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설아는 송지아와 함께 마을 떠났고 제일 빠른 속도로 시 중심 부근의 병원으로 향했다. 송지아는 수술실에 밀려들어 갔고 그 뒤를 따르던 차설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부탁했다.“의사 선생님, 꼭 좀 살려주세요! 제발요...”송지아를 살리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고 배경수의 혼약을 대가로 도망친 것이 헛수고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걱정하지 마세요. 최선을 다해 환자를 살릴 거예요.”의사는 말을 마친 뒤 수술실로 들어갔다. 차설아는 의자에 걸터앉아 자신의 무능함에 분노했다. 고개를 숙인 채 회색 바닥을 보면서 이럴 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키가 훤칠한 남자가 차설아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잘 다려진 슬랙스가 긴 다리를 더 돋보이게 해주었고 모델 뺨치는 비율을 자랑했다. 차설아가 고개를 들자 그 남자의 차가운 두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차설아는 눈물로 흐릿해진 시야로 훅 들어온 남자 때문에 깜짝 놀랐다.“성도윤 씨, 당신이 여길 어떻게...”차설아는 믿기지 않는 듯 두 눈을 비비며 미소를 지었다. 서프라이즈를 받은 것처럼 기쁜 건 아마도 시련 앞에서 무너지기 직전에 지원군을 만나서일 것이다.“비즈니스 때문에 온 거야.”성도윤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오만하게 대답했다.“병원에서 무슨 비즈니스예요? 날 미행한 거죠?”“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성도윤이 응급실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상태는 어때?”“누가 수술실로 들어갔는지 알고 묻는 건가요?”“송지아잖아.”성도윤이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당신이랑 배씨 가문 그 멍청이 둘이 변강섭의 마을에 갔다며? 뭘 믿고 그런 거야? 그놈이 금변시에서 얼마나 큰 세력을 가졌는지 알기나 해?”“그럴 생각할 틈도 없이 간 거라... 지금 생각해 보면 황당하긴 하네요.”차설아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차설아라도 그토록 참혹하고 끔찍한 장면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놈들과 협력한 적 있어서 아는데, 당신 오빠 같은 사람은 감히
“그럴 리가 있어? 나랑 협력하는 사람이니까 손에 더러운 걸 묻히지 말라고 알려줬을 뿐이야. 변강섭이 당신들을 놓아준 건 정말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지.”“흥, 당신이 좋은 말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차설아는 입을 삐죽 내민 채 성도윤을 등지고 앉았다. 그러고는 수술실 문 위에 있는 빨간 불을 보더니 송지아가 죽기 전에 했던 말이 떠오르면서 화가 솟구쳐 올랐다. 차설아가 성도윤을 노려보며 말했다.“나쁜 놈!”성도윤은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내가 당신을 건드린 적도 없는데 왜 날 욕하는 거야?”“저는 아니지만 지아 씨를 건드렸잖아요. 속여서 이용하고 지아 씨가 바다에 뛰어드는 것을 보고만 있었으니 나쁜 놈이죠.”차설아는 울먹이며 말했고 눈시울이 붉어졌다.“지아 씨가 당신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알아요? 죽기 전까지도 당신을 보고 싶다고 했지만 당신처럼 나쁜 놈은 예쁜 여자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성도윤이 싸늘한 표정을 짓고서 말했다.“당신은 송지아가 아니면서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하는 거지?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송지아가 불쌍하긴 하지만 당신이 사랑하는 오빠는 극단적이다 못해 미쳐 돌았어. 당신 오빠가 그렇게 된 건 자초한 일이야.”“성도윤 씨, 꼭 말을 그렇게 해야겠어요?”차설아는 감정이 격해졌고 계속해서 따져 물었다.“두 사람 다 피해자지만 당신은 뭐가 그렇게 당당해요? 송지아 씨는 보는 눈이 없어서 당신 같은 이기적인 남자를 사랑했나 봐요.”‘물론 나도 보는 눈이 없어서 당신을 사랑했지만...’“당신이 떠들고 싶은 대로 떠들어. 어차피 당신은 나를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동물로 생각하잖아. 난 당신 생각보다도 잔인하고 차가운 사람이거든.”성도윤이 오만하게 차설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당신은 정말...”차설아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는 무책임한 남자의 태도에 짜증이 났다.“당신은 소중히 여기는 거, 지키고 싶은 거 없어요?”“없어.”성도윤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그럴 줄 알았어요. 지
성도윤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내 피를 당신이 바꿔줬다는 건 무슨 뜻이지? 자세하게 말해 봐.”“말이 헛나왔으니 신경 쓰지 말아요.”차설아는 머리를 긁적였고 의사한테 팔을 내밀었다.“제 피를 뽑아요.”차설아가 의사 곁으로 다가가자 성도윤도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저의 피도 뽑아주세요.”성도윤은 남자로서 위급상황에 발 벗고 나서서 남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저...”의사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당황했지만 환자를 살리기 위해 결단을 내려야 했다.“그럼 두 분 다 저를 따라오세요. 한 사람 피로는 부족할 수 있거든요.”차설아와 성도윤의 피를 뽑은 뒤, 의사는 곧바로 수술실로 들어갔고 송지아는 한고비를 넘겼다. 그리고 일반 병실로 옮겨져 안정을 취했다.“도윤 씨, 괜찮아요?”“당신 괜찮아?”피를 뽑고 나온 차설아와 성도윤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아까 말했듯이 난 조혈 기능이 강해서 괜찮아.”성도윤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자 차설아는 겨우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어머,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 피를 보고 쓰러진 것 같던데요?”“그... 그건 눈 감고 있었던 거야.”“아, 눈을 감고 있었다고요? 아무튼 피를 보고 쓰러지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니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어요. 언제 또 쓰러질지 모르잖아요.”차설아는 진심으로 성도윤을 걱정하고 있었다.“당신 잊었나 본데, 우리 둘은 원수지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성도윤의 차설아의 말에 감동했으면서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돌렸다.“원수지간이라도 휴전할 때는 서로를 돕고 걱정해 주는 거예요. 다시 회복된 후에 싸우자고요.”차설아가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말했다.“헌혈했으니 몸보신하러 갈까요?”“좋은 생각이야.”성도윤은 미소를 지었다. 성대 그룹과 변강섭이 협력할 때 금변시에 온 적이 있었기에 지역 대표 요리를 잘하는 가게를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고급 레스토랑과 정겨운 길거리 음식이 모두 있는
“요즘 신장 하나에 값을 얼마나 많이 쳐주는지 몰라요?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 와도 금변시에서 한 번쯤은 협박당하거나 실종된다던데, 당신이 이곳 사람들이랑 짜고 쳤을 수도 있잖아요.”차설아는 표정이 점점 굳어졌고 선뜻 앞으로 가지 못했다.“당신 말도 맞아. 이곳 치안이 좋지 않으니 신장을 위해서라도 내 손 꼭 잡아.”성도윤은 차설아의 손을 꽉 잡았다. 처음 잡는 손이지만 이 작은 손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성도윤은 이 설렘을 위해 차설아와 가까워지려고 했을 것이다.“흥, 이러면 넘어갈 줄 알아요?”차설아는 입을 삐죽 내밀었지만 성도윤과 더 가까이 붙어서 걸었다. 두 사람은 골목 끝에 있는 캄보디아 식당에 도착했다. 가게의 규모가 작고 허름했지만 간판은 번쩍번쩍 빛이 났고 뱀과 각종 벌레가 그려져 있어 동물원을 방불케 했다.“어서 오세요, 편한 자리에 앉으시면 돼요.”사장이 미소를 지으며 성도윤과 차설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성도윤이 들어가려 하자 차설아가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뜯어말렸다.“진짜 이 가게에서 먹으려고요? 간판에 그려진 요리는 맛없어 보이던데요.”“피를 많이 흘리거나 헌혈한 사람한테는 제격이야. 이 가게 메인 요리를 꼭 먹어야 하거든.”“메인 요리가 뭔데요?”“독거미 튀김.”“저는 일이 있어서 이만 일어나 볼게요.”차설아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성도윤한테 붙잡혔고 성도윤이 직접 주문했다.“사장님, 거미튀김이랑 돼지 간무침, 녹혈 볶음, 웅담 찜 각각 2인분씩 주세요.”“성도윤 씨, 먹을 수 있는 걸 시키세요.”“먹을 수 있으니까 주문한 거지. 걱정하지 마, 먹어도 안 죽어.”성도윤의 거만하고 차가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평범한 식당에 맛있는 걸 먹으러 온 일반인처럼 행동했다. 차설아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얼마 후, 주문한 음식이 올라왔고 그 장면은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 없었다.“아... 정말 먹을 수 있는 거 맞아요?”차설아는 검붉은색의 음식을 보니 구역질이 났다.“이게 다 메인 요리라고 할 수
성도윤은 결제한 뒤 식당을 걸어 나갔고 까만 밤하늘을 쳐다보더니 차설아를 향해 말했다.“시간이 늦었어. 오늘 밤은 여기서 쉬다 가자.”술을 연거푸 마시는 바람에 차설아는 머리가 어질했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차설아는 휘청거리면서 성도윤의 턱을 잡고는 물었다.“아가야, 밥 한 끼 갖고 누나가 넘어갈 줄 알았어?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내가 모를 줄 알아?”성도윤은 어이가 없었다. 이때 차설아가 트림하고는 말했다.“괜찮아, 이득을 볼 사람은 나일 수도 있으니까. 아가야, 호텔로 가자!”차설아의 말에 성도윤은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 여자는 하는 말마다 나를 놀라게 하네. 너무 적극적으로 다가오니까 놀랐잖아.’성도윤이 휘청거리는 차설아를 부축하고는 차갑게 말했다.“감히 날 이용해서 쾌락을 느끼려고? 피도 뽑았으니 오늘은 가만히 있어, 까불지 말라고!”두 사람은 시 중심의 고급 호텔로 향했고 성도윤이 카운터 직원을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스위트 룸 두 개로 해주세요.”“확실하세요?”카운터 직원은 성도윤한테 찰싹 달라붙은 차설아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녀가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데 방을 두 개 잡는 경우는 처음이었다.“네, 이 사람이랑 안 친해요.”성도윤이 턱을 쳐들고 거만하게 말했지만 차설아는 성도윤을 장난감처럼 주물럭거리면서 배시시 웃었다.“친해 보이는데요...”카운터 직원은 혼잣말하면서 빈방을 체크했고 성도윤을 향해 말했다.“손님, 죄송하지만 지금 럭셔리 스위트 룸이 하나밖에 남지 않아서...”“방이 하나밖에 없다고요?”성도윤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그 방으로 하죠.”성도윤은 고개를 숙이고는 차설아한테 말했다.“방이 하나밖에 없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같은 방을 쓰는 거야. 나도 당신이랑 같은 방 쓰기 싫어.”차설아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고 성도윤의 어깨를 잡고 잠이 든 것 같았다. 방 카드를 가진 뒤, 성도윤은 차설아를 부축한 채 겨우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누군가 멀리서
“내가 그렇게 싫어? 마주치면 치워버리고 싶을 만큼 싫냐고.”성도윤은 침대에 누워 평온한 표정으로 차설아를 쳐다보며 물었다.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원한이 있는 것 같았고 차설아와 차성철이 성도윤을 죽이기 위해 판을 짠 적도 있지만 성도윤은 차설아를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었다.저도 모르게 시선이 차설아한테로 향했고 차설아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변강섭과의 협력 관계를 통해 말 한마디면 차설아를 구해낼 수 있었지만 성도윤은 직접 금변시로 왔다. 성도윤은 차설아를 만나기 위해 먼 곳까지 갈 정도로 애절한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난 내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 싶어. 당신이 도와줄 수 있어? 기억을 되찾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말해줘.”“알아, 난 똑똑하니까...”“어떻게 하면 되는데?”“예를 들면...”차설아는 눈을 깜빡이더니 성도윤한테 귓속말하려고 몸을 숙였다. 성도윤은 바짝 긴장했지만 기다림 끝에 들려온 것은 차설아의 숨소리였다.“하!”성도윤은 차설아가 그대로 자버리는 바람에 화가 솟구쳐 올랐고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당장 차설아를 흔들어 깨워서 따져 묻고 싶었지만 변강섭을 상대하고 곧바로 헌혈까지 한 여자를 차마 깨우지 못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성도윤은 차설아에게 베푼 선심이 어떤 ‘보답’으로 돌아올지 몰랐다.술에 취한 차설아는 잠버릇이 유난히 심했는데, 침대에서 뒹굴다가 성도윤을 베개처럼 안기도 하고 성도윤의 팔을 베고 자기도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발로 찼고 주먹질을 해대서 성도윤은 차설아가 일부러 연기하는 줄 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설아가 뒤에서 성도윤을 꼭 끌어안고 등에 얼굴을 갖다 댔다.“날 못 자게 할 셈이야?”성도윤이 뒤돌아 따져 물으려 했지만 귀여운 아기처럼 잠이 든 차설아의 얼굴을 보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성도윤이 한숨을 내쉬고는 조심스럽게 팔을 뻗어 차설아를 품에 안았다.“내 팔 베고 누워, 착하지.”차설아는 뒤척이더니 성도윤을 더 꽉 끌어안았다. 따뜻하고 커다란 물체를 안고 있어서 안전
성도윤은 샤워하다가 밖에서 누군가 웅얼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때 차설아가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욕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이게 뭐 하는 짓이야!”성도윤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손이 덜덜 떨렸다.“나 씻을 거야.”차설아는 굳은 얼굴로 샤워기 쪽으로 걸어갔고 성도윤과 마주 보았다.“너무 더워서 씻으려고.”“큼!”샤워기가 뿜어낸 물에 차설아의 머리카락이 조금씩 젖어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옷과 바지가 흠뻑 젖으며 살갗에 달라붙었다. 차설아의 몸매가 젖은 옷 아래로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성도윤은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시원해!”차설아는 눈을 감고 물로 온몸을 적셨고 시원한 물줄기를 만끽하며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설마 이것도 계획의 일부인가?”성도윤은 완벽한 몸매의 소유자로서 정교하게 깎아진 조각상 같았지만 차설아한테 알몸을 보여주는 것이 어쩐지 난처했다. 차설아는 그런 마음을 모르는지 성도윤과 마주 섰음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물로 몸을 식히는 것에 집중했다. 부끄러워하던 성도윤은 차설아가 자신의 몸에 흥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마음이 편안해졌다.“너무 시원해. 아, 이거지!”차설아는 성도윤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고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면서 아이처럼 순진한 미소를 지었다. 성도윤은 차설아를 붙잡고 따져 묻기 시작했다.“날 유혹하려고 일부러 관심 없는 척하는 거 다 알아. 연기도 이쯤에서 그만하지 그래?”성도윤은 만족스러운 답을 들으면 어쩐지 오늘 밤은 차설아에게 따뜻한 품을 내어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곧 이상함을 감지하게 되었다. 차설아는 샤워하면서 횡설수설했고 성도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행동했다. 성도윤은 차설아에게 몽유병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부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있었다. 몽유한 사람을 깨우면 깜짝 놀라서 죽을 수도 있다는 소문 때문에 두려웠던 것이다. 만약 차설아가 정신을 차렸을 때, 알몸인 성도윤과 같이 씻고 있었다는 사
성도윤은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눈앞의 여자를 덮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차설아가 실컷 만지고 욕실을 나가면 이 욕구도 사라질 거라고 믿었다.“우리 귀염둥이, 참 착해.”차설아는 미소를 지으며 성도윤의 등을 토닥였다. 위기를 넘긴 줄 알았던 성도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방심하던 찰나, 차설아가 두 손으로 성도윤의 아랫도리를 움켜쥐었다. 성도윤은 깜짝 놀라서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내 목숨줄을 아무렇게나 잡다니!’“귀염둥이, 나랑 같이 자자. 이제는 시원해서 잘 수 있을 것 같아.”차설아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성도윤을 향해 말했다.“같이 자는 건 맞는데, 이 손부터 좀 놓으면 안 될까? 당신이 이렇게 움켜쥐면 내가...”“나랑 같이 자는 거다!”차설아가 두 손에 힘을 주고 잡아당기는 모습은 18세 관람가에서도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성도윤은 그대로 욕실에서 끌려 나가게 되었다.불행 중 다행인 것은 욕실을 나가자마자 차설아는 침대에 쓰러져 잠에 들었다. “하!”조용히 잠든 차설아를 지켜보던 성도윤은 한숨을 내쉬었고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몇분 안 되는 시간이 몇백 년같이 느껴질 만큼 고통스러워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다음날.차설아는 밀려오는 두통에 눈을 떴고 몸에 걸친 얇은 잠옷과 곁에서 곤히 잠든 성도윤을 번갈아 보더니 소리를 질렀다.“아!”차설아는 성도윤을 흔들어 깨웠다.“당신 도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죠? 이상한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이고 술을 권한 건 이런 짓을 벌이려고 그런 건가요?”성도윤은 차설아 때문에 온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다가 잠에든지 한 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눈 밑에 짙은 다크서클이 자리 잡았다. 성도윤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그건 내가 할 말인 것 같은데? 날 유혹한 건 당신이야.”“내가 유혹했다고요?”차설아는 씩씩대며 팔짱을 끼고 말했다.“제 말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요. 내가 오라고 손가락질만 해도 당신이 날 덮칠 텐데, 굳이 왜 유혹하겠어요? 당신은 말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