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막 입을 열려던 찰나에 휴대폰 알림이 떴다.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유상수가 그녀에게 1000만 원을 입금한 것이었다. 그리고 문자도 함께 보내왔다.「좋은 거 먹고 다녀, 필요한 거 있으면 아빠한테 말하고.」‘??? 유상수가 뭘 잘못 먹었나?'그녀가 결혼한 후에 유상수는 더는 그녀에게 용돈을 준 적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돈을 썼던 기억은 주얼리 전시회에서 사람들의 분위기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가치가 2억이나 하는 팔찌를 사주게 된 것이었다.“왜 그래?”유현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에 강한서가 물었다.정신을 차린 유현진이 말했다.“유상수가 나한테 1000만 원을 입금했어.”강한서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그 사람이 너한테 돈을 줬다고?”“응, 전에도 나한테 전화 온 적이 있었거든. 날 수양딸로 받아들이고 싶다고.”유상수의 위선적인 말에 유현진은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돈으로 지금 끊어졌던 연줄을 이으려고 하네. 정말 ‘통도 크셔라'.”강한서는 눈썹 사이를 찌푸렸다.“그래서 넌 하겠다고 했어?”“그럴 리가 있겠어?”유현진은 바로 눈을 번뜩이었다.“난 바보가 아니야. 그 사람이 나한테 돈을 쓴다는 건 우리 둘이 다시 재혼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리고 그 기회를 이용하여 계속 한성 그룹의 이득을 보려는 속셈이고. 그 사람은 내가 지금 사생아 신분이니까 다시 너랑 결혼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 거야. 그래서 그럴싸한 신분을 나한테 만들어 주려고 나보고 수양딸 하라는 거고. 나에게 유씨 가문의 아가씨 신분을 주면 내가 분명 거절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웃기지 않아? 지금도 내가 얼른 미끼를 물기를 기다리고 있을걸. 그런 엿 같은 신분 그냥 줘도 안 가져. 결혼 못 하면 안 하면 되잖아. 누가 그런 신분이 필요하대?!”강한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입술을 말아 물고 말했다.“그래도 결혼은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법적으로 보장도 받을 수 있잖아.”“... 난 지금 진지해
도석문이 미간을 찌푸렸다.“왜 그래? 무슨 일이야?”자신의 스폰서를 발견한 방이진은 바로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아니~ 이 사람이 멍청하게 뜨거운 물을 가져다주잖아요.”“넌 왜 이 더운 여름날에 얘한테 뜨거운 물을 가져다줘?”방이진은 당연히 자신이 일부러 매니저에게 뜨거운 물을 가져다 달라고 시켰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제가 생리 왔거든요. 그래서 차가운 거 먹으면 이상하게 생리통이 느껴지거든요.”도석문이 그녀를 찾아온 이유는 당연히 그런 일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생리한다는 말에 순간 흥미가 싹 사라지고 말았다.“그럼 몸이 안 좋은 것 같으니까 푹 쉬어. 내가 며칠 후에 다시 찾아올게.”방이진은 당연히 그를 못 가게 막았다. 그가 그녀에게서 떠나자마자 바로 다른 여자를 찾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지금 먹고 있는 것, 입고 있는 것, 쓰고 있는 것은 모두 눈앞에 있는 뚱뚱한 남자가 준 것이었기에 그녀는 당연히 그를 잘 대접해 줘야 했고 다른 여자에게 넘겨줄 생각도 없었다.그녀는 눈앞에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스르륵 안겼다. 손으로 그의 허리를 쓸면서 야릇하게 말했다.“비록 제가 지금 몸이 안 좋은 상태지만 오빠까지 몸이 안 좋으면 안 되잖아요.”도석문의 호흡이 살짝 거칠어지고 눈빛도 야릇해졌다.매니저는 바로 분위기를 파악하고 방에서 나가 문까지 꼭 닫아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 안에서는 낯 뜨거운 소리가 들려왔다.드디어 소리가 멈추고 남자는 잔뜩 기분 좋은 얼굴로 손가락으로 그녀의 어깨를 쓸면서 물었다.“누가 또 널 화나게 했어? 누구 때문에 매니저한테 화풀이하고 있었던 거야?”“이건 다 유현진 그년 때문이에요!”유현진을 떠올린 방이진은 순간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촬영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과장하여 그에게 들려주었다.“걔가 바닥에 쓰러지면서 피를 토하는 데 내가 때려서 그런 거라고 말하잖아요. 만약 정말 제가 때려서 피가 난 거라면 저도 인정했을 거예요. 하
여자는 어안이 벙벙하였다.“네, 맞는데요. 누구시죠?”민경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저희 대표님께서 최연서 씨를 찾으십니다. 혹시 시간 됩니까?”최연서는 다소 경계하는 듯했다.“그쪽 대표님이 누군데요?”민경하가 답했다.“오늘 점심, 유 대표님이 메일을 보낸 상대가 바로 우리 회사 대표님이십니다. 들어는 보셨겠죠?”최연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전 그쪽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는데요.”말을 마친 그녀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민경하는 운전을 천천히 하며 그녀를 따라잡았다.“최연서 씨, 23세 맞으시죠? 인하공업대학교 나오셨고 지난해에 명성대 대학원에 합격하셨네요. 하지만 입학 신청을 하지 않고 바로 취업을 선택하셨죠. 최연서 씨 동생 최연지 씨가 여름 방학에 누군가에게 성추행을 당하던 도중에 실수로 상대를 찔러서 다치게 했다면서요? 듣자 하니 상대가 합의금 6억을 내면 고소를 취하하겠다고 하던데, 당신은 동생을 감방에 보내지 않기 위해 유상수에게 본인을 파셨죠. 그래서 대학원 가는 것도 포기한 거 아닌가요?”최연서는 걸음을 멈추고 창백해진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그녀는 몸을 돌려 민경하를 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도대체 뭘 원하시는 거죠?”민경하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타세요. 최연서 씨. 어쩌면 우리 회사 대표님께서 최연서 씨의 상황을 해결해 주고 다시 학교로 갈 수 있게 도와줄 겁니다.”이미 상대에게 모든 걸 들킨 최연서에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그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차 문을 열었다. 뒷좌석에는 듬직한 남자가 앉아 있었고 얼굴도 아주 잘생겼다. 그러나 무표정한 그의 얼굴을 보니 다소 차가운 오로라가 느껴졌다.강한서는 그녀를 힐끔 쳐다보고는 덤덤하게 말했다.“타세요.”얼른 차에 탄 최연서는 문 쪽으로 바짝 기대어 앉았다.민경하는 차를 돌려 다시 출발하였다. 강한서는 눈앞에 있는 여자를 훑어보았다. 그는 그녀의 얼굴이 익숙하게 느껴졌고 그녀는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해 황급히
최연서는 머뭇거리면서 받았다. 그녀는 서류에 적힌 액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그것은 2억 6천만 원이 이체된 영수증이었고 돈을 받은 사람은 바로 그녀의 동생이 찔러 다치게 만든 성추행범이었다.민경하는 또 다른 한 장의 손으로 쓴 서류를 내밀었다.“배상금은 이미 저희 대표님께서 청산해 주셨습니다. 앞으로 이 사람이 다시는 최연서 씨를 찾아와 괴롭히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대학원도 다시 다니고 싶으면 다시 신청하셔도 됩니다. 물론 신청하고 싶지 않으면 저희 대표님께선 명성대 학장님과 아는 사이이시니 사정을 말해주면 휴학 처리를 해드릴 겁니다. 그럼 그냥 다시 복학하면 됩니다.”최연서의 손이 덜덜 떨리더니 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그녀가 유상수의 제안을 받은 후에도 다시 학교 다닐 기회가 생길 줄은 몰랐다.동생이 다치게 만든 그 사람의 배후엔 세력이 존재했고 당시에 많은 목격자가 있었지만, 그 목격자들은 모두 친구랑 장난치는 것으로 보였다며 말을 바꿨다. 증거 영상도 없어 소송을 걸어도 이길 수가 없었다.게다가 상대는 오히려 그녀의 동생을 상해죄로 고소를 했고 변호사가 말하길 상대는 6억의 배상금만 내면 바로 고소를 취하해 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바로 감방에 보내겠다고 했었다.그녀의 동생은 기껏해야 20살이었고 이제야 인생이 시작되는 나이였기에 그녀는 언니로서 절대 감방 가는 꼴을 지켜볼 수는 없었다.그러나 6억이라는 돈은 평범한 계층의 사람들이 갚기에는 아주 큰 돈이었다.그리고 유상수는 마침 이때 나타나 그녀에게 “썩은 동아줄”을 내밀었다. 별다른 선택이 없었던 그녀는 그 썩은 동아줄을 꽉 붙잡는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인생이 망가진 줄 알았다. 더는 이런 역겨운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을 줄 알았다.최연서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전 확실히 사진이 얼마나 있는지 몰라요. 그 사람은 제 동생이 일하는 가게로 찾아가 뭐 보낼 거 있다면서 휴대폰을 빌렸거든요. 그리고 사진을 몇 장 전송하더라고요. 비록
휴대폰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고 마음 또한 조마조마해졌다.“도대체 뭘 얘기하고 싶은 거죠?”유현진이 말했다.“최연서 씨, 그렇게 긴장하실 필요 없어요. 전 별다른 뜻은 없거든요. 그냥 아무래도 이 일은 직접 만나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래요. 내일 신리단길 근처에 있는 카페로 와주세요. 만나서 얘기해요. 만약 저희가 만난 후에도 제가 하는 얘기에 흥미가 안 생기면 바로 거절하셔도 돼요.”최연서는 망설이고 있었다. 강한서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입 모양으로 최연서에게 말했다.“만나세요.”최연서는 입술을 말아 물었다.“그래요. 그럼 내일 봬요.”전화를 끊은 최연서는 강한서에게 시선을 옮겼다.“왜 만나보라고 한 거죠?”강한서가 덤덤하게 대답했다.“그 쪽에게 전화를 건 사람이 바로 제 애인이에요.”“...”최연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뭐야, 부부가 상의도 없이 날 찾아온 거야?'강한서가 계속 말을 이었다.“내일 약속 시간대로 도착하세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다 수락하시고요. 그러면 제가 말한 조건 그대로 해결해 드릴 겁니다.”이렇게 좋은 조건을 최연서는 당연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다른 한편, 클라우드 아파트.유현진이 전화를 끊자마자 차미주가 황급히 물었다.“뭐래, 만나주겠대?”유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내일 오전에 만나기로 했어.”“내가 같이 가줄까?”유현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이런 일은 사람이 많을수록 상대가 얘기하기 더 어려워할 거야.”탐정 케이가 그녀에게 보낸 소식엔 유상수에게 최연서라는 내연녀가 있다는 소식도 포함되어 있었고 최연서는 유현아보다도 나이가 어렸다.유현진은 원래 이 사건을 빌미로 백혜주를 괴롭힐 생각이었고 유상수와 백혜주를 사이를 이간질하게 해 개처럼 싸우게 할 생각이었다.그러나 최연서의 상황을 알게 되고 최연서의 사진 또한 보게 된 그녀는 바로 그 생각을 접었다. 최연서를 이용하여 백혜주를 괴롭히기엔 최연서는 너무 어렸다.그녀가 원한 건 그들끼리 서로 싸우는 것뿐만 아니라
유현진이 말했다.“동생분이 작년 여름 방학에 성추행을 당하고 상해죄로 되레 고소당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억대의 배상금을 원했을 거예요, 맞죠?”어젯밤 불쑥 찾아온 강한서 덕에 그녀는 이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그건 중요하지 않아요.”유현진이 천천히 말했다.“최연서 씨는 아마 돈이 급했을 거예요. 그리고 마침 유상수가 최연서 씨를 찾아갔겠죠. 돈을 빌려주겠다면서 스폰을 제안하고 내연녀가 되면 매달마다 연서 씨한테 2000만 원씩 주면서 빚도 갚아주겠다고 했을 거예요. 연서 씨에겐 별다른 선택지가 없으니 물론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겠죠. 그렇게 3년간 유상수의 내연녀가 되었고, 맞죠?”떠오르는 그간의 기억에 최연서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학교 세미나 때, 그녀는 룸메이트를 따라 면접을 하러 가다가 우연히 유상수를 만나게 되었다.그리고 취업 강연을 할 때 그녀는 누군가가 무대 아래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녀가 강연을 마치자마자 유상수가 바로 무대 위로 올라와 그녀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했었다.당시 그녀의 시험 성적이 나오지 않은 상태였고 대학원까지 갈 생각이었기에 그녀는 당연히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그러나 당시 그녀는 취업 설문지에 그녀의 정보를 적었기에 이틀 후에 바로 유상수의 연락을 받게 되었고 그녀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고 했다. 최연서는 이런 그의 행동에 엄청난 반감을 느끼고 있었고 게다가 유상수는 그녀의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더 많았기에 그는 유상수를 역겹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유상수의 번호를 차단 설정해 놓았었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동생에게 일이 생겼고 기댈 곳이 없었던 그녀는 유상수의 내연녀가 되어버렸다. 그간 일들을 떠올리니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그래서 그녀는 다소 날이 선 어투로 말했다.“그래서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죠?”유현진이 천천히 말했다.“최연서 씨, 왜 하필이면 당신에게 돈이 필요할 때 마침 유상수가 연락했는지
최연서는 카드를 받지 않았다.그녀는 유현진에게 물었다.“제가 뭘 해주길 바라는 거죠?”유현진은 고개를 떨구고 사진을 쳐다보았다.“연서 씨도 봤으니 아실 거예요. 연서 씨가 저보다 제 돌아가신 엄마를 더 닮았다는 것을요. 유상수는 우연히 당신을 찾은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은 돌아가신 제 엄마와 닮은 연서 씨 얼굴을 보고 일부러 접근한 거예요.”최연서는 입술을 말아 물었다.“그 사람이 유현진 씨 어머니에게 미련이 남았나 봐요.”유현진은 차갑게 웃었다.“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그 사람은 누구도 사랑하지 않아요. 그냥 자신의 욕심만 채우면서 본인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에요.”그녀는 고개를 들었다.“연서 씨가 절 도와서 유상수와 백혜주가 저희 엄마의 죽음을 사주했다는 증거만 찾아주시면 돼요. 전 그들에게 꼭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거든요.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게 말이죠.”그녀의 눈빛에서 느낀 원망과 증오의 감정에 최연서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제가...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유현진의 눈빛이 다소 풀어졌다.“제가 알려드릴게요...”그녀와 헤어지기 전에 유현진의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동생이 아직 어리다고 들었어요. 계속 학교 다니게 해주세요. 다음 수능 칠 수 있게 도와드릴 수 있어요. 제게 남동생이 있는데 공부 잘하거든요. 원하시면 제가 동생에게 말해 연서 씨 동생에게 과외라도 해드릴게요. 여동생이 아직 어리니 그래도 학교는 다녀야죠. 아는 것이 많을수록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선택지도 많아지거든요. 그리고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도 알게 될 거예요.”최연서는 감격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네, 제가 동생과 상의해 볼게요.”유현진과 헤어진 후 최연서는 바로 강한서에게 전화를 했고 유현진이 그녀에게 했던 말을 빠짐없이 강한서에게 알렸다.강한서는 덤덤하게 답했다.“그녀가 시킨 대로 하세요.”전화를 끊자마자 민경하가 말했다.“남의 손을 빌려 복수를 하는 것과 사람 마음을 흔드는 방면에서는
유현진은 친한 사람들 앞에서는 활발한 E 성향을 보였지만 친하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는 소심한 I 성향을 보였다.드라마 팀으로 들어간 지 일주일이 되었지만 많은 배우와 스태프들과 별로 접촉하지 않았기에 너무나도 그들이 낯설었다. 그녀는 그녀에게 다가오는 사람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것을 제외하고는 기타 시간엔 음식을 먹거나 휴대폰만 들여다보았었다.마침 페이스북을 보고 있었을 때, 강한서가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저녁 같이 먹어.」유현진은 휴대폰을 들고 눈앞에 있는 음식을 찍어 보내줬다.「이미 먹고 있어.」강한서가 빠르게 답장했다.「누구랑?」유현진이 답했다.「한열 씨가 다른 지방으로 촬영가기 전에 안 감독님이 회식을 제안했거든.」한열이 다른 지방으로 간다는 말에 강한서는 기분이 상쾌해졌다.하지만 그래도 형식적으로 물었다.「한열 씨 촬영은 이제 더 없어?」「그건 아니야. 한열 씨는 톱스타니까 스케줄이 많아. 사실 원래 카메오로 출연하기로 했어. 그렇지 않으면 톱스타가 이런 신도 별로 없는 조연을 맡는다는 건 말도 안 되잖아. 그쪽에서 촬영 끝나면 바로 다시 촬영장으로 복귀할 거야.」다시 돌아올 거라는 말에 강한서의 얼굴이 굳어졌다.송민준뿐만 아니라 현재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한열까지 라이벌로 늘어났으니 그는 유현진과 결혼하지 않는 이상 절대 안심할 수가 없었다!강한서가 입술을 말아 올리며 물었다.「그럼 회식 언제 끝날 것 같아? 내가 데리러 갈게.」「됐어. 아까 들어보니까 2차도 간대. 분명 늦게까지 회식할 거야. 난 이따 안 감독님과 함께 차 타고 가면 돼.」몇 분 지나지 않아 강한서가 또 문자를 보냈다.「오랫동안, 네 목소리 못 들어본 것 같아.」지난번 강한서가 촬영장에 방문한 뒤로 두 사람은 며칠 동안이나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촬영장으로 복귀한 유현진은 아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아무리 강한서가 전화를 쳐도 그녀는 촬영 중이거나, 자고 있거나, 대사를 외우고 있을 때였기에 받지 못했다.강한서는 그녀가 일에
강한서는 어쩐지 주혁이 한현진에게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돈이 부족한 상황에 전근까지 당한다면 어느 정도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주혁은 불평은커녕 오히려 한현진에게 아들이 그린 그림을 선물하기까지 한 것은 흔히 볼 수 없는 특이한 케이스였다. 하지만 주혁의 이력은 강한서가 봐도 전혀 이상한 점을 찾아낼 수 없었다. 오히려 굉장히 불운한 일생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주혁의 아들은 선척적으로 청각장애를 가진 것이 아니라 납치사건 때문에 생긴 후유증이었다. 부잣집 아들을 납치하려던 납치범은 실수로 주혁의 아들을 납치했고 납치범은 돈을 요구했지만 부잣집에서는 인질을 구출하려는 경찰에 전혀 협조하지 않았다. 납치범이 납치된 아이를 살해할 것을 고려해 경찰은 그들에게 아이를 잘못 납치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돈을 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한 납치범은 아이를 버리고 도망쳤다. 주혁의 아들은 비록 구조되었지만 의사로부터 청력을 잃었다는 선고를 받아야했다. 정신질환 가족력이 있던 주혁의 아내는 아들이 납치되기 전까진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납치사건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그녀마저도 정신질환을 앓게 되었다. 강한서가 주혁을 한현진 곁에 두고 싶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주혁의 과거 때문이었다. 아들이 납치당하기 전의 주혁은 지금처럼 성실하고 자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도박 전과가 있었다. 매번 월급이 지급되면 주혁은 며칠 동안 사라졌다. 도박장이나 PC방에 파묻혀 가진 돈을 전부 잃고 나서야 다시 출근했다. 집에 있는 아이와 아내는 거의 신경도 쓰지 않았고 아내가 발품 팔아 번 돈으로 겨우 가족의 생활을 유지했다. 주혁의 모든 변화는 그의 집에 사건이 생기면서 시작되었다. 도박이나 하며 빈둥거리던 남자가 하루아침에 모든 과거를 뉘우치고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 가족을 보살폈다. 주혁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런 주혁을 보며 감개무량한 듯 말했다. “스스로 잘못
한현진은 순간 주혁에게 말로는 형용하기 어려운 위화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다던 주혁은 글을 잘 썼다. 정신질환이 있는 아내와 청력장애가 있는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그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유일한 사람이었지만 아들을 국화와 서예 학원을 보낼 수 있었다. 아들의 인공 달팽이관을 마련하기 위해 급히 돈이 필요하다던 그는 한현진 몰래 아르바이트를 하다 걸려 직장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들어가는 지출을 줄이지는 않았다. 자식의 교육을 위해 본인은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자식에게는 제일 좋은 것만 주길 원하는 부모를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혁의 가정형편으론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이상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대체 어떤 면에서 이상하다고 해야 할지, 콕 짚어 얘기하기는 어려웠다. 강한서를 만나고 나서도 한현진의 찌푸린 미간은 펴지지 않았다. 원율이 퇴근하고 민경하가 운전을 인계받았다. 조수석에 외투를 벗어던진 강한서는 뒤로 돌아가 한현진과 함께 뒷좌석에 앉았다. “왜 그래? 고민 있어?”강한서가 안전벨트를 하며 물었다. 한현진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별 일 아냐.”“손에 그건 뭐야?”강한서가 물었다. 한현진이 그림을 강한서에게 펼쳐보였다. “기사님 아드님이 나에게 선물로 준 거야. 초콜릿을 준 적이 있는데 고맙다고 그려줬어.”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또 어린애에게 작업 걸었어?”한현진이 입가를 파르르 떨며 말했다. “기사님 아들은 이제 고작1 4살인데 무슨 작업을 걸어. 게다가 심지어 만난 적도 없다고. 전에 생일이라고 해서 기사님께 초콜릿을 가져가라고 했었어. 인사성이 좋은 아이라 답례를 준 거고.”강한서가 큼,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래?”한현진이 어이없다는 듯 흥, 콧소리를 냈다. 그림을 들고 한참을 자세히 살피던 강한서가 평가했다. “꽤 잘 그렸는데? 14살에 이 정도 수준이면 엄청난 거지.”한현진은 눈앞의 질투쟁이의 말을 무시했다. 강한서가 말을 이었다. “너도 국화
은서하는 말없이 서류철을 품에 안고 돌아서 자리를 벗어났다. 회사에서 나온 한현진은 주혁과 마주쳤다. 그는 지금 회사의 경비로 일하고 있었다. 평소엔 회사의 보안을 책임졌고 가끔은 고객이나 임원의 주차를 돕기도 했다. 한현진이 주혁을 발견했을 때,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누군가 가까워오자 그는 경계하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한현진의 삭막한 눈빛과 눈이 마주쳤다. 멈칫하던 주혁이 어색하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대표님, 안녕하세요.”한현진이 인사를 받으며 말을 이었다. “인사팀에서 보안팀으로 전근시켜줬어요?”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한현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새로운 업무에 적응은 했는지, 일은 할 만한지도 묻지 않았다. 강한서가 말한 것처럼, 쓸데없는 동정심은 내려놓았다. 모두에겐 각자의 인생이 있었고 그녀는 충분히 최선을 다했다. 한현진은 가방을 메고 두 손은 트렌치코트 주머니에 꽂은 채 원율이 주차장에서 차를 가져와 데리러 오기를 기다렸다. 가만히 옆에 서서 손가락을 꽉 움켜쥐던 주혁이 한참이 지나서야 용기를 내 말을 걸었다. “대표님, 이거 제 아들이 그린 그림이에요. 대표님께 전해드리라고 해서요.”멈칫한 한현진은 고개를 돌리자 주혁이 품에서 깨끗한 편지 봉투를 꺼내 두 손 가지런히 한현진 앞에 내밀었다.입술을 짓이긴 한현진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한현진은 입을 꾹 닫고 침묵을 지켰다. 그 사이 원율은 정문에 도착해 한현진 앞에 차를 세웠다. 혹여나 한현진이 그림을 받지 않을까, 주혁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대표님, 제가 잘못을 저질렀으니 벌도 달게 받을 거예요. 하지만 이건 아이가 대표님께 전하는 조그만 마음이에요. 대표님께서 생일 선물로 주신 초콜릿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처음으로 받는 생일 선물이었거든요. 생일이 지나도 몇 번이고 그 초콜릿을 곱씹었어요. 그래서 대표님께 그림 선물로 고마움을 표현한 거라면서 저에게 꼭 전해달라고 했어요.
주현의 손을 잡은 것은 이시연이었다. 일을 마치고 나온 이시연이 마침 그 장면을 목격했다. “회사에서 이게 지금 뭐하는 거예요?”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주현이 이시연을 밀쳤다. “이 팀장님은 상관하지 마세요. 한 대표님을 대신해 이 배은망덕한 X를 혼내고 있는 중이니까.”은서하가 그에 질세라 입을 열었다. “한 대표님 핑계 대지 마세요. 대표님 라인에 붙으려다 대표님께서 선을 그으시니까 저에게 화풀이 하시는 거잖아요.”혹여 그 말이 송가람 귀에 들어가기라도 할까 겁이 난 주현이 당황한 얼굴로 날뛰며 말했다. “누가 대표님 라인에 붙으려 했다는 거예요! 은혜를 갚을 줄도 모르면서 모함 좀 그만해요. 한 대표님께 돈을 받고도 서 대표님에게 붙은 건 은서하 씨 아니었어요?”은서하가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전 한 대표님 돈 받은 적 없어요. 계속 루머를 퍼뜨리시면 경찰에 신고하겠어요.”이시연이 얼른 상황을 수습했다. “됐어요, 그만해요. 두 사람 다 적당히 해요. 매일 얼굴 마주칠 동료끼리,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요?”주현은 고모인 성월이 서해금의 오른팔이라는 것을 등에 업고 평소 회사에서 동료들을 괴롭혔었다. 은서하처럼 나약한 성격의 직원은 전부 주현의 직장 내 괴롭힘이 대상이 되었다. 그러니 그런 은서하가 주현에게 맞서는 것은 주현에겐 모욕을 당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일이었다. 주현이 비꼬며 말했다. “이 팀장님, 말리지 마세요. 신고하라고 해요. 제가 무서워할 것 같아요? 배신이나 때리는 배은망덕한 인간과 대체 누가 친하게 지내려고 하겠어요? 언제 배신당할 지도 모르는데.”분노로 은서하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더는 입씨름을 하지 않고 바로 휴대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했다. 이시연이 곧바로 은서하의 행동을 제지하며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만해요! 회사가 두 사람 소란 피우는 곳인 줄 알아요? 굳이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다면 대표님께 찾아가요. 사무실에 계시니까!”그 말에 두 사람은 드디어 흥분을
한현진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전 송 팀장님이 아녜요. 아부 같은 건 저한텐 안 통해요. 그러니 괜히 제 심기를 건드려서 혼났다고 불평하지나 마세요.”주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입술로 한 마디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 사이, 엘리베이터는 7층에 도착했다. 은서하와 주현을 비롯한 직원들이 엘리베이터를 나서자 한현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닫힘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닫히고 나서야 주현은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 드리운 증오를 숨기지도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부모를 잘 만난 것이 전부인 주제에, 다들 대표님이라고 불러주니까 정말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봐?”그 말을 듣고 있던 동료가 조용히 눈치를 줬다. “듣겠어요. 그만해요.”주현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말했다. “들으라고 해요. 깔린느 전체가 서 대표님 거라는 걸 회사에 모르는 사람이 있어요? 다들 대표님이라고 부르며 비위나 맞춰주니까 정말 대표라도 된 줄 아나 보죠. 은서하 씨 같은 사람도 상황 파악 할 정도인데, 눈치가 없대요?”서로 눈을 마주친 직원들은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지난달 급여명세서가 공개되었다. 한현진이 관리하는 부서 직원들의 급여는 평소보다 더 높았다. 심지어 한현진의 부서는 다른 부서보다 늘 더 빨리 퇴근했음에도 말이다. 이건 전부 한현진이 보너스 지급 방식에 변화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예전엔 부서에 지급된 보너스 중 담당 대표의 인센티브를 따로 계산한 후 나머지를 부서 직원들이 균등하게 나누는 방식으로 지급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현진이 본인의 인센티브를 따로 계산하지 않고 보너스 전부를 부서 전 직원에게 균등하게 지급했다. 비록 한현진이 받을 보너스는 줄어들었지만 그 덕에 부서의 전 직원은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어떤 큰 포부가 있든, 출근은 결국 돈을 벌어먹고 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 한현진이 조향에 대해 아는지 모르는지는 그들에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한현진이 실제로 그들의 월급을 올려
사실 그건 조금은 선을 넘는 질문이었다. 특히 한현진의 등에 칼을 꽂은 이 타이밍엔 더 그랬다. 한현진은 자신이 은서하의 편을 들어주었음에도 그녀가 더 이상 송가람의 죄를 추궁하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아무런 배경도 없이 집엔 아픈 노모까지 있는 여자 아이에게 직장을 잃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서해금이 주는 기회를 잡지 않는다면 그건 은서하가 처사를 제대로 못하는 일이 되었고 어쩌면 회사에서도 점점 더 어려운 처지에 내몰릴 수 있었다. 한현진은 은서하의 고충을 이해했지만 그럼에도 서운한 마음을 어쩔 수는 없었다. “은서하 씨와는 상관없는 일이예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고개를 들어 눈치를 보는 눈빛을 마주한 한현진은 저도 모르게 외할머니의 병원비 때문에 화장실에 몰래 숨죽여 울던 은서하의 모습을 떠올렸다. 한현진 역시 그런 무력한 순간은 경험했었기에 같은 처지에 놓인 은서하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쉽게 은서하를 용서할 수도 없었던 그녀는 결국 냉담한 말투로 “네.”라는 짧은 대답을 내놓았다. 은서하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한현진에게 말을 더 붙이고 싶었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주연과 다른 동료들이 들어오자 은서하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주현이 한현진에게 인사를 건네곤 고개를 돌려 은서하를 보며 장난 섞인 말투로 말했다. “서하 씨, 월급을 추가 지급 받으셨다면서요. 대표님께서도 따로 위로금까지 챙겨주셨다고 하던데, 이 정도면 전화위복 아닌가?”멈칫, 몸을 떤 한현진이 고개를 들어 은서하를 쳐다보았다. 은서하는 창백해진 얼굴로 입술을 꼭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현이 불난 집에 부채질을 이어갔다. “송 팀장님은 그저 서하 씨에게 농담을 좀 한 것뿐인데 하필이면 한 대표님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분을 만나서 상황이 이상하게 됐네요. 그대로 한 대표님이 진지하게 받아들이신 덕에 서하 씨는 위로금까지 받았잖아요. 서하 씨는 한 대표
“난 없어도 민 실장은 아는 사람이 많잖아. 형님 소개팅도 민 실장이 주선해준 거였어. 교사, 의사, 공무원 할 것 없이 인기가 많은 직종은 민 실장이 다 꾀고 있다고.”한현진이 눈을 반짝였다. “그럼 민 실장님께 부탁 좀 해 봐. 나이는 25살에서 35살 사이, 초혼에 직업은 안정적이고 반듯한 외모를 가진 사람으로. 몇 명이든 상관없이 전부 소개해 달라고 해. 미남계로 혼을 쏙 빼서 전부 내 사람으로 만들고 나면 민 실장님 보너스 두둑이 챙겨줘야지.”강한서가 웃음기 가득한 눈빛으로 한현진을 보며 말했다. “그럼 내가 이따 민 실장한테 얘기할게.”강민서의 보고서를 수정해주며 멘탈이 붕괴된 민경하는 연이어 몇 번이나 재채기를 했다. 이유 모를 불안감에 등골이 오싹해진 민경하는 순간 휴가를 가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시간을 확인한 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오늘 퇴근하고 나 좀 기다려. 갈 데가 있어.”강한서가 물었다. “나 생일 파티 해주러 가는 거야?”에이, 감탄사를 내뱉은 한현진이 화난 척 말했다. “사람이 무드 없긴. 알아도 모른 척 해야지. 눈치가 없어. 기대감이 완전 사라졌잖아.”강한서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가 잘못했어. 처음부터 다시 해. 이번엔 내가 제대로 대답할게.”한현진이 말했다. “오늘 퇴근하고 나 좀 기다려. 갈 데가 있어.”강한서가 말했다. “어딜? 완전 좋아. 너무 기대된다.”한현진: ...“그냥 닥쳐.”강한서가 푸스스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뭘 할지 알아도 기대가 되는 건 똑같아.”말하며 잠시 멈칫하던 강한서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번 생일은 우리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마지막 생일이야. 다음은 둘이 아니라 넷일 테니까. 마지막이니까 소중하게 여겨야지.”한현진이 눈웃음 지었다. “괜찮아. 내년에도 아이들은 집에 두고 우리 둘이 보내면 돼.”한현진의 말에 웃음을 터뜨린 강한서가 한참만에야 아쉬운 말투로 말했다. “이젠 가서 일 봐. 좀 이따 만나, 여보.”전화를 끊은 한현진
강한서는 저돌적인 여자들의 모습에 잔뜩 겁을 먹었지만 그렇다고 거짓말로 한현진을 화나게 할 수도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한현진에게 사건의 전말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한현진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 넌 내가 너 몰래 선을 본다고 생각해서 부계정으로 날 추가해 불륜의 증거라도 잡으려고 했던 거야?”강한서가 곧바로 부정했다. “당연히 아니지! 내가 어떻게 널 믿지 않을 수 있겠어?”“그럼 왜 부계정으로 날 속인 거야?!”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 아주머니께서 네가 7, 8명의 연락처를 가져갔다고 하니까 네가 뭘 하고 있는 건지 궁금했어.”한현진이 불퉁하게 말했다. “연락처를 왜 교환했겠어? 너도 봤잖아! 널 바꿔버릴까, 고민하고 있었어.”본인의 잘못임을 잘 알고 있던 강한서는 나지막이 반성했다. “현진아, 정말 내가 널 못 믿어서 그런게 아니야. 난 그냥 질투가 조금 나서 그랬어. 외삼촌과 숙모님께서 너에게 그렇게 많은 맞선 상대를 소개해 주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에야 난 어른들이 날 이렇게까지 안 좋아하시는 건지 알게 돼서 속상했어.”그 말 한 마디는 한현진의 화를 삭이기에 충분했다. 특히 이렇게까지 날 안 좋아한다는 말에 한현진은 심지어 마음이 아려왔다. 한현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외삼촌과 숙모는 아직 네가 기억을 회복한 걸 모르시잖아. 두 분은 우리가 이미 끝난 사이라고 생각하고 계셔. 다들 널 안 좋아하는 게 아냐. 게다가 그 사람들은 외삼촌과 숙모가 먼저 소개해 주겠다고 하신게 아니야. 내가 좋은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한 거야.”강한서는 어리둥절했다. “네가 먼저 좋은 사람 소개해 달라고 했다고?”한현진이 말했다. “너한테 보여줄 거 있어.”잠시 후, 한현진은 강한서에게 영상 하나를 보냈다. 강한서는 그 영상으로 한현진의 카톡에는 조금 전과 같은 [친목 모임] 그룹 채팅방이 7 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모든 그룹 채팅방에는 남자 한 명이 있었다. 나머지 멤버는 조금 전 채팅방에 있던 멤버들
한현진이 말했다. [허연석 씨, 저에게 솔로 단체 채팅방이 있는데 들어오실래요? 다들 젊은 분들이고 개인 정보를 솔직하게 공개하셔서 채팅방에서 마음 놓고 얘기를 나누셔도 돼요. 나중에 친목회가 있을 때면 참석하셔도 되고요.]강한서: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강한서가 대답했다. [좋아요.]그렇게 한현진은 강한서를 [친목 다짐 7번 방]이라는 이름의 그룹 채팅방에 초대되었다. 강한서가 채팅방에 초대되자 사람들은 하나둘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열정적인 반응에 당황한 강한서는 이모티콘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곧이어 그의 말괄량이 아내인 한현진이 그룹 공지를 올렸다. 공지엔 강한서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개인 프로필이 적혀 있었다.강한서가 공지를 대충 훑어보았다. 이 그룹 채팅방은 총 9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 강한서는 유일한 남자 멤버였고 나머지는 전부 여자였다. 게다가 채팅방에 있는 전원이 깔린느의 직원이었다. 어리둥절한 강한서가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때쯤, 채팅방에서는 이미 한 여자 아이가 먼저 다가와 강한서에게 말을 걸었다. A: [허연석 씨는 한주가 고향이세요?]강한서가 예의상 그렇다고 대답했다. A: [실례지만 키가 몇이세요?]강한서: 187B: [완전 크시네요!]C: [여자친구가 160cm여도 괜찮으세요?]D: [1살 연상도 괜찮아요?]E: [가영언니(D)가 이렇게 남자 분께 먼저 말 거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아요.]C: [이번 남자 분은 조건이 너무 좋잖아요. 조건 좋은 사람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어요.]D: [한평생 착하게 살았으니 조건 좋은 사람을 만날 때도 됐어.]A: [언니들, 동생들에게 양보 좀 해요. 지금까지 모태솔로라고요. 연애 좀 하게 해줘요!]강한서는 마치 자신이 이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남자인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여자들에게 무차별적인 유혹을 당하고 있자니 왠지 모를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 같았다. ‘젠장, 대체 여긴 뭐하는 곳이야.’강한서는 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