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차설아도 그보다 나은 건 아니었다.사도현의 얘기에 차설아도 겨우 흥분을 가라앉혔다.“좋아, 그럼 각자 정리 좀 하고 같이 병원에 가는 게 좋겠어.”두 사람은 서로 다른 욕실로 향하고는 재빨리 씻었다.하지만 어색한 상황이 발생했다.두 사람 모두 이곳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갈아입을 옷이 없어 타올을 몸에 두르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차설아가 욕실에서 나오고는 아무 옷 한 벌 걸치려고 했다. 성도윤도 같은 생각이었다.그렇게 두 사람은 어색한 상황에서 서로 마주치고 말았다.성도윤은 대놓고 차설아를 훑어보고 있었다. 젖은 머리카락부터 뽀얀 피부의 발까지 말이다.차설아는... 더 강렬한 눈빛으로 성도윤을 훑어봤다. 심지어 손으로 한 번 그의 몸을 만져보고도 싶었다.“도윤 씨, 요즘 또 운동하러 갔어? 선명한 복근이 거의 트레이너급이란 말이야.”차설아는 전에 ‘사지가 마비되고 침대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던’ 성도윤을 돌봤던 나날들을 떠올렸다. 그때는 제멋대로 성도윤의 몸을 만질 수 있었는데 말이다.성도윤은 눈썹을 치켜들더니 도도하게 말했다.“당신 몸매도 생각한 것보다는 훌륭하네. 다만 배가 좀 나왔어, 다이어트 좀 해.”차설아는 말문이 막혔다.‘이 녀석 입에서 칭찬을 바란 내가 잘못이지. 아이를 둘이나 임신하고 있는데 당연히 배가 클 수밖에 없지! 그리고 몸매가 생각한 것보다 훌륭해? 전에 내 몸매를 못 봤었던 것처럼 말하네!’두 사람은 옷을 찾아 입으려고 했는데, 이때 성도윤의 어머니인 소영금이 노발대발하며 닥쳐들었다.그녀는 이미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성도윤과 차설아가 타올만 두르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뭐야, 두 사람? 다시 합친 거야?”소영금은 두 사람 사이에 가로서고는 차설아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이런 재수탱이 같은 년, 정말 뻔뻔스럽구나. 내 아들은 이미 너를 집에서 내쫓았어, 그런데도 염치없이 이렇게 입고선 내 아들을 유혹해?”목청이 큰 소영금 때문에 차설아는 머리가 지끈
소영금은 도도하고 잘 웃지도 않은 아들이 그녀의 앞에서 차설아 이 재수탱이와 시시덕거리며 장난을 칠 줄은 생각도 못 했다.이건 지구에서 외계인을 본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이었다.“아들, 왜 그래? 전엔 저년을 똑바로 쳐다도 안 보더니, 지금은 관심이 생긴 거야? 설마 정말 차설아를 유혹하려는 건 아니지?”성도윤은 그저 어깨를 들썩이더니 인정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았다.소영금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만약 차설아 이 재수탱이가 성도윤한테 잘 보이려는 거면 몰라도, 성도윤이 오히려 차설아를 유혹하고 있으니 소영금은 이 상황이 답답했고, 더는 기고만장할 명분도 없어졌다.“아들,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아니면 마가 씐 거야?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누굴 유혹하면 안 좋아, 그런데 왜 하필 이 재수탱이인데?”소영금은 워낙 성질이 사나운 사람이기 때문에 화가 난 나머지 저도 모르게 성도윤에게 손을 쓰기 시작했다.그녀는 성도윤을 두들겨 때리면서 훈수를 뒀다.“정신 차려,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여자가 없어서 이미 이혼당했던 차설아를 유혹해? 사람은 뒤돌아보는 거 아니야, 왜 나도 성씨 가문도 체면을 차리지 못하게 이러는 건데? 차설아는 소영금이 성도윤을 마구 때리자 재빨리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소영금의 말을 바로잡았다.“여사님, 말을 똑바로 하셔야죠. 저는 당신 아들에게 이혼을 당했던 여자가 아니라, 정확히 당신 아들과 이혼했던 여자입니다. 그리고 도윤 씨는 뒤돌아보지도 않았어요, 예전엔 저를 유혹한 적이 없었거든요.”물론 술에 취하고 두 사람은 뜨거운 하룻밤을 보낸 게 맞다. 하지만 차설아는 그날 밤은 두 사람이 서로 원해서 생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성도윤이 자기를 유혹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소영금은 더 체면이 깎이는 것 같아 성도윤을 더 세게 때리며 말했다.“들었어? 저 여자는 너한테 마음도 없었다잖아. 그런데도 저 여자한테 몸을 바치려고 해? 얼른 옷 찾아서 입어!”성도윤의 얼굴은 별다른 표정 없이 덤덤했
임채원을 향한 밑도 끝도 없는 보호는 그녀의 자존심을 짓밟은 거나 다름없었다.그런 남자한테 설렌 감정을 느꼈으니 차설아는 자신이 한심했다.“그럼 두 분 천천히 얘기를 나누세요. 저는 일이 있어 이만 가보겠습니다.”차설아는 이곳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로 사도현의 상황이었다.그녀는 두 걸음 나아가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성도윤에게 말했다.“도윤 씨, 채원 씨를 숨기려면 잘 숨겨. 만약 나한테 들킨다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도 몰라. 죽은 사람을 다시 사라지게 만드는 건 법에 어긋나지 않으니까.”물론 이건 차설아의 경고뿐이었다. 임채원이 다른 짓을 더 못하게 최선을 다하라는 성도윤을 향한 그녀의 경고였다.하지만 그녀의 이 한마디 경고는 결국 일파만파를 일으키게 되는데...차설아가 떠난 후, 소영금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저 재수탱이 말을 들어보니, 채원이는 아직 안 죽은 거야?”“네.”성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그의 얼굴색은 한껏 어두워졌다.그는 아직도 차설아가 한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왜 임채원을 향한 차설아의 원한이 그렇게 깊은지 이해할 수 없었다.“다행이야, 그럼 내 손주도 아직 살아있다는 거네? 하느님, 감사합니다. 우리 성씨 가문의 아이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소영금은 입꼬리가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두 손을 모으면서 하느님께 고마움을 전하고 있었다.성도윤은 그 모습을 보더니 어이가 없었다.“제가 죽지도 않았는데 앞으로 기회도 많을 거잖아요.”“흥, 네가 살아있으면 뭐 해, 여자에게 손도 대지 않으면서. 네가 스님이랑 다를 게 뭐야? 채원이가 재주 좋아서 네 아이를 임신해 그렇지, 네가 채원이한테 마음이라도 있어? 만약 아이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아이가 생기긴 힘들 거야...”소영금은 성도윤을 잘 알고 있었다.어려서부터 워낙 차갑고 도도했기에 여자한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그러니 차설아와 오랫동안 결혼 생활을 했어도 그녀에게 손 한 번 대지 않았던 거고.임채원이 그의 아이
“나도 오죽하면 이러겠어, 정말 사람이 없단 말이야!”소영금은 한숨을 푹 쉬고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너 이 녀석, 거의 서른이 다 되어가는데 여자를 거의 만나보질 못했으니. 채원이는 꿍꿍이가 너무 많아서 다스리기 쉽지 않아. 또 허청하는 진우랑 얽혀졌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히려 차설아가 적임자인 것 같아. 집안이 좀 뒤떨어진 것 빼고는 다른 문제 없잖아.”“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차설아가 그렇게 재주가 좋다며? 회사를 설립했을 뿐만 아니라 하이 테크 협회 회장직까지 맡고, 또 법률사무소도 잘 꾸려나가고 있다며. 게다가 성대 그룹의 가장 큰 클라이언트를 뺏어갔으니... 내가 생각했던 무능력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나 소영금은 원래 능력 있는 여자를 좋아하거든. 지금 생각해 보니 성씨 가문 사모님 자리를 잘 소화해 낼 수 있을 것 같아!”성도윤은 소영금이 모처럼 차설아를 칭찬하니 왠지 모르게 뿌듯함을 느꼈다.고부갈등은 예로부터 존재한 것이다. 만약 이 갈등이 해결된다면 그는 차설아와 정말 다시 잘해볼 수 있지 않을까?‘다시 잘해본다고?’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성도윤 본인마저 깜짝 놀랐다.그의 잘생긴 얼굴은 한껏 차가워졌다.“엄마, 어디까지 생각하신 거예요? 지금은 차설아가 성씨 가문 사모님 자리를 잘 소화해 내는지가 문제 아니에요, 오히려 차설아가 그 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지가 문제라고요.“왜? 그 자리가 싫대?”소영금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너랑 밀당하는 거 아니야?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성씨 가문에 시집오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차설아라고 싫겠어? 정말 싫었으면 왜 성씨 가문에 4년이나 있었겠어?”성도윤은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차설아가 그렇게 성씨 가문의 사모님 자리를 욕심냈으면 왜 이혼하겠다고 했겠어요? 심지어 이혼을 하자고 저를 재촉했는데요.”“그게...”소영금은 고민에 잠겼다. 아들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아까 상황으로 봤을 때, 성도윤은 옷을 걸치지도 않고
성도윤은 별 감흥이 없는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방금 그러셨잖아요, 사람은 뒤돌아보는 게 아니라고요.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꾼 거예요? 부끄럽지도 않아요?”소영금은 도도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부끄럽긴 하지만 엄마는 네가 좋은 여자를 놓치지 않길 바라. 그리고 엄마가 두 사람을 그렇게 반대했던 건, 네가 차설아를 사랑하지 않아서야. 네가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결혼 생활을 하는 게 싫었어. 하지만 지금은 달라...”“어디가요?”“네가 차설아한테 마음이 있잖아!”소영금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여자는 정말 흔치 않아,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지. 네 마음을 움직인 여자를 만났으니 당연히 붙잡아야 할 거 아니야!”“차설아한테 마음이 있는 건 아니에요!”성도윤이 차가운 얼굴로 부인했다.“그런지 아닌지는 네가 누구보다 잘 알 거야. 날 설득할 필요 없어...”소영금은 한숨을 푹 쉬었다. 엄마로서 성도윤이 답답했다.“물론 그 재수탱이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니야. 하지만 너만 좋아한다면 난 괜찮아. 그리고 약속할게, 다시는 눈치를 주지 않고 ‘재수탱이’라고 부르지도 않을게. 네가 원한다면 차설아랑 잘 지낼 수도 있어. 나...”“그럴 필요 없어요!”성도윤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나랑 차설아는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니 그냥 내버려 두세요.”...병원에서.사도현은 응급실에서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부러진 다리뼈를 바로 맞추고 깁스를 했다.보름 동안 병상에 누워 안정을 취해야 했다.차설아는 사도현이 있는 병실에 도착했는데, 강진우도 자리에 있었다.“진우 씨.”차설아는 남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눈인사를 했다.강진우는 차설아를 보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설아 씨, 시간 내서 설아 씨한테 사과드리려던 참이었어요!”강진우는 차설아를 향해 정중하게 말했다.“사과요?”차설아는 어리둥절했다.“청하는 괜찮아졌어요. 그래도 한때 약혼자로서 사과를 드려요. 그날 분명 정신이 혼미해서 설아 씨를 모
“청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어요...”강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단지, 제가 아는 설아 씨는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에요. 그럴 만한 동기도 없고, 설아 씨에게 의미도 없는 일이죠.”차설아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그러게 말이에요. 저한테는 동기도 없고 의미도 없는 일인데, 진우 씨도 아는 이 뻔한 사실을 성도윤만 모르네요.”“도윤이는 단순해서 복잡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요.”“맞아요, 단순하다 못해 아주 무식하네요.”서로 마주 보며 웃는 두 사람은, 눈빛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사도현은 병상에 누워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한 채 전혀 움직이지 못해 짜증을 부리고 있었다.강진우와 차설아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지푸라기라도 잡은 듯 크게 소리를 질렀다.“두 사람 마침 잘 왔어. 나 좀 데리고 나가 줘. 이 감옥 같은 곳에서 1분도 더 있기 싫어!”강진우는 미간을 구기고 엄숙하게 말했다.“다리가 부러졌어. 가만히 있어.”“가만히 못 있어!”사도현은 침대를 두드리며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나 지금 먹고, 화장실 가는 것까지 전부 낯선 사람이 도와주고 있어. 너무 창피하단 말이야. 가장 화나는 건 게임을 하고 싶은데 간호사가 못하게 하잖아! 이게 사람 사는 거야?”“안 되겠어. 퇴원할 거야! 염라대왕이 와도 난 지금 당장 퇴원해야겠어!”“그건...”강진우는 조금 걱정되었다.사도현은 타고난 고집불통이라 일단 무엇을 하기로 마음먹으면 그 누가 와도 소용이 없었다.“움직이지 말아요!”차설아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아이처럼 떼를 쓰던 사도현은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멍한 표정으로 차설아를 바라보았다.차설아는 천천히 물을 한 잔 따르더니 침착하게 말했다.“도현 씨도 다 큰 성인이에요. 뭐든 멋대로 하려고 하지 마세요. 낯선 사람이 시중을 드는 게 불편하다면 앞으로 제가 할게요.”말을 마친 차설아는 자연스럽게 사도현의 입가에 물컵을 들이대며 온화하지만 강력하게 말했다.“물 좀 마셔요. 입술이 다 말랐어요.”“...”사도
“하지만 난 더...”사도현은 차설아를 바라보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모습은 불쌍하기 그지없었다.“게임 하고 싶다고요? 절대 안 돼요.”차설아는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흥, 안 되면 안 되는 거지!”사도현은 희망이 사라지자 화가 나서 이불 속에 머리를 파묻고 쿨쿨 잠이 들었다.센 척하지만 또 겁먹은 사도현의 모습은 왠지 좀 귀여웠다.차설아와 강진우가 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얼른 이불을 벗어 던지고 물었다.“차설아. 방금 나 돌봐준다고 한 말. 진심이야?”“당연히 진심이죠.”차설아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말했다.“제 목숨을 구해줬는데, 그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에요?”“하지만 미리 말해두는데, 전 인내심이 없어요. 아까처럼 말도 안 듣고 떼만 쓴다면 전 폭력을 사용할지도 몰라요.”“안심해. 네가 돌봐준다면 당연히 말을 잘 들어야지.”말을 마친 사도현은 편안히 잠자리에 들었다.강진우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표정이 좀 복잡했다.“진우 씨, 근처 슈퍼에 가서 도현 씨한테 필요한 물건 좀 사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요?”차설아는 강진우를 보며 물었다.사도현을 돌보겠다고 한 말은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사도현을 극진히 잘 보살펴서 생명의 은혜를 갚을 생각이었다.“먼저 가세요. 전 도현이한테 할 말이 있어요.”“네.”차설아는 궁금해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강진우는 사도현의 침대 옆에 다가가 뒤집어쓴 이불을 벗기고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너 이 자식, 대체 뭐 하는 거야?”거의 잠이 들 뻔했던 사도현은 갑자기 놀라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왜 그래, 형? 아직 안 갔어?”강진우는 굳은 안색으로 차갑게 말했다.“시치미 떼지 말고 똑바로 말해. 너랑 설아 씨,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무슨 일이라니?”사도현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설아 집에 가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집에 불이 났잖아. 내가 구하려다가 다리를 다친 거야...”“그게 전부야?”“맞아! 이게 전부야.”“왜 난 네가 설아 씨를...”“아니
강진우와 사도현은 순간 말을 멈추고 도둑이 제 발 저린 모습을 보였다.“형, 노크도 없이 무례하게 들어와?”성도윤의 잘생긴 얼굴은 움직이는 빙산처럼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그는 사도현의 앞에 다가가 매달린 깁스 발을 두드리며 물었다.“아파?”사도현의 이목구비는 즉시 한군데로 몰리더니 고통스럽게 외쳤다.“악, 아파. 형 나 죽이고 싶어? 내가 목숨을 바쳐서 전처를 구해줬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을 생각이야?”“정신이 멀쩡한 걸 보니 큰 문제는 없네. 사람을 구했다는 말, 자꾸 입에 달고 있지 마.”성도윤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마치 사도현이 차설아를 구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은 듯했다.생명의 은인이라는 신분은 너무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고대라면 몸을 바쳐 은혜를 갚는 경우도 있어, 성도윤은 기분이 불쾌했다.“그러게 말이야!”강진우도 기회를 타서 말했다.“이 자식 그 핑계로 설아 씨한테 병간호해달라고 하잖아. 뻔뻔하기도 하지.”“병간호를 해?”성도윤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곰곰이 말을 되새겼다.이때 차설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갈비 죽을 들고 말했다.“도현 씨, 일어나서 야식 먹어요. 갈비 죽이 상처 회복에 좋대요. 제가 먹여줄게요.”차설아는 병실에 들어서서야, 성도윤과 강진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즉시 당황했다.“당신들... 아직 안 갔어요?”성도윤은 차설아 손의 죽을 흘겨보고는 비꼬아 말했다.“우리가 있는 게 정상 아니야? 그러는 당신은? 한밤중에 죽까지 들고 와서, 너무 부지런하네?”차설아는 성도윤이 또 트집을 잡는다고 생각하여, 그를 지나쳐 가버렸고, 전혀 상대하지 않았다.차설아는 침대 가장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죽을 손에 들고 숟가락으로 떠서 살살 불어준 다음 사도현의 입에 대고 말했다.“뭐해요? 얼른 입 벌려요. 간호사가 그러는데, 마취가 풀려서 간단한 음식을 먹어도 된대요.”“난...”사도현은 당연히 입을 벌리고 싶었다.지금 그는 정말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었다.다만, 성도
“응. 보고 싶어. 그게 어딘데?”배경윤은 진지한 표정을 한 사도현을 바라보았고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그래서 겨우 진정하고 태연하게 물었다.“그럼 나랑 같이 가볼래?”사도현은 배경윤한테 손을 내밀면서 부드럽게 물었다.“이 시간 때에 가야 볼 수 있어. 너만 괜찮다면 같이 가고 싶어. 네가 싫다면 강요하지 않을게.”배경윤은 사도현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가자! 혼자서 심심했었어.”“나의 공주님한테는 최고의 선물이 될 거야.”사도현은 눈이 휘어지게 웃으면서 배경윤을 데리고 자신만의 아지트로 달려갔다.두 사람이 멀어진 뒤로 배경윤이 처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날이었다.사도현은 자신이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준 모습에 배경윤이 감동했을 것이라고 여겼다.몇 분 후, 두 사람은 섬의 다른 한 끝에 도착했다. 그곳은 사도현이 지내는 초가집이었고 마당에서 게스트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모여 앉아 해산물을 구워 먹고 기타를 쳤다. 남성 참가자와 여성 참가자 사이에 핑크빛 기류가 흘렀고 분위기가 한층 더 무르익어갔다.“설마 제일 예쁜 풍경이 저 사람들이 해산물을 구워 먹는 모습은 아니겠지?”배경윤은 멀리서부터 한곳에 모여 놀고 있는 게스트들을 발견했다. 사도현한테 속은 것 같아서 화가 솟구쳐 올랐고 배신감이 들었다.‘이럴 줄 알았어. 진지한 척만 하고 항상 나를 놀리고 싶어 했지. 내가 또 속을 줄 알아?’“그쪽 말고 여기로 가자.”사도현은 배경윤을 데리고 아무도 모르게 뒷문으로 초가집 안에 들어갔다. 배경윤은 미간을 찌푸린 채 사도현을 노려보았다.“고작 초가집을 보여주려고 데리고 온 거야? 그럴 바에는 나가서 다른 사람들이랑 노는 게 낫겠어. 너는 왜 항상 나를 놀리는 건데? 단 한 번만이라도 진지할 수는 없어?”“잠깐만 기다려 줘. 곧 보게 될 거야.”사도현은 배경윤의 두 눈을 손으로 가리고 불을 껐다.“사도현,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또 허튼수작을 부렸다가는 소리 질러서 너를
[재벌가 도련님과 암컷 돼지의 은밀한 관계!][사도현의 정신 상태 우려스러워...]사도현의 부드러운 노랫소리 덕분에 암컷 돼지는 첫 번째 새끼 돼지를 순리롭게 낳았다.“드디어 아기를 낳았어! 돼지야, 너는 정말 멋진 엄마야. 다른 아기도 힘내서 낳자!”사도현은 새끼 돼지 몸을 수건으로 닦아주고는 낡은 옷에 감싸안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혔고 마음이 뭉클했다.예전부터 사도현은 딩크족이었다. 아이는 그저 악마 같은 존재일 뿐, 절대 가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갓 태어난 새끼 돼지를 보면서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이 프로그램이 끝나면 경윤이랑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거야. 경윤이를 닮은 아이면 얼마나 예쁠까?’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한 출산이 마무리되었다. 다섯 마리의 암컷 돼지는 순리롭게 몇십 마리의 새끼 돼지를 낳았고 장은학은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사도현이 빨리 달리고 용기를 낸 덕분에 다른 게스트를 제치고 먼저 1000점을 획득했다. 장은학은 마을 이장과 함께 꽃다발을 건넸고 ‘돼지 출산 전문가’라는 글이 적힌 상장도 주었다.사도현의 하얀 셔츠가 더럽혀졌지만 꽃다발과 상장을 안고 있으니 무척 행복했다.사도현은 배경윤 쪽으로 다가가서 환하게 웃더니 상장을 보여주면서 말했다.“경윤아, 내가 결국 해냈어. 네가 후회할 날이 올 거라고 내가 말했었지? 이제는 그렇게 여유롭지 못할 거야. 기대해도 좋아.”배경윤은 싱글벙글 웃는 사도현을 바라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고 슬며시 엄지를 내밀었다.“네가 진짜 해낼 줄은 몰랐어. 진짜 대단해.”날이 어두워지자 사도현은 게스트들을 불러 해산물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게스트들은 모닥불 앞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도현은 사람을 시켜 진찬영이 파티에 참가하지 못하고 업무 전화만 받게 했다.사도현은 배경윤이 지내는 숙소로 걸어갔다.배경윤은 해산물 바비큐 파티에 참가하지 않고 혼자 별장의 베란다에 기대 넓은 바다를 내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날이 어두워
암컷 돼지들은 괴로워하면서 소리를 질렀고 허공에 대고 발길질했다. 그러면서 몸에 붙어있던 배설물이 사방으로 튀어서 접근하기 어려웠다.사도현은 토하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고 천천히 다가갔다.“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좀 해 봐! 난산이어서 이러다가 죽을지도 몰라.”장은학은 급한 마음에 목청을 높여 말했다.“확실히 할 줄 아는 사람 맞아? 할 줄 모르면 당장 나와. 자네 말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어.”“잠시만요. 제가 할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사도현은 코를 막고 겨우 말했다.‘이 세상에 내가 해내지 못하는 일은 없어. 고작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주는 걸로 겁먹지 말자. 나는 할 수 있어.’고민하던 사도현은 휴대폰을 꺼내 암컷 돼지의 출산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첫째, 산후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깨끗한 출산 공간을 만들어주고 괴망간산칼륨으로 암컷 돼지의 온몸을 한 번 닦는다.][둘째, 가위를 소독하고 새끼 돼지의 탯줄을 자른다.][셋째, 낡은 수건이거나 옷으로 새끼 돼지의 몸을 닦아주고 감싸안는다.][그리고 출산 과정에서 암컷 돼지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부드러운 말투로 다독이거나 노래를 불러서 암컷 돼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암컷 돼지의 출산 절차를 보고 난 사도현은 당장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연예계에서 알아주는 재벌가 도련님, 유명한 회사의 대표가 이제는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주어야 했기 때문이다.황당한 일이 연속 벌어지니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사도현 씨, 할 수 있는 거 맞아요? 못 하겠으면 빨리 나오세요. 대학교 때 배웠던 적이 있어서 제가 더 잘할 것 같거든요.”하늘은 돼지우리 밖에서 목을 빼 들고 말했다. 하늘은 사도현 다음으로 제일 초라한 별장을 선택한 사람이었기에 별장을 바꾸고 싶었다.“할 수 있으니 들어오지 마세요. 이건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사도현은 심호흡하고는 가만히 누워있는 암컷 돼지를 괴망간산칼륨으로 닦아주었다.암컷 돼지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면서 버둥거렸
암컷 돼지가 새끼 돼지를 낳는 것을 도와주면 1000점을 얻을 수 있었다. 사도현이 그 점수를 얻게 되면 다른 참가자의 별장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를 것이다.그때가 되면 사도현은 배경윤이 선택한 바다 별장을 빼앗을 것이고 배경윤이 어떤 반응일지 몹시 궁금했다.사도현은 제일 빠른 속도로 달려 마을 안쪽에 있는 장은학의 집에 도착했다. 장은학은 국가의 정책에 따라 도움을 받을 정도로 아주 가난했다.집에서 암컷 돼지를 다섯 마리 기르면서 돈을 벌려고 했다. 장은학이 정성스럽게 보살핀 덕분에 암컷 돼지들은 출산을 앞두게 되었다. 하지만 장은학이 까막눈이라서 어떻게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야 할지 몰랐다. 그때 > 제작진이 이 섬에 오게 되었고 장윤태는 장은학을 만나게 되었다. 이야기를 들은 장윤태는 무르팍을 치면서 무척 좋아했다.“그럼 게스트들이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주면 되겠어. 새끼 돼지가 태어난다는 건 새 생명을 맞이한다는 거잖아. 남성 참가자와 여성 참가자가 같이 출산을 도와주면 기묘한 분위기가 이루어질 거야.”이때 제작진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장 감독님, 출산을 도와주는데 어떻게 기묘한 분위기가 생긴단 말이에요?”제작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윤태는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주는 일에 높은 점수를 걸었다. 이 에피소드는 시청률을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다.하지만 암컷 돼지의 출산 장면이 나가기도 전에 이미 시청률은 정상을 찍고 있었다.사도현과 배경윤의 키스 장면 덕분이었다. 장윤태는 기대에 가득 찬 눈빛을 하고 말했다.“괜찮아. 암컷 돼지의 출산 장면은 이 프로그램의 두 번째 하이라이트가 될 거야.”장은학은 돼지우리 앞에 서서 미간을 찌푸린 채 기다리고 있었다. 사도현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다가가서 말했다.“자네가 바로 출산을 도와주러 온 사람인가?”“저, 저는...”사도현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비록 제일 일찍 도착했지만 암컷 돼지의 출산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웃기지 마!”배경윤은 사도현을 밀어내고는 목청을 높였다.“너는 어쩌면 날이 갈수록 뻔뻔해지는 거야? 내가 선택한 바다 별장에 너 같은 사람은 절대 들어올 수 없어. 미안하지만 나가줄래? 앞으로 내 집에 들어오지 말아줘.”배경윤은 사도현이 어떤 남자인지 잘 알고 있었다. 미쳐 돌아서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 수위 높은 행각을 벌이려고 든다면 감당할 수 없었다.지금으로서 제일 좋은 방법은 사도현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그러면 사도현의 음험한 계획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다.조각 같은 사도현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피어올랐다.“경윤아, 지금 네가 한 말 후회하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나한테 울면서 빌어도 소용없어.”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게스트들이 일부러 두 사람을 놀려댔다.“유명한 회사 대표가 경윤 씨만 바라보고 직진하는데 왜 자꾸 내빼는 거예요? 솔직히 마음 있잖아요.”“프로그램의 이름을 >이 아니라 >이라고 바꾸는 게 낫겠어요.”“사도현 씨, 경윤 씨가 지내는 별장에 들어오세요. 어차피 곧 가족이 될 사람들인데 초가집에 살든, 별장에 살든 상관없잖아요.”배경윤은 미간을 매만지면서 한숨을 내쉬었다.“여러분, 놀리는 것도 적당히 하세요. 사도현은 시한폭탄 같은 존재예요. 요트에서 저를 제압하고 그런 짓을 했으니 여성 참가자를 쉽게 보고 함부로 대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 저랑 같은 편에 서서 사도현과 맞서 싸워야 하는 거 아닌가요?”“그런 사람이라서 더 무섭다는 말이에요.”소수민은 웃음을 겨우 참으면서 사도현을 힐끔 쳐다보았다.“저는 차라리 사도현 님처럼 완벽한 남자가 다가와 주길 바랐어요. 그런데 이미 마음은 정해진 것 같으니 어쩔 수 없죠. 유빈 씨, 이나 씨. 제 말이 맞죠?”장유빈과 양이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사도현 씨처럼 멋진 남자가 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까 기회가 왔을 때 잡으세요.”명문대 학생 장유빈은 사도현을 지그시 쳐다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차갑기
소수민이 숙소를 선착순으로 정한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올림픽 금메달 선수 하늘과 더 얘기하지 않고 재빨리 달려갔을 것이다.“장 감독님이라면 그럴 줄 알았거든요. 장 감독님이 촬영한 예능을 보면서 어떤 스타일인지 알게 되었어요. 혹시나 해서 먼저 뛰었더니 진짜 선착순이더라고요.”“아까 경윤 씨가 사도현 씨랑 키스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부러웠는지 알아요? 게다가 바다가 보이는 별장까지 선택했으니 정말 모든 걸 다 가졌네요.”소수민은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수민 씨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어요? 저랑 사도현을 보고 있었나요?”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배경윤은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실시간 방송이라 진작에 소문이 났는걸요. 두 사람이 키스하는 장면을 네티즌이 편집해서 올린 모양인데 그게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어요.”“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어! 망신당했으니 어쩌면 좋아.”배경윤은 바다를 쳐다보면서 소리를 질렀고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영상이 퍼졌다는 건, 진찬영도 그 영상을 보게 되었다는 뜻이다.‘사도현, 너 일부러 그런 거지? 나랑 찬영 오빠를 갈라놓으려는 수작이잖아.’배경윤은 저 멀리서 진찬영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진찬영의 두 눈은 오로지 배경윤을 향해 있었다.“찬, 찬영 오빠...”배경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발끝만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 모습은 바람이 난 아내가 남편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경윤 씨는 운이 참 좋은 것 같아요. 그전에 나한테 얘기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별장이네요. 바다를 마주 보고 있고 날씨가 따뜻하잖아요.”진찬영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다.“네. 정말 좋아요.”배경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물었다.“찬영 오빠는 어디에서 지내요?”“아주 운 좋게도 경윤 씨랑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내게 되었어요. 경윤 씨만 괜찮다면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식사해요. 이래 보여도 요리 하나는 자신 있거든요.”“저야 너
배경윤은 제일 빨리 달려갔고 여섯 채의 별장 중에서 가장 근사한 별장을 선택했다.반대로 사도현은 느긋하게 걸어서 마지막으로 남은 별장을 선택했다. 별장이라 하기에는 한없이 누추한 초가집이었고 지붕도 없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지낸단 말이에요? 다른 집으로 안내해 주세요.”사도현은 재벌가 도련님으로서 어릴 적부터 큰집에서 자랐다. 그런데 갑자기 초가집에서 지내라니 기가 찼다.“사도현 씨, 정말 죄송하지만 이곳의 규칙을 준수해야 해요. 숙소는 선착순으로 결정되지만 합산 점수가 가장 높은 참가자에게는 숙소를 바꿀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요. 며칠 동안 힘내서 점수를 얻으세요.”사회자 최빈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사도현은 윈스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지만 연애 프로그램에 참가했으면 규칙을 잘 준수해야 했다.그렇지 않으면 시청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다.“숙소를 바꿀 수 있다고요?”사도현은 턱을 매만지더니 씩 웃으면서 물었다.“어떻게 하면 점수를 얻을 수 있어요?”“밭일을 하거나 가축에게 먹이를 주면 돼요. 바닥에 널린 소똥과 개똥을 치워도 되고요. 아무튼 이곳은 할 일이 아주 많으니 일을 찾아서 하면 점수를 드려요.”그러자 사도현의 표정이 삽시에 굳었다.“연애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을 부려 먹는 프로그램 아니에요? 자꾸 힘든 일만 하라고 부추기는 것 같아요.”최빈은 어색하게 웃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시다시피 장윤태 감독님이 >을 찍은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사랑을 찾으러 온 이곳에서 직접 일하면서 성취감도 느끼고 호감을 느끼는 상대의 마음을 얻으라는 취지라고 했어요.“하! 소똥이나 주우면서 매력을 발산하라는 말이네요? 궂은일만 하는데 어떻게 로맨틱한 분위기가 이루어지겠어요. 감독님도 참 대단해요.”사도현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왔다. 그러고는 주먹을 꽉 쥔 채 말했다.“합산 점수가 제일 높으면 된다는 뜻이죠? 내가 이런 승부욕은 또 있거든요. 다른 남성 참가자한테 뒤처지지 않을 거예요.”사도현은 소
윤설은 화면 속의 배경윤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배경윤, 네까짓 게 뭔데 내 남자를 차지해! 죽기보다 못한 삶을 살게 해줄 테니 딱 기다려. 연예계라는 곳은 너처럼 멍청한 년이랑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줄게.”윤설은 심호흡하고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상대는 인터넷 마케팅 회사의 사장이었다. 그 회사는 수백 개의 계정으로 한 사건의 여론을 조작하는 것에 능했다.“윤설 씨, 오랜만이에요. 고귀하신 분이 어쩐 일로 연락했어요?”“장 사장님, 그동안 너무 받기만 해서 선물이라도 드리려고요.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예요.”“저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요즘 장사도 잘되지 않아서 골치 아팠거든요. 한번 들어나 볼까요?”“배경윤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죠? 이 여자가 망신당하게 해주면 돼요. 평생 먹고 살 걱정 없이 챙겨드릴 테니 확실하게 해주세요.”“저한테 맡겨만 주세요.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건 우리 회사가 이 바닥에서 제일 잘해요. 조만간 다시 연락드릴게요.”윤설을 전화를 끊고는 피식 웃었다. 한편, 요트에서 사도현이 돌진한 뒤로 배경윤은 꼼짝하지 못했다.“사도현, 너는 내가 본 남자 중에 제일 뻔뻔한 남자야. 너처럼 뻔뻔하면 못 하는 일이 없겠어.”조각상 같은 사도현의 얼굴에 빨간 손자국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사도현은 개의치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배경윤은 그저 한숨만 나왔다.“뻔뻔스러운 척했을 뿐이야. 너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여기 왔으니 뭐라도 해야지. 나는 직진할 줄밖에 몰라.”사도현은 평온하게 말했다.“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나의 마음을 얻고 싶다면서 왜 계속 확신을 주지 않았어? 너는 진심을 표현할 줄 모르는 멍청이야.”배경윤은 사도현과 사귀기 전에 있었던 일들이 줄줄이 생각났다. 사도현의 여자가 되려고 애썼지만 고통만 받았기에 다시는 자신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내가 너한테 상처 준 걸 많이 후회했어. 너를 잃고 나서 내가 잘못했다는
“읍!”배경윤은 갑자기 돌진한 사도현을 뿌리치려고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사도현은 배경윤을 집어삼킬 것처럼 격렬하게 키스를 퍼부었다.편집 없이 실시간으로 방송되었기에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아냈다. 두 사람이 입을 맞추는 모습을 본 네티즌은 앞다투어 댓글을 달았고 시청률은 기록을 경신했다.[아니, 내가 이런 장면을 봐도 되는 거야? 드라마보다 더 로맨틱하잖아!][키스하는 것처럼 연기하는 줄 알았더니 정말 입을 맞추었어. 유명한 그룹의 대표와 사랑에 빠지는 대본을 나도 받아보고 싶네.][윈스 엔터테인먼트에서 그 여배우를 더 이상 밀어주지 않았던 건 다 이유가 있었어. 벌써 새로운 여자랑 놀아나고 있었던 거지!][그럼 배경윤이 첩이네. 첩 주제에 연애 프로그램에 왜 출연하는 거야? 이런 사람을 섭외한 제작진도 이상해.][지금 몇 세기인데 첩을 논해? 고귀한 사도현이 그 여우한테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다가 지쳤을 뿐이야.][네가 뭔데 우리 윤설을 여우라고 해? 윤설이 사도현한테 그렇게 해달라고 했어? 잘 모르면 가만히 있어.]네티즌은 의견이 분분했고 댓글이 삽시에 몇천 개씩 달렸다.사도현과 배경윤을 응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배경윤을 첩이라고 부르면서 모욕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윤설의 극성팬들이 윤설을 옹호했다.하지만 대부분 시청자는 두 사람이 입을 맞추는 장면에 감탄하면서 댓글을 달았다.사도현과 배경윤의 촬영을 맡은 일부 제작진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드라마 같은 장면을 계속 촬영해야 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가늠조차 하지 못해서 장윤태한테 도움을 청했다.“두 사람을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둬. 예능이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찍는다고 생각해.”화면을 응시하고 있던 장윤태는 엄숙한 표정을 하고서 말했다. 배경윤과 진찬영을 이어주려고 했지만 갑자기 돌진한 사도현 때문에 흐름이 끊기고 말았다.수줍고 천천히 다가가는 진찬영과 달리, 사도현은 직진하는 남자였다.방송한 지 20분도 채 되지 않아서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아무리 잘 짜인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