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윤은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의자에 앉아 한숨만 내쉬었다.“당신이 생각하는 당신 오빠는 어떤 사람이지?”성도윤이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차설아는 친오빠라 차성철이 아닌 사람 차성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고는 대답했다.“오빠가 그동안 미친 짓만 해온 걸 보면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쁜 사람도 아니에요. 때로는 어쩔 수 없이 그 길로 가야 할 때가 있었고 살기 위해서 몸부림쳤을 거예요.”성심 전당포에서 법에 어긋나는 행위가 존재했었지만 무법 지역인 공해 지역에서 벌어진 일이라 법의 제재를 받지 않았다.“하, 이유도 가지가지군. 당신이 나쁜 사람의 편에 서서 말하는 건, 당신도 무의식적으로 그런 나쁜 짓을 저질러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성도윤의 말이 정곡을 찌르자 차설아는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기세에 눌리지 않기 위해 차갑게 받아쳤다.“네, 도윤 씨 말대로 저랑 오빠는 뼛속까지 나쁜 놈이라 그런 짓만 저지른다고 쳐요. 그럼 도윤 씨는 착한 사람인가요? 여자를 유혹해서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당신도 저랑 다를 바 없는 나쁜 놈인 것 같은데요.”“당신은 내가 송지아를 유혹해서 이용했다고 생각하지만 송지아 입장은 달라. 내가 송지아를 구해줬거든.”“구해줬다고요?”차설아는 어처구니없는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오빠랑 송지아 씨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알아요? 어릴 때부터 가족처럼 서로를 아꼈고 오빠는 송지아 씨를 공주 대접해 줬거든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송지아 씨는 오빠 곁에서 행복했을 거라고요!”“가족처럼 서로를 아꼈다고?”성도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차설아의 천진난만한 생각에 피식 웃었다.“당신은 자정 살인마라고 불린 사람의 연기에 속아서 몰랐던 거야.”차설아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고 진상이 곧 드러날 것을 예감했지만 본능적으로 차성철의 편을 들고 싶어졌다.“그래서 당신한테 물어보려고 찾아온 거잖아요. 오빠의 본모습이 무엇인지 알려줘요.”“당신 오빠는 송지아한테 진심으로 잘해줬어. 하지만
차설아는 성도윤을 힐끗 쳐다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달래주었다.“그런 뜻은 아니니까 계속 얘기해줘요. 당신 말이라면 무조건 믿고 의심하지 않을게요.”차설아는 오만하게 구는 성도윤이 원칙주의자로서 누군가를 모함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송지아와 차성철 사이에 완전히 금이 간 이유는... 송지아가 차성철의 아이를 임신한 뒤, 차성철이 강제적으로 병원에 끌고 가서 낙태했어.”성도윤은 머뭇거리다가 오랫동안 비밀로 남았던 사실을 알려주었다.“뭐... 뭐라고요?”차설아는 깜짝 놀라서 손이 덜덜 떨렸고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팠다. 성도윤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차성철이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과 친형을 죽인 뒤에도 송지아는 여전히 일말의 희망을 품고 차성철을 믿기로 했어. 하지만 차성철이 강제로 낙태 수술을 받게 하자 아이를 잃은 송지아는 완전히 미쳐버린 거지. 그래서 죽은 아이의 복수를 위해 날 찾아왔고 성심 전당포의 약점을 알려주었어. 그리고 칼로 차성철을 찔러서 같이 죽으려고 했던 거야.”“그... 그럴 리가 없어요. 오빠가 어떻게 이런 일을...”차설아는 머릿속이 하얘지더니 충격을 못 이기고 넋을 잃은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민간에 전해져오는 잔혹 동화를 읽은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그 주인공이 차성철이라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당신은 감당할 능력이 없으니 내가 궁금해하지 말라고 했잖아. 알면 다친다는 말 몰라?”성도윤은 하얗게 질린 차설아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마음 한 켠이 욱신거렸다. 그래서 곁으로 다가가 안아주고 싶었지만 차설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났다.“저... 저리 가요! 내 머릿속도 복잡하고 이 세상도 너무 복잡해요. 그래서 사람이 미칠 수가 있군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저...”“진정하고 내 말 들어. 받아들일 수 없으면 내가 차성철을 모함하려고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해. 어차피 사람들은 날 피도 눈물도 없는 간사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미움받고 있잖아. 당신마저 날 미워한다 해도 괜찮아.”성
성대 그룹 건물에서 나온 차설아는 발이 닿는 곳까지 걷다가 성심 전당포로 돌아왔다. 민이 이모는 차설아를 맞이하면서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아가씨, 드디어 돌아오셨네요. 도련님 상태가 말이 아니에요. 아가씨께서 위로 좀 해주세요.”차설아가 자리를 비운 며칠 동안 성심 전당포에 많은 일이 있었고 그로 인해 기세등등하던 차성철은 갑자기 방에 자신을 가두더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요? 저도 기분이 안 좋은데... 오빠만 그런 것도 아니니 유난 떨지 마세요.”차설아는 차갑게 대답했고 민이 이모를 싸늘하게 쳐다보았다. 쌍둥이 동생으로서 차성철을 매우 사랑했고 많은 추억을 쌓으면서 차성철을 고통 속에서 끌어내고 싶었다.하지만 송지아를 망가뜨린 차성철이 악마처럼 잔혹하고 무정해서 낯설게 느껴졌다. 모순적인 두 사실이 차설아를 고통스럽게 했다. 민이 이모는 차설아의 태도에 놀랐는지 손을 잡아주며 물었다.“아가씨, 무슨 일 있었어요? 표정도 안 좋고 얼굴이 많이 상했네요.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았나 봐요... 아, 경수 도련님은 어디에 계세요?”“경수는 나 때문에 자신의 미래와 행복을 포기했어요. 경수한테 또 빚진 거나 마찬가지예요.”차설아는 주먹을 쥐며 눈시울을 붉혔다.“만약 경수의 희생으로 바꿔온 결과가 고작 이런 것일 뿐이라면 저는 절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절대로...”차설아는 고개를 흔들었고 차성철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라 했다.“그럼 경수 도련님을 구할 방법은 없는 건가요?”민이 이모는 안절부절못했다.“사실 장재혁 씨가 보물을 직접 운송한다고 배를 타고 나갔는데 갑자기 배가 공격당해서 침몰했대요. 지금 연락도 안 되는 상황이라 도련님께서 슬퍼하는 것 같고요. 이럴 때일수록 기운 내고 적들을 상대해야죠!”“네, 제가 오빠한테 가볼게요.”차설아는 심호흡한 뒤, 차성철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성심 전당포의 서북쪽에 있는 건물은 빛이 잘 들지 않는 구역이라 암울한 분위기를 풍겼고 음산해서 소름이 돋았다. 들은 바에 의
하인들이 물러난 뒤, 차설아는 방문을 두드리며 말했다.“오빠, 나왔어.”차설아의 말은 주문처럼 방안에 자신을 가둔 차성철을 깨웠다. 차성철은 재빨리 방문을 열었고 반짝이는 두 눈으로 차설아를 바라보았다.“설아야, 왜 이제야 온 거야! 네가 올 때까지 버티는 게 너무 힘들었어...”차성철은 얼굴이 홀쭉해졌고 밥을 먹지 않아서 기운 없어 보였다. 입가에는 거뭇한 수염이 자라났고 가면으로 얼굴 절반을 가렸지만 차설아를 향한 원망을 숨기지 못했다.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오빠, 무슨 일 있었어? 하인 말로는 오빠가 식사도 거르고 대답도 하지 않고 방에만 있었다던데...”“다 헛소리니까 신경 쓰지 마. 짜증 나서 대꾸하지 않은 것일 뿐이야. 네가 돌아왔으면 그걸로 됐어.”차성철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차설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그, 그래.”차성철한테 따져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정작 마주한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차설아한테는 차성철이 유일한 혈육이었고 운명의 장난으로 자신과 다른 삶을 살게 된 차성철을 안타깝게 생각했기에 이성적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돌아왔으니 정말 다행이야. 너한테 준비한 선물이 있으니 같이 가자, 너도 좋아할 거야.”차성철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면도하더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우아한 도련님의 모습으로 돌아온 차성철은 차설아를 기쁘게 할 생각에 들떠있었다.“아... 알겠어.”차설아는 거절하지 못했고 주먹을 꽉 쥐면서 차성철의 기분이 나아지면 모든 것을 묻겠다고 다짐했다. 차성철이 준비한 선물은 성심 전당포가 아닌 영흥 부둣가와 떨어진 구역에 있었다. 차성철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운전했다.“너 예전에 나한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잖아. 그래서 요즘 내가 바랐던 미래를 현실에 옮기는 중이야.”차설아는 차창 밖의 풍경을 지켜보다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차가 멈춘 곳은 다름 아닌 옛 차씨 가문 별장이었다. “어...
차성철은 당황해서 울고 있는 차설아의 어깨를 붙잡으며 물었다.“설아야, 왜 그래? 오빠가 다시 지은 집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 울지 마, 내가 전화해서 이 집을 다시 밀어버리라고 할게.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집을 짓자, 응?”차설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눈물을 닦고는 차성철을 와락 껴안았다.“아니야, 오빠가 너무 잘해줘서 예전으로 시간이 돌아간 것만 같았어. 내가 어릴 적에 살던 별장이랑 똑같아서 놀랐거든. 오빠한테 감동해서 눈물이 저도 모르게 나왔나봐... 어릴 적에 있었던 일도 생각나고 오빠가 나쁜 사람한테 유괴당하지 않고 나랑 같이 지냈다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봤어.”차설아는 감정에 북받쳐 속으로만 생각하던 말을 모조리 내뱉었다. 남매 간의 우애가 깊었기 때문에 더 감동했다. 하지만 따뜻하고 세심한 차성철이 짐승만도 못한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설아야,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어. 하지만 현재와 미래는 우리의 행동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니 과거에 연연하지 마.”차성철은 차설아의 등을 토닥여주면서 위로해 주었다. 그러면서 근 반년 동안 고생해서 만든 ‘작품’을 쳐다보며 이곳에서 이어갈 삶을 상상해 보았다.“마당에 있는 아카시아나무에 그네를 달았는데 원이, 달이랑 같이 타자. 꽃향기도 얼마나 좋은지, 꽃잎이 떨어질 때면 눈이 내리는 것 같다니까? 원이랑 달이도 좋아할 거야.”“맞아, 매일 그네를 타자고 할 걸? 내가 어릴 적에 마당에 있는 그네를 타기 좋아했으니까... 오빠가 이것까지 기억할 줄 몰랐어.”차설아는 울컥해서 목이 메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오빠한테 지난 일에 대해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이제는 그만 울고 별장으로 들어가 보자!”차성철은 차설아의 손을 잡고 차씨 가문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차설아는 뒤에서 따라 들어갔고 감동과 의심 사이 그 어딘가쯤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난 뒤, 차설아는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았다. 송지아와 성도윤을 위해, 소중한 차성
차성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왜 그런 눈으로 날 쳐다보는 거야?”차성철은 차설아가 몇 번이고 말하려다 입을 꾹 다무는 것을 보고서도 묻지 않았다. 왜 그러는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기에 판도라의 상자를 열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못 본 척해도 집요한 차설아의 질문을 피할 수 없었다.“묻고 싶은 게 있으면 물어봐. 너한테는 솔직하게 대답할 테니까 물어봐도 돼.”차성철도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차설아는 주먹을 꽉 쥐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오빠랑 성도윤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오빠가 정말 무고한 거 맞아?”“난 내가 무고하다고 한 적 없어. 경쟁이란 자고로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거야. 그 해에 성도윤이 날 이길 수 있었던 건 실력 방면에서 압승했기 때문이지. 아니, 어쩌면 그놈이 더 끈질기고 비열했을 수도... 아무튼 나는 그놈을 이길 생각밖에 없어.”차성철이 차갑게 웃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지금이 그놈을 이길 기회야. 여론이 우리한테 아주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기회를 찾아서 그놈을 짓밟을 수 있어!”“두 사람 모두 떳떳하지 못한 걸 알아. 그중에서 제일 무고한 사람은 송지아 언니니까.”차설아는 용기를 내어 그 이름을 내뱉었다.“닥쳐!”차성철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지더니 조금 전의 부드러운 오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송지아는 아무도 차성철 앞에서 언급해서는 안 될 이름이자 차성철의 약점이었다.“오빠가 정말 날 믿는다면, 그 고통 속에서 빠져나오려면 그 이름을 받아들여.”차설아는 차성철의 어깨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놓고는 물었다.“사실 송지아 언니는 오빠를 배신하려던 게 아니라 복수하고 싶었던 거야, 맞지?”“네가 뭘 안다고 떠들어!”차성철은 차설아를 밀어내고는 충혈된 두 눈으로 노려보며 물었다.“성도윤이 너한테 약이라도 먹였어? 며칠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놈 말이라면 다 믿는 거야? 내 말은 믿지 않으면서 왜 그놈 편만 드냐고! 솔직히 말해
차설아는 붉어진 두 눈을 하고서 울부짖었다.“그러니까 내가 만약 오빠 편이라면 오빠가 사람을 죽인다 해도 말리지 말고 옆에서 칼이나 건네라는 말이야?”“당연한 거 아니야?”차성철은 차설아의 어깨를 꽉 잡고는 무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우리는 친남매고 너한테 나랑 같은 피가 흐르고 있어. 어떻게 보면 네가 곧 나고 내가 곧 너야. 우린 영광을 함께 누리고 굴욕도 같이 감당해야 해. 내가 한 모든 일이 차씨 가문을 일으켜 세워서 세상을 떠난 우리 부모님을 위해 복수하려고 그러는 건데, 이것마저 하지 말라는 거야?”“가문을 위해서, 부모님의 복수를 위해서 그러는 거 이해해. 하지만 그것도 적당히 해야지, 우리가 만약 이루려는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다면 천하의 나쁜 놈들과 다를 게 뭐야? 그렇게 해서 가문이 부유해지고 복수한다 해도 하늘에서 보고 있는 부모님이 좋아할 것 같아?”“그럼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데?”차성철은 주먹을 쥔 채 베란다 난간을 내리쳤다.“내가 예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아? 적당히 했다면 진작에 죽어서 널 만나지도 못했을 거야. 내가 남들보다 독하고 잔인하니까 그 마굴에서 도망쳐 나온 거고 오늘의 성심 전당포가 세워진 거야.”“그래, 오빠 말대로 살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안정된 삶을 살면서도 더 많은 것이 욕심나서 비열한 짓을 저질렀잖아. 지아 언니는 오빠를 도와준 천사 같은 사람인데, 도대체 왜 지아 언니한테 은혜를 원수로 갚았어? 오빠가 정말 맞다고 생각해?”“은혜를 원수로 갚았다고?”차성철이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성도윤이 너한테 그렇게 말했지? 넌 말로는 내 편이라면서 내가 하는 말을 의심하고 성도윤이 한 말만 믿잖아. 이런 내 기분을 네가 알아?”“도윤 씨 말이 틀린 건 아니잖아. 지아 언니 가족을 죽이고 지아 언니한테 해서는 안 될 짓을 했고 낙태 수술까지 받게 했잖아.”차설아는 남매 간의 우애도 중요했지만 송지아의 참혹한 과거가 자꾸 눈에
차성철은 그동안 그리움과 증오로 가득 찬 삶을 보내오며 고통스러워했다.“만약 지아 언니가 살아있다면... 오빠는 어떻게 할 건데?”차설아는 침을 꿀꺽 삼켰고 차성철의 반응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차성철은 먼 곳을 내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차설아와 눈을 마주치고는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지아가 살아있다는 거지?”“아, 아니! 내 말은 만약 지아 언니가 살아있다면 오빠가 어쩔 건지 궁금해서 그래.”“모르겠어.”차성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씁쓸하게 웃었다.“어차피 날 용서해 주지도 않을 텐데, 차라리...”“차라리 뭐?”차설아가 계속해서 묻자 차성철이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진짜 살아있는지부터 확인해야 알 것 같아.”“언니는...”차설아는 차성철한테 송지아가 살아있다고 알려주고 싶었지만 성도윤의 말이 떠올라서 말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차설아를 지그시 쳐다보던 차성철이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지아가 살아있구나, 내 말이 맞지? 하지만 너한테 있어서 나는 악마니까 지아를 해칠까 봐 두려워서 알려주지 않는 거고...”“정말 해치려고 그래?”“당장은 아무런 약속도 할 수 없어.”차성철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자신이 좋은 사람인지 악마보다 더 나쁜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친동생한테 거짓말하기 싫었다. 그래서 섣불리 약속하지 않은 것이다.“그럼 어떻게 해야 성도윤과의 싸움을 끝내고 평화롭게 지낼 건데?”차설아는 차성철과 성도윤이 피를 보는 싸움을 그만두고 원한을 풀어서 합작의 길로 나아가길 바랐다. 두 그룹 모두 성장할 수 있는 길이지만 성도윤이 먼저 손을 내민다고 해도 고집이 센 차성철이 합작 제안에 응할 가능성이 작았다.“그놈과 합작할 수는 있어. 그놈이 주는 이익이 현재 나의 합작 상대보다 더 높으면 말이야.”차성철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자본가는 이익만 두둑이 챙길 수 있다면 원한 따위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성도윤의 처사 방식이었고 차성철도 똑같은 제안을 했다.“오빠의 합작 상대보다 높아야 한다고? 그게 누구고
야맹주를 확인한 배경윤은 신속히 잠수했다.“천천히 가!”사도현은 그녀가 걱정되어 조심하라고 말했다.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운 산호바다였지만 단면이 너무 높아 일부 산호는 쉽게 만졌다가 위험할 정도로 날카로웠다.하지만 이때, 동심의 세계로 들어간 배경윤은 마치 큰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흥분하면서 야맹주 위에 덮여 있던 산호초를 맨손으로 제거했다.그녀는 차설아가 평안 무사할수 있도록 이 야맹주를 선물하고 싶었다.“아!”배경윤이 야맹주에 손을 대려는 순간, 갑자기 산호초 틈새에서 은색 원형 물체가 튀어나와 그녀의 손등을 덥석 물었다.“바다뱀이야!”바다뱀이 배경윤을 물고 옆을 쓱 스쳐 자나가자 머릿속이 하얘진 사도현은 급히 잠수하여 그녀의 손을 잡았다.“봐봐...야맹주!”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배경윤은 그저 벌레에게 물렸다고 생각하면서 순진하게 사도현에게 야맹주를 자랑했다.“입 다물어!”사도현은 눈앞의 이 덜렁거리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그녀는 과연 이런 바다뱀이 독성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진찬영은 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긴 팔로 배경윤의 허리를 감싸고, 긴 다리를 쭉 뻗어 빠르게 수면으로 올라갔다.진찬영과 하늘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차례로 수면으로 떠올라 잠수 마스크를 벗었다.“여기 도와주세요! 보트를 준비해 주세요. 병원으로 가야겠어요!”사도현의 잘생긴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고, 잠긴 목소리로 육지에 있는 안전요원에게 외쳤다.“무슨 일이에요?”진찬영이 신속히 배경윤 곁으로 다가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아, 별거 아니에요. 그냥 벌레에게 물렸을 뿐이에요...”배경윤은 뱀에게 물린 손등을 들면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보였고, 오히려 사도현이 너무 예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일반적으로 뱀에게 물리면 독이 체내에 바로 퍼지지 않아 아직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그녀는 다시 야맹주를 들어 올리며,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다들 이것 좀 보세요, 제가
진찬영은 이런 중요한 기회를 사도현을 놓칠 수가 없었다.“저는 저의 파트너로 하늘 씨를 선택하고 싶어요.”진찬영이 사도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안전요원에게 이렇게 말하자 사도현과 배경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이 자식 뭐하는 거야. 포기라도 하는 거야?”사도현은 믿기지 않는지 진찬영을 째려보면서 말했다.“어떻게 하늘 씨를 선택할 수 있어요? 어쩌다 정면으로 승부를 겨룰 기회가 생겼는데 왜 포기하는 거예요?”진찬영이 사도현을 냉랭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지금은 잠깐 경윤 씨를 도현 씨한테 맡길게요. 꼭 잘 지켜주셔야 해요.”사도현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잠수복을 입고 하늘과 함께 바다로 뛰어드는 진찬영을 쳐다보았다.“왜 저래?”제대로 한판 붙어볼 줄 알았는데 도전장을 내민 사람은 자기뿐이라 갑자기 김이 새는 느낌에 불쾌하기만 했다.“갑시다. 파트너님.”사도현은 더는 생각하기도 싫어 멍한 표정의 배경윤한테 터벅터벅 걸어갔다.“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너랑 짝이 된 거야.”배경윤은 싫증난 표정을 하고있었다.진찬영과 손잡고 바다 경치를 즐길 줄 알았는데 말이다.그런데 아무리 봐도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도현한테 자기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아까 등산할 때까지만 해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는데 이 타이밍에 진찬영이 뒤로 물러설 줄 몰랐다.“난 다이빙 챔피언까지 땄던 사람이야. 기다려 봐. 오늘 야맹주를 꼭 찾아줄게.”사도현의 오늘 주요 목적은 야맹주를 찾는 것이었다.비록 전설일 뿐이었지만 만약 정말 찾아서 배경윤한테 준다면 이보다 더 의미 있고 로맨틱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사람들은 하나둘씩 바다에 뛰어들었다.하트섬은 물고기 떼, 가지각색의 산호초가 훤히 보일 정도로 수질이 좋았다. 더 깊이 내려가면 잭피시가 보이기도 했다.배경윤은 산소 호흡기를 꽉 깨물고 천천히 밑으로 향했다.파트너인 사도현은 그녀에게 무슨 사고라도 일어날까 봐 옆에 꼭 붙어있었다.진찬영은 몇 미터 밖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중이염을
이들은 어제저녁 약속한 대로 섬 근처에 있는 청정지역에서 스토클링하기로 했다.이때 감독 최빈이 말했다.“이 섬은 모양이 하트로 되어있어 하트섬이라고 불리는데 물이 맑아 산호초와 열대 물고기를 많이 볼 수 있을 거예요. 다들 오늘 운이 좋으면 하트섬 특유의 야맹주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보던 밤이면 빛이 나는 그런 야맹주요.”“정말 야맹주가 있는 거예요?”배경윤이 이번 스노클링이 점점 더 기대되었다.사실 그녀는 일찍 하트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섬 중앙에는 고가의 진주가 들어있는 천연 조개가 많다고 했다. 최빈이 언급한 야맹주는 그저 전설일 뿐이었다.전설 속에서는 야맹주를 찾은 사람이 평생 행복할 거라고 했다.신난 배경윤은 야맹주를 찾아서 차설아한테 선물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면 호객행위인지 몰랐다.“당연히 있죠. 수년 전에 섬에서 살던 분들이 발견했대요. 찾을 확률은 낮지만, 없는건 아니에요.”최빈이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했다.“그럼 뭘 기다려요. 저희 얼른 가요...”조급해 난 배경윤이 이때 대담하게 제의했다.“저희 스노클링하지 말고 아예 다이빙하는 거 어때요? 6미터 가까이 되는 그런 다이빙을 하면 야맹주를 찾을 수 있는 확율이 더욱 높지 않을까요?”“좋아요.”사도현이 손을 들면서 말했다.“스노클링을 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다이빙해야 얻고 싶은 걸 얻을 수 있죠.”“저도 좋아요. 저는 폐활량이 좋아서 물속에서 산소통이 없어도 몇 분씩이나 있을 수 있다고요.”하늘도 찬성의 의미도 손을 들었다.올림픽 금메달 수영선수로서 물을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오직 진찬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찬영 씨는 스노클링하실 거예요? 아니면 다이빙하실 거예요?”최빈이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진찬영에게 물었다.“저는 경윤 씨랑 같은 걸 할게요.”진찬영의 표정이 안 좋았던 것은 전에 중이염 수술을 받은 적 있어 수압을 견디지 못해 너무 깊게는 내려가지 못했다. 5미터
배경윤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머리를 긁적거렸다.“급할 필요 없어요. 아직 시간은 많아요. 어제저녁 하늘 씨를 선택한 것은 저랑 사도현 씨의 모순을 와해시키려고 그랬다는 거 알아요. 그런데 오늘 저녁은 경윤 씨 마음에 따라 선택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진찬영은 배경윤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계속 지금처럼 애매모호하지 말았으면 했다.이런 명분 없는 사이가 싫기도 했고, 사도현의 맹렬한 공격하에 배경윤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했다.그래서 하루빨리 결정짓고 싶었다.“알았어요.”배경윤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저녁은 제 마음에 따라 더는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오늘 아침 진찬영과 함께 잠깐 아침햇살을 만끽하면서 롤러코스터처럼 기복이 심한 생활이 아니라 평온한 생활을 기대했다.배경윤과 진찬영이 함께 하산할 때, 사도현도 마침 기상했다.사도현은 지금까지 스코어가 가장 높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배경윤과 방을 바꾸기로 하고 짐을 배경윤의 바다뷰 별장으로 옮기기로 했다.복식 별장에는 방이 네 개나 있었고, 모두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배경윤이 상냥하게 대해준다면 기꺼이 방을 하나 내어주겠다고 했다. 두 사람이 같은 지붕 아래에 있는 모습만 상상해도 기분이 좋았다.입이 귀에 걸려있을 때, 배경윤과 진찬영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웃으면서 걸어오는 것이다.“어디 갔었어요?”사도현의 안색은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제가 어딜 갔든 보고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린 채 냉랭하게 말했다.“그러다 저를 놓칠 수도 있어요. 지금 경윤 씨한테 방을 하나 내어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이죠...”사도현이 턱을 만지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지금, 이 상황에서 할수 있는 가장 진지한 말이었다.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유치하긴. 어차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디서 지내든 상관없어요. 도현 씨한테는 천장에 별이 가득 붙어있는 저 방이 어울릴 것 같
다음날.아침햇살이 비추는 섬은 몽롱하고 매력적이었다.아침 조깅하는 습관 있는 배경윤은 다들 자고 있을 때 이미 일어나 뛰고 있었다.산 주위를 따라 2킬로 정도 뛰면서 땀에 흠뻑 젖은 그녀는 개운한 느낌이었다.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에 서서 파란 바닷가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좋은 아침이에요.”배경윤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뒤돌아보았더니 진찬영이었다.“이런 우연이. 찬영 오빠도 조깅하러 오셨어요?”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드는 그녀의 얼굴은 자기도 모르게 발그레해졌다.어제저녁 진찬영이 대놓고 고백하는 바람에 두 사람 사이의 장벽이 무너져 이제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우연이 아니라...”진찬영은 오늘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살짝 가르마를 탄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어 청춘 로코물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잊지 못하는 킹카처럼 보였다.그는 난간을 잡고 옆모습으로 의미심장하게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번에 경윤 씨가 조깅하는 습관이 있다고 들어서... 일부러 만나려고 온 거예요.”배경윤과 이곳에서 만나려고 그녀보다 한 시간이나 더 일찍 일어난 것이다.그때는 아직 날도 밝지 않았던 때였다. 그는 혼자서 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와 하늘이 서서히 물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속으론 배경윤과 함께 이 경치를 보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배경윤이 흔들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제가 이 코스를 달릴지 어떻게 알았어요? 그러다 못 만나면요?”“만나지 못해도 아쉬운 대로 아름다운 경치를 봤잖아요.”진찬영은 고개돌려 전방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저는 어떤 일이든 결과를 바라지 않아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된 거예요. 그리고 결국엔 경윤 씨를 만났잖아요.”배경윤은 잘생긴 그의 옆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그렇다. 결과보다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되었다.이 부분에서는 진찬영과 생각이 똑
“에헴!”하늘을 신경 쓰지도 않던 사도현은 두 사람이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길래 질투심을 느꼈다.하늘도 그제야 선을 넘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바로 입을 닫으면서 자세를 고쳐잡았다.“죄송해요. 경윤 씨, 저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다른 사람을 선택해 보세요.”“그게 뭐 어때서요? 어차피 저희 서로 선택하는 과정이잖아요. 하늘 씨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과 셋이 함께 스노클링하면 되잖아요. 둘이든 셋이든 저는 상관없어요.”배경윤이 웃으면서 말했다.그녀는 하늘이 컨트롤하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제일 안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진찬영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고 사도현도 어쩔 수가 없었다.“그래요? 경윤 씨는 정말 내일 아침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과 함께 스노클링할 수 있는 거예요?”하늘은 억울한 강아지처럼 순진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럼요. 저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에요. 3각 구도는 제일 안정적이니까요.”배경윤이 익살스럽게 말했다.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입이 자기 말을 듣지 않았다.“그래요. 그러면 내일 경윤 씨, 저, 그리고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 세 명이 함께 스노클링하는 거예요. 마음이 변하면 안 돼요.”“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빠지는 일이 없을 거예요. 제가 빠지면 평생 짝을 찾지 못할 거예요.”배경윤은 하늘에 대고 진지하게 맹세했다.이때 하늘이 진지하게 말했다.“사실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은 사도현 씨에요. 그리고 오늘 모든 사람 앞에서 사실대로 말했고요.”사도현이 눈썹을 움찔하더니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희 내일 봐요.”‘왜 이렇게 된 거지?’배경윤은 흐뭇한 표정의 사도현을 보면서 그가 일부러 함정을 파놓았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바로 이때, 진찬영이 입을 열었다.“3각 구도가 안정적이긴 하지만 재미가 없잖아요. 저도 끼워주시면 안 돼요?”진찬영은 사도현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사도현을 쳐다보았다.“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은 배경윤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 다부진 몸매에 끌려 그대를 쭉 지켜보게 되었어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대의 모습을 보면서 심장이 떨려왔어요. 자신감이 넘치는 그대가 유독 빛나 보였거든요. 그대는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하늘은 배경윤이 쓴 편지를 천천히 읽으면서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았다. 남성 참가자 중에서 진찬영이 텔레비전에 가장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진찬영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앉아 있었다. 사도현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었고 당장이라도 한 대 때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첫인상 1위가 누구냐고 물으면 그대라고 하고 싶어요. 하늘 씨, 앞으로 우리 잘 지내봐요. 하늘 씨랑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요. 하늘 씨의 마음도 궁금해요. 단둘이 얘기 나누고 싶어요.”편지를 다 읽은 하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늘은 부끄러워하면서 머리를 긁적였고 배경윤을 쳐다보면서 물었다.“경윤 씨, 언제부터 저한테 호감이 생긴 거예요?”하늘을 포함한 게스트들은 전부 두 눈을 크게 뜨고 배경윤을 쳐다보았다.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배경윤은 사도현, 진찬영이 아닌 뜬금없는 하늘한테 고백했던 것이다.[지금 사람 마음 갖고 장난하는 거야? 거짓말하지 마. 누구한테 마음이 있는지 다 보이는데 왜 저러는 거야?][이거 대본 맞지? 대본의 냄새를 맡았어. 제작진한테 너무 실망이야.][대본이든 말든 나는 사도현과 배경윤이 이어지길 기도할 거야. 두 사람 진짜 잘 어울리잖아. 이러다가 진짜 이어져서 결혼할 수도 있어.][결혼이라니, 너무 앞서간 거 아니야? 사도현이 혼자 짝사랑하는 것 같아. 배경윤은 진찬영을 더 좋아한다고!]네티즌은 댓글 수백 개씩 달면서 열렬하게 토론했다. 진찬영의 평온한 얼굴에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사도현도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사도현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내가 열렬하게 구애했는데도 하늘 씨한테 졌어요. 정말 아쉬워요.”“사도현 씨, 제 말 좀 들어봐요. 경윤 씨가 장난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래요. 저는 오늘 경윤 씨랑
배경윤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진찬영은 배경윤이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동안 꾸준하게 좋아했던 연예인이기도 했다.배경윤은 그동안 진찬영과 지내면서 연예인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매력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열정적인 팬에서부터 진찬영을 좋아하는 여자가 되었다.가끔 진찬영과 손을 잡고 천천히 늙어가는 평화로운 삶을 그리기도 했었다.진찬영은 자신을 향해 뻗은 배경윤의 손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불쾌함을 전부 씻어버리고 손을 잡으려고 했었다.그런데 이때 사도현이 갑자기 나타나서 배경윤의 손을 잡았다.“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밤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있으니 아무도 빠지면 안 된다고 했어요.”말을 마친 사도현은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고는 씩 웃었다. 그리고 배경윤을 데리고 게스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이 손 안 놔? 누구 마음대로 내 손을 덥석 잡는 거야? 때리기 전에 놔줘.”배경윤은 살기가 넘치는 눈으로 사도현을 쳐다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 사도현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었다.사도현은 진찬영과 배경윤이 한 발짝 더 가까이 가려고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훼방했다.“내가 잡고 싶어서 잡은 줄 알아? 제작진이 너를 데리고 오라고 했어.”사도현은 게스트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배경윤을 데리고 왔다. 그러고는 사회자 최빈을 향해 말했다.“다 모인 것 같으니 시작하죠.”최빈은 뒤쪽에 서 있는 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찬영 씨, 얼른 이쪽으로 오세요. 곧 고백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은 매일 밤에 게스트들이 모여 앉아 호감이 있는 사람한테 진심이 담긴 편지를 써야 했다. 다 쓴 편지는 추첨함에 넣고 제작진이 지목한 게스트가 나와서 뽑은 편지를 읽으면 되었다.낯부끄러운 시간이었지만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게스트들의 마음이 어디로 향했는지 아주 궁금했다.마음을 편지에 담아 공개하기에
배경윤은 초가집의 뒷문으로 나온 뒤에 일부러 바닷가를 돌아서 바비큐 파티가 열린 곳으로 향했다. 게스트들은 배경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반가워했다.“경윤 언니, 오셨어요? 언니가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경윤 언니가 와서 너무 기뻐요.”장유빈이 머무는 숙소는 배경윤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장유빈은 바비큐 파티에 같이 참가하자고 했지만 배경윤은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못내 아쉬웠던 장유빈은 배경윤을 발견하고는 신나서 벌떡 일어났다.“모두 참가했는데 저만 빠지면 그렇잖아요. 저만 유별난 것도 아니고요. 아무튼 늦게 와서 죄송해요.”배경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이제라도 와줘서 고마워요. 경윤 씨, 이것 좀 봐요. 찬영 오빠가 경윤 씨를 위해서 쉬지 않고 고기만 구웠어요. 경윤 씨가 고기를 그렇게 좋아한다더라고요.”소수민은 불판에 올려진 고기를 보면서 부러운 어조로 말했다.“같은 여자라도 어떤 남자를 만나는지에 따라 달라요. 저희는 먹고 싶은 걸 구워주는 사람이 없어서 직접 구웠어요. 그런데 경윤 씨가 고기를 좋아하니까 찬영 오빠가 양념 고기, 불닭 소스 고기, 허니 고기를 준비했대요. 먹음직스러워서 침이 저절로 고였어요.”배경윤은 진찬영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한편으로 고마웠고 다른 한편으로 미안했다.“찬영 오빠, 고기를 굽느라 고생 많았어요.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돼요. 제가 오빠를 위해서 뭐라도 할게요.”배경윤은 진찬영의 옆으로 걸어가서 같이 고기를 굽고 양념을 발랐다.“조심해요!”진찬영은 튀어 오르는 숯불을 막아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숯불은 그대로 진찬영의 손에 튀었다.“찬영 오빠, 괜찮아요? 이 고귀한 손으로 왜 막은 거예요! 흉이 지면 안 되니까 얼른 가서 약부터 발라요.”소수민은 입을 틀어막고 기겁하더니 이내 소리를 질렀다.“찬영 오빠, 저...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오빠가 다쳤어요.”깜짝 놀란 배경윤은 어쩔 줄 몰라 했다.“괜찮아요. 덴 것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