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장 하나에 값을 얼마나 많이 쳐주는지 몰라요?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 와도 금변시에서 한 번쯤은 협박당하거나 실종된다던데, 당신이 이곳 사람들이랑 짜고 쳤을 수도 있잖아요.”차설아는 표정이 점점 굳어졌고 선뜻 앞으로 가지 못했다.“당신 말도 맞아. 이곳 치안이 좋지 않으니 신장을 위해서라도 내 손 꼭 잡아.”성도윤은 차설아의 손을 꽉 잡았다. 처음 잡는 손이지만 이 작은 손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성도윤은 이 설렘을 위해 차설아와 가까워지려고 했을 것이다.“흥, 이러면 넘어갈 줄 알아요?”차설아는 입을 삐죽 내밀었지만 성도윤과 더 가까이 붙어서 걸었다. 두 사람은 골목 끝에 있는 캄보디아 식당에 도착했다. 가게의 규모가 작고 허름했지만 간판은 번쩍번쩍 빛이 났고 뱀과 각종 벌레가 그려져 있어 동물원을 방불케 했다.“어서 오세요, 편한 자리에 앉으시면 돼요.”사장이 미소를 지으며 성도윤과 차설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성도윤이 들어가려 하자 차설아가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뜯어말렸다.“진짜 이 가게에서 먹으려고요? 간판에 그려진 요리는 맛없어 보이던데요.”“피를 많이 흘리거나 헌혈한 사람한테는 제격이야. 이 가게 메인 요리를 꼭 먹어야 하거든.”“메인 요리가 뭔데요?”“독거미 튀김.”“저는 일이 있어서 이만 일어나 볼게요.”차설아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성도윤한테 붙잡혔고 성도윤이 직접 주문했다.“사장님, 거미튀김이랑 돼지 간무침, 녹혈 볶음, 웅담 찜 각각 2인분씩 주세요.”“성도윤 씨, 먹을 수 있는 걸 시키세요.”“먹을 수 있으니까 주문한 거지. 걱정하지 마, 먹어도 안 죽어.”성도윤의 거만하고 차가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평범한 식당에 맛있는 걸 먹으러 온 일반인처럼 행동했다. 차설아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얼마 후, 주문한 음식이 올라왔고 그 장면은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 없었다.“아... 정말 먹을 수 있는 거 맞아요?”차설아는 검붉은색의 음식을 보니 구역질이 났다.“이게 다 메인 요리라고 할 수
성도윤은 결제한 뒤 식당을 걸어 나갔고 까만 밤하늘을 쳐다보더니 차설아를 향해 말했다.“시간이 늦었어. 오늘 밤은 여기서 쉬다 가자.”술을 연거푸 마시는 바람에 차설아는 머리가 어질했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차설아는 휘청거리면서 성도윤의 턱을 잡고는 물었다.“아가야, 밥 한 끼 갖고 누나가 넘어갈 줄 알았어?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내가 모를 줄 알아?”성도윤은 어이가 없었다. 이때 차설아가 트림하고는 말했다.“괜찮아, 이득을 볼 사람은 나일 수도 있으니까. 아가야, 호텔로 가자!”차설아의 말에 성도윤은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 여자는 하는 말마다 나를 놀라게 하네. 너무 적극적으로 다가오니까 놀랐잖아.’성도윤이 휘청거리는 차설아를 부축하고는 차갑게 말했다.“감히 날 이용해서 쾌락을 느끼려고? 피도 뽑았으니 오늘은 가만히 있어, 까불지 말라고!”두 사람은 시 중심의 고급 호텔로 향했고 성도윤이 카운터 직원을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스위트 룸 두 개로 해주세요.”“확실하세요?”카운터 직원은 성도윤한테 찰싹 달라붙은 차설아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녀가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데 방을 두 개 잡는 경우는 처음이었다.“네, 이 사람이랑 안 친해요.”성도윤이 턱을 쳐들고 거만하게 말했지만 차설아는 성도윤을 장난감처럼 주물럭거리면서 배시시 웃었다.“친해 보이는데요...”카운터 직원은 혼잣말하면서 빈방을 체크했고 성도윤을 향해 말했다.“손님, 죄송하지만 지금 럭셔리 스위트 룸이 하나밖에 남지 않아서...”“방이 하나밖에 없다고요?”성도윤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그 방으로 하죠.”성도윤은 고개를 숙이고는 차설아한테 말했다.“방이 하나밖에 없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같은 방을 쓰는 거야. 나도 당신이랑 같은 방 쓰기 싫어.”차설아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고 성도윤의 어깨를 잡고 잠이 든 것 같았다. 방 카드를 가진 뒤, 성도윤은 차설아를 부축한 채 겨우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누군가 멀리서
“내가 그렇게 싫어? 마주치면 치워버리고 싶을 만큼 싫냐고.”성도윤은 침대에 누워 평온한 표정으로 차설아를 쳐다보며 물었다.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원한이 있는 것 같았고 차설아와 차성철이 성도윤을 죽이기 위해 판을 짠 적도 있지만 성도윤은 차설아를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었다.저도 모르게 시선이 차설아한테로 향했고 차설아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변강섭과의 협력 관계를 통해 말 한마디면 차설아를 구해낼 수 있었지만 성도윤은 직접 금변시로 왔다. 성도윤은 차설아를 만나기 위해 먼 곳까지 갈 정도로 애절한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난 내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 싶어. 당신이 도와줄 수 있어? 기억을 되찾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말해줘.”“알아, 난 똑똑하니까...”“어떻게 하면 되는데?”“예를 들면...”차설아는 눈을 깜빡이더니 성도윤한테 귓속말하려고 몸을 숙였다. 성도윤은 바짝 긴장했지만 기다림 끝에 들려온 것은 차설아의 숨소리였다.“하!”성도윤은 차설아가 그대로 자버리는 바람에 화가 솟구쳐 올랐고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당장 차설아를 흔들어 깨워서 따져 묻고 싶었지만 변강섭을 상대하고 곧바로 헌혈까지 한 여자를 차마 깨우지 못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성도윤은 차설아에게 베푼 선심이 어떤 ‘보답’으로 돌아올지 몰랐다.술에 취한 차설아는 잠버릇이 유난히 심했는데, 침대에서 뒹굴다가 성도윤을 베개처럼 안기도 하고 성도윤의 팔을 베고 자기도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발로 찼고 주먹질을 해대서 성도윤은 차설아가 일부러 연기하는 줄 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설아가 뒤에서 성도윤을 꼭 끌어안고 등에 얼굴을 갖다 댔다.“날 못 자게 할 셈이야?”성도윤이 뒤돌아 따져 물으려 했지만 귀여운 아기처럼 잠이 든 차설아의 얼굴을 보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성도윤이 한숨을 내쉬고는 조심스럽게 팔을 뻗어 차설아를 품에 안았다.“내 팔 베고 누워, 착하지.”차설아는 뒤척이더니 성도윤을 더 꽉 끌어안았다. 따뜻하고 커다란 물체를 안고 있어서 안전
성도윤은 샤워하다가 밖에서 누군가 웅얼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때 차설아가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욕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이게 뭐 하는 짓이야!”성도윤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손이 덜덜 떨렸다.“나 씻을 거야.”차설아는 굳은 얼굴로 샤워기 쪽으로 걸어갔고 성도윤과 마주 보았다.“너무 더워서 씻으려고.”“큼!”샤워기가 뿜어낸 물에 차설아의 머리카락이 조금씩 젖어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옷과 바지가 흠뻑 젖으며 살갗에 달라붙었다. 차설아의 몸매가 젖은 옷 아래로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성도윤은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시원해!”차설아는 눈을 감고 물로 온몸을 적셨고 시원한 물줄기를 만끽하며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설마 이것도 계획의 일부인가?”성도윤은 완벽한 몸매의 소유자로서 정교하게 깎아진 조각상 같았지만 차설아한테 알몸을 보여주는 것이 어쩐지 난처했다. 차설아는 그런 마음을 모르는지 성도윤과 마주 섰음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물로 몸을 식히는 것에 집중했다. 부끄러워하던 성도윤은 차설아가 자신의 몸에 흥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마음이 편안해졌다.“너무 시원해. 아, 이거지!”차설아는 성도윤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고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면서 아이처럼 순진한 미소를 지었다. 성도윤은 차설아를 붙잡고 따져 묻기 시작했다.“날 유혹하려고 일부러 관심 없는 척하는 거 다 알아. 연기도 이쯤에서 그만하지 그래?”성도윤은 만족스러운 답을 들으면 어쩐지 오늘 밤은 차설아에게 따뜻한 품을 내어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곧 이상함을 감지하게 되었다. 차설아는 샤워하면서 횡설수설했고 성도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행동했다. 성도윤은 차설아에게 몽유병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부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있었다. 몽유한 사람을 깨우면 깜짝 놀라서 죽을 수도 있다는 소문 때문에 두려웠던 것이다. 만약 차설아가 정신을 차렸을 때, 알몸인 성도윤과 같이 씻고 있었다는 사
성도윤은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눈앞의 여자를 덮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차설아가 실컷 만지고 욕실을 나가면 이 욕구도 사라질 거라고 믿었다.“우리 귀염둥이, 참 착해.”차설아는 미소를 지으며 성도윤의 등을 토닥였다. 위기를 넘긴 줄 알았던 성도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방심하던 찰나, 차설아가 두 손으로 성도윤의 아랫도리를 움켜쥐었다. 성도윤은 깜짝 놀라서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내 목숨줄을 아무렇게나 잡다니!’“귀염둥이, 나랑 같이 자자. 이제는 시원해서 잘 수 있을 것 같아.”차설아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성도윤을 향해 말했다.“같이 자는 건 맞는데, 이 손부터 좀 놓으면 안 될까? 당신이 이렇게 움켜쥐면 내가...”“나랑 같이 자는 거다!”차설아가 두 손에 힘을 주고 잡아당기는 모습은 18세 관람가에서도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성도윤은 그대로 욕실에서 끌려 나가게 되었다.불행 중 다행인 것은 욕실을 나가자마자 차설아는 침대에 쓰러져 잠에 들었다. “하!”조용히 잠든 차설아를 지켜보던 성도윤은 한숨을 내쉬었고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몇분 안 되는 시간이 몇백 년같이 느껴질 만큼 고통스러워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다음날.차설아는 밀려오는 두통에 눈을 떴고 몸에 걸친 얇은 잠옷과 곁에서 곤히 잠든 성도윤을 번갈아 보더니 소리를 질렀다.“아!”차설아는 성도윤을 흔들어 깨웠다.“당신 도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죠? 이상한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이고 술을 권한 건 이런 짓을 벌이려고 그런 건가요?”성도윤은 차설아 때문에 온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다가 잠에든지 한 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눈 밑에 짙은 다크서클이 자리 잡았다. 성도윤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그건 내가 할 말인 것 같은데? 날 유혹한 건 당신이야.”“내가 유혹했다고요?”차설아는 씩씩대며 팔짱을 끼고 말했다.“제 말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요. 내가 오라고 손가락질만 해도 당신이 날 덮칠 텐데, 굳이 왜 유혹하겠어요? 당신은 말 잘
“테크닉이 뭐?”성도윤은 차설아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채고는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차설아는 살고 싶은 마음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뭐가 아닌데.”성도윤은 천천히 차설아 곁으로 다가갔고 두 팔로 상체를 지탱하며 차설아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내 테크닉이 별로라는 뜻이야?”“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본인의 실력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모양이네요.”차설아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진지하게 말했다.“내 테크닉이 별로인지 아닌지는 곧 알게 될 거야.”성도윤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차설아의 턱을 움켜쥐고 키스를 퍼부었고 커다란 손으로 차설아의 여린 몸을 탐색했다.“웁!”차설아는 성도윤이 당돌하게 덮칠 줄 몰랐기에 당황해서 버둥거리기만 했다.‘왜 갑자기 성도윤이랑 이러고 있는지 누가 좀 알려줘... 안돼, 이번만큼은 절대 안 돼. 차설아,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과거로 돌아가는 거나 마찬가지야. 다시 엮이지 마.’“싫어요!”차설아는 있는 힘을 다해 성도윤을 침대에서 밀어버렸고 이불로 몸을 감싸면서 말했다.“성 대표님, 이러지 마세요. 곧 결혼한다는 분이 바람났다는 구설수에 오르지 않게 조심하셔야죠.”바닥에 떨어진 성도윤은 씩 웃더니 차갑게 말했다.“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당신이 선을 넘으면서 날 유혹한 거잖아. 난 정상적인 남자로서 반응할 수밖에 없었어.”“거짓말하지 마세요. 방귀 낀 놈이 성낸다더니, 내가 언제 당신을 유혹했다고 그래요? 나한테 술을 권한 것도, 이 호텔까지 데려온 것도 전부 당신이면서... 같은 침대에서 자고 눈 뜨자마자 입부터 맞춘 건 당신이잖아요!”“날 안 믿어?”성도윤은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휴대폰을 꺼내 어젯밤에 찍은 영상을 틀었다.“누가 누굴 유혹했는지, 당신 두 눈으로 직접 봐.”“이게 뭐예요?”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영상을 보았다. 어젯밤에 욕실로 뛰어가서 성도윤과 함께 씻다가 성도윤의
“당신한테 몽유병이 있다고?”“어릴 때 잠깐 있었는데, 이젠 괜찮아졌어요.”차설아는 어린 시절 몽유병으로 부모님을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그녀가 몽유병 증세를 보일 때마다 가족들은 혹시라도 그녀에게 방해라도 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숨도 제대로 못 내쉬었다.차설아가 옛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제 몽유병 고치겠다고 부모님께서 온갖 방법을 다 써보셨죠. 병원도 가봤고 한의원까지 가봤는데 결국엔... 엄마가 어디서 들은 민간요법으로 나았어요.”“민간요법?”“네, 뭐냐면요. ‘혼을 부른다’라고 하는 건데요, 한 도인을 찾아가서 우리 집의 동서남북으로 혼을 불러들였대요... 제가 기가 너무 약해서 악한 기운이 자꾸 침범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그건 미신이잖아.”성도윤이 비웃으며 말했다.“맞아요, 미신이죠.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몽유병이 깔끔하게 나았더라고요. 하지만 요즘 들어 몽유병이 다시 도진 것 같아요. 설마... 악한 기분이 또 침범한 걸까요?”“악한 기운 소리 하네!”성도윤은 걱정되는 마음에 순간적으로 차설아를 노려보며 냉정하게 말했다.“미신보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걸 믿어야지. 온종일 이렇게나 밝게 지내고 있는데, 감히 누가 널 침범한다는 거야?”“맞아요!”성도윤의 말에 차설아가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성도윤의 눈빛 속에 담긴 걱정을 차설아도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마음속 깊은 속에서부터 피어오른 달콤한 감정이 차설아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자시의 그 감정을 잘 숨겨야만 했다.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그런데, 네가 밤새 부르던 그 귀염둥이는 누구야?”“아...”그 질문에 차설아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우리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예요. 저랑 엄청 친했었는데, 잃어버렸어요.”그 말에 성도윤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어두워지더니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러니까, 어젯밤에 넌 날 강아지로 생각했다는 거야?”“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급히 자신을 위한 변명을 하던 차설아는 몸을
“도윤 씨가 설득해보겠다고요?”차설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성도윤의 앞을 가로막았다.“제발, 도와주지 못할 거라면 방해는 하지 마세요. 도윤 씨가 이 모든 비극의 원흉인데, 지금 들어가봤자 지아 씨 자극만 하는 거라고요. 저는 그런 위험까지 감수할 자신 없어요...”“아니, 당신이 틀렸어. 그 ‘자정의 살인마’가 진짜 원흉이야.”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마친 성도윤은 차설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실로 걸어 들어갔다.“잠깐만요, 도윤 씨...”차설아는 뒤늦게 병실로 향하는 성도윤을 뒤쫓아가려고 했지만 간호사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죄송하지만, 지금 환자분께서는 설아 씨에게 강력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만약 설아 씨도 안으로 들어가신다면 환자분 감정만 더 불안정해질 겁니다.”“그럴 리가요. 도윤 씨도 들어갔는데 제가 왜 못 들어가요?”간호사의 말에 큰 충격을 받은 차설아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성도윤이 병실 안으로 들어간 지 5~6분이나 지났지만 안에서는 여전히 송지아가 발작을 일으킨다거나 같은 소리가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그렇게 몇 분이 더 지나자 성도윤은 두 손을 호주머니에 꽂은 채 우아하고도 당당한 발걸음으로 병실을 빠져나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왜 나온 거예요?”병실 안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던 차설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지금 안에서 뭐 하고 있는 거예요? 왜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거죠?”“어느 정도 진정됐어. 지금은 간호사가 관을 삽입하는 중이고.”여유로운 표정의 성도윤이 여유롭게 대답했다.“뭐라고요? 진정이 됐다니요? 도윤 씨... 도윤 씨 대체 지아 씨한테 무슨 말을 하고 나온 거예요?”“별말 안 했어. 그냥 지금 몸조리 잘하고 빨리 나아야 복수든 뭐든 할 수 있다고 했을 뿐인데.”“아니, 어떻게 그런 막말을 할 수가 있어요? 변강섭한테서 얼마나 힘들게 목숨을 건졌는데, 벌써 이렇게 복수를 부추기다니요. 이건 죽었다 깨어난 사람 다시 불구덩이에 밀어 넣는 거랑 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