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오빠...그녀는 시선을 떨구고 천천히 다시 몸을 움직여 휴대폰을 보는 척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렸다.“누구시죠?”“???”그녀도 알아들은 목소리를 강한서가 못 알아듣자 유현진은 순간 머릿속에 의문이 생겼다.하지만 강한서의 모습을 보니 확실히 모른 척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상대가 누군지 모르는 것 같았다.3초간의 정적이 흐르고 상대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한서 오빠, 저 가람이에요. 전에 카톡도 추가하고 문자도 보냈었는데 답장 안 하셨잖아요.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한 건데, 혹시 방해되었나요?”그녀가 이름을 말하자 강한서는 그제야 누군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카톡 답장을 하지 않은 이유도 사실 그는 루비 팔찌를 사고 송가람에게 계좌이체를 해준 뒤 바로 송가람의 카톡 알림 끄기 설정을 해두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당연히 송가람이 문자를 보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강한서는 운전을 하면서 물었다.“그래서, 무슨 일인데?”송가람이 말했다.“한주시 근처를 좀 구경하고 싶은데 제가 길을 잘 몰라서요. 오늘 하루만 제 여행가이드 해주시면 안 될까요?”거절당할까 봐 두려웠던 송가람이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전에 같이 식사하실 때 구경시켜 준다고 하셨잖아요.”유현진은 강한서를 힐끔 쳐다보았다.강한서는 그런 그녀의 기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심지어 송가람이 왜 굳이 밸런타인데이 저녁에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는지도 눈치채지 못했다.송가람이 말을 마치자마자 강한서가 답했다.“저녁에 한주시를 구경해봤자 볼 수 있는 건 가로등밖에 없을 텐데.”송가람이 말했다.“가로등도 괜찮아요. 도시 외곽에서 풍등 축제를 한다는 소식도 있길래 저도 가서 소원 빌고 싶었거든요.”유현진은 속으로 강한서가 또 본인의 전문 분야를 들먹이며 송가람에게 안전 지식 수업을 한바탕할 거라 생각했다.그러나 강한서는 그녀의 예상을 벗어나 송가람에게 풍등의 위험성 같은 것을 말해주지 않았다.“지금 어디야
유현진은 강한서가 송가람을 강현우에게 맡길 줄 몰랐다. 그가 전화를 끊자마자 유현진이 입을 열었다.“강현우에게 가람 씨를 부탁하는 건 좀 위험하지 않을까?”유현진의 뜻을 알아차린 강한서가 말했다.“걱정하지 마. 강현우는 절대 감히 그럴 생각하지 못할 거야.”둘째 삼촌 내외는 송씨 가문과 혼인을 맺고 싶어 했기에 강현우는 당연히 송가람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쓸 것이었고 절대 나쁜 짓을 할 리가 없었다.“그러다 정말 두 사람이 결혼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들이 똘똘 뭉쳐서 널 한성 그룹에서 내쫓으면 어떡해?”유현진은 비록 이런 분야에 대해 잘 몰랐기만 강현우가 만약 송씨 가문의 송가람과 결혼하게 된다면 강한서에게 얼마나 불리할지는 잘 알고 있었고, 그녀는 강한서가 멍청하게 그 기회를 만들어 줬다고 생각했다.강한서는 살짝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만약 정말로 결혼이 소용이 있었다면 우리 아버지께서는 이미 둘째 삼촌의 손에 내쫓겼을 거야.”송민희의 친정은 신미정의 친정보다 더욱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곰곰이 생각하던 유현진이 입을 열었다.“아무리 널 쫓아내지는 못한다고 해도 어쨌든, 너에게 불리한 건 맞잖아?”“응.”강한서가 가볍게 대꾸하였다.확실히 그에게 불리한 영향을 주었다. 여하간에 둘째 삼촌 내외가 송씨 가문과 혼인을 맺게 된다면 자금과 인맥 방면에서 분명 절대적인 힘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유현진은 한참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만약 그 두 사람이 정말 결혼하게 된다면, 넌 어쩔 생각이야?”강한서는 핸들을 돌리며 말했다.“열심히 점수를 채워야지. 난 절대 제일 마지막에 결혼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거든.”유현진의 귀가 순간 붉게 물들었다.“... 내 말은 회사 말이야! 어떻게 할 거냐고!”강한서는 그녀를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웃으면서 말했다.“아무리 궁지에 몰린다고 해도 내가 다른 누군가와 결혼할까 봐 걱정할 필요 없어. 난 너랑만 결혼하고 싶거든.”안전벨트를 잡고 있던 유현진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민경하는 당연히 그의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밸런타인데이 당일에 예매한 영화표였기에 다른 영화를 예매할 수가 없었다.‘도 아주 힘들게 예매한 건데, 그거라도 만족해야 하는 거 아닌가?'유현진은 잔뜩 어두워진 얼굴로 한참이나 전화를 하는 강한서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어, 그냥 내가 가서 다른 영화로 바꿀 수 없나 물어볼게.”이윽고 두 사람은 직원에게 찾아가 물어보았지만 민경하가 예매한 영화표는 당일 특가로 나온 영화표라서 환불도 불가능하다고 그들에게 말했고 게다가 새벽 시간대 빼고는 지금 시간대에 남아있는 영화표가 없다고 했다.새벽 시간대는 이미 밸런타인데이가 지난 시간대였기에 당연히 사람들이 적었다.망설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직원이 설득했다.“사실 이 영화에도 로맨스가 포함되어 있어요. 커플끼리 보기에도 아주 적합한 영화예요. 오늘만 벌써 여러 번 매진되었거든요. 커플에게 인기도 아주 많았어요.”유현진은 밸런타인데이에 공포 영화가 매진되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직원이 다시 말을 이었다.“보지 않으셔도 저희가 환불해 드릴 수 없어요. 일단 두 분께서 먼저 들어가 보시다가 그래도 재미가 없으시면 중도에서 빠져나와도 됩니다. 영화표를 그냥 낭비하는 것보단 낫잖아요.”유현진은 살짝 설득당한 것 같았다. 그녀는 낭비를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었기에 영화표 두 장을 꼭 쥐고 강한서를 보며 말했다.“한 번 가서 볼래?”어차피 이미 영화관에 왔고, 영화표도 힘들게 줄을 서서 출력했으니 영화를 보지 않고 그냥 가는 건 너무 낭비인 것 같았다.강한서는 애초에 어떤 영화를 보든 딱히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유현진이 보고 싶다고 하니 그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두 사람은 밸런타인데이 밤 이라는 국산 공포 영화를 보게 되었다.확실히 직원의 말에 거짓이 없었던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영화를 보러 들어왔을 땐 이미 절반 이상의 좌석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게다가 영화가 상영되는 곳은 스위트박스였고
‘이게 아까 직원이 말한 로맨스 부분이야?'충격적이네...이어진 스토리는 그야말로 대환장 파티였다. 5명의 주인공이 서로 복잡한 남녀 관계로 얽혀있었고 다른 주인공들이 도망치는 중에도 계속 뜬금없이 쾌락을 즐기는 장면이 나와 유현진은 영화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그녀는 오히려 옆에서 흥미롭게 영화를 보고 있는 강한서에게 시선이 갔다.‘그렇게 재밌나? 눈 한번 깜박 안 할 정도로?'유현진은 다시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순간, 스크린에 나오는 여주의 몸매가 아주 좋다는 것을 발견했다.굴곡이 분명한 몸매였고 감독이 도대체 무슨 의도로 입힌 것인지는 몰랐지만 여주가 입은 옷들은 전부 몸매 굴곡이 확연하게 알리는 타이트한 옷들이었고 심지어 그녀마저 여주의 몸매에 시선이 갔다.‘강한서가 이런 취향이었나?'그녀의 마음속에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그녀는 자신이 강한서가 어떤 여성을 좋아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예전에는 강한서가 송민영처럼 청초하고 귀여운 타입의 여자를 좋아하는 줄로 알고 있었지만, 나중에 오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그의 취향에 대해 모르게 되었다.곰곰이 생각해 보니 강한서는 어떤 타입의 여자를 좋아하는지 티를 낸 적이 없는 것 같았다.그의 SNS 계정 팔로우만 봐도 여자가 적었고 모두 업무에 연관된 사람들의 계정뿐이었다.그녀는 갑자기 학창 시절의 강한서가 어떤 이성이 취향이었는지 궁금해졌다.이에 그녀는 검지로 천천히 그의 무릎에 걸친 손등을 살짝 쓸었다. 그러나 강한서는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유현진이 손을 빼내려 했지만 빼낼 수가 없어 그냥 가만히 있었다.강한서는 그녀의 부드러운 손을 만지며 나직하게 말했다.“왜 그래?”유현진이 그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넌 처음에 어떤 타입의 여자랑 해보고 싶었어?”“...”강한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말에 그는 아직 관계를 확정 짓지 않은 이성에게 함부로 이런 말을 하는 그녀가 대담하다고 말해야 할지, 아니면 그녀가 자신에
그가 말하지 않은 건 애초에 그런 대상이 없어서였지만, 유현진이 말하지 않는다는 건 설마 2주 사귀고 헤어졌다는 그 첫사랑은 아니겠지?유현진은 항상 유혹해 놓고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녀는 두세 마디의 말로 강한서의 마음을 헤집어 놓고 다시 스크린으로 시선을 옮겼다.영화가 끝나기 전까지 강한서는 영화에 다시 집중할 수가 없었고 그의 머릿속엔 온통 그 남자가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생각뿐이었다.영화관에서 나올 때도 강한서는 계속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하고 있었다. 음료수를 사 온 유현진은 그런 축 늘어진 강한서의 모습에 차가운 음료수를 그의 목에 가져다 댔다.차가운 감촉에 강한서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유현진이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왜, 아직도 생각나?”“응?”강한서는 “아직도 생각나”의 의미를 몰랐다. 그러자 유현진이 관심 없다는 듯 말했다.“평소에는 아주 정직한 사람으로 보이더니, 한성우 씨랑 같은 취향일 줄은 몰랐네? 그런 쭉쭉빵빵한 몸매가 취향인 거야?”강한서는 그제야 그녀가 말한 “아직도 생각나”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유현진은 속으로 질투하고 있었지만, 마음에도 없는 말을 입 밖에 꺼냈다.“그래, 남자니까. 이해해.”강한서는 미간을 꾹꾹 누르더니 살짝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넌 평소에도 상상하는 게 취미지? 그리고 네가 한 상상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나한테 덮어씌우는 거지?”졸지에 정곡을 찔린 유현진은 순간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언제 너한테 덮어씌웠다고 그래? 네가 영화 속 여주인공을 보면서 장면 하나 안 놓치겠다고 눈도 깜박 안 한 거, 내가 잘못 본 거야?”그러자 강한서가 일일이 열거했다.“내 첫사랑 상대가 송민영인 줄 알고 나한테 바람났다고 덮어씌우고, 고작 다른 사람한테서 들은 두 마디 헛소리에 본인을 불륜녀로 만들고, 그리고 내가 너한테 손을 몇 번 안 댔다고 네가 일방적으로 내가 그런 방면에서 안 된다고-”마지막 말까지 듣게 된 유현진은 황급히 그의 입을 손으로 막으면서 그를 노려보았
유현진은 시간을 확인했다.“시간도 늦었는데 오늘 영화 보러 데리러 와줘서 고마워. 이젠 각자의 집으로 알아서 돌아가자.”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가려고 했지만, 강한서가 그녀의 손목을 확 잡아당기더니 그녀를 품에 가두었다.“다 말했어?”강한서는 화가 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그럼 이제 나에게도 말할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어?”유현진은 그를 훑어보면서 말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네가 아무리 날 밀어내려고 해도 소용없어. 네가 일부러 이러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넌 끊임없이 내 인내심이 어느 정도인가 테스트를 하고 있잖아. 넌 내가 너랑 평생을 하고 싶다는 결심을 믿지 못하는 거잖아, 아니야?”유현진은 마른 입술만 할짝대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더는 부정할 수 없는 설렘과 흔들리는 마음을 강한서가 이렇게 쉽게 간파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강한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기면서 나직하게 말했다.“나도 알고 있어. 네 마음속에 나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거. 네가 임신 못 하는 것 때문에 마음속에 응어리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 난 너를 빨리 선택하라고 재촉할 생각은 없어. 네가 언제 나랑 연애할 마음이 들면 그때 시작하면 돼. 네가 그럴 마음이 생길 때까지 계속 나를 관찰하고 지켜봐도 돼. 예전에 우리가 함께였을 땐 네가 나한테 많이 양보해 줬잖아. 이젠 내가 양보하고 이해해 줄 차례야. 내 어디가 마음에 안 들면 바로 말해. 내가 어떻게든 고치려고 노력해 볼 테니까.”유현진이 감동하려는 순간 강한서가 말을 계속 이었다.“만약 나랑 연애하지 않을 거면, 그럼 다른 남자와도 연애할 생각하지 마.”“??? 그건 좀 지나친 요구인 것 같은데?”강한서는 시선을 떨구고 나직하게 답했다.“응, 그러면 내가 미쳐버릴 것 같거든.”유현진은 그의 대답을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이혼한 후 강한서가 그녀에게 더 들러붙는 것 같았고 전보다 그녀의 눈치마저 살필 줄 알게 된 것 같았다.그는 정말로 그가 말한 것처럼 자신을 바꾸고 있었다
유현진에게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은 제일 무거운 마음의 짐이었다. 그녀가 그 얘기를 꺼낸다는 것은 분명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강한서는 마음이 일렁이는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유현진에게 가볍게 비볐다. 그는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유등 날리면서 소원 빌자.”유현진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구류되면 어쩌려고?”강한서가 말했다. “괜찮아. 한성우 이름 쓰면 돼.”유현진: …어쩐지 한성우가 늘 온갖 수단으로 강한서를 괴롭히더라니. 강한서도 한성우에게 못된 짓을 많이 하고 있었다. 오늘 능강 근처 사거리에서는 유등축제가 있었다. 거리의 상공에는 전부 유등으로 가득했고, 길에서 올려다보면 다양한 유등이 잇따라 올라가고 있어 유서 깊은 옛 골목은 떠들썩하기 그지없었다. 유현진은 한 노점에서 고풍스러운 반쪽짜리 여우 가면을 발견했다. 그녀는 가면을 얼굴에 대더니 강한서에게 물었다. “예뻐?”강한서가 말했다. “네가 하니까 예뻐.”유현진이 그를 쳐다보았다. ‘입에 꿀이라도 발랐나?’유현진이 가면을 써보는 사이, 강한서가 이미 계산을 마쳤다. 진열대에는 많은 가면이 있었고 유현진은 반쪽짜리 금속으로 된 가면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가 막 손을 뻗어 그 가면을 집으려고 하는데, 누군가 그녀보다 먼저 가면을 가져갔다. 유현진이 미처 고개를 돌리지 못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음에 들면 써봐요.”송가람은 가면이 마음에 들었었지만 강현우의 말에 써보려던 마음이 사라졌다. 그녀는 입술을 앙다물고 가면을 다시 진열대에 올려두고 뒤돌아 가려고 했다. 바로 그때, 그녀는 가면을 쓰고 있는 여자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말하는 강한서를 발견했다. “더 고를 거야?”멈칫 행동을 멈춘 송가람이 얼떨결에 그를 불렀다. “한서 오빠.”강한서는 우뚝 멈춰서 고개를 들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니 그 곳엔 송가람과 강현우가 있었다. 1초간 시선을 멈춘 강한서는 곧 그들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이
유현진은 이번 일의 당사자였다. 그러니 그녀도 당연히 착하게 굴 수는 없었다. 전 와이프라는 관점을 내려놓고 보면, 다른 여자들에게 강한서는 확실히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여자들이 그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송가람은 유현진이 구해주었던 사람이다. 유현진이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그녀의 전남편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것은 정말이지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감정이라는 것이 아무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매너는 지켜야 했다. 그녀는 이런 한두 가지 일로 한 사람을 정의하고는 싶지 않았고, 이곳에 더 오래 머물며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강한서의 손을 잡아끌며 나지막이 말했다. “가자.”강한서가 “응.”이라고 대답하고는 유현진을 데리고 자리를 벗어났다. 송가람은 유현진 손목에 있는 눈에 익은 루비 팔찌를 발견하고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창피함과 모욕감이 몰려왔다. 송가람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한껏 꾸미고 데이트를 나왔지만, 강한서는 송가람을 강현우에게 던져줬다. 강한서의 전화는 통하지도 않았고 그녀는 그에게 갑작스레 일이 생겨 오지 못하는 것이라 스스로 다독였다. 하지만 강한서는 다른 여자와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만약 강한서가 애초부터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더라면 이렇게 창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은 그 두 사람에게는 그저 웃음거리에 불과한 것 같았다. 그녀의 자존심은, 그런 상황에서도 따져 묻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따져 물어봐야 자신만 바보가 되는 것 같았다. 강현우는 송가람의 표정을 주시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형이 한 우물만 파는 스타일이라서요. 한번 찜한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을 거예요. 가람 씨는 좋은 사람이니까, 굳이 형에게만 마음을 줄 필요는 없어요. 가람 씨 주변에 있는 사람도 둘러봐요.”송가람은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말했다. “현우 씨, 저 좋아해요?”이렇게 돌직구를 던질지 몰랐던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