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윤은 얇은 입술을 오므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앞만 주시하며 운전에 열중했다.차는 점점 시내에서 외곽으로 향했다. 도로 양쪽은 모두 푸른 바다였고, 시야가 탁 트이는 모습이었다.차설아는 왠지 등골이 오싹해서 좌석 등받이에 달라붙어 꼼짝도 하지 못했다.‘이 자식은 대체 왜 나를 해변으로 데려온 거야? 설마 자기 입술을 물어뜯은 것 때문에 날 바다에 던지려는 건 아니겠지?’“성도윤, 우리 대화로 풀어! 극단적인 방법 말고!”차설아는 황급히 사정하기 시작했다.“내가 어제 당신한테 실수를 하긴 했지만, 고의는 아니었어. 누가 그렇게 잘 생기래? 옷도 잘 챙겨 입지 않고, 그건 분명 사람을 유혹하는 모습이잖아. 난 그저 모든 여자들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저질렀을 뿐이야. 이번만 용서해 줘. 다음부터는 절대 안 그럴게. 당신이 온갖 수단으로 날 유혹해도 절대 넘어가지 않을게.”차가운 얼굴의 성도윤은 원래 아무 표정도 없었지만, 차설아의 말에 기가 차서 웃었다.“그러니까, 내가 맛있게 생겨서 당신이 내 입술을 뜯었으니, 당신은 책임이 없다?”“그건 아니지!”차설아는 당당하게 말했다.“내 행동은 우연이었지만, 당신은 아니잖아. 법적으로 당신의 행동은 범죄에 속하고 난 무죄야.”성도윤은 차설아가 이렇게 억지를 잘 부리고, 이중 잣대가 극에 달한 사람인 걸 전혀 몰랐다.두 사람은 말다툼 끝에 해안의 가장 유명한 교회에 도착했다.이 교회는 바다 한가운데에 세워져 있었다. 푸른 지붕을 가진 하얀 건물은 바다와 어우러져 멀리서 보면 아주 아름답고 낭만적이었다.교회는 평소에 외부에 개방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결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전부 부자가 아니면 고귀한 신분이었다.해가 지기 전에 남자와 여자가 서로 반지를 교환하면 두 사람은 바다의 여신의 축복을 받아 백년해로한다는 전설이 있었다.성도윤의 차는 교회 앞 주차장에 멈춰 섰고,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렸다.“오늘 진우랑 청하 결혼식이야. 진우가 당신도 오라고 했잖아. 같이 들어가.”성도윤은 우월
“형, 드디어 왔어? 내가 전화를 수백 통 넘게 했는데 왜 연락이 안 돼? 진우 형이 급해서 특수부대를 출동시킬 뻔했잖아!”양복 차림에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한 사도현은, 멀리서 성도윤을 향해 손을 흔들며 격양된 어조로 말했다.성도윤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결혼식은 저녁이잖아? 뭐가 그렇게 급해?”“당연히 급하지. 우리는 들러리잖아. 신부맞이도 해야 하고, 사진도 찍고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당연히 미리 와서 준비해야지.”사도현은 말하면서 성도윤을 끌고 무대 뒤로 갔다.“일단 분장실에 가서 옷부터 갈아입어. 옷을 너무 캐주얼 하게 입었어. 어디 놀러 왔어?”두 사람은 분장실로 들어갔고, 강진우는 문을 등지고 창밖의 바다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양복에 늘씬한 몸매의 그는 동화 속 백마 탄 왕자님처럼 우아하고 존귀한 모습이었다.하지만 조금 구겨진 그의 미간은 걱정거리가 있는 것 같았다. 결혼식을 앞둔 신랑이가져야 할 기쁨이나 감격은 찾아볼 수 없었다.“형, 도윤이 형 왔어. 이제 안심해도 돼!”사도현은 강진우의 뒷모습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강진우는 즉시 몸을 돌려 약간 흥분해서 말했다.“다행이야. 도윤아. 드디어 왔구나. 네가 오늘 안 오는 줄 알았어.”성도윤은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왜 안 오겠어?”“우리 사이에는 청하도 있고, 관계가 좀 복잡하잖아. 너한테는 이 결혼식이 불편할수 도 있으니 네가 오지 않았더라고, 나랑 청하는 널 탓하지 않았을 거야!”“불편하지 않아.”성도윤은 차분하게 말했다.“나랑 청하는 이미 오래전에 끝난 사이야. 지금은 그저 친한 이성 친구일 뿐이야. 두 사람 결혼, 진심으로 축하해.”“그럼 됐어!”강진우는 긴 숨을 들이켰다.요 몇 년 동안 강진우와 성도윤은 계속 연락을 하지 않았다.성도윤의 결혼식에도, 강진우와 허청하는 참석할 면목이 없었다.왜냐하면 그들은, 성도윤이 허청하에게 큰 상처를 받아 자포자기해서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을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동안 강진우와 허청하는
차설아는 아침을 먹지 않아 배가 고파서 잔디밭의 디저트 코너를 헤매고 있었다.무스 케이크 하나를 들고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마치 축의금의 본전을 따려는 하객처럼 입가에 크림을 묻히고 열심히 먹는 모습은 아주 귀여워 보였다.갑자기 강진우의 목소리를 들은 차설아는 고개를 번쩍 들었고, 마침 성도윤과 눈이 마주쳤다.케이크를 생전 처음 먹는 듯한 자신의 모습이 약간 창피하게 느껴져, 즉시 머리를 정리하고는 우아한 모습을 취했다.“스태프가 억지로 케이크를 주더라고요. 저도 이렇게 많이 먹을 생각은 없었어요...”그런 차설아의 모습이 강진우는 너무 귀여워 웃으며 말했다.“스태프분들이 아주 일을 열심히 하는 모양이군요. 안심하고 먹어요. 전부 고급 파티시에가 재료 배합까지 신경 써서 만든 거라 먹어도 살이 안 쪄요.”성도윤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차가운 표정으로 차설아를 보며 말했다.“이러니 살이 안 찌겠어?”괘씸하다!차설아는 화가 나서 성도윤의 얼굴에 케이크를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이 자식은 말도 참 괘씸하게 하지. 독설가가 따로 없어!’물론, 순순히 당하고만 있을 차설아가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의 그녀는 호락호락하지 않다.“성 대표님은 배는 작은데 근육이 왜 그렇게 많아? 가짜 같잖아? 설마 호르몬 주사라도 맞았어?”차설아는 반격에 나섰다.“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당신이 잘 알잖아?”성도윤은 무표정한 얼굴로 일침을 가했다.“그렇게 많이 만져 봤으면서.”차설아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찔렸다.다른 건 몰라도, 성도윤의 근육은 확실히 많이 만졌다. 촉감도 좋고 여운이 길게 남는 것이 백 프로 자연산이었다!“잠깐!”예리한 사도현은 성도윤을 보고 또 차설아를 보더니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물었다.“왜 서로의 배에 대해 이렇게 잘 알아? 설마 어젯밤에 무슨 일이라도...”“없었어!”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부인했다.이에 더 많은 사람들의 상상을 불러일으켰다.강진우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보아하니 어젯밤에 아주
강진우는 여전히 열정적으로 초대했다.강진우의 결혼식에서 자신이 흥을 깨는 것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 차설아는 하는 수없이 승낙했다.“그래요 그럼!”그리고, 잔디밭의 디저트 코너를 보며 아쉬워하며 침을 삼켰다.‘안녕, 맛있는 디저트들아. 언니가 이따가 와서 계속 이뻐해 줄게!’차설아의 모습은 성도윤의 눈에 띄었고, 그의 차갑던 입꼬리에 곡선이 그려졌다.“잠깐.”성도윤은 시동을 걸려는 사도현에게 말했다.“형, 왜 또? 설마 전처랑 친하지 않다고 말하려는 거야?”“배고파서 먹을 것 좀 챙기려고.”성도윤은 차갑게 말하고는 차 문을 열고 긴 다리로 잔디밭을 향해 걸어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성도윤은 다양한 디저트가 가득 담긴 그릇을 들고 돌아왔다.쉐이크, 퍼프, 무스 케이크, 딸기 푸딩 등 여러 가지 음식들이 가득했다.강진우와 사도현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놀라서 하마터면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사도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형 디저트 싫어하잖아? 언제부터 입맛이 변한 거야?”성도윤은 차갑게 사도현을 보더니 명령했다.“운전이나 잘해.”그리고 여전히 도도한 표정으로 옆에 앉은 차설아를 향해 말했다.“먹고 싶으면 가져가.”그릇에 담긴 각종 디저트에 눈독을 들인지 오래인 차설아는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좋아, 그럼 사양하지 않을게.”차설아는 퍼프를 집어 들고, 흐뭇하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보송보송하고 바삭바삭한 껍질에 새콤달콤한 크림이 들어 있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었다.차설아는 절제하고 싶었지만,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이미지는 신경 쓸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고, 입 주위는 크림 범벅이 되었다.차 안에 있던 세 명의 잘생긴 남자는 서로 쳐다보며 모두 멍한 표정을 지었다.특히 사도현은 눈앞의 광경에 크게 놀랐다.그의 인상 속에 차설아는 단정하고, 우아하고, 조신하게 웃는 여자였다. 아름답지만 재미가 없어 보였다.성도윤과 이혼한 후부터,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변해버렸다
차설아는 손에 있던 퍼프까지 떨구고, 순식간에 목까지 빨개졌다.‘이 자식 미친 거 아니야?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성도윤은 덤덤한 표정으로, 엄숙하고 진지하게 말했다.“어젯밤에 내 입술을 뜯어 먹을 때도 분명 그렇게 말했잖아.”사도현은 가벼운 기침을 두 번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형, 대낮에 운전 중인데 화제가 너무 뜨거운 거 아니야?”강진우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두 사람 어제 아주 뜨거운 밤을 보냈나 봐?”성도윤은 손을 내저으며 침착하게 말했다.“뜨거운 건 설아고, 난 피해자이지.”“성도윤!”차설아는 체면이 구겨져, 차 밑으로 기어들어가 영원히 나오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다.그녀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어쨌든 성도윤에게는 명백한 증거가 있었고, 만약 그 증거를 공개한다면 차설아는 끝장이다!‘됐어, 그냥 참아. 참으면 지나가겠지. 이 녀석이랑 따지기도 귀찮아.’이렇게 생각한 차설아는 아예 눈을 감고 창문에 기대어 잠을 잤다.어젯밤에 너무 고생한 탓에 차설아는 진짜 잠이 들었다.비몽사몽하던 차설아는 자신의 몸이 큰 손바닥에 의해 옮겨지고, 머리가 드넓은 어깨에 기대고 있어 아주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성도윤은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잠든 여자를 깊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자신도 발견하지 못한 애틋함이 어려있었다.차설아의 입가에는 여전히 하얀 크림이 남아 있었다. 깨어 있을때의 공격성은 사라지고, 사람 마음을 녹이는 순수함과 사랑스러움만 가득했다.성도윤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져, 양복 주머니에 있던 손수건을 꺼내 그녀 입가의 크림을 부드럽게 닦았다. 마치 딸을 돌보는 듯한 자상한 행동이었다.“쯧쯧쯧!”사도현은 백미러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형, 저번에는 긴가민가했는데 지금 보니 진짜 사랑에 빠졌네.”성도윤도 자신이 차설아에게 지나치게 자상한 것을 느껴 즉시 손수건을 치우고,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헛소리하지 마. 나 결벽증 있어.”“결
이 18개의 관문은 문무를 겸비한 수리, 문화, 역사, 철학 등 모든 방면의 문제를 다뤘다.첫 번째 관문은 문학에 관한 것으로, 남자 쪽에서 중국 한악부 시인의 ‘공작동남비’를 완전히 외워야 했다.‘공작동남비’는 가슴 뭉클한 사랑을 노래한 서사시이다.신랑단 일행은 모두 키가 크고 잘생긴 명문가의 부잣집 도련님들이었고, 해외 유학파 출신이 대부분이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서로 마주 보면서 머리가 텅 비어있었다.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한가해서 중국의 수천 자나 되는 고문을 외우고 있겠는가?“외울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거죠?”신부 측 사람은 의기양양해서 말했다.“돈을 지불하고 통관할 수도 있어요. 적어도 1억은 줘야 해요.”“좋아요, 지금 당장 지불하죠.”사도현은 휴대폰을 꺼내며 안달 난 표정이었다.“진작에 말하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에 뭐 하러 시간을 낭비해요.”“잠깐.”이때 차설아가 나서더니 말했다.“제가 외울 수 있어요.”“공작동남비는 중국 육조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장편 서사시이죠. 전문은 공작이 동남쪽으로 날아가 저 멀리서 배회하네...”차설아는 구구절절 또렷하게 외우기 시작했다.사람들은 잇달아 그녀를 보며 불가사의한 표정을 지었다.사도현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장난인 줄 알았는데 진짜 외우고 있어? 대단하네!”성도윤은 의외로 담담했고 자랑스레 말했다.“이 정도야 뭐. 내가 전에 말했잖아. 설아 모범생이라고!”10여 분 만에 차설아는 드디어 ‘공작동남비’를 모두 외웠고, 사람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잘했어요!”신부 측 사람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역시 강씨 집안은 권력 다툼만 하는 그런 속물이 아닌 줄 알았어요. 이 여자분 같은 인재가 있다니!”차설아는 겸손하게 손사래를 쳤다.“별것 아니네요. 그저 심심할 때 옛날 시를 외우는 것뿐이에요.”하지만, 차설아는 속으로 ‘공작동남비’는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한 내용이라 결혼식에 사용하기에는 알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신랑단은
사람들은 모두 성도윤을 바라보며 불가사의한 표정을 지었다.그들은 모두 성도윤, 강진우 그리고 허청하의 스토리를 알고 있었다.성도윤이 결혼식에 참석한 것에 대해 이미 많은 사람이 놀랐는데, 지금은 성도윤을 불러 혼사를 돕다니! 성도윤은 정말 대인배라는 생각이 들었다.성도윤은 얇은 입술을 오므리고,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마치 내키지 않은 듯싶었다.분위기는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아주 난처해졌다.시간이 거의 다가오자 사도현은 조급해하며 한숨을 내쉬었다.“형, 우리도 형한테 이 일을 부탁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아...”“하지만 청하 누나가 전에 형한테 죄책감을 갖고 있다고 했잖아. 형의 축복을 받아야 누나가 문을 열 것 같아. 그러니까 형이 좀 나서줄래?”강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도현아, 도윤이 난처하게 만들지 마. 도윤이한테 이 일을 맡기는 건 너무 가혹해.”“하지만...” 사도현이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성도윤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괜찮아. 내가 직접 나서야 한다면, 알겠어.”성도윤은 눈살을 찌푸리고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가볍게 방문을 두드리며 말했다.“청하야, 안심하고 문 열어. 난 이미 오래전에 내려놓았고, 너랑 진우가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축복하고 있어.”쥐 죽은 듯 조용하던 방 안에서 드디어 인기척이 났다.허청하는 연약하고 죄책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도윤아, 진우 오빠랑 내가 너한테 많이 미안해. 네가 그 말을 해주기만을 기다렸어. 고마워. 진짜 고마워.”그리고 방문에 틈이 생겼다.신랑단은 서둘러 여세를 몰아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허청하의 친구들은 강하게 저항했다.순간, 현장은 혼란스러워지더니 열기가 뜨거워졌다.성도윤은 꼿꼿한 몸을 세우고 사람들의 가장자리에 서서, 이 모든 것을 묵묵히 바라볼 뿐 참여하지 않았다. 미간에는 숨길 수 없는 우울함이 비쳤다.차설아는 안전을 위해 인파와 멀리 떨어져 있었다.차설아는 몰래 성도윤을 힐긋 쳐다보았다. 그의 우울한 모습에 차설아는 또 마음이 약해졌
성도윤은 그제야 차설아의 말을 깨닫고 어이가 없었다.‘내가 어딜 봐서 괴로워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방금 그의 기분은 확실히 좀 가라앉았지만, 허청하때문이 전혀 아니었다.단지 차설아와 결혼할 때 너무 간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 같은 것도 너무 건성이었고 기념할 만한 과정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후회되었다.심지어, 앞으로 차설아와 재결합한다면 그들의 결혼식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까지 계획하고 있었다.하지만 성도윤은 당연히 솔직히 말할 리 없었고, 이 기회를 타 차설아를 놀리기 시작했다.성도윤은 잘생긴 얼굴에 슬픈 얼굴을 하고 말했다.“맞아, 괴로워 죽겠어. 마음이 너무 아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지? 너무 화가 나. 어떻게 하면 좋을까?”차설아는 더욱 마음이 약해져 아이를 달래듯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괜찮아. 정신 바짝 차려. 내 생각에 최고의 복수는 당신이 더 행복해지는 거야. 저 사람들보다 더 달콤한 사랑을 하는 거지!”“하지만 난 없어...”성도윤은 비참한 표정을 지었다.“난 글렀어. 다들 내가 당신이랑 이혼한 것도 알고, 당신이 배경수랑 붙어 다니는 것도 알고 있어. 너무 창피해. 사람들은 날 어떻게 생각할까?”“기다려봐. 내가 말했잖아. 오늘 절대 지지 않게 해준다고! 그래도 내 전 남편인데, 당신이 너무 비참한 모습이면 나도 창피해.”두 사람의 속삭임을 허청하는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허청하는 웃으며 강진우와 이야기를 하고, 여러 가지 게임을 하며 행복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씁쓸하기 그지없었다.‘두 사람 이혼한 거 아니었어? 왜 저렇게 친해 보여? 여기서 손까지 잡고 난리야? 괜히 신경 쓰이게!’“도윤아, 계속 밖에 서 있지 마. 나랑 진우 오빠가 가장 축복받고 싶은 사람이 바로 너였어...”허청하는 변두리에 서 있는 성도윤을 보며 말했다.“도윤아, 우리 세 사람 같이 사진 한 장 찍었으면 좋겠어.”모두들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참, 고집이 있는 신부네. 기어코 어색한 상황을 만들어야겠어?’‘응석
성도윤이 진심 어린 충고를 건넸다.“???”사도현은 남자의 말을 듣고는 눈살을 찌푸렸다.“형, 이게 정말 형 입에서 나온 말이야? 여자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고? 그럼 그게 완전 ‘호구’랑 뭐가 달라? 그렇게 냉정하고 도도하던 형이 어쩌다... 이제는 아내가 하라는 대로 한다고? 이건 형답지 않아...”사도현은 여자를 쫓아다니긴 하지만 성도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다.여자에게 돈을 쓰고 달콤한 말을 하긴 해도 어떤 여자도 그의 행동을 통제하거나 그의 사고를 지배할 수 없었다.어떤 여자가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순간, 그는 단호하게 다른 여자를 찾았다.배경윤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의 원칙이 걸린 문제라면 절대 양보하지 않았기에 오늘도 이렇게 끝없는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나도 오랜 시간 고민해서 얻은 결론이야.”성도윤이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사도현에게 연애 철학을 설파했다.“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과 일들을 만나게 되지. 그 중요도를 정하는 객관적인 기준은 없어. 중요한 건, 네 마음속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아는 거야.”“네가 스스로의 자아를 지키는 것이 그 여자와의 관계보다 더 중요하다면, 그 여자를 포기하면 되는 거고.”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덧붙였다.“네가 여자를 유혹하는 데 능숙한 건 알지만 결국 진정성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야. 나는 아내의 말을 듣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혹시 네가 그렇게 못하는 건, 단순히 네가 상대방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성도윤은 날카롭게 바라보며 정확한 지적을 했다.“나는...”사도현은 그런 게 아니라고 바로 반박하려 했지만 막상 입 밖으로 내뱉으려 하자 말문이 막혔다.그는 다른 사람을 속일 수도 있고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속일 수도 있었다.하지만 성도윤만큼은 속일 수 없었다.성도윤은 누구보다 그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자신의 마음속 가장 솔직한 감정을 그가 단번에 꿰뚫어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형은 내가 좀
“내가 왜 경윤이한테 뭐라고 해야 하죠?”차설아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사도현에게 물었다.“만약 내가 도현 씨라면 이 일이 윤설과 관련이 있든 없든, 나는 단번에 배경윤을 위해 나섰을 거예요. 좋아하는 여자가 이렇게 큰 모욕을 당했는데 괴롭힌 사람을 찾아서 따지기는커녕 내 여자에게 참으라고 한다면, 그건 도현 씨가 그 여자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겠죠.”“지금 이간질하려는 건 아니지? 사람마다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무턱대고 화를 내고 일이 커지면 더 큰 소란을 일으킬 수도 있는데, 그게 과연 좋은 방법일까?”사도현은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떠받들던 차설아가 자기편을 들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배경윤과의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가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아직도 이해를 못 하시네요.”차설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 일에서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도현 씨의 태도예요. 그런 태도라면 어떤 여자라도 상처받을 수밖에 없어요.”“그게 아니라...”사도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좋아하는 감정을 이렇게 표현하는 게 정말 힘들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설아야, 역시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너뿐이구나!]배경윤은 타자한 후, 서러운 마음에 바로 차설아를 껴안았다.[이런 마음은 여자만이 이해할 수 있어! 도현 씨는 그저 내가 징징거린다고만 생각하겠지!]“도현 씨, 3일 안에 경윤이한테 사과할 기회를 줄게요. 하지만 어떻게 사과할지는 도현 씨가 알아서 해야 해요. 경윤아, 우리 오늘 같이 자자. 할 얘기가 정말 많을 것 같아!”차설아의 말에 배경윤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팔을 잡고 계단을 올라갔다.아래층에서는 두 남자가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며 어리둥절해 있었다.성도윤은 왜 남의 커플 문제에 자신이 이렇게 끼어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반대로 사도현은 왜 이해심 많던 차설아가 갑자기 이렇게 고집불통이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형, 우리 커플 일에 형수가 너무 과하게 간섭하는 거 아니야? 원래 하루이틀이면 해
“그때는 그때고, 사람은 성장하는 법이잖아.”샤워를 마친 차설아가 계단을 내려오며 말했다.2층에서 사도현과 배경윤이 성도윤을 둘러싸고 다투는 소리를 듣고 성도윤 대신에 반박하며 나선 것이다.세 사람은 고개를 들어 목욕 가운을 입고 나온 차설아를 보고 급하게 다가갔다.“설아야, 너 혼자 내려왔어? 움직이지 마, 잠깐만.”성도윤이 제일 먼저 달려가 아기를 돌보듯 세심하게 챙기며 말했다.배경윤과 사도현도 마치 공주를 대하듯 신중하게 행동했다.[괜찮아? 기분 나쁘거나 불편한 거 없어?]성도윤이 차설아를 거실 소파에 앉히자 배경윤이 그녀의 옆에 앉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난 괜찮아. 기분도 나쁘지 않고 아픈 곳도 없어. 내가 전에 겪은 일에 비하면 몇 명 애들이 장난친 정도인데 뭐가 대수겠어.”차설아가 배경윤의 손등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안심시키려 했다.“경윤아, 네가 더 걱정이야. 기분 잡치게 하는 사람들을 마음속에 담아두지 마. 그러면 오히려 너 자신이 힘들어져. 그냥 흘려보내. 신경 쓸 필요 없어.”그 말을 들은 배경윤은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의미심장하게 한마디 했다.[맞아, 맞아. 어떤 사람은 정말 마음에 두지 않더라고. 그 사람 때문에 화내는 내가 진짜 등신이지.]그녀는 당연히 차설아가 말한 ‘기분을 잡치는 사람’이 사도현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도현은 오히려 차설아가 배경윤에게 작은 일로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더 관대해지라고 충고하는 것으로 이해했다.“들었어? 역시 형수가 마음이 넓어. 미친개한테 물렸다고 너도 같이 물려고?”사도현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사도현은 배경윤이 절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고집 센 여자인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차설아의 말만큼은 예외라는 걸 알고 있었다.차설아는 배경윤의 정신적 지주이자 인간적 우상이었기 그녀의 말이면 배경윤은 무엇이든 믿었다.[도현 씨가 그 미친개라는 말이지?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배경윤이 분노를 담아 타자기를 두드리며, 마치 사도현을 죽일 듯 차가운 눈빛
사도현은 배경윤이 적은 글을 보고 낮게 한숨을 쉬었다.“윤설 씨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렇게 하면 더 큰 사이버 폭력이 일어날 수도 있어. 난 그냥 소란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 연예인 본인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어.”[흠, 당연히 연예인 본인까지 끌어들이지 않길 바랄 거야. 그 사람들 도현 씨 팬들이잖아. 게다가 윤설 씨까지 얽혀서 그 여자가 곤란해질까 봐 그런 거지?]배경윤은 그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신경을 쓰는 모습을 처음 봤다. 윤설이 첫 번째이자 아마 유일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에 그녀는 눈앞의 이 남자를 더 용서할 수 없었다.‘이런 바람둥이!’“조금만 머리 쓰면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알 텐데.”사도현은 배경윤의 ‘모함’을 듣고 이 오명을 씻을 수 없다는 생각에 더 이상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차갑게 말했다.“네가 뭐라고 생각하든, 나는 이 사건에 연예인 본인을 끌어들이는 걸 절대로 허용하지 않아.”그도 어쨌든 윈스 엔터테인먼트의 CEO였고 연예계의 돌아가는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때로는 하나의 루머가 칼날처럼 되어 사람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을 수 있다.연예계에서 온라인 폭력에 의해 처참하게 망가진 스타들이 많았고 배경윤과 차설아 같은 일반인은 그 악플의 고통을 더 견디기 힘들 것이다.[헐, 이제 나를 협박하겠다는 거야? 도현 씨가 그렇게 말할수록 난 더 윤설을 찾아갈 거야. 날 어떻게 할 건데?]배경윤은 분노를 담아 빠르게 타자를 했다. 소리 없이 치는 타자 소리만으로도 그녀의 분노가 느껴졌다.성도윤은 그들 옆에서 분위기를 살피며 처음으로 연애 문제가 이렇게 복잡하고 피곤할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이 두 사람은 분명 서로에게 감정이 있었지만 계속해서 상처가 되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망쳐가고 있었다.‘내가 보기엔 차설아와 내 관계가 훨씬 더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 같아. 내가 정말 운이 좋아.’차설아를 떠올리며 성도윤은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지금 2층으로
“오늘 소란을 일으킨 사람 중에 내 팬도 있었던 거 확실해?”사도현은 사실 명성과 노출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배경윤 때문이 아니라면 절대 미디어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 어색한 연애 프로그램 같은 것도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다.그가 이렇게 많은 팬을 얻게 된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조용한 성격이라 팬들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팬들이... 오물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충격을 받았다.“믿을 수 없지?”배경윤이 오늘 자신과 차설아가 괴롭힘을 당한 영상 파일을 사도현에게 보여주었다.“봐봐, 그 팬이라는 여자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도현 씨가 잘생기고, 부유하고, 성격도 좋고, 완벽한 남자라며 윤설과 천생연분이라고 하더라. 도현 씨가 윤설의 왕자인데 내가 그 악녀가 되어 두 사람의 관계를 망쳤다고 하면서, 심지어 설아까지 모욕했어.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뭐, 우리 설아까지 욕했다고?”옆에서 무표정하게 싸움을 구경하던 성도윤은 배경윤의 말을 듣고 나서 차설아에게 더 한없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그는 사도현이 들고 있던 핸드폰을 빼앗 분노에 차서 영상을 확인한 뒤 싸늘하게 말했다.“이 사람들, 이런 짓을 할 용기가 있다면 그 자만과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어떻게 할 건데?”배경윤이 성도윤에게 물었다. 이전과 달리 이제는 거부하는 태도가 없었다.“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이 사람들 다 찾아낸 뒤, 두 사람 앞에서 머리 조아려 사과하게 해야지.”성도윤이 이를 갈며 한 글자씩 뱉어냈다.이 말은 결코 가벼운 말이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끝까지 추궁할 수 있는 말이었다.“그나마 다행이네...”배경윤이 사도현을 보며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저것 봐, 사랑하는 여자가 괴롭힘을 당했으면 정상적인 반응은 저런 건데, 도현 씨는... 아니지. 도현 씨한테는 사랑하는 여자가 괴롭힘을 당한 게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의 팬이 그냥 길 가던 사람을 괴롭힌 정도잖아. 이제야 왜 이렇게 무관심한지 알
[무슨 소리야, 그건 옛날얘기지. 지금은 완전히 아니라고! 나도 한때 도현 씨를 내 ‘남신’이라고 했었잖아? 그런데 그 결과가 어땠어?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형편없더라!]배경윤이 가차 없이 쏘아붙였다.[두 사람, 완전 끼리끼리야. 나랑 설아는 이제 두 사람이랑 거리를 둬야 해. 안 그러면 우리도 불행해질 거야. 봐, 오늘 내가 이렇게 재수 없는 일을 겪은 것도 다 네 탓이야.]“아니, 이게 왜 또 내 탓이야?”사도현은 어이없다는 듯 두 손을 들었다.그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갑자기 죄인처럼 배경윤의 분노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당연히 도현 씨 탓이지! 오늘 나랑 설아에게 똥물을 뿌린 사람들이 누구인 줄 알아?]배경윤이 팔짱을 끼고 사도현을 노려봤다.“누군데?”사도현이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아무리 세상이 험악해졌다고 해도 앞을 못 보는 여자랑 말을 못 하는 여자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할 정도면 정말 제정신 아닌 인간들 아니야?’[한쪽은 도현 씨 팬들이고, 다른 한쪽은 윤설의 광적인 팬들이야.]“뭐?”사도현의 표정이 얼어붙었다.[내가 도현 씨를 알지 않았으면 윤설이랑 엮일 일도 없었을 거고, 그 여자의 팬들에게 이런 일을 당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리고 당신 팬들도 마찬가지야. 윤설 팬들이랑 다를 게 뭐야? 둘 다 극성맞고 정신 나간 사람들뿐이야. 그러니까 이 모든 게 도현 씨 탓이라고!]배경윤은 흥분해서 글을 계속해서 쳐냈다. 사도현은 그녀가 쓴 긴 글을 읽고 머리가 핑 돌 지경이었다. 글에는 온통 그에 대한 비난이 가득했다.사도현은 억울한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근데 말이야, 팬들이 한 행동을 내가 어떻게 책임져? 사람마다 다 성격이 다르고 수천, 수만 명의 팬을 내가 어떻게 다 통제해?”[핑계 대지 마!]배경윤은 여전히 흥분한 상태였다.[팬들의 행동은 결국 본인이 책임지는 거야. 팬덤 문화 몰라? ‘팬들의 행동은 본인이 책임진다.’ 이게 기본 원칙이야! 팬들이 왜 그렇게 극성인지 알아? 그건 본인이
성도윤은 묵묵히 참다가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배경윤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너는 아무것도 몰라. 나랑 차설아의 관계는 너 같은 외부인이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우리는 지금 행복해. 네가 보기 불편하면 그냥 나가면 되잖아.”“...”배경윤이 성도윤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손목이 붙잡히자 이번엔 발을 들어 그를 걷어차려 했다.성도윤은 체격이 크고 힘도 센 편이었지만 배경윤의 저돌적인 공격에 살짝 밀리는 기분이 들어 결국 긴 팔을 뻗어 그녀의 목을 단단히 옭아맸다.“형, 지금 뭐 하는 거야?”바로 그 순간, 사도현이 들어와 이 장면을 목격하고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상황이라니,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성도윤과 배경윤도 순간 굳어버렸다.“오해하지 마.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성도윤이 가볍게 헛기침하며 배경윤을 놓아주었고 배경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성도윤의 발을 힘껏 밟았다.“너 진짜 끝까지 이럴 거야?!”성도윤은 발끝이 부러질 것 같은 고통에 이를 악물었지만 차설아를 떠올리며 꾹 참았다.차설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했는데 그녀의 절친인 배경윤까지 보니 정말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떠올랐다.그리고 슬쩍 사도현을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너, 보험 많이 들어둬.”“무슨 뜻이야?”사도현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무슨 뜻이긴? 저 호랑이 같은 여자를 네가 감당할 수 있겠냐고.”성도윤이 배경윤에게 얻어맞은 부위를 문지르며 투덜댔다.그러자 사도현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지, 우리 경윤이는 원래 이렇게 폭력적인 애가 아니야. 분명 형이 선을 넘었으니까 그런 거겠지.”그는 중요한 순간에 배경윤 편을 들기로 했다.사실 예전에는 서로 의견이 다를 때마다 배경윤과 말다툼이 잦았다.배경윤은 성도윤을 두고 철저히 쓰레기라고 욕했고 사도현은 차설아가 너무 까다롭다고 반박하며 두 사람은 끝없는 논쟁을 벌이곤 했다.하지만 이
“그만 좀 해요, 너무 닭살 돋아요.”차설아는 예전 같았으면 이런 사랑 고백을 들으면 쑥스러웠지만, 이제는 쑥스럽기보다 오히려 닭살이 돋아 참을 수가 없었다.처음엔 성도윤이 차갑고 말수가 적은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건 전부 겉으로만 그럴듯하게 꾸민 모습이었고 실제로는 입만 열면 온갖 달콤한 말을 쏟아내는 사람이었다.성도윤이 손으로 물 온도를 확인한 뒤 말했다.“물 받아놨어. 들어가서 몸 좀 풀고 와.”“좋긴 한데... 좀 나가주겠어요?”차설아가 고개를 푹 숙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그건 안 되지. 당신이 미끄러지거나 수건이 필요하거나 옷을 입어야 할 때 누가 도와줘?”“괜찮아요, 나 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잠깐만 나가 있어 줘요. 도윤 씨가 여기 있으면 부담스러워서 못 하겠어요.”차설아는 아직 성도윤과 그렇게까지 오픈된 관계는 아니었다.게다가 자신만 벗고 그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니. 상상만 해도 얼굴이 뜨거워졌다.“알겠어. 그럼 욕조까지만 데려 줄게. 다 끝나면 전화해.”성도윤이 한발 물러나며 휴대폰을 욕조 옆 선반에 올려놨다.“여기 핸드폰 놔뒀어. 손만 뻗으면 닿을 거야.”“알았어요. 그러니까 이제 제발 가요!”차설아가 손을 휘저으며 성도윤을 재촉했다.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 후, 차설아는 그가 정말 나갔다고 확신하고서야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차설아는 원래 몸매가 좋은 편이었다. 곡선이 부드럽게 이어졌고 피부는 우유처럼 부드럽고 하얬다. 실루엣만 봐도 누구든 넋을 놓을 정도였다.그런데, 옷을 벗다가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거칠고 낮은 숨소리가 문가에서 들려오자 차설아는 순간 얼굴이 새빨개졌다.“도윤 씨, 변태예요?!”“들켰네.”성도윤의 목소리가 낮고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 그는 아쉬운 듯 차설아를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불만 지르고... 알겠어, 나 간다.”그는 투덜거리며 재빨리 문을 닫고 나갔다.더 있다가는 차설아가 진짜로 그를 때려눕힐지도 몰랐다.성도윤은 자
“와, 대박! 이런 주제에 감히 남자를 뺏으려고 했다고?”그 여자들은 비웃으며 휴대폰을 꺼내 차설아와 배경윤을 마구 찍어댔다. 조롱과 비아냥이 섞인 웃음소리가 이어졌다.“으...”배경윤은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 한편으로는 차설아를 보호해야 했고 동시에 그 여자들과 맞서야 해서 허둥지둥했다.“꺼져!”날카롭고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성도윤이 험상꿎은 얼굴로 난동을 부리던 여자 하나를 단숨에 잡아채 거침없이 밀쳐버렸다. “설아야!”그는 온몸에 더러운 물을 뒤집어쓴 채 힘없이 서 있는 차설아의 모습을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주저 없이 배경윤을 밀어내고 차설아를 와락 끌어안았다.“도윤 씨?”차설아가 손을 더듬어 그의 손을 잡았다가 순간 움찔하며 한 발짝 물러났다.“가까이 오지 마요. 나 더러워요.”“상관없어.”성도윤은 단호하게 대답하며 그녀를 다시 품에 안아 두 손을 꼭 쥐고는 후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너무 늦게 왔지. 혼자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해.”그 모습을 본 여자들은 겁에 질려 황급히 도망쳤다.하지만 이 장면은 누군가에 의해 영상으로 찍혀 인터넷에 퍼졌고 각종 편집과 조롱으로 도배되었다.온라인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세상에 공평한 법은 있구나. 이게 바로 업보지!][아무리 그래도 팬들이 너무 폭력적이야.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그리고 바로 이 영상을 통해 차설아가 실명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한편, 성진의 차 안.성진은 무료한 듯 핸드폰을 스크롤내리며 영상을 보고 있었다.최근 권력 싸움에서 그는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허전했다. 승리를 코앞에 두고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그러다 우연히 영상 속 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선글라스를 낀 채, 온몸에 오물을 뒤집어쓰고 초라하게 서 있는 차설아.그 순간, 그의 심장이 조여들었다.“설아의 눈이...”모든 게 퍼즐처럼 맞춰졌다.그가 가지고 있는 이 눈은 바로 차설아가 준 것이었다.여러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