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신이 아마도 차미주에게 대충 이런 감정을 가졌다고 생각했다.비록 차미주는 머리가 조금 멍청했지만, 의리가 있었고 요리도 잘하고 성격이 난폭하긴 하지만 뒤끝 있는 타입은 아니었다.바로 그가 좋아하는 호쾌한 유형의 사람이었다.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한성우는 얼른 그녀와 화해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는 의리도 지키고 요리도 잘하는 여사친을 잃고 싶지 않았다.이윽고 그는 먼저 술병을 들고 그녀의 잔에 부어주었다.“도, 아니 미주야. 도시락 일은 내가 잘못했어. 내가 네 믿음을 배신했어. 그러니까 이 한잔은 내가 사과주로 부은 거니까 마시고 용서해 주라.”차미주는 살짝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미간을 팍 찌푸렸다.“이건 또 무슨 속셈이야?”“...”차미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너무 쉽게 사과하는 한성우를 보며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한성우가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나 생각했다.그는 주눅이 든 목소리로 말했다.“난 그냥 정말 사과하려고 그러는 거야. 어젯밤 네가 차에서 내리고 나서 나도 엄청나게 후회했다고. 네가 나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맛있는 것도 만들어 주고, 게임도 같이 해주고. 근데 내가 도시락 먹고 싶어서 몰래 먹었다가 너를 화나게 만들어버렸잖아. 나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그리고 그 입맞춤에 관해서는 그는 아직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차미주가 입을 열었다.“네가 잘못한 게 어디 이것뿐이야? 조 선생님 앞에서 나한테 입 맞췄지 않아! 비록 넌 네게 들러붙는 여자들을 쫓아내기 위해 그런 거였겠지만, 그래도 내 입장은 생각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조 선생님이 봤으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난 그동안 널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넌 이렇게 날 엿 먹이냐?”“...”한성우가 그 입맞춤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 줄까 생각하고 있을 때 차미주가 이미 대신 말을 꺼냈다.그녀는 한성우가 자신에게 들러붙는 여자들을 쫓아내기 위해 그녀에게 입을 맞춘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즉, 그녀에겐 그 입맞춤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것이었다
한성우는 깜짝 놀라 황급히 그녀의 손을 잡았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이미 뜨거운 국물에 살짝 닿은 상태였다.“미쳤어? 이거 뜨거운 국물이라고!”차미주는 멍한 표정을 지다가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으앙”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한성우는 얼른 그녀의 손을 잡고 화장실로 들어가 찬물에 손을 헹구었다.차미주는 울면서 말했다.“진심으로 사과도 안 하고 고기도 못 먹게 하는 것도 모자라 이젠 내 손가락까지...”한성우는 그녀의 말에 대꾸하려 했지만, 다시 입을 다물었다.그는 어차피 술 취한 사람과 말이 통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차미주는 더욱 주정을 부리기 시작했다.“왜, 왜 나한테 사과 안 해?”“미안해.”한성우는 아주 건성건성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손가락 끝을 꼼꼼히 관찰했고 살짝 붉어지긴 했지만, 물집이 생기거나 피나진 않았다.차미주가 미간을 찌푸렸다.“고작 미안하다고 하면 다야?”“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래도 부족한 거야?”한성우는 치약을 살짝 짜내어 그녀의 손끝에 발라주었다.차미주는 갑자기 몸을 확 돌리더니 그의 멱살을 잡으며 흐릿한 눈으로 말했다.“당연히 부족해! 내 첫 키스도, 내 첫날밤도 네가 다 뺏어갔어! 그런데 내가 왜 굳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널 용서해 줘야 해?”손에 힘을 꽉 주고 멱살을 잡는 차미주에 한성우는 절로 허리를 숙이게 되었고 그녀와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럼 어쩌라고?”차미주는 미간을 찌푸렸다.“기다려 봐. 생각 좀 해보게.”그녀가 어떻게든 무언가를 생각해 내려 하는 모습을 본 한성우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살짝 지었다.2분 뒤, 한성우는 그녀에게 물었다.“생각났어?'차미주는 고개를 들었다.“받은 것 그대로 돌려줄 거야!”“뭐―”한성우가 반응하기도 전에 차미주는 그의 멸살을 확 잡아당기더니 발꿈치를 들고 그에게 입을 맞췄다.한성우의 눈이 점점 커졌다.'마늘 먹었잖아!'그는 어
한참이 지나도 소식이 없는 차미주에 강한서는 한성우에게 연락해 보겠다고 했다.다시 정신을 차린 강한서는 휴대폰을 넣었다.“바로 온대.”그는 말하면서 유현진을 옆으로 끌어당겼다.“안 추워?”유현진은 고개를 저었다.애초에 더운 날씨였던 터라 비가 내리면 당연히 땅의 온도도 내려갈 거로 생각했지만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는 비에 살짝 추워 나기 시작했다.고개를 저은 그녀는 바로 재채기를 했다.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렸고 몸을 휙 돌리더니 그녀를 품에 가뒀다.유현진이 나직하게 말했다.“이렇게까지 안 해줘도 돼. 나 그 정도로 약하지 않아.”강한서는 고개를 떨구고 그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이미 남편으로서는 실격했지만 남자친구로서는 더는 실격하지 않을 거야.”유현진은 멍한 표정을 짓더니 한참 후에야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100점 되기엔 아직 멀었어.”강한서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그럼 추가점수 줄 거야?”유현진은 생각하더니 말했다.“가산점 50점 줄게.”“500점으로 해줘. 내가 이따 돌아가서 이 옷을 입어줄게.”그는 비닐봉지에 담긴 망사옷을 가리키며 말했다.순간 유현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누가 본대!”강한서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내가 입고 싶어서 그래.”“... 네가 보기엔 네가 하려는 행동이 음탕하다고 생각되지 않아?”“너도 전에 스스로 입은 적이 있으니까, 이번엔 내 차례잖아.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어?”“...”강한서가 말한 “전에”는 두 사람이 함께 보낸 밤을 가리키고 있었다.그날 밤의 기억은 그녀의 머릿속에 아주 생생했고 그녀는 어떻게든 그 기억을 지우려고 애를 썼다.그녀는 이를 갈며 말했다.“왜 굳이 이런 일로 공평해지려고 하는 거야?”“이런 일이니까 공평해야 하지 않겠어?”강한서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혹시라도 우리 유현진 사모님께서 나의 그 방면에 어떤 질병이 있다고 생각하면 어떡해. 계속 나한테 병원 예약해 주려고 했잖아.”“...그만해. 네 말발이 대단하다는 거 알고
순간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 같았고 머릿속마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이내 그 열기는 하반신으로 집중되어 갑자기 참기 힘들어졌다.목이 마른 느낌에 그는 아랫입술을 살짝 할짝댔고 입을 벌리던 순간 차미주가 몽롱한 눈빛으로 말했다.“조 선생님께서는 큰 거 좋아하는지, 작은 거 좋아하는지 모르겠네.”“...”그녀의 한마디는 순식간에 찬물이 되어 그에게 확 뿌려졌다.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을 뿐만 아니라 농락당했다는 사실에 민망해졌다.그는 침대 위에 있던 담요를 차미주에게 덮어주고는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나갔다.강한서와 유현진은 그곳에서 10분 동안 기다리고 있었고 그제야 우산을 가지고 오는 한성우를 발견할 수 있었다.그는 고작 우산을 두 개 가져왔다. 하나는 이미 그가 쓰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강한서와 유현진에게 전해주려고 가지고 온 것이었다.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렸다.“하나야?”한성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이 바보 같은 자식, 도대체 어떻게 유현진 씨의 마음을 얻겠다고 생각한 거지?'한성우가 말했다.“도둑이 취해서 두 개 밖에 못 찾았어. 그러면 네가 혼자 써. 나랑 형수님이 같이 쓸 테니까.”그의 말을 들은 강한서의 안색이 파래졌고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유현진이 답했다.“난 그래도 괜찮아.”“...”한성우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강한서가 멍해져 있는 모습을 지켜봤다. 방금까지 차미주에게 농락당했던 그는 순간 기분이 좋아졌다.그는 계속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형수님, 여긴 물웅덩이가 깊으니까 제가 업어드릴게요.”강한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지난번 캠핑에서 돼지 한 마리도 들지 못한 주제에 가능하겠냐?”유현진은 눈을 치켜뜨더니 이내 강한서를 쳐다봤다.강한서는 자신이 말실수했다는 것도 모른 채 계속 한성우를 공격하고 있었다.한성우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거랑 같아? 형수님이 어떻게 돼지 한 마리보다 무겁겠냐?”강한서는 여전히 자신이 한성우에게 말려들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현진이는 55kg이
황급히 쫓아가 봤지만 그래도 붙잡지 못했다. 유현진은 이미 아파트로 들어서 엘리베이터를 탔다.강한서는 집까지 쫓아가 문을 두드렸지만, 유현진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옆에서 구경하던 한성우가 입을 열었다.“됐어, 그만해. 여자들은 몸무게에 제일 민감해. 아마 오늘 밤까지는 형수님의 화가 풀릴 것 같진 않네.”강한서는 기가 찬 듯 그를 노려봤다.“너 뻔뻔하게 그런 말이 나오냐!”한성우는 어깨를 으쓱거렸다.“이것도 봐준 거야. 네가 예전에 내 앞에서 얼마나 형수님이 싸준 도시락과 새 옷을 자랑해 댔는데? 겨우겨우 나와 같은 솔로가 되었는데 이렇게 빨리 다시 마음을 얻으면 내가 짜증이 나잖아.”강한서의 안색이 파래졌다.'도대체 그동안 나한테 뭘 알려준 거야?'집으로 돌아온 유현진은 바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샤워실에서 나오자마자 그녀는 차미주의 방을 들여다보았다. 차미주는 곤히 자고 있었고 아직도 빗발이 세게 내리고 있었기에 그녀는 직원에게 내일 아침에 와서 그릇을 수거해 가라고 연락했다.하지만 한참이나 연락을 했지만 받는 사람이 없어 그녀는 하는 수없이 문자를 남겼다.머리를 말리고 잠을 잘 준비를 하려는데 초인종이 울렸다.유현진은 그릇을 수거해 가는 직원이겠거니 생각하면서 문을 열어주었다.하지만 문을 열자마자 그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져 버렸다.문밖에 있던 사람은 바로 신미정이었다.그녀는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옆에는 중년 남성이 있었고 그녀와 어느 정도 닮아 있었다. 그가 바로 신미정의 동생이자 강한서의 삼촌인 신표였다.신미정의 안색은 그리 좋지 않아 보였지만 메이크업으로 커버했다.밖에 빗발이 세게 내렸지만, 그녀의 몸은 젖은 곳 하나도 없었고 머리도 엉망이지 않았다.유현진은 신미정을 보자마자 바로 문을 닫으려고 했다.그러나 신미정은 이미 그녀의 행동을 예상했다는 듯이 얼른 손을 뻗어 문을 확 열어젖혔다.유현진은 문과 부딪치더니 이내 비틀비틀 앞으로 나가게 되었다.그녀는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여긴 무슨 일이시
신미정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유현진, 주제 넘게 굴지 마!”유현진은 가소롭게 웃었다.“첫째, 강민서와 전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제가 강민서와 시누이로 지낸 그 몇 년 동안이 어땠는지 모른 척하진 않겠죠. 둘째, 걔가 저한테 뜨거운 물을 붓는 데 성공했든 아니든 이미 사람을 해쳤습니다. 그런 애를 제가 미쳤다고 도와줍니까? 셋째, 이 집은 우리 회사 대표님께서 마련해준 집입니다. 당신 아들과는 상관이 없어요. 가서 따지고 싶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넷째...”유현진은 뜸을 들이더니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말했다.“절 평생 임신도 못 하게 만들어 놓고 제가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 아니죠?”그녀가 조목조목 말할 때마다 신미정의 표정이 일그러졌다.신미정은 유현진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원래 유현진이 이혼하고 난 후 유씨 가문과도 연을 끊으며 지내는 꼴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유현진은 그녀의 예상대로 되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더 잘살고 있었다.너무 잘살고 있었던 나머지 그녀의 앞에선 꼼짝을 못 하던 유현진이 지금 바락바락 대들고 있었다!신미정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면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잔뜩 어두워진 얼굴로 물었다.“내가 어떻게 하면 도와줄 건데?”유현진은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몇 년간 그녀의 며느리로 살면서 유현진은 그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허영심이 가득 찬 이기적인 사람이었고 눈앞의 이익을 중시하며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기만 하면 어떻게든 상대와 친해지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아무런 이익도 되지 못하는, 유현진과 유씨 가문 같은 사람에게는 항상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었고 더욱이 치밀어 오르는 화까지 참으면서 부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평소와 다른 그녀의 행동이 그녀가 강민서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신미정의 이런 자식 지키기는, 유현진은 그녀가 강한서에게조차도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고 생
'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날 협박하는 거지?'강한서가 정말로 이 일에서도 강민서를 감싸준다고 해도 그녀는 절대 강한서를 고려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했을 것이었다.유현진은 고개를 들고 신미정을 주시하였다.“도와 드릴 순 있어요.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신미정의 눈이 반짝거렸다.“말해봐.”유현진은 담담하게 말했다.“가서 자수하세요. 저에게 평생 임신을 못 하는 약을 탔다고. 그러면 저도 한열 씨에게 찾아가 민서를 봐달라고 부탁해 보죠.”신미정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지금 날 놀리는 거니?”“그럴 리가요.”유현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기회를 드리는 거잖아요. 딸을 구할 수 있는 기회 말이에요.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민서를 위해 이런 희생도 못 해주나요?”신미정은 눈앞에 있는 곱디고운 유현진의 얼굴을 보니 더욱 화가 치밀어올랐고 손을 들어 유현진의 뺨을 내리치려고 했다.먼저 예상하고 있었던 유현진은 바로 뒤로 물러났고 신미정은 헛스윙을 날리게 되었다.그러나 반대편에서 손이 날라오더니 유현진의 뺨을 철썩 때렸다.그녀의 귓가엔 이명 소리가 들렸고 신표가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렸다.“누나, 내가 말했잖아. 이런 년은 그냥 먼저 때리고 시작하는 게 더 빠르다고!”말을 마친 그는 다시 손을 올려 그녀를 때리려고 했다.신표는 덩치가 아주 큰 사람이었고 성인 남자도 그의 주먹을 받아 내지 못했기에 유현진 같은 연약한 여자가 견뎌낼 리가 없었다.그녀는 그의 주먹에 맞으면 아마 치아도 부러지게 되리라 생각했다.그래서 신표가 팔을 들자마자 유현진은 고민할 겨를도 없이 바로 팔을 뻗어 상대의 급소를 가격했다. 신표는 고통에 소리를 질렀고 바로 허리를 구부리며 급소를 감쌌다.놀란 신미정이 얼른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신표야, 괜찮아?”유현진은 살기 위해 이미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가격한 것이었다. 신표는 자신의 급소가 마치 터진 것 같아 고통에 안색이 창백해졌고 허리를 펴지 못했다.유현진은 이미 휴대폰을 들고 신고하
신표는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의자를 잡던 손에 힘을 풀었고 비틀거리면서 뒤통수를 만졌다. 그러자 그의 손엔 피가 흥건했고 바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신표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모습은 본 신미정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신표의 이름을 부르면서 얼른 그에게 다가갔다.유현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얼른 차미주 손에 들린 꽃병을 빼앗았다.“네가 왜 나왔어?”바닥에 있는 피를 본 차미주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고 창백해진 얼굴로 물었다.“나... 나 설마 사람 죽인 거야?”유현진이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넌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넌 술 마셨고 꽃병은 내가 들고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일단 신고부터 하자.”“그래, 그래. 일단 신고부터.”차미주는 허둥지둥 집 안을 돌아쳤고 휴대폰을 들고 경찰이 아닌 한성우에게 연락했다.그 시각 902호.강한서는 욕실에서 샤워하고 있었고 한성우는 소파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두 판이나 했지만, 연속 진 상태였다.같이 게임을 하던 친구가 그에게 물었다.“오늘 상태가 왜 이래? 무슨 일 있어?”한성우는 평소에도 게임 친구들이랑 별로 소통하지 않았지만, 오늘따라 마음이 너무 답답했다.그는 어차피 게임 속 친구이니 현실에선 만날 일도 없겠다 생각하며 오늘 일을 말해주기로 했다.“내가 아는 친구가 있는데, 최근에 여자랑 밥도 같이 먹고 게임도 같이하면서 매일매일 뭐든 같이 했었어. 그리고 그 친구는 여자를 여사친으로만 생각했고. 하지만 여자가 다른 남자를 짝사랑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았대. 도대체 왜 그런 걸까?”게임 속 친구가 대답했다.“친구가 그 여자를 좋아하고 있네. 안 그럼 다른 이유가 없잖아?”한성우는 미간을 찌푸렸다.“하지만 걔는 그 여자랑 자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데?”상대는 한참 지나서야 대답을 했다.“친구, 너 혹시 연애 못 해 봤냐?”한성우가 바로 그럴 리 없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이내 해명했다.“나 말고 내 친구 얘기라니까.”“그럼 네 친구는 연애해 본 적이 없냐?”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