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은 틀릴 리가 없어요. 여기에 나타난 정보에 의하면 유현진 씨 앞으로 군산구에 별장 한 채, 한라국제에 130평 되는 주택 하나가 있어요. 해당 규정에 의하면 유현진 씨는 한주 시에서 더 이상 부당산을 구매할 수 없어요."현장 직원이 말했다.유현진???군산구는 한주에서 유명한 별장 지역이다. 유현진과 강한서가 살았던 아름드리 펜션이 바로 군산구에 있었다. 별장이라고 하면 설마 아름드리 펜션?강한서 미친 거 아냐?그리고 한라국제에 130평 되는 주택은 또 뭐야?왜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지?유현진은 무거워진 목소리로 문의했다. "혹시 방금 전에 말씀하신 별장과 주택이 언제 제 명의로 바뀐 건지 알 수 있을까요?"현장 직원이 일련의 조작을 하더니 유현진에게 말했다."군사구의 별장은 재작년 3월에 변경했고, 한라국제 주택은 작년 9월에 변경했어요."이 말에 유현진에게 집을 팔려고 계약까지 체결한 집주인의 얼굴 표정이 굳어졌다."부동산 구매 자격도 없으면서 지금까지 뭐한 거예요? 괜히 시간만 낭비했잖아요."유현진은 눈썹을 찌푸리면서 낮은 소리로 해명했다. "제 명의 하에 부동산이 있는 줄 몰랐어요.""자신 명의의 부동산에 대해 모른다는 말을 지금 믿으라는 거예요? 저 놀리는 거예요?"집주인은 문서를 채 가더니 냉랭한 어투로 중개인을 비난했다. "돈을 그렇게 많이 받고 대체 뭘 한 거야?"중개인은 나이가 한참 어려 보이는 젊은 여성이었다. 그는 얼른 집주인에게 사과를 거듭했다.집주인은 인정사정 없이 연거푸 욕하더니 문서를 챙겨서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유현진은 욕을 한가득 얻어먹은 중개인을 보면서 너무 미안했다. 그는 중개인에게 계속해서 사과를 했다.유현진은 자신의 명의 하에 부동산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니면 중개인을 여러 차례 끌고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중개인은 긍정적인 성격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괜찮다고만 했다.돈까지 준비해온 유현진을 보면 몰랐던 게 분명했다. 중개인은 오히려 유현진을 부러워했다. "언니
부동산 두 곳이 자신의 명의로 변경된 시간을 알고 나서부터 유현진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변경된 시점은 이혼 전이었고, 두 사람 사이에 이혼 얘기도 없을 때였다.이 사실을 알고나서 유현진은 뭔가 형용 못할 마음이었다.집이라는 건 명품 가방이나 옷처럼 겉치레인 것과는 달리 사람에게 안전감을 주는 존재였다.예전에 블로그에서 봤던 글귀들이 떠올랐다.[결혼한 지 5년이 됐고, 아이 둘까지 낳아 키웠는데, 남편은 여전히 저희 집을 공동 명의로 바꾸지 않으려고 해요. 저 이혼해야 할까요?][예비 남편은 자신이 집 계약금을 냈으니, 저더러 인테리어 비용을 내고, 결혼하고 나서 함께 대출을 갚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집을 두 사람의 공동 명의로 하자고 했죠. 그런데 그런 저를 보고 예비 남편은 여자가 그렇게 물질적이면 안 된대요. 이 결혼 해야 하나요?][대출을 3년이나 갚았는데, 집이 시어머니 명의로 돼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저 어떻게 해야 해요?]......유사한 블로그들을 수없이 봤다.당시 유현진도 강한서더러 자신의 명의를 등기에 추가하라고 하려고 했다.심지어 그 일 때문에 혼인법도 뒤져봤다.혼인법에 의하면 혼전에 집을 누가 샀으면 그 집은 그 사람의 소유였다. 물론 배우자가 자신의 이름을 추가하기를 원하면 별도의 규정이 있긴 했다.당시 그걸 확인하고 나서 유현진은 자신이 집 구매하는 데 일전 한 푼 돕지 않고서 이름을 추가해 달라고 하는 건 너무 염치 없는 짓이라고 생각하고 그만뒀다.유현진은 강한서가 오래 전에 부동산 두 개를 자신의 명의로 바꾼 건 상상도 못했다.자신과 강한서가 어떻게 됐든, 이 두 개의 부동산만 갖고 있으면 여생은 돈 때문에 걱정할 일이 없을 것이다.그런데 강한서가 진짜로 자신의 미래를 걱정했다면 어떻게 신민정이 자신에게 약을 쓰는 걸 허용했단 말인가?아이를 가지지 않을 거면 왜 자신과 논의도 없이 그런 방식을 취했는가?한편으로 자신에게 상처를 가하면서, 또 한편으로 자신의 미래를 걱정해주고, 유현진은 강
"그건 당신 집이지 내 집이 아니잖아. 등기소가 닷시까지 운영하니까 아직 한 시간이 있어. 지금 와도 시간이 돼. 얼른 와."유현진은 심지어 자신이 언제 명의를 바꿨는지도 따지지 않고, 서둘러 자신과의 관계를 끊으려고 했다.강한서는 주먹을 꽉 쥐더니 냉랭한 어투로 답했다. "시간 없어!"유현진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럼 언제 시간 돼? 나 지금 집 사는 거 엄청 급해.""그럼 급하든가...웁..."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성우는 급히 와서 손으로 강한서의 입을 막았다."형수님, 저예요. 저 지금 한서랑 밖에 있어요. 요즘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한서가 저와 함께 현장 답사를 다니고 있어요. 그래서 아마 요즘은 시간이 안 될 거예요."강한서는 한성우를 노려보면서 손으로 한성우의 손을 치우려고 애썼다.말이 끝나고 나서 한성우는 전화를 한 손으로 막고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유현진이 앞으로 다시 네 와이프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 입 함부로 놀리지마."강한서는 갑자기 멈칫하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한성우를 쏘아봤지만 하던 동작을 멈췄다.유현진은 미간을 좁혔다."한 시간이면 되는데 어떻게 해서도 시간을 낼 수 있지 않을까요?""힘들어요. 그리고 형수님의 명의 하에 집이 두 개나 있는데, 아무거나 골라서 살아요. 어차피 형수님 건데, 왜 다시 이 자식한테 돌려줘요. 형수님의 젊은 시절이 그만한 값어치도 안 하겠어요."이치가 있는 말인데, 이 말을 만약 차미주가 했더라면 유현진은 이해했을 것이다. 차미주는 자신의 둘도 없는 친구니까. 그런데 한성우는 강한서의 절친이다. 그런 그가 자신을 위해 말한다고?유현진은 계속해서 고집했다. "전 그이에게 아무 것도 빚지기 싫어요? 언제 시간 되는지 대신 물어봐줘요.""형수님, 그건 정말 모르겠어요. 그럼 이렇게 해요. 형수님이 지금 지낼 곳이 마땅치 않다면, 제가 한라국제에 집 한 채가 있는데, 이미 인테리어를 마친 상태에요. 우선 거기 살아요. 임대료는 안 받을 테니까, 한서가 최근 바쁜 일정이 끝나
강한서는 눈썹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나쁜 남자의 수작을 떳떳하게도 말하는군."한성우는 눈가가 바르르 떨렸다. "내가 왜 나쁜 남자야. 이거 다 내 미래 아내를 위해 노하우를 비축하는 거라고. 다양한 유형의 여자를 만나 봐야 여자가 어떤 생물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지. 그래야 그들이 어떻게 하면 기뻐하는 지도 알 수 있잖아. 이건 실수의 가능성을 줄이는 유효한 수단이야. 넌 경험이 없는 게 문제야. 예전에 널 따라다니는 여자애들이 그렇게도 많았는데, 그중 몇 명이라도 사귀었으면 오늘날 현진 씨에 대해 이렇게 속수무책이지 않을 거 아냐."강한서는 한성우의 관점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넌 경험이 그렇게 풍부하면서도 끝까지 간 사람이 한 명도 없잖아."이 말은 비수마냥 한성우의 마음에 꽂혔다.한성우도 연애할 때는 진심으로 상대방을 좋아했다. 그런데 그것도 거기까지지 더 발전할 수가 없었다.물론 한성우도 똑같지만, 그가 사귀었던 여자들도 대부분 물질적인 데 관심이 많았다.유현진도 물질적이다. 강한서의 돈을 쓸 때는 절대 사정 봐주기란 없었다. 하지만 강한서를 진심으로 잘해줬다.도시락을 가져다 주는 일 하나만 보더라도, 당시 한성우는 강한서가 매일 인스타에 올리는 다양한 도시락 사진들을 보면서 입으로는 별로 부럽지 않은 척 했지만, 속으로는 엄청 쓰라렸다.지금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귀한 것이 아니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귀한 시대이다.한성우와 강한서는 모두 늘 밖에서 사람을 만나다보니 음식점의 요리가 질린 지가 오래된 터라 그들에게 있어 도시락은 엄청 소중한 것이었다.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 누군가가 자신이 잘 챙겨먹고 있는지를 걱정하고 있는 마음이 소중했다.하지만 한성우가 사귀었던 여자친구들은 대부분 요리할 줄 몰랐다. 설령 안다 하더라도 절대 요리를 하지 않을 거라면서, 일단 한 번만 요리를 하면, 나중에 결혼한 후 주방에서 맴돌다가 아줌마로 늙어간다고 했다.한성우는 그런 말들을 들으면서 의아했다. 요리 한 번 한다고 미래가 결
당시 반급 친구들은 하나같이 집안이 빵빵했으며 한성우의 부모님은 물산으로 가업을 일으켜 한주시의 절반 이상의 호텔에 해산물을 공급했다. 하여 호텔을 운영하는 집안 아이들은 한성우가 물고기 장수의 아들이라고 놀려댔었다.일부러 패거리를 만들어 한성우를 따돌리는 아이들이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었다.바로 강한서와 주강운이다.두 사람은 바지 하나도 돌려 입을 수 있을 만큼 친한 사이였다.한성우가 두 사람과 친하게 된 계기도 학교 폭력 때문이다. 한성우는 재벌가의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았다.그저 잘난 부모덕에 잘난 척하는 그들이 하찮아 보였다.그러던 어느 날, 운동장에서 옆 반의 일진이 일부러 강한서를 다치게 했고, 주강운은 바로 그 일진에게 덤볐다.일진은 키도 크고 덩치도 컸다. 당시 주강운은 키도 작았고 하얀 피부에 바싹 마른 몸이라 전혀 일진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주강운은 벽돌로 일진의 머리를 가격했고 상대는 그 자리에서 피를 흘렸으며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강한서는 아픈 것을 뒤로하고 다급히 주강운이 들었던 벽돌을 빼앗아 빨리 튀라고 했다.하지만 결국, 아무도 튀지 못했다.두 사람은 모두 자기가 한 짓이라고 우겼으며 두 사람의 독기를 직접 목격한 아이들은 두려움에 아무도 진실을 얘기하지 못했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경고 처분을 받게 되었다.그 뒤로 한성우는 재벌가의 자녀에 대해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재벌가의 자녀라고 모두 쓰레기인 것이 아니라 강한서와 주강운처럼 의리가 있는 사람도 있었다.하여 한성우는 먼저 다가가 매일 껌딱지처럼 두 사람의 뒤를 따르며 친해지려고 애썼다. 한성우는 작은 동네에서 살다 보니 신기한 물건들을 가지고 놀았다. 처음에 강한서는 한성우에게 아주 차갑게 대했다.하지만 고작 열 살 남짓한 아이가 차가우면 얼마나 차가울까? 점차 세 사람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그렇지만 한성우는 늘 강한서와 주강운이 더 친하다고 생각했다.그런데 두 사람이 틀어지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애야? 내가 자리 마련할
2명이 죽고 1명이 다쳤는데 2억이라는 적은 보상을 받아들였다는 건 정말로 이상한 일이다.하지만 유씨 집안 기사 덕분에 승객 쪽은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기사만 입을 연다면 모든 의문을 풀 수도 있다.진전에 만족한 유현진은 이내 2차로 돈을 지급했다.오후 촬영이 끝나고 정인월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현진아, 진씨가 글쎄 망고 말랭이를 너무 많이 만들어서 나 혼자 도저히 못 먹겠더라고. 그래서 너한테 보냈는데 맛은 봤어?"유현진은 문뜩 아침에 차미주에게서 온 카톡이 떠올랐다. 차미주가 말한 망고 말랭이 택배는 알고 보니 정인월이 보낸 것이다.유현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지막하게 말했다."저 아직 집에 못 갔어요. 근데 진씨 아저씨가 말린 거면 아마 정말 맛있을 거예요.""진씨가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하지."정인월은 진씨를 칭찬했다."다음 주 수요일 내 생일에도 진씨가 아주 큰 망고 케이크를 주문했다네. 한서 보낼 테니, 와서 많이 먹어."유현진은 멈칫했다."할머니, 내가 가면… 이상하지 않을까요?""이상할 거 뭐 있어? 한서와 이혼했다고 이 할미까지 모르는 척할래?""할머니, 그게 아니라요. 할머니는 영원히 제 웃어른이세요."유현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이혼한 마당에 제가 참석하면 강한서도 불편할까 봐서요. 할머니 생신 전날에 제가 뵈러 가면 안 될까요?"이미 이혼한 사이니 유현진은 매정하게 강한서 핑계를 댔다."걔가 불편할 게 뭐 있어! 그렇다면 불편한 사람이 떠나야지. 난 내 생일에 내가 예뻐하는 사람의 축하를 받고 싶어."정인월은 한숨을 내쉬었다."팔순 잔치는 아마 내 생에 마지막 큰 잔치가 될 거라 원만하게 하고 싶어서 그래. 네가 정 난감하다면 어쩔 수 없지. 이 늙은이 살날도 얼마 안 남았으니 생일도 대충 보내면 되지, 뭐. 진씨 말대로 너희들 난감하게 굴지 않을게."옆에 있던 진씨는 눈꼬리를 씰룩였다.'내가 말했다고?'정인월의 말에 유현진은 마음이 약해졌다."할머니 엄청 건강하시대요.
'싸우자는 거잖아!내가 어떻게 지켜온 회사인데 빼앗으려고? 꿈 깨!'백혜주는 휴대폰을 주어 테이블에 놓으며 온화하게 말했다."오빠, 화 그만 내요. 몸 상해요.""이것 좀 보고 말해."유상수는 소환장을 던지며 말했다."어쩐지 잠잠하다 했어. 뒤에서 이런 짓을 꾸미고 있을 줄이야! 그까짓 증거로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백혜주는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오빠, 소송보다 더 급한 일이 생겼어요. 이 기사 가족한테서 연락이 왔었어요.""누구?"유상수는 일시적으로 반응하지 못했다.백혜주는 다시 한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예전에 그 기사님이요."유상수는 미간을 찌푸렸다."왜 연락했대?""누군가 그들을 수소문하고 있대요."유상수의 표정은 미세하게 굳었다."누가?""모르죠. 하지만 오빠, 이 상황에 이 기사를 찾는 사람이 누구겠어요?"유상수는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유현진이라는… 얘기야?""오빠, 유현진은 7년 전 사실을 알고 있어요. 하현주 씨가 남겨둔 증거도 가지고 있고요. 그렇다면 유현진도 그때 사고를 의심할 수밖에 없겠죠. 재산 분할 사건은 유능한 변호사만 찾으면 유현진 뜻대로 안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사고에 대해 알기라도 한다면 이건 돈 문제가 아니에요."유상수는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애써 진정하며 말했다."사고 차량은 모두 폐차했고 경찰 측에서도 덮은 일이야. 증거가 없는데 뭘 어떻게 하겠어? 소송 건은 돈 몇 푼 던져주면 돼. 어차피 유현진은 돈을 원하니까."하지만 백혜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오빠, 유현진 너무 만만하게 생각하면 안 돼요. 만약 유현진이 돈을 가장 중요시한다면 하현주 씨가 사망하고 바로 이혼하지 않았겠죠. 중요한 건 하현주 씨였어요.""생각해 봐요. 예전에도 유현진을 이용하기 위해 모임에 불렀잖아요? 그때도 하현주 씨 때문에 거절하지 않았어요. 유현진은 하현주 씨 손에서 컸으니 하현주 씨에 대한 감정이 남달랐겠죠. 그런데 그 사고에 문제점이 있는 걸 알았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
며칠이 지나고 어느새 월요일이 되었다.주강운은 직접 운전해 유현진을 데리러 왔다.마침 차미주도 쉬는 날이라 그들과 함께 갔다.이번 소송은 명예권 소송처럼 인지도가 높은 배우가 연루되지 않다 보니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이번에는 재산분할 사건이라 아주 조용했으며 법원에 도착했을 때, 사람도 몇 명 보이지 않았다.차미주가 물었다."주 변호사님. 승소 확률 높아요?"주강운은 주차하며 말했다."가능성은 아주 높죠. 유상수의 분할 방식은 확실히 문제점이 많으니까요. 유씨 그룹 창립 자금의 절반 이상은 하현주 여사님이 지원했어요. 게다가 하현주 여사님은 회사 운영에도 힘쓰셨고요. 아무리 유상수가 수단을 써서 주식을 자기 명의로 돌렸다 해도 하현주 여사님이 누워있을 때 서명한 거라 법적으로 보호 받지 못해요."차미주는 씩씩거리며 말했다."유상수 이 뻔뻔한 인간. 주 변호사님, 어떻게든 현진이한테 많이 차려지게 해주세요. 그 돈 버리더라도 쓰레기 같은 유씨 집안에 줄 수 없어요."주강운은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현진 씨 권익을 최대한으로 쟁취할 거예요. 더군다나 현진 씨는 지금 내 사장님이잖아요."주강운은 부드러운 눈길로 유현진을 바라보았다.유현진은 살며시 미소 지었다."제가 드린 쥐꼬리 마한 변호사 비용으로는 차 기름값도 안 나와요. 장난하지 마세요."차미주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주 변호사님 현진이한테 호감 있네. 저 눈빛 좀 봐…근데 현진이는 아주 목석이야!'세 사람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송민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이 시간에 웬일이지?'유현진은 어리둥절하며 전화를 받았다."송 대표님, 무슨 일로?"송민준은 결과지를 보며 가슴이 벅차올랐다."유현진, 너 어디야?"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렸다.'송 대표님 왜 이래? 반말할 사이는 아닌데?'유현진은 갑자기 박해서의 말이 떠올랐다.머릿속에서 "암묵적인 규칙"이라는 말이 맴돌았다. 그녀는 애써 정서를 가다듬고 말했다."저 지금 법원인데요. 소송이 있어요."유현진은
역시나 성월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현장엔 수군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한 대표님이 호언장담해서 데려온 사람이라니, 이게 무슨 말이야?”“소문이긴 한데. 나도 그냥 들은 거야. 주세은 씨 경력으론 우리 회사에 입사할 수 없대. 하지만 한 대표님이 세은 씨 아버지에게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취직을 시켜주려고 했지만 서 대표님이 반대하셔서 한 대표님이 만약 주세은 씨가 문제를 일으키면 한 대표님이 책임지고 물러나시기로 약속하셨다고 했어.”“세상에. 하지만 이번 일은 작은 일은 아니잖아.”“우리가 입사할 땐 면접만 4차까지 있었어. 면접도 없이 입사하기에 대단한 실력자인가보다 했는데, 이렇게 큰 사고를 치다니.”“입사한 지도 시간이 꽤 흘렀는데 아직 실력을 보지 못했어.”“넘버 S 오일은 이것 하나밖에 없잖아. 이렇게 큰 사고를 쳤는데 한 대표님이 어떻게 지켜주겠어.”“지키긴 뭘 지켜. 한 대표님 본인도 책임을 면치 못할 텐데. 자신이 꽂은 사람이 이렇게 큰 사고를 쳤는데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겠어?”...한현진을 힐끔 쳐다본 송가람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음모를 달성한 비열한 인간의 표정이었다. 한현진은 그런 송가람 따위는 신경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성월을 직시하며 말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제대로 가르치고 싶으셨다면 직접 데리고 다니며 하나하나 알려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익숙하지도 않은 곳에서 물건을 가져오라고 세은 씨 혼자 보내신 거죠?”성월이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땐 다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어요. 일손이 부족한 데다 저도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세은 씨를 보낸 거예요. 저장실은 제가 세은 씨와 함께 간 적이 있었어요. 세은 씨도 저장실 구조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한현진이 물었다. “다들 식사 중이었다는 건 그리 급한 업무도 아니었단 얘기겠네요. 왜 하필 사람 없는 점심시간에 세은 씨를 불러서 오일을 가져오게 한 거예요?”한현진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 성월이 결국
구내식당이 워낙 조용했던 터라 가까이 있는 사람은 통화 내용을 전부 들을 수 있었다. 비록 한현진은 넘버 S 오일이 뭔지 몰랐지만 깔린느에서 오랫동안 일한 직원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넘버 S 오일은 혼합 오일이었다. [인 드림] 같은 고급 향수의 제조에 사용되는 주요 원료 중 하나였다. 넘버 S 오일의 재고는 100mL 밖에 없었다. 서해금이 우연히 제조해 낸 오일이라 각 오일의 성분과 비례가 기록되어 있지 않았고 그렇게 넘버 S 오일은 한정판이 되어버렸다. 이 오일은 줄곧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었고 특별한 신분의 사람이 고급 향수를 제작할 때만 사용되었다. 넘버 S 오일은 깔린느 전체에 단 한 병뿐이었다. 그것이 깨진다면 넘버 S 오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성월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숨을 들이켰다. 서해금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따라가려는 한현진을 은서하가 불러 세웠다. “대표님, 제 일은 됐어요. 조금만 더 참으면 지날 수 있을 거예요. 대표님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한현진이 은서하를 쳐다보며 말했다. “지나가지 않을 거예요. 서하 씨가 참으면 참을수록 그 사람들은 점점 더 서하 씨를 만만하다고 여기고 더 심하게 굴 거예요. 서하 씨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 사람들도 알아야 해요. 그래야 앞으로 서하 씨를 괴롭히려고 할 땐 한 번쯤은 고민해 볼 거예요.”은서하가 멍해졌다. 한현진은 은서하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자리를 벗어났다. 주세은은 덜렁대는 성격의 아이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렇게 귀중한 원료는 보통 일반 직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보관하지 않았다. 그러니 주세은이 그 오일을 깨뜨렸을 리가 없었다. 한현진이 다급하게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오일 보관실에 모여있었다. 주세은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녀를 에워싼 사람들은 하나 같이 범인을 심문하듯 주세은을 쳐다보고 있었다. 주세은은 하얗게 질린 얼굴
한현진이 입꼬리를 씩 올리며 송가람에게로 걸어가 그녀의 귓가에 다가갔다. “제 사무실에 있던 금전수 기억해요?”움찔하는 송가람의 동공이 순간 흔들렸다. 한현진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언니가 하는 건 저도 할 수 있어요. 스스로 승인하실래요, 아니면 다들 들을 수 있게 제가 가서 가져올까요?”송가람의 얼굴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한현진이 그 도청 장치를 발견했을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한현진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송가람의 사무실에도 도청 장치를 달았다. 송가람과 주현은 사무실에서는 거리낌 없이 모든 얘기를 했었다. 게다가 한현진이 대체 어디서 어떤 얘기를 들은 것인지도 알 길이 없었다. 그런 생각에 송가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꼭 움켜쥔 주먹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송가람의 경계심이 완전히 무너질 때쯤 멀리서 서해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아, 가람아.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거니?”하마터면 자신이 한 일을 승인할 뻔한 송가람은 서해금의 목소리가 들리자 입가까지 흘러나왔던 말을 다시 삼켜버렸다. 그녀는 구세주를 만나기라도 한 듯 서해금을 불렀다. “엄마!”한현진이 쯧 혀를 찼다. ‘타이밍 한번 좋게 찾아왔네.’한현진은 몸을 돌려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서해금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한현진 앞으로 다가온 서해금이 몸을 곧게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미소 지으며 물었다. “밥도 안 먹고 두 사람 여기서 무슨 얘길 하고 있었던 거야?”한현진이 말했다. “별거 아니에요. 다만 가람 언니가 별다른 이유 없이 직원의 보너스를 삭감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고 있었어요.”한현진의 말에 반박하려던 송가람은 휴대폰을 꺼내려는 한현진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만약 송가람이 자신의 구역에서 한현진에게 약점을 잡힌 것을 서해금이 알게 된다면 또 그녀를 한바탕 꾸짖을지도 몰랐다. “그래?”서해금이 송가람을 힐끔 쳐다보았다. “현진이 말이 사실이야?”송
누군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곧 비웃음 소리가 하나둘 터져 나왔다. 안규리의 얼굴이 부끄러움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송가람이 미간을 찌푸렸다. “현진—”한현진이 송가람의 말을 잘랐다. “송 팀장님, 여긴 회사예요. 호칭 주의하시죠.”말문이 막힌 송가람은 이를 악물고 화를 꾹 참으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대표님, 다들 그저 장난 좀 한 건데 말씀이 좀 지나치신 것 같네요.”“제 말이 좀 지나쳤나요?”한현진이 차가운 눈으로 송가람을 쳐다보았다. “규리 씨가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을 놀릴 때는 왜 규리 씨 말이 심하다고 하지 않은 거죠? 이해 능력이 형편없어서 규리 씨 말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는 거예요?”송가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서하 씨 형편이 어려우면 회사에 복지 신청해도 된다고 제가 얘기했잖아요.”한현진이 흥 코웃음을 쳤다. “보아하니 송 팀장님은 이해력이 안 좋을 뿐만 아니라 기억력도 안 좋으신 것 같네요. 서하 씨가 2개월간 감봉 당한 건 송 팀장님 작품 아니었나요? 이제 와서 좋은 사람인 척하겠다는 건가요?”표정이 굳어진 송가람이 이를 악물었다. “서하 씨 보너스가 삭감된 건 인사팀에서 결정한 일이에요.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죠? 헛소리하지 말아요.”한현진이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 “전 서하 씨가 보너스를 삭감당했다고 얘기한 적 없는데요. 조향팀의 일개 팀장에 불과한 송 팀장님이 어떻게 재무팀 직원의 월급 삭감 정황까지 빠삭하게 알고 있는 거예요? 인사팀 부장이 꿈에서 알려주기라도 했어요?”송가람은 그제야 자신이 한현진에게 말꼬투리를 잡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순간 화가 치민 송가람이 말했다. “대충 제 추측으로 얘기한 것 뿐이에요. 감봉은 보너스를 삭감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요.”“하지만 보너스를 전부 삭감당했다는 건 저도 들은 적 없는 얘기예요.”한현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회사에도 징계에 관한 규정이 명확하게 있어요. 설사 서하 씨가 진행한 업무가 전부 규정을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은서하는 송가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한현진과 가깝게 지내다 또다시 송가람에게 당할까 두렵지는 않은 걸까?한현진은 도무지 이 어린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시연은 그런 은서하의 모습에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은서하와 인사를 나누었다. “서하 씨, 외할머니도 아직 퇴원하지 않으셨을 텐데 오늘은 어떻게 회사에서 점심을 먹는 거예요?”은서하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미 누군가 비꼬며 말했다. “진작 회사에서 먹어야 했어요. 도시락도 매일 구정물 같은 것만 싸 오던데 식욕이 있겠어요? 서하 씨. 구내식당은 직원 할인도 있잖아요. 매달 6만 원만 내면 돼요. 그 정도 돈도 없는 건 아니겠죠. 그 도시락, 서하 씨는 괜찮을지 몰라도 전 이제 못 봐주겠어요.”그 말에 은서하의 얼굴이 순간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젓가락을 꽉 움켜쥐고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 이시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안규리 씨,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구내식당을 이용하든 도시락을 싸든 그건 다른 사람 마음이에요. 6만 원으로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게 뭐 그리 고상한 일 같아요?”안규리라고 불린 사람은 송가람 옆에 앉아 있었다. 한현진도 전에 본 적 있는 재무팀 직원이었다. 안규리가 눈썹을 씰룩였다.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게 고상하다는 얘기는 전 한 적 없어요. 하지만 매일 죽 같은 도시락을 싸 와 식당에서 데워 먹는 모습은 사실 저희 식욕을 떨어뜨리거든요. 다들 안 그래도 일하느라 힘든데 밥 먹을 때도 이렇게 입맛이 떨어져서야 저희더러 어떻게 살라는 거죠?”주현도 안규리의 말을 거들었다. “서하 씨도 돈이 없어 보이지는 않던데요. 전에 한 대표님이 옷 선물을 하셨을 때도 제일 비싼 옷을 가져갔잖아요. 딱 봐도 그런 걸 처음 본 사람은 아니잖아요. 보자마자 제일 좋은 거로 가져갔는데.”“200만 원이 넘는 옷을 입는 사람이 식비 6만 원을 아낀다고요?”“그게 어떻게 같아요? 몇백만 원짜리 옷은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잖아요
한현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집을 나선 한현진은 강한서에게 황씨 아주머니의 월급 인상에 관해 상의했다. 강한서와 강민서가 집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주혁이 한현진을 데리러 도착했다. 별장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현진은 순간 길가에서 누군가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어쩐지 눈에 익은 인영이었다. 한현진이 탄 차가 그 사람과 가까워져서야 한현진은 그 사람이 은서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현진은 다급히 주혁에게 차를 세우라고 말하고는 차창을 내려 은서하를 불렀다. “서하 씨!”고개를 돌린 은서하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대표님이 여긴 어떻게...?”“저 이 근처에 살아요.”한현진이 물었다. “그러는 서하 씨는 여긴 어쩐 일이에요?”이 근처엔 별장을 제외하면 길가에 오가는 차가 전부였다. 사람의 그림자조차 흔하지 않은 길이었다. 은서하가 말했다. “집이 이 근처라서요.”한현진이 놀라며 말했다. “이 근처에 사신다고요?”은서하가 꿋꿋이 거짓말을 이어갔다. “네. 오늘 늦잠을 잤더니 택시가 안 잡혀서요.”한현진은 아무 말 없이 은서하를 살펴보더니 몇 초 후에야 입을 열었다. “일단 타요. 타서 얘기해요.”은서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종종 달려와 한현진 반대편의 문을 열고 차에 탔다. 은서하는 그제야 차에는 한현진과 운전기사뿐만 아니라 평범한 외모의 젊은 청년도 함께인 것을 발견했다. 한현진이 소개하며 말했다. “여긴 원율 씨. 제 개인 비서예요.”은서하가 원율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안전벨트를 했다. 그녀는 자신의 가방을 꼭 끌어안고 공손한 자세로 한현진 옆에 앉아 있었다. 차가 출발하자 한현진이 질문을 이어갔다. “여긴 회사와 거리도 있는데 평소 출퇴근 시간이 꽤 걸리지 않아요?”은서하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외할머니 치료 때문에 집을 팔았어요. 하지만 회사 근처엔 월세가 높아서 어쩔 수 없이 먼 곳으로 옮겼어요. 평소엔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어젯밤엔... 일이 조
한현진이 거울을 보며 옷을 정리했다. “이름이 뭐야?”“문채영.”“꽃부리 영?”강한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영리할 영.”“특이한 이름이네.”한현진이 멈칫했다. “너 전에 오빠가 맞선을 싫어한다고 하더니 그 여자를 못 잊어서 그런 거였어?”강한서가 말했다. “그런 것 같아.”“그럼 두 사람은 왜 안 만났던 건데?”강한서가 말했다. “자세한 건 네 오빠만 알 거야. 내가 알고 있는 건 고등학교 시절 누나 이모가 누나 아버지를 횡령, 뇌물수수 그리고 사생활이 문란한 문제를 신고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연루되어 누나 아버지는 형량을 꽤 많이 받았어. 누나 어머니도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시고 실성하신 분처럼 구셨어. 그렇게 문씨 가문은 나락으로 떨어진 거야. 그때 누나는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못했었어.”“우리 수능이 끝나자 누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해외로 갔어. 그리고 2년이 지난 후 결혼했지. 남편은 부자인 교포였어. 귀국해서 결혼식을 올린 거라 민준이도 일부러 M국에서 돌아왔어. 결혼식이 끝나고 누나는 남편과 함께 해외로 갔어. 그 후로 우리는 연락이 뜸해졌고. 그리고 2년 전, 누나가 이혼하고 나서야 다시 연락하기 시작한 거야.”한현진이 물었다. “넌 그 여자와 오빠를 이어주고 싶은 거야?”강한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나는 민준이를 만나고 싶어 해. 난 그저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주는 것뿐이야. 두 사람이 어떤 사이로 발전할지는 두 사람 일이지.”강한서가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 “어렸을 때 그 감정이 지금은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르지. 누나가 이혼 후 2년이 흘렀어. 만약 나라면 그리고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바로 전남편에게 꽃이라도 사 들고 찾아가 이혼을 축하해줄 거야. 그리고 바로 누나를 찾아갔겠지. 하지만 네 오빠는 그저 가만히 있었어. 이혼한 걸 몰랐을 리가 없어.”한현진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만약 너였다면 넌 출국하기도 전에 잡혔을 거야. 그리고 오빠는 너처럼 멍청하지 않아. 그렇게 창피한 일은
문자를 확인한 강한서는 몸을 일으키며 답장을 했다.[고마워요, 누나도 잘 지내죠?][응, 잘 지내지. 나 내일 귀국하는데 시간 되면 밥이나 먹자.][그래요.][네 와이프 송씨 집안에서 잃어버린 딸이라던데, 너랑 민준이는 형님 동생 하면서 지내는 거야? 어떻게 지낼만해?]송민준의 상황을 묻기 위해 연락했다는 걸 알아챈 강한서가 바로 답장을 보내주었다.[괜찮긴 한데 너무 동생 바보라서 나 별로 안 좋아해요. 누나도 송민준 못 본 지 오래됐죠? 내일 같이 나갈게요.][그래, 안 바쁘면 민준이 여자친구도 같이 불러.]강한서는 문채영이 떠보기 위해 하는 말인 걸 알았지만 모른 척 대꾸했다.[송민준 여자친구 없어요, 솔로에요.]그 말에 적잖이 놀란 건지 글자뿐인 문자에서도 문채영의 놀라움이 전해져왔다.[진짜?][누나도 송민준 성격 알잖아요. 얼마나 사람 짜증 나게 하는데, 그렇게 쓸데없는 말 많이 하는 사람이 여자친구를 사귈 리가 없잖아요.]그 말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입은 웃고 있는 이모티콘을 보내온 문채영은 곧바로 한마디 더 보탰다.[너도 와이프 데려와, 선물 준비했으니까.][네.]이튿날 아침, 강한서는 머리를 말리고 있는 한현진 곁으로 다가가 어젯밤 문채영과 했던 말을 전했다.“내가 아는 사람이야?”그 말에 강한서가 고개를 젓자 한현진은 또 물었다.“남자야 여자야?”“여자.”그 말에 한현진이 잠시 멈칫하자 강한서가 한마디 더 보탰다.“네 새언니가 될뻔한 여자야.”“우리 오빠 첫사랑?”깜짝 놀라며 묻는 한현진에 강한서는 웃으며 대답했다.“그렇다고 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 만난 건 아니고 그냥 송민준이 혼자 좋아했어. 그때 같이 다니던 애들은 다 알고 있었지. 그런데...”갑자기 말을 멈추는 강한서에 한현진은 다급히 그를 재촉했다.“왜 갑자기 여기서 말을 끊어, 그런데 뭐?”강한서는 그런 한현진의 볼을 귀엽다는 듯 쓰다듬으며 입꼬리를 올렸다.“나처럼 원하는 여자를 쟁취하진 못한 거지. 그런 쪽으론 영 능력이 없어.”“우
신미정은 결혼을 재촉했지만 할머니는 결혼은 평생을 같이할 사람을 찾는 거라고 마음에 들고 잘 맞는 사람과 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서두르지 않고 있었다.그래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결혼 상대를 물색하던 중 한현진의 강한서의 눈에 들게 된 것이다.교통사고까지 다 해서 고작 네 번 본 사이었고 말 한번 섞어본 적도 없어 그다지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보면 볼수록 한현진이 마음에 들었다.강한서도 마침 모르는 사람과 결혼해서 서로를 알아가는 게 시간 낭비 같았는데 한현진도 저런 늙은이한테 시집가는 건 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그리고 그날 교통사고도 실수이기는 하지만 한현진의 엄마가 간민혜를 차로 쳐서 죽인 건 맞기에 주강운이 갑자기 한현진한테 무슨 짓을 하기라도 할까 봐 신경 쓰이는 것도 있었다.어쨌든 주강운한테 고모가 간민혜를 만나려고 해서 그녀를 데리고 가다가 사고가 났다고 해명한 건 자신이었기에 강한서는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한현진을 데리고 있고 싶었다.그렇게 자신을 설득한 강한서는 이틀 뒤 바로 한현진에 연락해 그녀와 맞선자리를 가졌다.맞선자리에서 한현진은 강한서를 알아본 듯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기에 강한서도 굳이 그 일을 꺼내진 않았다.한현진은 이 맞선자리가 유상수가 꾸며낸 자리인 줄로만 알고 혹시라도 실수할까 싶어 말을 최대한 아끼고 있었지만 사실 유상수는 꿈만 꿀 뿐이지 그럴 능력이 못 되는 사람이었다.선 자리를 끝내고 본가로 돌아간 강한서는 바로 한현진의 자료를 건네주며 결혼 의사를 밝혔지만 유씨 집안을 조사해본 할머니는 바로 반대부터 했다.유씨 집안의 지위보다 아내가 아픈데도 들여다보지 않고 비서랑만 붙어있는 유상수의 사람 됨됨이가 별로라서 그의 딸도 비슷할 거라 생각해 거절한 걸 알아챈 강한서는 평소에는 그렇게 말을 아꼈으면서 이번에는 웬일로 한현진을 감싸기 시작했다.그녀가 친구를 도와 나서던 일과 그녀의 지금 상황까지 다 말한 강한서는 한현진이 아니면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한 뒤 집을 나섰다.그 말에 답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