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 씨가 설득해보겠다고요?”차설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성도윤의 앞을 가로막았다.“제발, 도와주지 못할 거라면 방해는 하지 마세요. 도윤 씨가 이 모든 비극의 원흉인데, 지금 들어가봤자 지아 씨 자극만 하는 거라고요. 저는 그런 위험까지 감수할 자신 없어요...”“아니, 당신이 틀렸어. 그 ‘자정의 살인마’가 진짜 원흉이야.”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마친 성도윤은 차설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실로 걸어 들어갔다.“잠깐만요, 도윤 씨...”차설아는 뒤늦게 병실로 향하는 성도윤을 뒤쫓아가려고 했지만 간호사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죄송하지만, 지금 환자분께서는 설아 씨에게 강력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만약 설아 씨도 안으로 들어가신다면 환자분 감정만 더 불안정해질 겁니다.”“그럴 리가요. 도윤 씨도 들어갔는데 제가 왜 못 들어가요?”간호사의 말에 큰 충격을 받은 차설아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성도윤이 병실 안으로 들어간 지 5~6분이나 지났지만 안에서는 여전히 송지아가 발작을 일으킨다거나 같은 소리가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그렇게 몇 분이 더 지나자 성도윤은 두 손을 호주머니에 꽂은 채 우아하고도 당당한 발걸음으로 병실을 빠져나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왜 나온 거예요?”병실 안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던 차설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지금 안에서 뭐 하고 있는 거예요? 왜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거죠?”“어느 정도 진정됐어. 지금은 간호사가 관을 삽입하는 중이고.”여유로운 표정의 성도윤이 여유롭게 대답했다.“뭐라고요? 진정이 됐다니요? 도윤 씨... 도윤 씨 대체 지아 씨한테 무슨 말을 하고 나온 거예요?”“별말 안 했어. 그냥 지금 몸조리 잘하고 빨리 나아야 복수든 뭐든 할 수 있다고 했을 뿐인데.”“아니, 어떻게 그런 막말을 할 수가 있어요? 변강섭한테서 얼마나 힘들게 목숨을 건졌는데, 벌써 이렇게 복수를 부추기다니요. 이건 죽었다 깨어난 사람 다시 불구덩이에 밀어 넣는 거랑 다를
“잘됐네요. 그럼 얘기해주세요. 우리 오빠랑 송지아 씨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요. 그걸 알아야 두 사람 사이에 진 응어리를 풀 수 있을 것 같아요.”차설아는 살짝 들뜬 목소리로 성도윤에게 물었다. 그녀의 눈빛은 어딘가 모르게 기대에 차 있었다.“그건 싫어.”“???”“내가 안다고 해서, 그걸 꼭 너한테 얘기해줘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도윤 씨… 당신!”차설아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욕설을 가까스로 참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성 대표님, 도련님, 오라버니. 제발 알려주세요. 이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도윤 씨도 알잖아요. 좋은 일 한다 생각하고 제발 불쌍한 저 좀 도와주세요, 네?”차설아의 간곡한 부탁에도 성도윤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미안하지만 난 좋은 일 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서.”“네?”“그래서, 오늘은 굳이 남을 돕고 싶은 생각이 없네.”“!!!”그 말에 차설아가 눈알을 도르륵 굴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성도윤이 일부러 농담을 던지는 것이라 생각했다.“도윤 씨 정말 웃기네요. 웃겨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다음부턴 이런 농담 하지 마세요.”성도윤은 차설아를 바라보더니 씩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지었다.“하지만, 네 생각은 자주 하는데.”당황한 차설아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농담이 재밌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도윤 씨는 정말 공감 능력도 없어요? 빨리 우리 오빠랑 도윤 씨, 그리고 지아 씨 사이의 문제까지 해결해야 두 집안 문제도 해결이 되죠. 그게 도윤 씨한테도 우리한테도 다 좋은 일이잖아요. 도대체 왜 아무것도 얘기해주지 않는 건데요!”“두 가문이 협력하려면 기운도 맞아야 가능한 법이야. 그러려면 본격적인 협력을 시작하기 전에 네가 날 기분 좋게 해줘야 하는 게 먼저겠지. 혹시 모르지, 기분만 좋아지면 너한테 뭐든 다 말해줄지도?”성도윤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말했다.“정말 밉상이 따로 없네요, 너무해요!”차설아는 주먹을 꽉 쥐며 당장이라도 성도윤을 한 대 쥐어박고 충
성도윤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자신에게 바싹 달라붙은 서은아의 팔을 떼어내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집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랬잖아, 왜 여기까지 따라온 거야?”“네가 걱정돼서 참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실장님한테까지 졸라서 네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고 제일 빠른 항공편으로 여기까지 온 거야.”서은아는 다시 성도윤에게 꼭 달라붙으며 애교를 부렸다.“하여간 진무열은 그 입이 문제야. 그만두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양이지?”성도윤의 준수한 얼굴에는 미처 억누르지 못한 분노가 서려 눈빛은 무서울 정도로 차가워졌다.그는 서은아의 갑작스러운 방문이 전혀 반갑지 않았다.그렇다고 성도윤이 죄책감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에 서은아 같은 귀한 집안의 딸이 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도윤아, 표정이 왜 그래. 안 기뻐? 내가 안 보고 싶었던 거야?”“기쁘긴 한데, 이런 곳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대체 뭐가 문제인데? 여긴 유명한 관광지잖아. 난 그냥 여행 겸 가족 방문하러 온 거고. 누가 나 잡아서 인신매매라도 할까 봐 그래?”“이런 뒤 세계는 너처럼 귀하게 자란 공주님이 감히 상상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혼자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네가 운이 좋았던 거야.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겼다면 나만 또 죄책감 때문에 한동안 계속 힘들어했겠지.”말을 마친 성도윤은 서은아를 위아래로 살펴보며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넌 내 약혼녀잖아. 그러니까 자꾸 나 걱정시키지 마.”“알겠어, 걱정하지 마. 그리고 난 서씨 가문의 장녀야. 그 아무도 날 함부로 대할 수 없어. 봐, 지금도 이렇게 멀쩡하잖아?”서은아는 귀엽게 웃으며 자신의 치마를 살짝 들어 올리더니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 돌았다. 그러고는 옆에 서 있던 차설아를 바라보더니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설아 씨도 혼자 여기까지 왔잖아. 그렇게 찢어지게 가난하고 힘도 없는 집 딸도 아무렇지 않게 오
“너도 우리랑 같이 가자. 나랑 은아 심심풀이 상대나 해줘.”“???”“싫어?”성도윤은 순식간에 얼굴에 먹구름이 낀 듯한 차설아의 표정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지었다.“싫다면 굳이 강요하진 않을게. 하지만 너도 알 텐데, 난 보통 중요한 얘기는 다 식탁 앞에서만 하잖아.”“싫다니요, 당연히 좋죠. 두 분이랑 함께 식사하게 되다니, 영광이네요.”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려 미소 지은 차설아는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자신의 오빠와 송지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는 일념만 없었다면 차설아는... 지금 당장이라도 눈앞의 성도윤을 때려눕혔을지도 모른다. 그는 차설아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봤던 사람 중 가장 얄미운 사람이었다.“굳이 그럴 필요는 없죠!”서은아가 끼어들어 차설아를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설아 씨도 아시다시피 저랑 도윤이 정말 오랜만에 만난 거라 단둘이서 나눌 얘기가 참 많아요. 그런데 그 자리에 설아 씨가 끼면, 너무 어색하지 않겠어요?”“하하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다 친구 사이인데 어색할 게 뭐가 있다고요!”차설아는 가식적인 말을 내뱉으며 속으로 힘껏 외쳤다.‘나도 당연히 어색하지, 그런데 나더러 뭘 어떡하라고. 넌 무슨 내가 정말 너희랑 같이 밥 먹고 싶은 줄 아니?!’하지만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아무리 어색한 자리일 것 같다고 해도 절대 물러설 수 없었다. 차설아는 차라리 아예 뻔뻔하게 행동하는 것을 택했다. 어차피 그녀만 당당하다면 민망하고 어색한 것은 두 사람일 테니까.”“설아 씨!”서은아는 뻔뻔하게 나오는 차설아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순간적으로 난감해졌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성도윤이 내린 결정이었으니 무작정 반대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요, 그래요. 그렇게 눈치 없게 끼고 싶다고 하니, 저야 어쩔 수 없네요. 젓가락 하나 더 올려놓으면 될 일이니까 딱히 상관없어요.”서은아는 일부러 고개를 빳빳이 쳐든 채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다.그렇
주위를 둘러보던 차설아는 자신의 의자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옆에 있던 직원에게 말했다.“저기요, 여기 의자 하나만 더 갖다 주실 수 있을까요?”“아, 그게요...”직원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뭐가 문제예요? 손님이 앉을 자리가 없으니까 의자 하나 더 놔달라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요?”직원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으며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손님, 의자를 가져다드리는 건 아무 문제 없지만, 2인석에 의자를 하나 더 추가하는 건 조금 곤란할 것 같습니다. 저희 매장 분위기에도 안 좋고 다른 손님들 식사하시는 데도 방해될 수 있어서요.”“따지는 게 왜 이렇게 까다로워요?”답답해진 차설아의 말투가 날카로워졌다.“당연히 까다로워야죠...”서은아는 마치 왕실의 왕비라도 된듯한 기세로 성도윤의 맞은편에 앉아 냅킨을 펴며 비꼬았다.“2인석이면 2인석이지, 의자를 추가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저였다면 제 자리가 없다고 했을 때 눈치껏 다른 곳으로 꺼져줬을 것 같네요. 이런 식으로 직원한테 억지를 부리는 건 경우가 아니죠.”이미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던 차설아의 분노는 서은아의 말에 그만 폭발해버리고 말았다.“그래요, 맞아요. 2인석에 의자 하나 추가되면 당연히 보기 거슬리겠지. 그러니까 너도 눈치껏 일어나지 그래!”차설아는 무례한 말투로 서은아에게 쏘아붙였다.“너, 너 지금 그게 무슨 뜻이야? 이 자리는 내 자리야! 그런데 내가 왜 일어나야 해?”서은아는 자신을 밀어내려는 차설아의 행동에 충격을 받은 듯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누가 이 자리가 네 자리라고 했는데? 여기 뭐 네 이름이라도 적혀 있대? 부르면 주인님이라고 대답이라고 해준다니?”“도윤이가 앉으라고 한 거야. 그리고 난 성도윤 약혼녀고, 그럼 당연히 이 자리는 내 자리여야지!”“허, 성도윤이 앉으라고 했다고? 이 자리가 뭐 도윤 씨 아들이라도 된대? 도윤 씨가 부르면 여기서 대답 해주나?”“그, 그건...”차설아의 말에 서은아도 딱히 반박하지 못했다.
테이블 옆에 서 있던 서은아는 티격태격 중인 성도윤과 차설아를 지켜보았다. 겉으로는 싫은 척하면서도 사실은 애정이 뚝뚝 흘러넘치는 것 같은 둘의 모습에 서은아가 주먹을 꽉 쥐었다.“둘이 분위기 좋아 보이네, 도윤아. 오히려 내가 여기 끼어있는 게 어색할 정도야. 둘이 식사 천천히 해. 난 먼저 호텔로 돌아갈 테니까.”말을 마친 서은아가 황급히 자리를 뜨려 했다.하지만 차설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의 손목을 탁 잡고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어색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은아 씨가 여기 남아있어야 우리한테 스테이크도 썰어주고, 와인도 따라주고, 반찬도 이것저것 다 집어줄 거 아니야. 은아 씨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데요.”“차설아 씨, 너무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 이런 일은 원래 차설아 씨가 나한테 해줘야 하는 것들이잖아!”“누가 그래요? 혹시 제가 해드려야 한다고 법으로 정해놨어요?”“도윤이가 그랬어요!”“성도윤이 대체 뭔데 내가 그 사람 말을 다 들어줘야 해요?”“설아 씨!”두 사람의 싸움에 다시 불이 붙을 기미가 보이자 성도윤이 직접 나서서 서은아에게 말했다.“은아야, 여기 내 옆에 와서 앉아.”그 말에 금세 표정이 밝아진 서은아가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역시 도윤이야, 이럴 줄 알았어. 네가 날 저런 곳에 가만히 세워둘 리가 없지.”서은아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성도윤의 옆에 앉아 그에게 몸을 기댔다. 가까이 꼭 붙어 앉은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은 정말 곧 결혼만 남겨둔 천생연분 같아 보였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차설아는 고개를 숙이고 씁쓸해진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물을 한 모금 마셨다.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이 주문한 요리들을 하나씩 테이블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이번 양식은 거미 튀김 같은 이상한 음식과는 달리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게 플레이팅 된 고급 요리였는데 보기만 해도 눈이 즐겁고 식욕이 돋았다.하지만 차설아는 배가 고팠음에도 그런 고급 요리들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왜인지 모르게 입맛이 떨어져 음식을 씹어도 양초
“왜 또 내일 아침으로 미루는 건데요?”차설아는 속으로 수많은 욕설을 삼키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이쯤 되니 그녀는 성도윤에게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이 남자는 처음부터 자신에게 진실을 얘기해줄 마음이 없었고 그저 이 일을 빌미로 자신을 갖고 논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내일 아침이면 얘기해줄 수도 있고, 안 해줄 수도 있고.”두 손을 호주머니에 찔러넣은 성도윤이 무표정으로 말했다.“그래봤자 나한테는 네 오빠랑 다른 사람 사이의 원한을 대신 풀어줄 의무가 없거든.”“도윤 씨...”성도윤의 답변에 차설아의 말문이 막혀버렸다.이 남자는 정말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변덕스러운 사람이었다. 말 바뀌는 속도가 책장 넘기는 것보다 빨랐다.하지만 그럼에도 차설아는 뒷일을 위해 꾹 참기로 했다.“그래요, 그럼. 내일 얘기해줘도 돼요. 그럼 저도 피곤하니까 이제 푹 쉴 수 있겠네요.”그렇게 호텔로 돌아온 차설아는 바로 침대 위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최근 들어 걱정거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기던 탓에 차설아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지금 그녀의 상태는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들 수 있는 상태였다.그리고 성도윤과 서은아의 쪽은 문제가 조금 복잡했다.두 사람은 한 스위트룸을 이용하고 있었지만 한 사람은 거실에서 신문이나 뒤적이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섹시한 빨간 잠옷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워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다.서은아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몸에 향수를 여러 번 뿌리고 있었다.향수 이름은 ‘크레이지 인 러브’로, 서은아가 꽤 특별한 경로를 통해 비싼 값을 주고 구매한 것이었다.이 향수를 뿌린 여자는 자신의 매력을 극대화해 이성을 완전히 유혹할 수 있게 되고 두 사람이 함께 뿌리면 둘은 마치 실과 바늘처럼 서로 끌리게 된다고 한다.이런 방법까지 쓰는 게 조금은 치사해 보일 수도 있지만 서은아도 어쩔 수 없었다.그녀는 성도윤과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고 성도윤 역시 서은아를 깊게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하지만... 둘 사
“네가 보고 싶었다는 마음만 있으면 되는 거야. 차설아 일은... 그냥 말하는 게 웃겨서 심심풀이로 몇 마디 조금 나눴을 뿐이고.”성도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자신 스스로도 믿을 정도의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차설아를 대하는 자신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분명 그녀는 자신의 원수가 맞았고 그녀와의 기억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이상하게도 자꾸만 차설아에게 끌렸고, 자꾸 차설아와 가깝게 진고 싶어졌다. 마치 유전자나 몸의 세포가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기라도 하듯 그녀의 사소한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끌렸다.하지만 이런 감정들은 서은아와 비교했을 때 한없이 약한 것이었다.성도윤은 자신이 서은아를 사랑한다는 것을 이미 의식하고 있었고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곁을 지켜준 그녀에 대한 감사함을 품고 평생 그녀를 떠받들며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지어는 서은아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었지만... 서은아와 함께 있는 시간은 별로 즐겁지 않았다.“정말? 정말 차설아 씨는 그냥 심심풀이 땅콩 같은 대상인 거지? 정말 아무 감정도 없는 거 맞지?”서은아는 성도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서은아도 안목 있는 사람이었다. 차설아를 대하는 성도윤의 태도가 어떤지 그녀에게도 너무 뻔히 보였다.“넌 내가 차설아한테 무슨 감정을 품었으면 하는 거야?”성도윤은 차가운 눈빛으로 서은아를 바라보며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당연히 아니지. 네 눈에는 나만 보였으면 좋겠어. 다른 여자가 있어서는 절대 안 돼.”“그럼 됐네. 내 눈에는 정말 너밖에 없거든. 다른 여자는 들어올 틈도 없어.”“말은 이렇게 해도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 보면 그렇게 생각하기 힘들던데…”“파파라치가 무슨 사진을 찍었는데?”“네가 직접 확인해봐...”서은아는 휴대폰을 꺼내 파파라치가 찍어 보내준 사진을 성도윤에게 보여주었다. 사진 속의 성도윤은 차설아와 함께 호텔로 들어가고 있었다.“나...”성도윤은 자신이 한순간에 쓰레기가 되어버린 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