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들어온 차설아는 일찍이 기다리고 있는 아들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져 허리를 굽혀 안으려 했다.원이는 뒤로 물러서더니 두 손을 허리에 짚고 굳은 얼굴로 말했다.“엄마, 어젯밤 외박했죠? 사실대로 말해요, 어디 갔어요?”“아, 그게...”차설아는 난처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어젯밤 술집에서 술에 잔뜩 취해 남색에 빠졌다고 하면 원이 마음속의 빛나는 차설아의 이미지는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엄마가 어제 일이 너무 늦게 끝나서 그냥 회사에서 잤어. 미안해, 원아. 걱정했지?”차설아는 원이를 끌어안고 아무 핑계나 대니 마음이 좀 찔렸다.이 녀석은 결코 호락호락한 아이가 아니다.역시나 원이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차설아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더니 단박에 알아챘다.“엄마, 거짓말이에요. 몸에서 술 냄새가 이렇게 나는데, 분명 또 술 마시러 간 거죠?”옆에 있던 배경윤은 오히려 당당하게 모두 자백했다.“맞아, 어젯밤 이모가 너희 엄마랑 술 마시러 갔어. 요즘 엄마가 기분도 별로 안 좋고 일도 바쁘고 해서 같이 스트레스 좀 풀고 왔어.”“내가 정말 미쳐요!”녀석은 입을 삐죽 내밀었고 동그란 얼굴은 잔뜩 구겨졌다. 제대로 화가 난 모양이다.“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게다가 엄마는 아주 예쁘잖아요. 술을 마신 것도 모자라 외박까지 하다니. 만약 나쁜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떡해요?”원이는 흥분해서 말했다. 하지만 자신은 어린아이고, 자신의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구원병을 부르려 했다.“보아하니, 경수 아저씨에게 전화해서 미래 마누라를 좀 단속하라고 말해야겠어요!”원이의 말을 들은 차설아는 조금 슬펐다.그녀는 몸을 웅크리고 앉아 녀석의 머리를 만지며 진지하게 설명했다.“원아, 사실 계속 하지 못한 말이 있어. 경수 아저씨랑 엄마는 진작에 헤어졌어. 하지만 너희 사이는 변함없어. 경수 아저씨는 여전히 예전처럼 우리 원이를 사랑하고 지켜줄 거야.”“헤어졌어요?”녀석은 눈을 껌벅이며 물었다.“그럼 경수 아저씨가 앞으로
원이는 진지하게 말했다.“결심했어요. 지금부터 엄마에게 좋은 남자를 찾아줘야겠어요. 엄마의 일을 분담하고, 엄마를 사랑하고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을요!”차설아는 원이의 말을 듣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참지 못하고 원이를 안고 뽀뽀 세례를 하고는 말했다.“원아, 엄마 걱정해줘서 정말 고마워. 하지만 엄마 일 그리 힘들지 않아. 원이가 엄마를 사랑해주고 지켜주면 그걸로 충분해. 엄마를 위해 남자를 찾아줄 필요는 없어!”“그건 다르죠!”원이는 작은 주먹을 불끈 쥐고 논리정연하게 차설아를 설득했다.“전 엄마의 아들이지 남편이 될 수 없어요. 엄마는 지금 남편이 부족하지, 아들이 부족한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엄마의 남편을 대신할 수 없어요.”“아...”차설아는 순간 반박할 수 없었다.배경윤은 옆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고 부추겼다.“그냥 원이한테 남편감 찾아달라고 해. 혹시 알아? 원이가 백마 탄 왕자님을 데려와서 자기 아빠로 삼을지? 그러면 두 사람 다 좋은 거 아니야?”“난 원이의 안목을 믿어. 분명 언니보다 좋을 거야. 아무리 못해도 그 쓰레기만 하겠어? 안 그래?”차설아는 원이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원아. 엄마 일생일대의 중요한 일은 너에게 맡길게. 잘 찾아봐. 엄마는 얼굴 많이 본다? 키 크고 잘생긴 남자를 제일 좋아해. 화이팅!”“걱정 마세요, 엄마. 원이도 얼굴 많이 봐요. 꼭 엄마에게 멋진 남편을 찾아줄게요!”두 모자는 주먹을 부딪쳤다.차설아는 어젯밤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머리가 좀 아팠다.원이에게 거실에서 애니메이션을 계속 보라 하고, 자신은 해장국을 끓이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배를 잘게 썰고 목이버섯을 불린 후 함께 뚝배기에 넣고 물을 부어 1시간 정도 천천히 끓이면 된다.배경윤도 따라서 부엌으로 들어가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는 싱크대에 기대어 차설아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언니, 사실 우리 오빠랑 헤어진 거, 맞는 선택인 것 같아.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이 없잖아. 꼭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다.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워지기 쉽다.배경윤은 차설아가 너무 힘들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서른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성도윤 같은 쓰레기로 인해 과부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며칠 후에 택이 또 공연한대. 같이 가서 스트레스 풀고 올까? 그리고 들어보니까, 그 보이 바 며칠에 한 번씩 꽃미남을 새로 뽑아 공연하고, 에이스 자리를 놓고 경쟁을 붙인대. 만약 택이가 질리면 다른 남자로 바꾸면 되지... 어쨌든 난 이미 깨우쳤어. 남자의 사고방식으로 남녀관계를 처리해야 해. 얼굴과 몸매만 보고, 마음은 절대 주지 않으면 우린 행복해질 수 있어. 안 그래?”차설아는 피식 웃었다. 배경윤의 진보적인 사고방식에 웃음을 터뜨렸다.“윤아, 너 전엔 이런 애 아니었잖아?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 사랑을 찾겠다고 노래를 불렀잖아. 절에서도 백년해로할 수 있는 사랑을 만나게 해달라고 빌던 네가 지금은 갑자기 큰 깨달음을 얻었네? 남자는 믿을 만한 것이 아니라는 걸... 너도 알게 된 거지?”“휴, 나도 그... 인간한테 배신당했잖아!”배경윤은 긴 한숨을 내쉬며 화가 치밀어 올랐다.“망할 강우혁! 그 인간의 뻔뻔한 연기에 나만 바보 됐잖아. 그 독약 설마 가품인가? 왜 안 죽은 거야? 총으로 한 방에 보내버렸어야 했는데. 마음이 약해지는 게 아니었어!”“됐어. 화내지 마. 그래도 잘못을 알고 죽음으로 사죄하려 했잖아. 아직 못 잊었으면 다시 기회를 줘. 난 괜찮으니까, 네가 마음 가는 대로 해.”차설아는 배경윤이 아직 그를 잊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기 때문이다.배경윤이 감정이 격해질수록, 미워할수록, 분개할수록, 강우혁이 아직 그녀의 마음속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하지만, 배경윤은 차설아에게 미안해서 남자와 헤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기회는 개뿔. 보이 바 같은 곳에서 매일 새로운 꽃미남들과 놀 수 있는
바로 요즘 비즈니스계에서 기세가 대단한 성진이었다.예전에는 이 녀석을 머리가 텅 비었고, 성가의 도련님이라는 신분만 믿고 유흥을 즐기는 미련한 인간으로 생각했었다.그날 이후, 차설아는 그에 대한 편견을 버렸다.재벌가에서 태어났고, 또 사악한 비즈니스 업계에서 오랫동안 종사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는 것은 미련하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이렇게 순한 양의 탈을 쓴 호랑이야말로, 상대하기 가장 어려운 것이다.차설아는 지금 이런 미치광이를 상대할 겨를이 없었고, 말 한마디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녀는 평소처럼 같은 시간에 금융 웹사이트를 열고 최신 금융 뉴스를 보았다.한때 재계의 보물로 여겨지던 성도윤이 지금은 매스컴의 가십거리가 되어 있었다.「성대 그룹 대표 성도윤, 사망으로 의심. 성대 그룹의 미래는 어디에?」「성도윤의 실종, 직원들의 변심, 텅 빈 회사!」「주식 팔고 튀어버린 성도윤, 투신자살한 주식 피해자들.」성도윤의 죽음이 외부에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러 가지 추측을 하였다. 성도윤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감히 말을 하지 못하고, 불만을 품었던 세력들이 기회를 틈타 온갖 비하와 루머를 퍼뜨렸다. 특히 발 빠른 언론사들은 성도윤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 신랄하고 풍자적인 보도는 루머와 섞여서 성도윤을 사생활이 문란하고 악랄하기 짝이 없는 쓰레기로 묘사하고 있었다.가장 화가 나는 것은 파파라치로 시작한 한 인터넷 뉴스 사이트였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성도윤이 남자와 즐겨 놀다 에이즈로 죽었고, 전처와 이혼한 것도 남다른 성적 취향 때문이라고 보도했다!“젠장. 대체 어느 언론에서 이렇게 보도하고 있는 거야?”차설아는 뉴스들을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한때 많은 사람들에게 신처럼 추앙받던 성도윤이 지금은 양심 없는 언론사에 의해 도 넘는 굴욕을 당하고 있었다.‘이렇게 함부로 지껄이다니, 성씨 가문이 무섭지도 않은가? 성도윤, 당신 세상에서 가장 오만하고 잘난 사람이잖아! 지금 이미
성진은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건방지게 웃었다.“한번 만나죠. 제가 천신 그룹의 자금 부족 문제를 해결해 드리죠.”차설아는 화면에 가득한 유언비어들을 보며 눈썹을 약간 찡그리고 말했다.“좋아요. 안 그래도 할 말이 있었어요!”두 사람은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캐주얼한 옷차림의 성진이 먼저 도착해있었다. 베이지색 스웨터에 살구색 바지를 입은 그는 전체적으로 나른한 분위기를 풍겼다. 평소 무거워 보이고 어둡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차설아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녹차 라떼 주문했어요. 제 기억이 맞는다면, 설아 씨가 좋아하는 라떼죠?”차설아는 조금 의외였고 의자를 빼 앉았다.독특한 모양의 커피 옆에는 작은 해바라기 꽃이 놓여있었다. 딱 보아도 그녀에게 줄 선물이었다.음료든, 꽃이든, 전부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다.보아하니... 차설아를 조사한 모양이다.“왜 저에 대해 조사했죠?”차설아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그는 아주 잘생긴 얼굴을 갖고 있었다. 차가운 성도윤보다 우울한 분위기의 성진이 좀 더 소탈하고 제멋대로 보였고, 표준적인 재벌가 도련님의 모습이었다.성진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웃는 듯 마는 듯 말했다.“그날 밤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전 설아 씨의 열렬한 팬이었으니, 이 정도는 따로 조사하지 않아도 당연히 알 수 있는 거예요. 이 꽃은...”남자는 마치 전류가 흐르듯 두 눈을 반짝이더니 그의 눈동자에는 차설아를 향한 소유욕으로 가득 찼다. “한 남자가 여자에게 꽃을 준다는 것은 그 여자에게 정식으로 직진하겠다는 걸 말해주죠... 설아 씨는 언젠가 저의 여자가 될 거예요.”“웩!”차설아는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무의식적으로 몸을 뒤로 피했고 시큰둥한 미소를 지었다.“아침부터 무슨 헛소리예요? 성도윤이 없으니, 진짜 당신에게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성대 그룹은 어르신께서 직접 일궈내신 회사예요. 어르신의 동의 없이는 당신은 아무것도 할
“하하, 에이즈요?”성진은 참지 못하고 바로 웃음을 터뜨리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대체 어느 언론사예요?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요. 그 오만방자한 도윤 형이 이걸 들었다면 제대로 눈을 감을 수 있겠어요?”차설아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아직까지 시치미를 떼요? 본인이 저지른 일에 대해 인정할 용기는 없나 보죠? 이런 저급한 루머는 딱 봐도 그쪽 스타일이잖아요.”“아, 설아 씨 마음속에 저는 이런 저속한 삼류 이미지인가요?”성진은 긴 한숨을 쉬더니 상처 입은 표정으로 변명했다.“믿든 말든 간에, 이 루머는 정말 제가 퍼뜨린 게 아니에요. 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하나의 루머만 퍼뜨렸어요. 절대 근거 없는 소문은 아니고, 적어도 진실일50%의 가능성은 있는 거죠.”차설아는 신비롭게 말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호기심이 생겨 물었다.“어떤 거요?”“혹시 못 봤어요? 소식통에 따르면 ‘성도윤의 전처와 성진은 원래 한 쌍의 커플이었다. 성도윤이 강제로 두 사람을 떼어놓았다. 지금 성진은 과거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돌아왔다...’라고 하네요.”성진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지더니 다소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솔직히 말해서 그 소식통이 바로 저예요.”차설아는 어이가 없었다.‘이 자식 미친 거 아니야? 이건 진실일 가능성이 50%가 아니라, 아예 0%잖아!’차설아의 속마음을 대충 알아챈 성진은 느릿느릿 설명했다.“50%의 가능성이라고만 한 이유는, 루머의 남자주인공인 제가 한때 당신을 짝사랑했던 것이 사실이고, 지금 설아 씨를 되찾기 위해 돌아왔다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죠. 엄밀히 말하면, 이건 루머를 퍼뜨린 게 아니라 사실을 세상에 공표하는 거죠!”“그만!”차설아는 화가 나서 눈꺼풀이 경련이 날 지경이었고, 손에 들고 있는 음료를 남자에게 쏟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녀가 만난 남자 중에 뻔뻔한 거로 따지면, 성진을 따라올 자가 없었다.“루머를 당신이 퍼뜨린 것이든 아니든, 그 말도 안 되는 루머들에 꽤나 힘을 실
“당신이 돈을 원하든, 명분을 위하든, 심지어 성대 그룹을 원하든, 난 모든 걸 내어줄 수 있어요... 돌아서서 날 보기만 하면 돼요!”성진은 눈을 반짝이며 말하고는 여자를 품에 안으려고 팔을 뻗었다.결과는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차설아는 큰 체구의 남자를 거뜬히 들어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그녀의 하이힐은 마치 얼음송곳처럼 남자의 가슴을 밟고 있었다. “성진 씨, 당신 참 미련하네요. 내가 얼굴과 신분 때문에 성도윤을 사랑했다고 생각해요?”차설아는 마치 불쌍한 벌레를 보듯 땅바닥에 있는 성진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내가 성도윤을 사랑한 이유는, 선량함, 정직함, 그리고 자신만의 원칙이 있기 때문이에요. 당신한테는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죠. 그 사람이 죽었다고 해도, 그 사람의 존재를 여전히 초월할 수 없어요!”“하하, 선량? 정직? 원칙?”성진은 대단한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형의 연기가 일품이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네요. 여전히 형에 대해 잘 모르고 있네요. 형은 철두철미한 냉혈 동물이에요. 성대 그룹 대표 자리를 위해 자신의 친형에게도 손을 쓸 수 있는 인간이죠. 지금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도 어쩌면 하늘이 내린 벌이겠죠?”“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또 헛소리를 지껄여요?”차설아는 눈이 차가워지더니 발에 힘을 더 세게 주고 물었다.“친형에게 손을 썼다는 게 무슨 말이죠?”성도윤은 자신의 친형을 아주 존경하고 사랑했다. 4년 전, 성도현이 의외의 사고를 당했을 때, 성도윤이 철저하게 망가진 모습을 차설아는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망할 성진, 헛소리를 해도 정도가 있지!’“안 믿을 줄 알았어요. 설아 씨가 만약 당시 총격 사건의 파일을 입수한다면 내가 지금 헛소리를 하고 있는지 아닌지 명확히 알 수 있을 거예요.”성진은 가슴이 짓밟혀 고통스러웠지만 여전히 흥분된 웃음을 지었다.“몇 년 동안 부부로 지낸 상대가 친혈육을 해칠 수 있는 악마라니. 쯧쯧... 생각만 해도 짜릿해!”“닥쳐!”차
차설아는 카페를 떠난 후 혼자 차를 운전하며 무작정 이 도시를 돌아다녔다.아무리 성진이 미친놈이고, 하는 말이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차설아는 괜히 기분이 우울해졌다.그리고 4년 전 성도현이 도대체 왜 죽었는지, 사고로 죽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 해코지를 당해 죽었는지 차설아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만약 다른 사람에 해코지를 당했다면 가해자는 누군지, 성도윤은 도대체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도 알 길이 없었다.차설아는 성도현 총살 사건의 상세한 정보를 알아내려면 뉴욕 경찰의 파일 시스템을 해킹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그 생각에 차설아는 방향을 돌리고 곧바로 아파트로 돌아갔다.아파트 안에서.배경윤은 잠시 일이 있어서 밖에 나갔고, 집에는 원이 혼자 있었다.녀석은 지난번에 혼난 뒤로 많이 얌전했다. 차설아의 허락 없이는 다시는 함부로 여기저기 다니지 못했다.너무 심심한 나머지 원이는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또 차설아의 컴퓨터를 켜더니 테트리스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집에 돌아온 차설아가 얌전히 혼자 놀고 있는 원이를 발견하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원이, 엄마 왔어. 엄마가 뭘 가져왔는지 한번 봐볼래?”손에 정교한 포장 박스를 들고 있는 차설아는 활짝 웃으며 컴퓨터 앞에서 열심히 스크린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원이를 향해 말했다.“엄마, 잠깐만요. 제가 일 끝내고 다시 얘기하죠.”원이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미간을 잔뜩 구겼는데 꽤 엄숙한 얼굴을 보였다.차설아가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녀석, 게임하고 애니메이션 보는 것 외에 네가 무슨 할 일이 있다고 그래?”차설아가 말하고는 정교한 포장 박스를 열었다. 그 안에는 딸기 케익이 들어 있었는데 원이가 가장 좋아하는 케이크였다.차설아는 녀석이 냄새만 맡고도 반갑게 달려올 줄 알았는데 녀석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컴퓨터에만 푹 빠져 차설아는 한숨을 푹 쉬었다.‘쯧쯧, 원이가 점점 게임에 빠지고 있는 것 같은데 방법을 좀 생각해야겠어!’“너 유치원 가고
야맹주를 확인한 배경윤은 신속히 잠수했다.“천천히 가!”사도현은 그녀가 걱정되어 조심하라고 말했다.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운 산호바다였지만 단면이 너무 높아 일부 산호는 쉽게 만졌다가 위험할 정도로 날카로웠다.하지만 이때, 동심의 세계로 들어간 배경윤은 마치 큰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흥분하면서 야맹주 위에 덮여 있던 산호초를 맨손으로 제거했다.그녀는 차설아가 평안 무사할수 있도록 이 야맹주를 선물하고 싶었다.“아!”배경윤이 야맹주에 손을 대려는 순간, 갑자기 산호초 틈새에서 은색 원형 물체가 튀어나와 그녀의 손등을 덥석 물었다.“바다뱀이야!”바다뱀이 배경윤을 물고 옆을 쓱 스쳐 자나가자 머릿속이 하얘진 사도현은 급히 잠수하여 그녀의 손을 잡았다.“봐봐...야맹주!”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배경윤은 그저 벌레에게 물렸다고 생각하면서 순진하게 사도현에게 야맹주를 자랑했다.“입 다물어!”사도현은 눈앞의 이 덜렁거리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그녀는 과연 이런 바다뱀이 독성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진찬영은 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긴 팔로 배경윤의 허리를 감싸고, 긴 다리를 쭉 뻗어 빠르게 수면으로 올라갔다.진찬영과 하늘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차례로 수면으로 떠올라 잠수 마스크를 벗었다.“여기 도와주세요! 보트를 준비해 주세요. 병원으로 가야겠어요!”사도현의 잘생긴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고, 잠긴 목소리로 육지에 있는 안전요원에게 외쳤다.“무슨 일이에요?”진찬영이 신속히 배경윤 곁으로 다가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아, 별거 아니에요. 그냥 벌레에게 물렸을 뿐이에요...”배경윤은 뱀에게 물린 손등을 들면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보였고, 오히려 사도현이 너무 예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일반적으로 뱀에게 물리면 독이 체내에 바로 퍼지지 않아 아직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그녀는 다시 야맹주를 들어 올리며,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다들 이것 좀 보세요, 제가
진찬영은 이런 중요한 기회를 사도현을 놓칠 수가 없었다.“저는 저의 파트너로 하늘 씨를 선택하고 싶어요.”진찬영이 사도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안전요원에게 이렇게 말하자 사도현과 배경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이 자식 뭐하는 거야. 포기라도 하는 거야?”사도현은 믿기지 않는지 진찬영을 째려보면서 말했다.“어떻게 하늘 씨를 선택할 수 있어요? 어쩌다 정면으로 승부를 겨룰 기회가 생겼는데 왜 포기하는 거예요?”진찬영이 사도현을 냉랭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지금은 잠깐 경윤 씨를 도현 씨한테 맡길게요. 꼭 잘 지켜주셔야 해요.”사도현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잠수복을 입고 하늘과 함께 바다로 뛰어드는 진찬영을 쳐다보았다.“왜 저래?”제대로 한판 붙어볼 줄 알았는데 도전장을 내민 사람은 자기뿐이라 갑자기 김이 새는 느낌에 불쾌하기만 했다.“갑시다. 파트너님.”사도현은 더는 생각하기도 싫어 멍한 표정의 배경윤한테 터벅터벅 걸어갔다.“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너랑 짝이 된 거야.”배경윤은 싫증난 표정을 하고있었다.진찬영과 손잡고 바다 경치를 즐길 줄 알았는데 말이다.그런데 아무리 봐도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도현한테 자기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아까 등산할 때까지만 해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는데 이 타이밍에 진찬영이 뒤로 물러설 줄 몰랐다.“난 다이빙 챔피언까지 땄던 사람이야. 기다려 봐. 오늘 야맹주를 꼭 찾아줄게.”사도현의 오늘 주요 목적은 야맹주를 찾는 것이었다.비록 전설일 뿐이었지만 만약 정말 찾아서 배경윤한테 준다면 이보다 더 의미 있고 로맨틱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사람들은 하나둘씩 바다에 뛰어들었다.하트섬은 물고기 떼, 가지각색의 산호초가 훤히 보일 정도로 수질이 좋았다. 더 깊이 내려가면 잭피시가 보이기도 했다.배경윤은 산소 호흡기를 꽉 깨물고 천천히 밑으로 향했다.파트너인 사도현은 그녀에게 무슨 사고라도 일어날까 봐 옆에 꼭 붙어있었다.진찬영은 몇 미터 밖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중이염을
이들은 어제저녁 약속한 대로 섬 근처에 있는 청정지역에서 스토클링하기로 했다.이때 감독 최빈이 말했다.“이 섬은 모양이 하트로 되어있어 하트섬이라고 불리는데 물이 맑아 산호초와 열대 물고기를 많이 볼 수 있을 거예요. 다들 오늘 운이 좋으면 하트섬 특유의 야맹주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보던 밤이면 빛이 나는 그런 야맹주요.”“정말 야맹주가 있는 거예요?”배경윤이 이번 스노클링이 점점 더 기대되었다.사실 그녀는 일찍 하트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섬 중앙에는 고가의 진주가 들어있는 천연 조개가 많다고 했다. 최빈이 언급한 야맹주는 그저 전설일 뿐이었다.전설 속에서는 야맹주를 찾은 사람이 평생 행복할 거라고 했다.신난 배경윤은 야맹주를 찾아서 차설아한테 선물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면 호객행위인지 몰랐다.“당연히 있죠. 수년 전에 섬에서 살던 분들이 발견했대요. 찾을 확률은 낮지만, 없는건 아니에요.”최빈이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했다.“그럼 뭘 기다려요. 저희 얼른 가요...”조급해 난 배경윤이 이때 대담하게 제의했다.“저희 스노클링하지 말고 아예 다이빙하는 거 어때요? 6미터 가까이 되는 그런 다이빙을 하면 야맹주를 찾을 수 있는 확율이 더욱 높지 않을까요?”“좋아요.”사도현이 손을 들면서 말했다.“스노클링을 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다이빙해야 얻고 싶은 걸 얻을 수 있죠.”“저도 좋아요. 저는 폐활량이 좋아서 물속에서 산소통이 없어도 몇 분씩이나 있을 수 있다고요.”하늘도 찬성의 의미도 손을 들었다.올림픽 금메달 수영선수로서 물을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오직 진찬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찬영 씨는 스노클링하실 거예요? 아니면 다이빙하실 거예요?”최빈이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진찬영에게 물었다.“저는 경윤 씨랑 같은 걸 할게요.”진찬영의 표정이 안 좋았던 것은 전에 중이염 수술을 받은 적 있어 수압을 견디지 못해 너무 깊게는 내려가지 못했다. 5미터
배경윤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머리를 긁적거렸다.“급할 필요 없어요. 아직 시간은 많아요. 어제저녁 하늘 씨를 선택한 것은 저랑 사도현 씨의 모순을 와해시키려고 그랬다는 거 알아요. 그런데 오늘 저녁은 경윤 씨 마음에 따라 선택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진찬영은 배경윤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계속 지금처럼 애매모호하지 말았으면 했다.이런 명분 없는 사이가 싫기도 했고, 사도현의 맹렬한 공격하에 배경윤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했다.그래서 하루빨리 결정짓고 싶었다.“알았어요.”배경윤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저녁은 제 마음에 따라 더는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오늘 아침 진찬영과 함께 잠깐 아침햇살을 만끽하면서 롤러코스터처럼 기복이 심한 생활이 아니라 평온한 생활을 기대했다.배경윤과 진찬영이 함께 하산할 때, 사도현도 마침 기상했다.사도현은 지금까지 스코어가 가장 높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배경윤과 방을 바꾸기로 하고 짐을 배경윤의 바다뷰 별장으로 옮기기로 했다.복식 별장에는 방이 네 개나 있었고, 모두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배경윤이 상냥하게 대해준다면 기꺼이 방을 하나 내어주겠다고 했다. 두 사람이 같은 지붕 아래에 있는 모습만 상상해도 기분이 좋았다.입이 귀에 걸려있을 때, 배경윤과 진찬영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웃으면서 걸어오는 것이다.“어디 갔었어요?”사도현의 안색은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제가 어딜 갔든 보고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린 채 냉랭하게 말했다.“그러다 저를 놓칠 수도 있어요. 지금 경윤 씨한테 방을 하나 내어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이죠...”사도현이 턱을 만지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지금, 이 상황에서 할수 있는 가장 진지한 말이었다.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유치하긴. 어차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디서 지내든 상관없어요. 도현 씨한테는 천장에 별이 가득 붙어있는 저 방이 어울릴 것 같
다음날.아침햇살이 비추는 섬은 몽롱하고 매력적이었다.아침 조깅하는 습관 있는 배경윤은 다들 자고 있을 때 이미 일어나 뛰고 있었다.산 주위를 따라 2킬로 정도 뛰면서 땀에 흠뻑 젖은 그녀는 개운한 느낌이었다.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에 서서 파란 바닷가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좋은 아침이에요.”배경윤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뒤돌아보았더니 진찬영이었다.“이런 우연이. 찬영 오빠도 조깅하러 오셨어요?”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드는 그녀의 얼굴은 자기도 모르게 발그레해졌다.어제저녁 진찬영이 대놓고 고백하는 바람에 두 사람 사이의 장벽이 무너져 이제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우연이 아니라...”진찬영은 오늘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살짝 가르마를 탄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어 청춘 로코물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잊지 못하는 킹카처럼 보였다.그는 난간을 잡고 옆모습으로 의미심장하게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번에 경윤 씨가 조깅하는 습관이 있다고 들어서... 일부러 만나려고 온 거예요.”배경윤과 이곳에서 만나려고 그녀보다 한 시간이나 더 일찍 일어난 것이다.그때는 아직 날도 밝지 않았던 때였다. 그는 혼자서 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와 하늘이 서서히 물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속으론 배경윤과 함께 이 경치를 보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배경윤이 흔들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제가 이 코스를 달릴지 어떻게 알았어요? 그러다 못 만나면요?”“만나지 못해도 아쉬운 대로 아름다운 경치를 봤잖아요.”진찬영은 고개돌려 전방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저는 어떤 일이든 결과를 바라지 않아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된 거예요. 그리고 결국엔 경윤 씨를 만났잖아요.”배경윤은 잘생긴 그의 옆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그렇다. 결과보다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되었다.이 부분에서는 진찬영과 생각이 똑
“에헴!”하늘을 신경 쓰지도 않던 사도현은 두 사람이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길래 질투심을 느꼈다.하늘도 그제야 선을 넘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바로 입을 닫으면서 자세를 고쳐잡았다.“죄송해요. 경윤 씨, 저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다른 사람을 선택해 보세요.”“그게 뭐 어때서요? 어차피 저희 서로 선택하는 과정이잖아요. 하늘 씨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과 셋이 함께 스노클링하면 되잖아요. 둘이든 셋이든 저는 상관없어요.”배경윤이 웃으면서 말했다.그녀는 하늘이 컨트롤하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제일 안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진찬영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고 사도현도 어쩔 수가 없었다.“그래요? 경윤 씨는 정말 내일 아침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과 함께 스노클링할 수 있는 거예요?”하늘은 억울한 강아지처럼 순진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럼요. 저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에요. 3각 구도는 제일 안정적이니까요.”배경윤이 익살스럽게 말했다.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입이 자기 말을 듣지 않았다.“그래요. 그러면 내일 경윤 씨, 저, 그리고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 세 명이 함께 스노클링하는 거예요. 마음이 변하면 안 돼요.”“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빠지는 일이 없을 거예요. 제가 빠지면 평생 짝을 찾지 못할 거예요.”배경윤은 하늘에 대고 진지하게 맹세했다.이때 하늘이 진지하게 말했다.“사실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은 사도현 씨에요. 그리고 오늘 모든 사람 앞에서 사실대로 말했고요.”사도현이 눈썹을 움찔하더니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희 내일 봐요.”‘왜 이렇게 된 거지?’배경윤은 흐뭇한 표정의 사도현을 보면서 그가 일부러 함정을 파놓았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바로 이때, 진찬영이 입을 열었다.“3각 구도가 안정적이긴 하지만 재미가 없잖아요. 저도 끼워주시면 안 돼요?”진찬영은 사도현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사도현을 쳐다보았다.“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은 배경윤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 다부진 몸매에 끌려 그대를 쭉 지켜보게 되었어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대의 모습을 보면서 심장이 떨려왔어요. 자신감이 넘치는 그대가 유독 빛나 보였거든요. 그대는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하늘은 배경윤이 쓴 편지를 천천히 읽으면서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았다. 남성 참가자 중에서 진찬영이 텔레비전에 가장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진찬영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앉아 있었다. 사도현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었고 당장이라도 한 대 때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첫인상 1위가 누구냐고 물으면 그대라고 하고 싶어요. 하늘 씨, 앞으로 우리 잘 지내봐요. 하늘 씨랑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요. 하늘 씨의 마음도 궁금해요. 단둘이 얘기 나누고 싶어요.”편지를 다 읽은 하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늘은 부끄러워하면서 머리를 긁적였고 배경윤을 쳐다보면서 물었다.“경윤 씨, 언제부터 저한테 호감이 생긴 거예요?”하늘을 포함한 게스트들은 전부 두 눈을 크게 뜨고 배경윤을 쳐다보았다.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배경윤은 사도현, 진찬영이 아닌 뜬금없는 하늘한테 고백했던 것이다.[지금 사람 마음 갖고 장난하는 거야? 거짓말하지 마. 누구한테 마음이 있는지 다 보이는데 왜 저러는 거야?][이거 대본 맞지? 대본의 냄새를 맡았어. 제작진한테 너무 실망이야.][대본이든 말든 나는 사도현과 배경윤이 이어지길 기도할 거야. 두 사람 진짜 잘 어울리잖아. 이러다가 진짜 이어져서 결혼할 수도 있어.][결혼이라니, 너무 앞서간 거 아니야? 사도현이 혼자 짝사랑하는 것 같아. 배경윤은 진찬영을 더 좋아한다고!]네티즌은 댓글 수백 개씩 달면서 열렬하게 토론했다. 진찬영의 평온한 얼굴에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사도현도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사도현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내가 열렬하게 구애했는데도 하늘 씨한테 졌어요. 정말 아쉬워요.”“사도현 씨, 제 말 좀 들어봐요. 경윤 씨가 장난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래요. 저는 오늘 경윤 씨랑
배경윤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진찬영은 배경윤이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동안 꾸준하게 좋아했던 연예인이기도 했다.배경윤은 그동안 진찬영과 지내면서 연예인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매력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열정적인 팬에서부터 진찬영을 좋아하는 여자가 되었다.가끔 진찬영과 손을 잡고 천천히 늙어가는 평화로운 삶을 그리기도 했었다.진찬영은 자신을 향해 뻗은 배경윤의 손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불쾌함을 전부 씻어버리고 손을 잡으려고 했었다.그런데 이때 사도현이 갑자기 나타나서 배경윤의 손을 잡았다.“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밤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있으니 아무도 빠지면 안 된다고 했어요.”말을 마친 사도현은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고는 씩 웃었다. 그리고 배경윤을 데리고 게스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이 손 안 놔? 누구 마음대로 내 손을 덥석 잡는 거야? 때리기 전에 놔줘.”배경윤은 살기가 넘치는 눈으로 사도현을 쳐다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 사도현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었다.사도현은 진찬영과 배경윤이 한 발짝 더 가까이 가려고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훼방했다.“내가 잡고 싶어서 잡은 줄 알아? 제작진이 너를 데리고 오라고 했어.”사도현은 게스트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배경윤을 데리고 왔다. 그러고는 사회자 최빈을 향해 말했다.“다 모인 것 같으니 시작하죠.”최빈은 뒤쪽에 서 있는 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찬영 씨, 얼른 이쪽으로 오세요. 곧 고백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은 매일 밤에 게스트들이 모여 앉아 호감이 있는 사람한테 진심이 담긴 편지를 써야 했다. 다 쓴 편지는 추첨함에 넣고 제작진이 지목한 게스트가 나와서 뽑은 편지를 읽으면 되었다.낯부끄러운 시간이었지만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게스트들의 마음이 어디로 향했는지 아주 궁금했다.마음을 편지에 담아 공개하기에
배경윤은 초가집의 뒷문으로 나온 뒤에 일부러 바닷가를 돌아서 바비큐 파티가 열린 곳으로 향했다. 게스트들은 배경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반가워했다.“경윤 언니, 오셨어요? 언니가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경윤 언니가 와서 너무 기뻐요.”장유빈이 머무는 숙소는 배경윤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장유빈은 바비큐 파티에 같이 참가하자고 했지만 배경윤은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못내 아쉬웠던 장유빈은 배경윤을 발견하고는 신나서 벌떡 일어났다.“모두 참가했는데 저만 빠지면 그렇잖아요. 저만 유별난 것도 아니고요. 아무튼 늦게 와서 죄송해요.”배경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이제라도 와줘서 고마워요. 경윤 씨, 이것 좀 봐요. 찬영 오빠가 경윤 씨를 위해서 쉬지 않고 고기만 구웠어요. 경윤 씨가 고기를 그렇게 좋아한다더라고요.”소수민은 불판에 올려진 고기를 보면서 부러운 어조로 말했다.“같은 여자라도 어떤 남자를 만나는지에 따라 달라요. 저희는 먹고 싶은 걸 구워주는 사람이 없어서 직접 구웠어요. 그런데 경윤 씨가 고기를 좋아하니까 찬영 오빠가 양념 고기, 불닭 소스 고기, 허니 고기를 준비했대요. 먹음직스러워서 침이 저절로 고였어요.”배경윤은 진찬영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한편으로 고마웠고 다른 한편으로 미안했다.“찬영 오빠, 고기를 굽느라 고생 많았어요.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돼요. 제가 오빠를 위해서 뭐라도 할게요.”배경윤은 진찬영의 옆으로 걸어가서 같이 고기를 굽고 양념을 발랐다.“조심해요!”진찬영은 튀어 오르는 숯불을 막아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숯불은 그대로 진찬영의 손에 튀었다.“찬영 오빠, 괜찮아요? 이 고귀한 손으로 왜 막은 거예요! 흉이 지면 안 되니까 얼른 가서 약부터 발라요.”소수민은 입을 틀어막고 기겁하더니 이내 소리를 질렀다.“찬영 오빠, 저...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오빠가 다쳤어요.”깜짝 놀란 배경윤은 어쩔 줄 몰라 했다.“괜찮아요. 덴 것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