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랑 이거, 어떤 게 예뻐?”유현진은 양손에 치마를 하나씩 들고 강한서에게 물었다. 강한서는 유현진 손에 들린 원피스를 확인했다. 둘 다 셔츠 칼라에 꽃무늬가 있는 스타일이었다. 컬러가 하나는 진하고 하나는 어두운 것 빼고는 다른 점이 없는 것 같았다.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기며 말했다. “옅은 거.”유현진은 강한서가 어쩌다 보는 눈이 있네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나도 이게 더 예쁜 것 같아. 하지만 이게 어두운 것보다 가격이 배나 더 비싸. 재질도 같은데.”“그럼 진한 컬러 사.”유현진이 강한서의 말에 멈칫했다. “난 싸구려나 입으라는 거야?”강한서: ...그는 자신의 장난꾸러기 여친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넌 마대자루를 뒤집어쓰고 서 있어도 다른 사람들은 그 마대자루가 2억 정도의 가치를 한다고 생각할 거야. 옷은 뭘 입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입느냐가 중요한 거지.”유현진이 참지 못하고 웃으며 말했다. “민 실장님이 수강료는 받았어?”강한서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보너스에 포함되어 있어.”유현진은 가방을 강한서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사이즈 있는지 보고 피팅해 볼게.”유현진은 점원에게 자기에게 맞는 사이즈의 옷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그러자 점원은 손톱을 뜯으며 유현진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했다. “정말 사실 거예요?”유현진은 상대방을 힐끗 쳐다보았다. “피팅하고 어울리는지 봐야 살지 말지 결정하지 않겠어요?”점원이 말했다. “꼭 구매하실 게 아니라면, 제가 굳이 창고에 다녀올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보시다시피 가게에 손님도 많고, 다른 손님에게 가봐야 해서요.”유현진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정말이지... 이렇게 밥맛 떨어지게 하는 점원은 오랜만에 보았다. “점장 어딨어요? 점장님 나오라고 해요. 구매한다고 확답을 줘야만 피팅할 수 있는 건지 확인 좀 해봐야겠는데요?”점원과 유현진의 기 싸움은 곧 점장을 불러오게 했다. 점장은 나오자마자 계속 유현진에게
점장은 옆에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손님, 피부가 하얘서 이 컬러가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어떠세요?”유현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얼마예요?”“76만 원입니다. 회원이시면 50% 할인할 수 있으세요.”유현진은 옷에 있던 택을 확인했다. “폴리에스터네요. 품질에 비해 가격이 별로네요.”옆에 있던 점원은 유현진을 헐뜯을 기회를 찾은 듯 빈정댔다. “비싸면 비싸다고 해요. 살 형편이 안되면 안되는 거지, 핑계는 왜 대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열려는데, 유현진에게 손목을 잡혔다. 몇 년간 함께한 눈치로, 유현진이 그의 손을 잡자 강한서는 바로 나서지 말라는 유현진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강한서는 굳은 얼굴을 하고 점원을 슥 훑고는 입을 앙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점장은 점원에게 몇 마디 지적하고는 웃는 얼굴로 유현진에게 말했다. “모든 가게에서 전부 이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어요. 만약 생각하셨던 금액을 초과하셨다면 입구 쪽에 할인 중인 옷을 보세요. 가격이 더 저렴해요.”점원은 더욱 직접적으로 유현진을 다그쳤다. “살 형편이 안 되면 빨리 옷 벗어요. 다른 고객님도 받아야 하는데, 시간 낭비 좀 안 하면 안 돼요?”강한서가 점원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누가 살 형편이 안 된다는 거죠? 전부 포장해요.”점원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전... 전부 말씀이세요?”유현진이 말했다. “네. 제가 피팅했던 옷들 전부 포장해줘요.”점원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자 점장이 그녀를 다그쳤다. “멍하니 서서 뭐 해, 얼른 결제 도와드려!”점원은 반 박자 늦게 반응하더니 허둥지둥 옷을 가지러 갔다. 유현진이 그녀를 불러세웠다. “잠시만요.”점장이 눈치껏 입을 열었다. “점원 바꿔드릴까요?”잠시 멈칫하던 유현진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아뇨, 저분으로 하죠.”유현진은 말하며 진열대 위의 박스에서 양말을 꺼내 물었다. “이건 얼마예요?”점원이 말했다. “두 켤레에 14000원이요.”그러자
하지만 입 밖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는 유현진이 건네는 양말을 받아 쇼핑백 안에 넣고는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을 물었다. “연기인 줄 어떻게 알았어?”유현진이 말했다. “처음엔 확실하지 않았어. 쇼핑하다 보면 가끔 손님 겉모습만 보고 태도가 바뀌는 점원들을 만나거든. 하지만 이 점원은 너무 나댔어. 점장이 왔는데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점장 앞에서 계속 날 자극하잖아. 내가 살 수 없다는 걸 계속 강조하면서. 그래서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점장 반응도 이상했어. 겉으로는 혼내는 척하면서 실질적인 벌은 주지 않았잖아. 그리고 너 봤어? 그 두 사람 아까 계속 네 손목만 주시하는 거. 네 몸에서 제일 비싼 게 바로 그 시계잖아. 그 사람들, 아마 널 졸부라고 생각하고 날 네 스폰이나 받는 얼굴만 반반한 멍청한 년인 줄 알고 우리를 자극해서 물건을 전부 다 사게 만들려고 했을 거야.”유현진은 말하며 잘난체하기 시작했다. “네가 졸부인 건 맞지만, 이 멍청한 년은 하나도 멍청하지 않지. 내가 순순히 걔들 생각대로 당해줄 것 같아?”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에게 장난질을 했다. ‘장사를 하려면 착실하게 해야지, 어디서 잔머리를 굴리고 있어.’강한서는 유현진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마음에 들면 사. 그런데 신경 쓸 필요 없어. 그 사람들한테 시간 낭비하는 것도 손실이잖아.”“손해 볼 게 뭐가 있어, 어차피 저녁에 할 일도 없는데.”강한서가 잠시 행동을 멈추더니 말했다. “나한테 손해야. 안 그래도 너랑 같이 있는 시간이 얼마 없는데, 넌 그 시간을 몇십분 씩 다른 사람한테 썼잖아. 다음에 또 언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강한서의 말에 유현진은 멈칫하더니 갑자기 웃음이 났다. 그녀는 강한서의 팔뚝을 잡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나 오늘 늦게 들어가면 되지. 좀 더 같이 있자.”유현진의 말에 강한서의 기분은 바로 풀어졌다. 이훈은 한주 대학에 붙었다. 학교는 고담시에 있었고 다음 주 목요일
강한서가 흠칫 몸을 굳히더니 물었다. “어떤 사람인데?”“키가 작고 아담한 남자였어요. 4, 50대쯤 되어보였고요. 계속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있어서 얼굴은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눈가에서 조금 세월이 느껴졌어요. 기부하러 왔다고 하는데, 계속 현주 아주머니랑 현진 누나에 대해서 물었어요. 현주 아주머니가 돌아가신 걸 알고 나서 조금 애틋해 하셨고요. 나중에 몇백 만 원을 기부했어요. 가시면서 원장님께 현주 아주머니를 모신 곳 주소를 물었는데 현주 아주머니를 아시는 분 같았어요. 하지만 원장님께서 물으시니 그저 들은 적이 있다고만 대답했대요. 꽤 이상한 사람이었어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키가 작고 아담한 중년의 남자?’그는 머릿속으로 그에 해당하는, 하씨 가문과 연관이 있는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한참을 생각해도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또 다른 얘기는 없었어?”이훈이 잠시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다른 말은 없었어요. 그저 현주 아주머니랑 현진 누나 사진을 보셨고, 가실 때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했어요.”갑자기 한가지 가능성을 떠올린 강한서가 멈칫했다. ‘혹시... 현진이 친 아버지는 아닐까?’강한서가 생각에 잠겨 있는데, 유현진의 목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왔다. “너희 둘, 얼른 나와서 도와, 손이 부족해!”정신을 차린 강한서가 이훈의 팔뚝을 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 “일하자.”유현진은 선물로 고아원의 아이들과 장난을 하고 있었다. 먼저 장기 자랑을 보고 잘 한 사람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처음엔 부끄러워하더니 점점 긴장을 풀고 적극적으로 앞에 나서서 장기 자랑을 했다. 강한서는 옆에 앉아 어색하게 장기 자랑을 하고는 아이들에게 트릭을 들키고도 억지를 쓰며 인정하지 않는 유현진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옅은 호선을 그리며 웃고 있었다. “강 대표님.”노원장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강한서가 고개를 돌리자 술을 한잔 들고 오며 자애로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노원장이 보였다. “술 한
강한서는 말 없이 술잔을 들더니 잔을 비웠다. 노원장도 강한서를 따라 술잔을 비우더니 또 그의 잔에 술을 채웠다. “세 번째 잔은, 현진의 비밀에 관한 건데, 강 대표님한테 부탁드려도 될까요?”강한서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그는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말씀하세요.”노원장은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는 유현진을 힐끔 쳐다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현진이는 현주 친딸이 아니에요. 혼외 자식도 아니죠.”깜짝 놀란 강한서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떻게 아셨어요?”노원장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현진이와 현주 친자 검사, 제가 현주와 함께 가서 한 거예요. 이 일, 제가 현주한테 무덤까지 가지고 간다고 약속했어요. 하지만 지금, 이젠 세상에 없으니 현주가 유일하게 미련을 남길 만한 것은 현진이 뿐이잖아요. 현진이가 믿고 의지하는 파트너로서 능력에 한계가 있어 일이든 결혼이든, 많이 도와줄 수가 없어서요. 부잣집은 지켜야 할 규칙도 많고, 집안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거 알아요. 제가 이 사실을 강 대표님께 얘기하는 건, ‘혼외 자식’이라는 출신이 두 사람 사이의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으면 바라기 때문이에요. 미래에 현진이와 결혼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혼외 자식’이 그 이유는 아니었으면 해서요. 그 일에, 현진이는 애초부터 잘못이 없으니까요.”강한서의 머리가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졌다. 산부인과 진료기록, 출생증명서, 모든 것이 다 있는데, 유현진이 어떻게 하현주의 친딸이 아닐 수 있지?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현진이 친부모님은 누구예요?”노원장이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현주는 누군가의 분만실을 착각한 거였어요. 당시 현주가 아이를 낳고 몸에 많이 상해있었던 터라 다시 임신하기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현주는 모든 정력을 현진이한테 쏟아부었죠. 그러니 사실을 알고 나서 현진이를 친부모에게 돌려주고 싶지 않아 했어요. 혈연관계는 가짜였지만, 감정은 진짜였으니까요. 자기가 직접 먹여 키운 아이를 보내기 아쉬웠겠죠. 그리고 이렇게 넓은 세상에
유현진의 눈꺼풀이 움찔하며 떨렸다. 그녀는 팔꿈치로 강한서를 찔렀다. “너 취한 척하는 거야?!”찔끔 고통이 전해지자 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의사 선생님 말씀 어기면 안 돼. 빨리 해야—”강한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현진이 깜짝 놀라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는 어두운 얼굴로 아무 말이나 거침없이 내뱉는 남자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왜 매번 정상적으로 얘기하다가 갑자기 취하는 거야?!’유현진이 그의 입을 빨리 막지 않았다면, 저 입에서 어떤 말이 나왔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강한서는 입이 막히자 조금 불만스럽다는 듯 손을 뻗어 유현진의 손등을 잡아 자신의 입을 막고 있는 손을 놓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유현진은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한서의 입을 막은 채 이훈에게 민경하를 부르라고 했다. 민경하가 차를 가져오자 유현진은 얼른 강한서를 끌고 차에 태우고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새 나라의 어린이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유현진은 차에 올라타서야 손을 내리고 좌석에 기대어 앉았다. 민경하가 시동을 걸며 물었다. “대표님, 사모님, 어디로 모실까요?”유현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강한서가 말했다. “집에 가서 해야— 읍—”유현진이 새빨개진 얼굴로 강한서의 입을 꽉 틀어막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아름드리로 가요.”뒷좌석에 앉아있는 두 사람을 보는 민경하의 눈에 장난기가 반짝였다. 그러나 그는 진지한 태도로 물었다. “사모님, 약국에 들러서 콘돔 사실래요?”유현진: ...‘강한서는 대체 어떤 인간들을 키운 거야!’그녀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이를 악물었다. “아뇨, 필요 없어요!”강한서 이 멍청이가 이렇게 취했는데, 산다고 해도 무용지물이었다. 유현진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민경하는 두 사람 사이가 이토록 빨리, 벌써 아무런 보호조치도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가까워진 것에 놀라워했다. 입이 막혀 숨쉬기가 어려웠던 강한서가 몸부림 치자 유현진이 그에게 경고를 날렸다.
강한서의 입술은 바로 유현진의 귓가에 있었다. 말할 때마다 내뱉는 숨결은 유현진의 볼과 귀 뒤에 닿았다. 유현진의 귀는 열이 올랐고, 그녀는 강한서의 턱을 밀며 그의 얼굴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 마.”강한서는 그녀의 저항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듯, 또 다가와 그녀의 귓불에 입맞추었다.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해야지.”유현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네가 언제부터 의사 말을 그렇게 잘 들었어? 네가 아플 땐, 의사가 처방해 준 약도 제대로 먹지 않으면서.”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마치 자기가 그랬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이유로는 그가 눈앞에 있는 사람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니 그는 억지를 부리며 말했다. “오늘부터 의사 말대로 하려고.”그는 말하며 유현진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입가로부터 입술까지, 가볍게 뽀뽀했다. 시험하듯 그녀의 입술을 핥던 강한서가 갑자기 멈칫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그는 킁킁 냄새를 맡았다. “왜 그래?”유현진은 강한서의 표정이 이상해지자 참지 못하고 물었다. 강한서는 꽤 주저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한참 후에야 말했다. “너한테서 왜 이렇게 안 좋은 냄새가 나?”“너야말로 냄새나!”말을 마친 유현진이 순간 강한서가 말하는 냄새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녀가 구운 마늘을 먹었던 것이다!강한서는 마늘 냄새를 제일 싫어했다. 특히 생마늘을 가장 싫어했는데, 유현진은 고기를 먹을 때면 늘 마늘을 곁들여 먹어야 하는 스타일이었다. 구운 마늘도 겉에만 살짝 익고 안은 익지 않은 것을 좋아했다. 예전엔 마늘만 먹으면 강한서는 역신을 피하는 사람처럼 유현진을 피해 다녔다. 잠도 손님방이나 서재에서 잤다. 마늘 냄새에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강한서의 모습을 보며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다. “냄새나?”그녀는 입안의 마늘 냄새가 그에게 닿지 않을까, 일부러 강한서의 얼굴을 맞대고 말했다. “난 왜 모르겠지?”마늘
그의 말에 유현진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곧 강한서가 술에 취해 헛소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강한서의 얼굴을 꼬집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너 정말 나랑 자려고 별 헛소리를 다 하는구나.”강한서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헛소리 아니야. 정말 수술했어. 작년에 이미 했다고.”유현진은 그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수술했으면, 흉터는? 작년에 했다면서, 우리 그땐 이혼도 하지 않았는데, 난 왜 네 몸에서 흉터를 본 적이 없는 거야? 요즘 정관수술 기술이 그렇게 많이 발전했어? 복강경 수술이 가능한 거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나지막이 말했다. “흉터 있어.”“뭐?”강한서가 유현진을 놓아주더니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유현진은 강한서를 보며 볼을 붉게 물들였다. 벨트를 푸는 모습에 그녀의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유현진은 늘 자기가 여왕처럼 소파에 앉아 강한서가 그녀 앞에서 옷을 벗는 꿈을 꾸었다. 전엔 매번 그녀가 먼저 옷을 벗고 알몸이 되어도 강한서는 단정한 차림이었던지라 그녀의 수치심은 하늘을 찔렀다. 그녀는 언젠가 두 사람이 입장을 바꾸어 강한서도 수치심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그 장면을 두 눈으로 보게 되니, 두근두근 뛰어대는 심장은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강한서의 모습은 섹시하기 그지없었다. 간신히 붙어있는 이성이 그녀를 잡아주고 있었다. 유현진은 담요를 가져와 강한서의 몸을 가렸다. “술에 좀 취했다고 변태 짓 하지 마, 신고할 거야.”강한서는 그녀의 손에 있는 담요를 꺼내며 속삭였다. “흉터 여기 있어. 봐봐.”유현진은 ‘퍽이나.’라고 생각하면서도 참지 못하고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녀는 강한서가 말한 흉터를 보았다. 2 센티미터 정도 되는, 은밀한 위치에 있는 흉터였다. 다른 사람의 은밀한 부분을 뚫어지게 살펴볼 사람은 없으니, 오랫동안 같이 살았어도 그녀가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유현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너 정말 수술한 거야?”강한서가 어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