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색 가운을 입은 두 사람이 송지아와 차설아가 갇혀 있는 암옥으로 향했고 암옥을 지키고 있던 사람이 난간을 툭툭 치면서 차갑게 말했다.“송지아, 나와!”구석에 있던 송지아가 씁쓸하게 웃더니 차설아한테 말했다.“드디어 기다리던 순간이 왔네요.”꾸벅꾸벅 졸던 차설아가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뭐가요? 어디 가는 건데요?”“새로운 삶을 맞이하러요.”“새로운 삶이라고요?”차설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설마 변강섭 그 영감탱이가 지아 씨를 놓아주려는 걸까요?”“그런가 봐요.”송지아가 피식 웃더니 차설아를 꼭 끌어안았다.“설아 씨, 만나서 반가웠어요. 혹시 성도윤 씨를 만나게 된다면 정말 미안하다고 전해줘요.”“네?”차설아는 어이가 없었다.“그놈이 지아 씨를 속이고 이용했는데 왜 사과하는 거죠?”“제가 잘못했거든요.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잖아요. 그럼 저 먼저 가볼게요.”암옥을 지키는 사람이 재촉하는 바람에 송지아는 어쩔 수 없이 차설아와 인사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차설아는 송지아의 말을 다시 곱씹어보더니 무릎을 쳤다.“아니, 지아 씨는 성도윤을 만난 후에 떠나겠다고 했는데 왜 나한테 말을 전해달라는 거지? 설마 변강섭 그놈이 지아 씨를 풀어주는 게 아니라... 왜 진작에 눈치채지 못한 거야!”차설아는 이마를 치며 울상을 지었다. 그러고는 암옥 입구 쪽으로 달려가 철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다.“날 내보내 줘! 지아 씨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 당장 이 문 열지 못해?”암옥을 지키던 사람이 철문의 자그마한 입구로 다가가더니 경고했다.“감히 암옥에서 소리를 질러? 독가스에 죽고 싶지 않다면 조용히 하는 게 좋을 거야.”“지아 씨를 어디로 데리고 갔는지나 말해! 당장 이 문 열라니까? 날 풀어주면 원하는 만큼 돈을 줄 테니까...”“송지아 다음은 너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 여자가 어디로 갔는지 너도 곧 알게 될 거야.”“나 재벌가 딸이라 돈 많아. 당신들 어차피 돈 때문에 이런 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몇십 배로 줄 테니까 문
배경수는 차설아의 어깨를 붙잡더니 긴장한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난 괜찮으니까 어서 지아 씨를 구하러 가! 지아 씨가 위험해!”차설아의 말을 들은 배경수가 무기를 수하의 머리에 갖다 대고는 물었다.“송지아 지금 어디 있는지 말해.”“내가 말할 것 같아?”수하가 눈을 감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제길!”배경수는 화가 솟구쳐 올랐다. 마을의 사람들은 고강도의 훈련을 거쳐 단단한 몸을 만들었고 세뇌당해서 변강섭을 신처럼 모셨기에 쉽게 알려줄 리 없었다. 수하를 죽여도 달라지는 것 없을 것이다. 이때 변가을이 입을 열었다.“아마 해체실에 있을 거예요. 명해 오빠한테서 들었는데, 아버지를 배신한 사람을 해체실로 끌고 가서 신체의 모든 부위를 자르고 판매한다고 했어요.”“뭐라고요?”차설아가 주먹을 꽉 쥐고는 씩씩댔다.“이 영감탱이는 제정신이 아니야...”“그래서 지아 언니가 아버지를 폭로했을 거예요. 그 행동이 언니를 죽음으로 몰아갈지도 몰랐을 거고요.”변가을이 고개를 푹 숙였다. 변강섭의 행동이 극단적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었다.“자, 일단 해체실로 먼저 가요. 지아 씨를 구하고 나면 가을 씨 아버지가 보낸 수하들과 마주칠 수도 있어요.”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목청을 높였고 이 마을을 당장이라도 갈아엎고 싶었다. 그런데 이때 변가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마을 곳곳에 해체실이 설치되어있는데 모두 32곳이에요. 그리고 이 마을의 부지는 5만 무예요.”“네?”차설아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렇게 큰 마을에서 송지아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일단 나가서 찾아보자!”배경수는 잔뜩 긴장한 채 말했고 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먼저 이곳에서 나가자. 우리 셋이 흩어져서 찾으면 더 빠를 거야.”“그건 안돼!”배경수가 차설아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내가 널 어떻게 찾았는데... 절대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변가을은 차설아의 손을 굳게 잡은 배
차설아와 배경수는 여러 해체실을 찾았지만 송지아가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이때 마을의 구석진 곳에서 누군가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지아 씨 목소리야!”차설아는 송지아의 목소리를 듣고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얼른 가자!”배경수가 차설아의 손을 잡고 목소리가 울려 퍼진 방향으로 뛰어갔다. 두 사람은 가는 길에 마주친 수하를 쓰러뜨렸고 해체실에 도착했다. 차설아는 배경수가 움직이기도 전에 해체실을 지키던 수하들을 제압했고 수하의 무기를 빼앗고는 굳게 닫힌 문을 발로 찼다.퍽!문의 잠금장치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문이 열렸고 끔찍한 장면에 차마 두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수술칼로 송지아의 허리 양쪽을 그어 신장을 꺼내려 했다.“당신들 누구야!”수술칼을 들고 있던 남자가 깜짝 놀라더니 피로 흥건한 손을 내민 채 뒤로 물러났다.“개같은 놈, 감히 어디에 손을 대!”차설아는 하얀 가운을 입은 두 남자의 다리를 걷어찼고 두 사람은 바닥에 넘어지며 울부짖었다.“지아 씨, 조금만 버텨요. 제가 지아 씨를 데리고 나갈게요.”차설아는 붉어진 눈으로 수술대에 누워있는 송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1분만 더 늦었다면 이 불쌍한 여자는 비참한 결과를 맞이했을 것이다. 이때 송지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설아 씨 눈이 참 예쁘네요. 저도 모르게 그 사람 생각이 날 정도로 깊은 눈동자예요.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아니요, 지아 씨가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예요!”차설아가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의 머리채를 잡고 이마에 무기를 갖다 댔다.“10분 이내에 상처를 꿰매. 그렇지 않으면 네 몸에 구멍을 내줄 테니까 빨리 꿰매라고!”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가 떨리는 손으로 바늘을 들고는 말했다.“이 여자가 마취제를 쓰기 싫다고 하면서 빨리 베라고 했단 말이에요. 저희는 그저 시킨 대로 했을 뿐인데...”“닥쳐!”차설아가 그 남자의 뺨을 후려갈겼다.“이 자리에서 마취제 없이 네 신장을 꺼내줄까?”“죄송해요, 상처
“아무 짓도 안 했는데요... 과다 출혈이어서 그럴 거예요.”“과다 출혈이라고?”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계속해서 물었다.“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이대로 둬도 괜찮아?”“병원으로 이송해서 수혈해야 해요. 아니면 쓰러질 수도 있어요.”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상처가 크기도 했고 피를 많이 흘려서 여린 몸으로 감당하지 못했던 것이다. 해체실에서는 상처를 꿰맨 적이 없기에 응급조치에 능하지 못했다. 이때 송지아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지더니 차설아를 잡고 있던 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너무 졸려서 좀 잘게요...”“안 돼요! 지아 씨, 눈 좀 떠봐요! 저랑 같이 집에 가면 오빠도 만날 수 있으니까 정신 차리라고요!”차설아가 송지아를 흔들어 깨웠지만 송지아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배경수가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보스, 급한 마음은 알겠지만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지아를 데리고 여기를 빠져나가는 거야. 변강섭도 눈치챘겠지.”배경수의 예상이 적중했다. 변강섭은 마을의 절반 이상의 수하를 보내서 해체실을 포위했고 차설아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아버지, 제발 경수 오빠를 보내주세요, 네? 앞으로 말도 잘 듣고 아버지 사업을 이어받을게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부탁이에요...”명해한테 제압당한 변가을은 발버둥 치며 울부짖었다.“감히 나의 마을에서 난동을 부리다니, 이건 나 변강섭을 무시하는 거나 다름 없는데 이대로 순순히 보내준다면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어?”변강섭이 고개를 돌려 명해한테 말했다.“가을을 잘 붙잡고 있어. 조금 있다가 저 사람들이 나오면 바로 죽여. 특제 무기에 맞고도 소란을 피울 수 있는지 지켜보겠어.”“아, 안 돼요! 아버지가 경수 오빠 털끝 하나라도 다친다면 저는 이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죽겠어요!”변가을은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울부짖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고 싶은 남자가 해체실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가을아, 넌 아직 어려서 남자를 잘 몰라. 배경
“경수 오빠!”변가을은 숨이 넘어갈 듯 울부짖으며 피바다에 쓰러진 남자 곁으로 다가갔다. 배경수가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를 밀어내더니 기지개를 켰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가을아, 울지마. 오빠 아직 멀쩡하거든?”배경수는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 뒤에서 피했기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차설아는 의식을 잃은 송지아와 함께 해체실 구석에 있었다.“제자한테 이렇게 엄한 사부는 처음 봤네요. 이 두 분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제 몸에는 수백 개 구멍이 생겼겠죠.”배경수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쓰러진 두 남자를 쳐다보며 혀를 끌끌 찼다.“감히 날 농락해?”변강섭은 배경수를 노려보더니 명령했다.“저놈을 쏴!”“안 돼요!”변가을이 두 팔을 벌리고 배경수 앞에 막아서서 진지하게 말했다.“아버지, 하나뿐인 딸도 필요 없다고 하셨죠? 그럼 저를 죽이세요. 죽어도 경수 오빠랑 같이 죽을 거니까요.”“빌어먹을 년, 내가 쓰러지는 꼴 보기 싫으면 그놈한테서 떨어져!”변강섭은 평생 딸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기에 마음을 독하게 먹을 수 없었다.“그깟 남자 하나 때문에 뭐 하는 짓이야! 널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를 목숨 걸고 지켜주면 너를 좋아할 것 같아?”“아니요, 저는 그저 경수 오빠가 행복하면 돼요. 오빠가 아버지 손에 죽게 되면 저도 오빠 따라 죽을 거예요. 믿지 못하겠으면 해보든가요.”변가을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서 배경수한테 줬던 비수를 빼앗아 목에 갖다 댔다.“해보시라고요.”명해는 떨리는 목소리로 변강섭한테 빌었다.“아버지, 아가씨는 겉보기에 마음이 여려 보여도 강한 사람이에요.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 더 부추기면 아가씨께서 정말...”“더 부추겨서 죽으면 말지. 나 변강섭은 저런 멍청한 딸을 둔 적이 없어. 너희들만 내 곁에 있어도 충분해!”변강섭은 주먹을 꽉 쥔 채 말을 이었다.“어릴 적부터 금이야 옥이야 키웠더니 우유부단하고 멍청하게 커서 일을 그르치는군. 그런 자식은 필요 없어!”“아버지, 아가씨는 남녀 간의 정에 금방 눈을 떠서 잘 모르는
변강섭이 손을 내저으며 목청을 높였다.“그래, 네 말대로 할 테니까 비수를 내려놔!”변가을은 눈시울을 붉히면서 미소를 지었다.“아버지, 고마워요...”“아니, 보내주는 대신 조건이 있어.”변강섭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서 배경수를 지그시 노려보더니 거만하게 말했다.“내 딸이 목숨까지 걸었으니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겠지? 네가 내 딸과 결혼한다면 모든 사람을 보내주겠지만 아니라면 이 마을을 벗어나지 못할 거야.”변가을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변강섭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아버지, 이러는 게 어디 있어요! 결혼은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하는 거지, 협박해서 결혼하는 게 어딨냐고요!”변강섭은 변가을의 말을 무시한 채 배경수를 노려보았다.“내 딸과 결혼할 건가?”“저...”배경수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어쩔 바를 몰라 했다.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가 있으니 사랑하지 않는 여자한테 눈길이 갈 리 없었다. 하지만 결혼하지 않으면 배경수와 송지아, 차설아 세 사람은 살아서 이 마을을 나가지 못할 것이다.“그렇게는 안 되죠.”차설아가 송지아를 부축하고 나오면서 변강섭한테 말했다.“마음이 없는 사람과 결혼해서 뭐가 달라지는데요?”“달라지는 건 없지만 내 딸이 행복하면 그걸로 됐어.”변강섭은 배경수를 쳐다보며 씩 웃었다.“배경수를 아들로 삼고 싶지만 그게 안 되면 사위도 좋고요. 한 사람의 혼약으로 두 사람의 목숨을 살려준다는데, 이 좋은 거래를 뿌리친다면 저도 할 말 없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저를 탓하지 말아요.”배경수는 안색이 창백한 송지아를 힐끗 보더니 차설아를 향해 말했다.“보스, 긴말 말고 지아를 데리고 가. 당장 병원에 가지 않으면 지아는 죽을 수도 있어! 그럼 선택의 여지도 없단 말이야.”“안돼, 널 이곳에 혼자 둘 수 없어. 가려면 함께 가고 죽어도 같이 죽어.”“이럴 때만 꼭 의리를 들먹이더라? 나를 사위로 삼겠다 했지, 노예처럼 부려 먹겠다고는 하지 않았어. 가을처럼 예쁜 여자랑 결혼하면 나한테는 좋은 일이잖아. 그
차설아는 송지아와 함께 마을 떠났고 제일 빠른 속도로 시 중심 부근의 병원으로 향했다. 송지아는 수술실에 밀려들어 갔고 그 뒤를 따르던 차설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부탁했다.“의사 선생님, 꼭 좀 살려주세요! 제발요...”송지아를 살리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고 배경수의 혼약을 대가로 도망친 것이 헛수고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걱정하지 마세요. 최선을 다해 환자를 살릴 거예요.”의사는 말을 마친 뒤 수술실로 들어갔다. 차설아는 의자에 걸터앉아 자신의 무능함에 분노했다. 고개를 숙인 채 회색 바닥을 보면서 이럴 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키가 훤칠한 남자가 차설아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잘 다려진 슬랙스가 긴 다리를 더 돋보이게 해주었고 모델 뺨치는 비율을 자랑했다. 차설아가 고개를 들자 그 남자의 차가운 두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차설아는 눈물로 흐릿해진 시야로 훅 들어온 남자 때문에 깜짝 놀랐다.“성도윤 씨, 당신이 여길 어떻게...”차설아는 믿기지 않는 듯 두 눈을 비비며 미소를 지었다. 서프라이즈를 받은 것처럼 기쁜 건 아마도 시련 앞에서 무너지기 직전에 지원군을 만나서일 것이다.“비즈니스 때문에 온 거야.”성도윤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오만하게 대답했다.“병원에서 무슨 비즈니스예요? 날 미행한 거죠?”“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성도윤이 응급실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상태는 어때?”“누가 수술실로 들어갔는지 알고 묻는 건가요?”“송지아잖아.”성도윤이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당신이랑 배씨 가문 그 멍청이 둘이 변강섭의 마을에 갔다며? 뭘 믿고 그런 거야? 그놈이 금변시에서 얼마나 큰 세력을 가졌는지 알기나 해?”“그럴 생각할 틈도 없이 간 거라... 지금 생각해 보면 황당하긴 하네요.”차설아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차설아라도 그토록 참혹하고 끔찍한 장면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놈들과 협력한 적 있어서 아는데, 당신 오빠 같은 사람은 감히
“그럴 리가 있어? 나랑 협력하는 사람이니까 손에 더러운 걸 묻히지 말라고 알려줬을 뿐이야. 변강섭이 당신들을 놓아준 건 정말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지.”“흥, 당신이 좋은 말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차설아는 입을 삐죽 내민 채 성도윤을 등지고 앉았다. 그러고는 수술실 문 위에 있는 빨간 불을 보더니 송지아가 죽기 전에 했던 말이 떠오르면서 화가 솟구쳐 올랐다. 차설아가 성도윤을 노려보며 말했다.“나쁜 놈!”성도윤은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내가 당신을 건드린 적도 없는데 왜 날 욕하는 거야?”“저는 아니지만 지아 씨를 건드렸잖아요. 속여서 이용하고 지아 씨가 바다에 뛰어드는 것을 보고만 있었으니 나쁜 놈이죠.”차설아는 울먹이며 말했고 눈시울이 붉어졌다.“지아 씨가 당신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알아요? 죽기 전까지도 당신을 보고 싶다고 했지만 당신처럼 나쁜 놈은 예쁜 여자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성도윤이 싸늘한 표정을 짓고서 말했다.“당신은 송지아가 아니면서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하는 거지?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송지아가 불쌍하긴 하지만 당신이 사랑하는 오빠는 극단적이다 못해 미쳐 돌았어. 당신 오빠가 그렇게 된 건 자초한 일이야.”“성도윤 씨, 꼭 말을 그렇게 해야겠어요?”차설아는 감정이 격해졌고 계속해서 따져 물었다.“두 사람 다 피해자지만 당신은 뭐가 그렇게 당당해요? 송지아 씨는 보는 눈이 없어서 당신 같은 이기적인 남자를 사랑했나 봐요.”‘물론 나도 보는 눈이 없어서 당신을 사랑했지만...’“당신이 떠들고 싶은 대로 떠들어. 어차피 당신은 나를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동물로 생각하잖아. 난 당신 생각보다도 잔인하고 차가운 사람이거든.”성도윤이 오만하게 차설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당신은 정말...”차설아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는 무책임한 남자의 태도에 짜증이 났다.“당신은 소중히 여기는 거, 지키고 싶은 거 없어요?”“없어.”성도윤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그럴 줄 알았어요.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