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설아는 왠지 성도윤에게서 걸려 온 전화라는 예감이 들었다. 발신자 주소가 해안으로 표시되었기 때문이다.차설아는 무시하려고 했지만, 전화는 끊임없이 울렸고, 양보아도 온화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전화를 받으라는 신호를 보냈다.그녀는 도둑이 제발 저리지 않기 위해, 일부러 침착한 척 연결버튼을 눌렀다.“이제야 전화를 받네!”전화기 너머에서 성도윤의 차가운 목소리는 악몽과 똑같았다. 차설아는 흠칫 놀라더니 연기를 시작했다.“뭐라고요? 보험이요? 미안하지만 보험 안 들어요. 끊을게요.”“차설아, 전화 끊기만 해! 뚜뚜뚜!”성도윤의 포효하는 목소리는 즉시 끊어졌다.“휴, 요즘 이상하게 보험사들이 전화가 오네요. 대출 전화도 많이 오고, 정말 귀찮아 죽겠어요.”차설아는 침착하게 양보아에게 설명하면서 능숙하게 번호를 블랙리스트에 넣었다.하지만 곧 또 새로운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번호를 블랙리스트에 넣는 족족 다른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니 차설아는 어쩔 수 없이 화장실을 간다는 이유로 자리를 떴다.“성도윤, 당신 미쳤어? 왜 계속 전화하는 거야? 당신은 내 전남편이라는 걸 잊지 마!”차설아는 목소리를 낮추어 쏘아붙였다.전화기 너머로 몇 초 동안 침묵이 흐른 후,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방해할 생각은 없었어. 어머니가 당신 찾으러 갔는지 물어보려고. 지금 잘 계셔?”“여사님 아직 안 돌아가셨어?”차설아는 좀 뜻밖이었다.해안과 S시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소영금은 이미 해안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을 수 있을까?혹시, 소영금에게 뭔 일이라도 생긴 걸까?“그러니까, 어머니가 S시에 가서 당신을 만났다는 거네?”“맞아, 오셨어. 그런데 어젯밤에 내가 보냈거든. 아직 도착하지 못했을 리가 없어!”“젠장!”성도윤은 나지막이 욕을 하더니 사람을 얼릴 정도로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내가 지금 당장 선우 가문으로 갈 테니까, 당신은 어머니가 무사하기를 기도하는 게 좋을 거야. 만약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저희 왔어요, 우리 설아 푹 자고 왔으니 다들 식사하세요.”조보아는 차설아를 끌고 자리에 앉았다.“할아버지, 아저씨, 시원아, 다들 굿모닝이에요.”차설아는 예의 바르게 세 사람에게 안부 인사를 하며, 활짝 웃었다.“그래, 어젯밤엔 잘 잤어?”선우도환은 자애로운 얼굴로 차설아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네 할아버지 덕분에 푹 잤어요.”차설아는 계속 얌전한 모습을 보였다.이런 방면에서 차설아는 특히 경험이 많았다. 성가네 집에서 4년 동안이나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얌전한 모습은 그녀의 가면이었다.“진짜 잘 잤어?”선우시원은 웃음을 참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어제 한밤중에 마당에서 산책하고 있었잖아? 정력이 남아돌아서 개구멍까지 메우고. 난 네가 잠자리가 불편한 줄 알았지!”차설아는 선우시원을 흘겨보았다. 이 자식을 당장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빌어먹을 자식, 진짜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야?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런 짓을 하고 있는데?’“개구멍?”선우도환의 자애로운 눈빛은 바로 매서워졌다.군인의 살벌함을 띤 그의 눈빛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차설아는 황급히 설명했다.“잠자리가 낯설어서 처음에 잠이 안 오더라고요. 달빛도 좋고 해서 산책을 하다가 마침 개구멍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강박증에 개구멍을 막아버렸죠.”선우도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따지지 않고 말했다.“오늘은 첫날이니 늦잠을 잘 수 있지만 앞으로는 안 돼. 우리 가문은 군사적 시스템이라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외출해! 이렇게 해야 사람의 의지를 단련하는 데 도움이 되거든!”“네?”“너는 장군의 후예이니 이런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지. 네 할아버지도 하늘에서 내가 너를 의지가 강한 사람으로 키우기를 바라고 있을 거야!”“아...”차설아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할아버지는 확실히 생전에 그녀에게 격투기, 총 조립, 폭탄 해체, 심지어 군사 훈련까지 가르쳤지만, 생활 방면에서는 이렇게
“그게 대체 뭔 말이야? 똑바로 말해!”양보아가 매서운 표정으로 외쳤다.하인은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차근차근 보고했다.“어젯밤에 우리보다 더 고급진 유니폼을 입은 낯선 하인이 소영금을 전담했다면서 저한테 길을 안내하라고 했어요. 반성실까지 데려다주고 전 돌아왔어요... 오늘 가보니 그 낯선 하인과 소영금이 모두 사라졌어요. 그 신입이 놓아준 게 틀림없어요!”“간도 크구나!”선우도환은 가문의 권위가 도발 당한 것 같아 화가 잔뜩 차올랐다.“대체 누가 감히 우리 집안에 몰래 들어와 겁도 없이 이런 일을 저지른단 말이야! 우리 집안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구나!”“당장 조사해! 발견 즉시 손발을 잘라버려! 우리 집안을 도발한 최후를 똑똑히 보여줘야지!”선우준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늘 가문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에게 말했다.“왜 아직도 멍하니 있어! 당장 가서 조사해! 감히 우리 가문에 대적한 자를 반드시 잡아 온다!”차설아는 머리를 파묻고 감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행여나 하인이 자신을 알아볼까 봐 마음을 졸였다.훈련된 병사들이 장갑차를 몰고 출동하자, 차설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뭐야, 이 사람들 진심이야? 진짜 일을 크게 만든다고?’‘만약 내가 사람을 풀어준 것이 밝혀지면, 내 손발은 아작나겠어!’선우 가문은 예로부터 이렇게 극단적인 스타일이라, 차설아가 놀란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선우 가문은 강압, 집권, 고문 등 극단적인 방식으로 S시에서 권위를 공고히 하는데 습관 되었다.“일단 식사부터 하세요. 우리 설아 괜히 밥맛 떨어지게 하지 말고.”양보아는 선우 부자를 향해 눈짓을 하며 말했다.그들은 젓가락을 들고 아침 먹을 준비를 했다. 다만, 먹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군가를 우렁차게 불러야 했다.차설아는 이런 상황이 몹시 불편하여 속으로 중얼거렸다.‘바람이 일찍 집에서 도망쳐 해커가 된 건 이유가 있었어. 집안 분위기가 이렇게 억압적이니, 나였어도 가출을 했을 거야!’차설아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그들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용
“뭐? 무슨 헛소리야?”양보아는 선우시원을 쏘아보았다.가문을 배신하는 일을 저지르면, 선우도환은 육친을 막론하고 엄벌에 처하는 사람이었다. 이건 자기 목숨을 내놓는 행동이나 다름없었다.선우시원은 느릿느릿 말했다.“헛소리 아니에요. 진짜 제가 풀어줬어요. 그렇게 복잡한 비밀번호는 저희 집안 사람만 알고 있어요. 설아처럼 단순한 애가 어떻게 그 복잡한 비밀번호를 풀고 사람을 놓아줬겠어요?”여기까지 말한 선우시원은 차설아를 바라보며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하하!”차설아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어색하게 웃었다.선우시원의 도움이 눈물 나게 고맙지만, 비꼬는 듯한 그의 모습은 정말 주먹을 불렀다.선우시원은 계속 말을 이었다.“성도윤의 손에서 마누라까지 빼앗았는데, 굳이 어머니까지 가둬 놓을 필요 있어요? 이건 너무 심하잖아요...”“성가의 실력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잖아요. 저희한테 군대가 있다는 이유로 너무 설치면 안 돼요. 성가에 돈이 차고 넘치는데, 진짜 화나면 외국에서 결사대를 고용해 우리를 무너뜨릴지도 모른다고요. 어느 정도 선은 지켜야 앞으로 얼굴 보며 살죠.”“맞아요! 맞는 말이에요!”차설아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지금 이 순간, 선우시원은 그녀의 대변인이 되었다.독선적인 오만함에 빠져있는 선우 가문 전체에서, 늘 밖에서 빈둥거리는 선우시원만 이성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선우도환은 눈살을 찌푸리고 위엄 있는 눈빛으로 선우시원을 노려보았다.“성가가 그렇게 대단해? 그럼 우리 선우 가문이 성가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이냐?”“선우 가문과 성가는 진작에 일전을 벌였어야 했어. 지금까지 조용했던 건, 설아가 성가의 사람이라 괜히 설아에게 불똥이 튈까 봐 참았던 거야. 지금은 설아가 이미 성가와 인연을 끊었으니, 난 이제 더 이상 돌볼 것도 없이 전투를 시작할 거다!”선우도환의 말을 들은 차설아는 두피가 저렸다.역시, 선우도환은 전쟁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맞아, 세 분은 리더의 이념이 달라 뼈아픈
차설아의 비정상적인 행동에 모두 어리둥절했다.특히 선우시원은 차설아의 이런 태도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진짜 두 집안이 싸우기를 원한다고?”선우시원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흥미로운 말투로 물었다.“당연하지!”차설아는 계속 감정이 격해서 말했다.“할아버지는 언젠가 내가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직접 군대를 이끌기를 원하셨어. 만약 선우 가문과 성가가 일전을 치르게 된다면, 상업적으로나 무력적으로나, 내가 선두에서 이끌었으면 좋겠어!”“좋아! 아주 당차구나!”선우도환은 만족스럽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호탕하게 웃었다.“역시 차무진의 손녀야, 여장군이 따로 없네. 못난 내 손자보다 훨씬 훌륭해!”“그러게요. 시원아, 너도 설아한테서 좀 배워. 그렇게 겁이 많아서 어떻게 설아를 지키겠어. 잘못하면 설아가 널 보호하는 게 아닌지 몰라.”양보아는 선우시원을 흘겨보며 하찮은 표정이 역력했다.선우시원은 차설아의 옷자락을 잡아당겨 그녀의 귀에 대고 조용히 물었다.“대체 무슨 꿍꿍이야? 겁도 없이 함부로 나대는 거야? 난 그저 할아버지와 농담을 한 것뿐인데 왜 네가 부채질을 해? 진짜 두 집안이 싸우기를 바라는 거야?”차설아는 웃으며 말했다.“평화주의인 척 연기하지 마. 애초에 날 끌어들여 성가에 대적하려던 건 너였어. 내 해커의 신분을 성도윤에게 폭로하겠다고 협박까지 했었잖아. 지금 와서 휴전을 선포하는 거야?”“그건 성도윤에 대한 너의 감정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 보려던 거였지. 성도윤에게 그렇게 애틋하던 사람이 지금은 전쟁을 하겠다는 건, 딱 봐도 이상하잖아!”여기까지 말한 선우시원은 더욱 다정하게 차설아의 어깨를 감싸고 이마를 여자의 뺨에 대고 말했다.“우리 할아버지랑 아버지 앞에서 괜히 잔꾀를 부려서 두 집안이 휴전하거나, 화해하게 만들려고 하지 마. 그러다 들통나면 나도 너를 구해줄 수 없어!”“하하하!”차설아는 별말 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선우시원과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선우도환은 희색이 만개하여 선우준
선우도환은 흥분에 차서 황급히 말했다.“맞아, 결의 대회를 전신 앞에서 하면 되겠네! 꾸물거리지 말고, 당장 헬기를 준비해서 떠나자꾸나!”“좋아요, 지금 당장 출발해요!”차설아는 팔을 흔들며 말했다.그리고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선우도환은 역시나 그녀의 예상대로 매우 충동적이고 열정적이고 심지어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했다. 전신에게 인사하러 당장 가자고 해도 움직이니 말이다.‘다행이야. 성도윤이 이 집안 사람들과 마주치는 건 막을 수 있겠어! 그때 가서 아무 핑계나 찾아서 두 집안싸움을 멈추면 그만이야!’차설아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속으로는 자신이 모든 상황을 컨트롤하고 있는 천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바로 이때, 집사가 와서 보고했다.“큰일 났어요, 어르신. 밖에... 밖에 엄청난 분께서 뵙자고 하시네요.”선우도환은 차갑게 말했다.“대체 얼마나 큰 인물이기에 유난을 떨어?”“그분은...”집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몸을 곧게 펴고 잘생긴 얼굴의 성도윤이 경비원들의 제지를 무시하고 쳐들어왔다.그는 검은 양복 차림에, 터프한 발걸음, 완벽하고 냉혹한 이목구비, 마치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차갑고 매서운 모습이었다.그는 총도 없고, 아무런 무기도 지니고 있지 않았지만, 총을 메고 있는 경비원들은 그의 강렬한 카리스마에 눌려 벌벌 떨었고,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젠장,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순간이동이라도 한 거 아니야?”차설아는 성도윤을 보고 놀라서 표정을 걷잡을 수 없었다...해안과 S시는 차로 적어도 몇 시간은 걸리는데, 성도윤이 지금 왔다는 건, 오로지 한가지 가능성뿐이었다. 그는 원래 S시에 있었을 것이다!어쨌든, 차설아가 가장 원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그녀는 정말 남자를 붙잡고 욕설을 퍼붓고 싶었다.‘성도윤, 당신 진짜 바보야? 여기가 지옥문인 걸 알면서도 쳐들어와? 누가 소 여사 아들 아니랄까 봐 하는 짓이 아주 똑같네!’차설아는 힘에 부쳤다. 겨우 소영금을 보냈는데, 지금은 성도윤이 왔다.‘보아
성도윤은 사람들을 향해 느릿느릿하지만 확고하게 말했다.“당연히 이혼절차죠.”말을 마친 성도윤은 차설아에게 다가가 긴 팔을 뻗어 자연스럽게 여자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자기야, 왜 이렇게 속을 썩여.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다른 남자랑 도망간 거야? 이러면 곤란하지.”“자... 기?”차설아는 남자의 시선을 마주 보며 두피가 저렸다.‘이 녀석... 이 정도로 연기 할 필요는 없잖아!’차설아는 어젯밤의 악몽이 생각났다. 기름, 호랑이 의자...성도윤에 의해 뜯어먹히고 있었다...선우 가문의 사람들은 이미 화가 잔뜩 차올랐지만, 성도윤의 강렬한 카리스마에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했다.선우도환은 심지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단총을 꺼내 식탁에 놓으며 매서운 눈으로 말했다.“보아하니, 성가에 꽤 쓸만한 놈이 있네. 감히 홀몸으로 우리 집에 와서 사람을 빼앗아 가다니. 듣자 하니 성가에 후손이 너 하나뿐이라고 하던데, 만약 그 유일한 후손이 우리 집에서 죽는다면 성주혁 그 노인네가 얼마나 화가 날까?”성도윤은 그 단총을 흘깃 쳐다보더니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차설아를 더 꽉 끌어안았다.“어르신, 빼앗는다는 건, 보통 자기 물건이 아닌 것에 사용하죠. 저랑 설아는 서로 지극히 사랑하는 부부이고, 어엿한 저의 아내이니 원래 제 것이죠. 그러니 빼앗는다는 표현보다는... 데려간다는 표현이 더 알맞겠네요.”“네 놈이 감히!”선우도환은 번개 같은 속도로 총을 집어 들어 성도윤의 머리에 대고 사납게 말했다.“어떤 표현이 더 알맞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내 집에서 사람을 데려가는 건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니까!”“네 할아버지가 말해줬나? 난 절대 총알을 낭비하지 않는다고, 무조건 백발백중이지.”차설아는 양팔을 벌리고 성도윤의 앞을 가로막고 큰 소리로 말했다.“할아버지, 진정하세요. 권세를 믿고 약자를 괴롭히라고 제 할아버지가 이 총을 드린 것이 아니에요.”그녀의 말에 모두들 숨을 들이쉬었다.양보아는 끊임없이 차설아에게 눈
선우도환은 얼굴을 찡그리며 생각에 잠겼다. 일의 맥락을 파악한 그는 연로하지만, 늑대처럼 매서운 차가운 눈으로 차설아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시원이를 이용했고, 모든 것이 연기였고, 우리 집안을 속였다, 이 말이야?”차설아는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겸연쩍게 말했다.“모두 죄송해요. 전부 제 잘못이에요.”“그만... 그만하라고!”선우시원은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그는 손으로 이마를 짚고, 차설아를 걱정하면서도 화가 났다.“차설아, 진짜 바보야? 왜 이렇게까지 하는데?”자신을 배신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건 너무 어리석었다.선우시원은 자신의 할아버지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속는 것을 가장 싫어했고,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눈앞의 차설아를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차설아, 너 이제 끝장이야!’“그래, 좋아!”선우도환은 화가 나서 표정을 일그러졌고, 총구를 차설아에게 옮기며 차갑게 말했다.“내가 얼마나 너를 맘에 들어 했는데. 너는 차 장군님의 손녀이니 온 힘을 다해 키우려 했어, 하지만 날 너무 실망하게 하는군...”“선우 가문의 규칙 제1조: 우리 가문을 속인 자는 죽어 마땅하다!”선우도환이 당장 총을 쏠 위기일발의 순간, 선우시원이 차설아의 앞을 가로막고 건들건들 말했다.“할아버지 말씀대로 우리 가문의 규칙인데, 외부인이랑 뭔 상관이 있죠? 만약 오늘 누군가에게 총을 꼭 쏘아야 한다면, 저한테 쏘는 게 맞죠!”“내가 못 쏠 것 같아?”“당연히 쏘시겠죠. 가문 전체가 멸망해도 눈도 깜박이지 않는 대단한 분이시잖아요!”양보아는 발을 동동 굴렀다.“이 자식, 당장 입 닥쳐! 일을 더 크게 만들 생각이야?”선우준수도 총을 쏠까 봐 무서워 용기를 내어 말했다.“아버지, 진정하세요. 애들이 아직 어려서 말을 함부로 해요. 어른인 저희가 잘 가르쳐야죠. 개과천선할 기회는 줘야 하지 않겠어요?”이 말은 줄곧 독단적이고 고집불통인 선우도환의 마음을 움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 다부진 몸매에 끌려 그대를 쭉 지켜보게 되었어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대의 모습을 보면서 심장이 떨려왔어요. 자신감이 넘치는 그대가 유독 빛나 보였거든요. 그대는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하늘은 배경윤이 쓴 편지를 천천히 읽으면서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았다. 남성 참가자 중에서 진찬영이 텔레비전에 가장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진찬영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앉아 있었다. 사도현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었고 당장이라도 한 대 때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첫인상 1위가 누구냐고 물으면 그대라고 하고 싶어요. 하늘 씨, 앞으로 우리 잘 지내봐요. 하늘 씨랑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요. 하늘 씨의 마음도 궁금해요. 단둘이 얘기 나누고 싶어요.”편지를 다 읽은 하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늘은 부끄러워하면서 머리를 긁적였고 배경윤을 쳐다보면서 물었다.“경윤 씨, 언제부터 저한테 호감이 생긴 거예요?”하늘을 포함한 게스트들은 전부 두 눈을 크게 뜨고 배경윤을 쳐다보았다.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배경윤은 사도현, 진찬영이 아닌 뜬금없는 하늘한테 고백했던 것이다.[지금 사람 마음 갖고 장난하는 거야? 거짓말하지 마. 누구한테 마음이 있는지 다 보이는데 왜 저러는 거야?][이거 대본 맞지? 대본의 냄새를 맡았어. 제작진한테 너무 실망이야.][대본이든 말든 나는 사도현과 배경윤이 이어지길 기도할 거야. 두 사람 진짜 잘 어울리잖아. 이러다가 진짜 이어져서 결혼할 수도 있어.][결혼이라니, 너무 앞서간 거 아니야? 사도현이 혼자 짝사랑하는 것 같아. 배경윤은 진찬영을 더 좋아한다고!]네티즌은 댓글 수백 개씩 달면서 열렬하게 토론했다. 진찬영의 평온한 얼굴에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사도현도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사도현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내가 열렬하게 구애했는데도 하늘 씨한테 졌어요. 정말 아쉬워요.”“사도현 씨, 제 말 좀 들어봐요. 경윤 씨가 장난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래요. 저는 오늘 경윤 씨랑
배경윤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진찬영은 배경윤이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동안 꾸준하게 좋아했던 연예인이기도 했다.배경윤은 그동안 진찬영과 지내면서 연예인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매력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열정적인 팬에서부터 진찬영을 좋아하는 여자가 되었다.가끔 진찬영과 손을 잡고 천천히 늙어가는 평화로운 삶을 그리기도 했었다.진찬영은 자신을 향해 뻗은 배경윤의 손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불쾌함을 전부 씻어버리고 손을 잡으려고 했었다.그런데 이때 사도현이 갑자기 나타나서 배경윤의 손을 잡았다.“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밤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있으니 아무도 빠지면 안 된다고 했어요.”말을 마친 사도현은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고는 씩 웃었다. 그리고 배경윤을 데리고 게스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이 손 안 놔? 누구 마음대로 내 손을 덥석 잡는 거야? 때리기 전에 놔줘.”배경윤은 살기가 넘치는 눈으로 사도현을 쳐다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 사도현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었다.사도현은 진찬영과 배경윤이 한 발짝 더 가까이 가려고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훼방했다.“내가 잡고 싶어서 잡은 줄 알아? 제작진이 너를 데리고 오라고 했어.”사도현은 게스트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배경윤을 데리고 왔다. 그러고는 사회자 최빈을 향해 말했다.“다 모인 것 같으니 시작하죠.”최빈은 뒤쪽에 서 있는 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찬영 씨, 얼른 이쪽으로 오세요. 곧 고백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은 매일 밤에 게스트들이 모여 앉아 호감이 있는 사람한테 진심이 담긴 편지를 써야 했다. 다 쓴 편지는 추첨함에 넣고 제작진이 지목한 게스트가 나와서 뽑은 편지를 읽으면 되었다.낯부끄러운 시간이었지만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게스트들의 마음이 어디로 향했는지 아주 궁금했다.마음을 편지에 담아 공개하기에
배경윤은 초가집의 뒷문으로 나온 뒤에 일부러 바닷가를 돌아서 바비큐 파티가 열린 곳으로 향했다. 게스트들은 배경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반가워했다.“경윤 언니, 오셨어요? 언니가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경윤 언니가 와서 너무 기뻐요.”장유빈이 머무는 숙소는 배경윤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장유빈은 바비큐 파티에 같이 참가하자고 했지만 배경윤은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못내 아쉬웠던 장유빈은 배경윤을 발견하고는 신나서 벌떡 일어났다.“모두 참가했는데 저만 빠지면 그렇잖아요. 저만 유별난 것도 아니고요. 아무튼 늦게 와서 죄송해요.”배경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이제라도 와줘서 고마워요. 경윤 씨, 이것 좀 봐요. 찬영 오빠가 경윤 씨를 위해서 쉬지 않고 고기만 구웠어요. 경윤 씨가 고기를 그렇게 좋아한다더라고요.”소수민은 불판에 올려진 고기를 보면서 부러운 어조로 말했다.“같은 여자라도 어떤 남자를 만나는지에 따라 달라요. 저희는 먹고 싶은 걸 구워주는 사람이 없어서 직접 구웠어요. 그런데 경윤 씨가 고기를 좋아하니까 찬영 오빠가 양념 고기, 불닭 소스 고기, 허니 고기를 준비했대요. 먹음직스러워서 침이 저절로 고였어요.”배경윤은 진찬영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한편으로 고마웠고 다른 한편으로 미안했다.“찬영 오빠, 고기를 굽느라 고생 많았어요.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돼요. 제가 오빠를 위해서 뭐라도 할게요.”배경윤은 진찬영의 옆으로 걸어가서 같이 고기를 굽고 양념을 발랐다.“조심해요!”진찬영은 튀어 오르는 숯불을 막아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숯불은 그대로 진찬영의 손에 튀었다.“찬영 오빠, 괜찮아요? 이 고귀한 손으로 왜 막은 거예요! 흉이 지면 안 되니까 얼른 가서 약부터 발라요.”소수민은 입을 틀어막고 기겁하더니 이내 소리를 질렀다.“찬영 오빠, 저...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오빠가 다쳤어요.”깜짝 놀란 배경윤은 어쩔 줄 몰라 했다.“괜찮아요. 덴 것도 아
사도현은 배경윤의 귓가에 속삭였다.“지금 가서 문을 열어주면 어떻게 될까?”“그러지 마!”배경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사도현의 팔을 꼭 붙잡았다. 사도현은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이상한 소리라도 낸다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입 다물고 있어.”배경윤은 진찬영한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진찬영과 시작해 보지도 않고 끝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뻔뻔스러운 감이 있긴 하지만 인성은 늘 그렇듯 욕심이 끝도 없었다.“안에 누구 없어요? 없으면 문 열고 들어갈게요.”쾅!소수민은 문을 점점 세게 두드렸고 허술하게 지어진 초가집이 무너질 것 같았다. 벽이 흔들거렸고 먼지가 떨어졌다.배경윤은 사도현을 끌어안은 채 미간을 찌푸렸고 이 난감한 상황이 빨리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사도현은 잔뜩 긴장해 있는 배경윤이 우스웠다.어쩐지 기분이 언짢았던 사도현은 일부러 배경윤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혔다.“하하하!”배경윤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고 말았다. 문밖에 서 있던 진찬영과 소수민은 그 소리를 듣게 되었다. 소수민은 큰 소리로 물었다.“계세요? 화장실을 쓰고 싶은데 문을 열어주세요. 저기요!”배경윤은 입을 틀어막고는 사도현을 노려보았다. 사도현은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약을 올렸다.“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으니 다른 곳에 가봐요. 쉬고 있는 사람을 방해하면 안 되니까요.”진찬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알겠어요. 찬영 오빠는 참 다정해요.”소수민은 짜증이 밀려왔지만 진찬영과 같이 다른 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발걸음 소리가 희미해지자 배경윤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고는 주먹으로 사도현을 마구 때리면서 말했다.“사도현, 너 진짜 미친 거지! 일부러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잖아. 이러고도 네가 남자야?”“사람들은 이미 우리를 한 쌍의 커플로 보고 있어. 커플이 같은 침대를 쓰는 게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야?”사도현은 굳은 표정을 하고서 배경윤을 내려다보았다. 배경윤이 진찬영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이 마음에 걸렸고 신경이 거슬렸
“그, 그게...”배경윤은 입술을 깨물면서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배경윤은 사도현을 아직도 좋아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감정이 드는지도 몰랐다.‘내가 아직 좋아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설레는 순간은 있었어.’배경윤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매일 마음을 졸여야 하는 사도현보다 잔잔한 물결 같은 진찬영이 더 좋았다. 진찬영은 다정하고 친절해서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진찬영과 진지하게 만나서 결혼할 생각도 있었다.만약 이 프로그램을 통해 두 사람이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한다면 그대로 진찬영한테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었다.사도현은 빛이 나는 태양이라 열정적이고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다치는 건 결국 배경윤이었다.진찬영은 차가워 보이지만 어둠으로 모든 것을 품어주는 달이었다. 달을 바라보고 가까이하는 것만으로 행복해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도현아, 사실 나는...”배경윤은 심호흡하고는 솔직한 감정을 전달하려고 했다. 그런데 사도현은 이미 대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배경윤의 입을 막아버렸다.“읍!”배경윤은 또다시 사도현과 입을 맞추게 될 줄 몰랐다. 요트 위에서 나눴던 키스와는 달리 한편으로는 부드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운 입맞춤이었다.가볍게 부딪친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사도현은 두려워했고 비굴하게 보이더라도 배경윤한테 떠나지 말라고 빌고 싶었다.화가 나서 밀치려고 했던 배경윤은 손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가만히 쳐다보다가 더 가까이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이 세상에 불쌍하고 가엾은 강아지 같은 남자를 마다할 여자는 없을 거야. 그저 불쌍해 보여서 어쩔 수 없었어.’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고 사랑을 퍼부었다. 몸이 달아올라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너의 대답이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아. 네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사도현은 배경윤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도현아, 혹시 아까 그것도 작정하고 그런 거야? 너는 나를 너무 잘 알아. 나는 네가 미워!”배경윤의
당장이라도 별이 쏟아질 것처럼 몽환적인 순간이었다. 배경윤은 사도현의 어깨에 기대고는 조용히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알 수 없는 기류가 흘렀고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이렇게 많은 별을 볼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아. 몇 년 전에 보고 나서 한 번도 보지 못했었는데 말이야...”배경윤은 제일 빛나는 별 하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슬픔이 가득 묻어나는 눈으로 사도현을 바라보았다.“마지막으로 별을 본 건 대학교 시절에 나, 우리 오빠와, 설아까지 셋이 외국에 여행 갔을 때야. 높은 산과 낮은 산 사이에 있는 구역에 차를 세우고 텐트를 쳤어. 밤만 되면 두 설산 사이로 반짝이는 별들이 얼마나 예뻤는지... 그 별을 따라 가면 이 은하의 끝에 닿을 것만 같아서 손을 뻗어보기도 했어.”“네 말을 들으니까 상상이 돼.”사도현은 아름다운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고원지대에서 보는 별을 사뭇 다르다고 들었기에 늘 가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바삐 돌아치는 바람에 가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배경윤의 말을 들은 사도현은 마치 고원지대에 간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그때의 우리는 걱정할 것도 없이 행복하게 지냈어. 시간이 나면 운전해서 바람 쐬러 갔고 등산도 자주 갔었어. 바다를 많이 보지 못한 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지. 별들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제 자리를 잘 지키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변했을까?”배경윤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행복했던 대학 시절을 돌이켜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사도현은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평소에는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긍정적인 여자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진지하고 우울한 면이 있었네? 의외의 모습을 보게 되었어.”배경윤은 사도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별똥별이 한 획을 긋고 떨어지는 것처럼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너는 모든 사람이 너처럼 겉만 화려하고 속은 텅 빈 줄 알아? 사람은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는 말도 모르냐고!”“공주님이 웬일로 울고 있어? 그렇게 슬
“응. 보고 싶어. 그게 어딘데?”배경윤은 진지한 표정을 한 사도현을 바라보았고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그래서 겨우 진정하고 태연하게 물었다.“그럼 나랑 같이 가볼래?”사도현은 배경윤한테 손을 내밀면서 부드럽게 물었다.“이 시간 때에 가야 볼 수 있어. 너만 괜찮다면 같이 가고 싶어. 네가 싫다면 강요하지 않을게.”배경윤은 사도현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가자! 혼자서 심심했었어.”“나의 공주님한테는 최고의 선물이 될 거야.”사도현은 눈이 휘어지게 웃으면서 배경윤을 데리고 자신만의 아지트로 달려갔다.두 사람이 멀어진 뒤로 배경윤이 처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날이었다.사도현은 자신이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준 모습에 배경윤이 감동했을 것이라고 여겼다.몇 분 후, 두 사람은 섬의 다른 한 끝에 도착했다. 그곳은 사도현이 지내는 초가집이었고 마당에서 게스트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모여 앉아 해산물을 구워 먹고 기타를 쳤다. 남성 참가자와 여성 참가자 사이에 핑크빛 기류가 흘렀고 분위기가 한층 더 무르익어갔다.“설마 제일 예쁜 풍경이 저 사람들이 해산물을 구워 먹는 모습은 아니겠지?”배경윤은 멀리서부터 한곳에 모여 놀고 있는 게스트들을 발견했다. 사도현한테 속은 것 같아서 화가 솟구쳐 올랐고 배신감이 들었다.‘이럴 줄 알았어. 진지한 척만 하고 항상 나를 놀리고 싶어 했지. 내가 또 속을 줄 알아?’“그쪽 말고 여기로 가자.”사도현은 배경윤을 데리고 아무도 모르게 뒷문으로 초가집 안에 들어갔다. 배경윤은 미간을 찌푸린 채 사도현을 노려보았다.“고작 초가집을 보여주려고 데리고 온 거야? 그럴 바에는 나가서 다른 사람들이랑 노는 게 낫겠어. 너는 왜 항상 나를 놀리는 건데? 단 한 번만이라도 진지할 수는 없어?”“잠깐만 기다려 줘. 곧 보게 될 거야.”사도현은 배경윤의 두 눈을 손으로 가리고 불을 껐다.“사도현,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또 허튼수작을 부렸다가는 소리 질러서 너를
[재벌가 도련님과 암컷 돼지의 은밀한 관계!][사도현의 정신 상태 우려스러워...]사도현의 부드러운 노랫소리 덕분에 암컷 돼지는 첫 번째 새끼 돼지를 순리롭게 낳았다.“드디어 아기를 낳았어! 돼지야, 너는 정말 멋진 엄마야. 다른 아기도 힘내서 낳자!”사도현은 새끼 돼지 몸을 수건으로 닦아주고는 낡은 옷에 감싸안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혔고 마음이 뭉클했다.예전부터 사도현은 딩크족이었다. 아이는 그저 악마 같은 존재일 뿐, 절대 가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갓 태어난 새끼 돼지를 보면서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이 프로그램이 끝나면 경윤이랑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거야. 경윤이를 닮은 아이면 얼마나 예쁠까?’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한 출산이 마무리되었다. 다섯 마리의 암컷 돼지는 순리롭게 몇십 마리의 새끼 돼지를 낳았고 장은학은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사도현이 빨리 달리고 용기를 낸 덕분에 다른 게스트를 제치고 먼저 1000점을 획득했다. 장은학은 마을 이장과 함께 꽃다발을 건넸고 ‘돼지 출산 전문가’라는 글이 적힌 상장도 주었다.사도현의 하얀 셔츠가 더럽혀졌지만 꽃다발과 상장을 안고 있으니 무척 행복했다.사도현은 배경윤 쪽으로 다가가서 환하게 웃더니 상장을 보여주면서 말했다.“경윤아, 내가 결국 해냈어. 네가 후회할 날이 올 거라고 내가 말했었지? 이제는 그렇게 여유롭지 못할 거야. 기대해도 좋아.”배경윤은 싱글벙글 웃는 사도현을 바라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고 슬며시 엄지를 내밀었다.“네가 진짜 해낼 줄은 몰랐어. 진짜 대단해.”날이 어두워지자 사도현은 게스트들을 불러 해산물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게스트들은 모닥불 앞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도현은 사람을 시켜 진찬영이 파티에 참가하지 못하고 업무 전화만 받게 했다.사도현은 배경윤이 지내는 숙소로 걸어갔다.배경윤은 해산물 바비큐 파티에 참가하지 않고 혼자 별장의 베란다에 기대 넓은 바다를 내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날이 어두워
암컷 돼지들은 괴로워하면서 소리를 질렀고 허공에 대고 발길질했다. 그러면서 몸에 붙어있던 배설물이 사방으로 튀어서 접근하기 어려웠다.사도현은 토하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고 천천히 다가갔다.“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좀 해 봐! 난산이어서 이러다가 죽을지도 몰라.”장은학은 급한 마음에 목청을 높여 말했다.“확실히 할 줄 아는 사람 맞아? 할 줄 모르면 당장 나와. 자네 말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어.”“잠시만요. 제가 할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사도현은 코를 막고 겨우 말했다.‘이 세상에 내가 해내지 못하는 일은 없어. 고작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주는 걸로 겁먹지 말자. 나는 할 수 있어.’고민하던 사도현은 휴대폰을 꺼내 암컷 돼지의 출산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첫째, 산후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깨끗한 출산 공간을 만들어주고 괴망간산칼륨으로 암컷 돼지의 온몸을 한 번 닦는다.][둘째, 가위를 소독하고 새끼 돼지의 탯줄을 자른다.][셋째, 낡은 수건이거나 옷으로 새끼 돼지의 몸을 닦아주고 감싸안는다.][그리고 출산 과정에서 암컷 돼지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부드러운 말투로 다독이거나 노래를 불러서 암컷 돼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암컷 돼지의 출산 절차를 보고 난 사도현은 당장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연예계에서 알아주는 재벌가 도련님, 유명한 회사의 대표가 이제는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주어야 했기 때문이다.황당한 일이 연속 벌어지니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사도현 씨, 할 수 있는 거 맞아요? 못 하겠으면 빨리 나오세요. 대학교 때 배웠던 적이 있어서 제가 더 잘할 것 같거든요.”하늘은 돼지우리 밖에서 목을 빼 들고 말했다. 하늘은 사도현 다음으로 제일 초라한 별장을 선택한 사람이었기에 별장을 바꾸고 싶었다.“할 수 있으니 들어오지 마세요. 이건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사도현은 심호흡하고는 가만히 누워있는 암컷 돼지를 괴망간산칼륨으로 닦아주었다.암컷 돼지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면서 버둥거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