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수는 경찰서 밖에서 한참을 기다렸지만 임채원을 보지 못했다.인내심이 바닥난 그는 경찰관을 찾아가 물었고, 그녀는 이미 풀려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젠장!”배경수는 미간을 찌푸리던, 곧바로 이 상황을 차설아에게 알렸다.“미안, 보스. 내가 소홀했어. 교활한 임채원이 내가 여기 매복하고 있는 걸 짐작하고 다른 출구로 나간 것 같아.”“알겠어. 내가 다른 방법을 더 생각해 볼게.”차설아는 지금 아파트 컴퓨터 앞에 앉아 임채원의 최근 동선을 추적하려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임채원이 어느 호텔에서 붙잡혔다는 것을 경찰관을 통해 들었다.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임채원은 마치 친아들처럼 원이를 데리고 나가서 맛있는 것을 먹고, 쇼핑하고 즐겁게 놀았다.가장 화가 나는 것은, 영상 속의 원이는 임채원의 손을 잡고, 마치 친엄마를 대하듯이 기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게 어디 유괴당한 불쌍한 아이의 모습이란 말인가?“아, 미치겠네. 혈압 올라...”차설아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스크린에 들어가 아이를 마구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이것 좀 봐. 자기 엄마를 화병에 걸리게 하는 이 꼬마가 바로 내 아들이야. 우리가 조마조마하면서 걱정하고 있는데, 이 자식은 다른 여자 손을 잡고 해맑게 웃고 있어. 불효자가 따로 없다니까!”옆에 앉아서 같이 화면을 보고 있던 배경윤은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평소 도도하고 차가운 원이한테 이런 모습이 있는 줄 몰랐네? 역시 간식과 장난감의 매력이 친엄마보다 큰 모양...”환하게 웃던 배경윤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고,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영상 속에서, 그녀가 미치게 사랑하는 남자친구 강우혁이 임채원 방의 문을 두드렸기 때문이다.차설아는 얼른 컴퓨터 화면을 끄고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됐어, 더 이상 찾기도 귀찮아. 그 자식이 얼마나 약삭빠른데, 임채원을 경찰서에 보낸 걸 보면 아마 별일 없을 거야. 기껏 놀고 나면 돌아오겠지, 뭐.”배경윤은 벅차오른 감정을 참으며 애써
배경윤은 깊은 죄책감에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고, 차설아의 손을 잡고 자신의 몸을 때렸다. 죽음으로 잘못을 사죄하지 못하는 것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그게 무슨 소리야? 이게 왜 네 탓이야. 나쁜 건 강우혁이야.”차설아는 부드럽게 배경윤의 눈물을 닦아주며, 마치 어머니처럼 타일렀다.“이제 알겠지?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존재야. 앞으로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남자를 만나. 아니면 어디 팔려 가도 모르겠어!”배경윤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알았어. 남자를 가까이하면 평생 불행해져. 강우혁 이 새끼 죽이고, 바로 머리 밀고 절에 들어갈 거야!”차설아는 어리숙한 배경윤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일단 죽이지는 말자. 지금 임채원도 사라졌고, 강우혁은 심부름꾼이니 원이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을 거야.”차설아는 반드시 그 불효자를 잡아 와야 했다. 더 지체하면 친엄마를 버리고 새엄마를 만들지도 모른다.배경윤이 강우혁에게 전화를 걸어 죄를 물으려는데, 마침 강우혁이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하하, 간도 크네? 강 닥터. 감히 나한테 전화를 해?”배경윤은 화가 나서 온몸을 떨며, 또 이를 갈며 말했다.“이미 알았나 봐. 시간 있어? 만나자. 너한테 모든 걸 털어놓을게.”“좋아! 뭐라고 지껄이는지 들어봐야겠어!”두 사람은 만날 장소를 정했다.전화를 끊은 배경윤은 미친 듯이 방안을 뒤졌다.“뭐 찾아?”차설아가 호기심에 물었다.“총. 오빠가 호신용으로 쓰라고 준 총이 있어. 평소 장난감으로 갖고 놀았는데 사용할 날이 있을 줄 몰랐네!”배경윤은 마침내 서재의 궤짝에서 여성용 권총을 발견하고 총구를 닦으며 차갑게 웃었다.“원이만 찾으면 이 총으로 그 잡놈을 한 방에 날려버릴 거야. 감히 배씨 가문의 여자를 건드려?”옆에서 보고 있던 차설아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그녀가 아는 배경윤은 그렇게 모진 사람이 아니었다.배경윤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너무 약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받아도, 그 사람을 완전히 미
싸움이 점점 커지자 주위에 사람들이 점점 많이 몰렸다.차설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곳에 아무 자리나 찾아 앉았고 느긋하게 다리를 꼬았다.강우혁이 반항하기만 한다면 그녀는 배경윤의 흑기사로 그에게 죽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삶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려고’ 했다.하지만 강우혁이 보인 행동은 차설아를 놀라게 했다.배경윤의 따귀를 네댓 번 맞았는데도 미간을 구기지 않고 여전히 애틋한 얼굴로 배경윤을 바라봤다.“윤아, 한번 안아보면 안 돼?”그의 양쪽 뺨에는 또렷한 손바닥 자국이 보였다.하지만 그는 아무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듯 팔을 벌리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품에 안고 싶었다.“누굴 안으려고 그래? 쓰레기야!”배경윤은 더 화가 나 또 두 손으로 그의 뺨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손바닥마저 찌릿찌릿 저리는 것 같았다.주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보다 못해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이 여자 손찌검이 심하네. 법도가 무섭지도 않은가 봐. 아무리 남자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 막 때려도 되는 거야? 내 여자 친구가 나한테 이러면 난 바로 헤어지자고 할 것 같아.”“저 남자는 맞아도 싸. 저렇게 맞고도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하다니, 쯧쯧, 한심하군!”“폐미 다 어디 갔어? 왜 이때는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 여자가 남자를 때리고 있잖아. 이거 가정 폭력 아니야?”배경윤은 원래도 짜증이 났는데 이제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는 대상이 되니 화가 치밀어 올라 주위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렀다.“많이 한가하나요? 말을 안 하면 죽어요? 다 꺼져요, 저 사람처럼 쥐어패기 전에.”하지만 사람들이 조용해지기는커녕 반대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다.“잘생긴 총각, 점잖아 보이는구먼. 저 여자 말고 자기에게 어울리는 훨씬 좋은 여자 찾아야지...”심지어 어떤 젊은 여자애가 강우혁에게 다가가더니 그의 팔을 확 잡고는 열정적으로 말했다.“오빠, 여자 친구가 저렇게 무섭게 구는데 오빠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저 사람이랑 헤어지고 나랑 사귀는
그녀는 지금 화가 나는 대신,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그렇게 죽고 싶어? 그럼 그 소원을 들어주지!”그녀는 차가운 눈빛을 보이더니 당장이라도 그의 목을 틀어버려 속은 한을 풀고 싶었다.하지만... 끝내 그렇게 할 수 없었다.“너랑 쓸데없는 말을 더 하고 싶지 않아. 당장 원이를 내놔. 아니면 앞으로 네 얼굴을 다시는 보지 않을 거야. 나를 찾아오지도 마!”강우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나 때려죽인다고 해도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는 말해줄 수 없어. 상대는 너무나도 위험한 사람이거든. 너랑 설아 씨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만약 내가 너에게 아이의 위치를 알려준다면 너도 분명 위험해질 거야. 나도 별다른 선택이 없다는 걸 이해해 줘.”“강우혁!”배경윤은 분노가 끓어올라 발로 그를 세게 걷어찼다.“원이가 설아 언니에게도, 나에게도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몰라서 그래?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 전에 했던 일에 후회를 느낀다면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걸 다 나에게 말해. 내가 널 죽이고 싶게 만들지 말라고!”강우혁은 고통이 몰려오는 배를 움켜쥐며 괴로운 표정을 보였다.부드럽고 영원히 눈을 반짝이던 예전의 모습과는 달리 지금 그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고였고, 매우 슬퍼 보였다.그는 다시 두 팔을 벌리며 거의 애원하듯이 말했다.“윤아, 날 안아줘. 응?”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강우혁을 때려도 혼내도 위협해도 소용이 없어 배경윤은 어쩔 수 없이 전략을 바꾸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안아주면 솔직하게 말해줄 거야?”강우혁이 흠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안아주면 모든 걸 말해줄게.”“그래, 그럼 한 번 안자.”배경윤이 두 팔을 벌리고는 강우혁과 포옹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런 그가 너무 징그럽다고 생각했다.‘이 나쁜 새끼가 나를 속이고도 여기서 나를 사랑한 척을 하고 있어. 정말 징그러워 죽겠네. 원이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면 진작 이 x끼를 죽였을 텐데 말이야.’“윤아, 그거 알아? 나는 너를 진
강우혁의 몸은 이미 많이 허약해졌다.그는 비틀거리더니 머리를 배경윤의 어깨에 기댔다.강우혁은 자기가 너무나도 큰 잘못을 저질렀고, 배경윤과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알아 죽을 결심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경윤의 얼굴을 보고 그녀를 안아보고 싶었다.그는 배경윤과 만남을 약속하기 전에 독극물을 복용했는데 그 독이 이제 퍼진 모양이다.“경윤아, 내가 이 꼴이 된 건 다 내가 자초한 거야. 많은 걸 후회하지만 널 알게 된 건 전혀 후회하지 않아. 네 품에 죽을 수 있다니 여한이 없네...”강우혁이 더듬거리며 말했다.그리고 그는 있는 힘껏 배경윤을 꼭 끌어안았는데 조금이라도 그녀의 온기를 더 느끼고 싶었다.배경윤은 눈시울을 붉히더니 차가운 얼굴로 남자를 향해 말했다.“강우혁, 정말 온갖 수작을 다 부리네. 이번에는 뭘 하려고 그래? 나한테 고육지책을 펼치려는 거야? 네 말을 절대 믿지 않을 거라고!”“셋까지 센다. 당장 원이의 행방을 말해. 아니면 나 가만히 안 있을 거야. 하나, 둘...”차설아는 그들과 조금 멀리 떨어져 있어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전혀 몰랐다.배경윤은 한참 동안 강우혁을 때리더니, 두 사람은 또 안으면서 눈물을 훌쩍였고, 얼기설기 복잡하게 얽혀 있어 절대 떼어낼 수 없을 것 같았다.이를 보고도 차설아는 서운하거나 화가 나지 않았다.강우혁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정말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배경윤에게 진심을 다한다면 그녀도 두 사람을 축복할 것이다.한 사람을 이성 잃게 만들고, 원칙을 어기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니 말이다.사람들은 분명 사랑의 결과가 좋지 않을 걸 알면서도, 옆에서 다른 사람이 아무리 말린다고 해도 사랑에 빠지게 된다.차설아는 심지어 성도윤이 아직 살아있으면 그에게 다시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사람 일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세상 사람들이 말린다고 해도 차설아가 자기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다시 성도윤에게 사랑에 빠질지 누가 알겠는가?‘성도윤...
‘역시,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성도윤 그 자식은 죽지 않았던 거야. 누구보다도 목숨이 끈질긴 사람이 쉽게 죽을 리가 있겠어?’차설아는 종업원에게서 성도윤이 옆문으로 자리를 떴다는 말을 듣고 다급하게 옆문으로 가서 그를 뒤쫓으려고 했다...“악, 여기 사람 죽었어요, 살려주세요!”누군가가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은 강우혁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레스토랑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겁을 먹어 뿔뿔이 흩어졌고, 간이 큰 사람들은 강우혁에게 몰려들었다.“강우혁, 이 쓰레기 자식. 죽은 척하지 마. 나 안 믿을 테니까. 경고하는데 당장 일어나!”배경윤은 공포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떨리는 두 손으로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흔들었다.차설아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는 어쩔 수 없이 옆문으로 돌아왔다.“무슨 일 있었어?”차설아가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나오고는 미간을 구기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누군가가 배경윤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이 여자가 범인이에요. 아까 저 남자분을 계속 때리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맞더니 이제 죽었나 보네요.”“맞아요, 저 사람이에요! 얼른 경찰에 신고해서 저 사람 잡아요, 절대 도망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요!”“아, 아니야. 절대 그럴 리가 없어!”배경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어린아이처럼 쩔쩔매고 있었다.“이 쓰레기 자식이 겉으론 허약해 보여도 정말 그런 줄 알아? 어떻게 따귀 몇 번 맞고 죽어?”“강우혁, 연기하지 마. 이러면 재밌다고 생각하는 거야? 얼른 일어나라고!”그걸 지켜본 사람들은 분노가 끓어올라 배경윤에게 따지기 시작했다.“연기하는 사람은 당신 아니에요? 당신이 그러고도 사람이에요? 사람 죽을 정도까지 때렸는데도 가만 안 두려고 하는 거예요?”“발뺌하지 마요, 여기 있는 사람 다 증인이니까. 곧 경찰이 도착할 거예요.”사람들의 말을 들은 차설아는 머리가 지끈거려 차가운 얼굴을 보이더니 소리를 질렀다.“다 그만하세요!”그녀는 워낙 강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기에 주위는 곧바로 조용해졌
옆문은 바닷가와 연결되어 있었다.바닷바람이 살살 불어오더니 파도가 잔잔하게 일렁였다.이미 늦은 밤이었기 때문에 바닷가는 매우 어두웠다.게다가 사람도 많지 않았는데 바닷가에서 산책하고 있는 커플들밖에 없었다.차설아는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면서 예쁜 두 눈을 크게 뜨고 레이더처럼 바닷가를 수색하기 시작했다.바닷바람에 그녀의 머리카락은 헝클어졌다. 그녀가 입고 있던 하얀 드레스도 치맛자락을 날리면서 그녀의 가늘고 긴 종아리를 드러냈다.그녀는 어둠 속에서 춤을 추는 요정처럼 매혹적으로 보였다...차설아는 한참 동안 찾았지만 별 수확이 없어 그녀의 얼굴에는 점점 실망의 기색이 드러났다.‘성도윤, 이 빌어먹을 놈, 나랑 숨바꼭질을 하는 거야? 정말 유치하네.’그녀는 갑자기 성도윤을 찾고 있는 자신이 너무 바보처럼 느껴져 더는 그를 찾지 않으려고 했다.‘어차피 살아있으면 언젠간 모습을 드러내겠지.’그렇게 생각하며 차설아는 허리를 굽혀 종아리에 묻은 모래를 툭툭 털어내고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면서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그녀가 일어설 때, 갑자기 익숙한 모습의 누군가를 발견했다.허리를 곧게 편 그는 차설아와 100m 남짓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그윽한 얼굴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저녁이라 어둡고 잘 안 보인다고 하지만 그는 분명 훤칠하고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는 성도윤과 똑같은 모습이었다.특히 그의 옆모습으로 완벽한 그의 이목구비가 보였는데... 성도윤이 아니라면 누구란 말인가?실망으로 가득했던 차설아는 두 눈을 다시 밝게 빛나고 있었다.“성도윤!”차설아는 저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하지만 성도윤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 멈춰 서기는커녕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차설아는 흠칫하더니 승부욕이 불타올라 그를 쫓았다.“성도윤, 왜 뛰는 거야? 거기 서! ”그녀의 다리가 나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뛰면 안 되었다.하지만 성도윤이 코앞에 있는데 어떻게 그냥 놓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보다 골치 아픈
차설아가 입을 삐죽 내밀고는 곧바로 성지훈을 놓아줬다.그리고 몸을 일으켜 옷매무새를 정리하고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러니까 아까 그 블루 칵테일을 네가 주문했다는 거야?”성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고 오히려 느긋하게 모래에 기대앉더니 두 팔로 몸을 받치고는 고개를 들어 차설아에게 물었다.“왜요? 도윤이 형이 특별히 만들어준 거라고 생각했어요?”차설아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힐끔 보고는 어둡고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내다보며 도도한 공작새처럼 붉은 입술을 꼭 다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지훈이 설명했다.“전에 도윤이 형이 특별히 나를 위해 이 술을 만들어준 적이 있었어요. 한참 동안 조르고서야 레시피를 알려주더라고요. 이 칵테일은 당신이 만들어낸 거라고 했어요. 레시피를 알고 나니 조금 신기했어요. 보드카의 강렬함과 민트의 청량함이 만났는데 가장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 오히려 신기한 맛을 낸다니... 꼭 당신과 도윤이 형 두 사람 사이 같았어요.”차설아가 입을 삐죽 내밀더니 콧방귀를 뀌었다.“너무 멀리 간 거 아니야. 난 그때 그냥 대충 만든 거라고.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 네가 오늘 주문하지 않았더라면 난 이 레시피를 까먹었을지도 몰라.”“왜 아직도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만약 이 레시피를 정말 까먹었다면 아까처럼 미친 듯이 쫓아오지도 않았겠죠.”“그래서 일부러 나 놀렸다는 거 인정하는 거야?”차설아가 미간을 구기더니 성지훈을 째려보며 물었다.“내가 바보 같아? 너에게 당하는 모습을 보니까 재밌어? 역시 성씨 가문 남자들은 정상인이 하나도 없어. 성도윤은 차갑기만 하지, 성진은 미친놈이지. 너는 유치한 어린애야!”방금 헐레벌떡 쫓아오며 소리를 지르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차설아는 얼굴을 붉혔다.그녀는 성지훈에게 화가 났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왜 성도윤은 옆모습만으로도 이렇게 나에게 창피를 줄 수 있는 거야?’성지훈은 더는 변명하지 않고 옆자리를 툭툭 치며 차설아에게 말했다.“지난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