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서는 이런 의문을 남기고는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나 대신 전해줘, 만약 이 사건을 이용하고 싶다면 사람 잘 못 건드린거라고, 나한테 보낸것들에 대한 대가를 꼭 치르게 해주겠다고 말이야."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유현진은 어안이 벙벙했다.(강한서 이 개자식!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거야?)(뭘 이용한다는 건데? 뭘 보냈다는 건데?)주강운도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어서 낮은 목소리로"난 한서가 현진씨인걸 알고 있는줄 알았어요."유현진은 입을 뾰루퉁하게 내밀었다."내가 맡았던 작품들을 그 이한테 보여줘도 모를거예요."주강운은 웃으며 답했다."그건 현진씨가 연기를 잘해서예요, 저도 작품만 놓고 봤을땐 못 알아봤는걸요."유현진은 빙그레 웃으며"내일이 순조롭길 빌어요."둘쩃날 아침 아홉시, 신해로 법원 문앞엔 이미 사람들로 북적거렸다.선 셋 스타가 고소장을 날린 사람들중 몇명은 모두 송민영의 오랜팬들이였다.팬들은 피고석에 앉은 팬들에게 기운을 북돋아주자고 암암리에 약속을 했다.그들은 이 사건을 훈장으로 여기며 고소를 당했지만 팬들의 대표로 압장선 그들은 영웅처럼 모셨다.한 편은 선 셋 스타를 바라보고 온 사람들이였다.팬들은 적은 부분을 차지했고 대부분들은 예능쪽에서 일하고 있는 기자들이였다.필경 선 셋 스타의 신비한 외모와 송민영의 오랜팬들과 하는 재판은 그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아홉시 반, 비지니스 차량 한 대가 법원 문앞에 멈추고 양복을 입은 휜칠한 남자가 내려왔다.그는 차에서 내린뒤 반대쪽으로 가서 조수석 문을 열었다, 야구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한 여자가 차에서 내렸다.그녀는 하얀 티셔츠에 검은색 나팔바지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묶지 않아서 어깨위로 드리워져있었다.티셔츠의 아래부분은 바지에 넣어두었기에 그녀의 허리는 아주 가늘게 보였고 남자의 손을 잡았을 때 드러냈던 팔뚝은 백옥같이 하얳다.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생각을 멈췄다, 인터넷에서 돌던 소문이랑은 완전 달랐다.촌스럽고 뚱뚱하
"민영 언니를 언급 안 하면 누가 저 년한테 관심이라도 줄꺼같아? 은퇴한다며 이제 와서 다시 재판으로 복귀하는거 아냐?""복귀하면 자기 얼굴에 침 뱉기 아냐?""그건 양심이라도 있을때 이야기지. 어느 한 번이라도 민영 언니 빼고 실검에 오른적이라도 있어? 저 년 팬들도 항상 목소리 대역 해주는걸 무슨 권리라도 되는 양 떠벌리잖아. 이따가 나와서 얼굴공개했을때 자신이 한 말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건지 알아야 해!""진짜로 예쁘고 연기도 잘하는거면 왜서 성우만 하겠어? 난 지금 너무 기대돼. 그녀 팬들이 실망하는 표정이 머리속에 그려져. 상상만 해도 기분이 째질것 같아.""핸드폰 밝기 낮추고 필터도 씌우지마.""알았어."강한서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그는 두 명의 대화에서 알아들을수 있는 의미는 적었지만 그 두 명이 '선 셋 스타' 에 대한 적의만은 충분히 판단 가능했다.그는 고개를 돌려 민경하에게 물었다."요즘 팬들은 다 이모양이야?"민경하는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이것도 약한 편입니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팬덤이 제일 강한 스타가 제일입니다. 온라인에서나 오프라인에서나 서로 다투는걸 멈추지 않습니다. 잡지 판매량비교부터 드라마에선 상대 배역을 까내리고 드라마의 비중이 적다면 제작진들을 욕해요. 안티팬보다 더 극성입니다. 영정사진을 포토샵으로 만든다든지, 죽은 생쥐를 던진다든지. 생각할수 있는 모든 방법은 다 시도해봐요."강한서는 눈썹을 찌푸렸다."누가 제재하는 사람은 없어?""누가 합니까? 다 팬들로 먹고 사는데? 어느 팬들의 목소리가 제일 크면 그 사람이 제일 핫한 스타예요. 조용한 팬들을 소유한 유명인은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수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치고박고 싸우는 걸거예요."강한서는 바이브 엔터테인먼트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수는 아주 적었다. 왜냐하면 한성우가 당시 바이브 엔터테인먼트를 창립할때 한성그룹의 덕을 보고 싶어했고 강한서도 그와 사이가 좋았었기에 주식도 투자했었다.하지만 그는 바이브 엔터테인먼트에 관한
[진짜로 지분을 살려고?][그래.][그럼 오후에 회사에 한번 들러, 그때 얘기 하자고.]강한서는 답장을 하려고 했으나 장안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강한서가 고개를 들자 장내로 들어오고있는 원고석과 피고석의 사람들을 발견했다.강운의 옆에는 헌팅캡이랑 마스크를 쓰고있는 여인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아주 낯익은 모습이였다.강한서는 눈썹을 찌푸리며 누군지 뚫어져라 쳐다보고있는와중에 상대방이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째려보고 있음을 알아챘다.서로의 눈빛이 마주친 그 순간 강한서는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유현진?!)그는 유현진이 왜서 재판장에 모습을 드러냈는지를 깨닫기도 전, 그녀는 그를 심하게 째려본후 주강운과 같이 원고석에 앉았다.그는 무의식적으로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법경이 그를 막아세우며 재판이 곧 시작되니 자리에 앉아달라고 했다.강한서는 할 수 없이 마음속 흥분을 가라앉히며 제자리에 앉았다.강한서는 정상적인 사고를 할수가 없었다, 단지 단 하나의 생각만이 계속 맴돌았다, 선 셋 스타가 바로 유현진이야.그녀가 바로 오늘의 원고였다.(그녀가 어떻게 선 셋 스타지?)몇년 동안 같이 살면서 전혀 생각도 못했던 일이라 얼마나 잘 숨겼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예전에는 신경을 별로 쓰지 않았었던 일들도 점점 머리속에 나타났다.그가 예전에 유현진이 그한테 '정상에서' 의 성우가 바뀐 일로 대해 선 셋 스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었던 사건이 있었다.그는 당시 상대방이 여론 몰이를 한다고 했고 유현진은 이에 엄청 화를 낸적이 있었다.그리고 그는 또 유현진이 처음으로 이혼 얘기를 꺼냈을때 그녀가 물건을 집 밖으로 옮겼었다. 그리고 이튿날에 섬블 컴퍼니에서 만났었던 일이 생각났었다.그는 그때 당시 유현진이 자신을 미행하는줄만 알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한성우가 그때 전화로 오디션을 보는 배우가 있었다고 했다.(그때 왔다던 배우가 유현진이였어?)(한성우 이 개자식이! 이렇게 중요한 일을 왜 나한테 알려주지 않은거지?)강한서는 머리속
유현진의 외모는 사각이라곤 존재하지 않았다. 정면으로 보나 측면으로 보나 모두 완벽했다.만약 오관을 따로 따로 떼서 비교한다면 최고는 아니겠지만 서로서로의 조합이 좋았고 황금비율이였다.미의 기준이란 오관이 정교하고 특출한게 중요한게 아니였다. 비록 현대사회에서 성형기술이 엄청 발전됐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잘 생긴 사람이라도 성형을 한 얼굴이면 쉽게 들키기 마련이였다.왜냐하면 오관의 완벽함을 과도하게 집착한 나머지 총체적인 밸런스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간의 조화를 이루는게 성형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이라고 한다.유현진이 모두의 이목을 끌수 있었던 원인은 그녀의 오관이 서로서로 아주 잘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였다.그녀의 외모에서 어떠한 단점도 찾기 어려웠다, 예를 들어 큰 머리라든지, 직각 어깨라든지 그녀한테 전부 해당되지 않는 사항들이였다.그녀의 어깨는 아주 평범했고 모자를 썼던 탓인지 머리카락이 조금 눌려져 있었지만 그녀의 외모에는 아무런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다.장안에서 원래 선 셋 스타의 추태를 찍으려던 안티 팬들은 유현진의 얼굴을 보자 그 자리에서 바로 돌처럼 굳었다.아무리 양심이 없다고 한들 실물을 보고 차마 입에서 선 셋 스타가 못 생겼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예쁘기만 할까, 단정한 자세를 하고 있는 그녀한테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도 엄청났다.신체수업에서나 나올 바른 자세에서 뼈속에 박힌 고귀한 자태를 보아낼수 있었다. 송민영과 같은 반쪽짜리 스타는 감히 비견할수도 없는 모양새렸다.눈썰미가 좋은 기자는 이미 '법역' 에서 싸이코 연쇄살인마 역을 맡았던 사람이 유현진임을 보아냈다.여러 사이트에서 응원을 하던 그 드라마 퀸이 바로 선 셋 스타였다!송민영의 팬들이 인터넷에서 말도 안되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을때 이 눈앞의 여왕은 공익 프로그램을 도와주고 있던것이였다.당시에 어떤 욕을 먹든지 해명을 하지 않고 은퇴선언에 천만 팔로우가 되여있는 아이디를 버렸었던 사건이 있었다.그녀의 이 행동은 그야말로 신
자선파티 당일, 주강운은 유현진과 함께 입장을 했다. 당시 주강운은 유현진이 강한서의 아내인 줄 모르는 상태에서 유현진을 '차현진'이라고 소개했다.주강운은 난감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예전에 차 씨 성을 가진 유현진의 가족을 위해 변호한 적 있어서 유현진도 차 씨인 줄 알았다고 했다.그럼 그때 변호했던 소송이 이 소송이란 말인가?한주시에 유명한 변호사는 널리고 널렸는데, 유현진이 마침 귀국한지 얼마 안 되는 주강운을 찾았다는 것은 우연이라고 하기에 너무 억지스러웠다.강한서는 원고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응시하면서 절대 우연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재판장이 법정 규율을 낭독하고 있었지만, 유현진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방금 전 입장할 때 강한서를 보는 순간, 그녀는 낙심에 빠졌다.어젯밤에 강한서가 뜬금없이 경고 전화를 걸어온 걸 보면 소송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다만 자신이 이 소송의 원고라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었다.그럼 강한서가 이 자리에 나타난 이유는 하나다.며칠 전에 주강운은 사람을 시켜 피고인석에 앉아있는 임효우라는 여성에 대해 조사했다.출생지부터 시작하여 겪었던 크고 작은 모든 일에 대해 낱낱이 들춰봤다.만약 그 계정이 송민영이 타인의 이름을 빌려 만든 계정이라면, 송민영은 절대 낯선 사람의 신분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유현진의 예상대로 그 계정의 주인 임효우는 송민영과 사촌 관계였고,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랐기에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다.오늘 이 소송은 이겨야 할 뿐만 아니라 임효우의 입에서 뭔가를 캐내어 송민영까지 끌어내릴 수 있다면 원만할 것이다.강한서는 원고가 자신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기에 이 자리에 나타난 건 피고인을 위해서였을 것이다.나쁜 자식! 한편으로 나에게 돈을 보내주고, 한편으로 자신의 애인을 위해 나서? 두 사람 다 놓치기 싫다는 거야?법정 규율 낭독이 끝나자 재판이 시작되었다.주강운은 여태 모은 모든 증거 자료들을 스크린에 보여주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증거 대부분은 모두 해당 계정이 선셋 스
유현진의 몸 상태가 회복된 것도 아니고, 유현진 본인도 어린 아이 같은 모습이 있다보니 강한서는 당시 두 사람이 애를 가질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창졸하게 애를 낳았다가는 애가 애 키우는 격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그러다 보니 애를 가지는 일에 있어 두 사람은 이견이 컸다. 게다가 당시 유상수가 운영하고 있던 회사의 제품에 품질 문제가 발생해 유현진까지 연루되어 강단해가 추진하고 있던 프로젝트에 피해를 주었다. 이사회에서는 강한서더러 나서서 해결하라고 난리였다. 그런 상황에서 유현진은 아이를 가지는 일로 계속해서 강한서에게 압력을 주다보니 두 사람은 크게 싸웠다.그후로 강한서는 유상수의 일을 처리하기에 바빠 집에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작년 7월이라면......바로 두 사건이 발생한 시점이었다.강한서는 갑자기 심장이 죄어드는 것만 같았다.그는 유현진이 수면제를 복용했던 사실을 몰랐고, 진단서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럼 그때?강한서는 목이 메었다. 유현진은 강한서가 모르게 선셋 스타 계정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그로 인한 희노액락은 감춘 적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간과했을 뿐이었다.유현진은 정서를 감쪽같이 숨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강한서가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도 오늘날까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주강운의 논술이 끝나자 법관은 피고인측 변호인더러 변호를 시작하라고 했다.송민영이 임효우를 위해 선임한 변호사도 실력이 뛰어났다. 그는 주강운이 나열한 증거들을 부인하지 않았고, 진단서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유현진의 진단서는 작년 7월에 받은 거였다. 하지만 피고인의 욕설은 주로 올해 1월 달에 집중되었다. 그래서 피고인측 변호사는 유현진의 우울증과 피고인의 인터넷상 발언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단언했다.피고인측 변호사의 논술은 예리했다. "결과적으로 두 가지 사건은 인과 관계가 없습니다. 원고가 우울증세를 보인 원인이 피고인측은 언론이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원고가 일상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거나 원고 본인이
배심원단과 토의 후 재판장은 허락했다.박부자는 유현진의 두 눈을 응시하면서 물었다. "유현진 씨, 자료에 의하면 3년 전에 T대 연기학과를 졸업했고, 성적도 좋아 우수 졸업생 중 한 명이라고 들었어요. 그런데 졸업하고 나서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그럼 3년 동안 뭐 하면서 지냈죠?"주강운은 눈썹을 찌푸렸다.상대방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다.강한서는 얼굴이 어두우졌다. 박부자는 지금 분명 안건을 다른 방향으로 틀 준비를 하고 있었다.유현진은 거리낌없이 상대방을 직시하면서 답했다. "제가 졸업 후 무엇을 했는지......이 안건과 무슨 상관이 있나요?"박부자는 멈칫하더니 답했다. "지금은 없습니다.""그럼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을 거부하겠습니다.""원고는 안건과 상관 없는 질문을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피고인측 변호인 다시 질문하세요."박부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번째 물음을 던졌다. "자료에 의하면 유현진 씨에게는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만 있었던 어머님이 있었다고 들었어요."그러면서 잠깐 뜸을 들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어머님이 병상에 누워 계시는 동안 마음고생이 심하셨겠네요?"유현진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건 무슨 개떡같은 물음이야?법정이 아니었다면 유현진은 당장에서 당신 엄마가 병상에 누워있으면 마음이 안 아파?라고 되묻고 싶었다.이때 주강운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문제는 안건과 상관 없으니 대답을 거부합니다."재판장이 답변 거부를 허락하고 나서 박부자는 세 번째 물음을 물었다."유현진 씨, 작년 7월 이전에는 우울증 검사를 해본 적 있나요?"유현진은 한참 후에야 답했다. "없어요."박부자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입을 열었다. "유현진 씨 어머님은 오랫동안 병상에 계셨어요. 이 일에 대해 유현진 씨 본인은 마음이 어려웠을 것이고 정신도 항상 긴장했을 것입니다. 우리 측에서 확보한 자료에 의하면 작년 6월에 유현진 씨는 어머님이 위독하시다는 통지를 받았고, 유현진 씨 어머님 고(故) 하현주
유현진도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러자 강한서가 방청석에 서서 얼음같이 차갑고 어두운 표정으로 쉴틈없이 쏙닥거리던 두 여자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두 여자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저 강한서의 매서운 눈빛에 놀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뭐, 뭐하는 거예요?"강한서는 두 사람을 째려보더니 무표정으로 답했다. "칼슘 부족이라 갑자기 다리가 떨려서."두 여자는 어이가 없었다.누가 다리가 떨려서 타인의 의자를 차?그런데 강한서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이 하도 커서 상대방이 어이없는 헛소리를 지껄이더라도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민경하는 두 사람이 여자이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남자였다면 강한서의 발은 의자가 아닌 그들의 몸을 향해 날아갔을 것이다.두 여자는 생각자체가 불건전했다. 어떻게 얼굴이 예쁘다고 아무렇지 않게 상대방을 저런식으로 비하할 수 있는가?이때 사법 결찰이 와서 경고했다. "법정에서 소란 피우시면 안됩니다."유현진은 강한서가 뒷좌석 의자를 발로 차는 모습을 포착하지 못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얼굴만 봐도 지금 화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송민영을 위해 법정 현장까지 와 놓고선 화내기까지 해?잠깐의 소란으로 인해 재판장은 10분 휴정한다고 발표했다.강한서가 지금 막 자리에서 일어나서 유현진을 찾으러 가고 있는데, 몇 발자국 남겨두고 박부자가 불러서 멈춰섰다. "한서야, 오랜만이야. 오늘 어떻게 소송을 들으러 왔어?"유현진은 강한서가 박부자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더니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바로 고개를 돌려 주강운을 향해 말했다."저 화장실 다녀올게요."강한서는 건성으로 몇 마디 응하고는 바로 고개를 돌려 유현진을 찾았다. 그런데 유현진은 보이지 않았고, 주강운만 남아 있었다.강한서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면서 물었다. "현진이는?""화장실 갔어."강한서가 화장실로 쫓아가려고 몸을 돌리자 주강운이 말렸다. "오늘 현장에 기자들이 많아. 방금 전에 피고인
한현진이 입꼬리를 씩 올리며 송가람에게로 걸어가 그녀의 귓가에 다가갔다. “제 사무실에 있던 금전수 기억해요?”움찔하는 송가람의 동공이 순간 흔들렸다. 한현진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언니가 하는 건 저도 할 수 있어요. 스스로 승인하실래요, 아니면 다들 들을 수 있게 제가 가서 가져올까요?”송가람의 얼굴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한현진이 그 도청 장치를 발견했을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한현진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송가람의 사무실에도 도청 장치를 달았다. 송가람과 주현은 사무실에서는 거리낌 없이 모든 얘기를 했었다. 게다가 한현진이 대체 어디서 어떤 얘기를 들은 것인지도 알 길이 없었다. 그런 생각에 송가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꼭 움켜쥔 주먹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송가람의 경계심이 완전히 무너질 때쯤 멀리서 서해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아, 가람아.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거니?”하마터면 자신이 한 일을 승인할 뻔한 송가람은 서해금의 목소리가 들리자 입가까지 흘러나왔던 말을 다시 삼켜버렸다. 그녀는 구세주를 만나기라도 한 듯 서해금을 불렀다. “엄마!”한현진이 쯧 혀를 찼다. ‘타이밍 한번 좋게 찾아왔네.’한현진은 몸을 돌려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서해금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한현진 앞으로 다가온 서해금이 몸을 곧게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미소 지으며 물었다. “밥도 안 먹고 두 사람 여기서 무슨 얘길 하고 있었던 거야?”한현진이 말했다. “별거 아니에요. 다만 가람 언니가 별다른 이유 없이 직원의 보너스를 삭감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고 있었어요.”한현진의 말에 반박하려던 송가람은 휴대폰을 꺼내려는 한현진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만약 송가람이 자신의 구역에서 한현진에게 약점을 잡힌 것을 서해금이 알게 된다면 또 그녀를 한바탕 꾸짖을지도 몰랐다. “그래?”서해금이 송가람을 힐끔 쳐다보았다. “현진이 말이 사실이야?”송
누군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곧 비웃음 소리가 하나둘 터져 나왔다. 안규리의 얼굴이 부끄러움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송가람이 미간을 찌푸렸다. “현진—”한현진이 송가람의 말을 잘랐다. “송 팀장님, 여긴 회사예요. 호칭 주의하시죠.”말문이 막힌 송가람은 이를 악물고 화를 꾹 참으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대표님, 다들 그저 장난 좀 한 건데 말씀이 좀 지나치신 것 같네요.”“제 말이 좀 지나쳤나요?”한현진이 차가운 눈으로 송가람을 쳐다보았다. “규리 씨가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을 놀릴 때는 왜 규리 씨 말이 심하다고 하지 않은 거죠? 이해 능력이 형편없어서 규리 씨 말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는 거예요?”송가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서하 씨 형편이 어려우면 회사에 복지 신청해도 된다고 제가 얘기했잖아요.”한현진이 흥 코웃음을 쳤다. “보아하니 송 팀장님은 이해력이 안 좋을 뿐만 아니라 기억력도 안 좋으신 것 같네요. 서하 씨가 2개월간 감봉 당한 건 송 팀장님 작품 아니었나요? 이제 와서 좋은 사람인 척하겠다는 건가요?”표정이 굳어진 송가람이 이를 악물었다. “서하 씨 보너스가 삭감된 건 인사팀에서 결정한 일이에요.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죠? 헛소리하지 말아요.”한현진이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 “전 서하 씨가 보너스를 삭감당했다고 얘기한 적 없는데요. 조향팀의 일개 팀장에 불과한 송 팀장님이 어떻게 재무팀 직원의 월급 삭감 정황까지 빠삭하게 알고 있는 거예요? 인사팀 부장이 꿈에서 알려주기라도 했어요?”송가람은 그제야 자신이 한현진에게 말꼬투리를 잡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순간 화가 치민 송가람이 말했다. “대충 제 추측으로 얘기한 것 뿐이에요. 감봉은 보너스를 삭감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요.”“하지만 보너스를 전부 삭감당했다는 건 저도 들은 적 없는 얘기예요.”한현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회사에도 징계에 관한 규정이 명확하게 있어요. 설사 서하 씨가 진행한 업무가 전부 규정을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은서하는 송가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한현진과 가깝게 지내다 또다시 송가람에게 당할까 두렵지는 않은 걸까?한현진은 도무지 이 어린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시연은 그런 은서하의 모습에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은서하와 인사를 나누었다. “서하 씨, 외할머니도 아직 퇴원하지 않으셨을 텐데 오늘은 어떻게 회사에서 점심을 먹는 거예요?”은서하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미 누군가 비꼬며 말했다. “진작 회사에서 먹어야 했어요. 도시락도 매일 구정물 같은 것만 싸 오던데 식욕이 있겠어요? 서하 씨. 구내식당은 직원 할인도 있잖아요. 매달 6만 원만 내면 돼요. 그 정도 돈도 없는 건 아니겠죠. 그 도시락, 서하 씨는 괜찮을지 몰라도 전 이제 못 봐주겠어요.”그 말에 은서하의 얼굴이 순간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젓가락을 꽉 움켜쥐고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 이시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안규리 씨,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구내식당을 이용하든 도시락을 싸든 그건 다른 사람 마음이에요. 6만 원으로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게 뭐 그리 고상한 일 같아요?”안규리라고 불린 사람은 송가람 옆에 앉아 있었다. 한현진도 전에 본 적 있는 재무팀 직원이었다. 안규리가 눈썹을 씰룩였다.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게 고상하다는 얘기는 전 한 적 없어요. 하지만 매일 죽 같은 도시락을 싸 와 식당에서 데워 먹는 모습은 사실 저희 식욕을 떨어뜨리거든요. 다들 안 그래도 일하느라 힘든데 밥 먹을 때도 이렇게 입맛이 떨어져서야 저희더러 어떻게 살라는 거죠?”주현도 안규리의 말을 거들었다. “서하 씨도 돈이 없어 보이지는 않던데요. 전에 한 대표님이 옷 선물을 하셨을 때도 제일 비싼 옷을 가져갔잖아요. 딱 봐도 그런 걸 처음 본 사람은 아니잖아요. 보자마자 제일 좋은 거로 가져갔는데.”“200만 원이 넘는 옷을 입는 사람이 식비 6만 원을 아낀다고요?”“그게 어떻게 같아요? 몇백만 원짜리 옷은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잖아요
한현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집을 나선 한현진은 강한서에게 황씨 아주머니의 월급 인상에 관해 상의했다. 강한서와 강민서가 집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주혁이 한현진을 데리러 도착했다. 별장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현진은 순간 길가에서 누군가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어쩐지 눈에 익은 인영이었다. 한현진이 탄 차가 그 사람과 가까워져서야 한현진은 그 사람이 은서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현진은 다급히 주혁에게 차를 세우라고 말하고는 차창을 내려 은서하를 불렀다. “서하 씨!”고개를 돌린 은서하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대표님이 여긴 어떻게...?”“저 이 근처에 살아요.”한현진이 물었다. “그러는 서하 씨는 여긴 어쩐 일이에요?”이 근처엔 별장을 제외하면 길가에 오가는 차가 전부였다. 사람의 그림자조차 흔하지 않은 길이었다. 은서하가 말했다. “집이 이 근처라서요.”한현진이 놀라며 말했다. “이 근처에 사신다고요?”은서하가 꿋꿋이 거짓말을 이어갔다. “네. 오늘 늦잠을 잤더니 택시가 안 잡혀서요.”한현진은 아무 말 없이 은서하를 살펴보더니 몇 초 후에야 입을 열었다. “일단 타요. 타서 얘기해요.”은서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종종 달려와 한현진 반대편의 문을 열고 차에 탔다. 은서하는 그제야 차에는 한현진과 운전기사뿐만 아니라 평범한 외모의 젊은 청년도 함께인 것을 발견했다. 한현진이 소개하며 말했다. “여긴 원율 씨. 제 개인 비서예요.”은서하가 원율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안전벨트를 했다. 그녀는 자신의 가방을 꼭 끌어안고 공손한 자세로 한현진 옆에 앉아 있었다. 차가 출발하자 한현진이 질문을 이어갔다. “여긴 회사와 거리도 있는데 평소 출퇴근 시간이 꽤 걸리지 않아요?”은서하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외할머니 치료 때문에 집을 팔았어요. 하지만 회사 근처엔 월세가 높아서 어쩔 수 없이 먼 곳으로 옮겼어요. 평소엔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어젯밤엔... 일이 조
한현진이 거울을 보며 옷을 정리했다. “이름이 뭐야?”“문채영.”“꽃부리 영?”강한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영리할 영.”“특이한 이름이네.”한현진이 멈칫했다. “너 전에 오빠가 맞선을 싫어한다고 하더니 그 여자를 못 잊어서 그런 거였어?”강한서가 말했다. “그런 것 같아.”“그럼 두 사람은 왜 안 만났던 건데?”강한서가 말했다. “자세한 건 네 오빠만 알 거야. 내가 알고 있는 건 고등학교 시절 누나 이모가 누나 아버지를 횡령, 뇌물수수 그리고 사생활이 문란한 문제를 신고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연루되어 누나 아버지는 형량을 꽤 많이 받았어. 누나 어머니도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시고 실성하신 분처럼 구셨어. 그렇게 문씨 가문은 나락으로 떨어진 거야. 그때 누나는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못했었어.”“우리 수능이 끝나자 누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해외로 갔어. 그리고 2년이 지난 후 결혼했지. 남편은 부자인 교포였어. 귀국해서 결혼식을 올린 거라 민준이도 일부러 M국에서 돌아왔어. 결혼식이 끝나고 누나는 남편과 함께 해외로 갔어. 그 후로 우리는 연락이 뜸해졌고. 그리고 2년 전, 누나가 이혼하고 나서야 다시 연락하기 시작한 거야.”한현진이 물었다. “넌 그 여자와 오빠를 이어주고 싶은 거야?”강한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나는 민준이를 만나고 싶어 해. 난 그저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주는 것뿐이야. 두 사람이 어떤 사이로 발전할지는 두 사람 일이지.”강한서가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 “어렸을 때 그 감정이 지금은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르지. 누나가 이혼 후 2년이 흘렀어. 만약 나라면 그리고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바로 전남편에게 꽃이라도 사 들고 찾아가 이혼을 축하해줄 거야. 그리고 바로 누나를 찾아갔겠지. 하지만 네 오빠는 그저 가만히 있었어. 이혼한 걸 몰랐을 리가 없어.”한현진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만약 너였다면 넌 출국하기도 전에 잡혔을 거야. 그리고 오빠는 너처럼 멍청하지 않아. 그렇게 창피한 일은
문자를 확인한 강한서는 몸을 일으키며 답장을 했다.[고마워요, 누나도 잘 지내죠?][응, 잘 지내지. 나 내일 귀국하는데 시간 되면 밥이나 먹자.][그래요.][네 와이프 송씨 집안에서 잃어버린 딸이라던데, 너랑 민준이는 형님 동생 하면서 지내는 거야? 어떻게 지낼만해?]송민준의 상황을 묻기 위해 연락했다는 걸 알아챈 강한서가 바로 답장을 보내주었다.[괜찮긴 한데 너무 동생 바보라서 나 별로 안 좋아해요. 누나도 송민준 못 본 지 오래됐죠? 내일 같이 나갈게요.][그래, 안 바쁘면 민준이 여자친구도 같이 불러.]강한서는 문채영이 떠보기 위해 하는 말인 걸 알았지만 모른 척 대꾸했다.[송민준 여자친구 없어요, 솔로에요.]그 말에 적잖이 놀란 건지 글자뿐인 문자에서도 문채영의 놀라움이 전해져왔다.[진짜?][누나도 송민준 성격 알잖아요. 얼마나 사람 짜증 나게 하는데, 그렇게 쓸데없는 말 많이 하는 사람이 여자친구를 사귈 리가 없잖아요.]그 말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입은 웃고 있는 이모티콘을 보내온 문채영은 곧바로 한마디 더 보탰다.[너도 와이프 데려와, 선물 준비했으니까.][네.]이튿날 아침, 강한서는 머리를 말리고 있는 한현진 곁으로 다가가 어젯밤 문채영과 했던 말을 전했다.“내가 아는 사람이야?”그 말에 강한서가 고개를 젓자 한현진은 또 물었다.“남자야 여자야?”“여자.”그 말에 한현진이 잠시 멈칫하자 강한서가 한마디 더 보탰다.“네 새언니가 될뻔한 여자야.”“우리 오빠 첫사랑?”깜짝 놀라며 묻는 한현진에 강한서는 웃으며 대답했다.“그렇다고 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 만난 건 아니고 그냥 송민준이 혼자 좋아했어. 그때 같이 다니던 애들은 다 알고 있었지. 그런데...”갑자기 말을 멈추는 강한서에 한현진은 다급히 그를 재촉했다.“왜 갑자기 여기서 말을 끊어, 그런데 뭐?”강한서는 그런 한현진의 볼을 귀엽다는 듯 쓰다듬으며 입꼬리를 올렸다.“나처럼 원하는 여자를 쟁취하진 못한 거지. 그런 쪽으론 영 능력이 없어.”“우
신미정은 결혼을 재촉했지만 할머니는 결혼은 평생을 같이할 사람을 찾는 거라고 마음에 들고 잘 맞는 사람과 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서두르지 않고 있었다.그래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결혼 상대를 물색하던 중 한현진의 강한서의 눈에 들게 된 것이다.교통사고까지 다 해서 고작 네 번 본 사이었고 말 한번 섞어본 적도 없어 그다지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보면 볼수록 한현진이 마음에 들었다.강한서도 마침 모르는 사람과 결혼해서 서로를 알아가는 게 시간 낭비 같았는데 한현진도 저런 늙은이한테 시집가는 건 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그리고 그날 교통사고도 실수이기는 하지만 한현진의 엄마가 간민혜를 차로 쳐서 죽인 건 맞기에 주강운이 갑자기 한현진한테 무슨 짓을 하기라도 할까 봐 신경 쓰이는 것도 있었다.어쨌든 주강운한테 고모가 간민혜를 만나려고 해서 그녀를 데리고 가다가 사고가 났다고 해명한 건 자신이었기에 강한서는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한현진을 데리고 있고 싶었다.그렇게 자신을 설득한 강한서는 이틀 뒤 바로 한현진에 연락해 그녀와 맞선자리를 가졌다.맞선자리에서 한현진은 강한서를 알아본 듯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기에 강한서도 굳이 그 일을 꺼내진 않았다.한현진은 이 맞선자리가 유상수가 꾸며낸 자리인 줄로만 알고 혹시라도 실수할까 싶어 말을 최대한 아끼고 있었지만 사실 유상수는 꿈만 꿀 뿐이지 그럴 능력이 못 되는 사람이었다.선 자리를 끝내고 본가로 돌아간 강한서는 바로 한현진의 자료를 건네주며 결혼 의사를 밝혔지만 유씨 집안을 조사해본 할머니는 바로 반대부터 했다.유씨 집안의 지위보다 아내가 아픈데도 들여다보지 않고 비서랑만 붙어있는 유상수의 사람 됨됨이가 별로라서 그의 딸도 비슷할 거라 생각해 거절한 걸 알아챈 강한서는 평소에는 그렇게 말을 아꼈으면서 이번에는 웬일로 한현진을 감싸기 시작했다.그녀가 친구를 도와 나서던 일과 그녀의 지금 상황까지 다 말한 강한서는 한현진이 아니면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한 뒤 집을 나섰다.그 말에 답답해
침대에서는 늘 신사다웠던 강한서였기에 한현진은 하면서도 아픈 적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다.그래서 당연히 실망은 하지 않았지만 그저 간간이 색다른 그의 모습을 바랐던 적은 있었다.사실 별로 감출 것도 없는 일이지만 갑자기 물어오는 강한서에 부끄러워진 한현진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며 말했다.“잠이나 자!”그에 웃음을 흘리던 강한서는 한현진을 이불과 함께 끌어와 제 품에 안더니 낮은 목소리로 놀리기 시작했다.“얘기마저 하고 자. 앞으로 어떻게 널 만족시켜야 하는지는 알려줘야지.”“현진아, 현진아.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해보라니까?”진짜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어떻게 하면 만족할지를 자세하게 말하라니, 한현진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었다.강한서는 그렇게 한현진을 한참 놀리다가 자리에 제대로 누우며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나 오늘 내가 부계정으로 올렸던 피드들 다시 봤는데 진짜 너무 유치하더라, 전에는 내가 그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너 원래 유치하잖아, 닉네임만 봐도 알리지 않아?”코웃음을 치며 말하는 한현진에 강한서가 웃어 보였다.“그 이름 내가 지은 거 아니야.”사실 그 계정은 일상을 공유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니라 사업에 필요해서 만든 거였다.그때 한성 그룹에서 개발 중인 신제품에 대해 말이 좀 많았었는데 영향력이 좀 있는 사람들까지 그간의 데이터들을 언급하며 한성에는 그 정도 기술이 없다고, 전부 허위 홍보일 뿐이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어서 그걸 반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계정이었다.그 신제품이 진짠지 가짠지 누구보다 잘 아는 강한서는 화가 나서 자신의 본 계정으로 반박문을 내려고 했지만 본 계정으로 낸 입장문이라면 큰 효과가 없을 거라던 한성우의 말에 설득당해 ‘다이아몬드 수저의 일상’이라는 계정이 생기게 된 것이었다.한성우의 말대로 부계정을 사용해 자신의 생각을 밝히니 사람들이 좀 더 쉽게 받아들였고 덕분에 팔로워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자신의 화려한 배경이 사라지니 허구한 날 걸고넘어지던 사람들도
한현진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딱딱하게 물었다.“말해 빨리, 나 잘 거니까.”“네가 싫다고 해도 내가 강제로 몰아붙이는 거 좋아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하다가 네가 진짜로 하기 싫어질 수도 있는 건데 그걸 내가 구별할 수 있을까? 네가 진짜 싫은 건지 아니면 그냥 하는 말인지 잘 몰라서 실수하면 어떡해?”“잘 나가다가 내가 갑자기 왜 화를 내겠어?”“지금도 갑자기 화내잖아, 아까는 막 나 유혹하더니. 아무 예고도 없이 화내는 게 한두 번이야?”그 말을 들은 한현진은 돌아누워 강한서와 눈을 맞추며 따지기 시작했다.“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이유도 없이 자꾸 화만 낸다 그거야?”“아니, 그런 게 아니라 네가 진짜 하기 싫은 건데 내가 그걸 못 알아보고 계속하다가 너 다치게 할까 봐 그러지.”“진짜 싫으면 내가 너 물 거니까 그딴 걱정 할 필요 없어.”그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강한서는 언제 풀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자유로워진 손으로 한현진의 손목을 잡으며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한현진이 그걸 왜 혼자 풀어냈냐고 따지기도 전에 혀를 입속으로 밀어 넣으며 치열을 고르게 훑고 지나가는 강한서에 한현진의 몸은 빠르게 나른해졌다.강한서가 입을 뗐을 때 한현진의 얼굴과 입술은 이미 빨개져 있었고 그녀는 가만히 누운 채 숨만 내뱉으며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한현진 위에 올라타 있었던 강한서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바라보더니 득의양양하게 말했다.“안 깨물었네.”한현진이 그 말의 뜻의 완전히 깨닫기도 전에 강한서는 또다시 입을 맞춰왔다.시간을 얼추 계산해보니 3달은 넘은 것 같아 사실상 관계를 한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었기에 한현진은 쥐고 있던 강한서의 머리채를 놓아주고 몸에 힘을 뺐다.그렇게 키스를 이어나가던 강한서는 한참 만에 한현진을 놓아주더니 그대로 이불을 덮어주고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자자 이제.”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천장만 바라보던 한현진은 문득 인터넷에서 봤던 피드가 하나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