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설아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더니 말했다.“난 산책 나왔지. 선우 저택이 워낙 예뻐서 말이야. 그런데 갑자기 오줌이 마려운 걸 어떻게 해, 그래서...”‘휴,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으려면 나 자신을 더럽힐 수밖에.”“그래?”선우시원은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말했다.“진작 올 걸 그랬어, 그럼 재미난 구경을 했을 텐데 말이야.”“변태 아니야?”차설아는 뒤가 켕겨 오히려 적반하장 했다.“또 그런 소리를 하면 나 내일 당장 비행기표 사서 돌아갈 거야. 너랑 연기 그만할 거라고.”“미안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 그런데 옷이 왜 그래? 왜 하인들이 입는 옷 같아? 화장도 어딘가 이상한데...”“뭐가 이상해? 이게 내 생얼이야. 못생겼다고 둘러 말하는 거야? 그리고 이 옷은 옷장에 걸려있던데? 예뻐서 입었어? 지금 나 하인 같다고 놀리는 거야?”“그게 아니라...”선우시원은 말문이 막혔다.“됐어, 설명 필요 없어. 나 피곤하니까 자러 갈게!”차설아가 말하고는 재빠르게 자리를 떴다.선우시원은 점점 멀어져 가는 아담한 여인의 모습을 보고는 입꼬리를 씩 끌어올렸다.‘차설아 대단하네. 겁먹지도 않고. 오히려 적반하장도 하고.’방에 돌아간 차설아는 옷을 바꿔입고 화장을 지운 후 푹 자려고 했다.선우 가문의 침대는 솜처럼 푹신했다. 따뜻하고 부드러워 그녀는 매우 빨리 깊은 잠이 들었다.잠을 너무 잘 자서인지 그녀는 꿈까지 꿨다.다만 좋은 꿈이 아니었다, 성도윤이 출연한 악몽이었다.꿈속에서 성도윤은 채찍을 휘두르며 걸상에 꽁꽁 묶인 그녀를 괴롭혔는데, 포악한 얼굴로 협박까지 했다.“차설아, 참 대단하네. 감히 나 배신하고 다른 남자랑 결혼하려고 해? 당장 돌아와, 아니면 온갖 수단을 동원해 당신 괴롭힐 거야!”채찍이 한 번 또 한 번 바닥에 부딪혔고, 기름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남자는 검붉게 달군 철 덩이를 들더니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아, 안 돼! 지금 당장 돌아갈게!”차설아가 팔다리를 휘두르며 소리를 질렀
차설아는 왠지 성도윤에게서 걸려 온 전화라는 예감이 들었다. 발신자 주소가 해안으로 표시되었기 때문이다.차설아는 무시하려고 했지만, 전화는 끊임없이 울렸고, 양보아도 온화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전화를 받으라는 신호를 보냈다.그녀는 도둑이 제발 저리지 않기 위해, 일부러 침착한 척 연결버튼을 눌렀다.“이제야 전화를 받네!”전화기 너머에서 성도윤의 차가운 목소리는 악몽과 똑같았다. 차설아는 흠칫 놀라더니 연기를 시작했다.“뭐라고요? 보험이요? 미안하지만 보험 안 들어요. 끊을게요.”“차설아, 전화 끊기만 해! 뚜뚜뚜!”성도윤의 포효하는 목소리는 즉시 끊어졌다.“휴, 요즘 이상하게 보험사들이 전화가 오네요. 대출 전화도 많이 오고, 정말 귀찮아 죽겠어요.”차설아는 침착하게 양보아에게 설명하면서 능숙하게 번호를 블랙리스트에 넣었다.하지만 곧 또 새로운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번호를 블랙리스트에 넣는 족족 다른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니 차설아는 어쩔 수 없이 화장실을 간다는 이유로 자리를 떴다.“성도윤, 당신 미쳤어? 왜 계속 전화하는 거야? 당신은 내 전남편이라는 걸 잊지 마!”차설아는 목소리를 낮추어 쏘아붙였다.전화기 너머로 몇 초 동안 침묵이 흐른 후,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방해할 생각은 없었어. 어머니가 당신 찾으러 갔는지 물어보려고. 지금 잘 계셔?”“여사님 아직 안 돌아가셨어?”차설아는 좀 뜻밖이었다.해안과 S시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소영금은 이미 해안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을 수 있을까?혹시, 소영금에게 뭔 일이라도 생긴 걸까?“그러니까, 어머니가 S시에 가서 당신을 만났다는 거네?”“맞아, 오셨어. 그런데 어젯밤에 내가 보냈거든. 아직 도착하지 못했을 리가 없어!”“젠장!”성도윤은 나지막이 욕을 하더니 사람을 얼릴 정도로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내가 지금 당장 선우 가문으로 갈 테니까, 당신은 어머니가 무사하기를 기도하는 게 좋을 거야. 만약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저희 왔어요, 우리 설아 푹 자고 왔으니 다들 식사하세요.”조보아는 차설아를 끌고 자리에 앉았다.“할아버지, 아저씨, 시원아, 다들 굿모닝이에요.”차설아는 예의 바르게 세 사람에게 안부 인사를 하며, 활짝 웃었다.“그래, 어젯밤엔 잘 잤어?”선우도환은 자애로운 얼굴로 차설아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네 할아버지 덕분에 푹 잤어요.”차설아는 계속 얌전한 모습을 보였다.이런 방면에서 차설아는 특히 경험이 많았다. 성가네 집에서 4년 동안이나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얌전한 모습은 그녀의 가면이었다.“진짜 잘 잤어?”선우시원은 웃음을 참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어제 한밤중에 마당에서 산책하고 있었잖아? 정력이 남아돌아서 개구멍까지 메우고. 난 네가 잠자리가 불편한 줄 알았지!”차설아는 선우시원을 흘겨보았다. 이 자식을 당장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빌어먹을 자식, 진짜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야?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런 짓을 하고 있는데?’“개구멍?”선우도환의 자애로운 눈빛은 바로 매서워졌다.군인의 살벌함을 띤 그의 눈빛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차설아는 황급히 설명했다.“잠자리가 낯설어서 처음에 잠이 안 오더라고요. 달빛도 좋고 해서 산책을 하다가 마침 개구멍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강박증에 개구멍을 막아버렸죠.”선우도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따지지 않고 말했다.“오늘은 첫날이니 늦잠을 잘 수 있지만 앞으로는 안 돼. 우리 가문은 군사적 시스템이라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외출해! 이렇게 해야 사람의 의지를 단련하는 데 도움이 되거든!”“네?”“너는 장군의 후예이니 이런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지. 네 할아버지도 하늘에서 내가 너를 의지가 강한 사람으로 키우기를 바라고 있을 거야!”“아...”차설아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할아버지는 확실히 생전에 그녀에게 격투기, 총 조립, 폭탄 해체, 심지어 군사 훈련까지 가르쳤지만, 생활 방면에서는 이렇게
“그게 대체 뭔 말이야? 똑바로 말해!”양보아가 매서운 표정으로 외쳤다.하인은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차근차근 보고했다.“어젯밤에 우리보다 더 고급진 유니폼을 입은 낯선 하인이 소영금을 전담했다면서 저한테 길을 안내하라고 했어요. 반성실까지 데려다주고 전 돌아왔어요... 오늘 가보니 그 낯선 하인과 소영금이 모두 사라졌어요. 그 신입이 놓아준 게 틀림없어요!”“간도 크구나!”선우도환은 가문의 권위가 도발 당한 것 같아 화가 잔뜩 차올랐다.“대체 누가 감히 우리 집안에 몰래 들어와 겁도 없이 이런 일을 저지른단 말이야! 우리 집안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구나!”“당장 조사해! 발견 즉시 손발을 잘라버려! 우리 집안을 도발한 최후를 똑똑히 보여줘야지!”선우준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늘 가문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에게 말했다.“왜 아직도 멍하니 있어! 당장 가서 조사해! 감히 우리 가문에 대적한 자를 반드시 잡아 온다!”차설아는 머리를 파묻고 감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행여나 하인이 자신을 알아볼까 봐 마음을 졸였다.훈련된 병사들이 장갑차를 몰고 출동하자, 차설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뭐야, 이 사람들 진심이야? 진짜 일을 크게 만든다고?’‘만약 내가 사람을 풀어준 것이 밝혀지면, 내 손발은 아작나겠어!’선우 가문은 예로부터 이렇게 극단적인 스타일이라, 차설아가 놀란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선우 가문은 강압, 집권, 고문 등 극단적인 방식으로 S시에서 권위를 공고히 하는데 습관 되었다.“일단 식사부터 하세요. 우리 설아 괜히 밥맛 떨어지게 하지 말고.”양보아는 선우 부자를 향해 눈짓을 하며 말했다.그들은 젓가락을 들고 아침 먹을 준비를 했다. 다만, 먹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군가를 우렁차게 불러야 했다.차설아는 이런 상황이 몹시 불편하여 속으로 중얼거렸다.‘바람이 일찍 집에서 도망쳐 해커가 된 건 이유가 있었어. 집안 분위기가 이렇게 억압적이니, 나였어도 가출을 했을 거야!’차설아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그들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용
“뭐? 무슨 헛소리야?”양보아는 선우시원을 쏘아보았다.가문을 배신하는 일을 저지르면, 선우도환은 육친을 막론하고 엄벌에 처하는 사람이었다. 이건 자기 목숨을 내놓는 행동이나 다름없었다.선우시원은 느릿느릿 말했다.“헛소리 아니에요. 진짜 제가 풀어줬어요. 그렇게 복잡한 비밀번호는 저희 집안 사람만 알고 있어요. 설아처럼 단순한 애가 어떻게 그 복잡한 비밀번호를 풀고 사람을 놓아줬겠어요?”여기까지 말한 선우시원은 차설아를 바라보며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하하!”차설아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어색하게 웃었다.선우시원의 도움이 눈물 나게 고맙지만, 비꼬는 듯한 그의 모습은 정말 주먹을 불렀다.선우시원은 계속 말을 이었다.“성도윤의 손에서 마누라까지 빼앗았는데, 굳이 어머니까지 가둬 놓을 필요 있어요? 이건 너무 심하잖아요...”“성가의 실력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잖아요. 저희한테 군대가 있다는 이유로 너무 설치면 안 돼요. 성가에 돈이 차고 넘치는데, 진짜 화나면 외국에서 결사대를 고용해 우리를 무너뜨릴지도 모른다고요. 어느 정도 선은 지켜야 앞으로 얼굴 보며 살죠.”“맞아요! 맞는 말이에요!”차설아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지금 이 순간, 선우시원은 그녀의 대변인이 되었다.독선적인 오만함에 빠져있는 선우 가문 전체에서, 늘 밖에서 빈둥거리는 선우시원만 이성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선우도환은 눈살을 찌푸리고 위엄 있는 눈빛으로 선우시원을 노려보았다.“성가가 그렇게 대단해? 그럼 우리 선우 가문이 성가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이냐?”“선우 가문과 성가는 진작에 일전을 벌였어야 했어. 지금까지 조용했던 건, 설아가 성가의 사람이라 괜히 설아에게 불똥이 튈까 봐 참았던 거야. 지금은 설아가 이미 성가와 인연을 끊었으니, 난 이제 더 이상 돌볼 것도 없이 전투를 시작할 거다!”선우도환의 말을 들은 차설아는 두피가 저렸다.역시, 선우도환은 전쟁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맞아, 세 분은 리더의 이념이 달라 뼈아픈
차설아의 비정상적인 행동에 모두 어리둥절했다.특히 선우시원은 차설아의 이런 태도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진짜 두 집안이 싸우기를 원한다고?”선우시원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흥미로운 말투로 물었다.“당연하지!”차설아는 계속 감정이 격해서 말했다.“할아버지는 언젠가 내가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직접 군대를 이끌기를 원하셨어. 만약 선우 가문과 성가가 일전을 치르게 된다면, 상업적으로나 무력적으로나, 내가 선두에서 이끌었으면 좋겠어!”“좋아! 아주 당차구나!”선우도환은 만족스럽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호탕하게 웃었다.“역시 차무진의 손녀야, 여장군이 따로 없네. 못난 내 손자보다 훨씬 훌륭해!”“그러게요. 시원아, 너도 설아한테서 좀 배워. 그렇게 겁이 많아서 어떻게 설아를 지키겠어. 잘못하면 설아가 널 보호하는 게 아닌지 몰라.”양보아는 선우시원을 흘겨보며 하찮은 표정이 역력했다.선우시원은 차설아의 옷자락을 잡아당겨 그녀의 귀에 대고 조용히 물었다.“대체 무슨 꿍꿍이야? 겁도 없이 함부로 나대는 거야? 난 그저 할아버지와 농담을 한 것뿐인데 왜 네가 부채질을 해? 진짜 두 집안이 싸우기를 바라는 거야?”차설아는 웃으며 말했다.“평화주의인 척 연기하지 마. 애초에 날 끌어들여 성가에 대적하려던 건 너였어. 내 해커의 신분을 성도윤에게 폭로하겠다고 협박까지 했었잖아. 지금 와서 휴전을 선포하는 거야?”“그건 성도윤에 대한 너의 감정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 보려던 거였지. 성도윤에게 그렇게 애틋하던 사람이 지금은 전쟁을 하겠다는 건, 딱 봐도 이상하잖아!”여기까지 말한 선우시원은 더욱 다정하게 차설아의 어깨를 감싸고 이마를 여자의 뺨에 대고 말했다.“우리 할아버지랑 아버지 앞에서 괜히 잔꾀를 부려서 두 집안이 휴전하거나, 화해하게 만들려고 하지 마. 그러다 들통나면 나도 너를 구해줄 수 없어!”“하하하!”차설아는 별말 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선우시원과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선우도환은 희색이 만개하여 선우준
선우도환은 흥분에 차서 황급히 말했다.“맞아, 결의 대회를 전신 앞에서 하면 되겠네! 꾸물거리지 말고, 당장 헬기를 준비해서 떠나자꾸나!”“좋아요, 지금 당장 출발해요!”차설아는 팔을 흔들며 말했다.그리고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선우도환은 역시나 그녀의 예상대로 매우 충동적이고 열정적이고 심지어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했다. 전신에게 인사하러 당장 가자고 해도 움직이니 말이다.‘다행이야. 성도윤이 이 집안 사람들과 마주치는 건 막을 수 있겠어! 그때 가서 아무 핑계나 찾아서 두 집안싸움을 멈추면 그만이야!’차설아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속으로는 자신이 모든 상황을 컨트롤하고 있는 천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바로 이때, 집사가 와서 보고했다.“큰일 났어요, 어르신. 밖에... 밖에 엄청난 분께서 뵙자고 하시네요.”선우도환은 차갑게 말했다.“대체 얼마나 큰 인물이기에 유난을 떨어?”“그분은...”집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몸을 곧게 펴고 잘생긴 얼굴의 성도윤이 경비원들의 제지를 무시하고 쳐들어왔다.그는 검은 양복 차림에, 터프한 발걸음, 완벽하고 냉혹한 이목구비, 마치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차갑고 매서운 모습이었다.그는 총도 없고, 아무런 무기도 지니고 있지 않았지만, 총을 메고 있는 경비원들은 그의 강렬한 카리스마에 눌려 벌벌 떨었고,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젠장,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순간이동이라도 한 거 아니야?”차설아는 성도윤을 보고 놀라서 표정을 걷잡을 수 없었다...해안과 S시는 차로 적어도 몇 시간은 걸리는데, 성도윤이 지금 왔다는 건, 오로지 한가지 가능성뿐이었다. 그는 원래 S시에 있었을 것이다!어쨌든, 차설아가 가장 원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그녀는 정말 남자를 붙잡고 욕설을 퍼붓고 싶었다.‘성도윤, 당신 진짜 바보야? 여기가 지옥문인 걸 알면서도 쳐들어와? 누가 소 여사 아들 아니랄까 봐 하는 짓이 아주 똑같네!’차설아는 힘에 부쳤다. 겨우 소영금을 보냈는데, 지금은 성도윤이 왔다.‘보아
성도윤은 사람들을 향해 느릿느릿하지만 확고하게 말했다.“당연히 이혼절차죠.”말을 마친 성도윤은 차설아에게 다가가 긴 팔을 뻗어 자연스럽게 여자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자기야, 왜 이렇게 속을 썩여.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다른 남자랑 도망간 거야? 이러면 곤란하지.”“자... 기?”차설아는 남자의 시선을 마주 보며 두피가 저렸다.‘이 녀석... 이 정도로 연기 할 필요는 없잖아!’차설아는 어젯밤의 악몽이 생각났다. 기름, 호랑이 의자...성도윤에 의해 뜯어먹히고 있었다...선우 가문의 사람들은 이미 화가 잔뜩 차올랐지만, 성도윤의 강렬한 카리스마에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했다.선우도환은 심지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단총을 꺼내 식탁에 놓으며 매서운 눈으로 말했다.“보아하니, 성가에 꽤 쓸만한 놈이 있네. 감히 홀몸으로 우리 집에 와서 사람을 빼앗아 가다니. 듣자 하니 성가에 후손이 너 하나뿐이라고 하던데, 만약 그 유일한 후손이 우리 집에서 죽는다면 성주혁 그 노인네가 얼마나 화가 날까?”성도윤은 그 단총을 흘깃 쳐다보더니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차설아를 더 꽉 끌어안았다.“어르신, 빼앗는다는 건, 보통 자기 물건이 아닌 것에 사용하죠. 저랑 설아는 서로 지극히 사랑하는 부부이고, 어엿한 저의 아내이니 원래 제 것이죠. 그러니 빼앗는다는 표현보다는... 데려간다는 표현이 더 알맞겠네요.”“네 놈이 감히!”선우도환은 번개 같은 속도로 총을 집어 들어 성도윤의 머리에 대고 사납게 말했다.“어떤 표현이 더 알맞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내 집에서 사람을 데려가는 건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니까!”“네 할아버지가 말해줬나? 난 절대 총알을 낭비하지 않는다고, 무조건 백발백중이지.”차설아는 양팔을 벌리고 성도윤의 앞을 가로막고 큰 소리로 말했다.“할아버지, 진정하세요. 권세를 믿고 약자를 괴롭히라고 제 할아버지가 이 총을 드린 것이 아니에요.”그녀의 말에 모두들 숨을 들이쉬었다.양보아는 끊임없이 차설아에게 눈
검은 그림자는 다름 아닌 서씨 가문 서은아였다. 서은아는 그동안 차설아를 감시하고 있었다. 차설아가 식당에 밥 먹으러 간 사이에 차성철이 있는 병실을 책임지는 간호사에게 돈을 쥐여주었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수술을 마친 뒤, 침대에 누워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차성철은 살짝 다쳐도 부서질 것처럼 나약해 보였다. 서은아는 병실 침대 앞에 서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작은 물건을 차성철 베개 옆에 올려놓고는 산소마스크를 벗겼다.“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미안해. 당신이 식물인간이 되면 당신 여동생도 기가 죽어서 나대지 못할 거라고 믿었어. 그런데 박성훈이 와서 당신을 살렸지 뭐야? 성도윤이 박성훈한테 부탁한 거라면서? 정말 어이가 없더라. 보나 마나 차설아가 성도윤한테 부탁한 거겠지. 뻔뻔스러운 년이...”서은아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날 탓하지 마. 탓하려면 그 못난 여동생을 탓해. 차설아는 내가 성도윤과 약혼한 사이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 성도윤한테 달라붙으면서 날 괴롭혔어. 동생이 저지른 잘못은 오빠인 당신이 책임져야지. 안 그래?”서은아는 말을 마친 뒤, 감시 카메라를 피해 조용히 병원을 나섰다. 식당에 앉아 있던 차설아는 바람이 포장한 음식을 보면서도 어쩐지 불안해서 먹고 싶지 않았다.“설아야, 네가 제일 좋아하는 탕수육이야. 다른 식당에서 하는 건 눅눅해서 맛없지만 이 식당에서 하는 건 바삭하잖아. 바람 씨가 널 위해서 사 온 건데, 한 입이라도 먹어 봐.”배경윤은 불안해하는 차설아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바람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이 식당에 줄을 서려고 아침 일찍 깨어났어. 하지만 스파크가 좋아하는 거라면 눈이 오든 비가 내리든 사러 가야지.”바람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피식 웃었다. 그동안 차설아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쯧쯧. 바람 씨한테 설아를 맡겼다가는 뚱보가 되겠어. 한 달 안에 10킬로 찐다는 것에 내 머리카락을 걸겠어.”“스파크는 살이 쪄도 예뻐서 괜찮아. 지금처럼 귀여울 거
배경윤은 박성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박성훈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도윤이 데려온 의사라는 말에 성도윤처럼 나쁜 사람인 줄 알고 경계했다.“경윤아, 그러지 마. 박 선생님은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빠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준 분이야.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차씨 가문의 은인이 될 분이거든.”차설아는 다시 일어나더니 박성훈한테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박 선생님, 죄송해요. 경윤이는 늘 저를 아껴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이라 이런 일에서는 예민하게 굴거든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아요. 병원에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죠. 만나본 보호자 중에서 제일 정상적인 반응이거든요. 저는 이해해요.”박성훈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저 말고 성 대표님께 고맙다고 해야죠. 저는 수술할 생각이 없었는데 성 대표님이 간절하게 부탁했고 제가 좋아하는 바다낚시까지 같이 해주셔서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바다낚시 내기에서도 졌으니 성 대표님 말대로 수술해야 했어요.”“성도윤이 어렵게 모신 분인 건 알고 있었어요. 나중에 오빠가 깨어나면 인사하려고요.”“잘 생각했어요.”박성훈이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말을 이었다.“생각이 많으면 마음이 힘들 거예요. 사실 생각처럼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일은 없으니 마음 편안하게 먹고 환자분이 깨어나길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박성훈은 사무실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 오후 4시라서 박성훈이 말한 시간까지는 아직도 4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배경윤은 차설아가 또 쓰러질까 봐 걱정되었다.“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밥부터 먹자.”“괜찮아. 난 배고프지 않아. 오빠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 오빠가 일어나야 내 마음도 편해질 것 같아.”차설아는 병실 밖에 서서 침대에 누워있는 차성철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이러다가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오빠도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을 거야.”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배경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네가 말한 사람이 그 나쁜 놈은 아니겠지? 아니라고 말해.”차설아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그 사람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그래도 도움받았잖아.”“아...”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머뭇거렸다. 차설아한테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고는 목적, 증언, 사건 발생 시간으로 보았을 때 성도윤이 배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 없이 성도윤을 범인으로 몰아갈 수 없었다. 만약 이 말을 꺼냈다가 차설아와 성도윤이 싸우게 된다면 손해 보는 건 차설아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성도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설아야, 그저 네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성도윤을 너무 믿지 마. 성도윤이 어떤 사람인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진심을 드러내지 말고 계속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알겠지?”배경윤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했다.“나도 알아. 지금까지 성도윤을 용서한 적 단 한 번도 없어. 오빠 얼굴에 남은 흉터를 볼 때마다 성도윤이 떠올라서 화가 솟구쳐 오르거든... 성도윤이랑 잘 해볼 생각이 아니라 그저 좋은 의사를 데려와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차설아는 수술실을 바라보면서 말했고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눈에 핏줄이 가득 서렸지만 차성철이 나올 때까지 쉴 수 없었다. 성도윤에 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차설아의 마음이 아팠기에 더는 신경 쓰지 않았고 애매모호한 선을 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더 마주치지 않는 것이 두 사람을 위한 일이었다.“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더 이상 그 사람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알지만 항상 경계해야 해. 그 사람이 얼마나...”“알겠어. 곧 수술이 끝날 테니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오빠가 무사히 나오기를 바라면서 기다리자.”차설아는 배경윤의 말을 끊었다.“그래. 같이 기다려보자.”배경윤은 슬픔이 가득 서려 있는 차
사도현은 턱을 쳐들더니 거만하게 말했다.“내가 바로 배경윤 남자 친구예요.”사도현의 말에 같이 식사하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두 사람이 보통 사이가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회사 대표가 당당하게 공개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뭐?”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 사도현이 미친 짓을 저지를 줄 예상 못했는지 사도현을 향해 부르짖었다.“사도현, 너 정말 미친 거야?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헤어진 지 얼마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남자 친구라고?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찬영 오빠 앞에서 공개하다니... 정말 제대로 미친놈이구나. 내 미래의 남자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람한테 알려주려고 작정한 거야!’“내 말이 틀렸어? 우리 사귀는 사이 맞잖아.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온 첫 번째 날에 어떻게 같은 방, 같은 침대에서 잤겠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사도현이 피식 웃더니 부르짖는 배경윤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다. 배경윤의 시선을 느끼면서 이제야 자신의 것을 되찾은 것 같았다.“그, 그건...”배경윤은 말문이 막혔다. 설명하면 할수록 말려드는 것 같아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때 진찬영이 입술을 깨물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만약 두 사람이 한방에 들어가는 것이 사귄다는 증거라면, 사도현 씨는 배경윤 씨가 아니라 윤설 씨의 남자 친구인 것 같은데요? 윤설 씨 곁을 떠난 적이 없잖아요. 도대체 두 분 중에서 누구의 남자 친구인지 헷갈리네요. 아니면 두 분을 속여서 양다리를 걸친 게 아닐까 싶어요.”진찬영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반격할 수 있는 틈을 찾았다. 그러고는 도덕적인 면에서 사도현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맞아요! 같은 방을 쓰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날에 남은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랬어요. 우리 두 사람 모두 외양간에서 자기 싫었거든요. 그날 밤에 아무 일도 없었지만 윤설 씨랑 사도현 씨 사이는 각별했어요. 정성을 다해서 보살핀 여자랑 사귀는 것 같은데 왜 나를 언급하고 난리야! 난 너처럼 미친놈이랑 사귈 바
그 말을 들은 장윤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윤태가 다급히 뜯어말렸다.“집에 갈 정도로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죠! 그런 설정을 할 생각도 없었어요. 찬영이도 커플 설정을 원하지 않을 테니 강요할 수 없었거든요. 다들 장난치는 거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장윤태는 게스트들이 말하는 커플 중 한 쌍이 진찬영과 배경윤임을 확신했다. 옆에 앉아 있던 사도현은 굳은 표정으로 진찬영을 노려보고 있었다.“장 감독님,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에요.”배경윤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개인적인 일로 해안시에 다시 돌아가야 해요. 프로그램 촬영하는 동안 정말 재밌었어요. 게다가 찬영 오빠랑 커플로 촬영할 수 있다고 하면 더 행복했을 거예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해요.”“잘생긴 남자라면 다 좋아하나 보지?”말을 마친 사도현은 혼자서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장윤태는 배경윤을 설득하지 못하자 재빨리 다른 제안을 했다.“급한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죠. 곧 연애 예능 촬영이 있는데 그때 시간이 되면 우리 찬영이랑 같이 게스트로 출연하지 않을래요?”“좋아요!”배경윤은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진찬영과 함께 촬영할 수 있다면 무슨 프로그램이든지 무조건 출연할 것이다. 진찬영과 떨어지려니 아쉬웠지만 돌아가서 차설아의 곁을 지켜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작별 인사를 했다.“배경윤 씨랑 같이 출연한다면 저도 좋아요.”진찬영은 배경윤을 향해 말했다. 애초에 진찬영은 배경윤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이 마을까지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기에 배경윤이 있는 곳에 꼭 따라갈 것이다.“그럼 두 사람이 사인한 계약서 말고 다른 계약서를 준비할 테니 이제 만나서 얘기해요. 조건을 구체적으로 적으면 이 프로그램 계약서대로 하지 않아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요.”장윤태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너무 기쁜 나머지 술을 마시면서 껄껄 웃었다.“안 돼요.”사도현이 차갑게 말했다.“배경윤은 너무 바빠서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할 시간이 없을 거예요.”배경윤
사도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누가 진찬영을 밀어주든지 상관없이 배경윤에게 나쁜 의도를 갖고 접근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재벌가 아가씨의 마음을 얻으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윤설 씨가 사도현 씨한테 빌붙어서 드라마 여주인공 역만 맡는 것처럼요?”진찬영이 말을 이었다.“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도 사도현 씨랑 같은 줄 알고 섣불리 판단할 수밖에 없겠죠. 더 이상 의미 없는 대화는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진찬영이 가마뚜껑을 열어보자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추어탕 안에 청양고추를 넣으니 배경윤이 좋아하는 매콤한 추어탕이 완성되었다. 사도현이 뭐라고 더 말하려고 할 때, 진찬영이 추어탕을 옮겨 담고는 주방을 나섰다. 사도현은 불을 피우면서 흘러나오는 연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두 남자의 대결은 사도현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여러분, 오늘 메뉴는 추어탕이에요! 어서 드셔보세요!”진찬영은 환하게 웃으면서 쉬고 있던 게스트들을 불렀다. 배경윤은 터벅터벅 걸어 나와서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진찬영이 해준 밥을 먹어서 기쁘긴 했지만 웃을 힘조차 없었다.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진찬영은 직접 국을 떠주면서 말했다.“먼저 밥부터 먹고 다시 생각해요. 배경윤 씨를 위해 만든 건데, 한 입도 먹지 않으면 좀 속상할 것 같거든요.”“아, 죄송해요. 생각할 게 많아서 신경 쓰지 못했어요.”배경윤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추어탕을 먹기 시작했다.“먹어봤던 추어탕 중에서 제일 맛있어요!”“당연히 그렇겠죠. 추어탕에 진찬영 씨의 사랑이 가득 들어갔으니 맛없을 리가 없잖아요. 우리 같은 구경꾼들은 배경윤 씨가 부러워 죽겠다니까요!”“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은 분이 누군가를 위해서 직접 미꾸라지를 손질했다니깐요. 보통 정성이 아니에요! 그 여자 덕분에 저희도 이렇게 맛있는 추어탕을 먹어보네요.”추어탕을 맛보던 게스트들이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진찬영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들으면서 배
윤설이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나는 그렇다고 한 적 없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 더 알려줄 것도 없고요. 정말 궁금하다면 의심 가는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보세요.”배경윤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쥔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이미 배후가 밝혀진 마당에 더 캐묻는 건 멍청한 사람이나 할 짓이었다. “그리고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 새겨들어요. 도현 씨랑 성도윤은 생사를 함께 겪은 형제이니 도현 씨를 멀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도현 씨는 성도윤 편을 들 테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차성철이 수술했다는 것을 성도윤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게다가 성형외과 의사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윤설은 배경윤의 반응을 지켜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성도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성도윤이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 연관된 일이긴 하지만 그게 결국 성도윤의 일이 되는 거지. 난 사실만 말했으니 아무 잘못도 없어. 배경윤, 이제는 도현 씨 곁에서 떨어져!’“난 성도윤이 그런 일을 벌일 줄 알았어요! 천하의 나쁜 놈 같으니라고...”윤설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모든 것이 성도윤과 연관된 일이라고 확신했고 사도현이 성도윤을 도와주었다고 여겼다. ‘계속 여기에 남아있어서는 안 돼. 얼른 해안시로 돌아가서 설아한테 알려줘야지. 그놈 때문에 또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어! 설아야, 조금만 기다려줘!’주방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은 두 남자의 대결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진찬영은 앞치마를 두르고 소매를 올린 채 두부를 썰었다. 집중하는 모습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멋있어서 여자든 남자든 진찬영에게 반하고 말 것이다.하지만 부뚜막 앞에 앉아 불을 피우고 있는 사도현은 진찬영을 노려보기에 바빴다. 사도현은 장작을 진찬영의 팔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토막으로 끊이고 불 속에 집어넣더니 차갑게 말했다.“우리 둘밖에 없으니 솔직하게 말해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예요? 돈 때문이라면 원하는 만큼 줄 테니 말해봐요. 얼마면 되
배경윤은 윤설이 단둘이 얘기하자는 말에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다. 하지만 이 일은 차설아 친오빠의 목숨과 연관된 일이었기에 윤설의 의도를 알면서도 함정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내 방으로 가서 단둘이 얘기해요.”배경윤은 앞장서서 사도현과 지냈던 방으로 들어갔다. 박지영은 윤설을 방까지 부축한 뒤, 재빨리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윤설은 울퉁불퉁한 방바닥, 구멍이 난 천장과 낡아서 당장이라도 망가질 것 같은 침대를 보면서 말문이 막혔다.윤설은 미묘한 감정이 들었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도현 씨랑 이런 방에서 같이 지낸 거예요?”“네. 침대도 푹신하고 공기가 좋아서 잘 잤어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배경윤은 윤설이 방에 들어오자마자 이런 말을 먼저 꺼낼 줄 몰랐다. 사도현은 배경윤과 같은 침대에서 잤지만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윤설 곁을 지켰다.‘이런 것까지 질투하는 건가?’“쓰레기 소각장 같은 곳에서 도현 씨가 지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요. 도현 씨는 결벽증 때문에 이런 곳에서 자지 못했을 거라고요.”“쓰레기 소각장이라고요?”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렸다.“이 방이 아니면 외양간에서 소랑 같이 자야 하거든요. 이 정도면 꽤 좋은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윤설 씨가 결벽증인 것 같아요.”“도현 씨가 배경윤 씨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맞네요. 배경윤 씨를 위해서 이런 누추한 방에서 자고 더러운 진흙으로 들어가 배경윤 씨를 안아 들다니... 내가 배경윤 씨를 얕잡아 봤네요.”윤설은 눈시울을 붉히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 배경윤은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입을 열었다.“본론만 얘기하세요. 배후가 누구기에 성형외과 의사한테 전화하게 된 거죠?”“말해도 배경윤 씨가 할 수 있는 건 없을걸요?”윤설은 차갑게 웃더니 거만한 눈빛을 하고서 배경윤을 훑어보았다. 배경윤이 목을 치려고 하는 배후는 손을 뻗을 수도 없을 만큼 높은 곳에 있었다.“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 하더라도 알 건 알아야겠어요. 더 휘말리고 싶지 않다면 배후가 누구인
게스트들은 사도현의 표정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불을 피우러 가는 게 아니라 사람을 죽이러 가는 것 같은데요?”옆에서 듣고 있던 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네가 불을 피운다고?”그러고는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너처럼 귀하게 자란 도련님들은 장작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잖아. 그런데 불을 피우다니, 네가 듣기에도 웃기지 않아?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주방에서 나오는 게 도움이 되겠어.”배경윤은 불을 피우고 진찬영이 요리할 때 옆에서 도와주려고 했다. 그런데 사도현이 갑자기 끼어들어서 몹시 당황했다.‘사도현은 왜 자꾸 끼어들려고 하는 거야! 찬영 오빠랑 같이 경운기를 타려고 할 때, 찬영 오빠랑 미꾸라지를 잡을 때, 찬영 오빠랑 같이 요리하려고 할 때 계속 방해만 하잖아. 명색이 엔터테인먼트 대표라는 놈이 이렇게 한가해도 되는 거야?’“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불 피우는 건 다 거기서 거기 아니야? 아니면 여자가 옆에 있어야 요리할 수 있다는 건가? 세상에 그런 바보가 있을 리가 없잖아.”사도현은 팔짱을 낀 채 진찬영을 쳐다보면서 배경윤한테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사도현의 의도가 무엇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사도현은 일부러 진찬영을 저격했다.“너 자꾸 함부로 말할 거야?”배경윤은 화가 나서 사도현을 노려보았다. 팬으로서 누군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여우 같은 놈, 여자가 없으면 요리를 못하는 놈이라고 욕한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괜찮아요.”진찬영이 피식 웃더니 배경윤의 팔목을 잡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저는 배경윤 씨가 옆에서 보고 있어야 안심이 되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그럴 능력도 없으면서 혼자 하겠다고 설치다가 일을 망치던데요?”진찬영은 사도현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그래도 사도현 씨께서 불을 잘 피울 수 있다고 하셨으니 믿어야죠. 다들 쉬고 계세요. 다 되면 알려드릴게요.”진찬영과 사도현은 주방으로 들어가서 아무 말 없이 각자 할 일을 했다. 마당에 앉아 있던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