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진은 친한 사람들 앞에서는 활발한 E 성향을 보였지만 친하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는 소심한 I 성향을 보였다.드라마 팀으로 들어간 지 일주일이 되었지만 많은 배우와 스태프들과 별로 접촉하지 않았기에 너무나도 그들이 낯설었다. 그녀는 그녀에게 다가오는 사람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것을 제외하고는 기타 시간엔 음식을 먹거나 휴대폰만 들여다보았었다.마침 페이스북을 보고 있었을 때, 강한서가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저녁 같이 먹어.」유현진은 휴대폰을 들고 눈앞에 있는 음식을 찍어 보내줬다.「이미 먹고 있어.」강한서가 빠르게 답장했다.「누구랑?」유현진이 답했다.「한열 씨가 다른 지방으로 촬영가기 전에 안 감독님이 회식을 제안했거든.」한열이 다른 지방으로 간다는 말에 강한서는 기분이 상쾌해졌다.하지만 그래도 형식적으로 물었다.「한열 씨 촬영은 이제 더 없어?」「그건 아니야. 한열 씨는 톱스타니까 스케줄이 많아. 사실 원래 카메오로 출연하기로 했어. 그렇지 않으면 톱스타가 이런 신도 별로 없는 조연을 맡는다는 건 말도 안 되잖아. 그쪽에서 촬영 끝나면 바로 다시 촬영장으로 복귀할 거야.」다시 돌아올 거라는 말에 강한서의 얼굴이 굳어졌다.송민준뿐만 아니라 현재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한열까지 라이벌로 늘어났으니 그는 유현진과 결혼하지 않는 이상 절대 안심할 수가 없었다!강한서가 입술을 말아 올리며 물었다.「그럼 회식 언제 끝날 것 같아? 내가 데리러 갈게.」「됐어. 아까 들어보니까 2차도 간대. 분명 늦게까지 회식할 거야. 난 이따 안 감독님과 함께 차 타고 가면 돼.」몇 분 지나지 않아 강한서가 또 문자를 보냈다.「오랫동안, 네 목소리 못 들어본 것 같아.」지난번 강한서가 촬영장에 방문한 뒤로 두 사람은 며칠 동안이나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촬영장으로 복귀한 유현진은 아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아무리 강한서가 전화를 쳐도 그녀는 촬영 중이거나, 자고 있거나, 대사를 외우고 있을 때였기에 받지 못했다.강한서는 그녀가 일에
유현진은 입술을 말아 물었다. 다시 기본 화면으로 돌아와 채팅 기록을 복구시켰다.그러자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녀는 어쩐지 이혼한 후에 강한서와 텔레파시라도 통한 것처럼 그녀의 기분을 바로 알아맞히고 심지어 그녀가 언제 배고픔을 느끼고 있는지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그녀는 그동안 그와 마음이 통한 줄 알았다. 통하긴 개뿔! 강한서는 그가 이훈을 수능 장소로 데려다주고 있을 때 몰래 그녀의 휴대폰을 열고 자신의 카톡 아이디 차단을 풀었던 것이었다!그렇게 두 달 동안이나 그는 아주 대놓고 그녀의 스토리를 구경하고 있었다!그는 그동안 아주 태연하게 연기를 잘해왔다. 전에 그와 서로 계좌이체를 하며 대화를 나누었을 땐 그렇게 빨리 차단 풀리고 싶지 않다면서 그녀에게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었다.실력을 보여주긴 개뿔!그는 자신이 몰래 그녀의 휴대폰으로 카톡 차단 풀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한 말이었다!유현진은 이를 짓이기더니 강한서에게 카톡으로 중지 이모티콘을 보내고는 바로 다시 차단해 버렸다.유현진이 카톡으로 중지 이모티콘을 보낸 것을 본 강한서는 들켰다는 사실에 황급히 다시 카톡을 보냈다. 그러나 결과는 전송 실패였다. 유현진이 다시 그를 차단한 것이었다.“...”강한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그는 자신의 입방정으로 “목소리를 듣고 싶다”라는 말을 한 것에 대해 후회했다.강한서가 유현진에게 문자를 보내 설명하려고 할 때 휴대폰이 울렸다.한주시 상인 단체 회장이 그에게 언제 올 것이냐고 연락한 것이었다.강한서는 상인 단체 회식에 갈 생각이 없었지만, 현재 회장과 그의 아버지는 친한 친구였고 또 이미 여러 차례 요청을 거절한 견적이 있었기에 이번엔 더는 거절할 수가 없어 회식 장소로 오게 되었다.“이미 도착했습니다. 곧 올라갈 거예요.”“그래, 내가 마중을 보내지.”전화를 끊은 강한서는 유현진에게 5200만 원을 계좌이체 하면서 메시지도 보냈다.「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 줘.」유현진은 그에게 10
유현진은 전 여사에게서 연락받은 일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정인월의 생일잔치에서 유현진은 전 여사의 의심에 완전히 불을 지폈다. 전 여사가 신미정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랐던 이유는 남편이 사업적으로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게 신미정이 전 여사의 남편이 바람났을 뿐만 아니라 사생아까지 있다는 사실을 숨긴 것을 용서하는 이유는 되지 못했다. 전 여사는 신미정을 ‘친구’로 생각했으니 말이다.생일잔치에서 폭죽이 고장 난 것도 아마 전 여사와 연관 있을 것이다. 전 여사는 유현진과 손을 잡고 싶어 했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전 여사는 폭죽에 손을 쓰고도 조사 하나 받지 않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었으니, 괜히 잘못 엮였다가는 뒤통수를 맞고도 무슨 영문인지 모를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전 여사를 곧바로 차단 목록에 넣어버렸다.“민영 씨, 가방 뭐에요? 너무 예뻐요.”여배우 주은비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녀는 드라마에서 송민영과 같은 반, 같은 기숙사의 룸메이트 역할을 맡았다. 무용학과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춤을 아주 잘 췄다.방이진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안 예쁠 리가 있겠어요? 에르메스 프리미엄 회원만 살 수 있는 한정판인데, 저는 쇼장에서만 본 적 있어요.”여배우란 착장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직종이었다. 허영심 때문이라기보다는 브랜드 평판과 연관된 일이기 때문에 신경을 쓰는 게 당연했다.특히 명품 브랜드에서는 브랜드 평판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만약 패션 센스가 떨어진다면 명품 브랜드의 광고 모델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중요한 상품이 모델 때문에 값싸 보이면 안 되니 말이다.송민영이 바로 전형적인 실례였다. 그녀가 금방 뜨기 시작했을 때, 스타일이 뒤떨어지고 사복 패션이 엉망진창이라 레드카펫에서 오트 쿠튀르 드레스 하나도 빌리지 못했다.레드카펫이 끝나고 나서 팬들은 ‘저렴한 드레스를 입은 송민영’, ‘패션은 오트 쿠튀르가 아니다’, ‘레드카펫에서 국산품을 밀고 가는 투지’ 등 말로 송민영을 칭찬하기에 바빴다. 아마
“짝퉁이라고 하기에는 포장도 있고 증서도 있었어요. 제 친구가 잠깐 빌려서 사진 찍으려고 물어본 적 있는데 팔기만 하고 빌려주지는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아무튼 후에 제 친구가 돈을 모아서 다시 사려고 했을 때는 이미 팔렸다고 했어요. 그러니 가짜일 리는 없을 거예요. 게다가...”그 사람은 잠깐 멈칫하며 송민영의 가방을 바라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민영 씨의 가방이 중고 거래 사이트의 가방이랑 코드가 같은 것 같은데요.”이 말이 나오자마자 현장의 분위기는 약간 미묘해졌다. 중고 거래 사이트에 관한 얘기는 애초에 패션계의 떠오르는 여왕인 송민영에게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사람들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송민영을 바라봤다. 송민영은 예상 밖으로 덤덤한 태도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잘못 본 거 아니에요? 저는 직접 예약해서 샀거든요.”유현진은 살짝 머리를 들었다가 다시 숙이고 휴대폰을 만졌다.따지고 보면 송민영은 직접 예약해서 산 것이 맞았다.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말이다.유현진은 딱히 폭로할 생각이 없었다. 거래는 이미 끝났고 더 이상 신경 쓸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6억짜리 물건을 10억을 받고 팔았으니, 비밀 유지쯤은 충분히 해줄 수 있기도 했다.게다가 송민영을 폭로하기 위해서는 이 가방이 원래 자신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밝혀야 했다. 남들의 눈에 유현진은 에르메스 가방을 살 돈도 능력도 없었기 때문에 설명하기가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저 잠자코 있었다. 송민영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앞에서 당당하게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방이진이 송민영을 도와 설명을 보탰다.“민영 언니가 패션계에서의 영향력으로 봤을 때, 이 정도 가방을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겠어요?”유현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는 방이진이 아무것도 몰라서 할 수 있는 말이었다.에르메스는 콧대가 높기로 유명하다. 아주 친한 합작 관계가 아닌 한 평등하게 무시하는 것이 에르메스의 일관된 태도이다. 이게 바로 어떤 상품은 아무리 재벌 집 사모님이라고 해도 사지
“그 예능 저도 본 적 있어요! 옷방 문이 열리자마자 꿈을 꾸는 줄 알았잖아요. 저는 꿈에서만 본 적 있는 장면이었어요.”“맞아요, 그런 집을 꿈 꾼 적 없는 여자는 없을 거예요.”“민영 씨 너무 겸손해요. 그렇게 귀한 가방을 왜 안 들고 다녀요? 저 같으면 매일매일 다른 가방을 골라서 들고 다닐 거예요!”송민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여러 브랜드에서 받은 선물일 뿐이에요. 제가 직접 산 건 별로 없어요. 대부분 일 때문에 받은 거라 이제는 유행이 지나 쓰지도 못해요. 조만간 시간을 내서 안 쓰는 건 버리거나 선물하든지 해야겠어요.”이 말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부럽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했다. 적어서 몇백만 원은 하는 가방들을 버리거나 선물한다니, 웬만한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말이었다.방이진은 돌연 머리를 숙인 채 휴대폰을 닦고 있는 유현진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언니, 안 쓰는 가방은 현진 씨한테 버리는 거 어때요?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다고는 하지만 급이 너무 떨어져도 보기 안 좋잖아요. 오늘처럼 저희끼리 만나는 자리에서는 상관없는데 홍보할 때도 저런 가방을 들면 부끄러움은 저희 몫이에요.”유현진은 동작을 멈추고 머리를 들더니 방이진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물었다.“제 가방이 뭐 어떻다고요?”방이진은 가식적인 목소리로 받아쳤다.“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 현진 씨. 나도 현진 씨를 위해 하는 말이니까. 현진 씨 아직 연예계의 규칙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지? 자고로 여배우는 패션이 가장 중요한 법이야. 근데 현진 씨 출연료로는 명품을 사기에 턱도 없잖아? 얼마 없는 출연료를 패션에 투자하면 성형할 돈도 모자랄 텐데, 민영 언니가 가방 정리를 하는 김에 몇 개 받으면 돈 절약도 하고 좋잖아.”방이진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진짜 유현진을 걱정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의 말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롱으로 가득했다. 언제부터 연예계가 이런 곳이 되었는지, 유현진은 어이없을 따름이었다.유현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송민영이 자선가의
유현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송민영 씨. 그러면 저도 내외하지 않을게요. 내일까지 기다릴 것 없이 그냥 지금 가면 안 돼요? 다들 시간 있을 때 같이 구경해요. 송민영 씨 이 근처에 살잖아요.”유현진은 또 장난스러운 말투로 송민영의 거절을 미리 거절했다.“내일이 되면 생각이 바뀔까 봐서요.”송민영은 눈에 띄게 멈칫했다.‘이혼하고 나서 거지가 된 거야 뭐야? 내가 비꼬는 걸 이해 못했나? 진짜 어디 잘못된 거 아니야?’유현진의 말에 거절하지 못할 처지에 놓인 송민영은 마지못해 대답했다.“다들 듣고 있는 자리에서 한 약속인데 어길 리 있겠어요? 하지만...”“그러면 지금 출발할까요?”유현진은 송민영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말머리를 잘랐다. 그러고는 잔뜩 신바람 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며 이어서 말했다.“다들 꿈과 같다고 비유한 옷방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너무 보고 싶어요.”방이진은 콧방귀를 뀌며 생각했다.‘쓰레기통 취급당하면서 신이 난 거야? 흥, 평생 거지로 살 운명이네.’방이진은 또 머리를 돌려 송민영을 바라보며 말했다.“언니, 애들한테도 구경시켜 줘요. 애들 지금 침 흘리게 생겼어요.”송민영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흔쾌히 동의했다.“좋아요, 그러면 감독님한테 얘기하고 나서 가볼까요?”송민영이 엘 하트 펜션에 있는 집은 호텔과 차로 10분 거리에 있었다.엘 하트 펜션의 집은 적어도 몇십억 원은 있어야 살 수 있었다. 송민영의 경우 비록 대출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계약금을 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했다.8명의 여배우는 차량 두 대로 나눠서 송민영의 집에 도착했다. 출입문을 열자마자 고풍스러운 유럽식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한 화려한 샹들리에가 눈에 들어왔다. 화려하기는 하지만 졸부 티가 팍팍 나는 인테리어였다. 하지만 졸부 티가 나면 뭐 어떻겠는가? 줄부도 엄연한 부자인데 말이다.사람들은 집안을 둘러보며 감탄하기 시작했다. 송민영은 여전히 겸손한 태도로 말했다.“인테리어는 약간 대충한 티가 나죠? 이
유현진은 머리를 돌려 방이진을 바라봤다. 지난번 그녀에게 이런 식으로 말했던 사람은 전 여사였다. 똑같기로는 두 사람이 출생의 비밀로 인해 헤어진 모녀가 아닌지 의심 갈 지경이었다.‘이러다 아주 송민영 찬송가까지 만들겠어.’전 여사는 남편을 위해 신미정을 감쌌다고 하지만, 방이진은 도대체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성적으로 분석해 봤을 때, 방이진은 송민영에게서 받아먹을 게 별로 없었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건 둘째 치고 인맥이 삼류 제작진에 멈춰있는 데다가 본인 대본 하나 제대로 고르지 못하는 사람이 송민영이었으니 말이다.‘잠깐, 혹시 이거 엄청난 고단수의 돌려 까기 아니야?’유현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보다는 방이진 씨가 더 급해 보이는데요? 혹시 원하면 민영 씨한테 물어봐 봐요. 두 사람 그렇게 사이가 좋은데 설마 이진 씨를 빈손으로 돌려보내겠어요?”이런 일에는 전문가급으로 두뇌 회전이 빨랐던 방이진은 금세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아니야, 이제 또 호텔로 돌아가야 하는데 시간이 모자랄까 봐 그러지. 장난 좀 친 걸로 왜 그렇게 말해. 민영 언니가 버리는 가방을 받아 가지는 건 창피한 일이 아니야.”유현진은 방이진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저는 창피하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요? 민영 씨가 저를 챙겨주는데 고맙기만 해도 모자랄 판이에요. 근데 이진 씨는 왜 제가 창피를 당하는 것처럼 말해요? 저는 상관없지만 만약 소문이라도 난다면 민영 씨가 신인을 괴롭히는 것처럼 보일 거 아니에요. 저 그러면 민영 씨한테 미안해서 못 살아요.”송민영의 안색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방이진은 말문이 막힌 채로 입꼬리만 씰룩거렸다.‘무슨 말을 이렇게 잘해? 지금 문제를 나랑 민영 언니한테로 돌린 거야? 하, 진짜 어이없어.’방이진은 말다툼을 그만두고 유현진을 힐끗 노려봤다.“민영 언니는 그깟 소문으로 무너질 사람 아니거든. 잔말 말고 네 가방이나 빨리 골라. 중고 가방이라는 걸 들키기 싫으면 아주 잘 골라야 할 거야.이제는 숨길 시도도
“맞아요. 제집에는 자리가 없어서 친구한테 맡기려고요.”강한서가 얼마 전 옷가지들을 보내준 덕분에 유현진의 옷장은 빈틈없이 꽉 차 있었다. 그래서 송민영의 가방 따위를 넣을 자리는 하나도 없었다.하지만 다른 사람의 귀에는 유현진의 집이 작다 못해 가방조차 친구한테 맡겨야 한다는 것으로 들렸다. 사람들은 동정 서린 눈빛으로 유현진을 바라봤다. 실력도 없으면서 송민영과 겨루려는 그녀가 답답하기도 했다.방이진은 동정 따위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처럼 피식 비웃었다.“가방 몇 개 고르라고 했더니 도매하려는 거야?”방이진의 도발에 유현진은 화를 내기는커녕 여전히 덤덤하게 말했다.“어차피 버릴 걸 필요한 사람한테 준다고 했잖아요? 제가 그 필요한 사람인데 혹시 문제 되나요?”유현진은 짧은 두 마디의 말로 송민영을 핑곗거리도 대지 못할 위치에 몰아넣었다.송민영의 가방들이 아무리 유행 지난 비인기 상품이라고 해도 중고로 팔면 꽤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연예인이 쓰지 않는 명품을 중고 거래 사이트에 올려 돈벌이하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명품은 대부분 연예인의 출연료로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리고 패션계의 특성상 유행이 너무 빨리 교체되기 때문에 구석에 방치되는 것들도 많았다. 가지고 있는 명품을 팔아 새 명품을 사는 데 보태는 것이 대부분 연예인의 방식이었고 송민영도 마찬가지이다. 조금 전 안 판다고 했던 것은 그저 허풍일 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현진이 눈치 없이 덥석 받아들인 덕분에 선물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까지 이르고 말았다.송민영이 말을 잃은 것을 보고 유현진은 일부러 다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자극했다.“민영 씨, 혹시 아까워요? 이해해요. 비싼 가방이라 선뜻 선물하기 아까울만도...”“아니에요, 현진 씨.”송민영이 유현진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현진 씨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네요. 유행 지난 가방들은 쓰레기처럼 자리만 차지해서 고민이었는데 현진 씨가 재활용하는 건 좋은 일이죠.”‘쓰레기처럼 자리만 차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