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설아는 붉어진 두 눈을 하고서 울부짖었다.“그러니까 내가 만약 오빠 편이라면 오빠가 사람을 죽인다 해도 말리지 말고 옆에서 칼이나 건네라는 말이야?”“당연한 거 아니야?”차성철은 차설아의 어깨를 꽉 잡고는 무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우리는 친남매고 너한테 나랑 같은 피가 흐르고 있어. 어떻게 보면 네가 곧 나고 내가 곧 너야. 우린 영광을 함께 누리고 굴욕도 같이 감당해야 해. 내가 한 모든 일이 차씨 가문을 일으켜 세워서 세상을 떠난 우리 부모님을 위해 복수하려고 그러는 건데, 이것마저 하지 말라는 거야?”“가문을 위해서, 부모님의 복수를 위해서 그러는 거 이해해. 하지만 그것도 적당히 해야지, 우리가 만약 이루려는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다면 천하의 나쁜 놈들과 다를 게 뭐야? 그렇게 해서 가문이 부유해지고 복수한다 해도 하늘에서 보고 있는 부모님이 좋아할 것 같아?”“그럼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데?”차성철은 주먹을 쥔 채 베란다 난간을 내리쳤다.“내가 예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아? 적당히 했다면 진작에 죽어서 널 만나지도 못했을 거야. 내가 남들보다 독하고 잔인하니까 그 마굴에서 도망쳐 나온 거고 오늘의 성심 전당포가 세워진 거야.”“그래, 오빠 말대로 살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안정된 삶을 살면서도 더 많은 것이 욕심나서 비열한 짓을 저질렀잖아. 지아 언니는 오빠를 도와준 천사 같은 사람인데, 도대체 왜 지아 언니한테 은혜를 원수로 갚았어? 오빠가 정말 맞다고 생각해?”“은혜를 원수로 갚았다고?”차성철이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성도윤이 너한테 그렇게 말했지? 넌 말로는 내 편이라면서 내가 하는 말을 의심하고 성도윤이 한 말만 믿잖아. 이런 내 기분을 네가 알아?”“도윤 씨 말이 틀린 건 아니잖아. 지아 언니 가족을 죽이고 지아 언니한테 해서는 안 될 짓을 했고 낙태 수술까지 받게 했잖아.”차설아는 남매 간의 우애도 중요했지만 송지아의 참혹한 과거가 자꾸 눈에
차성철은 그동안 그리움과 증오로 가득 찬 삶을 보내오며 고통스러워했다.“만약 지아 언니가 살아있다면... 오빠는 어떻게 할 건데?”차설아는 침을 꿀꺽 삼켰고 차성철의 반응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차성철은 먼 곳을 내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차설아와 눈을 마주치고는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지아가 살아있다는 거지?”“아, 아니! 내 말은 만약 지아 언니가 살아있다면 오빠가 어쩔 건지 궁금해서 그래.”“모르겠어.”차성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씁쓸하게 웃었다.“어차피 날 용서해 주지도 않을 텐데, 차라리...”“차라리 뭐?”차설아가 계속해서 묻자 차성철이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진짜 살아있는지부터 확인해야 알 것 같아.”“언니는...”차설아는 차성철한테 송지아가 살아있다고 알려주고 싶었지만 성도윤의 말이 떠올라서 말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차설아를 지그시 쳐다보던 차성철이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지아가 살아있구나, 내 말이 맞지? 하지만 너한테 있어서 나는 악마니까 지아를 해칠까 봐 두려워서 알려주지 않는 거고...”“정말 해치려고 그래?”“당장은 아무런 약속도 할 수 없어.”차성철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자신이 좋은 사람인지 악마보다 더 나쁜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친동생한테 거짓말하기 싫었다. 그래서 섣불리 약속하지 않은 것이다.“그럼 어떻게 해야 성도윤과의 싸움을 끝내고 평화롭게 지낼 건데?”차설아는 차성철과 성도윤이 피를 보는 싸움을 그만두고 원한을 풀어서 합작의 길로 나아가길 바랐다. 두 그룹 모두 성장할 수 있는 길이지만 성도윤이 먼저 손을 내민다고 해도 고집이 센 차성철이 합작 제안에 응할 가능성이 작았다.“그놈과 합작할 수는 있어. 그놈이 주는 이익이 현재 나의 합작 상대보다 더 높으면 말이야.”차성철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자본가는 이익만 두둑이 챙길 수 있다면 원한 따위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성도윤의 처사 방식이었고 차성철도 똑같은 제안을 했다.“오빠의 합작 상대보다 높아야 한다고? 그게 누구고
차설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누군가가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람과 눈이 마주친 차설아는 깜짝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바람, 네가 왜 여기에 있어?”두 사람은 지난번 만남을 끝으로 오랫동안 보지 못했기에 이 상황이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바람은 여느 때처럼 편한 옷차림을 하고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고 환한 미소로 차설아와 인사를 나누었다.“스파크, 오랜만이야! 난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널 지켜보고 있었어.”바람의 말에 차설아는 소름이 돋았고 구역질하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야, 넌 나이도 가득 먹고도 애처럼 굴어? 모르는 사람이 보면 네가 날 짝사랑하는 스토커인 줄 알겠어.”그러자 차성철이 차설아를 쳐다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설아야, 이분에게 예의를 갖춰. 선우 시원 씨는 우리 그룹에 힘을 실어준 중요한 합작 상대야. 그리고 선우 가문은 방대한 세력을 갖추고 있기에 유일하게 성씨 가문과 대적할 수 있는 가문이라고! 성씨 가문을 짓밟으려면 선우 가문의 도움을 받아야 하거든.”차성철이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번에 시원 씨 덕분에 이 구역을 주민 구역으로 남겨둘 수 있었어. 그렇지 않으면 우리 집은 진작에 오수처리 공장이 되었을 거야. 이것만으로도 시원 씨한테 백번 고맙다고 인사해야 해.”차설아는 입을 삐죽 내밀면서 투덜거렸다.“오빠는 아직도 순진하다니까! 이 구역이 오수처리 공장으로 된 건 저놈이 한 짓이라서 그 결정을 철회하기만 하면 되는데 뭘 또 우리가 신세 진 것처럼 구는지 모르겠어. 대단한 것도 아니잖아.”차설아는 바람이 어떤 가문의 사람이든 관심 없었다. 애초에 바람은 글로벌 해커 리그에서 연속 4년 동안 차설아한테 졌기에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바람은 여전히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성철 형, 사실 저랑 스파크는 꽤 가까운 사이었어요. 서로를 아끼고 보듬어주는 동료일 뿐만 아니라 저랑 결혼할 뻔한 약혼녀였다니까요? 선우 가문에서는 제가 스파크랑 결혼해서 가문을 빛내주길 바랄
차설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오빠, 선우 가문 호락호락하지 않아. 바람은 완전 여우라서 선우 가문과 합작하면 본전도 못 찾고 내팽개쳐진다니까?”“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차성철은 선우 시원의 눈치를 살피면서 진심으로 말했다.“설아야, 네가 모르나 본데 이번 합작 건에서 선우 가문이 80퍼센트를 투자했지만 고작 20퍼센트 이윤만 가진다고 했어. 나머지 80퍼센트 이윤은 다 우리가 가지는 거라고! 선우 가문처럼 열정적이고 관대한 가문한테 내팽개쳐지면 뭐 어때. 선우 가문에서 투자금을 선뜻 내줬는데 뭐가 문제야?”“그게...”차설아는 기가 죽었고 말문이 막혀서 바람한테 투덜거리기 시작했다.“넌 그렇게까지 하고 싶어?”바람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당연하지, 너랑 결혼하기 위해서 선우 가문이 고군분투하고 있잖아.”차설아는 어이가 없었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차성철과 성대 그룹의 합작을 추진하려 할 때마다 더 큰 시련이 가로 막아서 번번이 실패했고 이번에는 가문의 재산을 바치겠다는 선우 가문이 나타나서 차씨 가문과 성씨 가문의 합작은 수포로 돌아갔다.차설아는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그래, 우리 가문과 선우 가문의 합작도 괜찮은 제안이긴 해. 하지만 오빠는 성도윤과의 원한을 풀고 화해했으면 좋겠어. 내가 바라는 건 많지 않아, 합작하지 않더라도 서로 피를 볼 정도로 싸우지 마. 할아버지와 엄마 아빠의 유언이니까 차씨 가문과 성씨 가문은 절대로 서로 적이 될 수 없어!”차성철도 완강하게 대처했다.“만약 엄마 아빠가 성도윤이 나한테 한 짓을 알게 되면 그 유언은 없던 거로 하자고 하실걸? 우리 할아버지는 대장군이신데 어떻게 자손이 남한테 괴롭힘당하는 걸 두고만 보겠어. 내 얼굴 반쪽을 망가뜨린 건 차씨 가문의 체면을 구긴 거나 마찬가지인데 그러고도 사이좋게 지내라고 할 것 같아?”이때 곁에 있던 바람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으로 말했다.“형의 말씀에 동의해요. 차씨 가문과 선우 가문은 모두 군인 출
“방금 한 말 진심이야?”차설아는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차성철이 이렇게 쉽게 인연을 끊자고 말할 줄 몰랐다. 고작 복수 때문에 버림받은 차설아는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차성철이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겪어온 것들을 생각하면 화나기보다 속상한 마음이 컸다.“오빠가 복수에 눈이 멀어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 같아. 이 말은 못 들은 거로 할 테니까 우리 며칠 동안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두 가문을 위한 최고의 대안이 나올 거야.”차설아는 말을 마친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스파크...”바람은 차설아의 씁쓸한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인상을 찌푸렸고 머뭇거리다가 그 뒤를 쫓아갔다. 차설아는 별장 앞마당의 커다란 아카시아나무에 달린 그네를 타고 있었다.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쳐 갔고 아카시아 꽃잎이 하나둘 떨어져 차설아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조금 전 입가에 맴돌던 말은 그대로 삼켜버렸다.차설아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아빠와 할아버지는 넝쿨 의자에 앉아 바둑을 두었고 엄마는 장미꽃과 작약을 꺾어 도자기 꽃병에 예쁘게 꽂았다. 가족의 일원인 강아지 귀염둥이는 엄마 곁에서 맴돌았고 집안에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차설아는 그네의 줄에 기대 눈시울을 붉혔고 울먹이면서 말했다.“엄마, 아빠. 거기서 잘 지내고 있어?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는지도 몰라. 난 그저 모두가 만족할 만한 대안을 찾아서 화해하고 싶었는데 오빠의 입장은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 사람 편만 든 것...”“그래, 넌 그 사람 편만 들더라!”갑자기 바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설아의 뒤에서 한참을 지켜보던 바람은 차설아를 혼자 내버려두려고 했지만 혼잣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차설아가 계속 자책할까 봐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던 것이다. 차설아의 미움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게라도 기분이 나아지고 외로움이 줄어든다면 그걸로 만족했다.“스토커 바람, 왜 내 말을 엿듣는 거야?”
두 사람은 원수처럼 서로를 흉보았고 얼마 후 차설아의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바람, 사실 네가 가만히 있을 때는 봐줄 만해.”차설아는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바람을 쳐다보면서 객관적으로 평가했다.“고마워.”바람도 차설아의 말을 따라 했다.“넌 말을 예쁘게 할 때가 제일 예뻐.”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예전처럼 환하게 웃었다.“바람, 넌 내가 정말 그 사람 편을 든다고 생각해?”차설아는 경계심을 거두었고 제3자 바람의 입장에서 분석해 주길 바랐다.“솔직하게 말해도 돼?”바람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괜찮으니까 솔직하게 알려줘. 내 눈치 볼 필요 없어.”“나는 네가 성철 형보다 성도윤의 편을 든다고 생각해.”바람은 갑자기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투덜거렸다.“흥, 네 전남편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사랑에 죽고 사랑에 사는 사람은 자신의 배우자를 더 끔찍이 아끼더라고.”“아, 아니거든! 난 오빠가 복수의 틀에 갇혀서 고통스러워하니까 그러는 거야. 그리고 성씨 가문도 우리 가문을 눈엣가시로 여길 텐데 자꾸 건드리고 싸우려고 하니까 되레 당하는 거지.”“넌 성철 형이 되어보지 않았고 형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르면서 왜 네 마음대로 화해하라고 강요하는 거야?”바람은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진지하게 말했다.“만약 내가 열심히 해온 사업이 망하고 얼굴까지 괴물처럼 변했으면 절대 화해 안 해. 우리 선우 가문은 복수에 진심이거든. 그래서 쿨하게 웃으면서 없었던 일로 할 수 없어.”“네 말도 일리가 있지만 차씨 가문과 성씨 가문은 대대로 친하게 지냈어. 난 할아버지와 엄마, 아빠가 두 가문이 싸우지 않기를 바란다고 생각해.”“그건 핑계일 뿐이야.”바람이 정곡을 찔렀다.“만약 성씨 가문과 차씨 가문 사이가 대대로 좋았다면 차씨 가문이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 성씨 가문에서 왜 가만히 있었겠어! 차씨 가문이 몰락 직전까지 가자 성씨 가문이 곧바로 해안시 8대 가문 중 하나로 떠올랐잖아. 난 아무리 봐도 두 가문 사이가 좋은 줄 모르겠어.”“그때는
바람은 두 눈을 감은 채 차설아와 입을 맞추려 했고 차설아는 처음으로 주먹을 휘두르는 대신 시도해 보기로 했다.인체가 한차례의 세포 신진대사를 완성하기까지 7년이 걸린다고 한다. 7년이 지난 뒤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차설아는 10여 년 동안 성도윤을 사랑했지만 감정에 변화가 생겨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매일 늙어가는 육체보다도 더 빨리 식어버리는 건 인간의 감정이었다. 두 사람의 입술이 가볍게 부딪혔고 더 깊은 스킨십을 하려던 찰나, 차가운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아, 안돼!”차설아는 꿈에서 깨어난 듯 바람을 밀어냈고 손으로 머리를 내리치면서 후회했다.“내가 미쳤지, 정말 미쳤어!”바람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차설아의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뭐가 걱정되어서 그러는데?”“이런 걸 바란 게 아니야...”차설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말을 이었다.“남녀가 사랑해서 함께 하는 거지, 서로 조건이 비슷하거나 지금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아무 남자랑 결혼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두 사람한테 모두 불공평한 일이야.”“내가 아무 남자야?”“사랑하지 않으면 상대가 누구든 아무 남자인 거지. 우리는 서로 얼마나 비슷한지 나열해 보면서 행복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우리 사이에 사랑 같은 건 없잖아. 함께하려면 꼭 필요한 사랑이 빠진다면 기초가 흔들리는 건물처럼 얼마 못 가서 무너질 거야.”차설아는 솔직한 생각을 바람한테 알려주었다. 바람은 차설아와 결혼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모든 것이 완벽했고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차설아는 바람이 남자로 보이지 않았다. 강아지는 맛있는 음식 중에서 배변물을 찾아 먹는다고 하는데, 어쩌면 차설아가 애타게 찾는 그것이 바로 성도윤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냄새나는 것을 멀리하라고 경고하지만 차설아는 성도윤이 아니면 안 되기에 어쩔 수 없었다. 차설아의 말을 들은 바람은 한참 동안 생각하더니 담담하게 말했다.“그건 너의 억측에 불과해. 넌 나랑 시작해 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사랑
선우 가문에서는 보물로 인한 차씨 가문의 손해를 메꿔주었고 6조를 선물로 전달했다. 거금을 받은 차성철은 입을 다물지 못했고 바람과 함께 다니면서 여러 협력 건에 관해 얘기를 나누었다. 차성철은 바람에게 깍듯이 대했지만 차설아와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남매는 예전처럼 대화하지도 않았고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처럼 지냈다. 두 사람은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고 각자 갈 길을 갔다. 어쩔 수 없이 같이 식사할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입만 열면 비난하는 말뿐이어서 바람과 배경윤은 그 자리가 가시방석처럼 느껴졌다.“오빠, 좁쌀은 적게 먹어, 그러다가 속 좁은 인간이 되면 어떡해?”차설아는 차성철 앞에 놓인 죽 그릇을 다른 쪽에 가져다 놓았고 누가 들어도 차성철이 속 좁다는 뜻이었다. 차성철은 무표정으로 일관하더니 차설아한테 콩나물 볶음을 집어주면서 차갑게 웃었다.“설아야, 고기만 먹지 말고 채소도 먹어야지. 아니면 돼지 취급당할 수도 있어.”“고마워, 오빠. 닭발 무침도 먹어봐, 닭발이 오빠 대신 돈을 세어줄 수도 있잖아.”“그래, 이 물고기 눈을 먹으면 남자 보는 눈이 높아진대.”저녁 식사 내내 남매는 서로에게 반찬을 집어주면서 비꼬았고 그 사이에서 한숨만 내쉬던 바람과 배경윤은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다시 밥을 먹었다.“나 먼저 일어날게.”차설아는 차성한의 말에 기가 차서 수저를 식탁에 내려놓은 뒤 자리를 떠났다. 차설아는 차성철과 싸우고 싶지 않았지만 어젯밤에 차성철이 먼저 인연을 끊자는 말에 화가 단단히 났던 것이다.“저도 다 먹었어요. 설아야, 같이 가!”배경윤은 재빨리 차설아를 뒤따라갔다. 차설아는 걷다가 부둣가 앞에서 멈춰 섰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배를 쳐다보면서 눈시울을 붉혔다.“설아야, 성철 오빠랑 무슨 일 있었어? 두 사람 요즘 따라 분위기 이상하단 말이야. 서로 비난하려고 안달 난 사람 같아.”뒤따라온 배경윤이 차설아 곁에 앉아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매가 싸우는 일은 흔하지만 서로를 사랑해서 목숨까지 바칠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