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935화

작가: 조십일
유현진은 사실 욕심이 났지만 겉으로는 계속 아닌 척했다.

“너 얼마 전에도 나한테 옷 많이 보냈었잖아. 아직 별로 입지도 못했는데, 새 옷 사는 건 좀 그렇잖아?”

강한서는 유현진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난 나 말하는 건데.”

유현진: ...

말을 마친 강한서는 입꼬리를 씩 올리고는 옷 가게로 들어섰다.

유현진은 이를 악물더니 그의 뒤를 따랐다.

‘인턴 기간인데 이런 태도라니, 벌점이야!’

가게에 들어서자 유현진은 바로 벌점에 대한 일을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가가에는 신상이 잔뜩 걸려있었는데, 새로운 스타일의 옷에 그녀는 눈이 부시는 것 같았다. 유현진은 만지는 것마다 전부 마음에 들어 했다. 하지만 가격을 확인하고는 다시 제자리에 걸어두었다.

강한서가 그녀와 함께 쇼핑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바쁘기도 했지만, 유현진이 물건을 굉장히 오래 고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비싼 것은 과감하게 지르고, 싼 물건에는 고민하는 스타일이었다.

일상복을 살 때도 하나하나 비교하며 가성비가 제일 좋은 옷으로 골랐다. 하지만 강한서는 적은 돈을 소비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시간이면 몇백, 몇천 배의 수익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전의 그는 그런 유현진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점점 유현진이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었다.

신선처럼 놀 수만은 없으니, 먹고 입는 것이야말로 생활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가 사는 명품들은 중요한 장소에서 입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여자의 겉모습이 남자의 체면을 세워주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녀가 자신을 예쁘게 꾸미는 것은 결국 강한서의 기를 살려주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의 유현진은 오히려 알뜰살뜰하게 살기를 원했다.

2층의 베란다에 있는 화분 선반이 바로 그녀의 그런 면을 증명해 줄 수 있었다. 그 화분 선반는 그녀가 인터넷으로 구매한 뒤, 그것을 설치하는 인건비가 똑같은 화분 선반를 하나 더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비싸자 직접 설치 도구들을 구매하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936화

    “이거랑 이거, 어떤 게 예뻐?”유현진은 양손에 치마를 하나씩 들고 강한서에게 물었다. 강한서는 유현진 손에 들린 원피스를 확인했다. 둘 다 셔츠 칼라에 꽃무늬가 있는 스타일이었다. 컬러가 하나는 진하고 하나는 어두운 것 빼고는 다른 점이 없는 것 같았다.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기며 말했다. “옅은 거.”유현진은 강한서가 어쩌다 보는 눈이 있네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나도 이게 더 예쁜 것 같아. 하지만 이게 어두운 것보다 가격이 배나 더 비싸. 재질도 같은데.”“그럼 진한 컬러 사.”유현진이 강한서의 말에 멈칫했다. “난 싸구려나 입으라는 거야?”강한서: ...그는 자신의 장난꾸러기 여친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넌 마대자루를 뒤집어쓰고 서 있어도 다른 사람들은 그 마대자루가 2억 정도의 가치를 한다고 생각할 거야. 옷은 뭘 입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입느냐가 중요한 거지.”유현진이 참지 못하고 웃으며 말했다. “민 실장님이 수강료는 받았어?”강한서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보너스에 포함되어 있어.”유현진은 가방을 강한서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사이즈 있는지 보고 피팅해 볼게.”유현진은 점원에게 자기에게 맞는 사이즈의 옷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그러자 점원은 손톱을 뜯으며 유현진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했다. “정말 사실 거예요?”유현진은 상대방을 힐끗 쳐다보았다. “피팅하고 어울리는지 봐야 살지 말지 결정하지 않겠어요?”점원이 말했다. “꼭 구매하실 게 아니라면, 제가 굳이 창고에 다녀올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보시다시피 가게에 손님도 많고, 다른 손님에게 가봐야 해서요.”유현진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정말이지... 이렇게 밥맛 떨어지게 하는 점원은 오랜만에 보았다. “점장 어딨어요? 점장님 나오라고 해요. 구매한다고 확답을 줘야만 피팅할 수 있는 건지 확인 좀 해봐야겠는데요?”점원과 유현진의 기 싸움은 곧 점장을 불러오게 했다. 점장은 나오자마자 계속 유현진에게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937화

    점장은 옆에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손님, 피부가 하얘서 이 컬러가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어떠세요?”유현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얼마예요?”“76만 원입니다. 회원이시면 50% 할인할 수 있으세요.”유현진은 옷에 있던 택을 확인했다. “폴리에스터네요. 품질에 비해 가격이 별로네요.”옆에 있던 점원은 유현진을 헐뜯을 기회를 찾은 듯 빈정댔다. “비싸면 비싸다고 해요. 살 형편이 안되면 안되는 거지, 핑계는 왜 대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열려는데, 유현진에게 손목을 잡혔다. 몇 년간 함께한 눈치로, 유현진이 그의 손을 잡자 강한서는 바로 나서지 말라는 유현진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강한서는 굳은 얼굴을 하고 점원을 슥 훑고는 입을 앙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점장은 점원에게 몇 마디 지적하고는 웃는 얼굴로 유현진에게 말했다. “모든 가게에서 전부 이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어요. 만약 생각하셨던 금액을 초과하셨다면 입구 쪽에 할인 중인 옷을 보세요. 가격이 더 저렴해요.”점원은 더욱 직접적으로 유현진을 다그쳤다. “살 형편이 안 되면 빨리 옷 벗어요. 다른 고객님도 받아야 하는데, 시간 낭비 좀 안 하면 안 돼요?”강한서가 점원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누가 살 형편이 안 된다는 거죠? 전부 포장해요.”점원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전... 전부 말씀이세요?”유현진이 말했다. “네. 제가 피팅했던 옷들 전부 포장해줘요.”점원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자 점장이 그녀를 다그쳤다. “멍하니 서서 뭐 해, 얼른 결제 도와드려!”점원은 반 박자 늦게 반응하더니 허둥지둥 옷을 가지러 갔다. 유현진이 그녀를 불러세웠다. “잠시만요.”점장이 눈치껏 입을 열었다. “점원 바꿔드릴까요?”잠시 멈칫하던 유현진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아뇨, 저분으로 하죠.”유현진은 말하며 진열대 위의 박스에서 양말을 꺼내 물었다. “이건 얼마예요?”점원이 말했다. “두 켤레에 14000원이요.”그러자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938화

    하지만 입 밖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는 유현진이 건네는 양말을 받아 쇼핑백 안에 넣고는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을 물었다. “연기인 줄 어떻게 알았어?”유현진이 말했다. “처음엔 확실하지 않았어. 쇼핑하다 보면 가끔 손님 겉모습만 보고 태도가 바뀌는 점원들을 만나거든. 하지만 이 점원은 너무 나댔어. 점장이 왔는데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점장 앞에서 계속 날 자극하잖아. 내가 살 수 없다는 걸 계속 강조하면서. 그래서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점장 반응도 이상했어. 겉으로는 혼내는 척하면서 실질적인 벌은 주지 않았잖아. 그리고 너 봤어? 그 두 사람 아까 계속 네 손목만 주시하는 거. 네 몸에서 제일 비싼 게 바로 그 시계잖아. 그 사람들, 아마 널 졸부라고 생각하고 날 네 스폰이나 받는 얼굴만 반반한 멍청한 년인 줄 알고 우리를 자극해서 물건을 전부 다 사게 만들려고 했을 거야.”유현진은 말하며 잘난체하기 시작했다. “네가 졸부인 건 맞지만, 이 멍청한 년은 하나도 멍청하지 않지. 내가 순순히 걔들 생각대로 당해줄 것 같아?”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에게 장난질을 했다. ‘장사를 하려면 착실하게 해야지, 어디서 잔머리를 굴리고 있어.’강한서는 유현진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마음에 들면 사. 그런데 신경 쓸 필요 없어. 그 사람들한테 시간 낭비하는 것도 손실이잖아.”“손해 볼 게 뭐가 있어, 어차피 저녁에 할 일도 없는데.”강한서가 잠시 행동을 멈추더니 말했다. “나한테 손해야. 안 그래도 너랑 같이 있는 시간이 얼마 없는데, 넌 그 시간을 몇십분 씩 다른 사람한테 썼잖아. 다음에 또 언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강한서의 말에 유현진은 멈칫하더니 갑자기 웃음이 났다. 그녀는 강한서의 팔뚝을 잡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나 오늘 늦게 들어가면 되지. 좀 더 같이 있자.”유현진의 말에 강한서의 기분은 바로 풀어졌다. 이훈은 한주 대학에 붙었다. 학교는 고담시에 있었고 다음 주 목요일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939화

    강한서가 흠칫 몸을 굳히더니 물었다. “어떤 사람인데?”“키가 작고 아담한 남자였어요. 4, 50대쯤 되어보였고요. 계속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있어서 얼굴은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눈가에서 조금 세월이 느껴졌어요. 기부하러 왔다고 하는데, 계속 현주 아주머니랑 현진 누나에 대해서 물었어요. 현주 아주머니가 돌아가신 걸 알고 나서 조금 애틋해 하셨고요. 나중에 몇백 만 원을 기부했어요. 가시면서 원장님께 현주 아주머니를 모신 곳 주소를 물었는데 현주 아주머니를 아시는 분 같았어요. 하지만 원장님께서 물으시니 그저 들은 적이 있다고만 대답했대요. 꽤 이상한 사람이었어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키가 작고 아담한 중년의 남자?’그는 머릿속으로 그에 해당하는, 하씨 가문과 연관이 있는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한참을 생각해도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또 다른 얘기는 없었어?”이훈이 잠시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다른 말은 없었어요. 그저 현주 아주머니랑 현진 누나 사진을 보셨고, 가실 때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했어요.”갑자기 한가지 가능성을 떠올린 강한서가 멈칫했다. ‘혹시... 현진이 친 아버지는 아닐까?’강한서가 생각에 잠겨 있는데, 유현진의 목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왔다. “너희 둘, 얼른 나와서 도와, 손이 부족해!”정신을 차린 강한서가 이훈의 팔뚝을 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 “일하자.”유현진은 선물로 고아원의 아이들과 장난을 하고 있었다. 먼저 장기 자랑을 보고 잘 한 사람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처음엔 부끄러워하더니 점점 긴장을 풀고 적극적으로 앞에 나서서 장기 자랑을 했다. 강한서는 옆에 앉아 어색하게 장기 자랑을 하고는 아이들에게 트릭을 들키고도 억지를 쓰며 인정하지 않는 유현진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옅은 호선을 그리며 웃고 있었다. “강 대표님.”노원장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강한서가 고개를 돌리자 술을 한잔 들고 오며 자애로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노원장이 보였다. “술 한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940화

    강한서는 말 없이 술잔을 들더니 잔을 비웠다. 노원장도 강한서를 따라 술잔을 비우더니 또 그의 잔에 술을 채웠다. “세 번째 잔은, 현진의 비밀에 관한 건데, 강 대표님한테 부탁드려도 될까요?”강한서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그는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말씀하세요.”노원장은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는 유현진을 힐끔 쳐다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현진이는 현주 친딸이 아니에요. 혼외 자식도 아니죠.”깜짝 놀란 강한서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떻게 아셨어요?”노원장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현진이와 현주 친자 검사, 제가 현주와 함께 가서 한 거예요. 이 일, 제가 현주한테 무덤까지 가지고 간다고 약속했어요. 하지만 지금, 이젠 세상에 없으니 현주가 유일하게 미련을 남길 만한 것은 현진이 뿐이잖아요. 현진이가 믿고 의지하는 파트너로서 능력에 한계가 있어 일이든 결혼이든, 많이 도와줄 수가 없어서요. 부잣집은 지켜야 할 규칙도 많고, 집안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거 알아요. 제가 이 사실을 강 대표님께 얘기하는 건, ‘혼외 자식’이라는 출신이 두 사람 사이의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으면 바라기 때문이에요. 미래에 현진이와 결혼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혼외 자식’이 그 이유는 아니었으면 해서요. 그 일에, 현진이는 애초부터 잘못이 없으니까요.”강한서의 머리가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졌다. 산부인과 진료기록, 출생증명서, 모든 것이 다 있는데, 유현진이 어떻게 하현주의 친딸이 아닐 수 있지?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현진이 친부모님은 누구예요?”노원장이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현주는 누군가의 분만실을 착각한 거였어요. 당시 현주가 아이를 낳고 몸에 많이 상해있었던 터라 다시 임신하기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현주는 모든 정력을 현진이한테 쏟아부었죠. 그러니 사실을 알고 나서 현진이를 친부모에게 돌려주고 싶지 않아 했어요. 혈연관계는 가짜였지만, 감정은 진짜였으니까요. 자기가 직접 먹여 키운 아이를 보내기 아쉬웠겠죠. 그리고 이렇게 넓은 세상에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941화

    유현진의 눈꺼풀이 움찔하며 떨렸다. 그녀는 팔꿈치로 강한서를 찔렀다. “너 취한 척하는 거야?!”찔끔 고통이 전해지자 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의사 선생님 말씀 어기면 안 돼. 빨리 해야—”강한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현진이 깜짝 놀라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는 어두운 얼굴로 아무 말이나 거침없이 내뱉는 남자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왜 매번 정상적으로 얘기하다가 갑자기 취하는 거야?!’유현진이 그의 입을 빨리 막지 않았다면, 저 입에서 어떤 말이 나왔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강한서는 입이 막히자 조금 불만스럽다는 듯 손을 뻗어 유현진의 손등을 잡아 자신의 입을 막고 있는 손을 놓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유현진은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한서의 입을 막은 채 이훈에게 민경하를 부르라고 했다. 민경하가 차를 가져오자 유현진은 얼른 강한서를 끌고 차에 태우고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새 나라의 어린이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유현진은 차에 올라타서야 손을 내리고 좌석에 기대어 앉았다. 민경하가 시동을 걸며 물었다. “대표님, 사모님, 어디로 모실까요?”유현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강한서가 말했다. “집에 가서 해야— 읍—”유현진이 새빨개진 얼굴로 강한서의 입을 꽉 틀어막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아름드리로 가요.”뒷좌석에 앉아있는 두 사람을 보는 민경하의 눈에 장난기가 반짝였다. 그러나 그는 진지한 태도로 물었다. “사모님, 약국에 들러서 콘돔 사실래요?”유현진: ...‘강한서는 대체 어떤 인간들을 키운 거야!’그녀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이를 악물었다. “아뇨, 필요 없어요!”강한서 이 멍청이가 이렇게 취했는데, 산다고 해도 무용지물이었다. 유현진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민경하는 두 사람 사이가 이토록 빨리, 벌써 아무런 보호조치도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가까워진 것에 놀라워했다. 입이 막혀 숨쉬기가 어려웠던 강한서가 몸부림 치자 유현진이 그에게 경고를 날렸다.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942화

    강한서의 입술은 바로 유현진의 귓가에 있었다. 말할 때마다 내뱉는 숨결은 유현진의 볼과 귀 뒤에 닿았다. 유현진의 귀는 열이 올랐고, 그녀는 강한서의 턱을 밀며 그의 얼굴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 마.”강한서는 그녀의 저항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듯, 또 다가와 그녀의 귓불에 입맞추었다.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해야지.”유현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네가 언제부터 의사 말을 그렇게 잘 들었어? 네가 아플 땐, 의사가 처방해 준 약도 제대로 먹지 않으면서.”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마치 자기가 그랬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이유로는 그가 눈앞에 있는 사람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니 그는 억지를 부리며 말했다. “오늘부터 의사 말대로 하려고.”그는 말하며 유현진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입가로부터 입술까지, 가볍게 뽀뽀했다. 시험하듯 그녀의 입술을 핥던 강한서가 갑자기 멈칫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그는 킁킁 냄새를 맡았다. “왜 그래?”유현진은 강한서의 표정이 이상해지자 참지 못하고 물었다. 강한서는 꽤 주저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한참 후에야 말했다. “너한테서 왜 이렇게 안 좋은 냄새가 나?”“너야말로 냄새나!”말을 마친 유현진이 순간 강한서가 말하는 냄새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녀가 구운 마늘을 먹었던 것이다!강한서는 마늘 냄새를 제일 싫어했다. 특히 생마늘을 가장 싫어했는데, 유현진은 고기를 먹을 때면 늘 마늘을 곁들여 먹어야 하는 스타일이었다. 구운 마늘도 겉에만 살짝 익고 안은 익지 않은 것을 좋아했다. 예전엔 마늘만 먹으면 강한서는 역신을 피하는 사람처럼 유현진을 피해 다녔다. 잠도 손님방이나 서재에서 잤다. 마늘 냄새에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강한서의 모습을 보며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다. “냄새나?”그녀는 입안의 마늘 냄새가 그에게 닿지 않을까, 일부러 강한서의 얼굴을 맞대고 말했다. “난 왜 모르겠지?”마늘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943화

    그의 말에 유현진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곧 강한서가 술에 취해 헛소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강한서의 얼굴을 꼬집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너 정말 나랑 자려고 별 헛소리를 다 하는구나.”강한서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헛소리 아니야. 정말 수술했어. 작년에 이미 했다고.”유현진은 그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수술했으면, 흉터는? 작년에 했다면서, 우리 그땐 이혼도 하지 않았는데, 난 왜 네 몸에서 흉터를 본 적이 없는 거야? 요즘 정관수술 기술이 그렇게 많이 발전했어? 복강경 수술이 가능한 거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나지막이 말했다. “흉터 있어.”“뭐?”강한서가 유현진을 놓아주더니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유현진은 강한서를 보며 볼을 붉게 물들였다. 벨트를 푸는 모습에 그녀의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유현진은 늘 자기가 여왕처럼 소파에 앉아 강한서가 그녀 앞에서 옷을 벗는 꿈을 꾸었다. 전엔 매번 그녀가 먼저 옷을 벗고 알몸이 되어도 강한서는 단정한 차림이었던지라 그녀의 수치심은 하늘을 찔렀다. 그녀는 언젠가 두 사람이 입장을 바꾸어 강한서도 수치심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그 장면을 두 눈으로 보게 되니, 두근두근 뛰어대는 심장은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강한서의 모습은 섹시하기 그지없었다. 간신히 붙어있는 이성이 그녀를 잡아주고 있었다. 유현진은 담요를 가져와 강한서의 몸을 가렸다. “술에 좀 취했다고 변태 짓 하지 마, 신고할 거야.”강한서는 그녀의 손에 있는 담요를 꺼내며 속삭였다. “흉터 여기 있어. 봐봐.”유현진은 ‘퍽이나.’라고 생각하면서도 참지 못하고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녀는 강한서가 말한 흉터를 보았다. 2 센티미터 정도 되는, 은밀한 위치에 있는 흉터였다. 다른 사람의 은밀한 부분을 뚫어지게 살펴볼 사람은 없으니, 오랫동안 같이 살았어도 그녀가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유현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너 정말 수술한 거야?”강한서가 어

최신 챕터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346화

    주강운에 관해선 강한서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해줬다고 생각했다. 그의 어머니를 도와 치료를 받게 한 일이든, 간민혜의 일을 숨겨준 것이든. 심지어 그 뒤로 있었던 간민혜의 장례식을 치러준 것까지. 강한서는 이미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은 이유를 알 수도 없게 주강운의 원망만 샀다. 주강운은 지금까지도 간민혜를 기억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은 더 이상 전처럼 서로를 신뢰할 수 없었던 탓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주강운 스스로 조사를 하게 하는 편이 나았다. 어쩌면 본인의 손으로 철저히 조사해 진실을 밝혀야만 그의 마음속에 얽힌 응어리를 풀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한현진이 물었다. “네가 대체 누구의 죄를 뒤집어써서 강운 씨의 원망을 받게 된 건지 알고 싶지 않아?”강한서가 시선을 내렸다. “강운이 날 원망한다는 걸 처음 알게 됐을 땐 알고 싶었어. 하지만 나중엔 그 마음이 사라졌어. 어떤 이유가 있었든, 우린 이젠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20여 년의 우정이 결국은 지금 이 지경에 이렀다. 오해가 풀린다고 해도 그 기간 동안 너무 많은 상처를 주고받았기에 예전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사실 지금의 강한서는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상태이기도 했다. 그는 지금 이 사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니 그에게 제일 간단한 방법은 바로 두 사람 사이는 뒤로 미뤄둔 채 보지도, 듣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래.”한현진이 고개를 돌려 민경하에게 말했다. “민 실장님, 서류를 주 변호사님께 보내시고 간민혜 씨가 당시 왜 나이정 씨 장례식장에서 소란을 피웠는지 조사도 계속 해주세요. 간민혜 씨가 교양도 있고 애증이 분명한 분이라면 절대 아무런 이유 없이 장례식에서 돌아가신 분을 모독하진 않았을 거예요. 조사는... 나이정 씨가 사망하기 1년 전 진찰했던 환자부터 시작하세요. 간민혜나 간민혜 씨와 관련된 사람이 환자 리스트에 있는지 알아봐요. 조사를 마치면 직접 저에게 알려주시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345화

    민경하가 갑자기 입을 열어 말했다. “대표님, 그리고 이번 일을 조사하면서 우연하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더 있어요.”강한서가 시선을 올렸다. “뭔데요?”민경하가 서류뭉치를 뒤져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장례식장을 찍은 사진이었고 사진 옆쪽에 놓인 화환에는 나이정과 관련된 애도 문구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젊은 여자 한 명이 주먹을 꼭 움켜쥔 채 영상 사진 속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강한서의 눈이 커다래졌다. “간민혜?”멈칫한 한현진이 사진 속 여자를 자세히 쳐다보았다. 한현진은 간민혜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사진 속 여자의 얼굴은 어쩐지 눈에 익었다. 그 얼굴은 주강운이 그의 여자친구인 척 연기를 해달라며 부탁했던 당시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해줬던 메이크업의 주인공이었다. 그날 강한서가 그렇게 어두운 표정으로 불 같이 화를 낸 건 단순히 그녀가 주강운을 도와주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바로 주강운이 한현진을 이미 죽은 사람의 얼굴로 메이크업을 받게 하고 심지어 본인은 모른 척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현진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주강운, 이 사람은 다정한 겉모습을 하고 뒤에선 대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 걸까?일그러진 얼굴의 한현진을 본 강한서는 그녀 역시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말없이 한현진의 손을 꼭 잡았다. 강한서가 줄곧 한현진에게 간민혜의 사진을 보여주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주강운이 어떤 목적이었든, 산 사람 얼굴에 죽은 사람의 메이크업을 한 건 꽤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일이었다. 한현진은 끓어오르는 불쾌함을 누르며 시선을 올려 민경하에게 물었다. “간민혜 씨와 나이정 씨는 서로 아는 사이였던 거예요? 간민혜 씨가 왜 장례식장에 있었던 거예요?”민경하가 말했다. “사모님 추측과는 오히려 반대예요. 두 사람은 전혀 모르는 사이예요. 이 사진은 나이정 씨 동료 분께서 주신 거예요. 장례식 당시 현장에서 소란이 있었다고 했어요. 누군가 장례식장에서 난리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344화

    하지만 결과는 여전히 사람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나이정도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심지어 세상을 뜬지 이미 8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민경하가 말했다. “나이정이라는 분은 당시 조예단 씨와 같은 병원에서 근무했어요. 두 사람은 대학시절 동기였고 직장도 같이 다녔어요. 당시 함께 근무했던 동료 분들 말에 따르면 굉장히 가까운 사이였다고 해요. 병원에서도 서로 도우며 지냈대요. 나중에 조예단 씨는 병원을 그만 뒀고 나이정 씨는 돌아가실 때까지 줄곧 그 병원에 다니셨어요.”“사망 원인은 심근경색이었어요. 갑작스럽게 집에서 발병하셨고 따님이 병원에 오셨을 땐 이미 돌아가신 후였어요.”잠시 멈칫하던 민경하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어요. 나이정이라는 분, 구암동 고아원의 후원자세요.”한현진과 강한서가 눈을 마주치더니 강한서가 물었다. “확실한 거예요?”민경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정 씨는 한주 사람이 아녜요. 여기엔 친척도 없고요. 따님이 선천적 심장병을 앓고 있어서 경제적 압력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따님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남편은 견디지 못하고 나이정 씨와 이혼하셨어요. 나이정 씨는 혼자 딸을 키우셨고 돌아가실 땐 따님은 심장 이식 수술을 마치고 퇴원을 앞두고 있었어요. 하지만 하루가 지나도 나이정 씨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고 친구 분께서 따님을 집으로 데려다주고 나서야 사망하신 걸 알게 됐어요.”“고향도 한주와는 멀리 떨어져 있고 가족도 없어서 장례식은 친구 분들과 동료들이 나서주셨어요. 후원했다는 사실도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하게 된 거고요. 1999년부터 후원을 시작하셨고 총 3번의 기부를 하셨어요. 마지막으로 후원하신 시간이 18년 전, 총 금액은 6000만 원이었어요.”한현진이 입술을 짓이겼다. “딸이 아파서 돈에 쪼들렸을 텐데, 무슨 돈으로 고아원에 기부한 거야?”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후원금은 나이정의 돈이 아니라 그녀가 다른 사람 대신 기부한 것이고 나이정에게 그걸 부탁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343화

    진희연은 하늘을 안고 병실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도일준이 몸을 뒤척이자 그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진희연이 나지막이 물었다. “왜 그러세요? 물 드릴까요?”도일준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입술을 짓이겼다. “들어가요.”진희연이 말했다. “날이 밝으면 돌아갈게요. 저녁엔 링거를 맞으셔서 봐 줄 사람이 필요해요. 링거 다 맞은 줄도 모르면 어떡해요.”그녀의 품에 안긴 아이를 쳐다보며 잠시 침묵하던 도일준이 말했다. “그럼 아이라도 침대에 눕혀요. 희연 씨는 안 자도 아이는 자야죠.”도일준이 입원한 병실은 1인실이라 침대 넓이가 1.2 m이었다. 어린 한 명과 아이 한 명이 같이 자기엔 충분했다. 진희연은 주저 없이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는 몸을 일으켜 도일준에게 물 한 잔을 떠줬다.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와 도일준에게 약을 건네며 잊지 말고 복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용하게 듣고 있던 도일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틀렸어요.”간호사가 멈칫했다. “네?”도일준이 덤덤한 태도로 말했다. “약 잘못 가져왔어요.”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숙여 약을 확인하던 간호사는 순간 온몸에 식은땀을 흘렸다. 실수로 두 병실의 약이 바뀌었던 것이다. 허둥지둥 약을 바꿔 가져온 간호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지막이 도일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도일준이 담담히 말했다. “의료업계에 종사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늘 경외심을 갖고 모든 생명에 책임을 다해야 해요. 매번 이렇게 행운이 따르진 않을 테니까요.”간호사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약을 내려놓고 서둘러 병실을 나섰다. 진희연이 호기심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 “도일준 씨, 약이 바뀐 건 어떻게 아셨어요?”도일준은 고개를 돌리고 말이 없었다. 대답을 해주지 않으려나, 생각하던 찰나, 도일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전엔 의사였어요. 그래서 약에 대해 잘 알고 있죠.”“그래서 지난번 하늘이 상처를 치료해주시는 손길이 능숙하셨던 거네요.”진희식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엄청 훌륭하신 의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342화

    강한서의 말에 한현진이 멍해졌다. “아니야 난—”강한서가 한현진의 말을 자르며 눈시울을 붉혔다. “네가 말 안 해도 난 느낄 수 있어.”“느끼긴 뭘 느껴!”한현진은 어이없다는 듯 강한서를 찰싹 때렸다. “나라고 너한테 부탁 안하고 싶은 줄 알아? 둘째 삼촌과 경영권 다툼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너를 보는 게 마음이 아파서 그랬어. 신제품 발표회 파티가 있던 그 날을 제외하면, 네가 6시간 이상 잔 적이 있기는 해? 지금 네 다크써클 좀 봐봐. 지난번 같이 밥을 먹었을 때 오빠도 나한테 몰래 물어 봤었어. 혹시 네가 어디 아픈건 아니냐고. 네가 꼭 정기를 다 뺏긴 사람 같대. 너 지금 임산부인 나보다도 더 피곤해보여. 강한서, 넌 안 느껴져?”강한서: ...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나 때문에 마음이 아파?”기가 찬 한 현진이 강한서를 노려보았다. “안 아파! 난 그저 네가 하루 24 시간 내내 일에만 매달려서 우리 셋 먹여 살릴 돈이나 벌었으면 좋겠어!”강한서는 기쁘면서도 조금은 막연한 표정을 지으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너 돈 좋아하잖아. 내가 조금이라도 더 벌어서 널 주면 네가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그랬지.”한현진이 찰싹, 강한서를 밀어냈다. “네가 과로로 몸에 무리라도 오면 내가 그렇게 많은 돈 해서 뭐하라고. 아이의 양육을 전부 나에게 맡길 생각은 하지마! 일 때문에 쓰러지기라도 하면 난 남편, 아이 다 버리고 네 재산만 들고 재가할 거야.”강한서가 멍하니 한현진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쩐지 고생 끝에 드디어 돈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된 듯 한 믿을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는 손을 뻗어 한현진을 안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몸 챙기면서 하고 있어. 임신 때문에 겪는 네 고통을 내가 덜어줄 수는 없겠지만 다른 건 나에게 다 맡겨도 돼.”한현진이 강한서의 어깨에 기대어 그의 팔을 토닥이며 나지막이 말했다. “알았어. 부탁할게.”바로 그때,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강한서가 한현진을 놓아주며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341화

    “아파?”강한서가 또 다시 물었다. 고개를 가로졌던 한현진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허리가 조금 아파. 조금 전에 눌렸거든.”강한서가 한현진의 허리를 어루만지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애들 이름도 못 지어줬는데.”한현진: ...“나도 이름을 뭐라고 지을지 생각 안 해봤는데.”강한서가 눈시울을 붉혔다. “지금 이름 짓자. 만약...”강한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현진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걱정되는 건 알겠는데, 그런 부정 타는 소리 하지 마.”이때 검사를 마친 의사가 진단서를 가지고 나오며 말했다. “변연전치태반이예요. 심각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해요. 될수록 누워서 하루 쉬셔야 해요.”강한서가 눈을 깜빡이며 한현진의 손을 입술에서 떼어냈다. 그가 다시 한 번 확인하며 물었다. “선생님, 제 아내와 아이 모두 괜찮은 건가요?”의사가 말했다. “괜찮아요.”강한서가 말했다. “하지만 하혈을 했잖아요.”“하혈은 변연전치태반의 증상 중 하나예요. 출혈량이 많지만 않다면 활동을 줄이고 누워서 휴식만 잘 취하시면 돼요.”“하지만 조금 전 밀쳐져서 허리를 부딪쳤어요.”“네.”의사가 말했다. “그럼 일단은 돌아가셔서 먼저 얼음찜질을 하다가 온찜질하세요. 이틀 정도면 붓기가 빠질 거예요.”강한서: ...“허리를 부딪쳤는데 배가 괜찮다고요?”의사가 반문했다. “허리를 부딪쳤는데 배가 왜요?”그 말에 강한서가 침묵했다.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강한서를 보며 의사가 말을 이었다. “허리를 부딪친 것 때문에 하혈한 건 분명 아녜요. 변연전치태반이 있은지는 조금 됐을 텐데 아마 모르시고 계시다가 마침 허리를 부딪치고 하혈했다는 걸 알게 되시면서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하신 걸 거예요. 단지 우연의 일치일 뿐이에요. 아이는 무사해요. 아내 분도 괜찮으시고요. 이름은 집에 가서 마음 좀 진정 시키고 천천히 지으시죠. 울면서 이름을 짓는 것도 그리 좋은 건 아니잖아요.”강한서: ...창피해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340화

    한현진과 진희연이 다급히 병실로 들어서던 그때, 도일준은 주사바늘을 빼고 있었다. 그 모습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진희연이 얼른 다가가 도일준을 제지했다. “뽑으시면 안 돼요. 아직 링거 다 못 맞았잖아요.”진희연을 힐끔 쳐다보던 도일준은 진희연 옆에 서 있는 한현진을 보고는 멈칫 몸을 굳혔다. 그리곤 곧바로 진희연의 손을 떨쳐내며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쪽이 왜 여기 있어요?”한현진을 향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진희연이 의아하다는 듯 대답했다. “집에서 쓰러지셨어요. 의사가 보호자에게 연락하라고 하는데 누구한테 연락을 드려야 할지 몰라 도일준 씨 휴대폰으로 아무 번호에나 연락을 했어요. 무슨 고아원이라고 하던데 이 분이 바로 그 고아원에서 보내주셔서 함께 도일준 씨를 병원으로 모신 분이세요. 이분 도움이 없었으면 전 당황해서 아무 것도 못했을 거예요.”도일준 눈빛에 가득하던 경계가 조금 누그러들었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한현진이 말했다. “원장님께서 연락을 받고 걱정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저한테 가보라고 전화하셨어요.”“전 괜찮아요. 원장님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전 그저 고아원에 후원을 조금한 사람일 뿐이에요. 그것 때문에 살면서 당신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건 원치 않아요. 오늘 전화는 사고 같은 거였어요. 이만 돌아가세요.”도일준은 차가운 말투로 말을 마치더니 침대에서 내려오려 했다. 한현진은 도일준의 손에서 옷을 빼내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도일준 씨가 본인이 후원하신 고아원의 사람들과 연락을 하던 안 하든 전 관심 없어요. 전 그저 원장님 부탁을 받고 도와주러 온 것 뿐이에요. 의사 선생님께서 지금 도일준 씨는 꽤 안 좋은 상황이라 입원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원장님께 부탁을 받았으니 그냥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어요. 퇴원하고 싶으시면 의사 선생님이 퇴원하셔도 된다고 할 때 다시 얘기하죠.”말하며 한현진은 침대 맡에 있던 벨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68번 베드 바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339화

    한현진이 알겠다며 대답했다. 잠시 후, 수술실 문이 열리고 침대에 누운 조예단의 모습이 보이자 한현진과 진희연이 다가갔다. “선생님, 어떻게 됐어요?”두 사람을 힐끔 쳐다본 의사가 물었다. “어느 쪽이 환자 분 보호자시죠?”진희연이 말했다. “제가 이 분 이웃이에요. 이 분은 교포라 가족은 몰라요.”한현진이 말했다. “저는 이 분이 기부한 고아원의 대표예요.”의사가 말했다. “암세포가 너무 많이 퍼져서 길어야 3개월 밖에 남지 않으셨어요. 최대한 빨리 가족에게 연락드리세요. 비록 지금 수술은 의미 없지만 그래도 주기적으로 병원에 오셔서 약은 처방 받으셔야 해요. 안 그러면 통증이 심해서 돌아가실 때까지 고통스러울 거예요. 최대한 빨리 가족에게 연락하세요.”말하며 의사는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일단 이것부터 사인하세요.”서류를 받아 훑어보던 한현진은 성별란에 적힌 남이라는 글자에 그만 멍해졌다. “선생님, 이 분이 남자라고요?”의사가 기이한 눈빛으로 한현진을 힐끔 쳐다보았다. “편견 어린 시선으로 트렌스젠더를 보지 마시죠.”한현진: !!!의사의 재촉에 진희연이 서류를 건네받아 사인한 후 의사에게 돌려주었다. 한현진은 여전히 멍한 얼굴로 한참 동안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녀는 줄곧 조예단이 도일준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성전환이라니? 왜 성전환 수술을 한 거야?’이 사람에게는 너무 많은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었다. 한현진이 강한서 앞으로 걸어갔을 때, 그는 진희연의 아들과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었다. 한현진이 다가오자 강한서가 나지막이 물었다. “어떻게 됐어?”한현진은 자신이 발견한 사실을 강한서에게 알려주었지만 그는 전혀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한현진이 물었다. “안 놀라워?”강한서가 물었다. “남장여자가 어떻게 티가 안 나? 여권, 비자 심지어 M국의 모든 신상정보도 전부 진짜였어. 만약 여자라면 그 모든 게 어떻게 가능하겠어? 병 때문에 병원도 자주 가야 했을 텐데, 병원은 가기만 하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338화

    강한서가 웃음을 거두고 정색하며 말했다. “네가 가면 들통 나잖아.”한현진이 말했다. “희연 언니 똑똑한 사람이야. 언니가 조예단 씨 휴대폰으로 원장님께 연락드렸대. 난 원장님 부탁으로 조예단 씨 병문안 간 척 하면 돼.”“그럼 같이 가.”“넌 오늘 생일이잖아. 넌 가지 말고 여기서 재밌게 놀아. 나 혼자 가면 돼.”강한서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없는데 내가 어떻게 마음 놓고 놀 수 있겠어. 가자. 내가 운전할게.”두 사람이 병원에 도착했을 땐 조예단은 이미 응급실로 실려간 후였다. 아들을 데리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희연은 두 사람을 보고 나서야 긴장을 조금 풀 수 있었다. “희연 언니, 어떻게 됐어요?”한현진이 앞으로 다가가서야 입을 열었다. 진희연이 말했다. “아직 아무 소식도 없어요. 의사 말로는 아파서 쓰러진 것 같대요. 쓰러질 때 주방에서 물을 끓이고 있어서 가스 중독이 온 것 같아요. 저도 쓰러진 줄도 모르고 있었어요. 하늘이가 오늘 학교에서 상을 받았는데 잠자리에 들어서야 갑자기 떠올리고는 굳이 상장을 할아버지께 보여주겠다고 해서 문을 두드렸더니 인기척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경비를 불러서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조예단 씨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어요. 바로 119에 신고하고 현진 씨에게 연락한 거예요.”한현진이 진희연의 손등을 토닥였다. “고생하셨어요.”“고생은요.”진희연이 한숨을 내쉬며 나지막이 말했다. “조예단 씨도 참 안 됐어요. 몸도 성치 않은데 곁에 가족이나 친구도 하나 없고. 조예단 씨 휴대폰으로 연락을 하려고 보니까 연락처에서 일부러 사람을 찾을 필요도 없더라고요. 저장된 번호가 하나도 없었어요. 통화목록에서 원장님 번호를 찾아서 전화 드린 거예요.”한현진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조예단은 당시 아이가 뒤바뀐 그 사건에게 혐의가 제일 큰 사람이었다. 오늘 그녀가 이런 처지에 이르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업보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조예단은 죽음을 앞둔 사람이었다. 죽음을 앞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