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설아는 사무실 내부를 샅샅이 뒤졌고 예전에 성도윤한테 선물해 준 물건을 전부 박살 냈다. ‘내가 사준 거니까 박살 내도 상관없겠지?’“아, 망했어요! 정말 어쩌려고 이러시는 거예요? 사모님이 박살 낸 물건은 전부 대표님이 아끼는 것들이라고요. 대표님이 보면 엄청나게 화낼 텐데, 지금이라도 도망치세요. 대표님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화낸다고요?”차설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건을 내팽개치고는 말했다.“그러라고 하세요. 저를 건드렸으니 저도 그 사람 심기를 건드리려고요.”예전에 차설아가 배은망덕한 성도윤한테 비싼 선물을 하루가 멀다 하게 주는 바람에 물건을 박살 내는 것도 힘들었다. 바닥에 내팽개치고 부숴도 끝이 없었다.차설아가 한숨을 돌리면서 성도윤에게 선물한 커피 머신을 어떻게 박살 낼지 고민하다가 집어 들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성도윤이 나타나서 차설아의 손목을 잡고는 차갑게 물었다.“언제까지 미친 척할 건데?”“어머, 도윤 씨가 왔으니 이쯤까지 하죠.”차설아는 커피 머신을 내려놓았다. 바닥에 흩어진 조각을 본 성도윤은 화가 솟구쳐 올랐고 진무열을 노려보며 말했다.“넌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사람 하나 말리지 못해?”진무열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울먹이며 말했다.“대표님이 차설아 씨가 물건을 박살 내든 말든 내버려두라고 하셨잖아요. 차설아 씨가 그것으로 화를 풀 수만 있다면 괜찮다면서요!”“그건 맞지만 내가 참을 수 있는 범위까지 허용하는 거야. 이 여자가 박살 낸 것들은 전부 은아가 선물해 준 거라 내가 아끼는 건데... 넌 옆에서 보고만 있었어?”“저... 저는...”진무열은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차설아를 힐끗 쳐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성도윤이 뇌수술한 뒤부터 차설아에 관한 기억을 서은아로 착각했지만 아무도 잘못된 기억이라고 알려주지 못했다.뇌수술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기억해 내려고 할수록 머리가 깨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고 더 심각한 건 완전히 기억을 잃어 머릿속
성도윤이 고개를 돌리더니 차가운 눈빛을 하고서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지? 내가 뭘 잘못 기억했고 선물을 준 사람이 누구라고? 이 여자가 어떻게 나한테 선물을 준다는 거야?”“사실 이 물건들은 전부 차설아 씨가...”“큼!”차설아는 진무열이 사실을 알려주기 전에 말렸다. 사실을 알게 되면 성도윤의 뇌에 무리가 갈 수 있기에 일부러 헛기침했고 성도윤을 쳐다보며 말했다.“도윤 씨는 정말 똑똑해요. 저처럼 물질적인 여자가 어떻게 원수한테 선물할 수가 있겠어요? 다른 목적이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하죠.”“하, 본인 입으로 그렇게 말하다니... 완전히 미친 건 아닌가 봐?” 성도윤은 차설아한테서 손을 떼면서 차갑게 말했다.“망가뜨린 물건들을 똑같은 것으로 전부 사와. 그럼 오늘 일은 없던 거로 해줄게.”성도윤은 어젯밤에 그 냄새 때문에 차설아한테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렀기에 오늘 일을 눈감아 주기로 했다. 아니라면 절대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그럴게요. 이깟 물건들은 얼마 하지도 않으니까요.”차설아가 통쾌하게 대답했다. 이 물건들을 사준 장본인이 차설아이기에 큰 문제가 아니었다.“도윤 씨, 저는 화가 아직 덜 풀렸는데 뭐라도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성도윤은 턱을 쳐들고는 오만하게 말했다.“당신이 나랑 조건을 논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그래도 날 기쁘게 해주었으니 특별히 기회를 주지. 뭘 해줬으면 하는데?”“송지아 씨를 어디로 데려갔는지만 알려주세요. 저한테 무척 중요한 사람이기도 하고 도윤 씨가 저한테 송지아 씨와 저의 오빠에 관한 일에 대해 전부 알려준다고 했잖아요. 이번에는 꼭 듣고야 말겠어요.”“송지아는 지금 성은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어. 알다시피 그 병원은 세계 제1 의료진과 환경을 갖추었기에 치료받으면 곧 회복할 거야. 그리고 당신 오빠와 송지아의 일은...”성도윤이 진무열을 쳐다보며 말했다.“먼저 나가봐.”“네, 대표님.”진무열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갔고 사무실은 온전히 차설아와 성도윤 두 사람만의 공간이 되
성도윤은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의자에 앉아 한숨만 내쉬었다.“당신이 생각하는 당신 오빠는 어떤 사람이지?”성도윤이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차설아는 친오빠라 차성철이 아닌 사람 차성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고는 대답했다.“오빠가 그동안 미친 짓만 해온 걸 보면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쁜 사람도 아니에요. 때로는 어쩔 수 없이 그 길로 가야 할 때가 있었고 살기 위해서 몸부림쳤을 거예요.”성심 전당포에서 법에 어긋나는 행위가 존재했었지만 무법 지역인 공해 지역에서 벌어진 일이라 법의 제재를 받지 않았다.“하, 이유도 가지가지군. 당신이 나쁜 사람의 편에 서서 말하는 건, 당신도 무의식적으로 그런 나쁜 짓을 저질러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성도윤의 말이 정곡을 찌르자 차설아는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기세에 눌리지 않기 위해 차갑게 받아쳤다.“네, 도윤 씨 말대로 저랑 오빠는 뼛속까지 나쁜 놈이라 그런 짓만 저지른다고 쳐요. 그럼 도윤 씨는 착한 사람인가요? 여자를 유혹해서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당신도 저랑 다를 바 없는 나쁜 놈인 것 같은데요.”“당신은 내가 송지아를 유혹해서 이용했다고 생각하지만 송지아 입장은 달라. 내가 송지아를 구해줬거든.”“구해줬다고요?”차설아는 어처구니없는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오빠랑 송지아 씨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알아요? 어릴 때부터 가족처럼 서로를 아꼈고 오빠는 송지아 씨를 공주 대접해 줬거든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송지아 씨는 오빠 곁에서 행복했을 거라고요!”“가족처럼 서로를 아꼈다고?”성도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차설아의 천진난만한 생각에 피식 웃었다.“당신은 자정 살인마라고 불린 사람의 연기에 속아서 몰랐던 거야.”차설아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고 진상이 곧 드러날 것을 예감했지만 본능적으로 차성철의 편을 들고 싶어졌다.“그래서 당신한테 물어보려고 찾아온 거잖아요. 오빠의 본모습이 무엇인지 알려줘요.”“당신 오빠는 송지아한테 진심으로 잘해줬어. 하지만
차설아는 성도윤을 힐끗 쳐다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달래주었다.“그런 뜻은 아니니까 계속 얘기해줘요. 당신 말이라면 무조건 믿고 의심하지 않을게요.”차설아는 오만하게 구는 성도윤이 원칙주의자로서 누군가를 모함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송지아와 차성철 사이에 완전히 금이 간 이유는... 송지아가 차성철의 아이를 임신한 뒤, 차성철이 강제적으로 병원에 끌고 가서 낙태했어.”성도윤은 머뭇거리다가 오랫동안 비밀로 남았던 사실을 알려주었다.“뭐... 뭐라고요?”차설아는 깜짝 놀라서 손이 덜덜 떨렸고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팠다. 성도윤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차성철이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과 친형을 죽인 뒤에도 송지아는 여전히 일말의 희망을 품고 차성철을 믿기로 했어. 하지만 차성철이 강제로 낙태 수술을 받게 하자 아이를 잃은 송지아는 완전히 미쳐버린 거지. 그래서 죽은 아이의 복수를 위해 날 찾아왔고 성심 전당포의 약점을 알려주었어. 그리고 칼로 차성철을 찔러서 같이 죽으려고 했던 거야.”“그... 그럴 리가 없어요. 오빠가 어떻게 이런 일을...”차설아는 머릿속이 하얘지더니 충격을 못 이기고 넋을 잃은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민간에 전해져오는 잔혹 동화를 읽은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그 주인공이 차성철이라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당신은 감당할 능력이 없으니 내가 궁금해하지 말라고 했잖아. 알면 다친다는 말 몰라?”성도윤은 하얗게 질린 차설아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마음 한 켠이 욱신거렸다. 그래서 곁으로 다가가 안아주고 싶었지만 차설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났다.“저... 저리 가요! 내 머릿속도 복잡하고 이 세상도 너무 복잡해요. 그래서 사람이 미칠 수가 있군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저...”“진정하고 내 말 들어. 받아들일 수 없으면 내가 차성철을 모함하려고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해. 어차피 사람들은 날 피도 눈물도 없는 간사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미움받고 있잖아. 당신마저 날 미워한다 해도 괜찮아.”성
성대 그룹 건물에서 나온 차설아는 발이 닿는 곳까지 걷다가 성심 전당포로 돌아왔다. 민이 이모는 차설아를 맞이하면서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아가씨, 드디어 돌아오셨네요. 도련님 상태가 말이 아니에요. 아가씨께서 위로 좀 해주세요.”차설아가 자리를 비운 며칠 동안 성심 전당포에 많은 일이 있었고 그로 인해 기세등등하던 차성철은 갑자기 방에 자신을 가두더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요? 저도 기분이 안 좋은데... 오빠만 그런 것도 아니니 유난 떨지 마세요.”차설아는 차갑게 대답했고 민이 이모를 싸늘하게 쳐다보았다. 쌍둥이 동생으로서 차성철을 매우 사랑했고 많은 추억을 쌓으면서 차성철을 고통 속에서 끌어내고 싶었다.하지만 송지아를 망가뜨린 차성철이 악마처럼 잔혹하고 무정해서 낯설게 느껴졌다. 모순적인 두 사실이 차설아를 고통스럽게 했다. 민이 이모는 차설아의 태도에 놀랐는지 손을 잡아주며 물었다.“아가씨, 무슨 일 있었어요? 표정도 안 좋고 얼굴이 많이 상했네요.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았나 봐요... 아, 경수 도련님은 어디에 계세요?”“경수는 나 때문에 자신의 미래와 행복을 포기했어요. 경수한테 또 빚진 거나 마찬가지예요.”차설아는 주먹을 쥐며 눈시울을 붉혔다.“만약 경수의 희생으로 바꿔온 결과가 고작 이런 것일 뿐이라면 저는 절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절대로...”차설아는 고개를 흔들었고 차성철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라 했다.“그럼 경수 도련님을 구할 방법은 없는 건가요?”민이 이모는 안절부절못했다.“사실 장재혁 씨가 보물을 직접 운송한다고 배를 타고 나갔는데 갑자기 배가 공격당해서 침몰했대요. 지금 연락도 안 되는 상황이라 도련님께서 슬퍼하는 것 같고요. 이럴 때일수록 기운 내고 적들을 상대해야죠!”“네, 제가 오빠한테 가볼게요.”차설아는 심호흡한 뒤, 차성철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성심 전당포의 서북쪽에 있는 건물은 빛이 잘 들지 않는 구역이라 암울한 분위기를 풍겼고 음산해서 소름이 돋았다. 들은 바에 의
하인들이 물러난 뒤, 차설아는 방문을 두드리며 말했다.“오빠, 나왔어.”차설아의 말은 주문처럼 방안에 자신을 가둔 차성철을 깨웠다. 차성철은 재빨리 방문을 열었고 반짝이는 두 눈으로 차설아를 바라보았다.“설아야, 왜 이제야 온 거야! 네가 올 때까지 버티는 게 너무 힘들었어...”차성철은 얼굴이 홀쭉해졌고 밥을 먹지 않아서 기운 없어 보였다. 입가에는 거뭇한 수염이 자라났고 가면으로 얼굴 절반을 가렸지만 차설아를 향한 원망을 숨기지 못했다.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오빠, 무슨 일 있었어? 하인 말로는 오빠가 식사도 거르고 대답도 하지 않고 방에만 있었다던데...”“다 헛소리니까 신경 쓰지 마. 짜증 나서 대꾸하지 않은 것일 뿐이야. 네가 돌아왔으면 그걸로 됐어.”차성철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차설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그, 그래.”차성철한테 따져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정작 마주한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차설아한테는 차성철이 유일한 혈육이었고 운명의 장난으로 자신과 다른 삶을 살게 된 차성철을 안타깝게 생각했기에 이성적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돌아왔으니 정말 다행이야. 너한테 준비한 선물이 있으니 같이 가자, 너도 좋아할 거야.”차성철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면도하더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우아한 도련님의 모습으로 돌아온 차성철은 차설아를 기쁘게 할 생각에 들떠있었다.“아... 알겠어.”차설아는 거절하지 못했고 주먹을 꽉 쥐면서 차성철의 기분이 나아지면 모든 것을 묻겠다고 다짐했다. 차성철이 준비한 선물은 성심 전당포가 아닌 영흥 부둣가와 떨어진 구역에 있었다. 차성철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운전했다.“너 예전에 나한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잖아. 그래서 요즘 내가 바랐던 미래를 현실에 옮기는 중이야.”차설아는 차창 밖의 풍경을 지켜보다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차가 멈춘 곳은 다름 아닌 옛 차씨 가문 별장이었다. “어...
차성철은 당황해서 울고 있는 차설아의 어깨를 붙잡으며 물었다.“설아야, 왜 그래? 오빠가 다시 지은 집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 울지 마, 내가 전화해서 이 집을 다시 밀어버리라고 할게.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집을 짓자, 응?”차설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눈물을 닦고는 차성철을 와락 껴안았다.“아니야, 오빠가 너무 잘해줘서 예전으로 시간이 돌아간 것만 같았어. 내가 어릴 적에 살던 별장이랑 똑같아서 놀랐거든. 오빠한테 감동해서 눈물이 저도 모르게 나왔나봐... 어릴 적에 있었던 일도 생각나고 오빠가 나쁜 사람한테 유괴당하지 않고 나랑 같이 지냈다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봤어.”차설아는 감정에 북받쳐 속으로만 생각하던 말을 모조리 내뱉었다. 남매 간의 우애가 깊었기 때문에 더 감동했다. 하지만 따뜻하고 세심한 차성철이 짐승만도 못한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설아야,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어. 하지만 현재와 미래는 우리의 행동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니 과거에 연연하지 마.”차성철은 차설아의 등을 토닥여주면서 위로해 주었다. 그러면서 근 반년 동안 고생해서 만든 ‘작품’을 쳐다보며 이곳에서 이어갈 삶을 상상해 보았다.“마당에 있는 아카시아나무에 그네를 달았는데 원이, 달이랑 같이 타자. 꽃향기도 얼마나 좋은지, 꽃잎이 떨어질 때면 눈이 내리는 것 같다니까? 원이랑 달이도 좋아할 거야.”“맞아, 매일 그네를 타자고 할 걸? 내가 어릴 적에 마당에 있는 그네를 타기 좋아했으니까... 오빠가 이것까지 기억할 줄 몰랐어.”차설아는 울컥해서 목이 메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오빠한테 지난 일에 대해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이제는 그만 울고 별장으로 들어가 보자!”차성철은 차설아의 손을 잡고 차씨 가문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차설아는 뒤에서 따라 들어갔고 감동과 의심 사이 그 어딘가쯤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난 뒤, 차설아는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았다. 송지아와 성도윤을 위해, 소중한 차성
차성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왜 그런 눈으로 날 쳐다보는 거야?”차성철은 차설아가 몇 번이고 말하려다 입을 꾹 다무는 것을 보고서도 묻지 않았다. 왜 그러는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기에 판도라의 상자를 열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못 본 척해도 집요한 차설아의 질문을 피할 수 없었다.“묻고 싶은 게 있으면 물어봐. 너한테는 솔직하게 대답할 테니까 물어봐도 돼.”차성철도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차설아는 주먹을 꽉 쥐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오빠랑 성도윤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오빠가 정말 무고한 거 맞아?”“난 내가 무고하다고 한 적 없어. 경쟁이란 자고로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거야. 그 해에 성도윤이 날 이길 수 있었던 건 실력 방면에서 압승했기 때문이지. 아니, 어쩌면 그놈이 더 끈질기고 비열했을 수도... 아무튼 나는 그놈을 이길 생각밖에 없어.”차성철이 차갑게 웃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지금이 그놈을 이길 기회야. 여론이 우리한테 아주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기회를 찾아서 그놈을 짓밟을 수 있어!”“두 사람 모두 떳떳하지 못한 걸 알아. 그중에서 제일 무고한 사람은 송지아 언니니까.”차설아는 용기를 내어 그 이름을 내뱉었다.“닥쳐!”차성철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지더니 조금 전의 부드러운 오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송지아는 아무도 차성철 앞에서 언급해서는 안 될 이름이자 차성철의 약점이었다.“오빠가 정말 날 믿는다면, 그 고통 속에서 빠져나오려면 그 이름을 받아들여.”차설아는 차성철의 어깨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놓고는 물었다.“사실 송지아 언니는 오빠를 배신하려던 게 아니라 복수하고 싶었던 거야, 맞지?”“네가 뭘 안다고 떠들어!”차성철은 차설아를 밀어내고는 충혈된 두 눈으로 노려보며 물었다.“성도윤이 너한테 약이라도 먹였어? 며칠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놈 말이라면 다 믿는 거야? 내 말은 믿지 않으면서 왜 그놈 편만 드냐고! 솔직히 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