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진은 입술을 말아 물었다. 다시 기본 화면으로 돌아와 채팅 기록을 복구시켰다.그러자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녀는 어쩐지 이혼한 후에 강한서와 텔레파시라도 통한 것처럼 그녀의 기분을 바로 알아맞히고 심지어 그녀가 언제 배고픔을 느끼고 있는지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그녀는 그동안 그와 마음이 통한 줄 알았다. 통하긴 개뿔! 강한서는 그가 이훈을 수능 장소로 데려다주고 있을 때 몰래 그녀의 휴대폰을 열고 자신의 카톡 아이디 차단을 풀었던 것이었다!그렇게 두 달 동안이나 그는 아주 대놓고 그녀의 스토리를 구경하고 있었다!그는 그동안 아주 태연하게 연기를 잘해왔다. 전에 그와 서로 계좌이체를 하며 대화를 나누었을 땐 그렇게 빨리 차단 풀리고 싶지 않다면서 그녀에게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었다.실력을 보여주긴 개뿔!그는 자신이 몰래 그녀의 휴대폰으로 카톡 차단 풀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한 말이었다!유현진은 이를 짓이기더니 강한서에게 카톡으로 중지 이모티콘을 보내고는 바로 다시 차단해 버렸다.유현진이 카톡으로 중지 이모티콘을 보낸 것을 본 강한서는 들켰다는 사실에 황급히 다시 카톡을 보냈다. 그러나 결과는 전송 실패였다. 유현진이 다시 그를 차단한 것이었다.“...”강한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그는 자신의 입방정으로 “목소리를 듣고 싶다”라는 말을 한 것에 대해 후회했다.강한서가 유현진에게 문자를 보내 설명하려고 할 때 휴대폰이 울렸다.한주시 상인 단체 회장이 그에게 언제 올 것이냐고 연락한 것이었다.강한서는 상인 단체 회식에 갈 생각이 없었지만, 현재 회장과 그의 아버지는 친한 친구였고 또 이미 여러 차례 요청을 거절한 견적이 있었기에 이번엔 더는 거절할 수가 없어 회식 장소로 오게 되었다.“이미 도착했습니다. 곧 올라갈 거예요.”“그래, 내가 마중을 보내지.”전화를 끊은 강한서는 유현진에게 5200만 원을 계좌이체 하면서 메시지도 보냈다.「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 줘.」유현진은 그에게 10
유현진은 전 여사에게서 연락받은 일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정인월의 생일잔치에서 유현진은 전 여사의 의심에 완전히 불을 지폈다. 전 여사가 신미정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랐던 이유는 남편이 사업적으로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게 신미정이 전 여사의 남편이 바람났을 뿐만 아니라 사생아까지 있다는 사실을 숨긴 것을 용서하는 이유는 되지 못했다. 전 여사는 신미정을 ‘친구’로 생각했으니 말이다.생일잔치에서 폭죽이 고장 난 것도 아마 전 여사와 연관 있을 것이다. 전 여사는 유현진과 손을 잡고 싶어 했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전 여사는 폭죽에 손을 쓰고도 조사 하나 받지 않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었으니, 괜히 잘못 엮였다가는 뒤통수를 맞고도 무슨 영문인지 모를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전 여사를 곧바로 차단 목록에 넣어버렸다.“민영 씨, 가방 뭐에요? 너무 예뻐요.”여배우 주은비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녀는 드라마에서 송민영과 같은 반, 같은 기숙사의 룸메이트 역할을 맡았다. 무용학과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춤을 아주 잘 췄다.방이진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안 예쁠 리가 있겠어요? 에르메스 프리미엄 회원만 살 수 있는 한정판인데, 저는 쇼장에서만 본 적 있어요.”여배우란 착장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직종이었다. 허영심 때문이라기보다는 브랜드 평판과 연관된 일이기 때문에 신경을 쓰는 게 당연했다.특히 명품 브랜드에서는 브랜드 평판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만약 패션 센스가 떨어진다면 명품 브랜드의 광고 모델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중요한 상품이 모델 때문에 값싸 보이면 안 되니 말이다.송민영이 바로 전형적인 실례였다. 그녀가 금방 뜨기 시작했을 때, 스타일이 뒤떨어지고 사복 패션이 엉망진창이라 레드카펫에서 오트 쿠튀르 드레스 하나도 빌리지 못했다.레드카펫이 끝나고 나서 팬들은 ‘저렴한 드레스를 입은 송민영’, ‘패션은 오트 쿠튀르가 아니다’, ‘레드카펫에서 국산품을 밀고 가는 투지’ 등 말로 송민영을 칭찬하기에 바빴다. 아마
“짝퉁이라고 하기에는 포장도 있고 증서도 있었어요. 제 친구가 잠깐 빌려서 사진 찍으려고 물어본 적 있는데 팔기만 하고 빌려주지는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아무튼 후에 제 친구가 돈을 모아서 다시 사려고 했을 때는 이미 팔렸다고 했어요. 그러니 가짜일 리는 없을 거예요. 게다가...”그 사람은 잠깐 멈칫하며 송민영의 가방을 바라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민영 씨의 가방이 중고 거래 사이트의 가방이랑 코드가 같은 것 같은데요.”이 말이 나오자마자 현장의 분위기는 약간 미묘해졌다. 중고 거래 사이트에 관한 얘기는 애초에 패션계의 떠오르는 여왕인 송민영에게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사람들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송민영을 바라봤다. 송민영은 예상 밖으로 덤덤한 태도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잘못 본 거 아니에요? 저는 직접 예약해서 샀거든요.”유현진은 살짝 머리를 들었다가 다시 숙이고 휴대폰을 만졌다.따지고 보면 송민영은 직접 예약해서 산 것이 맞았다.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말이다.유현진은 딱히 폭로할 생각이 없었다. 거래는 이미 끝났고 더 이상 신경 쓸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6억짜리 물건을 10억을 받고 팔았으니, 비밀 유지쯤은 충분히 해줄 수 있기도 했다.게다가 송민영을 폭로하기 위해서는 이 가방이 원래 자신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밝혀야 했다. 남들의 눈에 유현진은 에르메스 가방을 살 돈도 능력도 없었기 때문에 설명하기가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저 잠자코 있었다. 송민영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앞에서 당당하게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방이진이 송민영을 도와 설명을 보탰다.“민영 언니가 패션계에서의 영향력으로 봤을 때, 이 정도 가방을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겠어요?”유현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는 방이진이 아무것도 몰라서 할 수 있는 말이었다.에르메스는 콧대가 높기로 유명하다. 아주 친한 합작 관계가 아닌 한 평등하게 무시하는 것이 에르메스의 일관된 태도이다. 이게 바로 어떤 상품은 아무리 재벌 집 사모님이라고 해도 사지
“그 예능 저도 본 적 있어요! 옷방 문이 열리자마자 꿈을 꾸는 줄 알았잖아요. 저는 꿈에서만 본 적 있는 장면이었어요.”“맞아요, 그런 집을 꿈 꾼 적 없는 여자는 없을 거예요.”“민영 씨 너무 겸손해요. 그렇게 귀한 가방을 왜 안 들고 다녀요? 저 같으면 매일매일 다른 가방을 골라서 들고 다닐 거예요!”송민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여러 브랜드에서 받은 선물일 뿐이에요. 제가 직접 산 건 별로 없어요. 대부분 일 때문에 받은 거라 이제는 유행이 지나 쓰지도 못해요. 조만간 시간을 내서 안 쓰는 건 버리거나 선물하든지 해야겠어요.”이 말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부럽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했다. 적어서 몇백만 원은 하는 가방들을 버리거나 선물한다니, 웬만한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말이었다.방이진은 돌연 머리를 숙인 채 휴대폰을 닦고 있는 유현진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언니, 안 쓰는 가방은 현진 씨한테 버리는 거 어때요?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다고는 하지만 급이 너무 떨어져도 보기 안 좋잖아요. 오늘처럼 저희끼리 만나는 자리에서는 상관없는데 홍보할 때도 저런 가방을 들면 부끄러움은 저희 몫이에요.”유현진은 동작을 멈추고 머리를 들더니 방이진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물었다.“제 가방이 뭐 어떻다고요?”방이진은 가식적인 목소리로 받아쳤다.“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 현진 씨. 나도 현진 씨를 위해 하는 말이니까. 현진 씨 아직 연예계의 규칙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지? 자고로 여배우는 패션이 가장 중요한 법이야. 근데 현진 씨 출연료로는 명품을 사기에 턱도 없잖아? 얼마 없는 출연료를 패션에 투자하면 성형할 돈도 모자랄 텐데, 민영 언니가 가방 정리를 하는 김에 몇 개 받으면 돈 절약도 하고 좋잖아.”방이진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진짜 유현진을 걱정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의 말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롱으로 가득했다. 언제부터 연예계가 이런 곳이 되었는지, 유현진은 어이없을 따름이었다.유현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송민영이 자선가의
유현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송민영 씨. 그러면 저도 내외하지 않을게요. 내일까지 기다릴 것 없이 그냥 지금 가면 안 돼요? 다들 시간 있을 때 같이 구경해요. 송민영 씨 이 근처에 살잖아요.”유현진은 또 장난스러운 말투로 송민영의 거절을 미리 거절했다.“내일이 되면 생각이 바뀔까 봐서요.”송민영은 눈에 띄게 멈칫했다.‘이혼하고 나서 거지가 된 거야 뭐야? 내가 비꼬는 걸 이해 못했나? 진짜 어디 잘못된 거 아니야?’유현진의 말에 거절하지 못할 처지에 놓인 송민영은 마지못해 대답했다.“다들 듣고 있는 자리에서 한 약속인데 어길 리 있겠어요? 하지만...”“그러면 지금 출발할까요?”유현진은 송민영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말머리를 잘랐다. 그러고는 잔뜩 신바람 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며 이어서 말했다.“다들 꿈과 같다고 비유한 옷방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너무 보고 싶어요.”방이진은 콧방귀를 뀌며 생각했다.‘쓰레기통 취급당하면서 신이 난 거야? 흥, 평생 거지로 살 운명이네.’방이진은 또 머리를 돌려 송민영을 바라보며 말했다.“언니, 애들한테도 구경시켜 줘요. 애들 지금 침 흘리게 생겼어요.”송민영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흔쾌히 동의했다.“좋아요, 그러면 감독님한테 얘기하고 나서 가볼까요?”송민영이 엘 하트 펜션에 있는 집은 호텔과 차로 10분 거리에 있었다.엘 하트 펜션의 집은 적어도 몇십억 원은 있어야 살 수 있었다. 송민영의 경우 비록 대출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계약금을 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했다.8명의 여배우는 차량 두 대로 나눠서 송민영의 집에 도착했다. 출입문을 열자마자 고풍스러운 유럽식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한 화려한 샹들리에가 눈에 들어왔다. 화려하기는 하지만 졸부 티가 팍팍 나는 인테리어였다. 하지만 졸부 티가 나면 뭐 어떻겠는가? 줄부도 엄연한 부자인데 말이다.사람들은 집안을 둘러보며 감탄하기 시작했다. 송민영은 여전히 겸손한 태도로 말했다.“인테리어는 약간 대충한 티가 나죠? 이
유현진은 머리를 돌려 방이진을 바라봤다. 지난번 그녀에게 이런 식으로 말했던 사람은 전 여사였다. 똑같기로는 두 사람이 출생의 비밀로 인해 헤어진 모녀가 아닌지 의심 갈 지경이었다.‘이러다 아주 송민영 찬송가까지 만들겠어.’전 여사는 남편을 위해 신미정을 감쌌다고 하지만, 방이진은 도대체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성적으로 분석해 봤을 때, 방이진은 송민영에게서 받아먹을 게 별로 없었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건 둘째 치고 인맥이 삼류 제작진에 멈춰있는 데다가 본인 대본 하나 제대로 고르지 못하는 사람이 송민영이었으니 말이다.‘잠깐, 혹시 이거 엄청난 고단수의 돌려 까기 아니야?’유현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보다는 방이진 씨가 더 급해 보이는데요? 혹시 원하면 민영 씨한테 물어봐 봐요. 두 사람 그렇게 사이가 좋은데 설마 이진 씨를 빈손으로 돌려보내겠어요?”이런 일에는 전문가급으로 두뇌 회전이 빨랐던 방이진은 금세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아니야, 이제 또 호텔로 돌아가야 하는데 시간이 모자랄까 봐 그러지. 장난 좀 친 걸로 왜 그렇게 말해. 민영 언니가 버리는 가방을 받아 가지는 건 창피한 일이 아니야.”유현진은 방이진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저는 창피하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요? 민영 씨가 저를 챙겨주는데 고맙기만 해도 모자랄 판이에요. 근데 이진 씨는 왜 제가 창피를 당하는 것처럼 말해요? 저는 상관없지만 만약 소문이라도 난다면 민영 씨가 신인을 괴롭히는 것처럼 보일 거 아니에요. 저 그러면 민영 씨한테 미안해서 못 살아요.”송민영의 안색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방이진은 말문이 막힌 채로 입꼬리만 씰룩거렸다.‘무슨 말을 이렇게 잘해? 지금 문제를 나랑 민영 언니한테로 돌린 거야? 하, 진짜 어이없어.’방이진은 말다툼을 그만두고 유현진을 힐끗 노려봤다.“민영 언니는 그깟 소문으로 무너질 사람 아니거든. 잔말 말고 네 가방이나 빨리 골라. 중고 가방이라는 걸 들키기 싫으면 아주 잘 골라야 할 거야.이제는 숨길 시도도
“맞아요. 제집에는 자리가 없어서 친구한테 맡기려고요.”강한서가 얼마 전 옷가지들을 보내준 덕분에 유현진의 옷장은 빈틈없이 꽉 차 있었다. 그래서 송민영의 가방 따위를 넣을 자리는 하나도 없었다.하지만 다른 사람의 귀에는 유현진의 집이 작다 못해 가방조차 친구한테 맡겨야 한다는 것으로 들렸다. 사람들은 동정 서린 눈빛으로 유현진을 바라봤다. 실력도 없으면서 송민영과 겨루려는 그녀가 답답하기도 했다.방이진은 동정 따위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처럼 피식 비웃었다.“가방 몇 개 고르라고 했더니 도매하려는 거야?”방이진의 도발에 유현진은 화를 내기는커녕 여전히 덤덤하게 말했다.“어차피 버릴 걸 필요한 사람한테 준다고 했잖아요? 제가 그 필요한 사람인데 혹시 문제 되나요?”유현진은 짧은 두 마디의 말로 송민영을 핑곗거리도 대지 못할 위치에 몰아넣었다.송민영의 가방들이 아무리 유행 지난 비인기 상품이라고 해도 중고로 팔면 꽤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연예인이 쓰지 않는 명품을 중고 거래 사이트에 올려 돈벌이하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명품은 대부분 연예인의 출연료로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리고 패션계의 특성상 유행이 너무 빨리 교체되기 때문에 구석에 방치되는 것들도 많았다. 가지고 있는 명품을 팔아 새 명품을 사는 데 보태는 것이 대부분 연예인의 방식이었고 송민영도 마찬가지이다. 조금 전 안 판다고 했던 것은 그저 허풍일 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현진이 눈치 없이 덥석 받아들인 덕분에 선물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까지 이르고 말았다.송민영이 말을 잃은 것을 보고 유현진은 일부러 다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자극했다.“민영 씨, 혹시 아까워요? 이해해요. 비싼 가방이라 선뜻 선물하기 아까울만도...”“아니에요, 현진 씨.”송민영이 유현진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현진 씨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네요. 유행 지난 가방들은 쓰레기처럼 자리만 차지해서 고민이었는데 현진 씨가 재활용하는 건 좋은 일이죠.”‘쓰레기처럼 자리만 차지해서
유현진의 친구는 다름 아닌 지난번에 가방을 거래할 때도 만난 적 있는 중고 명품숍의 조 사장이었다. 조 사장은 또 중고숍의 직원 한 명을 데려왔는데, 세 사람은 그렇게 천천히 옷방 안으로 들어섰다.조 사장은 명품의 중고 거래에서 아주 유명했다. 수많은 인플루언서가 그의 고객이었기 때문에, 옷방에 있던 여배우 중에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다들 유현진의 친구가 어떻게 조 사장인지 의아해하고 있을 때, 유현진이 덤덤하게 말했다.“이쪽이에요, 사장님. 이쪽 벽면에 있는 가방을 전부 봐주세요.”조 사장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상자 속에서 장갑, 안경 등 각종 도구를 주섬주섬 꺼내 검사하기 시작했다. 직원이 먼저 검사하고, 조 사장이 확인한 다음 태블릿으로 사진을 찍고 예상 가격을 적는 시스템이었다.사람들은 넋을 잃은 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러다 방이진이 문득 정신 차리고 언성을 높였다.“유현진 씨, 이게 뭐 하는 짓이야?”유현진은 살짝 머리를 들며 말했다.“이 가방들 다 저한테 준다면서요? 어차피 제집에는 자리가 없어서 조 사장님한테 팔려고요. 이걸 판 돈으로 더 좋은 가방을 사면 되잖아요. 이진 씨 말대로 드라마를 홍보하러 다닐 때 다른 분한테 피해를 주면 안 되죠.”“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 오해를 해도 유분수지. 내 말은 여기서 가방 몇 개를 골라서 들고 다니라는 뜻이었어. 남의 가방을 팔고 돈을 받는 건 다른 얘기지.”유현진은 이를 악물고 말하는 방이진을 힐끗 보며 말했다.“참고로 민영 씨는 이미 저한테 가방을 줬어요. 이제 어떻게 처리할지는 제 마음이 아니겠어요? 그리고 민영 씨도 아무 말 없는 데 이진 씨가 왜 흥분해요? 아, 혹시 가방 몇 개 가지고 싶었는데 저한테 다 뺏겨서 화난 거예요? 괜찮아요, 민영 씨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데 제일 친한 사람을 빼먹을까 봐서요?” 방이진은 화가 나서 목까지 새빨개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송민영의 안색도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그래도 제가 현진 씨한
한열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하리는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그의 말에 속상해 눈물을 흘리는 것이 분명했다.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를 위해 돌을 막아줬을 리가 없었다. 그런 마음에 아니라면, 그에게 장난을 치며 관심을 끌었을 리가 없었다. ‘조금 전 내가 너무 상처 되는 말을 하긴 했어.’여전히 고민하는 한열의 귓가로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한열이 멍한 표정으로 옆을 바라보았다. 신하리가 배를 끌어안은 채 폭소하고 있었다. 눈물까지 찔끔 흘린 그녀는 웃느라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똥강아지, 너 솔직하게 얘기해. 태어나서 한 번도 연애해 본 적 없지?”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잇는 신하리의 얼굴엔 슬픔이라곤 전혀 없이 온통 장난기뿐이었다. 그제야 또라이 같은 여자에게 농락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한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윤명훈도 운전석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티베탄 마스티프는 사촌 누나 앞에서만 순한 양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한열을 길들이는 사람이 있다니. 역시 뛰는 놈 위에는 나는 놈이 있는 법이었다. 수치와 분노를 동시에 느낌 한열이 바득 이를 갈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신하리를 물어버릴 것처럼 말했다. “제가 사귀었던 사람은 신하리 씨가 손가락 다 사용해도 부족할 거예요!”“소꿉놀이 같은 연애 말하는 거야?”신하리가 야유 섞인 말투로 한열을 놀렸다. “설마 첫 키스 상대가 나였던 거 아냐?”순간 뜨끔한 한열의 몸이 어색하게 힘이 들어갔다. 그저 한열을 놀리려던 신하리는 그의 반응에 당황하며 눈을 커다랗게 떴다. “정말 나야?!”한열이 창피함을 못 이겨 버럭 화를 냈다. “아니거든요!”하지만 한열은 거짓말엔 너무 소질이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신하리에게 이렇게 빨리 모태 솔로라는 사실을 들켰을 리도 없었을 것이다. 거짓말이 소용없다는 것을 인식한 한열이 자포자기하며 말했다. “제가 신하리 씨와 전에 했던 건 첫키스 아녜요. 제가 일부러 신하리 씨 기분 더럽게 하려고 한
한열이 입술을 짓이겼다. “제가 신하리 씨와 공개 연애를 선택한 건 신하리 씨가 저에게 감독님을 소개해주길 바랐기 때문이었어요. 우린 서로가 원하는 걸 해주기로 계약했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제가 신하리 씨를 도와준 거라고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신하리 씨는 이번에 저 때문에 진짜로 다쳤어요. 이건 제가 신하리 씨에게 빚 진 거예요.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뭐든지 얘기해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도울 테니까.”멈칫한 신하리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눈앞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탑 아이돌을 쳐다보았다. ‘이 바닥에 아직도 이렇게 단순한 자식이 있었어?’아무리 신하리가 한열에게 유리한 계약 조건을 달았다고 하더라도 계약 연애는 한열에겐 이득보단 손해가 더 많았다. 게다가 유명한 감독과 작품을 하고 싶다면 사촌 형인 송민준에게 부탁해도 충분했다. 굳이 신하리와 엮일 필요가 없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 한열의 SNS 댓글은 눈에 띌 정도로 악플이 늘었다. 여자친구인 신하리도 공개 연애 후 수많은 악플을 받고 있었다. 심지어 극단적인 성향을 지닌 팬들은 그녀의 영정사진을 만들어 죽은 쥐과 칼날과 함께 넣어 택배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니 한열 쪽 상황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조금 전 신하리가 한열 대신 돌을 맞은 건 그가 얼굴을 다쳐 연예계 생활에 영향을 끼칠까 봐 걱정된 것도 있었지만 사실은 죄책감 때문에 한열에게 이렇게라도 빚을 갚아야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이 자식, 정말 멍천한 거였잖아? 이렇게까지 정중하게 신세를 졌다며 은혜를 갚겠다고 하다니. 이런 멍청해서야 대체 어떻게 인지도를 올릴 수 있었던 거야?’‘고담시 한씨 가문은 모두가 알아주는 명문가잖아. 그런 집안에서 대체 어떻게 이렇게 멍청한 아들이 나올 수 있는 거지? 눈치 빠르고 꿍꿍이가 많은 사촌 누나와 형에, 심지어 12살짜리 막내 동생도 쟤보다는 똑똑하겠어.’잡혀가서도 인질범 편을 들어줄 것 같은 한열의 모습에 신하리는 이상하게 마음이 약해졌다. 한
윤명훈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인터넷에 떠도는 스캔들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동안, 이 미친 인간들은 경찰서 앞에서 소란을 피웠다. 한열의 반항적인 성격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윤명훈은 충분히 버거웠다. ‘하지만 이젠 한 명이 더 늘었잖아. 젠장. 그 놈의 돈 벌기가 점점 더 힘드네!’비록 화가 치밀긴 했지만 의식을 잃은 신하리와 한열 몸에 묻은 피를 보자 윤명훈도 걱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신하리 씨는 어때?”“안 죽어요.”한열이 신하리가 꼬집던 허리를 어루만지며 쓰러진 척 연기하는 여자를 노려보았다. “언제까지 연기할래요?”그제야 천천히 눈을 뜬 신하리는 한열의 눈빛과 반말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때, 누나 연기가 좀 실감났어?”흥, 콧방귀를 뀐 한열이 시선이 저도 모르게 신하리의 뒤통수를 힐끗 쳐다보았다. 머리숱이 많아 얼마나 많이 다친 건지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날아온 돌멩이는 힘이 꽤 실려있었다. 옆에 있던 한열의 귀에도 돌멩이가 무겁게 머리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신하리는 얼굴이 창백해진 것을 제외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녀는 심지어 티슈를 뽑아 뒤통수의 피를 닦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열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티슈로 상처 닦으면 안 돼요. 더럽잖아요.”“더러우면 걸레라고 하겠지, 왜 티슈라고 부르겠어?”신하리가 억지스러운 논리를 늘어놓았다. “티슈로 엉덩이를 닦을 땐 왜 더럽다고 하지 않는 거야?”한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가 티슈로 엉덩이를 닦지, 치질을 닦는 건 아니잖아요.”멈칫하던 신하리가 순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장난스레 말했다. “너 아이돌 이미지는 버린 거야? 아이돌 입에서 어떻게 엉덩이니, 치질이니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어?”한열이 불퉁한 말투로 대답했다. “머리 상처에 출혈이 꽤 있었어요. 티슈로 닦으면 상처에 먼지가 붙어서 염증이 날 거예요. 나중에 흉터
한열의 마음에 남아있던 감동이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두 사람이 신고를 마치고 나오자 경찰서 밖은 이미 수많은 기자와 팬들로 둘러싸였다. 경찰서 앞이었던 만큼 경찰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어 현장은 그나마 평화로웠다. 한열이 신하리를 감싸며 차에 오르던 그때,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한열!”한열이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란 크기의 돌멩이가 한열을 향해 날아왔다. 한열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앞으로 누군가 나타나 온 몸으로 돌멩이를 막았다. 신하리였다. 그 돌은 신하리의 뒤통수에 부딪혔다. 극심한 통증에 신하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몸이 앞으로 휘청였다. 한열이 무의식적으로 신하리를 부축했다. 미간을 찌푸린 신하리가 손을 뻗어 돌멩이에 맞은 곳을 만졌다. 뜨뜻하고 축축한 촉감이 느껴졌다. 손바닥을 펼치자 빨간색의 피로 흥건했다. 신하리의 부축하고 있던 한열의 손이 움찔 떨렸다. 그의 얼굴은 섬뜩할 정도로 창백했다. 돌을 던진 사람이 큰소리로 질타했다. “개 같은 자식!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투표해서 널 데뷔시켰는데. 연애도 부족해서 이젠 뭐, 성추행? 팬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심지어 옆에서 질서를 유지하던 결찰들도 미처 반응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돌을 던진 그 사람이 달려들려고 하자 경찰이 얼른 앞으로 나서 제압했다. 그 사람은 심지어 바닥에 제압당한 채 여전히 욕설을 내뱉으며 난동을 부렸다. “네가 이런 인간이란 걸 진작 알았다면 차라리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투표를 했을 거야! 넌 정말 네가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정말 팬들이 네 재능에 반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 그 반반한 얼굴 아니었으면 너에게 투표한 사람이 있긴 했을 것 같아? 팬들 덕에 넌 아이돌이 될 수 있었던 거야. 팬들이 아니면 넌 아무 것도 아니라고!”구경 중이던 사람들과 기자들이 미친 듯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한열은 신하리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그녀의
신하리는 말하며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 “저 정신병 있는 거 다들 아시죠?”그 말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얼마 전, 신하리가 한 드라마 촬영 중 현장에서 갑자기 귀신에 쓰인 사람처럼 아무런 안정장비도 하지 않은 채 6미터가 넘는 곳에서 뛰어내려 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다들 신하리에게 왜 뛰어내렸냐고 묻자 그녀는 아래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그러나 당시 상황을 증명해 줄 동영상은 없었고 그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듣고 지나보냈었지만 지금 신하리의 입으로 직접 그녀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말하니 그때의 사건을 떠올린 사람들은 순산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 이건 분명한 경고였다. 마치 난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라 너에게 정말 염산을 뿌려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으니 내 말을 장난으로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신하리의 등장으로 [아기 고양이]의 라이브 방송의 인기는 더 뜨거워졌다. 댓글에도 다양한 의견이 더 많아졌다. [사랑에 눈이 먼 연예인 1위! 보상은 산에서 산나물 캐기 18년!][신하리 미친 거 아녜요? 이렇게 대놓고 협박이라니.][면전에 협박하는데 아직도 신고하지 않는다고? 증거가 없는 거야, 아님 애초부터 한열을 모함하고 있었던 거야?][성추행을 한 사람도 경찰서에 신고했는데 당한 사람은 대체 뭐가 무서워서 신고하지 않는 거야.][지난번에 스스로 신고한 인간은 아직도 감옥에서 사회봉사 중이예요.][만약 지금 당장 신고한다면 전 아기 고구마 말을 믿을 거예요. 계속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는 건 오히려 한열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작당 모의에 더 가까워 보여요.][지금 루머를 퍼뜨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 됐어요. 스크린샷 몇 장이면 바로 스토리를 짤 수 있으니까요.]여론이 점차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멀어지자 [아기 고구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아
신하리의 라이브 방송 연결 요청에 [아기 고구마]가 잠시 멍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옆을 바라보던 그녀가 곧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 미세한 행동을 포착하지 못했지만 한현진에겐 들키고 말았다. [아기 고구마]는 혼자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그녀의 옆에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모인 사람들과 진실 규명을 바라는 팬들이 미친 듯이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겁쟁이! 네가 그러고도 무슨 남자야! 사건이 터지면 뒤로 물러나 여자친구가 나서서 모든 걸 감당하게 하다니. 네 팬이었다는 게 너무 후회돼!][끼리끼리는 과학이라잖아요. 한열이 이런 쓰레기라면 신하리도 그리 좋은 인간은 아니지 않겠어요? 연결해요.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죠.][언니! 얼른 입도 벙긋 못하게 증거를 뿌려버려요. 저런 인간은 아이돌을 할 자격이 없어요.][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난 영원히 한열을 믿을 거야!][덕질에 도덕 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나보네.]...[아기 고구마]는 사람들의 부추김에 신하리와 라이브 방송을 연결했다.신하리의 모습이 라이브 방송 화면에 나타나자 카메라는 신하리의 얼굴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후드 차림에 화장도 하지 않은 신하리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그쪽 대신 경찰에 신고했어요. 얼른 오세요.”카메라가 홱 회전하며 한주 용하구의 경찰서 대문을 비췄다. 그에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순간 멍해졌다. ‘신하리, 미친 거야? 어제 저녁에도 한열 대신 해명해주더니.’[아기 고구마]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 전 신고한다고 안 했어요.”신하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한열이 그쪽을 성추행했다면서 신고를 안 해요? 성모 마리아세요? 방송으로 울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보다 신고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경찰은 그쪽을 도와줄 수 있는데도 싫다고요?”네티즌들도 신하리의 말을 따라 댓글을 남겼다. [맞아요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