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입 밖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는 유현진이 건네는 양말을 받아 쇼핑백 안에 넣고는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을 물었다. “연기인 줄 어떻게 알았어?”유현진이 말했다. “처음엔 확실하지 않았어. 쇼핑하다 보면 가끔 손님 겉모습만 보고 태도가 바뀌는 점원들을 만나거든. 하지만 이 점원은 너무 나댔어. 점장이 왔는데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점장 앞에서 계속 날 자극하잖아. 내가 살 수 없다는 걸 계속 강조하면서. 그래서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점장 반응도 이상했어. 겉으로는 혼내는 척하면서 실질적인 벌은 주지 않았잖아. 그리고 너 봤어? 그 두 사람 아까 계속 네 손목만 주시하는 거. 네 몸에서 제일 비싼 게 바로 그 시계잖아. 그 사람들, 아마 널 졸부라고 생각하고 날 네 스폰이나 받는 얼굴만 반반한 멍청한 년인 줄 알고 우리를 자극해서 물건을 전부 다 사게 만들려고 했을 거야.”유현진은 말하며 잘난체하기 시작했다. “네가 졸부인 건 맞지만, 이 멍청한 년은 하나도 멍청하지 않지. 내가 순순히 걔들 생각대로 당해줄 것 같아?”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에게 장난질을 했다. ‘장사를 하려면 착실하게 해야지, 어디서 잔머리를 굴리고 있어.’강한서는 유현진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마음에 들면 사. 그런데 신경 쓸 필요 없어. 그 사람들한테 시간 낭비하는 것도 손실이잖아.”“손해 볼 게 뭐가 있어, 어차피 저녁에 할 일도 없는데.”강한서가 잠시 행동을 멈추더니 말했다. “나한테 손해야. 안 그래도 너랑 같이 있는 시간이 얼마 없는데, 넌 그 시간을 몇십분 씩 다른 사람한테 썼잖아. 다음에 또 언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강한서의 말에 유현진은 멈칫하더니 갑자기 웃음이 났다. 그녀는 강한서의 팔뚝을 잡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나 오늘 늦게 들어가면 되지. 좀 더 같이 있자.”유현진의 말에 강한서의 기분은 바로 풀어졌다. 이훈은 한주 대학에 붙었다. 학교는 고담시에 있었고 다음 주 목요일
강한서가 흠칫 몸을 굳히더니 물었다. “어떤 사람인데?”“키가 작고 아담한 남자였어요. 4, 50대쯤 되어보였고요. 계속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있어서 얼굴은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눈가에서 조금 세월이 느껴졌어요. 기부하러 왔다고 하는데, 계속 현주 아주머니랑 현진 누나에 대해서 물었어요. 현주 아주머니가 돌아가신 걸 알고 나서 조금 애틋해 하셨고요. 나중에 몇백 만 원을 기부했어요. 가시면서 원장님께 현주 아주머니를 모신 곳 주소를 물었는데 현주 아주머니를 아시는 분 같았어요. 하지만 원장님께서 물으시니 그저 들은 적이 있다고만 대답했대요. 꽤 이상한 사람이었어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키가 작고 아담한 중년의 남자?’그는 머릿속으로 그에 해당하는, 하씨 가문과 연관이 있는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한참을 생각해도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또 다른 얘기는 없었어?”이훈이 잠시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다른 말은 없었어요. 그저 현주 아주머니랑 현진 누나 사진을 보셨고, 가실 때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했어요.”갑자기 한가지 가능성을 떠올린 강한서가 멈칫했다. ‘혹시... 현진이 친 아버지는 아닐까?’강한서가 생각에 잠겨 있는데, 유현진의 목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왔다. “너희 둘, 얼른 나와서 도와, 손이 부족해!”정신을 차린 강한서가 이훈의 팔뚝을 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 “일하자.”유현진은 선물로 고아원의 아이들과 장난을 하고 있었다. 먼저 장기 자랑을 보고 잘 한 사람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처음엔 부끄러워하더니 점점 긴장을 풀고 적극적으로 앞에 나서서 장기 자랑을 했다. 강한서는 옆에 앉아 어색하게 장기 자랑을 하고는 아이들에게 트릭을 들키고도 억지를 쓰며 인정하지 않는 유현진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옅은 호선을 그리며 웃고 있었다. “강 대표님.”노원장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강한서가 고개를 돌리자 술을 한잔 들고 오며 자애로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노원장이 보였다. “술 한
강한서는 말 없이 술잔을 들더니 잔을 비웠다. 노원장도 강한서를 따라 술잔을 비우더니 또 그의 잔에 술을 채웠다. “세 번째 잔은, 현진의 비밀에 관한 건데, 강 대표님한테 부탁드려도 될까요?”강한서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그는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말씀하세요.”노원장은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는 유현진을 힐끔 쳐다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현진이는 현주 친딸이 아니에요. 혼외 자식도 아니죠.”깜짝 놀란 강한서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떻게 아셨어요?”노원장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현진이와 현주 친자 검사, 제가 현주와 함께 가서 한 거예요. 이 일, 제가 현주한테 무덤까지 가지고 간다고 약속했어요. 하지만 지금, 이젠 세상에 없으니 현주가 유일하게 미련을 남길 만한 것은 현진이 뿐이잖아요. 현진이가 믿고 의지하는 파트너로서 능력에 한계가 있어 일이든 결혼이든, 많이 도와줄 수가 없어서요. 부잣집은 지켜야 할 규칙도 많고, 집안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거 알아요. 제가 이 사실을 강 대표님께 얘기하는 건, ‘혼외 자식’이라는 출신이 두 사람 사이의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으면 바라기 때문이에요. 미래에 현진이와 결혼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혼외 자식’이 그 이유는 아니었으면 해서요. 그 일에, 현진이는 애초부터 잘못이 없으니까요.”강한서의 머리가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졌다. 산부인과 진료기록, 출생증명서, 모든 것이 다 있는데, 유현진이 어떻게 하현주의 친딸이 아닐 수 있지?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현진이 친부모님은 누구예요?”노원장이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현주는 누군가의 분만실을 착각한 거였어요. 당시 현주가 아이를 낳고 몸에 많이 상해있었던 터라 다시 임신하기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현주는 모든 정력을 현진이한테 쏟아부었죠. 그러니 사실을 알고 나서 현진이를 친부모에게 돌려주고 싶지 않아 했어요. 혈연관계는 가짜였지만, 감정은 진짜였으니까요. 자기가 직접 먹여 키운 아이를 보내기 아쉬웠겠죠. 그리고 이렇게 넓은 세상에
유현진의 눈꺼풀이 움찔하며 떨렸다. 그녀는 팔꿈치로 강한서를 찔렀다. “너 취한 척하는 거야?!”찔끔 고통이 전해지자 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의사 선생님 말씀 어기면 안 돼. 빨리 해야—”강한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현진이 깜짝 놀라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는 어두운 얼굴로 아무 말이나 거침없이 내뱉는 남자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왜 매번 정상적으로 얘기하다가 갑자기 취하는 거야?!’유현진이 그의 입을 빨리 막지 않았다면, 저 입에서 어떤 말이 나왔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강한서는 입이 막히자 조금 불만스럽다는 듯 손을 뻗어 유현진의 손등을 잡아 자신의 입을 막고 있는 손을 놓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유현진은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한서의 입을 막은 채 이훈에게 민경하를 부르라고 했다. 민경하가 차를 가져오자 유현진은 얼른 강한서를 끌고 차에 태우고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새 나라의 어린이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유현진은 차에 올라타서야 손을 내리고 좌석에 기대어 앉았다. 민경하가 시동을 걸며 물었다. “대표님, 사모님, 어디로 모실까요?”유현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강한서가 말했다. “집에 가서 해야— 읍—”유현진이 새빨개진 얼굴로 강한서의 입을 꽉 틀어막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아름드리로 가요.”뒷좌석에 앉아있는 두 사람을 보는 민경하의 눈에 장난기가 반짝였다. 그러나 그는 진지한 태도로 물었다. “사모님, 약국에 들러서 콘돔 사실래요?”유현진: ...‘강한서는 대체 어떤 인간들을 키운 거야!’그녀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이를 악물었다. “아뇨, 필요 없어요!”강한서 이 멍청이가 이렇게 취했는데, 산다고 해도 무용지물이었다. 유현진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민경하는 두 사람 사이가 이토록 빨리, 벌써 아무런 보호조치도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가까워진 것에 놀라워했다. 입이 막혀 숨쉬기가 어려웠던 강한서가 몸부림 치자 유현진이 그에게 경고를 날렸다.
강한서의 입술은 바로 유현진의 귓가에 있었다. 말할 때마다 내뱉는 숨결은 유현진의 볼과 귀 뒤에 닿았다. 유현진의 귀는 열이 올랐고, 그녀는 강한서의 턱을 밀며 그의 얼굴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 마.”강한서는 그녀의 저항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듯, 또 다가와 그녀의 귓불에 입맞추었다.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해야지.”유현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네가 언제부터 의사 말을 그렇게 잘 들었어? 네가 아플 땐, 의사가 처방해 준 약도 제대로 먹지 않으면서.”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마치 자기가 그랬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이유로는 그가 눈앞에 있는 사람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니 그는 억지를 부리며 말했다. “오늘부터 의사 말대로 하려고.”그는 말하며 유현진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입가로부터 입술까지, 가볍게 뽀뽀했다. 시험하듯 그녀의 입술을 핥던 강한서가 갑자기 멈칫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그는 킁킁 냄새를 맡았다. “왜 그래?”유현진은 강한서의 표정이 이상해지자 참지 못하고 물었다. 강한서는 꽤 주저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한참 후에야 말했다. “너한테서 왜 이렇게 안 좋은 냄새가 나?”“너야말로 냄새나!”말을 마친 유현진이 순간 강한서가 말하는 냄새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녀가 구운 마늘을 먹었던 것이다!강한서는 마늘 냄새를 제일 싫어했다. 특히 생마늘을 가장 싫어했는데, 유현진은 고기를 먹을 때면 늘 마늘을 곁들여 먹어야 하는 스타일이었다. 구운 마늘도 겉에만 살짝 익고 안은 익지 않은 것을 좋아했다. 예전엔 마늘만 먹으면 강한서는 역신을 피하는 사람처럼 유현진을 피해 다녔다. 잠도 손님방이나 서재에서 잤다. 마늘 냄새에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강한서의 모습을 보며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다. “냄새나?”그녀는 입안의 마늘 냄새가 그에게 닿지 않을까, 일부러 강한서의 얼굴을 맞대고 말했다. “난 왜 모르겠지?”마늘
그의 말에 유현진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곧 강한서가 술에 취해 헛소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강한서의 얼굴을 꼬집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너 정말 나랑 자려고 별 헛소리를 다 하는구나.”강한서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헛소리 아니야. 정말 수술했어. 작년에 이미 했다고.”유현진은 그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수술했으면, 흉터는? 작년에 했다면서, 우리 그땐 이혼도 하지 않았는데, 난 왜 네 몸에서 흉터를 본 적이 없는 거야? 요즘 정관수술 기술이 그렇게 많이 발전했어? 복강경 수술이 가능한 거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나지막이 말했다. “흉터 있어.”“뭐?”강한서가 유현진을 놓아주더니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유현진은 강한서를 보며 볼을 붉게 물들였다. 벨트를 푸는 모습에 그녀의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유현진은 늘 자기가 여왕처럼 소파에 앉아 강한서가 그녀 앞에서 옷을 벗는 꿈을 꾸었다. 전엔 매번 그녀가 먼저 옷을 벗고 알몸이 되어도 강한서는 단정한 차림이었던지라 그녀의 수치심은 하늘을 찔렀다. 그녀는 언젠가 두 사람이 입장을 바꾸어 강한서도 수치심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그 장면을 두 눈으로 보게 되니, 두근두근 뛰어대는 심장은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강한서의 모습은 섹시하기 그지없었다. 간신히 붙어있는 이성이 그녀를 잡아주고 있었다. 유현진은 담요를 가져와 강한서의 몸을 가렸다. “술에 좀 취했다고 변태 짓 하지 마, 신고할 거야.”강한서는 그녀의 손에 있는 담요를 꺼내며 속삭였다. “흉터 여기 있어. 봐봐.”유현진은 ‘퍽이나.’라고 생각하면서도 참지 못하고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녀는 강한서가 말한 흉터를 보았다. 2 센티미터 정도 되는, 은밀한 위치에 있는 흉터였다. 다른 사람의 은밀한 부분을 뚫어지게 살펴볼 사람은 없으니, 오랫동안 같이 살았어도 그녀가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유현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너 정말 수술한 거야?”강한서가 어
유현진은 어깨에 기댄 인간을 힐끔 쳐다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유혹했다. “나랑 안 잘 거야?”강한서의 눈꺼풀이 움찔했지만 그는 말이 없었다. 유현진은 그의 턱에 입을 맞췄다. “의사 선생님 말씀 안 들을 거야?”강한서의 눈꺼풀이 또 움직였다. 유현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인턴 기간 끝났어. 넌 해고야.”강한서가 바로 눈을 떴다. “방금 잠들어서, 제대로 못 들었어. 뭐라고 했어?”유현진: ...그녀는 가끔 강한서가 술에 취한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멍청하다고 하기엔 잔머리를 잘 굴렸고, 똑똑하다고 하기엔 정신이 맑을 때면 절대 하지 않을 두서없는 말을 했다. “정관 수술 그 중요한 일을,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냐고?”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말했다. “네가 자꾸 물으니까.”유현진: ?“내가 물어보면 어때서? 안 물어보면 어떻게 알아?”“넌 매번 끝까지 캐묻잖아. 왜 그랬는지, 누구를 위해 그랬는지. 뻔히 알면서, 왜 꼭 내 입으로 직접 말해야 해? 넌 한 번도 날 좋아한다고 말한 적 없잖아. 난 먼저 인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그는 얼굴을 더 깊이 파묻었다. “넌 내 돈을 더 좋아하면서, 내가 만약 널 위해 한 일들이라고 인정했는데 넌 신경도 쓰지 않는다면, 난 내가 정말 바보가 된 것 같아.”유현진이 당황스러워했다. “누가 너한테 내가 네 돈을 더 좋아한댔어?”강한서가 바로 고발했다. “네가 그랬어.”유현진: ...‘언제? 어디서? 무슨 일로? 왜 하나도 기억이 없지?’유현진은 자신이 모함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입을 열었다. “너야말로 나한테 겉모습만 빼면 머리는 텅텅 빈 인간이라고 했잖아.”강한서가 말했다. “싸울 때 화가 나서 한 말은 무효야. 넌 다른 사람한테 푸념한 거였어. 그건 네가 진짜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잖아.”유현진은 강한서와 제대로 시시비비를 따져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말했다. “내가 누구한테 푸념했는데. 내 기억력 안 좋다고 아무렇게나 모함하지 마.”“차
‘그 여자?’유현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여자가 누군데?”강한서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유현진이 이제는 그가 잠든 게 아닌지 생각할 때쯤, 강한서가 나지막이 말했다. “우리 어머니.”유현진은 잠시 멍해졌다. 정신이 맑은 강한서는, 절대 그녀 앞에서 신미정에 대한 나쁜 말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전통 관념이 뼛속 깊이 박힌 사람이었고 어른은 어른이기에, 아무리 나쁘다고 하더라도 절대 다른 사람 앞에서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신미정의 편애는 생판 남인 유현진도 느낄 정도였다. 당사자인 강한서가 어떻게 못 느낄 수 있겠는가?신미정이 작년에 유럽 여행을 다녀온 일도 그랬다. 그녀는 친구들과 한 달 남짓 여행하면서 강한서의 카드를 사용했다. 강한서는 은행에게는 큰 고객이었다. 그의 카드 사용 내역서는 은행에서 직접 사람을 보내 가져다주었다. 내역서는 보통 유현진이 받았다. 그녀가 두 사람의 지출을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명품은 얼마를 샀는지, 식비는 얼마나 들었는지, 생활용품 비용은 얼마인지, 축의금이나 조의금은 얼마를 냈는지, 그녀는 하나하나 전부 기록했다. 이렇게 하면 어느 달, 어떤 부분의 지출이 많아졌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고, 그러면 다음 달 지출을 조금 줄여 전체적인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신미정이 여행을 간 그달, 강한서의 지출 내용은 폭발적인 수준으로 증가했다. 한 달 사이, 유럽 여행으로 신미정은 20억이 넘는 돈을 소비했다. 은행에서 보내온 내역서는 명확했다. 그녀는 절반 이상의 돈을 면세점이나 해외의 명품 가게에 썼다. 게다가 많은 물건들은 심지어 여러 개를 구매했다. 기본 200만 원이 넘는 화장품, 두세 병만 사면 1년은 충분히 쓸 수 있었지만 그녀는 한 번에 2, 30세트를 구매했다. 마치 도매라도 하는 듯이. 유현진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강한서와 직접 얘기할 수도 없었다. 이런 일은 괜히 말을 잘못했다가는 시어머니가 남편 돈을 쓰는 것을 싫어하는 며느리로 보일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