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한번 더 재촉했어요. 이미 시작했고, 이틀이면 된다고 했으니, 우리가 A시를 떠나기 전 완성할 수 있을 거예요."대표님은 한밤중에 자지 않고 저걸 고민하고 있었어?민경하는 요즘 들어 사랑에 빠진 보스의 모습이 왠지 낯설었다. 사모님이 고가교에서 교통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안 후로부터 대표님은 사모님을 각별히 신경 썼다. 강한서의 옆에서 다년 간 일해온 민경하는 강한서가 얼마나 감정에 느리고 차가운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을 키워준 신미정에게도 그렇게 큰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사모님과 관련된 일이라면, 지나가는 말 한마디라도 마음 속에 새겨넣었다. 예를 들면 육 억짜리 가방, 파티에서 잃어버린 귀걸이, 그리고 지금의 졸부 목걸이.대표님은 돈에 있어 사모님에게 지나치게 너그러웠다. 그는 말보다는 행동파였다. 하지만 사모님은 하필이면 감언이설에 약한 분이셨다. 한마디로 솜사탕같이 달콤하고 부드러운 사랑을 꿈꿨던 여인이 일밖에 모르는 오만하면서도 무뚝뚝한 남자를 만난 격이었다.생각해보면 참 재밌는 커플이었다. 두 사람 모두 외모가 워낙 클래스가 남다르다 보니 눈에 띄지 않는 게 더 어려웠다. 이튿날 아침, 유현진은 조씨 아주머니가 병원 부근에서 포장해온 음식으로 간단히 요기했다. 여덟 시 경에 의사가 회진을 왔다. 하현주의 체온은 여전히 높아지는 추세였다. 야간에 37.3도까지 내려갔던 체온이 다시 37.8도로 올라갔다. 의사는 반 시간에 한 번씩 체온을 측정하고, 계속하여 물리적인 수단으로 열을 내려보고, 점심 때까지 체온이 내려가지 않으면 약을 사용할 거라고 하였다. 유현진은 감사를 표하고 다시 분주해졌다. 열 내리기가 어젯밤보다도 어려웠다. 점심 때가 되니 38.1도까지 올라갔다. 유현진은 급하게 의사를 불렀다. 의사는 검사를 마치고 나서 하현주에게 해열제를 주입했다. 그리고는 계속하여 관찰하라고 당부했다. 유현진은 열이 나서 얼굴이 빨갛게 된 하현주의 얼굴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하현주는 엄
카드를 긁자 설비에서 알람이 울렸다. "이 카드도 동결됐어요."안색이 바뀐 유현진은 입술을 깨물면서 다른 카드를 건넸다. "이것도 동결됐네요."세 번째, 네 번째......마지막 카드까지 모두 동결 상태라는 소식을 전해듣자 유현진의 안색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그녀의 명의로 된 카드 모두 동결됐다. 강한서가 한 짓일까?아니다. 강한서가 그런 거라면 자신의 서브 카드만 동결하지, 자신의 카드를 동결할 리 없다. 그럼 누가 한 짓인가? 누가 타인의 명의로 된 카드까지 동결할 능력이 된단 말인가?머릿속으로 가능한 대상을 훑어본 그는 속으로 신미정을 지목했다."얼른 결제해요."뒤에서 줄을 서 있던 환자 가족들이 다시 한번 재촉했다. 유현진은 사과를 하고, 물건을 챙겨 자리를 냈다. 그녀는 급히 몇몇 은행에 전화로 문의했다. 그런데 하나같이 얼버무리면서 그저 누군가가 관련 자료를 제출하여 재산을 동결했고, 구체적으로 누군지는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알려줄 수 없다는 걸 보니 신미정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그는 주먹을 꾹 쥐더니 신미정의 번호를 눌렀다. 상대방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신미정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현진은 화를 억누르고 낮은 소리로 신미정을 불렀다. "어머님, 저예요."신미정이 아무런 감정 없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유현진이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 "저 방금 전에 병원비를 결제하려는데, 수납에서 제 카드가 동결됐다고 하더라고요.""그래."신미정은 담담하게 한마디 뱉더니 바로 인정했다."내가 그런 거야."유현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그러신 거예요?"신미정은 가볍게 웃더니 답했다. "한서가 출장갔다 돌아오면 어차피 너희 둘 이혼할 거잖아. 한서가 없는 틈을 타서 네가 재산 이전이라도 하면 어떡해. 내가 경각심을 가졌으니 망정이지 가만히 뒀다가는 큰일 날 뻔했잖아. 한서가 출장간지 얼마 됐다고 벌써부터 너의 엄마한테로 돈을 돌리려고 해? 너 우리 집안이 자선가라도 되는 줄
순간 유현진은 얼굴이 백지장이 되었다. 휴대폰을 들고 있던 손과 목소리는 떨고 있었지만 애써 차분하게 말했다."제가 금방 올라갈 테니 우선 의사 선생님을 불러줘요."하현주는 혈압이 갑자기 빠르게 내려가고, 심박수도 느려졌으며, 동공도 약간 확산 증상을 보였다. 엄청 안 좋은 조짐이었다. 의사는 검사하고 나서 약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하현주의 팔 혈관은 아주 뚜렷했다. 혈관벽이 한데 붙어서 간호사가 침을 몇 번이나 찔렀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하현주의 팔에 남은 침 자국들을 보자 유현진은 마음이 아파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현주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간호사가 와서 유현진에게 사인을 요구했다. 펜을 쥔 유현진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사인하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 수간호사는 사인을 마친 동의서를 건네받으면서 말했다."얼른 가서 병원비를 결제하세요. 1층에서 또 전화가 왔어요. 이러면 우리만 곤란해져요.""알겠어요. 우리 엄마 부탁해요."유현진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유현진은 대기실을 나오자마자 차미주에게 전화를 했다. 차미주는 어젯밤에 촬영팀을 따라다니느라 밤을 샜고, 아침 일곱 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유현진의 전화를 받을 때에는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가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전화를 받자 유현진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미주야, 너한테 지금 돈이 얼마나 있어? 나한테 육천 정도 빌려줄 수 있어?"차미주는 갑자기 이해가 안됐다. 유현진한테 육천이 없을 리가 없는데, 갑자기 왜 자신한테 돈을 빌리려고 하는지. 게다가 목소리도 이상했다. "무슨 일인데? 너 돈을 빌려서 뭐할려고?"차미주는 묻고 나서 이내 설명을 덧붙였다. "다른 뜻은 없고, 그저 물어보는 거야. 나 얼마 전에 저작권료를 받은 거 있는데 정기예금을 해놔서, 지금 이천 정도 끌어 모을 수 있어, 대체 무슨 일이야?""울 엄마가 지금 위독하셔. 그런데 카드를 사용할 수 없어......"유현진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유현진이 통곡하는 목
차미주는 엄마가 언제 이렇게 배포가 컸냐는 감탄을 할 틈도 없이 돈을 가지고 서둘러 병원으로 직행했다. 유현진은 차미주의 전화를 받고 병원 입구에서 기다렸다. 차미주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유현진의 가냘픈 체구가 시야에 들어왔다. 두 눈은 출혈됐고, 입술에도 핏기가 없었다. 평소에 에너지 충만하던 모습은 거의 사라지고 창백해서 투명해 보이기까지 했다. 인사말을 건넬 틈도 없이 차미주는 유현진의 팔을 잡고 가면서 말했다. "돈을 가져왔으니 우선 가서 병원비를 결제해."돈을 계좌에 입금하고 나서 유현진은 차미주를 데리고 윗층으로 올라갔다. 가는 내내 유현진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전화 속에서 대성통곡을 하면서 모든 나약함을 다 쏟아내어 껍데기만 남아있는 것 같았다. 대기실.차미주는 유현진에게 물을 건네면서 물었다. "어머님 들어가신 지 얼마나 됐어?"유현진은 물을 건네받으면서 잠긴 목소리로 답했다. "사오십 분 됐을 거야.""어머님 괜찮을 거야."차미주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물었다. "강한서는?"유현진의 눈빛이 더 어두워졌다. "출장 갔어."차미주는 화가 치밀었다."출장은 뭔 놈의 출장! 매번 필요한 순간에는 항상 없더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식!"유현진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차미주는 그제야 방금 전 유현진과의 대화 내용이 떠올랐다."너 전화에서 카드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했잖아. 어떻게 된 거야?"유현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한참 지나서 답했다. "한서 씨 어머니가 나한테 있는 모든 카드를 동결 신청해서 은행 카드로 결제가 안돼.""왜?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냐? 뭔 자격으로 그걸 동결해?""나랑 한서 씨가 이혼할 거라는 걸 알고 내가 재산 이전이라도 할까 봐 미리 손 쓴 거지."차미주는 어이가 없어서 한참 동안이나 아무 말도 못했다. "일부러 그런 거 아냐? 하필이면 너희 집에 일이 생길 때 이러는 걸 보면. 게다가 강한서가 없는 틈을 타서. 혹시 강한서가 이혼 못할까 봐 그러는 거 아냐?"유현진은
몇 분 후, 유현진이 돌아왔다. 차미주는 간호사가 무슨 말을 했는지 감히 묻지 못했다. 그저 어머님이 위독한 상황을 잘 넘기기를 바랄 뿐이었다. 지금 이 시기에 어머님까지 뭔 일이라도 있으면 유현진은 무너질 것이다.사실 어머님이 깨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집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법이다. 하루라도 숨을 쉬는 한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을 것이다. 부모님이 계시면 돌아갈 곳이 있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영원히 돌아가는 길에 머물 뿐, 돌아갈 곳이 없게 되는 게 사람의 인생이다. 그 누구도 딸로서 어머니에 대한 유현진의 집념을 비난할 수 없었다. 주강운은 차미주가 전화를 끊어서 십 분 정도 지나서 도착했다. 그는 황급히 대기실로 달려왔다. 그 순간 만큼 차미주는 눈앞의 이 남자가 강한서보다는 훨씬 믿음직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있다고 하니 바로 달려오는 남자!"현진 씨, 어머님 어때요?"주강운은 숨이 찬 목소리였다. 아마 차에서 내리자마자 달려서 온 모양이었다. 유현진은 눈앞의 주강운이 나타난 걸 보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자 차미주가 설명했다. "너 방금 전에 사인하러 갔을 때, 벤틀리, 그러니까 강운 씨가 너에게 전화 와서 할 말이 있다고 해서, 내가 어머님이 지금 수술 중이라고 했지. 그러자 이렇게 오셨어."유현진은 안색이 조금 나아졌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수술 중이에요. 상태는 몰라요."하현주는 폐에 감염 증상이 생겨, 방금 전에 간호사가 유현진더라 사인하라고 한 것은 바로 수술 동의서였다. 최소침습술이긴 하나 하현주에게는 엄청 위험한 수술이었다. 간호사는 사인하기 전, 유현진에게 사전 설명을 했다. 하현주같은 경우에는 수술을 할 필요가 없었다. 수술을 해서 살아난다 하더라도 남은 시간이 얼마되지 않기에 돈도 사람도 남기지 못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현진은 포기하겠다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하현주가 자신의 눈앞에서 숨을 멎는
주강운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들어가 봐요."유현진은 주먹을 꽉 쥐고 낮은 소리로 답했다. "저 괜찮아요."그러고는 수술실 방향으로 걸어갔다. 하현주는 얼굴에 산소 마스크를 착용한 채 조용히 수술대 위에 누워있었다. 마스크에는 호흡으로 인한 콧김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옆에 놓인 기기 모니터에 표시된 수치도 최저치를 찍고 있었다. 하현주는 마르다 못해 수술대에 녹아든 것만 같았다. 이 모든 정황은 하나를 설명했다.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이 생명이 곧 생을 마감할 것이라는 것을.유현진은 하현주의 손을 잡았다. 하현주는 펜으로 기록하는 습관이 있어 중지에 굳은살이 박혔다. 그는 건강했을 때 마른 체형이 아니었다. 손가락도 약간 통통했는데, 지금은 뼈만 남아 있었다. 손등에도 침 자국과 볼록 튀어나온 혈관 밖에 안 보였다. 유현진의 기억 속의 모습과 전혀 매칭되지 않았다. 교통사고가 있고 나서 지금까지 6년 8개월 동안, 하현주의 새카맣던 머리는 어느새 새하얀 머리로 바뀌었다. 외모에 유난히 신경을 썼던 하현주는 깨어나서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보기 싫었던 모양이었다. 유현진은 허리를 굽혀 하현주의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이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던 차미주는 울먹이면서 유현진에게 말했다. "현진아, 어머님 보내드려."유현진은 순간 손이 떨렸다. "응."그는 짧게 답하고는 직접 하현주의 산소 마스크를 벗겼다. 기기 모니터의 숫자가 천천히 0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기기음이 길게 울렸다. 간호사가 앞으로 다가오면서 말했다. "고인의 명복을 빌어요."그러면서 흰천을 천친히 올려 하현주의 머리까지 덮었다. 그러고 나서 병원 영안실에 자리가 부족하여 유현진더러 최대한 빨리 절차를 밟아 시신을 이전하라고 하고는 시신을 끌고 나갔다. 유현진은 통곡은 커녕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그는 의료진을 향해 감사를 표하고, 간병인에게 급여를 지급하고는 하현주의 병실에 가서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유현진은 지나치게 차분했다. 하현주는
유현진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당황한 차미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현진아! 현진아! 일어나 봐. 날 놀래지 말고."이때 주강운도 안색이 변하더니 급하게 다가와 허리를 굽혀 유현진의 상반신을 손으로 받쳐주었다. 유현진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했고, 눈밑이 시퍼렇게 되었으며, 입술에는 핏기 하나 없었다. 주강운은 유현진의 인중을 누르면서 옆에 있는 차미주에게 말했다. "가서 의사 선생님 불러요.""맞아. 의사 선생님."차미주는 비로소 정신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 밖으로 달려가면서 불렀다. "의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 사람 살려요!"주강운은 눈썹을 한껏 찌푸린 채 유현진의 인중을 한참이나 눌렀지만 반응이 없자, 사람을 안고 일어섰다. 차미주의 안내 하에 간호사들이 이내 침대를 밀고 왔다. 주강운은 유현진을 침대 위에 눕히고, 차미주와 함께 의료진들의 뒤를 따라갔다. 차미주는 급한 나머지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십 분 후, 의사가 안에서 나왔다. 의사는 유현진이 최근 며칠 잘 쉬지 못한 데다가 신경도 고도로 예민한 상태였고, 빈혈 증상도 있어서 갑자기 닥쳐온 타격으로 쓰러졌다고 했다. 그리고 나이가 이렇게 어린데 이유 없이 쓰러지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걸 설명하니, 전반적으로 검사하기를 제안했다. 같은 시각 A시.수술실 등이 꺼지자 강한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료진이 침대를 끌고 나왔다. 아직 전신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송민영이었다. 강한서는 송민영을 바로 지나서 뒤에서 나오는 침대로 걸어갔다. 깊이 잠든 은서는 새하얀 얼굴에, 손에는 강한서의 차에서 가진 사탕을 꼭 쥐고 있었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은서가 수수실로 들어갈 때 까지도 현진 이모를 만나기로 했다고 중얼거리다가 마취를 해서 의식은 잃었지만, 손에 넣은 사탕을 어떻게 해도 놓지 않았다고 했다. 강한서는 은서의 손을 풀어서 사탕을 꺼냈다. 그 사탕은 유현진, 그리고 주강운과 함께 식사했을 때, 유현진이 차에서 그에게 건넨 박
병실에 들어온 뒤, 강한서는 은서를 침대에 눕히더니 갑자기 민경하에게 말했다."모레 이후의 티켓으로 끊어요."민경하는 경악했다."대표님, 적어도 3일은 지나야 해요.""나 혼자 갈게요. 민 실장은 은서가 위험한 고비를 넘기면 여기에 사람 붙이고 다시 오는 거로 해요."요 며칠 동안 그는 잠을 설쳤다. 마음을 한주시에 두고 온 듯 그는 왠지 불안했다.강한서는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한주시.전신 검사를 해야 한다는 말에 차미주는 분주히 절차를 밟느라 바빴다. 다행히 주강운의 도움으로 혈액 검사를 제외한 기타 검사는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 유현진은 일반 병실로 옮겨진 뒤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안색은 많이 좋아졌다.모든 것이 마무리되었을 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다.아무래도 유현진은 유부녀다 보니 주강운이 밤늦게까지 있기에는 뭔가 적절하지 않았다. 차미주는 웃으며 말했다."주 변호사님. 먼저 들어가세요. 제가 있을게요."주강운도 같은 생각인지라 먼저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그는 차미주에게 만약 유현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바로 연락을 달라고 말한 뒤 병원을 나섰다.차미주는 유현진의 병상 옆에서 새벽 세 시까지 지키다가 소르르 잠이 들었다.다음 날 아침, 간호사가 와서 혈액을 채취했다.유현진은 오전 9시가 넘어서 깨어났다.그녀는 천천히 머리를 돌려 주위를 보았다. 차미주의 외투가 보였다. 아마 씻으러 갔거나 아침을 사러 갔을 것이다.유현진은 몸을 일으켜 앉아 한참 멍때리더니 화장실로 향했다.바로 이때, 간호사는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면서 의사한테 가보라고 했다.유현진은 바로 의사에게 찾아갔다.50대 좌우의 여의사는 말투가 아주 부드러웠다.의사는 결과지를 뒤적이더니 물었다."결혼하셨어요?"유현진은 머리를 끄덕였다."아이는 낳으셨고요?"유현진은 머리를 저었다.의사는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을 얘기하지 않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혹시 전에 복부 충격으로 자궁을 다친 적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