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이 점점 커지자 주위에 사람들이 점점 많이 몰렸다.차설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곳에 아무 자리나 찾아 앉았고 느긋하게 다리를 꼬았다.강우혁이 반항하기만 한다면 그녀는 배경윤의 흑기사로 그에게 죽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삶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려고’ 했다.하지만 강우혁이 보인 행동은 차설아를 놀라게 했다.배경윤의 따귀를 네댓 번 맞았는데도 미간을 구기지 않고 여전히 애틋한 얼굴로 배경윤을 바라봤다.“윤아, 한번 안아보면 안 돼?”그의 양쪽 뺨에는 또렷한 손바닥 자국이 보였다.하지만 그는 아무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듯 팔을 벌리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품에 안고 싶었다.“누굴 안으려고 그래? 쓰레기야!”배경윤은 더 화가 나 또 두 손으로 그의 뺨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손바닥마저 찌릿찌릿 저리는 것 같았다.주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보다 못해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이 여자 손찌검이 심하네. 법도가 무섭지도 않은가 봐. 아무리 남자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 막 때려도 되는 거야? 내 여자 친구가 나한테 이러면 난 바로 헤어지자고 할 것 같아.”“저 남자는 맞아도 싸. 저렇게 맞고도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하다니, 쯧쯧, 한심하군!”“폐미 다 어디 갔어? 왜 이때는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 여자가 남자를 때리고 있잖아. 이거 가정 폭력 아니야?”배경윤은 원래도 짜증이 났는데 이제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는 대상이 되니 화가 치밀어 올라 주위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렀다.“많이 한가하나요? 말을 안 하면 죽어요? 다 꺼져요, 저 사람처럼 쥐어패기 전에.”하지만 사람들이 조용해지기는커녕 반대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다.“잘생긴 총각, 점잖아 보이는구먼. 저 여자 말고 자기에게 어울리는 훨씬 좋은 여자 찾아야지...”심지어 어떤 젊은 여자애가 강우혁에게 다가가더니 그의 팔을 확 잡고는 열정적으로 말했다.“오빠, 여자 친구가 저렇게 무섭게 구는데 오빠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저 사람이랑 헤어지고 나랑 사귀는
그녀는 지금 화가 나는 대신,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그렇게 죽고 싶어? 그럼 그 소원을 들어주지!”그녀는 차가운 눈빛을 보이더니 당장이라도 그의 목을 틀어버려 속은 한을 풀고 싶었다.하지만... 끝내 그렇게 할 수 없었다.“너랑 쓸데없는 말을 더 하고 싶지 않아. 당장 원이를 내놔. 아니면 앞으로 네 얼굴을 다시는 보지 않을 거야. 나를 찾아오지도 마!”강우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나 때려죽인다고 해도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는 말해줄 수 없어. 상대는 너무나도 위험한 사람이거든. 너랑 설아 씨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만약 내가 너에게 아이의 위치를 알려준다면 너도 분명 위험해질 거야. 나도 별다른 선택이 없다는 걸 이해해 줘.”“강우혁!”배경윤은 분노가 끓어올라 발로 그를 세게 걷어찼다.“원이가 설아 언니에게도, 나에게도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몰라서 그래?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 전에 했던 일에 후회를 느낀다면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걸 다 나에게 말해. 내가 널 죽이고 싶게 만들지 말라고!”강우혁은 고통이 몰려오는 배를 움켜쥐며 괴로운 표정을 보였다.부드럽고 영원히 눈을 반짝이던 예전의 모습과는 달리 지금 그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고였고, 매우 슬퍼 보였다.그는 다시 두 팔을 벌리며 거의 애원하듯이 말했다.“윤아, 날 안아줘. 응?”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강우혁을 때려도 혼내도 위협해도 소용이 없어 배경윤은 어쩔 수 없이 전략을 바꾸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안아주면 솔직하게 말해줄 거야?”강우혁이 흠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안아주면 모든 걸 말해줄게.”“그래, 그럼 한 번 안자.”배경윤이 두 팔을 벌리고는 강우혁과 포옹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런 그가 너무 징그럽다고 생각했다.‘이 나쁜 새끼가 나를 속이고도 여기서 나를 사랑한 척을 하고 있어. 정말 징그러워 죽겠네. 원이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면 진작 이 x끼를 죽였을 텐데 말이야.’“윤아, 그거 알아? 나는 너를 진
강우혁의 몸은 이미 많이 허약해졌다.그는 비틀거리더니 머리를 배경윤의 어깨에 기댔다.강우혁은 자기가 너무나도 큰 잘못을 저질렀고, 배경윤과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알아 죽을 결심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경윤의 얼굴을 보고 그녀를 안아보고 싶었다.그는 배경윤과 만남을 약속하기 전에 독극물을 복용했는데 그 독이 이제 퍼진 모양이다.“경윤아, 내가 이 꼴이 된 건 다 내가 자초한 거야. 많은 걸 후회하지만 널 알게 된 건 전혀 후회하지 않아. 네 품에 죽을 수 있다니 여한이 없네...”강우혁이 더듬거리며 말했다.그리고 그는 있는 힘껏 배경윤을 꼭 끌어안았는데 조금이라도 그녀의 온기를 더 느끼고 싶었다.배경윤은 눈시울을 붉히더니 차가운 얼굴로 남자를 향해 말했다.“강우혁, 정말 온갖 수작을 다 부리네. 이번에는 뭘 하려고 그래? 나한테 고육지책을 펼치려는 거야? 네 말을 절대 믿지 않을 거라고!”“셋까지 센다. 당장 원이의 행방을 말해. 아니면 나 가만히 안 있을 거야. 하나, 둘...”차설아는 그들과 조금 멀리 떨어져 있어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전혀 몰랐다.배경윤은 한참 동안 강우혁을 때리더니, 두 사람은 또 안으면서 눈물을 훌쩍였고, 얼기설기 복잡하게 얽혀 있어 절대 떼어낼 수 없을 것 같았다.이를 보고도 차설아는 서운하거나 화가 나지 않았다.강우혁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정말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배경윤에게 진심을 다한다면 그녀도 두 사람을 축복할 것이다.한 사람을 이성 잃게 만들고, 원칙을 어기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니 말이다.사람들은 분명 사랑의 결과가 좋지 않을 걸 알면서도, 옆에서 다른 사람이 아무리 말린다고 해도 사랑에 빠지게 된다.차설아는 심지어 성도윤이 아직 살아있으면 그에게 다시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사람 일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세상 사람들이 말린다고 해도 차설아가 자기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다시 성도윤에게 사랑에 빠질지 누가 알겠는가?‘성도윤...
‘역시,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성도윤 그 자식은 죽지 않았던 거야. 누구보다도 목숨이 끈질긴 사람이 쉽게 죽을 리가 있겠어?’차설아는 종업원에게서 성도윤이 옆문으로 자리를 떴다는 말을 듣고 다급하게 옆문으로 가서 그를 뒤쫓으려고 했다...“악, 여기 사람 죽었어요, 살려주세요!”누군가가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은 강우혁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레스토랑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겁을 먹어 뿔뿔이 흩어졌고, 간이 큰 사람들은 강우혁에게 몰려들었다.“강우혁, 이 쓰레기 자식. 죽은 척하지 마. 나 안 믿을 테니까. 경고하는데 당장 일어나!”배경윤은 공포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떨리는 두 손으로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흔들었다.차설아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는 어쩔 수 없이 옆문으로 돌아왔다.“무슨 일 있었어?”차설아가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나오고는 미간을 구기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누군가가 배경윤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이 여자가 범인이에요. 아까 저 남자분을 계속 때리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맞더니 이제 죽었나 보네요.”“맞아요, 저 사람이에요! 얼른 경찰에 신고해서 저 사람 잡아요, 절대 도망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요!”“아, 아니야. 절대 그럴 리가 없어!”배경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어린아이처럼 쩔쩔매고 있었다.“이 쓰레기 자식이 겉으론 허약해 보여도 정말 그런 줄 알아? 어떻게 따귀 몇 번 맞고 죽어?”“강우혁, 연기하지 마. 이러면 재밌다고 생각하는 거야? 얼른 일어나라고!”그걸 지켜본 사람들은 분노가 끓어올라 배경윤에게 따지기 시작했다.“연기하는 사람은 당신 아니에요? 당신이 그러고도 사람이에요? 사람 죽을 정도까지 때렸는데도 가만 안 두려고 하는 거예요?”“발뺌하지 마요, 여기 있는 사람 다 증인이니까. 곧 경찰이 도착할 거예요.”사람들의 말을 들은 차설아는 머리가 지끈거려 차가운 얼굴을 보이더니 소리를 질렀다.“다 그만하세요!”그녀는 워낙 강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기에 주위는 곧바로 조용해졌
옆문은 바닷가와 연결되어 있었다.바닷바람이 살살 불어오더니 파도가 잔잔하게 일렁였다.이미 늦은 밤이었기 때문에 바닷가는 매우 어두웠다.게다가 사람도 많지 않았는데 바닷가에서 산책하고 있는 커플들밖에 없었다.차설아는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면서 예쁜 두 눈을 크게 뜨고 레이더처럼 바닷가를 수색하기 시작했다.바닷바람에 그녀의 머리카락은 헝클어졌다. 그녀가 입고 있던 하얀 드레스도 치맛자락을 날리면서 그녀의 가늘고 긴 종아리를 드러냈다.그녀는 어둠 속에서 춤을 추는 요정처럼 매혹적으로 보였다...차설아는 한참 동안 찾았지만 별 수확이 없어 그녀의 얼굴에는 점점 실망의 기색이 드러났다.‘성도윤, 이 빌어먹을 놈, 나랑 숨바꼭질을 하는 거야? 정말 유치하네.’그녀는 갑자기 성도윤을 찾고 있는 자신이 너무 바보처럼 느껴져 더는 그를 찾지 않으려고 했다.‘어차피 살아있으면 언젠간 모습을 드러내겠지.’그렇게 생각하며 차설아는 허리를 굽혀 종아리에 묻은 모래를 툭툭 털어내고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면서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그녀가 일어설 때, 갑자기 익숙한 모습의 누군가를 발견했다.허리를 곧게 편 그는 차설아와 100m 남짓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그윽한 얼굴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저녁이라 어둡고 잘 안 보인다고 하지만 그는 분명 훤칠하고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는 성도윤과 똑같은 모습이었다.특히 그의 옆모습으로 완벽한 그의 이목구비가 보였는데... 성도윤이 아니라면 누구란 말인가?실망으로 가득했던 차설아는 두 눈을 다시 밝게 빛나고 있었다.“성도윤!”차설아는 저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하지만 성도윤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 멈춰 서기는커녕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차설아는 흠칫하더니 승부욕이 불타올라 그를 쫓았다.“성도윤, 왜 뛰는 거야? 거기 서! ”그녀의 다리가 나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뛰면 안 되었다.하지만 성도윤이 코앞에 있는데 어떻게 그냥 놓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보다 골치 아픈
차설아가 입을 삐죽 내밀고는 곧바로 성지훈을 놓아줬다.그리고 몸을 일으켜 옷매무새를 정리하고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러니까 아까 그 블루 칵테일을 네가 주문했다는 거야?”성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고 오히려 느긋하게 모래에 기대앉더니 두 팔로 몸을 받치고는 고개를 들어 차설아에게 물었다.“왜요? 도윤이 형이 특별히 만들어준 거라고 생각했어요?”차설아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힐끔 보고는 어둡고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내다보며 도도한 공작새처럼 붉은 입술을 꼭 다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지훈이 설명했다.“전에 도윤이 형이 특별히 나를 위해 이 술을 만들어준 적이 있었어요. 한참 동안 조르고서야 레시피를 알려주더라고요. 이 칵테일은 당신이 만들어낸 거라고 했어요. 레시피를 알고 나니 조금 신기했어요. 보드카의 강렬함과 민트의 청량함이 만났는데 가장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 오히려 신기한 맛을 낸다니... 꼭 당신과 도윤이 형 두 사람 사이 같았어요.”차설아가 입을 삐죽 내밀더니 콧방귀를 뀌었다.“너무 멀리 간 거 아니야. 난 그때 그냥 대충 만든 거라고.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 네가 오늘 주문하지 않았더라면 난 이 레시피를 까먹었을지도 몰라.”“왜 아직도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만약 이 레시피를 정말 까먹었다면 아까처럼 미친 듯이 쫓아오지도 않았겠죠.”“그래서 일부러 나 놀렸다는 거 인정하는 거야?”차설아가 미간을 구기더니 성지훈을 째려보며 물었다.“내가 바보 같아? 너에게 당하는 모습을 보니까 재밌어? 역시 성씨 가문 남자들은 정상인이 하나도 없어. 성도윤은 차갑기만 하지, 성진은 미친놈이지. 너는 유치한 어린애야!”방금 헐레벌떡 쫓아오며 소리를 지르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차설아는 얼굴을 붉혔다.그녀는 성지훈에게 화가 났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왜 성도윤은 옆모습만으로도 이렇게 나에게 창피를 줄 수 있는 거야?’성지훈은 더는 변명하지 않고 옆자리를 툭툭 치며 차설아에게 말했다.“지난번
“나?”차설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성지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그녀는 지금 성도윤과 접점이 없었고, 성씨 가문과는 더더욱 연관이 없었다. 그런데 성지훈이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다니, 그녀를 너무 착하게만 생각하는 거 아닌가?성지훈은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난 반년 전에 KCL 그룹의 수석 연구개발사 자리를 사임하고, 동시에 수중의 일부 지분을 매각했어요. 지금의 KCL 그룹은 주인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죠. 신임 대표도 기술직 출신이지만 저보다 사업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해요. 그 사람은 KCL 그룹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뒤바꾸어놨고, 난 이미 사임했기에 지금 KCL 그룹에서 별 힘이 없어요...”차설아가 눈썹을 들썩이더니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기업은 하나의 왕국과 같은 거야. 왕국이 아무리 번창한다고 해도 결국 세대교체를 겪어야 하지.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야?”“나는 구속받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그들의 싸움에 가세할 생각 없었어요. 그래서 KCL 그룹이 어떻게 되든 나도 상관이 없었고요. 그동안 나와 도윤이 형의 관계로 KCL 그룹은 성대 그룹과 많은 비즈니스를 했고, 서로의 이익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파트너가 되었죠. 하지만 도윤이 형에게 이런 변고 생겼고, 신임 대표는 변화를 원하기 때문에 두 회사의 협력이 앞으로 영향을 받을까 봐 걱정이 돼요...”성지훈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걱정 어린 얼굴로 말했다.“성대 그룹은 그동안 도윤이 형 덕분에 버티고 있었어요. 하지만 하필 이 시각에 일이 터지고 말았죠. 성대 그룹은 곧 KCL 그룹과 G6 칩에 관한 프로젝트를 시작할 텐데 이건 전체 하이 테크를 뒤바꿀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에요. 절대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요. 아니면 성대 그룹은 큰 타격을 받을 거예요.”“그래서?”차설아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성대 그룹이 타격을 받든 안 받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내가 뭘 도울 수 있다고 그래?”“큰 도움이 될 수 있죠, 당신이 원한다면요!”성지훈이 의미
성지훈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에 성대 그룹은 큰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게다가 중요한 시기에 성도윤조차 생사를 알 수 없는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만큼 성도윤은 살아있다고 해도 몸이 성한 상황은 아닐 것이다.‘하지만 그래도 나랑 무슨 상관이야?’흥망성쇠는 불변의 진리이다. 성대 그룹이 오랫동안 업계 일인자 자리를 차지해 왔으니 이제 추락하는 것도 당연했다.그녀가 성지훈의 제의에 동의한다고 해도, 성도윤을 대신해 성대 그룹은 안정시킨다고 해도 성대 그룹이 추락하는 걸 막을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도대체 누가 감히 성씨 가문의 후계자에게 연거푸 두 번이나 손을 썼는지 궁금하기도 했다.그 생각에 차설아는 컴퓨터를 켜고 그해 성도현이 살해당한 뉴스를 찾기 시작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성도현에 대한 뉴스는 거의 없다시피 적었다.아마도 성씨 가문에서 큰 도련님의 죽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일부러 이에 관한 뉴스를 모두 지웠을 것이다.그 사건은 5년 전, 뉴욕에서 일어났다.차설아는 어쩌면 현지 경찰서에 이 사건에 관한 상세한 기록을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현지 경찰서의 파일 시스템을 해킹하려고 했다.뉴욕 경찰의 파일 시스템은 세계적으로도 복잡하기로 유명했다. 가장 원시적인 2진법 암호를 사용했는데, 마침 차설아가 제일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했다.그해 어느 글로벌 해킹대회에서 그녀는 어려워하던 2진법 때문에 마침 2진법을 정통한 바람에 졌었다.‘설마 또 바람을 불러야 하나? 하지만 그놈을 건드리면 한동안 잠잠할 날이 없잖아. 요새 겨우 잠잠해져 나를 귀찮게 하지 않던데, 지금 먼저 그를 찾아간다면 고생을 사서 하는 거나 다름없어!’고민 끝에 차설아는 스스로 암호를 풀어보기로 했다.그녀는 긴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한 번 또 한 번 해킹하려고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결국 그녀는 해킹 시도를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현지 경찰의 주의를 끌었고, 그녀의 IP 주소 또한 경찰에게 드러났다.“젠장!”차설아는 안전을 위해 먼
야맹주를 확인한 배경윤은 신속히 잠수했다.“천천히 가!”사도현은 그녀가 걱정되어 조심하라고 말했다.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운 산호바다였지만 단면이 너무 높아 일부 산호는 쉽게 만졌다가 위험할 정도로 날카로웠다.하지만 이때, 동심의 세계로 들어간 배경윤은 마치 큰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흥분하면서 야맹주 위에 덮여 있던 산호초를 맨손으로 제거했다.그녀는 차설아가 평안 무사할수 있도록 이 야맹주를 선물하고 싶었다.“아!”배경윤이 야맹주에 손을 대려는 순간, 갑자기 산호초 틈새에서 은색 원형 물체가 튀어나와 그녀의 손등을 덥석 물었다.“바다뱀이야!”바다뱀이 배경윤을 물고 옆을 쓱 스쳐 자나가자 머릿속이 하얘진 사도현은 급히 잠수하여 그녀의 손을 잡았다.“봐봐...야맹주!”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배경윤은 그저 벌레에게 물렸다고 생각하면서 순진하게 사도현에게 야맹주를 자랑했다.“입 다물어!”사도현은 눈앞의 이 덜렁거리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그녀는 과연 이런 바다뱀이 독성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진찬영은 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긴 팔로 배경윤의 허리를 감싸고, 긴 다리를 쭉 뻗어 빠르게 수면으로 올라갔다.진찬영과 하늘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차례로 수면으로 떠올라 잠수 마스크를 벗었다.“여기 도와주세요! 보트를 준비해 주세요. 병원으로 가야겠어요!”사도현의 잘생긴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고, 잠긴 목소리로 육지에 있는 안전요원에게 외쳤다.“무슨 일이에요?”진찬영이 신속히 배경윤 곁으로 다가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아, 별거 아니에요. 그냥 벌레에게 물렸을 뿐이에요...”배경윤은 뱀에게 물린 손등을 들면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보였고, 오히려 사도현이 너무 예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일반적으로 뱀에게 물리면 독이 체내에 바로 퍼지지 않아 아직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그녀는 다시 야맹주를 들어 올리며,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다들 이것 좀 보세요, 제가
진찬영은 이런 중요한 기회를 사도현을 놓칠 수가 없었다.“저는 저의 파트너로 하늘 씨를 선택하고 싶어요.”진찬영이 사도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안전요원에게 이렇게 말하자 사도현과 배경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이 자식 뭐하는 거야. 포기라도 하는 거야?”사도현은 믿기지 않는지 진찬영을 째려보면서 말했다.“어떻게 하늘 씨를 선택할 수 있어요? 어쩌다 정면으로 승부를 겨룰 기회가 생겼는데 왜 포기하는 거예요?”진찬영이 사도현을 냉랭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지금은 잠깐 경윤 씨를 도현 씨한테 맡길게요. 꼭 잘 지켜주셔야 해요.”사도현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잠수복을 입고 하늘과 함께 바다로 뛰어드는 진찬영을 쳐다보았다.“왜 저래?”제대로 한판 붙어볼 줄 알았는데 도전장을 내민 사람은 자기뿐이라 갑자기 김이 새는 느낌에 불쾌하기만 했다.“갑시다. 파트너님.”사도현은 더는 생각하기도 싫어 멍한 표정의 배경윤한테 터벅터벅 걸어갔다.“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너랑 짝이 된 거야.”배경윤은 싫증난 표정을 하고있었다.진찬영과 손잡고 바다 경치를 즐길 줄 알았는데 말이다.그런데 아무리 봐도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도현한테 자기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아까 등산할 때까지만 해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는데 이 타이밍에 진찬영이 뒤로 물러설 줄 몰랐다.“난 다이빙 챔피언까지 땄던 사람이야. 기다려 봐. 오늘 야맹주를 꼭 찾아줄게.”사도현의 오늘 주요 목적은 야맹주를 찾는 것이었다.비록 전설일 뿐이었지만 만약 정말 찾아서 배경윤한테 준다면 이보다 더 의미 있고 로맨틱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사람들은 하나둘씩 바다에 뛰어들었다.하트섬은 물고기 떼, 가지각색의 산호초가 훤히 보일 정도로 수질이 좋았다. 더 깊이 내려가면 잭피시가 보이기도 했다.배경윤은 산소 호흡기를 꽉 깨물고 천천히 밑으로 향했다.파트너인 사도현은 그녀에게 무슨 사고라도 일어날까 봐 옆에 꼭 붙어있었다.진찬영은 몇 미터 밖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중이염을
이들은 어제저녁 약속한 대로 섬 근처에 있는 청정지역에서 스토클링하기로 했다.이때 감독 최빈이 말했다.“이 섬은 모양이 하트로 되어있어 하트섬이라고 불리는데 물이 맑아 산호초와 열대 물고기를 많이 볼 수 있을 거예요. 다들 오늘 운이 좋으면 하트섬 특유의 야맹주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보던 밤이면 빛이 나는 그런 야맹주요.”“정말 야맹주가 있는 거예요?”배경윤이 이번 스노클링이 점점 더 기대되었다.사실 그녀는 일찍 하트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섬 중앙에는 고가의 진주가 들어있는 천연 조개가 많다고 했다. 최빈이 언급한 야맹주는 그저 전설일 뿐이었다.전설 속에서는 야맹주를 찾은 사람이 평생 행복할 거라고 했다.신난 배경윤은 야맹주를 찾아서 차설아한테 선물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면 호객행위인지 몰랐다.“당연히 있죠. 수년 전에 섬에서 살던 분들이 발견했대요. 찾을 확률은 낮지만, 없는건 아니에요.”최빈이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했다.“그럼 뭘 기다려요. 저희 얼른 가요...”조급해 난 배경윤이 이때 대담하게 제의했다.“저희 스노클링하지 말고 아예 다이빙하는 거 어때요? 6미터 가까이 되는 그런 다이빙을 하면 야맹주를 찾을 수 있는 확율이 더욱 높지 않을까요?”“좋아요.”사도현이 손을 들면서 말했다.“스노클링을 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다이빙해야 얻고 싶은 걸 얻을 수 있죠.”“저도 좋아요. 저는 폐활량이 좋아서 물속에서 산소통이 없어도 몇 분씩이나 있을 수 있다고요.”하늘도 찬성의 의미도 손을 들었다.올림픽 금메달 수영선수로서 물을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오직 진찬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찬영 씨는 스노클링하실 거예요? 아니면 다이빙하실 거예요?”최빈이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진찬영에게 물었다.“저는 경윤 씨랑 같은 걸 할게요.”진찬영의 표정이 안 좋았던 것은 전에 중이염 수술을 받은 적 있어 수압을 견디지 못해 너무 깊게는 내려가지 못했다. 5미터
배경윤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머리를 긁적거렸다.“급할 필요 없어요. 아직 시간은 많아요. 어제저녁 하늘 씨를 선택한 것은 저랑 사도현 씨의 모순을 와해시키려고 그랬다는 거 알아요. 그런데 오늘 저녁은 경윤 씨 마음에 따라 선택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진찬영은 배경윤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계속 지금처럼 애매모호하지 말았으면 했다.이런 명분 없는 사이가 싫기도 했고, 사도현의 맹렬한 공격하에 배경윤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했다.그래서 하루빨리 결정짓고 싶었다.“알았어요.”배경윤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저녁은 제 마음에 따라 더는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오늘 아침 진찬영과 함께 잠깐 아침햇살을 만끽하면서 롤러코스터처럼 기복이 심한 생활이 아니라 평온한 생활을 기대했다.배경윤과 진찬영이 함께 하산할 때, 사도현도 마침 기상했다.사도현은 지금까지 스코어가 가장 높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배경윤과 방을 바꾸기로 하고 짐을 배경윤의 바다뷰 별장으로 옮기기로 했다.복식 별장에는 방이 네 개나 있었고, 모두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배경윤이 상냥하게 대해준다면 기꺼이 방을 하나 내어주겠다고 했다. 두 사람이 같은 지붕 아래에 있는 모습만 상상해도 기분이 좋았다.입이 귀에 걸려있을 때, 배경윤과 진찬영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웃으면서 걸어오는 것이다.“어디 갔었어요?”사도현의 안색은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제가 어딜 갔든 보고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린 채 냉랭하게 말했다.“그러다 저를 놓칠 수도 있어요. 지금 경윤 씨한테 방을 하나 내어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이죠...”사도현이 턱을 만지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지금, 이 상황에서 할수 있는 가장 진지한 말이었다.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유치하긴. 어차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디서 지내든 상관없어요. 도현 씨한테는 천장에 별이 가득 붙어있는 저 방이 어울릴 것 같
다음날.아침햇살이 비추는 섬은 몽롱하고 매력적이었다.아침 조깅하는 습관 있는 배경윤은 다들 자고 있을 때 이미 일어나 뛰고 있었다.산 주위를 따라 2킬로 정도 뛰면서 땀에 흠뻑 젖은 그녀는 개운한 느낌이었다.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에 서서 파란 바닷가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좋은 아침이에요.”배경윤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뒤돌아보았더니 진찬영이었다.“이런 우연이. 찬영 오빠도 조깅하러 오셨어요?”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드는 그녀의 얼굴은 자기도 모르게 발그레해졌다.어제저녁 진찬영이 대놓고 고백하는 바람에 두 사람 사이의 장벽이 무너져 이제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우연이 아니라...”진찬영은 오늘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살짝 가르마를 탄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어 청춘 로코물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잊지 못하는 킹카처럼 보였다.그는 난간을 잡고 옆모습으로 의미심장하게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번에 경윤 씨가 조깅하는 습관이 있다고 들어서... 일부러 만나려고 온 거예요.”배경윤과 이곳에서 만나려고 그녀보다 한 시간이나 더 일찍 일어난 것이다.그때는 아직 날도 밝지 않았던 때였다. 그는 혼자서 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와 하늘이 서서히 물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속으론 배경윤과 함께 이 경치를 보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배경윤이 흔들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제가 이 코스를 달릴지 어떻게 알았어요? 그러다 못 만나면요?”“만나지 못해도 아쉬운 대로 아름다운 경치를 봤잖아요.”진찬영은 고개돌려 전방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저는 어떤 일이든 결과를 바라지 않아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된 거예요. 그리고 결국엔 경윤 씨를 만났잖아요.”배경윤은 잘생긴 그의 옆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그렇다. 결과보다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되었다.이 부분에서는 진찬영과 생각이 똑
“에헴!”하늘을 신경 쓰지도 않던 사도현은 두 사람이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길래 질투심을 느꼈다.하늘도 그제야 선을 넘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바로 입을 닫으면서 자세를 고쳐잡았다.“죄송해요. 경윤 씨, 저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다른 사람을 선택해 보세요.”“그게 뭐 어때서요? 어차피 저희 서로 선택하는 과정이잖아요. 하늘 씨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과 셋이 함께 스노클링하면 되잖아요. 둘이든 셋이든 저는 상관없어요.”배경윤이 웃으면서 말했다.그녀는 하늘이 컨트롤하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제일 안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진찬영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고 사도현도 어쩔 수가 없었다.“그래요? 경윤 씨는 정말 내일 아침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과 함께 스노클링할 수 있는 거예요?”하늘은 억울한 강아지처럼 순진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럼요. 저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에요. 3각 구도는 제일 안정적이니까요.”배경윤이 익살스럽게 말했다.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입이 자기 말을 듣지 않았다.“그래요. 그러면 내일 경윤 씨, 저, 그리고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 세 명이 함께 스노클링하는 거예요. 마음이 변하면 안 돼요.”“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빠지는 일이 없을 거예요. 제가 빠지면 평생 짝을 찾지 못할 거예요.”배경윤은 하늘에 대고 진지하게 맹세했다.이때 하늘이 진지하게 말했다.“사실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은 사도현 씨에요. 그리고 오늘 모든 사람 앞에서 사실대로 말했고요.”사도현이 눈썹을 움찔하더니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희 내일 봐요.”‘왜 이렇게 된 거지?’배경윤은 흐뭇한 표정의 사도현을 보면서 그가 일부러 함정을 파놓았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바로 이때, 진찬영이 입을 열었다.“3각 구도가 안정적이긴 하지만 재미가 없잖아요. 저도 끼워주시면 안 돼요?”진찬영은 사도현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사도현을 쳐다보았다.“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은 배경윤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 다부진 몸매에 끌려 그대를 쭉 지켜보게 되었어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대의 모습을 보면서 심장이 떨려왔어요. 자신감이 넘치는 그대가 유독 빛나 보였거든요. 그대는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하늘은 배경윤이 쓴 편지를 천천히 읽으면서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았다. 남성 참가자 중에서 진찬영이 텔레비전에 가장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진찬영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앉아 있었다. 사도현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었고 당장이라도 한 대 때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첫인상 1위가 누구냐고 물으면 그대라고 하고 싶어요. 하늘 씨, 앞으로 우리 잘 지내봐요. 하늘 씨랑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요. 하늘 씨의 마음도 궁금해요. 단둘이 얘기 나누고 싶어요.”편지를 다 읽은 하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늘은 부끄러워하면서 머리를 긁적였고 배경윤을 쳐다보면서 물었다.“경윤 씨, 언제부터 저한테 호감이 생긴 거예요?”하늘을 포함한 게스트들은 전부 두 눈을 크게 뜨고 배경윤을 쳐다보았다.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배경윤은 사도현, 진찬영이 아닌 뜬금없는 하늘한테 고백했던 것이다.[지금 사람 마음 갖고 장난하는 거야? 거짓말하지 마. 누구한테 마음이 있는지 다 보이는데 왜 저러는 거야?][이거 대본 맞지? 대본의 냄새를 맡았어. 제작진한테 너무 실망이야.][대본이든 말든 나는 사도현과 배경윤이 이어지길 기도할 거야. 두 사람 진짜 잘 어울리잖아. 이러다가 진짜 이어져서 결혼할 수도 있어.][결혼이라니, 너무 앞서간 거 아니야? 사도현이 혼자 짝사랑하는 것 같아. 배경윤은 진찬영을 더 좋아한다고!]네티즌은 댓글 수백 개씩 달면서 열렬하게 토론했다. 진찬영의 평온한 얼굴에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사도현도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사도현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내가 열렬하게 구애했는데도 하늘 씨한테 졌어요. 정말 아쉬워요.”“사도현 씨, 제 말 좀 들어봐요. 경윤 씨가 장난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래요. 저는 오늘 경윤 씨랑
배경윤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진찬영은 배경윤이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동안 꾸준하게 좋아했던 연예인이기도 했다.배경윤은 그동안 진찬영과 지내면서 연예인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매력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열정적인 팬에서부터 진찬영을 좋아하는 여자가 되었다.가끔 진찬영과 손을 잡고 천천히 늙어가는 평화로운 삶을 그리기도 했었다.진찬영은 자신을 향해 뻗은 배경윤의 손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불쾌함을 전부 씻어버리고 손을 잡으려고 했었다.그런데 이때 사도현이 갑자기 나타나서 배경윤의 손을 잡았다.“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밤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있으니 아무도 빠지면 안 된다고 했어요.”말을 마친 사도현은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고는 씩 웃었다. 그리고 배경윤을 데리고 게스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이 손 안 놔? 누구 마음대로 내 손을 덥석 잡는 거야? 때리기 전에 놔줘.”배경윤은 살기가 넘치는 눈으로 사도현을 쳐다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 사도현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었다.사도현은 진찬영과 배경윤이 한 발짝 더 가까이 가려고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훼방했다.“내가 잡고 싶어서 잡은 줄 알아? 제작진이 너를 데리고 오라고 했어.”사도현은 게스트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배경윤을 데리고 왔다. 그러고는 사회자 최빈을 향해 말했다.“다 모인 것 같으니 시작하죠.”최빈은 뒤쪽에 서 있는 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찬영 씨, 얼른 이쪽으로 오세요. 곧 고백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은 매일 밤에 게스트들이 모여 앉아 호감이 있는 사람한테 진심이 담긴 편지를 써야 했다. 다 쓴 편지는 추첨함에 넣고 제작진이 지목한 게스트가 나와서 뽑은 편지를 읽으면 되었다.낯부끄러운 시간이었지만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게스트들의 마음이 어디로 향했는지 아주 궁금했다.마음을 편지에 담아 공개하기에
배경윤은 초가집의 뒷문으로 나온 뒤에 일부러 바닷가를 돌아서 바비큐 파티가 열린 곳으로 향했다. 게스트들은 배경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반가워했다.“경윤 언니, 오셨어요? 언니가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경윤 언니가 와서 너무 기뻐요.”장유빈이 머무는 숙소는 배경윤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장유빈은 바비큐 파티에 같이 참가하자고 했지만 배경윤은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못내 아쉬웠던 장유빈은 배경윤을 발견하고는 신나서 벌떡 일어났다.“모두 참가했는데 저만 빠지면 그렇잖아요. 저만 유별난 것도 아니고요. 아무튼 늦게 와서 죄송해요.”배경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이제라도 와줘서 고마워요. 경윤 씨, 이것 좀 봐요. 찬영 오빠가 경윤 씨를 위해서 쉬지 않고 고기만 구웠어요. 경윤 씨가 고기를 그렇게 좋아한다더라고요.”소수민은 불판에 올려진 고기를 보면서 부러운 어조로 말했다.“같은 여자라도 어떤 남자를 만나는지에 따라 달라요. 저희는 먹고 싶은 걸 구워주는 사람이 없어서 직접 구웠어요. 그런데 경윤 씨가 고기를 좋아하니까 찬영 오빠가 양념 고기, 불닭 소스 고기, 허니 고기를 준비했대요. 먹음직스러워서 침이 저절로 고였어요.”배경윤은 진찬영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한편으로 고마웠고 다른 한편으로 미안했다.“찬영 오빠, 고기를 굽느라 고생 많았어요.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돼요. 제가 오빠를 위해서 뭐라도 할게요.”배경윤은 진찬영의 옆으로 걸어가서 같이 고기를 굽고 양념을 발랐다.“조심해요!”진찬영은 튀어 오르는 숯불을 막아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숯불은 그대로 진찬영의 손에 튀었다.“찬영 오빠, 괜찮아요? 이 고귀한 손으로 왜 막은 거예요! 흉이 지면 안 되니까 얼른 가서 약부터 발라요.”소수민은 입을 틀어막고 기겁하더니 이내 소리를 질렀다.“찬영 오빠, 저...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오빠가 다쳤어요.”깜짝 놀란 배경윤은 어쩔 줄 몰라 했다.“괜찮아요. 덴 것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