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은 하나도 담기지 않은 한마디로 유현진은 한꺼번에 두 사람을 욕했다. 유현아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예쁜 얼굴 때문에 부잣집 아가씨들도 함께 사진을 찍기 싫어했던 유현진은, 분명 이미 웃음을 팔며 살아가는 광대가 되었는데도 그녀만의 도도한 아우라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콧대가 더 높아져 있었다. 최나라가 입을 열었다. “소문이 사실인가 봐. 아니면 어떻게 저렇게 기가 살았겠어.”유현아가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무슨 소문?”최나라가 유현아에게 다가가 비밀스럽게 말했다. “유현진이 송씨 가문 도련님에게 꼬리 쳤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송민준 씨랑 집 보러 다니는 걸 본 사람이 있대. 유현진의 소속사도 송씨 가문 회사고. 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유현아가 멈칫하더니 물었다. “확실해?”최나라가 말했다. “나도 소문으로 들은 거라 직접 본 적은 없어. 하지만... 믿는 구석이 없이 유현진이 어떻게 감히, 무슨 용기로 너한테 그런 말을 하겠어? 혼외 자식 주제에, 유씨 집안 친딸인 널 봤으면 당연히 꼬리를 내려야 하는 거 아니야?”유현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현진이 송민준과 만난다면, 그녀가 직접 손을 쓸 필요가 없었다. 주아름이 그렇게 오랫동안 송민준을 따라다녔어도 단둘이 데이트할 기회도 얻지 못했는데, 만약 그녀가 송민준이 이혼한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자존심에,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유현진이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자기와 같은 고통을 겪지 않는다면, 유현아는 절대 하루도 마음 편히 살 수가 없었다. 유현진이 화장실을 나서자 유현아가 곧 그녀를 따라나섰다. 그녀가 대체 누구와 한세 한식당에 밥을 먹으러 온 것인지 확인해야 했다. 만약 그 사람이 송민준이라면, 그건 정말 상대방의 약점이 손으로 굴러들어 온 셈이었다. 유현진이 어두운 얼굴로 돌아오자 강한서는 그녀가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왜 그래?”유현진이 말했다. “화장실에서 파리 두 마리 봤
그 장면을 본 유현아의 얼굴이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유현진이 강한서와 같이 밥을 먹다니!’‘저 두 사람, 이혼하지 않았어?’‘그때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 강한서가 일전 한 푼도 주지 않고 유현진을 내보냈는데, 왜 또 유현진과 밥을 먹고 있지? 심지어 저렇게 다정한 행동을 하면서.’‘어쩐지 유현진이 겁이 없더라니. 강한서를 놓지 않고 송민준을 속이면서, 두 사람을 사이에 두고 아주 물 만난 물고기가 다 됐네!’질투와 증오에 사로잡힌 유현아는 밥도 먹지 않고 돌아갔다. 최나라는 한참을 기다려도 유현아가 돌아오지 않자 나가서 유현아를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막 문을 나서려는데, 종업원이 그녀의 길을 막아서며 먼저 결제를 하라고 했다. 최나라가 말했다. “저 지금 친구를 찾고 있거든요. 돌아오면 같이 계산할게요.”종업원은 바로 그녀에게 알렸다. “현아 씨는 이미 가셨는데요.”최나라가 그 자리에 굳어졌다. 그녀의 얼굴은 바로 어두워졌다. ‘유현아 이 괘씸한 게, 자기가 사겠다고 이렇게 많이 주문했으면서 결국 계산하기 전에 도망쳤다고?’호박은 그저 호박일 뿐, 아무리 줄을 긋는다고 해도 수박이 될 수 없었다!집으로 돌아간 유현아는 가방을 소파에 팽개치고 신발도 갈아신지 않았다. 도우미가 막 닦은 바닥에는 그녀의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도우미는 얼른 유현아의 슬리퍼를 가져오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신발 갈아신으세요. 금방 바닥 청소를 했거든요.”화가 잔뜩 나 막 화풀이 대상을 찾고 있던 유현아는 일부러 마르지 않은 바닥을 딛으며 발자국을 몇개 냈다. “금방 했으면 또 해. 이런 일을 시키려고 우리가 돈을 주면서 그쪽을 고용한 거잖아. 우리가 자선활동이라도 하는 줄 알아?”도우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대꾸하지 않았고 조용히 걸레를 들고 바닥의 발자국을 지웠다. 유현아는 곁눈질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도우미가 막 발자국을 깨끗하게 닦자 그녀는 또바로 바닥을 여러 번 디뎠다. 도우미가 다가오자, 그
유현아는 쓰레기를 바닥에 던지면서 담담하게 말했다.“지금 손 씨 아주머니께 어떻게 청소를 해야 하는지 가르쳐 드리고 있잖아요. 아주머니께선 이젠 나이도 드실 만큼 드셨으니 청소도 대충대충 하고 계시잖아요!”“그만하거라!”유상수가 호통을 쳤다.“손 씨 아주머니는 이 집에서 일한 지 가장 오래되신 분이다. 아주머니의 업무 태도가 어떻든 내가 모를 것 같으냐?”그는 말하면서 손 씨 아주머니를 끌어당기더니 잔뜩 어두워진 얼굴로 유현아를 향해 말했다.“얼른 아주머니께 사과해!”유현아의 표정이 확 일그러지더니 손에 있던 쓰레기를 바닥에 휙 던지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싫어요! 제가 왜요! 애초에 아주머니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건데, 제가 왜 사과를 해야 해요?”“너 그게 무슨 버릇이냐? 예의는 밥 말아 먹었니?”유현아와 백혜주를 다시 집으로 데리고 온 후로부터 유현아는 전처럼 “착한 아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예쁜 말만 골라 하면서 가끔 집안일도 도와주며 집안 도우미를 도와 차를 따라주던 유현아는 이미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손 씨 아주머니는 두 부녀가 설전을 벌이자 결국엔 모든 책임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면서 말렸다.“아이고, 괜찮습니다. 제가 얼른 후딱 치우면 됩니다.”유현아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아빠, 혹시 아주머니가 아빠의 전 부인이 고용한 사람이라서 그래요? 그래서 제가 아주머니를 난처하게 만드니까 심기가 불편하셨던 거예요? 이미 화장까지 한 사람을 왜 이렇게 두려워하시는 거죠?”유상수는 정곡이라도 찔린 듯 바로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그 입 다물지 못해!”뺨을 맞은 유현아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그녀는 유상수가 그녀에게 손을 댈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기 때문이다.마침 거실로 내려오던 백혜주가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왜 애를 때려요?”그녀는 바로 유현아를 자신의 몸 뒤로 숨겼다.유상수는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쟤한테 물어봐! 도대체 내 앞에서 무슨
유상수는 미간을 찌푸렸다.“지금 뭐라고 한 게냐?”유현아는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아빠의 교양 넘치는 딸 말이에요. 이혼하고도 강한서를 놓아주지도 않고, 심지어 송씨 가문의 송민준에게도 꼬리를 치고 다닌다고요. 그리고 이 말을 전해 달라더군요. 하현주가 걔를 위해 준비한 혼수와 강씨 가문에서 걔한테 준 예물이 모두 얼마인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고, 시간이 나면 바로 와서 돌려받겠다고 했다고요. 만약 아빠가 돌려주지 않으면 고소까지 할 생각이라고 하더군요.”유상수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내가 그동안 키워준 게 얼마인데? 감히 나한테 그걸 돌려받겠다고?!”뺨을 맞았던 유현아는 당연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고 거기다 백혜주가 지금 그녀를 지켜주고 있으니 그녀는 비아냥거리는 어투로 말했다.“못 돌려받을 게 또 뭐가 있겠어요? 아빠는 걔 엄마가 식물인간이 되자마자 이혼 서류를 내미셨잖아요. 유현진은 아마 뼛속까지 아빠를 증오하고 있을 거예요.”백혜주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힐끔 보았다.“그만 말해!”유현아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백혜주가 말했다.“걘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애구나? 예물을 돌려받겠다고? 이미 이혼까지 한 마당에 청산할 예물이 어디 있어? 청산을 받아도 강씨 가문이 우리한테 청산을 받아야지, 걔가 뭐라고 그걸 받아? 그리고 하현주가 준비해 준 혼수는, 하현주가 그냥 병원에 입원했어? 아니잖아. 입원비를 내고 입원한 거 아니야? 걘 설마 진짜로 하현주가 걔한테 막대한 재산을 남겨줬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유상수는 당연히 유현진에게 그 돈을 줄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애초에 그에게 그만한 돈이 없었다.그의 돈은 이미 연현 테크의 주식 투자에서 절반이나 날렸고, 전에 유현진과 강한서가 이혼하면서 그가 운영하던 회사와 장기 계약한 거래처들도 떠나버려 매출액도 절반 가까이 확 줄어들었다. 심지어 회사의 몇몇 임원진들의 마음도 이미 떠나간 상태였고 이미 몰래 뒤에서 회사의 주식을 팔아버린 사람도 있었기에 만약 누
유현진은 입을 앙다물었다.“유상수.”차미주는 바로 화를 냈다.“그 쓰레기가 무슨 염치로 너한테 연락을 한 거야?!”“나도 몰라, 어쨌든 분명 좋은 일은 아닐 거야.”말을 하는 순간에도 휴대폰이 또 울렸다.차미주가 말했다.“받아봐. 도대체 이 쓰레기가 무슨 생각인지 알아보게. 그리고 현주 아주머니의 돈도 다 뱉어내라고 해!”생각을 마친 유현진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유상수의 전화 폭격은 처음이었기에 그녀는 뭣 때문에 그가 이렇게 전화를 쳐대는지 궁금하기도 했다.“현진아, 끊지 말고 일단 들어봐.”전화가 드디어 통하자 유상수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유현진은 휴대폰 스피커폰 모드로 전환하면서 녹음 기능까지 켜두고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유상수 씨, 자꾸 이런 식으로 전화하시면 당장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난 그냥 너에게 볼일이 있단다.”유상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별다른 뜻은 없어.”유현진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하, 저희 사이에 고소를 진행하는 것 말고는 또 다른 볼일이 있나요? 아니면 유현아가 제 말을 똑똑히 전했나 보네요, 그래서 돈을 갚으시려고요? 돈 갚으시려는 거면 제가 얘기를 들어드리죠.”유상수의 표정이 순간 확 굳어졌고 언짢은 기분을 꾹꾹 참으며 말을 이었다.“현진아, 비록 너와 나는 혈연관계가 없는 사이이지만, 그래도 내가 널 키웠잖니. 난 우리 사이에 아직도 가족애가 남아있다고 보는데, 넌 안 그러냐? 사실 법정에서 나온 후로부터 난 줄곧 네가 너무 걱정되어 마음이 좋지 않았단다. 잘 지내고는 있니?”차미주는 바로 헛구역질을 하면서 입 모양만 벙긋거렸다.“도대체 무슨 낯으로 저런 말을 한대?”유현진은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유 대표님, 이렇게 말씀드리죠. 저희 사이에는 더는 남아있는 감정이라고 할 게 없습니다. 굳이 걱정하는 척 연기하지 말았으면 합니다만?”유상수의 표정이 다소 일그러졌다. 유현진의 화법은 그야말로 하현주의 화법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그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꾹 참으면서 나직하
차미주는 무표정을 지으면서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는 유현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만약 그녀가 유현진과 함께 있지 않았다면 유현진의 목소리만 듣고 그녀는 분명 유현진이 유상수의 꿍꿍이에 넘어갔을 것으로 생각했다.명백하게 하자는 말에 유상수는 역시 뜸을 들였다.“그... 그래서 어떻게 명백하게 할 생각이지?”“적어도 입양 절차 정도는 해주셔야죠. 입양 신청하고, 유언장에 제 이름도 써주시고. 만약에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이 두 서류가 없이는 전 유산을 단 한 푼도 못 받게 되거든요.”유상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그저 유현진을 이용하여 그에게 다리를 놓는 역할만 해주길 바랐고 그녀에게 유산 받을 권리까지 주고 싶지 않았다.“현진아, 지금 이런 말을 하기에는 아직 이르단다. 내가 아직 건강하게 살아있으니, 유언장은 좀 아닌 것 같구나. 게다가 넌 이미 성인이 되었으니 입양 신청은 할 수 없을 테지. 그건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더냐? 그래도 걱정은 하지 말거라. 그 두 가지가 없어도 난 널 내 친딸처럼 여길 거고 다른 사람들 눈에도 넌 정정당당한 유씨 가문의 아가씨가 될 거다. 네가 미래에 강한서랑 다시 재혼하든, 아니면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든 유씨 가문은 영원히 널 지켜줄 거다.”그의 입에서 강한서의 이름을 듣게 되자마자 유현진은 바로 그가 갑자기 계속 전화를 걸어온 의도를 알아차리게 되었다.유상수는 이익을 따지는 사람이었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녀를 갑자기 수양딸로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아마도 어디서 뭔가를 들은 게 틀림없었다.유현진은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아무것도 못 해주면서 저보고 어떻게 믿으라는 거죠? 적어도 저한테 성의는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유상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자그마한 성의를 보이지 않는 한 정말로 이젠 유현진을 쉽게 속일 수 없는 것 같았다.“아빠로서 당연히 성의를 보여야겠지. 그래. 네 외할아버지께서 남기신 자그마한 저택이 하나 있단다. 전에는 내가 사업을 하느라 그 저택을 담보로 내걸었지만,
유상수는 그동안 한성 그룹을 등에 업고 아주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그는 본인과 강씨 가문의 관계를 들먹이며 주문을 받아냈지만, 제품의 세대교체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고, 또한 제품에 정말로 관심 있는 고객들을 늘리지도 않았다. 그녀가 강한서와 이혼을 하자마자 강씨 가문과의 관계도 끝나버렸고 유상수는 떠나가는 고객들조차 붙잡지 못했으니 회사가 망하는 건 시간문제였다.그러나 유씨 가문의 회사는 오랜 기간 기반을 다져온 회사였고 유상수도 꽤나 많은 재산을 모았을 것이었기에 이렇게 쉽게 망할 위기에 처할 리가 없었다. 그녀가 알지 못하는 다른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고 그 일로 인해 유상수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던 유현진은 아예 생각을 포기하기로 했다.이 녹음 기록으로 그녀는 하현주의 저택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그녀는 주강운에게 문자를 보내 문의해 보려고 했다. 그러다 그녀는 메시지 내용을 쓰다 말고 갑자기 동작을 멈추더니 이내 내용을 삭제해 버렸다.주강운에게 물어보는 것은 물론 아주 편리했지만, 질투의 화신인 강한서가 알게 된다면 분명 또 난리를 칠 것이었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미주야, 전에 동창 중에 변호사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 유산 문제도 해결해 준대?”차미주가 말했다.“아마도 가능할걸? 걔는 사건이라면 다 받아. 근데 왜 주 변호사님을 찾지 않고 다른 사람을 찾는 거야? 주 변호사님 엄청 실력 있잖아. 승소율도 높고.”“계속 주 변호사님께 부탁할 수는 없잖아. 일단 네가 아는 그 변호사 카톡 아이디 알려줘.”차미주는 휴대폰을 보면서 말했다.“너 혹시 강한서가 질투해서 확 엎어버릴까 봐 그러는 거지? 넌 정말 강한서에게 물러도 너무 물러! 이혼까지 했는데 강한서가 너한테 송민영에 대해 변명을 하지 않는 거 보면 둘 사이에 뭔가 있다는 거잖아. 그동안 널 가만히 내버려 두다가 왜 인제 와서 다시 좋아한다고 그러는 거야? 너도 얼른 다른 남자를 만나서 강한서
대표님이 지시한 일이니 그는 하는 수 없이 해체해야만 했다.그는 공구함을 열고 안에서 각종 소형의 공구들을 꺼냈다. 루나가 기계 눈으로 한 무더기의 공구들을 스캔하더니 갑자기 말을 했다.“아저씨, 저를 해체하려면 반드시 원래 있던 공장에서 해체해야 해요. 루나의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맘대로 해체하면 다치게 될 거예요.”그 사람은 순간 깜짝 놀라 하마터면 손에 든 공구를 놓칠 뻔했다.“송 대표님, 그래도 해체를 안 하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이런 지능이 높고 인간의 행동까지 예측 가능한 로봇을 그가 해체하면 다시 조립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송민준은 다리를 꼬더니 차를 한 모금 마셨다.“해체하라면 해체하세요. 말이 많은 것 같으면 당장 전원을 끄시고요.”그 사람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루나의 전원 버튼을 눌러 전원을 꺼버렸다. 그리고 제어판의 위치를 찾은 뒤 해체 작업을 시작했다.제어판 주위에 있던 나사를 제거하자 제어기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그가 기계 본체 안으로 손을 뻗자 전원을 꺼둔 루나가 갑자기 그의 손목을 확 잡아챘다.그리고 송민준은 작았던 철 덩어리에 사지가 생기고 변형되는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되었고 120cm 정도였던 작은 철 덩어리는 순식간에 성인 남자의 키만큼 커지게 되었다. 로봇에게 팔을 잡힌 남자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송민준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찻잔을 몸에 엎어버렸지만, 그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뭐야 이거? 트랜스포머야?”루나는 이미 방어 모드로 전환되어 있었고 그 남자의 팔을 놓아주더니 이내 머리를 빙 돌려 송민준을 목표물로 고정하고는 바로 다리를 들어 그에게 다가갔다.송민준의 앞까지 온 루나는 그의 손에 있던 찻잔을 뺏어 들고 로봇 팔로 찻잔을 박살 냈다.이윽고 찻잔을 박살 낸 그 로봇 손이 송민준을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었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송민준은 바로 도망쳤다.루나는 그를 쫓아갈 뿐만 아니라 파괴 모드로 전환하더니 자신의 길을 막는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파괴하면서 그를 쫓아갔다.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