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차설아는 어두운 달빛을 통해 남자의 넓은 뒷모습을 보고 의심했다.“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꾸물거리지 말고 업혀. 아니면 나 혼자 간다?”성도윤은 싸늘한 얼굴로 재촉했다.사실, 성도윤은 다친 자신의 다리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 꾸물거리다가 시간이 지체되면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알았어. 당신만 괜찮다면 나도 문제 될 것 없지!”차설아는 말을 마치고, 가느다란 팔로 남자의 목을 와락 끌어안고 그의 등에 엎드렸다.“꽉 잡아.”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당부하고 일어서려고 애썼다. 큰 체구는 그녀의 무게를 견뎌야 했기에 약간 흔들렸다.차설아는 숨을 참고 조용히 물었다.“진짜 괜찮은 거 맞아? 좀 힘들어 보이는데? 곧 쓰러질 것 같아.”“나... 괜찮아!”성도윤은 이를 악물며 힘겹게 말했다.왼쪽 다리의 뼈가 부러진 듯 걸을 때마다 뼈와 살이 날카로운 칼에 베인 듯 통증이 극에 달했다.그의 이마, 등, 손바닥은 온통 통증 때문에 식은땀이 흘렀다.하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고, 차설아를 알게 해서도 안 되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처형을 받는 것처럼 도로 방향으로 기어올랐다.“성도윤, 진짜 괜찮아? 왜 당신 몸이 떨리고 있는 것 같지?”차설아는 남자의 등에 엎드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조심스레 물었다.차설아는 남자의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자신이 걱정한다고 오해할까 봐 너무 많은 것을 캐묻지 못했다.“내가 당신처럼 연약한 줄 알아?”성도윤은 온갖 힘을 다 쏟아부으며 평온한 척했다.“아니다. 이렇게 무거우니 연약함은 아니지. 돼지 같은 미련함이지!”“헛소리하지 마. 나 50킬로도 안 된단 말이야. 당신이 너무 허약해서 그래. 여자를 업고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큰 키가 부끄럽지도 않아?”차설아는 화가 나서 성도윤을 두 주먹 내리쳤다.‘역시 내가 괜한 걱정을 했어. 성도윤 같은 철저한 이기주의자는 만약 자신이 다쳤으면 나 같은 거 신경 쓰지도 않지. 지금 상황에서 나보고 돼지
“응!”차설아도 순간 숫자들의 특수함을 알아채지 못했고, 자세히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곧 연결되었다.“경수야, 난데, 지금 시간 있어? XX묘림으로 좀 와줘.”전화기 너머의 배경수는 차설아를 찾느라 골머리를 앓다가 하마터면 성가로 쳐들어갈 뻔했다. 지금 차설아의 전화를 받고 너무 격분해서 견딜 수 없었다.두 사람은 전화로 몇 마디 나누다가 성도윤이 참지 못하고 휴대폰을 낚아채 소리쳤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당장 오라고! 설아가 다쳤어!”이때서야 차설아는 성도윤의 손이 온통 피투성이라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순간 긴장하더니 다가가 물었다.“성도윤... 당신 왜 이렇게 피가 많이 나? 어디 다쳤어?”“나 괜찮아.”성도윤은 얼른 손을 거두었다.“괜찮긴 뭐가 괜찮아? 피가 이렇게 많은데? 대체 어디를 다친 거야? 빨리 말해!”차설아는 휴대폰의 전등을 켜고 남자의 몸 전체를 검사했다. 그의 왼쪽 다리가 이미 피로 젖었고, 뼈도 이미 어긋난 것을 발견했다.“다리가!”차설아는 입을 가리고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너무 충격적이었다. 부러진 다리로 그녀를 업고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지, 그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괜찮다니까, 보지 마!”성도윤은 다시 휴대폰을 낚아챘다.그는 자신의 낭패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여태까지 참았다. 그런데 지금 차설아가 보게 되었으니... 정말 창피해 죽을 것 같았다.“이 정도 상처면 다리가 부러졌을 수도 있어. 당장 고정해야 해, 아니면 다리를 못 쓰게 될 수도 있다고... 내가 당장 고정해줄게!”차설아는 두말없이 자신의 옷을 벗고, 성도윤의 부러진 다리를 간단히 처리하려고 했다.“악!”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다쳐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당신 다리야말로 처치가 필요해 보이는데?”성도윤은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여자의 다친 다리를 손바닥에 받친 다음 그녀의 옷을 가져다가 간단히 고정했다.“난 괜찮아. 지금 당신 상황이 나보
“휴, 그렇게 됐어. 일단 우리를 병원으로 데려가 줘!”차설아는 심하게 다친 성도윤의 다리를 보며, 배경수에게 더 설명할 겨를이 없었다.“그래!”배경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경수는 내키지 않았지만 의식을 잃은 성도윤을 업고 차에 태웠다.그는 빠른 속도로 근처의 병원으로 도착했고, 차설아를 차에서 안고 내려 초조한 얼굴로 도움을 요청했다.“선생님, 살려주세요!”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아직 누워 있는 성도윤을 바라보며, 배경수의 팔을 잡고 말했다.“도윤 씨 상태가 더 심각해. 일단 도윤 씨부터 치료해달라고 해!”배경수는 늘 차설아에게 고분고분했지만, 이번만은 그러지 않았고, 거의 백 미터 속도로 응급실에 달려갔다. 그는 고개를 숙여 품속의 여자를 보고 말했다.“보스, 내가 보스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건 맞지만, 나도 남자라는 걸 잊지 말아 줘. 나 보스가 생각하는 만큼 마음이 넓은 사람이 아니야. 저 자식을 병원에 데려온 것만으로 충분히 인정을 베풀었어. 더 이상은 못 해.”결국, 차설아가 먼저 수술실에 들어가 응급처치를 받았다.그녀는 뇌에 손상을 입었고, 오른쪽 다리가 골절되었다. 생명에 위험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만약을 대비해 24시간 관찰이 필요했다.24시간 후, 차설아는 관찰실에서 보통 병실로 옮겨졌고, 외부와 연락이 가능했다.그녀의 다리는 깁스를 했고, 병상에 고정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배경수는 맛있는 음식을 들고 걱정 가득한 얼굴로 차설아에게 걸어갔다.“보스, 좀 어때? 배고파? 하루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잖아. 일단 먹어.”차설아는 이미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지만, 먹을 기분이 없었다. 배경수의 팔을 잡고 긴장해서 말했다.“성도윤 어때? 다리는 괜찮아?”배경수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화제를 돌렸다.그는 죽 한 숟가락을 떠서 천천히 식혀 마치 아이를 달래듯 말했다.“보스, 영양가 좋은 해삼 죽이야. 상처 회복에 좋으니까, 따뜻할 때 먹어!”차설아는 그의 손을 밀치고 성도윤의 상황을 알고 싶어 강력한 태도로 말했다.“
“자기 다리가 다쳤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억지로 참으며 날 구덩이에서 도로까지 업고 나왔어. 만약 그 사람 다리에 문제라도 생긴다면 난 평생 이 빚을 갚을 수가 없어. 난 그 사람과 평생 얽힐까 봐 두려워서 묻고 있는 거야. 알아?”차설아는 배경수에게 자세히 설명했다.“뭐? 그 자식이... 보스를 업었다고?”배경수는 돌아서서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말도 안 돼. 다리를 그렇게 다쳐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텐데, 어떻게 보스를 업어. 난 못 믿어!”“나도 안 믿겨. 그것도 그렇게 냉혈하고 무자비한 이기적인 사람이. 하지만 사실이야.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난 아파서 죽거나 굶어 죽었을 거야...”차설아는 지금도 성도윤이 어둠 속에서 그녀를 업고 한 걸음 한 걸음 언덕을 오르던 모습을 떠올리며 마치 꿈만 같았다.그런 고통은 피를 나눈 형제라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하물며 차설아를 목 졸라 죽이고 싶어 하던 성도윤이 그런 행동을 했다니.“말도 안 돼. 그 다리로는 절대 불가능해!”배경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도저히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왜냐하면 성도윤의 부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배경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고통은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그러니까, 그 사람 상황이 어떤지, 다리가 어떻게 됐는지... 알려주면 안 돼?”차설아는 다시 한번 다그쳤다.배경수의 반응에 차설아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아직 몰라!”배경수는 심호흡을 하고 끝내 고백했다.“아직 수술 중이야. 상황이 복잡해서 보수적인 치료를 할지, 위험이 있는 치료를 할지, 전문가팀을 꾸려서 연구 중인데 아직 명확한 방안은 없다고 했어.”차설아는 순간 얼굴이 굳어지더니 물었다.“뭐가 보수적인 치료고, 뭐가 위험이 있는 치료야?”“보수적인 치료는 일단 다리부터 보존하고 다음 치료를 진행하는 건데, 그 자식 상황이 너무 심각해. 다리 신경이 여러 군데 끊어지고 일부 조직이 괴사해서 혈류가 원활하지 않아 제때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몸 전체에
배경수는 차설아가 우울해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말했다.“조급해하지 말고 우선 얌전히 누워 보스 몸부터 챙겨. 내가 바로 의사한테 가서 구체적인 상황을 물어볼게. 그 자식 명줄이 길어서 분명 아무 일도 없을 거야!”“그렇긴 하지. 명줄 하나는 대단한 사람이야. 물에 뛰어들어도, 불에 뛰어들어도 죽지 않는 사람인데 넘어졌다고 뭔 큰일이 있겠어?”차설아는 그제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배경수를 재촉했다.“여기 있지 말고 얼른 의사한테 가서 물어봐. 네가 안 가면 내가 간다?”“움직이지 마! 지금 갈게!”배경수가 일어나 떠나려다가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가 가져온 음식을 가리키며 말했다.“내가 올 때까지 저거 다 먹어. 자기 몸은 챙겨야지. 만약 보스가 굶어 죽으면 두 아이는 어떡해...”배경수가 떠난 후에도 차설아는 여전히 속이 타들어 갔고, 도저히 입맛이 없었다.만약 성도윤이 죽거나 한쪽 다리를 잃는다면, 여생을 얼마나 무거운 자책 속에서 살아갈지 그녀는 상상할 수 없었다.곧, 배경수가 병실로 돌아왔고, 잘생긴 얼굴은 어두웠다.“어때? 의사가 뭐래?”차설아가 다급하게 물었다.만약 지금 병상에 고정되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녀는 진작에 뛰어갔을 것이다.배경수는 대답 대신 한 입도 먹지 않은 죽을 보며 나무랐다.“내가 먼저 뭐 좀 먹으라고 했잖아. 오랫동안 굶고 또 큰 수술까지 했는데 아직 아무것도 안 먹었어? 정말 죽고 싶어?”“경수야, 화내지 마. 나 걱정하는 건 알겠는데 나 좀 이해해줘. 이렇게 큰일이 터졌잖아. 성도윤의 생사도 알 수 없고, 한쪽 다리를 잃을 수도 있는데 내가 어떻게 밥이 넘어가겠어?”차설아는 눈시울을 붉히며 목이 메었다.“빨리 말해줘. 의사가 최종 방안이 뭐라고 했어?”배경수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방금 전문가가 달려와서 다리를 절단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는 아니니 보수적인 치료 방안을 선택하고, 수술한 후 재활치료 잘 받으면 된대.”“진짜?”차설아는 반신반의했다.방금까지 상태가 심각해서 생
사실 성도윤의 상황은 그가 말한 것보다 더 심각했다. 다리의 괴사 조직이 너무 많아서 절단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생명까지 위험했다.“다 먹었어. 배부르다!”차설아는 배를 움켜쥐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배경수에게 물었다.“나 이 깁스 언제 풀 수 있는지, 언제 퇴원하는지 물어봤어?”“그건 보스 회복 속도에 달렸지. 빠르면 두 주일, 늦으면 수개월 걸려.”“그럼 몸조리를 잘해야겠네. 완쾌하고 퇴원하는 날에 정식으로 그 사람한테 감사 인사를 해야겠어.”배경수는 순간 당황하여 황급히 말했다.“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그 자식, 전에 보스한테 한 짓이 있지, 이걸로 죄를 갚는다고 생각해!”만약 진짜 성도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차설아는 견디지 못할 테니, 차라리 성도윤의 소식을 모르고 있는 것이 좋았다.“너 이 녀석, 속이 왜 그렇게 좁아? 다시 옛정이라도 되살아날까 봐 두려워?”차설아는 배경수의 어깨를 툭툭 치며 세 살배기 어린아이를 달래듯 말했다.“착한 동생아, 누나가 장담하는데, 세상 남자가 다 죽어도 나랑 그 사람은 절대 불가능해. 그런 걱정은 마음속 깊이 넣어둬!”차설아는 말하면서 배경수의 잘생긴 뺨을 쿡쿡 찔렀다.“이것 봐. 젖살이 튀어나올 정도로 화난 거야? 귀여워 죽겠네!”“알았어!”배경수는 고개를 끄덕였고,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아마 해안 전체에서 차설아만이 소문난 ‘해안의 악동’인 배경수를 어린애로 여길 것이다.배경수는 성도윤의 명줄이 길어, 이번 고비만 넘기만을 바랐다.배경수는 차설아가 잠든 것을 확인한 후, 또 성도윤이 있는 수술실로 달려가 상황을 살폈다.비록 성도윤은 그의 라이벌이고, 전에 차설아에게 잘해주지 않아 조금도 맘에 들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차설아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이고, 두 아이의 친아버지라는 것을 생각하면, 배경수는 그가 일찍 저세상으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비록 배경수는 차설아를 뼛속까지 사랑하고,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지만, 만약 언젠가 두 사람이 정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절대 불가능해!”배경수는 너무 놀라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았다.곧이어 간호사가 수술대를 밀고 수술실에서 나왔고, 커다란 남성의 몸이 흰 천으로 덮인 채 누워 있었다.“가족분 와서 보시겠어요?”의사는 얼굴이 창백한 배경수에게 말했다.“보지 않으시면 곧바로 영안실로 보내겠어요. 빠른 시일 내로 장례를 치르세요.”“저는...”배경수는 침을 삼키고, 일어서서 한번 보려고 했지만, 가혹한 현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안 보겠습니다.”그는 손을 내저으며 의기소침하게 고개를 숙였다.간호사는 수술대를 밀고 그의 앞을 지나 영안실로 향했다.성도윤이 죽었다!성도윤이 죽었다!성도윤이 죽었다!이 소식은 마치 저주처럼 배경수의 머릿속에서 반복되어,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그의 신경을 곤두세웠다.‘그 대단하고 잘난 인간이 이렇게 갔다고? 앙숙인 나도 받아들일 수 없는데, 보스는 어떻게 받아들이겠어...’배경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안돼, 절대 보스가 이 일을 알게 해서는 안돼. 몸이 완전히 회복하기 전까지 절대 모르게 해야 해!”다음날.배경수는 정성껏 만든 아침 식사를 들고 제일 먼저 차설아의 병실에 도착했다.“왔어?”차설아는 진작에 깨어나 열심히 책을 보고 있었다.“어때? 아직도 아파?”배경수는 작은 상판을 올려놓고, 각양각색의 아침 식사를 하나씩 꺼내며 정성스레 물었다.“전혀 안 아파. 간호사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진작 내려가 걸었을 거야!”차설아는 씩씩하게 말했다.그녀는 작은 탁자 위에 정교하게 만들어진 아침 식사를 보며 침을 삼켰다.차설아는 아침 식사를 하며 성도윤의 안부를 물었다.“그 사람은 수술 끝났어? 방금 간호사한테 물었는데 안 알려주더라고.”“그 자식은...”배경수는 심호흡을 하며 애써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진작 괜찮아졌지. 전문가가 직접 나서서 수술했잖아. 누가 감히 부잣집 도련님의 몸을 함부로 대하겠어!”“맞는 말이네. 그럼 나도 안심
하지만 직원이 말했다.“죄송하지만, 성도윤 씨 시체는 이미 인계되었습니다.”“네? 인계되었다고요?”배경수는 신경이 곤두서서 물었다.“누가요?”“고인의 가족분께서 어제저녁에 옮기셨어요.”‘그렇다면, 성가의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다는 건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배경수는 생각에 잠겼다.그는 휴대폰을 들고 주식 시장, 언론, 심지어 성대 그룹까지 최신 정보를 훑어보았지만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혹시, 죽은 사람이 성도윤이 아니란 말인가?’“확인할 것이 있는데요, 그 시신이 성대 그룹의 성도윤 대표가 맞나요?”배경수는 직원에게 물었다.“아마 맞을 거예요. 시신을 받으러 온 분이 아버지셨어요.”직원은 사실대로 말했다.“그럼 더 이상한데요?”배경수는 의심을 가득 품고 차설아의 병실로 돌아갔다.공교롭게도 배경윤은 남자친구 강우혁을 데리고 차설아를 보러 왔다.“언니, 걱정돼서 죽는 줄 알았잖아. 하룻밤 사이에 이게 대체 뭔 일이야? 대체 누가 그랬어? 내가 당장 가서 복수할 거야!”배경윤은 차설아을 끌어안고 눈시울을 붉히며 분을 토했다.“내가 길에 잘못 들어서서 넘어진 거야.”차설아는 몸을 움직이며 자신만만해서 말했다.“걱정 마. 이 정도 상처는 열흘이나 보름 정도면 충분해!”강우혁이 말을 보탰다.“저희 집은 의사 가문이라, 아버지께서 정형외과 의사들을 많이 알고 있으니, 설아 씨가 필요하면 제가 소개해드리죠.”배경윤이 급히 말했다.“뭘 묻고 그래? 당장 전화해서 오라고 해야지! 반드시 최고의 의사가 언니를 치료해줘야 내가 마음이 놓인단 말이야.”강우혁은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당장 전화할게.”차설아는 원래 거절하려 했지만 정형외과 의사라는 말을 듣고 냉큼 말했다.“그럼 우혁 씨한테 부탁 좀 할게요. 저는 필요하지 않지만 성도윤이 필요할 것 같아요.”“성도윤? 그 인간이랑 뭔 상관인데?”배경윤은 성도윤의 이름을 듣고 급히 물었다.“설마, 두 사람 같이 있다가 사고 난 거야?”“그 인간 나 구하려다가 심하게 다
이들은 어제저녁 약속한 대로 섬 근처에 있는 청정지역에서 스토클링하기로 했다.이때 감독 최빈이 말했다.“이 섬은 모양이 하트로 되어있어 하트섬이라고 불리는데 물이 맑아 산호초와 열대 물고기를 많이 볼 수 있을 거예요. 다들 오늘 운이 좋으면 하트섬 특유의 야맹주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보던 밤이면 빛이 나는 그런 야맹주요.”“정말 야맹주가 있는 거예요?”배경윤이 이번 스노클링이 점점 더 기대되었다.사실 그녀는 일찍 하트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섬 중앙에는 고가의 진주가 들어있는 천연 조개가 많다고 했다. 최빈이 언급한 야맹주는 그저 전설일 뿐이었다.전설 속에서는 야맹주를 찾은 사람이 평생 행복할 거라고 했다.신난 배경윤은 야맹주를 찾아서 차설아한테 선물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면 호객행위인지 몰랐다.“당연히 있죠. 수년 전에 섬에서 살던 분들이 발견했대요. 찾을 확률은 낮지만, 없는건 아니에요.”최빈이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했다.“그럼 뭘 기다려요. 저희 얼른 가요...”조급해 난 배경윤이 이때 대담하게 제의했다.“저희 스노클링하지 말고 아예 다이빙하는 거 어때요? 6미터 가까이 되는 그런 다이빙을 하면 야맹주를 찾을 수 있는 확율이 더욱 높지 않을까요?”“좋아요.”사도현이 손을 들면서 말했다.“스노클링을 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다이빙해야 얻고 싶은 걸 얻을 수 있죠.”“저도 좋아요. 저는 폐활량이 좋아서 물속에서 산소통이 없어도 몇 분씩이나 있을 수 있다고요.”하늘도 찬성의 의미도 손을 들었다.올림픽 금메달 수영선수로서 물을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오직 진찬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찬영 씨는 스노클링하실 거예요? 아니면 다이빙하실 거예요?”최빈이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진찬영에게 물었다.“저는 경윤 씨랑 같은 걸 할게요.”진찬영의 표정이 안 좋았던 것은 전에 중이염 수술을 받은 적 있어 수압을 견디지 못해 너무 깊게는 내려가지 못했다. 5미터
배경윤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머리를 긁적거렸다.“급할 필요 없어요. 아직 시간은 많아요. 어제저녁 하늘 씨를 선택한 것은 저랑 사도현 씨의 모순을 와해시키려고 그랬다는 거 알아요. 그런데 오늘 저녁은 경윤 씨 마음에 따라 선택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진찬영은 배경윤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계속 지금처럼 애매모호하지 말았으면 했다.이런 명분 없는 사이가 싫기도 했고, 사도현의 맹렬한 공격하에 배경윤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했다.그래서 하루빨리 결정짓고 싶었다.“알았어요.”배경윤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저녁은 제 마음에 따라 더는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오늘 아침 진찬영과 함께 잠깐 아침햇살을 만끽하면서 롤러코스터처럼 기복이 심한 생활이 아니라 평온한 생활을 기대했다.배경윤과 진찬영이 함께 하산할 때, 사도현도 마침 기상했다.사도현은 지금까지 스코어가 가장 높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배경윤과 방을 바꾸기로 하고 짐을 배경윤의 바다뷰 별장으로 옮기기로 했다.복식 별장에는 방이 네 개나 있었고, 모두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배경윤이 상냥하게 대해준다면 기꺼이 방을 하나 내어주겠다고 했다. 두 사람이 같은 지붕 아래에 있는 모습만 상상해도 기분이 좋았다.입이 귀에 걸려있을 때, 배경윤과 진찬영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웃으면서 걸어오는 것이다.“어디 갔었어요?”사도현의 안색은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제가 어딜 갔든 보고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린 채 냉랭하게 말했다.“그러다 저를 놓칠 수도 있어요. 지금 경윤 씨한테 방을 하나 내어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이죠...”사도현이 턱을 만지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지금, 이 상황에서 할수 있는 가장 진지한 말이었다.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유치하긴. 어차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디서 지내든 상관없어요. 도현 씨한테는 천장에 별이 가득 붙어있는 저 방이 어울릴 것 같
다음날.아침햇살이 비추는 섬은 몽롱하고 매력적이었다.아침 조깅하는 습관 있는 배경윤은 다들 자고 있을 때 이미 일어나 뛰고 있었다.산 주위를 따라 2킬로 정도 뛰면서 땀에 흠뻑 젖은 그녀는 개운한 느낌이었다.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에 서서 파란 바닷가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좋은 아침이에요.”배경윤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뒤돌아보았더니 진찬영이었다.“이런 우연이. 찬영 오빠도 조깅하러 오셨어요?”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드는 그녀의 얼굴은 자기도 모르게 발그레해졌다.어제저녁 진찬영이 대놓고 고백하는 바람에 두 사람 사이의 장벽이 무너져 이제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우연이 아니라...”진찬영은 오늘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살짝 가르마를 탄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어 청춘 로코물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잊지 못하는 킹카처럼 보였다.그는 난간을 잡고 옆모습으로 의미심장하게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번에 경윤 씨가 조깅하는 습관이 있다고 들어서... 일부러 만나려고 온 거예요.”배경윤과 이곳에서 만나려고 그녀보다 한 시간이나 더 일찍 일어난 것이다.그때는 아직 날도 밝지 않았던 때였다. 그는 혼자서 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와 하늘이 서서히 물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속으론 배경윤과 함께 이 경치를 보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배경윤이 흔들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제가 이 코스를 달릴지 어떻게 알았어요? 그러다 못 만나면요?”“만나지 못해도 아쉬운 대로 아름다운 경치를 봤잖아요.”진찬영은 고개돌려 전방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저는 어떤 일이든 결과를 바라지 않아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된 거예요. 그리고 결국엔 경윤 씨를 만났잖아요.”배경윤은 잘생긴 그의 옆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그렇다. 결과보다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되었다.이 부분에서는 진찬영과 생각이 똑
“에헴!”하늘을 신경 쓰지도 않던 사도현은 두 사람이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길래 질투심을 느꼈다.하늘도 그제야 선을 넘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바로 입을 닫으면서 자세를 고쳐잡았다.“죄송해요. 경윤 씨, 저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다른 사람을 선택해 보세요.”“그게 뭐 어때서요? 어차피 저희 서로 선택하는 과정이잖아요. 하늘 씨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과 셋이 함께 스노클링하면 되잖아요. 둘이든 셋이든 저는 상관없어요.”배경윤이 웃으면서 말했다.그녀는 하늘이 컨트롤하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제일 안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진찬영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고 사도현도 어쩔 수가 없었다.“그래요? 경윤 씨는 정말 내일 아침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과 함께 스노클링할 수 있는 거예요?”하늘은 억울한 강아지처럼 순진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럼요. 저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에요. 3각 구도는 제일 안정적이니까요.”배경윤이 익살스럽게 말했다.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입이 자기 말을 듣지 않았다.“그래요. 그러면 내일 경윤 씨, 저, 그리고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 세 명이 함께 스노클링하는 거예요. 마음이 변하면 안 돼요.”“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빠지는 일이 없을 거예요. 제가 빠지면 평생 짝을 찾지 못할 거예요.”배경윤은 하늘에 대고 진지하게 맹세했다.이때 하늘이 진지하게 말했다.“사실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은 사도현 씨에요. 그리고 오늘 모든 사람 앞에서 사실대로 말했고요.”사도현이 눈썹을 움찔하더니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희 내일 봐요.”‘왜 이렇게 된 거지?’배경윤은 흐뭇한 표정의 사도현을 보면서 그가 일부러 함정을 파놓았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바로 이때, 진찬영이 입을 열었다.“3각 구도가 안정적이긴 하지만 재미가 없잖아요. 저도 끼워주시면 안 돼요?”진찬영은 사도현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사도현을 쳐다보았다.“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은 배경윤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 다부진 몸매에 끌려 그대를 쭉 지켜보게 되었어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대의 모습을 보면서 심장이 떨려왔어요. 자신감이 넘치는 그대가 유독 빛나 보였거든요. 그대는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하늘은 배경윤이 쓴 편지를 천천히 읽으면서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았다. 남성 참가자 중에서 진찬영이 텔레비전에 가장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진찬영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앉아 있었다. 사도현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었고 당장이라도 한 대 때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첫인상 1위가 누구냐고 물으면 그대라고 하고 싶어요. 하늘 씨, 앞으로 우리 잘 지내봐요. 하늘 씨랑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요. 하늘 씨의 마음도 궁금해요. 단둘이 얘기 나누고 싶어요.”편지를 다 읽은 하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늘은 부끄러워하면서 머리를 긁적였고 배경윤을 쳐다보면서 물었다.“경윤 씨, 언제부터 저한테 호감이 생긴 거예요?”하늘을 포함한 게스트들은 전부 두 눈을 크게 뜨고 배경윤을 쳐다보았다.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배경윤은 사도현, 진찬영이 아닌 뜬금없는 하늘한테 고백했던 것이다.[지금 사람 마음 갖고 장난하는 거야? 거짓말하지 마. 누구한테 마음이 있는지 다 보이는데 왜 저러는 거야?][이거 대본 맞지? 대본의 냄새를 맡았어. 제작진한테 너무 실망이야.][대본이든 말든 나는 사도현과 배경윤이 이어지길 기도할 거야. 두 사람 진짜 잘 어울리잖아. 이러다가 진짜 이어져서 결혼할 수도 있어.][결혼이라니, 너무 앞서간 거 아니야? 사도현이 혼자 짝사랑하는 것 같아. 배경윤은 진찬영을 더 좋아한다고!]네티즌은 댓글 수백 개씩 달면서 열렬하게 토론했다. 진찬영의 평온한 얼굴에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사도현도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사도현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내가 열렬하게 구애했는데도 하늘 씨한테 졌어요. 정말 아쉬워요.”“사도현 씨, 제 말 좀 들어봐요. 경윤 씨가 장난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래요. 저는 오늘 경윤 씨랑
배경윤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진찬영은 배경윤이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동안 꾸준하게 좋아했던 연예인이기도 했다.배경윤은 그동안 진찬영과 지내면서 연예인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매력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열정적인 팬에서부터 진찬영을 좋아하는 여자가 되었다.가끔 진찬영과 손을 잡고 천천히 늙어가는 평화로운 삶을 그리기도 했었다.진찬영은 자신을 향해 뻗은 배경윤의 손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불쾌함을 전부 씻어버리고 손을 잡으려고 했었다.그런데 이때 사도현이 갑자기 나타나서 배경윤의 손을 잡았다.“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밤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있으니 아무도 빠지면 안 된다고 했어요.”말을 마친 사도현은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고는 씩 웃었다. 그리고 배경윤을 데리고 게스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이 손 안 놔? 누구 마음대로 내 손을 덥석 잡는 거야? 때리기 전에 놔줘.”배경윤은 살기가 넘치는 눈으로 사도현을 쳐다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 사도현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었다.사도현은 진찬영과 배경윤이 한 발짝 더 가까이 가려고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훼방했다.“내가 잡고 싶어서 잡은 줄 알아? 제작진이 너를 데리고 오라고 했어.”사도현은 게스트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배경윤을 데리고 왔다. 그러고는 사회자 최빈을 향해 말했다.“다 모인 것 같으니 시작하죠.”최빈은 뒤쪽에 서 있는 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찬영 씨, 얼른 이쪽으로 오세요. 곧 고백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은 매일 밤에 게스트들이 모여 앉아 호감이 있는 사람한테 진심이 담긴 편지를 써야 했다. 다 쓴 편지는 추첨함에 넣고 제작진이 지목한 게스트가 나와서 뽑은 편지를 읽으면 되었다.낯부끄러운 시간이었지만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게스트들의 마음이 어디로 향했는지 아주 궁금했다.마음을 편지에 담아 공개하기에
배경윤은 초가집의 뒷문으로 나온 뒤에 일부러 바닷가를 돌아서 바비큐 파티가 열린 곳으로 향했다. 게스트들은 배경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반가워했다.“경윤 언니, 오셨어요? 언니가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경윤 언니가 와서 너무 기뻐요.”장유빈이 머무는 숙소는 배경윤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장유빈은 바비큐 파티에 같이 참가하자고 했지만 배경윤은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못내 아쉬웠던 장유빈은 배경윤을 발견하고는 신나서 벌떡 일어났다.“모두 참가했는데 저만 빠지면 그렇잖아요. 저만 유별난 것도 아니고요. 아무튼 늦게 와서 죄송해요.”배경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이제라도 와줘서 고마워요. 경윤 씨, 이것 좀 봐요. 찬영 오빠가 경윤 씨를 위해서 쉬지 않고 고기만 구웠어요. 경윤 씨가 고기를 그렇게 좋아한다더라고요.”소수민은 불판에 올려진 고기를 보면서 부러운 어조로 말했다.“같은 여자라도 어떤 남자를 만나는지에 따라 달라요. 저희는 먹고 싶은 걸 구워주는 사람이 없어서 직접 구웠어요. 그런데 경윤 씨가 고기를 좋아하니까 찬영 오빠가 양념 고기, 불닭 소스 고기, 허니 고기를 준비했대요. 먹음직스러워서 침이 저절로 고였어요.”배경윤은 진찬영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한편으로 고마웠고 다른 한편으로 미안했다.“찬영 오빠, 고기를 굽느라 고생 많았어요.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돼요. 제가 오빠를 위해서 뭐라도 할게요.”배경윤은 진찬영의 옆으로 걸어가서 같이 고기를 굽고 양념을 발랐다.“조심해요!”진찬영은 튀어 오르는 숯불을 막아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숯불은 그대로 진찬영의 손에 튀었다.“찬영 오빠, 괜찮아요? 이 고귀한 손으로 왜 막은 거예요! 흉이 지면 안 되니까 얼른 가서 약부터 발라요.”소수민은 입을 틀어막고 기겁하더니 이내 소리를 질렀다.“찬영 오빠, 저...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오빠가 다쳤어요.”깜짝 놀란 배경윤은 어쩔 줄 몰라 했다.“괜찮아요. 덴 것도 아
사도현은 배경윤의 귓가에 속삭였다.“지금 가서 문을 열어주면 어떻게 될까?”“그러지 마!”배경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사도현의 팔을 꼭 붙잡았다. 사도현은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이상한 소리라도 낸다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입 다물고 있어.”배경윤은 진찬영한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진찬영과 시작해 보지도 않고 끝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뻔뻔스러운 감이 있긴 하지만 인성은 늘 그렇듯 욕심이 끝도 없었다.“안에 누구 없어요? 없으면 문 열고 들어갈게요.”쾅!소수민은 문을 점점 세게 두드렸고 허술하게 지어진 초가집이 무너질 것 같았다. 벽이 흔들거렸고 먼지가 떨어졌다.배경윤은 사도현을 끌어안은 채 미간을 찌푸렸고 이 난감한 상황이 빨리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사도현은 잔뜩 긴장해 있는 배경윤이 우스웠다.어쩐지 기분이 언짢았던 사도현은 일부러 배경윤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혔다.“하하하!”배경윤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고 말았다. 문밖에 서 있던 진찬영과 소수민은 그 소리를 듣게 되었다. 소수민은 큰 소리로 물었다.“계세요? 화장실을 쓰고 싶은데 문을 열어주세요. 저기요!”배경윤은 입을 틀어막고는 사도현을 노려보았다. 사도현은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약을 올렸다.“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으니 다른 곳에 가봐요. 쉬고 있는 사람을 방해하면 안 되니까요.”진찬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알겠어요. 찬영 오빠는 참 다정해요.”소수민은 짜증이 밀려왔지만 진찬영과 같이 다른 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발걸음 소리가 희미해지자 배경윤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고는 주먹으로 사도현을 마구 때리면서 말했다.“사도현, 너 진짜 미친 거지! 일부러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잖아. 이러고도 네가 남자야?”“사람들은 이미 우리를 한 쌍의 커플로 보고 있어. 커플이 같은 침대를 쓰는 게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야?”사도현은 굳은 표정을 하고서 배경윤을 내려다보았다. 배경윤이 진찬영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이 마음에 걸렸고 신경이 거슬렸
“그, 그게...”배경윤은 입술을 깨물면서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배경윤은 사도현을 아직도 좋아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감정이 드는지도 몰랐다.‘내가 아직 좋아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설레는 순간은 있었어.’배경윤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매일 마음을 졸여야 하는 사도현보다 잔잔한 물결 같은 진찬영이 더 좋았다. 진찬영은 다정하고 친절해서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진찬영과 진지하게 만나서 결혼할 생각도 있었다.만약 이 프로그램을 통해 두 사람이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한다면 그대로 진찬영한테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었다.사도현은 빛이 나는 태양이라 열정적이고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다치는 건 결국 배경윤이었다.진찬영은 차가워 보이지만 어둠으로 모든 것을 품어주는 달이었다. 달을 바라보고 가까이하는 것만으로 행복해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도현아, 사실 나는...”배경윤은 심호흡하고는 솔직한 감정을 전달하려고 했다. 그런데 사도현은 이미 대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배경윤의 입을 막아버렸다.“읍!”배경윤은 또다시 사도현과 입을 맞추게 될 줄 몰랐다. 요트 위에서 나눴던 키스와는 달리 한편으로는 부드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운 입맞춤이었다.가볍게 부딪친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사도현은 두려워했고 비굴하게 보이더라도 배경윤한테 떠나지 말라고 빌고 싶었다.화가 나서 밀치려고 했던 배경윤은 손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가만히 쳐다보다가 더 가까이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이 세상에 불쌍하고 가엾은 강아지 같은 남자를 마다할 여자는 없을 거야. 그저 불쌍해 보여서 어쩔 수 없었어.’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고 사랑을 퍼부었다. 몸이 달아올라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너의 대답이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아. 네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사도현은 배경윤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도현아, 혹시 아까 그것도 작정하고 그런 거야? 너는 나를 너무 잘 알아. 나는 네가 미워!”배경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