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현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서둘러 말했다.“병원에 전문 간병인이 있어. 그분한테 맡기면 되니까 나 신경 쓰지 마.”“진심이야. 네가 이 사람을 구했으니, 내가 뭐라도 해야 마음이 놓여. 거절하지 마!”성도윤은 경건한 태도로 말했고, 사도현을 재촉했다.“얼른 입 벌려. 죽 먹어!”사도현은 어쩔 수 없이 고분고분 그의 말대로 했다.한 입을 다 먹기도 전에 성도윤은 또 한 입 건네주며 사도현은 배가 터질 정도로 죽을 먹게 되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내가 대체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러고 있는 거야. 사람을 구하고, 다리까지 부러졌는데, 지금은 두 사람의 사랑싸움 도구가 되었으니. 누가 나보다 더 비참할까!’차설아는 죽을 거의 다 먹은 것을 보고, 얼른 사과를 하나 가져와 껍질을 깎고 건넸다. “밥 먹은 후에 과일을 먹으면 소화에 도움이 돼요.”성도윤은 또 재촉했다.“얼른 과일 먹어.”사도현은 할 말을 잃었다.‘두 사람 참 고맙다. 지금 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고, 빨리 이 난리 통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사과를 다 먹고 난 후, 차설아는 또 작은 케이크를 건넸다. 역시나... 성도윤은 또 재촉했다.“얼굴에 뭐가 묻었어요. 내가...”차설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성도윤은 수건 한 장을 들고 사도현의 세수를 ‘시중’하기 시작했다.성도윤은 차설아에게 그 어떤 ‘보답’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불쌍한 사도현은 돌상처럼 꼼짝도 하지 못하고 성도윤이 자신의 얼굴을 씻겨주고, 몸을 닦도록 내버려 두었다... 너무 괴로웠다.강진우는 옆에서 점점 기괴해지는 광경을 바라보며 말했다.“도현아, 너 참 행복하구나. 도윤이가 이렇게 세심하게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건 처음일 테니 마음껏 즐겨.”사도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얼굴에는 살려달라는 메시지가 가득했다.드디어 모든 ‘시중’이 끝나고 차설아는 병실을 나왔고, 성도윤도 따라 나왔다.“나한테 불만이 있으면 나한테 화를 내. 괜히 도현 씨 괴롭히지 말고!”차설아는 주위에 사람이 없는
차설아는 병원을 떠났지만, 마음속에는 왠지 모를 화가 들끓었다.“저 자식 진짜 재수 없어. 자기 친구가 무슨 대단한 인물인 줄 알아? 내가 해칠까 봐 저렇게 걱정되나? 그렇게까지 날 경계할 필요 있냐고? 진짜 화가 나!”차설아는 택시를 타고 성가의 본가로 향했다.민이 이모는 이미 오래 기다리고 있었고, 줄곧 초조한 얼굴로 손을 비비고 있었다.차설아가 돌아오자 멀리서 달려왔다.“아가씨, 어떻게 된 일이에요? 제가 장을 보러 간 사이에 집에 불이 나고, 저더러 성가네 집에서 기다리고 한 건, 또 무슨 뜻이죠?”차설아는 민이 이모를 보고 코끝이 찡해 났고, 오래 참아왔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마치 어린아이처럼 민이 이모의 품에 안겨 울었다.“이모, 왜 이제야 왔어요. 집이 없어졌어요. 우리 집이, 없어졌다고요!”“울지 마세요. 아가씨 울지 말아요!”민이 이모는 차설아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괜찮아요. 아가씨가 있고, 제가 있는 이상 우리 집은 사라지지 않아요. 타버리면 어때요, 다시 지으면 되죠. 울지 말아요!”“진짜 없어졌어요...”차설아는 눈물 콧물 범벅으로 흐느껴 울었다.“집은 확실히 다시 지을 수 있지만, 할아버지, 엄마, 아빠랑 같이 살았던 흔적은 다시 지을 수 없잖아요. 풀이며 나무며 벽돌 하나까지 전부 없어졌어요!”“아니에요. 불에 타버렸다고 해도 우리 마음속에 늘 존재하고 있잖아요. 아가씨 진정하세요. 재건하면 되니까, 별로 큰일이 아니에요. 우리 강한 아가씨, 절대 이런 일에 좌절해서는 안 돼요!”“맞아요, 난 좌절해서는 안 돼요!”차설아는 뭔가 생각난 듯, 울음을 그쳤다.할아버지는 눈물은 패배자의 전유물이고, 강자는 눈물을 동력으로 삼는다고 말했었다.지금 좌절하기보다는 분발하여 가문을 다시 부흥시키는 것이 우선이다!“이모, 전 절대 무너질 수 없어요. 전보다 더 큰 힘을 가져야 해요. 지금은 일단 이 집에서 머무르고, 차씨 저택을 재건하는 일은 천천히 방법을 생각해요. 다시 태어난 차씨 저택은 반드시 온 해
차설아는 예쁜 얼굴로 살가운 태도가 아닌, 당장이라도 싸움을 걸려는 모습이었다.지금은 예전과 달리 소영금의 체면을 살려 줄 필요도 없으니, 만약 소영금이 트집을 잡는다면 차설아는 얼마든지 반격할 수 있었다.하지만 차설아는 어안이 벙벙했다. 소영금은 뜻밖에도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내가 내 며느리를 보러 왔는데 뭔 이유가 필요하겠어?”“네?”차설아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어이가 턱 막혔다.소영금이 약을 잘못 먹었는가? 늘 굳은 얼굴로 차설아를 재수탱이라고 말하던 소영금이 지금 대체 왜...민이 이모는 열정적으로 말했다.“아가씨, 사모님이 선물까지 갖고 오셨어요. 한번 뜯어보시겠어요?”“그건...”차설아가 반응하기도 전에 민이 이모는 예쁘게 포장된 선물 상자를 뜯었다.“와, 사파이어 목걸이네요. 아주 예쁘고 고급스러워 보여요.”민이 이모는 소영금의 성의를 칭찬하고, 또 목걸이가 차설아에게 어울린다며, 역시 고부지간에 텔레파시가 통한다며 분위기를 한껏 끓어 올렸다.차설아는 마음속으로 의문이 가득했다.‘뭐지? 민이 이모는 내가 시어머니랑 앙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잖아?’소영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별로 비싼 건 아니고, 그저 몇천만 원 정도야. 너한테 어울릴 것 같아서 사 왔어.”소영금의 말에는 여전히 재벌가 사모님의 우월감이 깃들었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완전히 딴사람처럼 느껴졌다.차설아에 대한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차설아는 기쁘기는커녕 오히려 공포스러워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났다.“여사님, 그냥 하던 대로 하세요. 차라리 저를 재수탱이라고 부르시는 게 더 친근감 있어요. 그리고 용건이 있으시면 바로 말하세요, 사람 놀라게 하지 말고.”“너!”소영금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녀의 금쪽같은 아들의 행복을 생각하며 애써 화를 억누르고 뻔뻔하게 말했다.“넌 내 며느리야. 딸이나 다름없는 너한테 선물을 주는 건 당연한 거 아니니?”“필요 없어요!”차설아는 거절의 손짓을 하며 휴대폰을 꺼내더니 말했다.“여사님
소영금은 자신이 이미 자세를 충분히 낮췄으니 차설아는 반드시 눈물을 흘리며 승낙하리라 생각했다.전에 성가에 빌붙기 위해 비굴하기 그지없었던 차설아였기에...차설아는 대답 대신 함박웃음을 짓기 시작했고,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다.해안에서 고귀한 신분으로 늘 오만하게 살아오던 소영금에게 이렇게 웃긴 모습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소영금의 안색은 어두워지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무례하게 말했다.“뭘 계속 웃어? 그래서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어른이 물었으면 대답을 해야지. 기회는 이번 한 번뿐이야. 놓치면 다시는 오지 않는다고!”차설아는 애써 웃음을 참으려고 노력했고, 구부러진 눈은 점점 차가워지더니 똑같이 무례하게 말했다.“여사님, 제가 아드님을 차버린 이상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어요. 아드님이 무릎을 꿇고 저에게 빌어도 불가능해요. 게다가 저한테 새엄마 노릇까지 하라고 하다니!”“너... 진심이냐?”소영금은 차설아가 거절할 줄은 몰랐다.보아하니 성도윤의 말대로, 차설아는 이미 성도윤을 내려놓았고,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소영금이 질색하던 며느리가 진짜 도망가게 생겼으니, 성도윤은 이제 어떡하면 좋을까?소영금은 갑자기 당황해서, 당장이라도 밧줄로 차설아를 묶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성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좀 더 생각해 봐. 네가 우리 도윤이를 얼마나 사랑했어? 그런 마음이 쉽게 사라지겠어? 지금 홧김에 거절한 거지?”소영금은 참을성 있게 차설아를 향해 물었다.“그래, 넌 내 반쪽 딸이나 다름없으니, 솔직하게 말해 봐. 혹시 우리 도윤이처럼 차가운 스타일의 남자를 이제는 싫어하는 거야?”“지금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해? 자상한 남자? 지적인 남자? 아니면 방탕한 남자? 사실 우리 도윤이는 성격이 다양해서 어떤 스타일로도 전형할 수 있어. 내가 도윤이한테 네가 원하는 스타일대로 고치라고 말할게.”차설아는 차갑게 말했다.“괜히 헛수고하지 마세요. 제가 도윤 씨를 좋아할 때는 그 사람이 인간쓰레기라고 도 좋아했고, 좋
차설아는 자신의 전 시어머니와 민이 이모가 같은 편에 서서 전남편과의 재혼을 추진할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차설아는 이 상황이 어이없어 주방에 가서 만들어 놓은 레몬 닭발을 꺼내 먹으려 했다.닭발을 식탁에 올리자마자 시큼한 냄새가 사방에 풍겼고, 소영금까지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냄새가 참 좋네, 네가 한 거냐?”소영금은 저도 모르게 식탁 앞에 와서, 맛있게 생긴 닭발을 보며 놀랐다.“하나 드셔보겠어요?”차설아는 이미 닭발을 먹기 시작했다.그녀는 최근 신 음식이 너무 땡겨 조금도 기다릴 수 없었다.소영금은 거절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어느새 손을 뻗어 닭발을 받고 있었다.한 입 먹어본 소영금은 눈이 세 배로 커졌다.“이거... 진짜 네가 만든 거냐? 너무 맛있구나!”순간, 소영금은 재벌가 사모님의 고귀한 이미지를 돌볼 겨를도 없이 연신 닭발을 입에 쑤셔 넣었다.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먹어본 소영금이었지만, 차설아가 만든 레몬 닭발은 맛이 일품이었다.“네가 만든 닭발이 이렇게 맛있는 줄 알았더라면, 절대 도윤이와 이혼하게 하지 않았을 거야. 왜 진작에 손재주가 좋다고 말하지 않았어?”소영금은 차설아의 닭발 한 접시를 다 먹어버릴 기세였다.차설아도 평소에 상대하기 어려운 시어머니가 평범한 레몬 닭발 한 접시에 마음을 빼앗길 줄은 몰랐다.아쉽게도, 모든 것은 너무 늦어버렸다...“이거 남은 거 더 있어? 도윤이한테 갖다 주고 싶어.” 소영금은 진지하게 물었다.“조금 더 있어요. 원하시면 담아드릴게요.”차설아는 통쾌하게 말했다.자신이 만든 음식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은 원래 행복한 일이고, 더구나 그 상대가 예전에 잘 보이려고 애를 쓰던 시어머니라니, 차설아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소영금은 포장한 레몬 닭발을 들고 기분 좋게 떠났다. 하지만 나가던 중, 마침 잘생긴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다.소영금은 직감적으로 이 남자가 결코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누구 찾으러 오셨어요?”소영금은 남자를 가
“며느리요?”바람의 잘생긴 얼굴에는 흥미로운 표정이 번졌다.보아하니 눈앞의 고귀하고 단정한 여자가 바로 차설아의 전 시어머니 소영금인 모양이다.“제가 알기로 차설아 씨는 지금 싱글인데 며느리라고 하시는 건 적절하지 않은 표현 아닌가요?”“당신이 뭘 알아요!”소영금은 고개를 쳐들고 당당하게 말했다.“한 번 내 며느리는 평생 며느리예요. 설아가 재혼하지 않는 이상, 설아의 시어머니는 나라고!”바람은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입꼬리를 올렸다.“죄송해서 어쩌죠? 전 설아 씨를 데리고 부모님을 뵈러 가는 길인데? 만약 순조롭다면 설아 씨에게 곧 새로운 시어머니가 생기게 될 텐데요?”원래 불안했던 소영금은 바람의 말을 듣고 더욱 불안해져서 속사포처럼 호구조사를 시작했다.“당신은 누구죠? 부모님이 누구세요? 설아랑은 무슨 사이죠?”바람이 대답하기도 전에 소영금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설아가 내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요? 얼마나 성가의 작은 사모님 자리에 미련이 많은 줄 알아요? 내 아들이랑 재혼하는 건 시간문제인데 왜 당신이랑 부모님을 만나러 가겠어요?”“그래요?”바람은 미간을 찌푸리고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그럼 지금 가서 설아한테 물어볼까요? 얼마나 전남편을 사랑하는지, 얼마나 성가의 작은 사모님 자리에 미련이 많은지?”“콜록!”소영금은 마른기침을 하며 켕기는 듯 말했다.“그럴 필요는 없고,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만약 진짜 차설아를 찾아가 묻는다면 소영금은 제대로 망신을 당할 것이다. 이렇게 창피한 일을 그녀는 당연히 할 리 없었다.“어쨌든, 허튼 수고 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거예요. 아무리 둘 사이에 트러블이 있었어도, 설아 전남편은 성도윤이에요. 개나 소나 대체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고!”바람은 더 이상 따지지 않고 흥미 있게 말했다.“그럼 말씀대로 두고 보시죠!”소영금은 성가 저택을 떠난 후, 노기등등하여 성대 그룹의 본사로 향했다.직원들은 심상치 않은 상황에 일에만 몰두하며 감히 숨소리도 내지 못했다.“내
“난 새드엔딩에 4천만 원 걸지!”순간, 성도윤과 차설아의 재결합에 관한 내기가 시작되었다. 성대 그룹의 고위층부터 청소부를 막론하고 모두 열정적으로 참여했으며, 그 결과의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대표 사무실.“무슨 일이에요?”덤덤한 표정이던 성도윤은 문을 닫는 순간, 급한 얼굴로 물었다.“누가 설아를 빼앗아요?”성도윤의 반응에 소영금은 늘 빙산 같은 아들이 결국 여자에게 마음을 열고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순간, 소영금은 기뻐해야 할지, 한숨을 쉬어야 할지 몰랐다.“누군지는 모르겠고, 키가 크고 잘생겼어. 조금 건방진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너랑은 전혀 다른 타입이야. 만약 설아가 진짜 좋아하는 스타일을 바꿨다면, 너 위험하겠어...”성도윤은 마음이 크게 요동쳤지만,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했다.“저희 이미 이혼했어요. 설아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는 그 사람 마음이에요. 저랑 뭔 상관이에요?”“자식, 내 앞에서 센 척하기는!”소영금은 화가 나서 성도윤을 걷어차고 싶은 심정이었다.‘못난 놈, 나의 좋은 유전자는 물려받지 못하고, 오만함만 물려받았어!’“설아가 진짜 다른 남자랑 결혼하면, 그때 가서 방에서 몰래 울지나 마!”소영금은 화가 나서 말했다.“오늘 그 잘생긴 녀석이 설아를 데리고 부모님에게 인사하러 간다고 했어. 기세를 보니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 네가 진짜 남자라면 당장 가서 붙잡으라고!”성도윤은 흠칫 놀라더니 물었다.“혹시 배경수예요?”“아니! 만약 그 녀석이었으면 나도 걱정 안 해. 설아랑 경수는 딱 봐도 어린아이 소꿉장난이라 결과가 있을 수 없어!”“오늘 그 잘생긴 녀석은 카리스마도 있고 분위기도 있고, 집안이 보통이 아닌 것 같았어. 너랑 막상막하였다고!”바로 이런 위기감 때문에 소영금은 지체하지 않고 성도윤에게 달려와 차설아를 붙잡으라고 한 것이다.“...”성도윤의 잘생긴 얼굴은 어두워지더니 침묵에 잠겼다.‘차설아... 당신 대단해. 이혼한
성도윤은 차가운 얼굴로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만나면 만나는 거죠. 어차피 지금은 자유의 몸인데 제가 묶어 둘 수는 없잖아요?”소영금은 눈살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그래, 계속 고집 부려! 그때가서 후회나 하지 말라고!”솔직히, 소영금은 차설아가 너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단지 성도윤의 마음이 차설아에게 움직였고, 사랑에 빠진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게다가, 오늘 차설아가 만든 레몬 닭발이 너무 맛있어, 차설아에 대한 인상이 더 좋아졌다.이래저래 소영금은 차설아를 다른 남자에게 빼앗기는 것이 아쉬웠던 것이다!소영금은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아예 울분을 식욕으로 바꾸고, 레몬 닭발이 가득 담긴 상자를 열고 닭발을 먹기 시작했다.레몬 닭발의 향기가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재벌가 사모님의 우아한 이미지는 벗어던지고 열심히 닭발을 뜯는 소영금을 보며 성도윤은 의혹스러움이 가득했다.“지금 뭐하는 거예요?”“보면 몰라? 닭발 먹고 있잖아!”소영금은 짜증스럽게 말했다.차설아가 담근 레몬 닭발은 정말 먹으면 먹을수록 맛있어서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소영금은 앞으로 레몬 닭발을 자주 먹기 위해서라도 성도윤을 부추겨 차설아의 마음을 돌릴 것이다.이미지를 신경 쓰지 않는 소영금의 모습을 본 적이 없는 성도윤은 레몬 닭발에 대해 강렬한 호기심이 생겼다.“특별한 닭발인가요? 왜 굳이 제 앞에서 드세요?”소영금은 대답 대신 신비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성도윤에게 닭발 하나를 건넸다.“일단 하나 먹으면 내가 알려줄게.”성도윤은 얼굴을 찡그렸다.“전 이런 음식 안 좋아하는 거 아시잖아요.”“좋아하고 말고는 하나 먹어보고 얘기해. 맛있을 수도 있잖아?”마침 점심시간이었고, 배가 고팠던 성도윤은 마지못해 받는 척하며 천천히 닭발을 맛보기 시작했다.“어때? 맛있지?”소영금은 서둘러 물었다.성도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제가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맛있는 닭발이네요.”성도윤은 평소에 서양 음식을 많이 먹었고, 한식도 정교한 요리만 고집했다
“정말 예상도 못 했어. 분명히 조치를 다 했는데 말이야.”차설아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하지만 이미 찾아온 생명이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잘 키울 생각이었다.“이건 운명이야! 아무리 막아도 올 아이는 오게 돼 있다니까! 하하하! 그런데 말이야, 성 대표, 또 아빠가 된다는 걸 알면 얼마나 좋아할까?”배경윤이 진심으로 차설아를 축하하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좋아할 게 뭐가 있어... 사실, 지금 우리 상황은 아이를 가질 때가 아니야.”차설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지금은 그녀와 성도윤에게 가장 큰 압박이 몰려오는 시기였다.정확히 말하면, 성도윤에게 가장 힘든 시기였다. 밖으로는 성대그룹 대표 자리를 확고히 다져야 했고 안으로는 앞을 보지 못하는 그녀를 돌봐야 했다.그런 상황에서 아이까지 생긴다면 그는 혼자서 네 사람의 책임을 짊어져야 했다.이 부담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었으며 감정적인 부담이 더 컸다.사랑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적들에게 잡힐 약점도 많아지는 법이었고 지금의 그들에게는 너무도 위험한 일이었다.“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이미 온 생명인데, 어쩌겠어? 애초에 달이랑 원이 가졌을 때도 그렇게 좋은 상황이 아니었잖아? 그런데 지금 얼마나 사랑스럽니? 후회해?”“당연히 후회 안 해.”“그럼 됐잖아!”배경윤이 단호하게 말했다.“게다가 이번에 태어날 아기가 달이랑 원이 장점만 쏙 빼닮았다고 생각해 봐! 완벽하지 않겠어?”“그러게... 그러면 정말 좋겠다.”차설아는 두 아이를 떠올리며 배 위에 손을 얹었다. 이제야 이 갑작스러운 생명이 조금씩 기대되기 시작했다.“임신 초기에 필요한 게 뭐가 있을까? 칼슘 보충해야 하나? 엽산도 챙겨야 하고, DHA도 먹어야 하지?”배경윤이 이미 휴대폰을 꺼내 온라인 쇼핑몰에서 폭풍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마치 자신의 아이처럼 뱃속 아이를 챙기며 태어나기도 전에 애지중지하는 모습이었다.“근데 이번 아기는 아들일까, 딸일까? 아니면 또 쌍둥이일 수도 있
“임신이라고...?”차설아는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더니 고개를 단호하게 저으며 말했다.“말도 안 돼. 절대 그럴 리 없어.”“정말 그런지 아닌지, 테스트해 보면 알겠지.”배경윤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내가 가서 임신 테스트기를 사 올게. 잠깐만 기다려!”그녀는 말이 끝나기 바쁘게 곧바로 근처 약국으로 달려가 임신 테스트기를 사 왔다.배경윤이 다시 돌아왔을 때, 가정부 현이가 커피에 무언가를 섞고 있었다.“현이 씨, 그게 뭐예요?”배경윤이 커피잔을 흘끗 보며 물었다.“어... 아무것도 아니에요!”현이는 당황한 듯 허둥지둥 커피를 쏟으며 말했다.“설아 씨가 커피가 많이 쓰다면서 설탕을 좀 많이 넣으라고 해서요.”“그래요?”배경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설아가 단 커피를 좋아한다고? 입맛이 바뀌었나?’분명 차설아는 블랙커피만 선호했었다. 하지만 배경윤은 지금 더 중요한 일이 있었기에 신경 쓰지 않고 곧장 임신 테스트기를 들고 차설아를 찾으러 갔다.차설아는 처음엔 테스트하기를 꺼렸다.어차피 임신일 리가 없는데 뭐 하러 하냐고 거절했지만 배경윤이 끈질기게 떠들어대는 바람에 결국 마지못해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그리고 얼마 후,“꺅!”배경윤의 날카로운 비명이 집안에 울려 퍼졌다.“진짜 임신이잖아! 내가 뭐랬어! 네가 원래 그렇게 활기 넘치는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축 처지고 졸린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거라니까!”차설아가 임신했다는 사실에 배경윤은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한편으로는 기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웠다.“지난번에 네가 달이랑 원이 가졌을 때 내가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잖아. 이번엔 달라! 내가 반드시 널 전적으로 돌볼 거야. 꼭 좋은 대모가 되고 말겠어!”배경윤은 차설아의 팔을 붙잡고는 벌써 세 아이가 함께하는 미래를 상상하며 설레했다.마치 자신이 임신한 것처럼 들떠서는 말을 이었다.“근데 성도윤 그놈, 이번엔 진심일까? 진심이라면, 우리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자. 아버지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게 해야지. 아이
만약 할아버지마저 성진의 꾀에 넘어갔다면 앞으로 가문에서 그의 발언권은 크게 줄어들 것이고 지위도 그보다 아래로 내려가게 될 터였다.이런 일들을 생각하기만 해도 머리가 아팠지만 차설아까지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성도윤은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나에겐 당신과 아이들만 있으면 돼.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아... 자, 이제 자자.”성도윤이 낮게 한숨을 내쉬며 차설아를 안은 채 조용히 말했다.“...”예민한 차설아는 그의 말투에서 나는 실망감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녀도 덩달아 걱정이 되어 어떻게 되던 그를 도와야겠다고 다짐했다.다음 날 아침성도윤은 또다시 성대그룹으로 향했고 배경윤은 집에 머물며 차설아를 돌보기로 했다.“다시는 설아를 데리고 밖에 나가지 마. 또 어제 같은 일이 생기면 이번엔 정말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성도윤은 떠나기 전에 배경윤에게 여러 번 신신당부했다.“알았어, 알았다고! 절대 안 데리고 나갈게. 설령 데리고 나가더라도 걱정 마, 이제 내 목소리도 돌아왔잖아. 누가 감히 어제처럼 날 괴롭히면 정말 지 엄마도 못 알아볼 정도로 만들어 줄 거야.”배경윤이 우유를 마시면서 신나서 떠들어댔다.성도윤은 그녀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정말 시끄러운 여자야. 차라리 말 못 하는 게 나았을지도... 대체 사도현은 어떻게 견디는 거야?’성정엽이 떠난 후, 배경윤은 기지개를 켜며 몸을 풀고는 차설아가 어젯밤 몰래 방문한 오두막으로 향했다.차설아는 여전히 자고 있었고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도 없었다.“아직도 안 일어났어? 요즘 너 왜 이렇게 게을러졌어? 예전 같지 않네.”배경윤이 침대 옆에 앉아 축 늘어진 차설아를 보며 감탄했다.“으음... 몰라. 요즘 너무 졸려. 너무 여유롭게 지내서 그런가 봐. 자꾸 나태해지네.”차설아는 눈도 뜨지 않은 채 중얼거리듯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도 스스로 이상하다고 느꼈다. 평소에는 활력이 넘치던 그녀였는데 요즘은 마치 기운이 쭉 빠진 것처럼 앉아 있는 것조
“위치 추적 장치?”성도윤은 깜짝 놀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대단한데? 내 몸에 추적 장치를 달아놓고도 내가 전혀 몰랐다니. 영화 속 첩보 요원도 너만큼은 못 하겠다.”차설아는 우쭐한 표정으로 말했다.“당연하죠! 난 영화 속 첩보 요원보다 훨씬 대단하거든요. 그러니까 나 잘 모셔야 해요. 괜히 나한테 못되게 굴었다간 아주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걸요?”그녀는 자신만만하면서도 살짝 장난스러운 눈빛을 보냈다.“어찌 감히 여왕님께 잘못하겠습니까? 남은 생애, 충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흠, 그거면 됐어요. 아주 착하네!”차설아는 만족스럽다는 듯 성도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러고는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졸리고 추워 죽겠어요! 빨리 이불 속으로 안내해요.”이렇게 지내다 보니, 그녀는 어느새 그와 함께 자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오늘 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던 이유를 생각해 보니, 아마도 그가 곁에 없어서일 것이다.그래서 결국 그를 찾아온 것이었다.“어서 와. 이불 속은 이미 따뜻하게 데워놨지.”성도윤은 능청스럽게 ‘충실한 침대 보좌관’처럼 행동하며 그녀를 이불 속으로 이끌었다.차가운 밤, 따뜻한 이불 속에서 서로를 감싸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차설아는 옆으로 돌아누워 다리를 오므린 채 마치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처럼 몸을 웅크렸다.성도윤은 뒤에서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그 온기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보호막 같았고 덕분에 차설아는 금세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성도윤은 오히려 정신이 말똥말똥해졌다.“여보, 우리 오늘 밤에 그 두 유치한 녀석들 갈라놓은 거... 혹시 너무한 거 아닐까?”그가 말한 ‘두 유치한 녀석’이란 당연히 사도현과 배경윤을 뜻했다.솔직히, 그 둘은 늘 티격태격하는 사이였고 아마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화해할지도 모른다.하지만 오늘 밤 자신들이 개입하면서 상황은 좀 더 심각해져 이러다가 정말 절교로 이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성도윤의 머리가 아파졌다.“혹시 사도현이 끝
“그게 뭔데?”“두 사람 서로의 감정을 확실히 깨닫고 흔들림 없이 서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줄 그 한 가지.”차설아는 이번만큼은 저 두 사람이 깨닫기를 바랐다.그녀와 성도윤도 그 기나긴 길을 돌아왔기 때문에 그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사람은 함께 많은 일들을 겪어야만 ‘이 사람을 절대로 놓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차설아와 배경윤의 긴 대화가 이어질수록, 밤은 더욱 깊어졌다.배경윤은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다 지쳐 잠들었고 그녀의 뺨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하지만 차설아는 도무지 잠이 들지 않았다.지금의 이 고요함이 너무 불안했다. 이렇게 평온할 때일수록 더 큰 위기가 다가오는 법이었다.같은 시각, 성진의 차가 그녀의 집 아래에 멈춰 서 있었다.가로등 불빛이 차 위로 희미하게 드리웠고 차 안의 남자는 어둠과 빛 속에서 조각 같은 얼굴을 드러냈다.그 역시 때로는 빛 속에 머물고 때로는 어둠 속에 숨어 지내면서 가끔은 스스로조차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사실, 그는 이미 한참 전부터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저택 안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대화 소리도 들었고 차설아가 실명한 게 사실이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그렇다면 그녀의 눈을 누구에게 줬을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성진은 차를 몰고 오는 동안 머릿속에 수많은 말들이 떠올랐다. 그는 여자의 어깨를 붙잡고 미친 듯이 소리치고 싶었다.“왜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했어? 왜 네 소중한 눈을 나 같은 인간한테 줬냐고!”하지만 정작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해 그렇게 따져 묻고 눈을 돌려주려 했던 순간, 그는 망설였다.그는 한때 지옥을 경험한 사람이었다.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것이 얼마나 끔찍한지 그 절망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얼마나 처참한지 아직도 잊지 않았다.그리고 한 남자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속옷 하나조차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챙길 수 없는 처지가 되는 것이 얼마나
위층에서도 차설아와 배경윤이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숨죽여 통곡하던 배경윤이 갑자기 흥분해서 소리쳤다.“나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나 말할 수 있다고! 드디어 목소리가 돌아왔어!”배경윤이 눈물을 닦고 기쁨에 겨워 차설아를 와락 끌어안으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설아야, 나도 목소리 되찾았으니까, 너도 분명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내가 꼭 방법을 찾아볼게!”“잘 됐어! 네 목소리가 돌아온 건 정말 다행이야. 아니면 우리 전투력이 너무 약해질 뻔했잖아. 팬들 상대로 밀려서 너무 힘들었어.”차설아가 진심으로 기뻐하며 웃었다.오늘 오전, 그녀와 배경윤이 무기력하게 몰려다니며 반격조차 못 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배경윤이 목소리를 잃었기 때문이었다.대학교 시절, 차설아, 배경수, 그리고 배경윤은 유명한 삼총사였다.셋이 무적이었던 이유는 각자의 역할이 명확했기 때문이었다.차설아는 ‘물리적 공격’을 담당했고, 배경수는 ‘두뇌 플레이’를 맡았다. 그리고 배경윤은 ‘언어 공격’을 담당했다.하지만 지금 차설아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물리적 공격’ 능력이 반감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배경윤마저 목소리를 잃었으니, ‘언어 공격'도 무용지물이 된 셈이었다.그렇다 보니 팬들이 둘을 조롱하며 몰아붙이는 걸 막을 방법이 없었다.“맞아! 만약 내가 오늘 말을 할 수 있었더라면 저 미친 팬들 제대로 박살 냈을 거야! 아까, 정말 속이 터지는 줄 알았어. 내가 제대로 반격도 못 했잖아! 안 되겠어, 사도현 찾아가서 다시 따질 거야!”배경윤이 소매를 걷어 올리며 당장이라도 사도현과 한바탕 말싸움을 벌일 기세였다.차설아는 재빨리 그녀를 붙잡았다.“이기고 싶다면 지금은 절대 그를 찾아가면 안 돼. 그리고 당분간 연락도 하지 마. 만약 그가 진짜 너에게 마음이 있다면 반드시 너에게 만족할 만한 답을 줄 거야.”“그 답을 내가 받을 수나 있을까? 그냥 당장 그랑 싸우는 게 속이 더 후련할 것 같은데.”“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왜 네
성도윤이 진심 어린 충고를 건넸다.“???”사도현은 남자의 말을 듣고는 눈살을 찌푸렸다.“형, 이게 정말 형 입에서 나온 말이야? 여자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고? 그럼 그게 완전 ‘호구’랑 뭐가 달라? 그렇게 냉정하고 도도하던 형이 어쩌다... 이제는 아내가 하라는 대로 한다고? 이건 형답지 않아...”사도현은 여자를 쫓아다니긴 하지만 성도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다.여자에게 돈을 쓰고 달콤한 말을 하긴 해도 어떤 여자도 그의 행동을 통제하거나 그의 사고를 지배할 수 없었다.어떤 여자가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순간, 그는 단호하게 다른 여자를 찾았다.배경윤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의 원칙이 걸린 문제라면 절대 양보하지 않았기에 오늘도 이렇게 끝없는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나도 오랜 시간 고민해서 얻은 결론이야.”성도윤이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사도현에게 연애 철학을 설파했다.“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과 일들을 만나게 되지. 그 중요도를 정하는 객관적인 기준은 없어. 중요한 건, 네 마음속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아는 거야.”“네가 스스로의 자아를 지키는 것이 그 여자와의 관계보다 더 중요하다면, 그 여자를 포기하면 되는 거고.”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덧붙였다.“네가 여자를 유혹하는 데 능숙한 건 알지만 결국 진정성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야. 나는 아내의 말을 듣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혹시 네가 그렇게 못하는 건, 단순히 네가 상대방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성도윤은 날카롭게 바라보며 정확한 지적을 했다.“나는...”사도현은 그런 게 아니라고 바로 반박하려 했지만 막상 입 밖으로 내뱉으려 하자 말문이 막혔다.그는 다른 사람을 속일 수도 있고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속일 수도 있었다.하지만 성도윤만큼은 속일 수 없었다.성도윤은 누구보다 그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자신의 마음속 가장 솔직한 감정을 그가 단번에 꿰뚫어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형은 내가 좀
“내가 왜 경윤이한테 뭐라고 해야 하죠?”차설아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사도현에게 물었다.“만약 내가 도현 씨라면 이 일이 윤설과 관련이 있든 없든, 나는 단번에 배경윤을 위해 나섰을 거예요. 좋아하는 여자가 이렇게 큰 모욕을 당했는데 괴롭힌 사람을 찾아서 따지기는커녕 내 여자에게 참으라고 한다면, 그건 도현 씨가 그 여자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겠죠.”“지금 이간질하려는 건 아니지? 사람마다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무턱대고 화를 내고 일이 커지면 더 큰 소란을 일으킬 수도 있는데, 그게 과연 좋은 방법일까?”사도현은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떠받들던 차설아가 자기편을 들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배경윤과의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가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아직도 이해를 못 하시네요.”차설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 일에서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도현 씨의 태도예요. 그런 태도라면 어떤 여자라도 상처받을 수밖에 없어요.”“그게 아니라...”사도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좋아하는 감정을 이렇게 표현하는 게 정말 힘들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설아야, 역시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너뿐이구나!]배경윤은 타자한 후, 서러운 마음에 바로 차설아를 껴안았다.[이런 마음은 여자만이 이해할 수 있어! 도현 씨는 그저 내가 징징거린다고만 생각하겠지!]“도현 씨, 3일 안에 경윤이한테 사과할 기회를 줄게요. 하지만 어떻게 사과할지는 도현 씨가 알아서 해야 해요. 경윤아, 우리 오늘 같이 자자. 할 얘기가 정말 많을 것 같아!”차설아의 말에 배경윤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팔을 잡고 계단을 올라갔다.아래층에서는 두 남자가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며 어리둥절해 있었다.성도윤은 왜 남의 커플 문제에 자신이 이렇게 끼어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반대로 사도현은 왜 이해심 많던 차설아가 갑자기 이렇게 고집불통이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형, 우리 커플 일에 형수가 너무 과하게 간섭하는 거 아니야? 원래 하루이틀이면 해
“그때는 그때고, 사람은 성장하는 법이잖아.”샤워를 마친 차설아가 계단을 내려오며 말했다.2층에서 사도현과 배경윤이 성도윤을 둘러싸고 다투는 소리를 듣고 성도윤 대신에 반박하며 나선 것이다.세 사람은 고개를 들어 목욕 가운을 입고 나온 차설아를 보고 급하게 다가갔다.“설아야, 너 혼자 내려왔어? 움직이지 마, 잠깐만.”성도윤이 제일 먼저 달려가 아기를 돌보듯 세심하게 챙기며 말했다.배경윤과 사도현도 마치 공주를 대하듯 신중하게 행동했다.[괜찮아? 기분 나쁘거나 불편한 거 없어?]성도윤이 차설아를 거실 소파에 앉히자 배경윤이 그녀의 옆에 앉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난 괜찮아. 기분도 나쁘지 않고 아픈 곳도 없어. 내가 전에 겪은 일에 비하면 몇 명 애들이 장난친 정도인데 뭐가 대수겠어.”차설아가 배경윤의 손등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안심시키려 했다.“경윤아, 네가 더 걱정이야. 기분 잡치게 하는 사람들을 마음속에 담아두지 마. 그러면 오히려 너 자신이 힘들어져. 그냥 흘려보내. 신경 쓸 필요 없어.”그 말을 들은 배경윤은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의미심장하게 한마디 했다.[맞아, 맞아. 어떤 사람은 정말 마음에 두지 않더라고. 그 사람 때문에 화내는 내가 진짜 등신이지.]그녀는 당연히 차설아가 말한 ‘기분을 잡치는 사람’이 사도현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도현은 오히려 차설아가 배경윤에게 작은 일로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더 관대해지라고 충고하는 것으로 이해했다.“들었어? 역시 형수가 마음이 넓어. 미친개한테 물렸다고 너도 같이 물려고?”사도현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사도현은 배경윤이 절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고집 센 여자인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차설아의 말만큼은 예외라는 걸 알고 있었다.차설아는 배경윤의 정신적 지주이자 인간적 우상이었기 그녀의 말이면 배경윤은 무엇이든 믿었다.[도현 씨가 그 미친개라는 말이지?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배경윤이 분노를 담아 타자기를 두드리며, 마치 사도현을 죽일 듯 차가운 눈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