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너 배우 되고 싶은 거 아니었어?"임효우가 말했다."내 주제에 배우는 무슨. 배우 하려면 언니처럼 예뻐야 할 수 있잖아요. 난 외모도 딸리는 데 누가 나 같은 사람을 배우로 쓰려고 하겠어요? 차라리 매니저 일이나 배우는 게 나아요. 언니만 계속 활동하면 나도 굶어 죽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자기를 깎아내리며 송민영을 치켜세우는 방식은 송민영의 마음에 쏙 들었다.송민영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그렇게 생각한다니 정말 다행이다. 이번 사건만 잘 마무리되면 우진이한테 너 잘 가르치라고 할 테니 너도 잘 배워둬. 나중에 우리 두 자매끼리 일인 기획사 세워서 너한테 주식도 줄게."임효우는 미소를 지었다."우리는 친자매나 다름없으니까, 언니만 좋다면 나도 좋아."송민영을 대신해 죄를 뒤집어쓰는 일은 공을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한성 그룹.강한서는 한창 회의 중이다.홍보 강연 사건 이후, 강한서는 큰 손해를 보았고 강단해는 이때다 싶어 많은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임원들도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처럼 강단해의 편에 서기 시작했다.강한서에게 붙었던 임원들이 새로운 추세에 강단해에게로 넘어간 것이다.회사의 개발팀도 잠잠해지는 바람에 세미나에 참석하는 임원들도 많이 적어졌다.하지만 강한서는 이에 대해 개의치 않고 여전히 개발 중인 제품에 중점을 두었다.세미나가 끝나기도 전에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비켜! 나 강한서 만나러 왔어!"경호원은 다급히 막아섰다."대표님 지금 회의 중이라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어요.""회의는 무슨? 내가 상관할 바 아니고, 지금 당장 만나야 해!"소란스러운 소리는 회의실에서도 똑똑히 들렸다.회의실의 사람들은 서로 눈치 보기 바빴다. 보고를 올리던 직원도 말을 멈추고 강한서의 눈치를 보았다.강한서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계속하세요."직원은 헛기침하더니 계속 보고를 올렸다."당신 신입이야?"신미정이 화를 냈다."내가
강한서는 신미정을 힐끗 보며 말했다."굳이 회사까지 와서 난동 부려야 겠어요?"신미정은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네 외삼촌 회사에 어려움이 생겼는데 왜 안 도와줘?"민경하는 신미정의 질문에 저도 몰래 미간을 찌푸렸다.강씨 가문의 어려움도 아닌 신씨 가문의 일인데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저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 참 보기 드문 장면이야.'강한서는 신미정을 훑어보며 말했다."신씨 그룹의 생산라인이 왜 강제 폐쇄당했는 지는 알고 있어요?"신미정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방 문제 아니야? 그게 큰일이야? 너 관련 부서에 아는 사람도 많잖아. 네가 한마디만 해주면 돼."강한서는 안색이 어두워졌다."차간 탈출구에 가연성 제품과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물건을 쌓아뒀어요. 그것들은 허가도 받지 못한 물건이라고요. 만약 사고라도 난다면 차간의 그 많은 노동자는 어떻게 될지 생각은 해보셨어요? 그렇게 되면 누가 책임져요?"신미정은 항상 신씨 가문만 중요한 사람이라 강한서의 말이 전혀 귀에 들리지 않았다. 하여 강한서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입을 열었다."사고 안 났잖아? 일단 폐쇄부터 풀고 다시 정돈하면 되지. 세상에 실수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딨어? 누가 신고했는지 찾아내기만 해봐.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그럴래요?"강한서는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내가 했는데, 신고."신미정은 몸이 굳어버렸다."너 지금 뭐라고 했어?""신씨 가문 생산라인 소방 문제, 내가 신고했다고요."신미정의 놀랍다는 표정으로부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리고 원망의 표정으로 변했다.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말했다."너 왜 그랬어? 외삼촌 부부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넌 양심이란 게 있기나 해?""별다른 이유는 없어요."강한서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신미정을 바라보았다."그저 엄마도 소중한 걸 빼앗기는 기분을 느꼈으면 해서요."신미정은 멈칫하더니 이내 강한서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강한서는 유현진 때문에 신미정에게 화풀이하는 것이다.그녀는 일그러진
비록 강한서가 당시 17살이라고 해도 몸은 이미 성인과 다를게 없었다.180cm의 거구를 들려면 적어도 두 사람이 같이 힘을 합쳐야했다.그 날 간호사 한명이 점심을 가지러 가서 자리에 한 명밖에 없었기에 남겨진 간호사는 신미정한테 도움을 청했었다.하지만 몸을 옮기는 도중 카테터가 실수로 빠지는 바람에 안에 있던 액체가 침대에 쏟아지자 신미정은 재빨리 받치고 있던 손을 뗐었다. 간호사가 그의 허리를 받쳐주고 있지 않았다면 그의 상처에 심각한 충격을 받았을것이였었다.그는 그때 신미정이 드러냈던 표정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그녀의 눈빛에서 묻어났던 혐오감과 불쾌감은 침대에 누워있던 사람이 그녀의 혈육이 아니라는 착각까지 불러일으켰다.신미정은 평소에도 그한테 무뚝뚝한 태도로 일관했었지만 이 일로 신미정이 얼마나 그를 보잘것없이 여기는지를 깨달았다.(내 어머니도 날 이렇게나 싫어하는데 나한테 진심인 사람이 과연 있을까?)허리 수술이후 강한서는 병원이라는 곳을 싫어하기 시작했다, 그는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못하는 무력감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이 제일 무력할때야말로 주위의 사람에 대해 제일 잘 알기 때문에.그리고 그가 열이 났었을때, 그는 화장실에서 널부러져있는 상태로 유현진한테 화를 냈었다, 그의 알량한 자존심 말고도 유현진의 표정에서 신미정의 모습을 보고싶지 않았었기 때문이였다.하지만 유현진의 반응은 신미정하고는 전혀 달랐다.그녀는 그를 부축하고 씻겨줬으며 서로의 관계가 아직 나아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존심을 지켜줬었다.강한서도 눈치가 없는건 아니였고 신미정이 이 혼사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것도 알고 있었다.그가 결혼한지 두달도 채 되지 않아 분가를 한 건 두 사람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였다.하지만 그는 신미정이 이토록 잔인한 짓을 할줄은 생각 못했었다.유현진이 어떤 마음으로 이혼얘기를 꺼냈을지 생각만 해도 그는 마음이 아려왔다.신미정은 떨리는 손으로 강한서를 가리키며 욕을 했다.
민경하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아니나 다를까 유현진이 작성한 새 게시글이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은행 카드 내역을 보여주며 아래에"이혼하면 부자가 될수 있는걸 진작에 알았다면 열번도 하고 남았어."라는 메세지를 덧붙였다.강한서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그 아래 달린 댓글들도 가관이였다.한성우: 사모님 절 데려가주세요.차미주: 총각만 오세요, 저희 현진이가 그거에 민감해서요.한성우는 이에 중지를 날렸다.유현진: 그건 상관없어, 테크닉이 전 남편보다 좋으면 돼.......민경하는 식겁해서 마음을 조리고있었다.그녀는 조심히 강한서의 표정을 관찰하고 있었다.아니나 다를까 강한서의 안색은 새까맣게 탄 냄비 밑바닥처럼 어두워졌다.민경하는 사모님이 아무말이나 입에 담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게시글을 그녀가 일부러 강한서한테 보여주려고 보낸 메세지 같았다.민경하는 정확했다, 유현진이 원래 보내려던 메세지는 이게 아니라"너희들 다 진정해."였었다.하지만 발송하기 전 강한서가 몇일전부터 계속 자신의 게시글을 훔쳐보고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리하여 원래의 말들은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작성했다, 그 결과가 바로 강한서가 보고 있는 메세지였다.당연하게도, 이 한 마디는 강 대표의 남자로써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한 마디였다.민경하는 두 눈 뜨고 강한서의 얼굴색이 계속해 바뀌는걸 보고 있었다, 전화가 오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사모님한테 전화를 걸어 시시비비를 따질게 분명했었다.민경하는 기침을 하고는 위로하는 말을 건넸다."그래도 총각보단 낫잖습니까, 테크닉은 배우면 되지만 총각은 방법이 없으니."강한서의 입꼬리가 떨리더니 인상을 쓰며 이를 악물었다."아주 한가하지? 그렇게 한가하면 가서 보고서나 작성해!"민경하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민경하가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뒤이어 택배를 보내왔다, 어떤건 같이 합작하고 있는 회사에서 보낸거고 어떤건 강한서의 사인이 필요한 급한 문건들이였다.강한서는 사무실 책상에서
20분이 지나고, 민경하는 사무실로 들어와 보고했다."이 편지 봉투를 누가 보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내일 신해로에서 열리는 재판은 선 셋 스타가 인터넷에서 그녀한테 악플을 단 네티즌과의 재판입니다."강한서는 막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당연하게도 선 셋 스타가 누구인지는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고 생각했다.강 대표는 자신과 관계없는 사람과 일에 대한 기억력은 아주 잠깐이였다.민경하는 이에 대해 해석했다."그 '정상에서' 에서 송민영한테 준 배역 말이예요, 원래 맡았었던 배우가 그 사람이예요."강한서는 그제서야 생각나는듯했다."무슨 재판인데?""명예훼손죄로 고소했습니다."민경하는 숨을 고른후 다시 답했다."이 성우는 그 전에 송민영의 팬들한테서 악플세례를 받은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울증에 걸렸었다고 했고요. 그리고 좀 전에 거들먹 거린다고 모함까지 당했어서 은퇴를 한 적도 있습니다.""얼마 전, 그녀가 변호사를 선임해서 그녀한테 악플을 날렸던 사람들에게 고소장을 보냈습니다. 내일이 바로 그 재판입니다. 아 그리고, 그녀의 변호사가 주 변호삽니다.""강운이가?"강한서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는 갑자기 흥미가 생겼다.(송민영이 말했던 재판이랑 같은 건가?)"선 셋 스타는 내일에 직접 재판현장에 온다고 합니다, 예전에 얼굴을 드러낸적이 없어서 매체들은 이 재판에 아주 큰 관심을 갖고 있나봅니다."강한서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그저 사진을 가볍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이걸로 협박하는 이유가 그냥 재판에 참가시키기 위해서라고?)(목적이 뭐지?)(그리고 이 봉투는 누가 보낸거지?)(피고인 아니면 원고인?)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민경하는 추측했다."누가 재판을 이용해서 한 탕 하려는거 아닐까요?"강한서는 많이 알려진 인물이였기에 만약 현장에 그가 나타난다면 재판에 대한 주목도는 더욱더 올라갈게 뻔했다.그러면 원고인쪽에서밖에 벌일수 있는 일이였다, 필경 피고인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였
강한서는 이런 의문을 남기고는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나 대신 전해줘, 만약 이 사건을 이용하고 싶다면 사람 잘 못 건드린거라고, 나한테 보낸것들에 대한 대가를 꼭 치르게 해주겠다고 말이야."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유현진은 어안이 벙벙했다.(강한서 이 개자식!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거야?)(뭘 이용한다는 건데? 뭘 보냈다는 건데?)주강운도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어서 낮은 목소리로"난 한서가 현진씨인걸 알고 있는줄 알았어요."유현진은 입을 뾰루퉁하게 내밀었다."내가 맡았던 작품들을 그 이한테 보여줘도 모를거예요."주강운은 웃으며 답했다."그건 현진씨가 연기를 잘해서예요, 저도 작품만 놓고 봤을땐 못 알아봤는걸요."유현진은 빙그레 웃으며"내일이 순조롭길 빌어요."둘쩃날 아침 아홉시, 신해로 법원 문앞엔 이미 사람들로 북적거렸다.선 셋 스타가 고소장을 날린 사람들중 몇명은 모두 송민영의 오랜팬들이였다.팬들은 피고석에 앉은 팬들에게 기운을 북돋아주자고 암암리에 약속을 했다.그들은 이 사건을 훈장으로 여기며 고소를 당했지만 팬들의 대표로 압장선 그들은 영웅처럼 모셨다.한 편은 선 셋 스타를 바라보고 온 사람들이였다.팬들은 적은 부분을 차지했고 대부분들은 예능쪽에서 일하고 있는 기자들이였다.필경 선 셋 스타의 신비한 외모와 송민영의 오랜팬들과 하는 재판은 그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아홉시 반, 비지니스 차량 한 대가 법원 문앞에 멈추고 양복을 입은 휜칠한 남자가 내려왔다.그는 차에서 내린뒤 반대쪽으로 가서 조수석 문을 열었다, 야구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한 여자가 차에서 내렸다.그녀는 하얀 티셔츠에 검은색 나팔바지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묶지 않아서 어깨위로 드리워져있었다.티셔츠의 아래부분은 바지에 넣어두었기에 그녀의 허리는 아주 가늘게 보였고 남자의 손을 잡았을 때 드러냈던 팔뚝은 백옥같이 하얳다.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생각을 멈췄다, 인터넷에서 돌던 소문이랑은 완전 달랐다.촌스럽고 뚱뚱하
"민영 언니를 언급 안 하면 누가 저 년한테 관심이라도 줄꺼같아? 은퇴한다며 이제 와서 다시 재판으로 복귀하는거 아냐?""복귀하면 자기 얼굴에 침 뱉기 아냐?""그건 양심이라도 있을때 이야기지. 어느 한 번이라도 민영 언니 빼고 실검에 오른적이라도 있어? 저 년 팬들도 항상 목소리 대역 해주는걸 무슨 권리라도 되는 양 떠벌리잖아. 이따가 나와서 얼굴공개했을때 자신이 한 말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건지 알아야 해!""진짜로 예쁘고 연기도 잘하는거면 왜서 성우만 하겠어? 난 지금 너무 기대돼. 그녀 팬들이 실망하는 표정이 머리속에 그려져. 상상만 해도 기분이 째질것 같아.""핸드폰 밝기 낮추고 필터도 씌우지마.""알았어."강한서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그는 두 명의 대화에서 알아들을수 있는 의미는 적었지만 그 두 명이 '선 셋 스타' 에 대한 적의만은 충분히 판단 가능했다.그는 고개를 돌려 민경하에게 물었다."요즘 팬들은 다 이모양이야?"민경하는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이것도 약한 편입니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팬덤이 제일 강한 스타가 제일입니다. 온라인에서나 오프라인에서나 서로 다투는걸 멈추지 않습니다. 잡지 판매량비교부터 드라마에선 상대 배역을 까내리고 드라마의 비중이 적다면 제작진들을 욕해요. 안티팬보다 더 극성입니다. 영정사진을 포토샵으로 만든다든지, 죽은 생쥐를 던진다든지. 생각할수 있는 모든 방법은 다 시도해봐요."강한서는 눈썹을 찌푸렸다."누가 제재하는 사람은 없어?""누가 합니까? 다 팬들로 먹고 사는데? 어느 팬들의 목소리가 제일 크면 그 사람이 제일 핫한 스타예요. 조용한 팬들을 소유한 유명인은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수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치고박고 싸우는 걸거예요."강한서는 바이브 엔터테인먼트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수는 아주 적었다. 왜냐하면 한성우가 당시 바이브 엔터테인먼트를 창립할때 한성그룹의 덕을 보고 싶어했고 강한서도 그와 사이가 좋았었기에 주식도 투자했었다.하지만 그는 바이브 엔터테인먼트에 관한
[진짜로 지분을 살려고?][그래.][그럼 오후에 회사에 한번 들러, 그때 얘기 하자고.]강한서는 답장을 하려고 했으나 장안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강한서가 고개를 들자 장내로 들어오고있는 원고석과 피고석의 사람들을 발견했다.강운의 옆에는 헌팅캡이랑 마스크를 쓰고있는 여인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아주 낯익은 모습이였다.강한서는 눈썹을 찌푸리며 누군지 뚫어져라 쳐다보고있는와중에 상대방이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째려보고 있음을 알아챘다.서로의 눈빛이 마주친 그 순간 강한서는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유현진?!)그는 유현진이 왜서 재판장에 모습을 드러냈는지를 깨닫기도 전, 그녀는 그를 심하게 째려본후 주강운과 같이 원고석에 앉았다.그는 무의식적으로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법경이 그를 막아세우며 재판이 곧 시작되니 자리에 앉아달라고 했다.강한서는 할 수 없이 마음속 흥분을 가라앉히며 제자리에 앉았다.강한서는 정상적인 사고를 할수가 없었다, 단지 단 하나의 생각만이 계속 맴돌았다, 선 셋 스타가 바로 유현진이야.그녀가 바로 오늘의 원고였다.(그녀가 어떻게 선 셋 스타지?)몇년 동안 같이 살면서 전혀 생각도 못했던 일이라 얼마나 잘 숨겼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예전에는 신경을 별로 쓰지 않았었던 일들도 점점 머리속에 나타났다.그가 예전에 유현진이 그한테 '정상에서' 의 성우가 바뀐 일로 대해 선 셋 스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었던 사건이 있었다.그는 당시 상대방이 여론 몰이를 한다고 했고 유현진은 이에 엄청 화를 낸적이 있었다.그리고 그는 또 유현진이 처음으로 이혼 얘기를 꺼냈을때 그녀가 물건을 집 밖으로 옮겼었다. 그리고 이튿날에 섬블 컴퍼니에서 만났었던 일이 생각났었다.그는 그때 당시 유현진이 자신을 미행하는줄만 알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한성우가 그때 전화로 오디션을 보는 배우가 있었다고 했다.(그때 왔다던 배우가 유현진이였어?)(한성우 이 개자식이! 이렇게 중요한 일을 왜 나한테 알려주지 않은거지?)강한서는 머리속
한현진이 입꼬리를 씩 올리며 송가람에게로 걸어가 그녀의 귓가에 다가갔다. “제 사무실에 있던 금전수 기억해요?”움찔하는 송가람의 동공이 순간 흔들렸다. 한현진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언니가 하는 건 저도 할 수 있어요. 스스로 승인하실래요, 아니면 다들 들을 수 있게 제가 가서 가져올까요?”송가람의 얼굴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한현진이 그 도청 장치를 발견했을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한현진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송가람의 사무실에도 도청 장치를 달았다. 송가람과 주현은 사무실에서는 거리낌 없이 모든 얘기를 했었다. 게다가 한현진이 대체 어디서 어떤 얘기를 들은 것인지도 알 길이 없었다. 그런 생각에 송가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꼭 움켜쥔 주먹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송가람의 경계심이 완전히 무너질 때쯤 멀리서 서해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아, 가람아.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거니?”하마터면 자신이 한 일을 승인할 뻔한 송가람은 서해금의 목소리가 들리자 입가까지 흘러나왔던 말을 다시 삼켜버렸다. 그녀는 구세주를 만나기라도 한 듯 서해금을 불렀다. “엄마!”한현진이 쯧 혀를 찼다. ‘타이밍 한번 좋게 찾아왔네.’한현진은 몸을 돌려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서해금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한현진 앞으로 다가온 서해금이 몸을 곧게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미소 지으며 물었다. “밥도 안 먹고 두 사람 여기서 무슨 얘길 하고 있었던 거야?”한현진이 말했다. “별거 아니에요. 다만 가람 언니가 별다른 이유 없이 직원의 보너스를 삭감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고 있었어요.”한현진의 말에 반박하려던 송가람은 휴대폰을 꺼내려는 한현진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만약 송가람이 자신의 구역에서 한현진에게 약점을 잡힌 것을 서해금이 알게 된다면 또 그녀를 한바탕 꾸짖을지도 몰랐다. “그래?”서해금이 송가람을 힐끔 쳐다보았다. “현진이 말이 사실이야?”송
누군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곧 비웃음 소리가 하나둘 터져 나왔다. 안규리의 얼굴이 부끄러움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송가람이 미간을 찌푸렸다. “현진—”한현진이 송가람의 말을 잘랐다. “송 팀장님, 여긴 회사예요. 호칭 주의하시죠.”말문이 막힌 송가람은 이를 악물고 화를 꾹 참으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대표님, 다들 그저 장난 좀 한 건데 말씀이 좀 지나치신 것 같네요.”“제 말이 좀 지나쳤나요?”한현진이 차가운 눈으로 송가람을 쳐다보았다. “규리 씨가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을 놀릴 때는 왜 규리 씨 말이 심하다고 하지 않은 거죠? 이해 능력이 형편없어서 규리 씨 말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는 거예요?”송가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서하 씨 형편이 어려우면 회사에 복지 신청해도 된다고 제가 얘기했잖아요.”한현진이 흥 코웃음을 쳤다. “보아하니 송 팀장님은 이해력이 안 좋을 뿐만 아니라 기억력도 안 좋으신 것 같네요. 서하 씨가 2개월간 감봉 당한 건 송 팀장님 작품 아니었나요? 이제 와서 좋은 사람인 척하겠다는 건가요?”표정이 굳어진 송가람이 이를 악물었다. “서하 씨 보너스가 삭감된 건 인사팀에서 결정한 일이에요.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죠? 헛소리하지 말아요.”한현진이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 “전 서하 씨가 보너스를 삭감당했다고 얘기한 적 없는데요. 조향팀의 일개 팀장에 불과한 송 팀장님이 어떻게 재무팀 직원의 월급 삭감 정황까지 빠삭하게 알고 있는 거예요? 인사팀 부장이 꿈에서 알려주기라도 했어요?”송가람은 그제야 자신이 한현진에게 말꼬투리를 잡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순간 화가 치민 송가람이 말했다. “대충 제 추측으로 얘기한 것 뿐이에요. 감봉은 보너스를 삭감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요.”“하지만 보너스를 전부 삭감당했다는 건 저도 들은 적 없는 얘기예요.”한현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회사에도 징계에 관한 규정이 명확하게 있어요. 설사 서하 씨가 진행한 업무가 전부 규정을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은서하는 송가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한현진과 가깝게 지내다 또다시 송가람에게 당할까 두렵지는 않은 걸까?한현진은 도무지 이 어린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시연은 그런 은서하의 모습에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은서하와 인사를 나누었다. “서하 씨, 외할머니도 아직 퇴원하지 않으셨을 텐데 오늘은 어떻게 회사에서 점심을 먹는 거예요?”은서하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미 누군가 비꼬며 말했다. “진작 회사에서 먹어야 했어요. 도시락도 매일 구정물 같은 것만 싸 오던데 식욕이 있겠어요? 서하 씨. 구내식당은 직원 할인도 있잖아요. 매달 6만 원만 내면 돼요. 그 정도 돈도 없는 건 아니겠죠. 그 도시락, 서하 씨는 괜찮을지 몰라도 전 이제 못 봐주겠어요.”그 말에 은서하의 얼굴이 순간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젓가락을 꽉 움켜쥐고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 이시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안규리 씨,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구내식당을 이용하든 도시락을 싸든 그건 다른 사람 마음이에요. 6만 원으로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게 뭐 그리 고상한 일 같아요?”안규리라고 불린 사람은 송가람 옆에 앉아 있었다. 한현진도 전에 본 적 있는 재무팀 직원이었다. 안규리가 눈썹을 씰룩였다.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게 고상하다는 얘기는 전 한 적 없어요. 하지만 매일 죽 같은 도시락을 싸 와 식당에서 데워 먹는 모습은 사실 저희 식욕을 떨어뜨리거든요. 다들 안 그래도 일하느라 힘든데 밥 먹을 때도 이렇게 입맛이 떨어져서야 저희더러 어떻게 살라는 거죠?”주현도 안규리의 말을 거들었다. “서하 씨도 돈이 없어 보이지는 않던데요. 전에 한 대표님이 옷 선물을 하셨을 때도 제일 비싼 옷을 가져갔잖아요. 딱 봐도 그런 걸 처음 본 사람은 아니잖아요. 보자마자 제일 좋은 거로 가져갔는데.”“200만 원이 넘는 옷을 입는 사람이 식비 6만 원을 아낀다고요?”“그게 어떻게 같아요? 몇백만 원짜리 옷은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잖아요
한현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집을 나선 한현진은 강한서에게 황씨 아주머니의 월급 인상에 관해 상의했다. 강한서와 강민서가 집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주혁이 한현진을 데리러 도착했다. 별장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현진은 순간 길가에서 누군가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어쩐지 눈에 익은 인영이었다. 한현진이 탄 차가 그 사람과 가까워져서야 한현진은 그 사람이 은서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현진은 다급히 주혁에게 차를 세우라고 말하고는 차창을 내려 은서하를 불렀다. “서하 씨!”고개를 돌린 은서하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대표님이 여긴 어떻게...?”“저 이 근처에 살아요.”한현진이 물었다. “그러는 서하 씨는 여긴 어쩐 일이에요?”이 근처엔 별장을 제외하면 길가에 오가는 차가 전부였다. 사람의 그림자조차 흔하지 않은 길이었다. 은서하가 말했다. “집이 이 근처라서요.”한현진이 놀라며 말했다. “이 근처에 사신다고요?”은서하가 꿋꿋이 거짓말을 이어갔다. “네. 오늘 늦잠을 잤더니 택시가 안 잡혀서요.”한현진은 아무 말 없이 은서하를 살펴보더니 몇 초 후에야 입을 열었다. “일단 타요. 타서 얘기해요.”은서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종종 달려와 한현진 반대편의 문을 열고 차에 탔다. 은서하는 그제야 차에는 한현진과 운전기사뿐만 아니라 평범한 외모의 젊은 청년도 함께인 것을 발견했다. 한현진이 소개하며 말했다. “여긴 원율 씨. 제 개인 비서예요.”은서하가 원율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안전벨트를 했다. 그녀는 자신의 가방을 꼭 끌어안고 공손한 자세로 한현진 옆에 앉아 있었다. 차가 출발하자 한현진이 질문을 이어갔다. “여긴 회사와 거리도 있는데 평소 출퇴근 시간이 꽤 걸리지 않아요?”은서하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외할머니 치료 때문에 집을 팔았어요. 하지만 회사 근처엔 월세가 높아서 어쩔 수 없이 먼 곳으로 옮겼어요. 평소엔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어젯밤엔... 일이 조
한현진이 거울을 보며 옷을 정리했다. “이름이 뭐야?”“문채영.”“꽃부리 영?”강한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영리할 영.”“특이한 이름이네.”한현진이 멈칫했다. “너 전에 오빠가 맞선을 싫어한다고 하더니 그 여자를 못 잊어서 그런 거였어?”강한서가 말했다. “그런 것 같아.”“그럼 두 사람은 왜 안 만났던 건데?”강한서가 말했다. “자세한 건 네 오빠만 알 거야. 내가 알고 있는 건 고등학교 시절 누나 이모가 누나 아버지를 횡령, 뇌물수수 그리고 사생활이 문란한 문제를 신고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연루되어 누나 아버지는 형량을 꽤 많이 받았어. 누나 어머니도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시고 실성하신 분처럼 구셨어. 그렇게 문씨 가문은 나락으로 떨어진 거야. 그때 누나는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못했었어.”“우리 수능이 끝나자 누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해외로 갔어. 그리고 2년이 지난 후 결혼했지. 남편은 부자인 교포였어. 귀국해서 결혼식을 올린 거라 민준이도 일부러 M국에서 돌아왔어. 결혼식이 끝나고 누나는 남편과 함께 해외로 갔어. 그 후로 우리는 연락이 뜸해졌고. 그리고 2년 전, 누나가 이혼하고 나서야 다시 연락하기 시작한 거야.”한현진이 물었다. “넌 그 여자와 오빠를 이어주고 싶은 거야?”강한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나는 민준이를 만나고 싶어 해. 난 그저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주는 것뿐이야. 두 사람이 어떤 사이로 발전할지는 두 사람 일이지.”강한서가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 “어렸을 때 그 감정이 지금은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르지. 누나가 이혼 후 2년이 흘렀어. 만약 나라면 그리고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바로 전남편에게 꽃이라도 사 들고 찾아가 이혼을 축하해줄 거야. 그리고 바로 누나를 찾아갔겠지. 하지만 네 오빠는 그저 가만히 있었어. 이혼한 걸 몰랐을 리가 없어.”한현진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만약 너였다면 넌 출국하기도 전에 잡혔을 거야. 그리고 오빠는 너처럼 멍청하지 않아. 그렇게 창피한 일은
문자를 확인한 강한서는 몸을 일으키며 답장을 했다.[고마워요, 누나도 잘 지내죠?][응, 잘 지내지. 나 내일 귀국하는데 시간 되면 밥이나 먹자.][그래요.][네 와이프 송씨 집안에서 잃어버린 딸이라던데, 너랑 민준이는 형님 동생 하면서 지내는 거야? 어떻게 지낼만해?]송민준의 상황을 묻기 위해 연락했다는 걸 알아챈 강한서가 바로 답장을 보내주었다.[괜찮긴 한데 너무 동생 바보라서 나 별로 안 좋아해요. 누나도 송민준 못 본 지 오래됐죠? 내일 같이 나갈게요.][그래, 안 바쁘면 민준이 여자친구도 같이 불러.]강한서는 문채영이 떠보기 위해 하는 말인 걸 알았지만 모른 척 대꾸했다.[송민준 여자친구 없어요, 솔로에요.]그 말에 적잖이 놀란 건지 글자뿐인 문자에서도 문채영의 놀라움이 전해져왔다.[진짜?][누나도 송민준 성격 알잖아요. 얼마나 사람 짜증 나게 하는데, 그렇게 쓸데없는 말 많이 하는 사람이 여자친구를 사귈 리가 없잖아요.]그 말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입은 웃고 있는 이모티콘을 보내온 문채영은 곧바로 한마디 더 보탰다.[너도 와이프 데려와, 선물 준비했으니까.][네.]이튿날 아침, 강한서는 머리를 말리고 있는 한현진 곁으로 다가가 어젯밤 문채영과 했던 말을 전했다.“내가 아는 사람이야?”그 말에 강한서가 고개를 젓자 한현진은 또 물었다.“남자야 여자야?”“여자.”그 말에 한현진이 잠시 멈칫하자 강한서가 한마디 더 보탰다.“네 새언니가 될뻔한 여자야.”“우리 오빠 첫사랑?”깜짝 놀라며 묻는 한현진에 강한서는 웃으며 대답했다.“그렇다고 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 만난 건 아니고 그냥 송민준이 혼자 좋아했어. 그때 같이 다니던 애들은 다 알고 있었지. 그런데...”갑자기 말을 멈추는 강한서에 한현진은 다급히 그를 재촉했다.“왜 갑자기 여기서 말을 끊어, 그런데 뭐?”강한서는 그런 한현진의 볼을 귀엽다는 듯 쓰다듬으며 입꼬리를 올렸다.“나처럼 원하는 여자를 쟁취하진 못한 거지. 그런 쪽으론 영 능력이 없어.”“우
신미정은 결혼을 재촉했지만 할머니는 결혼은 평생을 같이할 사람을 찾는 거라고 마음에 들고 잘 맞는 사람과 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서두르지 않고 있었다.그래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결혼 상대를 물색하던 중 한현진의 강한서의 눈에 들게 된 것이다.교통사고까지 다 해서 고작 네 번 본 사이었고 말 한번 섞어본 적도 없어 그다지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보면 볼수록 한현진이 마음에 들었다.강한서도 마침 모르는 사람과 결혼해서 서로를 알아가는 게 시간 낭비 같았는데 한현진도 저런 늙은이한테 시집가는 건 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그리고 그날 교통사고도 실수이기는 하지만 한현진의 엄마가 간민혜를 차로 쳐서 죽인 건 맞기에 주강운이 갑자기 한현진한테 무슨 짓을 하기라도 할까 봐 신경 쓰이는 것도 있었다.어쨌든 주강운한테 고모가 간민혜를 만나려고 해서 그녀를 데리고 가다가 사고가 났다고 해명한 건 자신이었기에 강한서는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한현진을 데리고 있고 싶었다.그렇게 자신을 설득한 강한서는 이틀 뒤 바로 한현진에 연락해 그녀와 맞선자리를 가졌다.맞선자리에서 한현진은 강한서를 알아본 듯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기에 강한서도 굳이 그 일을 꺼내진 않았다.한현진은 이 맞선자리가 유상수가 꾸며낸 자리인 줄로만 알고 혹시라도 실수할까 싶어 말을 최대한 아끼고 있었지만 사실 유상수는 꿈만 꿀 뿐이지 그럴 능력이 못 되는 사람이었다.선 자리를 끝내고 본가로 돌아간 강한서는 바로 한현진의 자료를 건네주며 결혼 의사를 밝혔지만 유씨 집안을 조사해본 할머니는 바로 반대부터 했다.유씨 집안의 지위보다 아내가 아픈데도 들여다보지 않고 비서랑만 붙어있는 유상수의 사람 됨됨이가 별로라서 그의 딸도 비슷할 거라 생각해 거절한 걸 알아챈 강한서는 평소에는 그렇게 말을 아꼈으면서 이번에는 웬일로 한현진을 감싸기 시작했다.그녀가 친구를 도와 나서던 일과 그녀의 지금 상황까지 다 말한 강한서는 한현진이 아니면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한 뒤 집을 나섰다.그 말에 답답해
침대에서는 늘 신사다웠던 강한서였기에 한현진은 하면서도 아픈 적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다.그래서 당연히 실망은 하지 않았지만 그저 간간이 색다른 그의 모습을 바랐던 적은 있었다.사실 별로 감출 것도 없는 일이지만 갑자기 물어오는 강한서에 부끄러워진 한현진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며 말했다.“잠이나 자!”그에 웃음을 흘리던 강한서는 한현진을 이불과 함께 끌어와 제 품에 안더니 낮은 목소리로 놀리기 시작했다.“얘기마저 하고 자. 앞으로 어떻게 널 만족시켜야 하는지는 알려줘야지.”“현진아, 현진아.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해보라니까?”진짜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어떻게 하면 만족할지를 자세하게 말하라니, 한현진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었다.강한서는 그렇게 한현진을 한참 놀리다가 자리에 제대로 누우며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나 오늘 내가 부계정으로 올렸던 피드들 다시 봤는데 진짜 너무 유치하더라, 전에는 내가 그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너 원래 유치하잖아, 닉네임만 봐도 알리지 않아?”코웃음을 치며 말하는 한현진에 강한서가 웃어 보였다.“그 이름 내가 지은 거 아니야.”사실 그 계정은 일상을 공유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니라 사업에 필요해서 만든 거였다.그때 한성 그룹에서 개발 중인 신제품에 대해 말이 좀 많았었는데 영향력이 좀 있는 사람들까지 그간의 데이터들을 언급하며 한성에는 그 정도 기술이 없다고, 전부 허위 홍보일 뿐이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어서 그걸 반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계정이었다.그 신제품이 진짠지 가짠지 누구보다 잘 아는 강한서는 화가 나서 자신의 본 계정으로 반박문을 내려고 했지만 본 계정으로 낸 입장문이라면 큰 효과가 없을 거라던 한성우의 말에 설득당해 ‘다이아몬드 수저의 일상’이라는 계정이 생기게 된 것이었다.한성우의 말대로 부계정을 사용해 자신의 생각을 밝히니 사람들이 좀 더 쉽게 받아들였고 덕분에 팔로워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자신의 화려한 배경이 사라지니 허구한 날 걸고넘어지던 사람들도
한현진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딱딱하게 물었다.“말해 빨리, 나 잘 거니까.”“네가 싫다고 해도 내가 강제로 몰아붙이는 거 좋아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하다가 네가 진짜로 하기 싫어질 수도 있는 건데 그걸 내가 구별할 수 있을까? 네가 진짜 싫은 건지 아니면 그냥 하는 말인지 잘 몰라서 실수하면 어떡해?”“잘 나가다가 내가 갑자기 왜 화를 내겠어?”“지금도 갑자기 화내잖아, 아까는 막 나 유혹하더니. 아무 예고도 없이 화내는 게 한두 번이야?”그 말을 들은 한현진은 돌아누워 강한서와 눈을 맞추며 따지기 시작했다.“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이유도 없이 자꾸 화만 낸다 그거야?”“아니, 그런 게 아니라 네가 진짜 하기 싫은 건데 내가 그걸 못 알아보고 계속하다가 너 다치게 할까 봐 그러지.”“진짜 싫으면 내가 너 물 거니까 그딴 걱정 할 필요 없어.”그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강한서는 언제 풀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자유로워진 손으로 한현진의 손목을 잡으며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한현진이 그걸 왜 혼자 풀어냈냐고 따지기도 전에 혀를 입속으로 밀어 넣으며 치열을 고르게 훑고 지나가는 강한서에 한현진의 몸은 빠르게 나른해졌다.강한서가 입을 뗐을 때 한현진의 얼굴과 입술은 이미 빨개져 있었고 그녀는 가만히 누운 채 숨만 내뱉으며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한현진 위에 올라타 있었던 강한서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바라보더니 득의양양하게 말했다.“안 깨물었네.”한현진이 그 말의 뜻의 완전히 깨닫기도 전에 강한서는 또다시 입을 맞춰왔다.시간을 얼추 계산해보니 3달은 넘은 것 같아 사실상 관계를 한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었기에 한현진은 쥐고 있던 강한서의 머리채를 놓아주고 몸에 힘을 뺐다.그렇게 키스를 이어나가던 강한서는 한참 만에 한현진을 놓아주더니 그대로 이불을 덮어주고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자자 이제.”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천장만 바라보던 한현진은 문득 인터넷에서 봤던 피드가 하나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