하더라고...”배경윤은 긴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윤설이 일부러 거짓 정보를 흘렸을까 봐 증거를 더 모은 뒤에 너한테 알려주려고 했어. 그런데 갑자기 성도윤의 반지를 발견했으니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경윤아, 고마워. 사실 네가 알려주기 전부터 나는 줄곧 의심하고 있었어. 하지만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었어. 그래서 성도윤이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닐 거라고 나 자신을 속이고 있었던 거야.”“설아야, 너랑 성도윤은 아무 잘못도 없어. 성도윤은 너를 완전히 잊었으니 나처럼 그저 아는 사람일 뿐인 거야. 성도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배경윤은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위로해 주었다.“나, 나도 알아... 성도윤은 진작에 날 잊었지만 난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나를 기억해 주길 바랐어. 전부 내 탓이야!”차설아는 심호흡하면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을 삼켰다.“그럼 이제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성도윤과 맞서려고?”배경윤의 말에 차설아는 벽에 기대 한숨을 내쉬고는 차갑게 웃었다.“나도 잘 모르겠어. 오
“설아야...”차성철이 천천히 손을 뻗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설아야, 그동안 나 때문에 힘들었지? 정말 고생했어. 미안해...”“오빠, 그런 말 하지 마.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차설아는 차성철이 누워있는 병실 침대맡에 꿇어앉아 눈물을 흘렸다.“사실 의식을 잃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작은 상자에 갇힌 채로 꼼짝도 하지 못했던 거야. 상자를 열지 못해서 이 안에서 죽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자꾸 네 생각이 나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난 하느님께 정말 감사해. 나에게 기회를 주어서 널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야.”차성철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이번 사고로 인해 차성철은 많이 변했다. 예전처럼 날카롭고 예민하게 굴지 않았고 한결 부드러워졌고 말투도 다정해졌다.“뭘 자꾸 그런 말을 해! 오빠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면서 우리 달이랑 원이가 커서 결혼하는 모습을 봐야지. 손주도 봐야 하는데 불길한 말은 하지 마. 오빠는 그냥 오래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거야. 하느님의 힘을 빌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 다시 깨어나 줘서 정말 고마워... 오빠가 너무 보고 싶었어.”차설아는 눈물을 닦으면서 차성철을 와락 안았다.“그래. 너랑 달이, 원이를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지내야지. 앞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자. 우리 가족 모두 모여서 재밌게 지내자. 네가 하고 싶었던 걸 같이 하고 가족 여행도 가자.”“말한 대로 해야 해. 지금 약속하자. 앞으로 오빠가 또 다치면 다시는 나 못 볼 줄 알아! 그때는 오빠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남매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눈물의 약속을 했다. 보는 사람마저 눈물이 나는 광경이었다. 배경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생각났던 것이다.차설아의 말에 의하면 배경수는 아주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처음 보는 여자와 결혼했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걱정되었다. 차설아는 울다가 차성철이 베고 있는 베개의 아래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은반지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값이 꽤 되는
바람이 멈칫하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뭐, 뭐라고?”“네가 스파이지? 네가 사주받고 우리 오빠를 죽이려고 한 거잖아! 그렇지 않으면 왜 우리가 식당에 간 사이에 오빠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 거냐고!”차설아는 붉어진 두 눈을 하고서 물었다. 그동안 차성철의 상태에 대해 아는 사람은 바람과 차설아 두 사람뿐이었다.‘아무리 바람이 날 보살펴 주고 내 곁을 지켰다고 해도 누군가가 바람한테 지시해서 나를 감시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그래. 바람은 선우 가문 사람이니까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오빠를 죽이려고 했을 수도 있어. 그러면 차씨 가문의 자리를 빼앗을 수도 있으니까!’배경윤이 차설아를 뜯어말렸다.“설아야, 말이 좀 심하다? 바람 씨가 어떻게 사주를 받고 그랬을 수가 있어. 네 말이 사실이라면 바람 씨가 너한테 온갖 심혈을 쏟아부을 리가 없잖아. 성철 오빠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움직였겠지. 바람 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쳐다보며 물었다.“넌 알고 있었지?”“그, 그게...”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때 의사와 간호사들이 병실에서 걸어 나왔다.“의사 선생님, 오빠 어떻게 되었어요?”차설아는 사건의 배후에 대한 생각을 뒤로 하고 의사한테 다가가 물었다.“제때 발견한 덕분에 환자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어요. 호흡도 정상적으로 돌아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다행이에요. 정말 감사해요...”차설아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최근 차설아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울었다 웃기를 반복했다. 몸에 무리가 가면서 차설아도 점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들어가 봐도 돼요. 박 선생님의 말씀대로 곧 깨어날 것 같거든요.”의사의 말에 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감사해요!”차설아는 병실로 들어가 차성철을 바라보았다. 배경윤도 그 뒤를 따라갔지만 바람은 굳은 표정을 하고서 밖에 서 있었다.“바람 씨, 거기서 뭐 해?”배경윤이 고개를 돌려
검은 그림자는 다름 아닌 서씨 가문 서은아였다. 서은아는 그동안 차설아를 감시하고 있었다. 차설아가 식당에 밥 먹으러 간 사이에 차성철이 있는 병실을 책임지는 간호사에게 돈을 쥐여주었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수술을 마친 뒤, 침대에 누워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차성철은 살짝 다쳐도 부서질 것처럼 나약해 보였다. 서은아는 병실 침대 앞에 서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작은 물건을 차성철 베개 옆에 올려놓고는 산소마스크를 벗겼다.“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미안해. 당신이 식물인간이 되면 당신 여동생도 기가 죽어서 나대지 못할 거라고 믿었어. 그런데 박성훈이 와서 당신을 살렸지 뭐야? 성도윤이 박성훈한테 부탁한 거라면서? 정말 어이가 없더라. 보나 마나 차설아가 성도윤한테 부탁한 거겠지. 뻔뻔스러운 년이...”서은아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날 탓하지 마. 탓하려면 그 못난 여동생을 탓해. 차설아는 내가 성도윤과 약혼한 사이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 성도윤한테 달라붙으면서 날 괴롭혔어. 동생이 저지른 잘못은 오빠인 당신이 책임져야지. 안 그래?”서은아는 말을 마친 뒤, 감시 카메라를 피해 조용히 병원을 나섰다. 식당에 앉아 있던 차설아는 바람이 포장한 음식을 보면서도 어쩐지 불안해서 먹고 싶지 않았다.“설아야, 네가 제일 좋아하는 탕수육이야. 다른 식당에서 하는 건 눅눅해서 맛없지만 이 식당에서 하는 건 바삭하잖아. 바람 씨가 널 위해서 사 온 건데, 한 입이라도 먹어 봐.”배경윤은 불안해하는 차설아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바람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이 식당에 줄을 서려고 아침 일찍 깨어났어. 하지만 스파크가 좋아하는 거라면 눈이 오든 비가 내리든 사러 가야지.”바람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피식 웃었다. 그동안 차설아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쯧쯧. 바람 씨한테 설아를 맡겼다가는 뚱보가 되겠어. 한 달 안에 10킬로 찐다는 것에 내 머리카락을 걸겠어.”“스파크는 살이 쪄도 예뻐서 괜찮아. 지금처럼 귀여울 거
배경윤은 박성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박성훈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도윤이 데려온 의사라는 말에 성도윤처럼 나쁜 사람인 줄 알고 경계했다.“경윤아, 그러지 마. 박 선생님은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빠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준 분이야.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차씨 가문의 은인이 될 분이거든.”차설아는 다시 일어나더니 박성훈한테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박 선생님, 죄송해요. 경윤이는 늘 저를 아껴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이라 이런 일에서는 예민하게 굴거든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아요. 병원에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죠. 만나본 보호자 중에서 제일 정상적인 반응이거든요. 저는 이해해요.”박성훈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저 말고 성 대표님께 고맙다고 해야죠. 저는 수술할 생각이 없었는데 성 대표님이 간절하게 부탁했고 제가 좋아하는 바다낚시까지 같이 해주셔서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바다낚시 내기에서도 졌으니 성 대표님 말대로 수술해야 했어요.”“성도윤이 어렵게 모신 분인 건 알고 있었어요. 나중에 오빠가 깨어나면 인사하려고요.”“잘 생각했어요.”박성훈이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말을 이었다.“생각이 많으면 마음이 힘들 거예요. 사실 생각처럼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일은 없으니 마음 편안하게 먹고 환자분이 깨어나길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박성훈은 사무실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 오후 4시라서 박성훈이 말한 시간까지는 아직도 4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배경윤은 차설아가 또 쓰러질까 봐 걱정되었다.“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밥부터 먹자.”“괜찮아. 난 배고프지 않아. 오빠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 오빠가 일어나야 내 마음도 편해질 것 같아.”차설아는 병실 밖에 서서 침대에 누워있는 차성철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이러다가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오빠도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을 거야.”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배경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네가 말한 사람이 그 나쁜 놈은 아니겠지? 아니라고 말해.”차설아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그 사람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그래도 도움받았잖아.”“아...”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머뭇거렸다. 차설아한테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고는 목적, 증언, 사건 발생 시간으로 보았을 때 성도윤이 배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 없이 성도윤을 범인으로 몰아갈 수 없었다. 만약 이 말을 꺼냈다가 차설아와 성도윤이 싸우게 된다면 손해 보는 건 차설아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성도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설아야, 그저 네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성도윤을 너무 믿지 마. 성도윤이 어떤 사람인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진심을 드러내지 말고 계속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알겠지?”배경윤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했다.“나도 알아. 지금까지 성도윤을 용서한 적 단 한 번도 없어. 오빠 얼굴에 남은 흉터를 볼 때마다 성도윤이 떠올라서 화가 솟구쳐 오르거든... 성도윤이랑 잘 해볼 생각이 아니라 그저 좋은 의사를 데려와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차설아는 수술실을 바라보면서 말했고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눈에 핏줄이 가득 서렸지만 차성철이 나올 때까지 쉴 수 없었다. 성도윤에 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차설아의 마음이 아팠기에 더는 신경 쓰지 않았고 애매모호한 선을 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더 마주치지 않는 것이 두 사람을 위한 일이었다.“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더 이상 그 사람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알지만 항상 경계해야 해. 그 사람이 얼마나...”“알겠어. 곧 수술이 끝날 테니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오빠가 무사히 나오기를 바라면서 기다리자.”차설아는 배경윤의 말을 끊었다.“그래. 같이 기다려보자.”배경윤은 슬픔이 가득 서려 있는 차
사도현은 턱을 쳐들더니 거만하게 말했다.“내가 바로 배경윤 남자 친구예요.”사도현의 말에 같이 식사하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두 사람이 보통 사이가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회사 대표가 당당하게 공개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뭐?”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 사도현이 미친 짓을 저지를 줄 예상 못했는지 사도현을 향해 부르짖었다.“사도현, 너 정말 미친 거야?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헤어진 지 얼마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남자 친구라고?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찬영 오빠 앞에서 공개하다니... 정말 제대로 미친놈이구나. 내 미래의 남자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람한테 알려주려고 작정한 거야!’“내 말이 틀렸어? 우리 사귀는 사이 맞잖아.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온 첫 번째 날에 어떻게 같은 방, 같은 침대에서 잤겠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사도현이 피식 웃더니 부르짖는 배경윤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다. 배경윤의 시선을 느끼면서 이제야 자신의 것을 되찾은 것 같았다.“그, 그건...”배경윤은 말문이 막혔다. 설명하면 할수록 말려드는 것 같아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때 진찬영이 입술을 깨물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만약 두 사람이 한방에 들어가는 것이 사귄다는 증거라면, 사도현 씨는 배경윤 씨가 아니라 윤설 씨의 남자 친구인 것 같은데요? 윤설 씨 곁을 떠난 적이 없잖아요. 도대체 두 분 중에서 누구의 남자 친구인지 헷갈리네요. 아니면 두 분을 속여서 양다리를 걸친 게 아닐까 싶어요.”진찬영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반격할 수 있는 틈을 찾았다. 그러고는 도덕적인 면에서 사도현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맞아요! 같은 방을 쓰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날에 남은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랬어요. 우리 두 사람 모두 외양간에서 자기 싫었거든요. 그날 밤에 아무 일도 없었지만 윤설 씨랑 사도현 씨 사이는 각별했어요. 정성을 다해서 보살핀 여자랑 사귀는 것 같은데 왜 나를 언급하고 난리야! 난 너처럼 미친놈이랑 사귈 바
그 말을 들은 장윤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윤태가 다급히 뜯어말렸다.“집에 갈 정도로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죠! 그런 설정을 할 생각도 없었어요. 찬영이도 커플 설정을 원하지 않을 테니 강요할 수 없었거든요. 다들 장난치는 거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장윤태는 게스트들이 말하는 커플 중 한 쌍이 진찬영과 배경윤임을 확신했다. 옆에 앉아 있던 사도현은 굳은 표정으로 진찬영을 노려보고 있었다.“장 감독님,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에요.”배경윤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개인적인 일로 해안시에 다시 돌아가야 해요. 프로그램 촬영하는 동안 정말 재밌었어요. 게다가 찬영 오빠랑 커플로 촬영할 수 있다고 하면 더 행복했을 거예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해요.”“잘생긴 남자라면 다 좋아하나 보지?”말을 마친 사도현은 혼자서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장윤태는 배경윤을 설득하지 못하자 재빨리 다른 제안을 했다.“급한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죠. 곧 연애 예능 촬영이 있는데 그때 시간이 되면 우리 찬영이랑 같이 게스트로 출연하지 않을래요?”“좋아요!”배경윤은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진찬영과 함께 촬영할 수 있다면 무슨 프로그램이든지 무조건 출연할 것이다. 진찬영과 떨어지려니 아쉬웠지만 돌아가서 차설아의 곁을 지켜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작별 인사를 했다.“배경윤 씨랑 같이 출연한다면 저도 좋아요.”진찬영은 배경윤을 향해 말했다. 애초에 진찬영은 배경윤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이 마을까지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기에 배경윤이 있는 곳에 꼭 따라갈 것이다.“그럼 두 사람이 사인한 계약서 말고 다른 계약서를 준비할 테니 이제 만나서 얘기해요. 조건을 구체적으로 적으면 이 프로그램 계약서대로 하지 않아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요.”장윤태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너무 기쁜 나머지 술을 마시면서 껄껄 웃었다.“안 돼요.”사도현이 차갑게 말했다.“배경윤은 너무 바빠서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할 시간이 없을 거예요.”배경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