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생활환경의 변화라 할 수 있다.반년 동안 살았던 오두막은 그의 껍데기였고 그는 껍데기 속에 숨어 있어야만 안전하다고 느꼈다.“환자분, 진정하세요. 허리를 다쳤으니 한동안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안심하세요, 저희가 잘 돌봐 드리겠습니다.”간호사가 참을성 있게 그를 달래고 있었다.하지만 성진은 오히려 조울증 환자처럼 갑자기 손을 휘둘렀다. “꺼져, 난 당신들의 보살핌이 필요 없어, 모두 꺼져!”“가족은, 내 가족은 어디 있어? 난 내 가족만 있으면 돼!”남자의 목소리에는 버림받은 어린아이 같았는데 자신이 버림받았을까 봐 초조함과 절망감이 배어 있었다.간호사는 좀 난처했다. “죄송하지만 가족분... 환자분 가족분은 저희도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제가 왔을 때 이 병실에는 환자분 혼자였어요.”성진의 표정은 잿빛으로 변했고 그는 큰소리로 거의 빌듯이 간호사에게 말했다.“내가 돈을 줄게요. 그러니 날 다시 데리고 가줘요. 나는 당신에게 많은 돈을 줄 수 있어요. 내가 집에 없으면 설아가 걱정할 거예요. 내가 부탁할게요.”“정말 안돼요, 가족분의 번호가 있으세요? 제가 그분한테 전화 한 통 해드릴까요? ”“그게, 설아의 번호가...”성진은 차설아의 번호를 말하려다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 얇은 입술을 오므리고 잠자코 있었다.“가족분의 번호가 어떻게 되세요?”“됐어요, 그럴 필요 없어요.”성진은 갑자기 조급함에서 평온함으로 변했다.만약 그녀가 정말 그를 버리고 싶다면 그녀를 돌아오게 해도 의미가 없었다.반년 동안 보살펴 준 덕분에 그는 이미 본전을 뽑았다고 생각했다, 설사 그녀가 정말 가버렸다 해도 그는 그녀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차설아는 크고 작은 가방을 들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성진이 잠에서 깨어있는 것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깨어났구나, 놀랐잖아.”성진은 축 늘어져 있다가 갑자기 다시 살아났고 잘생긴 얼굴은 즉시 생기로 가득 찼다, “당신, 안
성진은 마침내 잠이 들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를 머금었는데 안심하고 달콤한 표정이었다.그는 어린아이처럼 차설아를 그의 삶의 전부로 삼았다.차설아가 있을 때는 하늘도 맑고 바람도 부드럽고 공기도 달았다.하지만 차설아가 사라지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그는 살아갈 의욕조차 없었다.그는 자신이 병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점점 중독되어 빠져나갈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차설아는 잠든 남자를 말없이 바라보며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힘든가?당연히 힘들지, 어떻게 안 힘들 수가 있겠는가.몸만 힘든 게 아니라 마음도 피곤했다.성진은 원래 미치광이여서 일을 하는 것이 매우 극단적이었는데 예전에도 너 죽고 나 죽자는 가치관을 내세워 항상 질서정연한 국면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지금은 착한 아이가 되어버렸는데 더 이상 날뛰지 않고 미친 듯이 비판하지도 않고 오직 그녀만을 하늘로 여기는 것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하지만 성진이 그럴수록 차설아의 심리적 압박은 더욱 커졌다.어쩐지 그가 너무 불쌍하고 그런 억압 속에 있는 소심함이 안쓰러웠다.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녀가 초래한 것이다.그러다 낮에 성도윤을 우연히 만난 장면이 떠올라 괜히 짜증이 났다.왜 분명히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이 그녀의 평온한 삶에 침입하여 그녀의 평온한 마음을 어지럽히는가 말이다.결국은 그녀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을 뿐이다... 정말 가증스럽다.차설아는 병실을 나와 어두컴컴한 복도 입구에 이르러 담배에 불을 붙였다.이따금 피어오르는 불은 엷은 연기와 함께 어둠 속에서 사라졌다.니코틴 냄새가 그녀의 뇌를 좀 풀어주었다.지난 반년 동안 심리적 압박감이 컸는지 그녀는 담배를 배우기 시작했다.그녀는 이것이 좋은 습관이 아니라 그녀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참을 수 없었다.있어서는 안 되는 감정처럼 일단 생기면 재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그러다 간호사 두 명이 와서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이고 잡담을 하기
“오, 그러네. 제인 이네? 이제야 제대로 보인다.”두 간호사 모두 차설아한테 유난히 다정하고 따뜻했다.병원 전체에서 차설아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차설아는 반년 동안 자주 성진을 데리고 병원에 왔기 때문에 모두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차설아는 그들과 또 몇 마디 인사말을 주고받더니 이번에는 서은아의 수술실이 어디인지는 물론이고 서은아와 성도윤이 어느 호텔에 묵고 있는지까지 알게 됐다.“얘기하고 있어요. 전 진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러 갈게요.”차설아는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두 간호사에게 인사를 한 후 복도를 떠났다.그녀는 원래 성진이 있는 층으로 가려고 했는데 귀신같이 서은아의 수술이 있는 층으로 오게 되었다.복도 모퉁이에 몸을 숨긴 채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자 수술실 앞을 지키고 있는 성도윤이 눈에 들어왔다.낮에 우연히 만났을 때의 캐주얼한 흰 셔츠에는 얼룩덜룩한 핏자국이 물들었고 그의 손에도 핏자국이 남아 있었는데 씻을 틈이 없었던 것 같았다.그가 정말 긴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표정도 어두웠다.따지고 보면 그가 서은아를 병원에 데려온 후 지금까지 대여섯 시간이 흘렀다.그 뜻인즉슨 대여섯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는 얘기다...이 녀석도 겨우 나은지 반년밖에 안 됐는데 또 몸을 망치기 시작하다니... 그녀는 그런 그를 초조하게 보고 있었다.차설아는 입술을 깨물며 잠시 생각하더니 아래층으로 내려가 그녀가 자주 찾는 근처 중식당으로 달려가 해물 완탕 한 그릇을 포장했다.그녀의 기억이 맞다면 중국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그는 완탕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데 특히 해산물 냄새를 맡으면 식욕이 돋울 것이다.수술실 문 앞에 성도윤은 가슴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시간은 1분 1초가 지났고 안에는 여전히 인기척이 없었다.“다 내 탓이야!”만약 그가 서은아에게 그 컵을 선물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 컵을 주우러 가기 위해서 차에 치이지 않았을 것이다.달콤한 신혼여행을 위해 두 사람은 가장 낭만적인 도시를 골라 세기의 결
복도 모퉁이에서 차설아는 혼돈을 다 먹어치운 성도윤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그래, 사람은 밥심인데 아무리 애타는 일이라도 굶으면 안 되는 거 아니겠는가그렇게 또 몇 시간이 흐른 뒤 드디어 수술실 문이 열렸다.의사가 걸어 나오자 성도윤이 쏜살같이 의사를 맞았다.“안심하세요, 수술은 잘 됐습니다. 다만 허리와 다리에 심한 상처를 입어서 한동안 누워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의사가 성도윤을 향해 말을 이었다.“그동안은 가족들이 잘 돌봐줘야 할 겁니다.”“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순간적으로 성도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마음속의 큰 돌멩이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구석의 차설아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 말았다.서은아도 허리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공교롭게 말이야...더욱 공교로운 일을 차설아는 모르고 있었다. 바로 정형외과 병실이 모두 같은 층에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 뜻은 성진과 서은아의 병실이 같은 층에 있다는 거다.그러면 그녀와 성도윤은 조만간 곧 만나게 될 것이다.차설아는 이런 난처한 상황을 마주 하고 싶지 않아서 가능한 한 일찍 나가고 늦게 돌아오는 것을 선택했고 항상 성진과 붙어있었는데 부득이하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모두 간호사에게 도움을 청했다.그 노력으로 2, 3일이 지나도록 그녀는 성도윤과 마주치지 않았다.그러던 어느 날 서은아의 병실.성도윤은 여자에게 사과를 깎아주고 있었고 서은아는 온몸이 아파 죽을 것 같았지만 마음만은 달콤했다.간호사가 와서 서은아의 링거를 바꿔주었다.간호사는 성도윤이 서은아에게 사과를 먹여주는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서은아 님한테 정말 지극정성이신 것 같아요. 동양인들의 사랑은 모두 이렇게 아름답고 따뜻한가 봐요.”“사랑은 다 따뜻하고 달콤한 것 아녜요? 사랑에 동서양을 나누나요?”서은아가 웃으며 대답했다.“저도 원래 동양과 서양을 구분하지 않았는데 제가 최근에 만난 또 다른 커플도 동양인이어서요, 아마도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든 것 같네요...”“저희 마을에는 모범커플이라고 할 수 있
“성도윤 님, 여기 완탕이요. 뜨거울 때 드세요.”간호사가 뜨끈뜨끈한 완탕을 식탁에 놓으며 말했다.“감사합니다.”성도윤은 고개를 끄덕였고 입에는 이미 군침이 돌았다.습관이란 게 참 무서운 것인 것 같다. 얼마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이 완탕이 기다려지니 말이다.서은아는 간호사를 힐끗 보더니 갑자기 위기감이 몰려왔다.“어디서 난 완탕이죠? 이건 동양인들이 즐겨 먹는 거잖아요? 저도 한 그릇 주시면 안 돼요?”“그건 안 됩니다.”간호사가 단칼에 거절했다.이 완탕은 제인이 특별히 성도윤한테 사다준 것인데 한 그릇 더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왜 안 되죠? 혹시 제 약혼자를 위해 만든 거예요? 그렇다면 정말 오지랖도 넓으신 거 아닌가요?”“그... 저...”간호사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성도윤이 입을 열었다.“당신이 아직 회복기라 해산물 못 먹는대.”“네, 맞아요. 상처가 아직 다 낫지 않아 해산물을 드시면 염증이 심해질 수 있어요.”간호사는 한숨 돌렸다.“안 먹어도 되는데... 이 완탕이 어디서 났는지는 알려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서은아는 여전히 포기를 몰랐다.지금 성도윤의 곁에 나타난 모든 여자는 다 그녀의 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녀는 반드시 정신을 차려야 했다.“저희 구내식당에서 만든 거예요. 동양인들을 위해 만든 거죠.”간호사는 어색하게 대답했는데 거짓말에 능숙하지 않아 보였다.“진짜요?”“그럼요.”“그럼 지금 해물 완탕 하나만 해줘요. 먹지 않고 냄새만 맡으면 되잖아요.”“그, 그게...”성도윤은 서은아가 간호사를 난감하게 만드는 것을 보고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농담 그만해. 요즘 당신 보살피느라 고생 많이 하셨어.”그러고는 간호사를 향해 말했다.“이만 나가봐요, 여긴 내가 있으니까.”간호사가 병실을 나간 후 서은아는 화가 난 듯 고개를 돌렸다.“왜 그래?”성도윤이 침착하게 그녀를 달랬다.“내가 완탕 한번 먹었다고 화낼 거야? 당신이 내가
그런 의심을 품고 저녁 식사 때 성도윤은 병원 식당을 찾았다.“해물 완탕 하나 주세요.”그는 직원을 향해 말했다.“?”직원들은 의문에 가득 차 있었다.“해물 완탕 없나요?”성도윤은 영어로 다시 한번 강조했다.“네, 없어요.”직원들은 바보를 보는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며 메뉴판을 가리켰다. “모든 음식은 다 여기 있어요.”성도윤은 재빨리 메뉴를 훑어보았고 역시 완탕은커녕 동양 음식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그럼 그 어린 간호사가 거짓말을 하는 건가?성도윤은 병실로 돌아와 매일 완탕을 가져다주는 간호사를 찾았다.“저희 얘기 좀 해야 할 것 같은데요?”간호사는 약간 긴장했는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얘기요?”“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알잖아요.”“몰라요, 전 아무것도 몰라요.”어린 간호사는 고개를 저으며 모르는 척을 계속했다.그녀는 당연히 성도윤이 그녀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었고 남자는 분명 그녀에게 완탕을 누가 보냈는지 묻고 싶어 할 것이다.다만 그녀는 일찍이 제인에게 이 비밀을 꼭 지키겠다고 했고 또 하느님에게 맹세했기에 고백할 수 없었다.“이 완탕이 어디서 났는지 솔직히 말해요. 그럼 내가 섭섭하지 않게 줄게요.”성도윤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장사꾼처럼 여유를 부렸다.“안 돼요!”어린 간호사는 계속 고개를 저었다. “전 당신에게 말할 수 없다고 하느님께 맹세했어요.”“괜찮아요. 하느님도 다 이해하실 거예요.”“죄송합니다, 더 묻지 마세요. 저는 말하지 않을 겁니다.”어린 간호사는 가슴에 십자를 그은 후 쏜살같이 달아났다.그녀는 복도에서 연기를 삼키고 있는 차설아를 찾았고 다급하게 말했다. “드디어 찾았네요. 죄송하지만 제인 당신이 부탁했던 일 더는 도울 수 없을 것 같아요.”“왜요?”차설아는 침착하게 담배 연기를 곱게 내뿜었다.“성도윤 님과 서은아 님이 이미 당신이 준 해물 완탕이라는 것을 의심하고 있어요. 특히 서은아 님은 제가 성도윤 님에게 따로 만들어 그분을 꼬시려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묵묵히 담배꽁초를 눌러 불을 껐다. 곧이어 수척해진 그녀의 모습도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성도윤은 종일 기다렸지만 그가 고대하던 해산물 만두를 기다리지 못했다.점심때가 아니었기에 그도 꾹 참았다.그렇게 저녁이 되고 야식 시간이 되었는데도 만두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무슨 일이에요? 오늘은 왜 만두가 없는 거죠?”성도윤은 서은아가 쉬고 있는 틈을 타 복도에서 회진을 돌고 있던 간호사를 가로막으며 신문이라도 할 태세였다.“그, 글쎄요...”간호사는 난처한 듯 목을 매만졌다.“식당은 더 이상 음식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성도윤 씨, 다른 음식을 드시는 건 어떤가요? 햄버거, 스테이크, 파스타 같은 음식이요.”“아뇨. 만두가 아니라면 저는 아무것도 먹지 않겠습니다.”성도윤은 그룹 회장의 신분도 아랑곳하지 않고 억지를 부리는 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렸다. 만두를 먹지 않으면 절대 그만두지 않을 태세였다.그의 말을 듣던 간호사는 어이가 없어졌다.“설마 종일 아무것도 안 드신 거예요?”“맞아요. 종일 만두만 기다리는 탓에 지금 배가 고파 가슴이 등에 닿을 기세예요.”성도윤이 대범하게 인정해버렸다.만약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면 다른 음식은 그저 적당히 배를 채울 용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끼니를 대충 때우고 싶지 않았다.“알겠어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지금 식당에 가서 물어볼게요.”간호사는 혹여나 이 고집 센 남자가 배가 고파 무슨 난동이라도 피울까 봐 잠시 그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좋아요, 기다릴게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이제 제 생사는 당신의 손에 달려 있는 겁니다.”성도윤은 농담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엄숙한 얼굴로 으름장을 놓았다.그렇게 남자가 다시 서은아가 쉬고 있는 병실로 돌아간 후에야 간호사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두 발짝 뛰어 같은 층에 있는 성진의 병실로 달려갔다.“제인, 나와 봐요. 상의할 게 있
“마감해도 한 그릇 정도는 더 만들 수 있잖아요. 사장님, 제발요. 한 번만 봐주세요.”차설아는 두 손을 모아 진심으로 사장님께 빌었다.“안 돼. 내일 오렴. 만둣국 한 그릇 안 먹는다고 죽진 않잖아?”“아니, 아니, 사장님, 이번에 안 먹으면 정말 죽을 수도 있어요... 어쨌든, 이 만둣국은 저에게 매우 중요해요. 사장님, 저 그래도 단골손님인데 사장님도 분명 저를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 없잖아요.”“아이고, 내가 못 살아 정말.”사장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차설아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다시 냄비를 꺼내 요리를 시작해야만 했다.사실 중국집 사장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 모두가 차설아를 끔찍이 잘 챙기고 있다. 심지어 총애를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첫 번째는 연약한 여자가 사지가 불편하고 눈이 먼 남자를 돌봐야 한다는 사연에 동정심을 느낀 것이다.둘째는 차설아가 성실하고 귀엽고 유능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종종 마을의 독거노인을 도와 컴퓨터 수리, 인터넷 쇼핑, 가전제품 설치 등을 해주기도 했다.중국집 사장은 밀가루 반죽을 하며 차설아와 잡담을 나누었다.“만둣국을 먹지 않으면 죽는 사람이 과연 누굴까? 설마 성진은 아니겠지? 그 아이는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성진이는 아니에요.”차설아도 덩달아 중국집 사장 아주머니의 옆에 서서 만두피를 만들며 부추, 파, 꽃, 새우를 섞은 고기 속을 능숙하게 만두피에 넣어 부드럽게 만지작거렸다. 그러면 작은 만두 하나가 만들어진다.“그 사람이 아니라고?!”아주머니의 동작이 멈추고 그녀의 머릿속에는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생각에 혼이 활활 타올랐다.“어머. 내가 지금 무슨 큰 비밀을 들은 거야? 만둣국을 먹는 사람이 성진이가 아니다니. 그럼 누군데?”“어... 제 고향 친구예요.”차설아의 대답이 모호했다.“그럼 그 친구, 네 마음속 지위가 남다른데? 요 며칠 비바람에도 끄떡없이 매일 그에게 만둣국을 사주었단 말이잖아. 게다가 오늘은 이렇게 늦었는데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