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어안이 벙벙하였다.“네, 맞는데요. 누구시죠?”민경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저희 대표님께서 최연서 씨를 찾으십니다. 혹시 시간 됩니까?”최연서는 다소 경계하는 듯했다.“그쪽 대표님이 누군데요?”민경하가 답했다.“오늘 점심, 유 대표님이 메일을 보낸 상대가 바로 우리 회사 대표님이십니다. 들어는 보셨겠죠?”최연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전 그쪽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는데요.”말을 마친 그녀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민경하는 운전을 천천히 하며 그녀를 따라잡았다.“최연서 씨, 23세 맞으시죠? 인하공업대학교 나오셨고 지난해에 명성대 대학원에 합격하셨네요. 하지만 입학 신청을 하지 않고 바로 취업을 선택하셨죠. 최연서 씨 동생 최연지 씨가 여름 방학에 누군가에게 성추행을 당하던 도중에 실수로 상대를 찔러서 다치게 했다면서요? 듣자 하니 상대가 합의금 6억을 내면 고소를 취하하겠다고 하던데, 당신은 동생을 감방에 보내지 않기 위해 유상수에게 본인을 파셨죠. 그래서 대학원 가는 것도 포기한 거 아닌가요?”최연서는 걸음을 멈추고 창백해진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그녀는 몸을 돌려 민경하를 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도대체 뭘 원하시는 거죠?”민경하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타세요. 최연서 씨. 어쩌면 우리 회사 대표님께서 최연서 씨의 상황을 해결해 주고 다시 학교로 갈 수 있게 도와줄 겁니다.”이미 상대에게 모든 걸 들킨 최연서에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그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차 문을 열었다. 뒷좌석에는 듬직한 남자가 앉아 있었고 얼굴도 아주 잘생겼다. 그러나 무표정한 그의 얼굴을 보니 다소 차가운 오로라가 느껴졌다.강한서는 그녀를 힐끔 쳐다보고는 덤덤하게 말했다.“타세요.”얼른 차에 탄 최연서는 문 쪽으로 바짝 기대어 앉았다.민경하는 차를 돌려 다시 출발하였다. 강한서는 눈앞에 있는 여자를 훑어보았다. 그는 그녀의 얼굴이 익숙하게 느껴졌고 그녀는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해 황급히
최연서는 머뭇거리면서 받았다. 그녀는 서류에 적힌 액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그것은 2억 6천만 원이 이체된 영수증이었고 돈을 받은 사람은 바로 그녀의 동생이 찔러 다치게 만든 성추행범이었다.민경하는 또 다른 한 장의 손으로 쓴 서류를 내밀었다.“배상금은 이미 저희 대표님께서 청산해 주셨습니다. 앞으로 이 사람이 다시는 최연서 씨를 찾아와 괴롭히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대학원도 다시 다니고 싶으면 다시 신청하셔도 됩니다. 물론 신청하고 싶지 않으면 저희 대표님께선 명성대 학장님과 아는 사이이시니 사정을 말해주면 휴학 처리를 해드릴 겁니다. 그럼 그냥 다시 복학하면 됩니다.”최연서의 손이 덜덜 떨리더니 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그녀가 유상수의 제안을 받은 후에도 다시 학교 다닐 기회가 생길 줄은 몰랐다.동생이 다치게 만든 그 사람의 배후엔 세력이 존재했고 당시에 많은 목격자가 있었지만, 그 목격자들은 모두 친구랑 장난치는 것으로 보였다며 말을 바꿨다. 증거 영상도 없어 소송을 걸어도 이길 수가 없었다.게다가 상대는 오히려 그녀의 동생을 상해죄로 고소를 했고 변호사가 말하길 상대는 6억의 배상금만 내면 바로 고소를 취하해 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바로 감방에 보내겠다고 했었다.그녀의 동생은 기껏해야 20살이었고 이제야 인생이 시작되는 나이였기에 그녀는 언니로서 절대 감방 가는 꼴을 지켜볼 수는 없었다.그러나 6억이라는 돈은 평범한 계층의 사람들이 갚기에는 아주 큰 돈이었다.그리고 유상수는 마침 이때 나타나 그녀에게 “썩은 동아줄”을 내밀었다. 별다른 선택이 없었던 그녀는 그 썩은 동아줄을 꽉 붙잡는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인생이 망가진 줄 알았다. 더는 이런 역겨운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을 줄 알았다.최연서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전 확실히 사진이 얼마나 있는지 몰라요. 그 사람은 제 동생이 일하는 가게로 찾아가 뭐 보낼 거 있다면서 휴대폰을 빌렸거든요. 그리고 사진을 몇 장 전송하더라고요. 비록
휴대폰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고 마음 또한 조마조마해졌다.“도대체 뭘 얘기하고 싶은 거죠?”유현진이 말했다.“최연서 씨, 그렇게 긴장하실 필요 없어요. 전 별다른 뜻은 없거든요. 그냥 아무래도 이 일은 직접 만나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래요. 내일 신리단길 근처에 있는 카페로 와주세요. 만나서 얘기해요. 만약 저희가 만난 후에도 제가 하는 얘기에 흥미가 안 생기면 바로 거절하셔도 돼요.”최연서는 망설이고 있었다. 강한서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입 모양으로 최연서에게 말했다.“만나세요.”최연서는 입술을 말아 물었다.“그래요. 그럼 내일 봬요.”전화를 끊은 최연서는 강한서에게 시선을 옮겼다.“왜 만나보라고 한 거죠?”강한서가 덤덤하게 대답했다.“그 쪽에게 전화를 건 사람이 바로 제 애인이에요.”“...”최연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뭐야, 부부가 상의도 없이 날 찾아온 거야?'강한서가 계속 말을 이었다.“내일 약속 시간대로 도착하세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다 수락하시고요. 그러면 제가 말한 조건 그대로 해결해 드릴 겁니다.”이렇게 좋은 조건을 최연서는 당연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다른 한편, 클라우드 아파트.유현진이 전화를 끊자마자 차미주가 황급히 물었다.“뭐래, 만나주겠대?”유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내일 오전에 만나기로 했어.”“내가 같이 가줄까?”유현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이런 일은 사람이 많을수록 상대가 얘기하기 더 어려워할 거야.”탐정 케이가 그녀에게 보낸 소식엔 유상수에게 최연서라는 내연녀가 있다는 소식도 포함되어 있었고 최연서는 유현아보다도 나이가 어렸다.유현진은 원래 이 사건을 빌미로 백혜주를 괴롭힐 생각이었고 유상수와 백혜주를 사이를 이간질하게 해 개처럼 싸우게 할 생각이었다.그러나 최연서의 상황을 알게 되고 최연서의 사진 또한 보게 된 그녀는 바로 그 생각을 접었다. 최연서를 이용하여 백혜주를 괴롭히기엔 최연서는 너무 어렸다.그녀가 원한 건 그들끼리 서로 싸우는 것뿐만 아니라
유현진이 말했다.“동생분이 작년 여름 방학에 성추행을 당하고 상해죄로 되레 고소당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억대의 배상금을 원했을 거예요, 맞죠?”어젯밤 불쑥 찾아온 강한서 덕에 그녀는 이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그건 중요하지 않아요.”유현진이 천천히 말했다.“최연서 씨는 아마 돈이 급했을 거예요. 그리고 마침 유상수가 최연서 씨를 찾아갔겠죠. 돈을 빌려주겠다면서 스폰을 제안하고 내연녀가 되면 매달마다 연서 씨한테 2000만 원씩 주면서 빚도 갚아주겠다고 했을 거예요. 연서 씨에겐 별다른 선택지가 없으니 물론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겠죠. 그렇게 3년간 유상수의 내연녀가 되었고, 맞죠?”떠오르는 그간의 기억에 최연서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학교 세미나 때, 그녀는 룸메이트를 따라 면접을 하러 가다가 우연히 유상수를 만나게 되었다.그리고 취업 강연을 할 때 그녀는 누군가가 무대 아래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녀가 강연을 마치자마자 유상수가 바로 무대 위로 올라와 그녀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했었다.당시 그녀의 시험 성적이 나오지 않은 상태였고 대학원까지 갈 생각이었기에 그녀는 당연히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그러나 당시 그녀는 취업 설문지에 그녀의 정보를 적었기에 이틀 후에 바로 유상수의 연락을 받게 되었고 그녀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고 했다. 최연서는 이런 그의 행동에 엄청난 반감을 느끼고 있었고 게다가 유상수는 그녀의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더 많았기에 그는 유상수를 역겹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유상수의 번호를 차단 설정해 놓았었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동생에게 일이 생겼고 기댈 곳이 없었던 그녀는 유상수의 내연녀가 되어버렸다. 그간 일들을 떠올리니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그래서 그녀는 다소 날이 선 어투로 말했다.“그래서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죠?”유현진이 천천히 말했다.“최연서 씨, 왜 하필이면 당신에게 돈이 필요할 때 마침 유상수가 연락했는지
최연서는 카드를 받지 않았다.그녀는 유현진에게 물었다.“제가 뭘 해주길 바라는 거죠?”유현진은 고개를 떨구고 사진을 쳐다보았다.“연서 씨도 봤으니 아실 거예요. 연서 씨가 저보다 제 돌아가신 엄마를 더 닮았다는 것을요. 유상수는 우연히 당신을 찾은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은 돌아가신 제 엄마와 닮은 연서 씨 얼굴을 보고 일부러 접근한 거예요.”최연서는 입술을 말아 물었다.“그 사람이 유현진 씨 어머니에게 미련이 남았나 봐요.”유현진은 차갑게 웃었다.“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그 사람은 누구도 사랑하지 않아요. 그냥 자신의 욕심만 채우면서 본인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에요.”그녀는 고개를 들었다.“연서 씨가 절 도와서 유상수와 백혜주가 저희 엄마의 죽음을 사주했다는 증거만 찾아주시면 돼요. 전 그들에게 꼭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거든요.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게 말이죠.”그녀의 눈빛에서 느낀 원망과 증오의 감정에 최연서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제가...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유현진의 눈빛이 다소 풀어졌다.“제가 알려드릴게요...”그녀와 헤어지기 전에 유현진의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동생이 아직 어리다고 들었어요. 계속 학교 다니게 해주세요. 다음 수능 칠 수 있게 도와드릴 수 있어요. 제게 남동생이 있는데 공부 잘하거든요. 원하시면 제가 동생에게 말해 연서 씨 동생에게 과외라도 해드릴게요. 여동생이 아직 어리니 그래도 학교는 다녀야죠. 아는 것이 많을수록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선택지도 많아지거든요. 그리고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도 알게 될 거예요.”최연서는 감격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네, 제가 동생과 상의해 볼게요.”유현진과 헤어진 후 최연서는 바로 강한서에게 전화를 했고 유현진이 그녀에게 했던 말을 빠짐없이 강한서에게 알렸다.강한서는 덤덤하게 답했다.“그녀가 시킨 대로 하세요.”전화를 끊자마자 민경하가 말했다.“남의 손을 빌려 복수를 하는 것과 사람 마음을 흔드는 방면에서는
유현진은 친한 사람들 앞에서는 활발한 E 성향을 보였지만 친하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는 소심한 I 성향을 보였다.드라마 팀으로 들어간 지 일주일이 되었지만 많은 배우와 스태프들과 별로 접촉하지 않았기에 너무나도 그들이 낯설었다. 그녀는 그녀에게 다가오는 사람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것을 제외하고는 기타 시간엔 음식을 먹거나 휴대폰만 들여다보았었다.마침 페이스북을 보고 있었을 때, 강한서가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저녁 같이 먹어.」유현진은 휴대폰을 들고 눈앞에 있는 음식을 찍어 보내줬다.「이미 먹고 있어.」강한서가 빠르게 답장했다.「누구랑?」유현진이 답했다.「한열 씨가 다른 지방으로 촬영가기 전에 안 감독님이 회식을 제안했거든.」한열이 다른 지방으로 간다는 말에 강한서는 기분이 상쾌해졌다.하지만 그래도 형식적으로 물었다.「한열 씨 촬영은 이제 더 없어?」「그건 아니야. 한열 씨는 톱스타니까 스케줄이 많아. 사실 원래 카메오로 출연하기로 했어. 그렇지 않으면 톱스타가 이런 신도 별로 없는 조연을 맡는다는 건 말도 안 되잖아. 그쪽에서 촬영 끝나면 바로 다시 촬영장으로 복귀할 거야.」다시 돌아올 거라는 말에 강한서의 얼굴이 굳어졌다.송민준뿐만 아니라 현재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한열까지 라이벌로 늘어났으니 그는 유현진과 결혼하지 않는 이상 절대 안심할 수가 없었다!강한서가 입술을 말아 올리며 물었다.「그럼 회식 언제 끝날 것 같아? 내가 데리러 갈게.」「됐어. 아까 들어보니까 2차도 간대. 분명 늦게까지 회식할 거야. 난 이따 안 감독님과 함께 차 타고 가면 돼.」몇 분 지나지 않아 강한서가 또 문자를 보냈다.「오랫동안, 네 목소리 못 들어본 것 같아.」지난번 강한서가 촬영장에 방문한 뒤로 두 사람은 며칠 동안이나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촬영장으로 복귀한 유현진은 아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아무리 강한서가 전화를 쳐도 그녀는 촬영 중이거나, 자고 있거나, 대사를 외우고 있을 때였기에 받지 못했다.강한서는 그녀가 일에
유현진은 입술을 말아 물었다. 다시 기본 화면으로 돌아와 채팅 기록을 복구시켰다.그러자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녀는 어쩐지 이혼한 후에 강한서와 텔레파시라도 통한 것처럼 그녀의 기분을 바로 알아맞히고 심지어 그녀가 언제 배고픔을 느끼고 있는지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그녀는 그동안 그와 마음이 통한 줄 알았다. 통하긴 개뿔! 강한서는 그가 이훈을 수능 장소로 데려다주고 있을 때 몰래 그녀의 휴대폰을 열고 자신의 카톡 아이디 차단을 풀었던 것이었다!그렇게 두 달 동안이나 그는 아주 대놓고 그녀의 스토리를 구경하고 있었다!그는 그동안 아주 태연하게 연기를 잘해왔다. 전에 그와 서로 계좌이체를 하며 대화를 나누었을 땐 그렇게 빨리 차단 풀리고 싶지 않다면서 그녀에게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었다.실력을 보여주긴 개뿔!그는 자신이 몰래 그녀의 휴대폰으로 카톡 차단 풀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한 말이었다!유현진은 이를 짓이기더니 강한서에게 카톡으로 중지 이모티콘을 보내고는 바로 다시 차단해 버렸다.유현진이 카톡으로 중지 이모티콘을 보낸 것을 본 강한서는 들켰다는 사실에 황급히 다시 카톡을 보냈다. 그러나 결과는 전송 실패였다. 유현진이 다시 그를 차단한 것이었다.“...”강한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그는 자신의 입방정으로 “목소리를 듣고 싶다”라는 말을 한 것에 대해 후회했다.강한서가 유현진에게 문자를 보내 설명하려고 할 때 휴대폰이 울렸다.한주시 상인 단체 회장이 그에게 언제 올 것이냐고 연락한 것이었다.강한서는 상인 단체 회식에 갈 생각이 없었지만, 현재 회장과 그의 아버지는 친한 친구였고 또 이미 여러 차례 요청을 거절한 견적이 있었기에 이번엔 더는 거절할 수가 없어 회식 장소로 오게 되었다.“이미 도착했습니다. 곧 올라갈 거예요.”“그래, 내가 마중을 보내지.”전화를 끊은 강한서는 유현진에게 5200만 원을 계좌이체 하면서 메시지도 보냈다.「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 줘.」유현진은 그에게 10
유현진은 전 여사에게서 연락받은 일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정인월의 생일잔치에서 유현진은 전 여사의 의심에 완전히 불을 지폈다. 전 여사가 신미정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랐던 이유는 남편이 사업적으로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게 신미정이 전 여사의 남편이 바람났을 뿐만 아니라 사생아까지 있다는 사실을 숨긴 것을 용서하는 이유는 되지 못했다. 전 여사는 신미정을 ‘친구’로 생각했으니 말이다.생일잔치에서 폭죽이 고장 난 것도 아마 전 여사와 연관 있을 것이다. 전 여사는 유현진과 손을 잡고 싶어 했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전 여사는 폭죽에 손을 쓰고도 조사 하나 받지 않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었으니, 괜히 잘못 엮였다가는 뒤통수를 맞고도 무슨 영문인지 모를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전 여사를 곧바로 차단 목록에 넣어버렸다.“민영 씨, 가방 뭐에요? 너무 예뻐요.”여배우 주은비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녀는 드라마에서 송민영과 같은 반, 같은 기숙사의 룸메이트 역할을 맡았다. 무용학과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춤을 아주 잘 췄다.방이진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안 예쁠 리가 있겠어요? 에르메스 프리미엄 회원만 살 수 있는 한정판인데, 저는 쇼장에서만 본 적 있어요.”여배우란 착장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직종이었다. 허영심 때문이라기보다는 브랜드 평판과 연관된 일이기 때문에 신경을 쓰는 게 당연했다.특히 명품 브랜드에서는 브랜드 평판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만약 패션 센스가 떨어진다면 명품 브랜드의 광고 모델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중요한 상품이 모델 때문에 값싸 보이면 안 되니 말이다.송민영이 바로 전형적인 실례였다. 그녀가 금방 뜨기 시작했을 때, 스타일이 뒤떨어지고 사복 패션이 엉망진창이라 레드카펫에서 오트 쿠튀르 드레스 하나도 빌리지 못했다.레드카펫이 끝나고 나서 팬들은 ‘저렴한 드레스를 입은 송민영’, ‘패션은 오트 쿠튀르가 아니다’, ‘레드카펫에서 국산품을 밀고 가는 투지’ 등 말로 송민영을 칭찬하기에 바빴다. 아마
한열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하리는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그의 말에 속상해 눈물을 흘리는 것이 분명했다.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를 위해 돌을 막아줬을 리가 없었다. 그런 마음에 아니라면, 그에게 장난을 치며 관심을 끌었을 리가 없었다. ‘조금 전 내가 너무 상처 되는 말을 하긴 했어.’여전히 고민하는 한열의 귓가로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한열이 멍한 표정으로 옆을 바라보았다. 신하리가 배를 끌어안은 채 폭소하고 있었다. 눈물까지 찔끔 흘린 그녀는 웃느라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똥강아지, 너 솔직하게 얘기해. 태어나서 한 번도 연애해 본 적 없지?”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잇는 신하리의 얼굴엔 슬픔이라곤 전혀 없이 온통 장난기뿐이었다. 그제야 또라이 같은 여자에게 농락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한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윤명훈도 운전석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티베탄 마스티프는 사촌 누나 앞에서만 순한 양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한열을 길들이는 사람이 있다니. 역시 뛰는 놈 위에는 나는 놈이 있는 법이었다. 수치와 분노를 동시에 느낌 한열이 바득 이를 갈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신하리를 물어버릴 것처럼 말했다. “제가 사귀었던 사람은 신하리 씨가 손가락 다 사용해도 부족할 거예요!”“소꿉놀이 같은 연애 말하는 거야?”신하리가 야유 섞인 말투로 한열을 놀렸다. “설마 첫 키스 상대가 나였던 거 아냐?”순간 뜨끔한 한열의 몸이 어색하게 힘이 들어갔다. 그저 한열을 놀리려던 신하리는 그의 반응에 당황하며 눈을 커다랗게 떴다. “정말 나야?!”한열이 창피함을 못 이겨 버럭 화를 냈다. “아니거든요!”하지만 한열은 거짓말엔 너무 소질이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신하리에게 이렇게 빨리 모태 솔로라는 사실을 들켰을 리도 없었을 것이다. 거짓말이 소용없다는 것을 인식한 한열이 자포자기하며 말했다. “제가 신하리 씨와 전에 했던 건 첫키스 아녜요. 제가 일부러 신하리 씨 기분 더럽게 하려고 한
한열이 입술을 짓이겼다. “제가 신하리 씨와 공개 연애를 선택한 건 신하리 씨가 저에게 감독님을 소개해주길 바랐기 때문이었어요. 우린 서로가 원하는 걸 해주기로 계약했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제가 신하리 씨를 도와준 거라고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신하리 씨는 이번에 저 때문에 진짜로 다쳤어요. 이건 제가 신하리 씨에게 빚 진 거예요.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뭐든지 얘기해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도울 테니까.”멈칫한 신하리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눈앞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탑 아이돌을 쳐다보았다. ‘이 바닥에 아직도 이렇게 단순한 자식이 있었어?’아무리 신하리가 한열에게 유리한 계약 조건을 달았다고 하더라도 계약 연애는 한열에겐 이득보단 손해가 더 많았다. 게다가 유명한 감독과 작품을 하고 싶다면 사촌 형인 송민준에게 부탁해도 충분했다. 굳이 신하리와 엮일 필요가 없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 한열의 SNS 댓글은 눈에 띌 정도로 악플이 늘었다. 여자친구인 신하리도 공개 연애 후 수많은 악플을 받고 있었다. 심지어 극단적인 성향을 지닌 팬들은 그녀의 영정사진을 만들어 죽은 쥐과 칼날과 함께 넣어 택배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니 한열 쪽 상황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조금 전 신하리가 한열 대신 돌을 맞은 건 그가 얼굴을 다쳐 연예계 생활에 영향을 끼칠까 봐 걱정된 것도 있었지만 사실은 죄책감 때문에 한열에게 이렇게라도 빚을 갚아야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이 자식, 정말 멍천한 거였잖아? 이렇게까지 정중하게 신세를 졌다며 은혜를 갚겠다고 하다니. 이런 멍청해서야 대체 어떻게 인지도를 올릴 수 있었던 거야?’‘고담시 한씨 가문은 모두가 알아주는 명문가잖아. 그런 집안에서 대체 어떻게 이렇게 멍청한 아들이 나올 수 있는 거지? 눈치 빠르고 꿍꿍이가 많은 사촌 누나와 형에, 심지어 12살짜리 막내 동생도 쟤보다는 똑똑하겠어.’잡혀가서도 인질범 편을 들어줄 것 같은 한열의 모습에 신하리는 이상하게 마음이 약해졌다. 한
윤명훈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인터넷에 떠도는 스캔들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동안, 이 미친 인간들은 경찰서 앞에서 소란을 피웠다. 한열의 반항적인 성격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윤명훈은 충분히 버거웠다. ‘하지만 이젠 한 명이 더 늘었잖아. 젠장. 그 놈의 돈 벌기가 점점 더 힘드네!’비록 화가 치밀긴 했지만 의식을 잃은 신하리와 한열 몸에 묻은 피를 보자 윤명훈도 걱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신하리 씨는 어때?”“안 죽어요.”한열이 신하리가 꼬집던 허리를 어루만지며 쓰러진 척 연기하는 여자를 노려보았다. “언제까지 연기할래요?”그제야 천천히 눈을 뜬 신하리는 한열의 눈빛과 반말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때, 누나 연기가 좀 실감났어?”흥, 콧방귀를 뀐 한열이 시선이 저도 모르게 신하리의 뒤통수를 힐끗 쳐다보았다. 머리숱이 많아 얼마나 많이 다친 건지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날아온 돌멩이는 힘이 꽤 실려있었다. 옆에 있던 한열의 귀에도 돌멩이가 무겁게 머리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신하리는 얼굴이 창백해진 것을 제외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녀는 심지어 티슈를 뽑아 뒤통수의 피를 닦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열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티슈로 상처 닦으면 안 돼요. 더럽잖아요.”“더러우면 걸레라고 하겠지, 왜 티슈라고 부르겠어?”신하리가 억지스러운 논리를 늘어놓았다. “티슈로 엉덩이를 닦을 땐 왜 더럽다고 하지 않는 거야?”한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가 티슈로 엉덩이를 닦지, 치질을 닦는 건 아니잖아요.”멈칫하던 신하리가 순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장난스레 말했다. “너 아이돌 이미지는 버린 거야? 아이돌 입에서 어떻게 엉덩이니, 치질이니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어?”한열이 불퉁한 말투로 대답했다. “머리 상처에 출혈이 꽤 있었어요. 티슈로 닦으면 상처에 먼지가 붙어서 염증이 날 거예요. 나중에 흉터
한열의 마음에 남아있던 감동이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두 사람이 신고를 마치고 나오자 경찰서 밖은 이미 수많은 기자와 팬들로 둘러싸였다. 경찰서 앞이었던 만큼 경찰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어 현장은 그나마 평화로웠다. 한열이 신하리를 감싸며 차에 오르던 그때,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한열!”한열이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란 크기의 돌멩이가 한열을 향해 날아왔다. 한열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앞으로 누군가 나타나 온 몸으로 돌멩이를 막았다. 신하리였다. 그 돌은 신하리의 뒤통수에 부딪혔다. 극심한 통증에 신하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몸이 앞으로 휘청였다. 한열이 무의식적으로 신하리를 부축했다. 미간을 찌푸린 신하리가 손을 뻗어 돌멩이에 맞은 곳을 만졌다. 뜨뜻하고 축축한 촉감이 느껴졌다. 손바닥을 펼치자 빨간색의 피로 흥건했다. 신하리의 부축하고 있던 한열의 손이 움찔 떨렸다. 그의 얼굴은 섬뜩할 정도로 창백했다. 돌을 던진 사람이 큰소리로 질타했다. “개 같은 자식!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투표해서 널 데뷔시켰는데. 연애도 부족해서 이젠 뭐, 성추행? 팬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심지어 옆에서 질서를 유지하던 결찰들도 미처 반응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돌을 던진 그 사람이 달려들려고 하자 경찰이 얼른 앞으로 나서 제압했다. 그 사람은 심지어 바닥에 제압당한 채 여전히 욕설을 내뱉으며 난동을 부렸다. “네가 이런 인간이란 걸 진작 알았다면 차라리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투표를 했을 거야! 넌 정말 네가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정말 팬들이 네 재능에 반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 그 반반한 얼굴 아니었으면 너에게 투표한 사람이 있긴 했을 것 같아? 팬들 덕에 넌 아이돌이 될 수 있었던 거야. 팬들이 아니면 넌 아무 것도 아니라고!”구경 중이던 사람들과 기자들이 미친 듯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한열은 신하리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그녀의
신하리는 말하며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 “저 정신병 있는 거 다들 아시죠?”그 말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얼마 전, 신하리가 한 드라마 촬영 중 현장에서 갑자기 귀신에 쓰인 사람처럼 아무런 안정장비도 하지 않은 채 6미터가 넘는 곳에서 뛰어내려 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다들 신하리에게 왜 뛰어내렸냐고 묻자 그녀는 아래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그러나 당시 상황을 증명해 줄 동영상은 없었고 그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듣고 지나보냈었지만 지금 신하리의 입으로 직접 그녀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말하니 그때의 사건을 떠올린 사람들은 순산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 이건 분명한 경고였다. 마치 난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라 너에게 정말 염산을 뿌려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으니 내 말을 장난으로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신하리의 등장으로 [아기 고양이]의 라이브 방송의 인기는 더 뜨거워졌다. 댓글에도 다양한 의견이 더 많아졌다. [사랑에 눈이 먼 연예인 1위! 보상은 산에서 산나물 캐기 18년!][신하리 미친 거 아녜요? 이렇게 대놓고 협박이라니.][면전에 협박하는데 아직도 신고하지 않는다고? 증거가 없는 거야, 아님 애초부터 한열을 모함하고 있었던 거야?][성추행을 한 사람도 경찰서에 신고했는데 당한 사람은 대체 뭐가 무서워서 신고하지 않는 거야.][지난번에 스스로 신고한 인간은 아직도 감옥에서 사회봉사 중이예요.][만약 지금 당장 신고한다면 전 아기 고구마 말을 믿을 거예요. 계속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는 건 오히려 한열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작당 모의에 더 가까워 보여요.][지금 루머를 퍼뜨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 됐어요. 스크린샷 몇 장이면 바로 스토리를 짤 수 있으니까요.]여론이 점차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멀어지자 [아기 고구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아
신하리의 라이브 방송 연결 요청에 [아기 고구마]가 잠시 멍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옆을 바라보던 그녀가 곧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 미세한 행동을 포착하지 못했지만 한현진에겐 들키고 말았다. [아기 고구마]는 혼자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그녀의 옆에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모인 사람들과 진실 규명을 바라는 팬들이 미친 듯이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겁쟁이! 네가 그러고도 무슨 남자야! 사건이 터지면 뒤로 물러나 여자친구가 나서서 모든 걸 감당하게 하다니. 네 팬이었다는 게 너무 후회돼!][끼리끼리는 과학이라잖아요. 한열이 이런 쓰레기라면 신하리도 그리 좋은 인간은 아니지 않겠어요? 연결해요.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죠.][언니! 얼른 입도 벙긋 못하게 증거를 뿌려버려요. 저런 인간은 아이돌을 할 자격이 없어요.][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난 영원히 한열을 믿을 거야!][덕질에 도덕 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나보네.]...[아기 고구마]는 사람들의 부추김에 신하리와 라이브 방송을 연결했다.신하리의 모습이 라이브 방송 화면에 나타나자 카메라는 신하리의 얼굴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후드 차림에 화장도 하지 않은 신하리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그쪽 대신 경찰에 신고했어요. 얼른 오세요.”카메라가 홱 회전하며 한주 용하구의 경찰서 대문을 비췄다. 그에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순간 멍해졌다. ‘신하리, 미친 거야? 어제 저녁에도 한열 대신 해명해주더니.’[아기 고구마]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 전 신고한다고 안 했어요.”신하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한열이 그쪽을 성추행했다면서 신고를 안 해요? 성모 마리아세요? 방송으로 울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보다 신고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경찰은 그쪽을 도와줄 수 있는데도 싫다고요?”네티즌들도 신하리의 말을 따라 댓글을 남겼다. [맞아요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