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서의 눈이 반짝였다."진짜요?"민경하도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강 대표님은 거짓말을 안 한단다."하지만 은서는 눈을 뒤집으며 입을 열었다."매번 보러올때마다 유 이모한테서 전화가 오면 항상 회사라고 거짓말하던데요?"민경하는 이에 할 말을 잃었다.(계집애, 속이기 쉽지 않네.)"저를 계속 숨기는 이유가 뭐예요? 누가보면 사생녀인줄 알겠어요."강한서는 은서를 힐끔 쳐다보더니 답했다."내가 이렇게 못 생긴 애를 낳을리가 없지."이에 은서도 할 말을 잃었다.간호사는 이 말을 듣고 웃음을 참을수가 없었다.이렇게 웃긴 부녀지간은 처음 봤었기 때문이였다."강 선생님, 이 팔찌를 잘 보관하세요. 최근에 병원에서 사람들 통제를 하고 있어서 이 팔찌를 끼고 있으면 경비의 통제를 받지 않을수 있을겁니다."강한서는 팔찌를 건네받은뒤 한마디 강조했다."저희는 부녀지간이 아닙니다.""네?"은서도 한 마디 거들었다."저희 아빠는 저렇게 저를 막 대하지 않으세요."이에 간호사도 할 말을 잃은듯 했다.아버지와 딸도 아닌데 입원할때 보호자명단에는 분명히 강한서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다.그리고는 두사람을 번갈아 살펴보더니 확실히 서로 닮은 구석도 없었다.하지만 성격하나는 엄청나게 비슷했다.하지만 간호사는 더 이상 묻지 않았고 대신에 이따가 해야될 검사에 대해서 설명한후 등기를 완료하고 떠났다.은서는 침대위에서 뒹굴기 시작했다. 뒹굴면서 한 편으론 한숨을 팍팍 내쉬었다. 강한서는 원래 아이패드로 메일을 검토하려고 했으나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다."개한테라도 물린거야?"은서는 그를 힐끔 쳐다봤다."저를 달래주면 어디 덧나요?"이에 강한서는"저번에 달랠땐 자기를 어린 애 취급하지 말라더니?"은서는 말문이 막혔다.은서는 침대위를 뒹굴다가 갑자기 질문을 날렸다."이 수술만 끝나면 이모를 만날수 있는거예요?"강한서는 답했다."네 표현 보고."은서는 벌떡 일어서며"강 삼촌, 저 다 나으면 이모 만나게 해줘요, 전에 같은 병실에 있었던 할머니
그녀는 어려보이는 의상을 입고 있었고 포니테일을 하고 있었다, 보기엔 스물살좌우 돼보였다.강한서는 물었다."의사 선생님은 뭐라 하셨지?""의사 선생님은 밥 다 먹은후에 한 번 더 측정하러 오겠다고 했어요. 내일 아침 공복 혈당이 어떤지 한 번 봐야겠다고 했어요."여자애는 숨을 고른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뭔가 사람이 힘이 없어 보였어요."강한서는 원래 그냥 돌려보낼려고 했으나 2일후의 수술을 다시 생각하더니 눈썹을 찡그리며 일어섰다."갑시다, 상태를 한 번 보죠."강한서가 떠나자마자 은서는 입을 삐죽 내밀면서 말했다."또 수작부리네, 맨날 머리가 아프지 않으면 열이 난다고 하지."이에 민경하는 작게 웃으며"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니?"은서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저도 인터넷 하거든요? 저 여자 팬들이 도대체 어떤 부분이 좋아서 팬이 된걸까요? 저렇게나 위선적인데.""저 사람은 네 목숨을 살릴수 있는 사람인데, 왜 그렇게 싫어하는거야?""그건 강 삼촌이 돈이 엄청 많기 떄문이잖아요, 돈을 안 줬더라면 절 구하려고 했을까요?"그들은 은서가 아직 세상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라 이런 일을 직접적으로 알려주진 않았었다.그 여자가 매번마다 삼촌이 불러서 헌혈을 할때, 계속 삼촌한테 보상을 요구해왔었다.한 번은 대본을 요구했고 한 번은 광고를 요구했고 다른 날은 차, 가방 같은걸 요구했었다.아무튼 한 번을 그냥 돌아가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녀는 강한서가 있을땐 은서한테 살갑게 대했고 없을땐 관심도 없는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비록 애들은 욕심에는 끝이 없다는 말을 모르겠지만 흐릿하게나마 송민영의 행동에서 불쾌함을 느낀게 분명했다.민경하는 웃기만 하고 말을 잇진 않았다.어린 아이들은 의외로 어른을 잘 파악하는 경향이 있었다.송민영의 관심이 진심인지 가짠지는 한 눈에 보아낼수 있었다.하지만 이번엔 그저 순조롭길 바랄뿐이였다.- - - -카운터에 도착한 유현진은 계좌를 확인했다, 이어서 하현주의 계좌엔 이미 돈이 없었
유현진의 얼굴은 험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유상수도 같은 생각이야?"백혜주는 이에 웃음을 지었다."내 뜻이 곧 그이의 뜻이지 않겠어? 아니면 왜 나한테 핸드폰을 빌려줬겠어?""그래, 네 아버지는 마음이 약해서 너랑 화해하고 싶어하시지, 그리고 하현주 의료 비용도 계속 부담하길 원하시고 근데 그 조건은 네 수중에 있는 모든 증거들을 넘기는거고 다시는 이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거야.""네 손안에 있는 증거들이 유용한지를 떠나서 쓸모 있다고 해도 자신의 손으로 지 애비를 감방에 처넣는 며느리를 강씨 가문에서 온전히 받아들일까?""정신 차려, 몇년이 지난 일이고 너희 부모는 이혼까지 했는데 지금와서 추궁하는게 뭔 의미가 있는데? 내가 딱 말할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여기서 그만두면 예전에 했던 짓을 모두 눈감아 줄테니 서로 윈윈 아니야?"그녀의 말투는 설이 되여 본가에 친척이 방문할때 제일 싫어하는 사람의 말투와 똑같았다. 말 매 한마디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오만이 느껴졌었다. 하지만 그녀는 말투보다 내뱉은 말이 더욱 역겹다고 생갃했다.유현진은 이를 악물며 화를 내며 꾸짖었다."꿈깨!""그럼 어쩔수 없지, 네 엄마 병원비는 이제부터 네가 알아서 해, 강씨 가문 사모님이나 되는데 그깟 돈은 아깝지 않겠지."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쪽에서 전화를 끊었다.주강운은 봉투를 들고 병원 로비에서 유현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현진이 표정이 별로 좋지 않은걸 발견하고는 앞으로 걸어가서 물었다."다 처리했어요?"유현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문을 열었다."주 변호사님, 유상수가 저의 엄마 병원비를 끊었어요, 아마도 이혼했다는 정보는 사실일거예요. 그 사람은 이미 다른 사람이랑 가정을 꾸린것 같아요. 그래서 이혼으로는 소송을 못 걸것 같은데...... 제가 엄마를 대신해서 법원에서 재산분할건으로 소송을 걸거예요."주강운은 눈썹이 찌푸려졌다."먼저 진정해요, 이럴때일수록 침착해야 해요. 제가 일단 아는 사람한테 물어볼게요, 분할이라해도
전화는 꽤 오랫동안 울렸지만 받는 사람은 없었다.그는 전화를 끊고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 저편에서 들려오는건 차디찬 기계음밖에 없었다."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되며, 통화료가 부과 됩니다......"유현진은 전화를 끊은후 핸드폰을 멀리 던져버린후 의자에 기대앉아서 손으로 눈을 가렸다.(강한서, 너는 왜 매 번마다, 내가 널 제일 필요로 할때만 곁에 없는거야......)A도시.강한서는 말로 표현할수 없는 꿈에 놀라 깨어났다. 그는 눈을 뜨고는 머리위 천장을 바라봤다. 옆에는 의자에 기대서 자고있는 민경하의 숨소리가 들려왔다.그는 잠에서 깨어난후 시간이 지나서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달았다.방금 그는 두 달전 한주시 북쪽에 있는 다리에서 연쇄추돌사고를 꿈꾸고 있었다.그는 유현진이 다리 위에서 차를 운전하고 있는걸 보고있었다. 앞 뒤는 모두 차에 가로막혀 있었고 신호등이 바뀌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한 대의 화물을 가득 실은 트럭이 통제를 잃은듯 그 차들을 향해 돌진을 해왔다.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 그 차들을 향해서.어떤 차는 가드레일을 들이밖고 다리밖으로 떨어졌으며 더 많은건 폐차가 된것마냥 찌그러진 차였다. 한 순간의 사고로 주위는 아비규환이였다.그는 유현진이 아직 뒤집어진 차에서 나오지 못한걸 발견했다. 그녀는 창문을 사이두고 피범벅이 된채로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그가 황급히 달려가려던 찰나 갑자기 차가 폭발했다. 맹렬한 불길은 삽시간에 유현진을 삼켰다,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걸 느끼는 동시에 꿈에서 깼다.(다행히도 꿈이네.)강한서는 태양혈을 문지르며 방금의 사고가 분명히 자신이 그곳에 간 적이 없었지만 생생하게 느껴진것에 의문을 품었다.차가 터지는 그 순간, 그는 온 몸에 식은땀이 흘렀다.강한서는 핸드폰을 꺼냈다.비행기를 타기전 그는 이미 전화 카드를 바꾸어 꼈었다.그래서 카톡은 재로그인 해달라는 소식이 계속 뜨고있었다.그는 로그인 할까말까 고민을 하는 도중
"낮에 한번 더 재촉했어요. 이미 시작했고, 이틀이면 된다고 했으니, 우리가 A시를 떠나기 전 완성할 수 있을 거예요."대표님은 한밤중에 자지 않고 저걸 고민하고 있었어?민경하는 요즘 들어 사랑에 빠진 보스의 모습이 왠지 낯설었다. 사모님이 고가교에서 교통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안 후로부터 대표님은 사모님을 각별히 신경 썼다. 강한서의 옆에서 다년 간 일해온 민경하는 강한서가 얼마나 감정에 느리고 차가운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을 키워준 신미정에게도 그렇게 큰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사모님과 관련된 일이라면, 지나가는 말 한마디라도 마음 속에 새겨넣었다. 예를 들면 육 억짜리 가방, 파티에서 잃어버린 귀걸이, 그리고 지금의 졸부 목걸이.대표님은 돈에 있어 사모님에게 지나치게 너그러웠다. 그는 말보다는 행동파였다. 하지만 사모님은 하필이면 감언이설에 약한 분이셨다. 한마디로 솜사탕같이 달콤하고 부드러운 사랑을 꿈꿨던 여인이 일밖에 모르는 오만하면서도 무뚝뚝한 남자를 만난 격이었다.생각해보면 참 재밌는 커플이었다. 두 사람 모두 외모가 워낙 클래스가 남다르다 보니 눈에 띄지 않는 게 더 어려웠다. 이튿날 아침, 유현진은 조씨 아주머니가 병원 부근에서 포장해온 음식으로 간단히 요기했다. 여덟 시 경에 의사가 회진을 왔다. 하현주의 체온은 여전히 높아지는 추세였다. 야간에 37.3도까지 내려갔던 체온이 다시 37.8도로 올라갔다. 의사는 반 시간에 한 번씩 체온을 측정하고, 계속하여 물리적인 수단으로 열을 내려보고, 점심 때까지 체온이 내려가지 않으면 약을 사용할 거라고 하였다. 유현진은 감사를 표하고 다시 분주해졌다. 열 내리기가 어젯밤보다도 어려웠다. 점심 때가 되니 38.1도까지 올라갔다. 유현진은 급하게 의사를 불렀다. 의사는 검사를 마치고 나서 하현주에게 해열제를 주입했다. 그리고는 계속하여 관찰하라고 당부했다. 유현진은 열이 나서 얼굴이 빨갛게 된 하현주의 얼굴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하현주는 엄
카드를 긁자 설비에서 알람이 울렸다. "이 카드도 동결됐어요."안색이 바뀐 유현진은 입술을 깨물면서 다른 카드를 건넸다. "이것도 동결됐네요."세 번째, 네 번째......마지막 카드까지 모두 동결 상태라는 소식을 전해듣자 유현진의 안색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그녀의 명의로 된 카드 모두 동결됐다. 강한서가 한 짓일까?아니다. 강한서가 그런 거라면 자신의 서브 카드만 동결하지, 자신의 카드를 동결할 리 없다. 그럼 누가 한 짓인가? 누가 타인의 명의로 된 카드까지 동결할 능력이 된단 말인가?머릿속으로 가능한 대상을 훑어본 그는 속으로 신미정을 지목했다."얼른 결제해요."뒤에서 줄을 서 있던 환자 가족들이 다시 한번 재촉했다. 유현진은 사과를 하고, 물건을 챙겨 자리를 냈다. 그녀는 급히 몇몇 은행에 전화로 문의했다. 그런데 하나같이 얼버무리면서 그저 누군가가 관련 자료를 제출하여 재산을 동결했고, 구체적으로 누군지는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알려줄 수 없다는 걸 보니 신미정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그는 주먹을 꾹 쥐더니 신미정의 번호를 눌렀다. 상대방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신미정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현진은 화를 억누르고 낮은 소리로 신미정을 불렀다. "어머님, 저예요."신미정이 아무런 감정 없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유현진이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 "저 방금 전에 병원비를 결제하려는데, 수납에서 제 카드가 동결됐다고 하더라고요.""그래."신미정은 담담하게 한마디 뱉더니 바로 인정했다."내가 그런 거야."유현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그러신 거예요?"신미정은 가볍게 웃더니 답했다. "한서가 출장갔다 돌아오면 어차피 너희 둘 이혼할 거잖아. 한서가 없는 틈을 타서 네가 재산 이전이라도 하면 어떡해. 내가 경각심을 가졌으니 망정이지 가만히 뒀다가는 큰일 날 뻔했잖아. 한서가 출장간지 얼마 됐다고 벌써부터 너의 엄마한테로 돈을 돌리려고 해? 너 우리 집안이 자선가라도 되는 줄
순간 유현진은 얼굴이 백지장이 되었다. 휴대폰을 들고 있던 손과 목소리는 떨고 있었지만 애써 차분하게 말했다."제가 금방 올라갈 테니 우선 의사 선생님을 불러줘요."하현주는 혈압이 갑자기 빠르게 내려가고, 심박수도 느려졌으며, 동공도 약간 확산 증상을 보였다. 엄청 안 좋은 조짐이었다. 의사는 검사하고 나서 약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하현주의 팔 혈관은 아주 뚜렷했다. 혈관벽이 한데 붙어서 간호사가 침을 몇 번이나 찔렀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하현주의 팔에 남은 침 자국들을 보자 유현진은 마음이 아파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현주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간호사가 와서 유현진에게 사인을 요구했다. 펜을 쥔 유현진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사인하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 수간호사는 사인을 마친 동의서를 건네받으면서 말했다."얼른 가서 병원비를 결제하세요. 1층에서 또 전화가 왔어요. 이러면 우리만 곤란해져요.""알겠어요. 우리 엄마 부탁해요."유현진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유현진은 대기실을 나오자마자 차미주에게 전화를 했다. 차미주는 어젯밤에 촬영팀을 따라다니느라 밤을 샜고, 아침 일곱 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유현진의 전화를 받을 때에는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가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전화를 받자 유현진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미주야, 너한테 지금 돈이 얼마나 있어? 나한테 육천 정도 빌려줄 수 있어?"차미주는 갑자기 이해가 안됐다. 유현진한테 육천이 없을 리가 없는데, 갑자기 왜 자신한테 돈을 빌리려고 하는지. 게다가 목소리도 이상했다. "무슨 일인데? 너 돈을 빌려서 뭐할려고?"차미주는 묻고 나서 이내 설명을 덧붙였다. "다른 뜻은 없고, 그저 물어보는 거야. 나 얼마 전에 저작권료를 받은 거 있는데 정기예금을 해놔서, 지금 이천 정도 끌어 모을 수 있어, 대체 무슨 일이야?""울 엄마가 지금 위독하셔. 그런데 카드를 사용할 수 없어......"유현진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유현진이 통곡하는 목
차미주는 엄마가 언제 이렇게 배포가 컸냐는 감탄을 할 틈도 없이 돈을 가지고 서둘러 병원으로 직행했다. 유현진은 차미주의 전화를 받고 병원 입구에서 기다렸다. 차미주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유현진의 가냘픈 체구가 시야에 들어왔다. 두 눈은 출혈됐고, 입술에도 핏기가 없었다. 평소에 에너지 충만하던 모습은 거의 사라지고 창백해서 투명해 보이기까지 했다. 인사말을 건넬 틈도 없이 차미주는 유현진의 팔을 잡고 가면서 말했다. "돈을 가져왔으니 우선 가서 병원비를 결제해."돈을 계좌에 입금하고 나서 유현진은 차미주를 데리고 윗층으로 올라갔다. 가는 내내 유현진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전화 속에서 대성통곡을 하면서 모든 나약함을 다 쏟아내어 껍데기만 남아있는 것 같았다. 대기실.차미주는 유현진에게 물을 건네면서 물었다. "어머님 들어가신 지 얼마나 됐어?"유현진은 물을 건네받으면서 잠긴 목소리로 답했다. "사오십 분 됐을 거야.""어머님 괜찮을 거야."차미주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물었다. "강한서는?"유현진의 눈빛이 더 어두워졌다. "출장 갔어."차미주는 화가 치밀었다."출장은 뭔 놈의 출장! 매번 필요한 순간에는 항상 없더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식!"유현진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차미주는 그제야 방금 전 유현진과의 대화 내용이 떠올랐다."너 전화에서 카드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했잖아. 어떻게 된 거야?"유현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한참 지나서 답했다. "한서 씨 어머니가 나한테 있는 모든 카드를 동결 신청해서 은행 카드로 결제가 안돼.""왜?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냐? 뭔 자격으로 그걸 동결해?""나랑 한서 씨가 이혼할 거라는 걸 알고 내가 재산 이전이라도 할까 봐 미리 손 쓴 거지."차미주는 어이가 없어서 한참 동안이나 아무 말도 못했다. "일부러 그런 거 아냐? 하필이면 너희 집에 일이 생길 때 이러는 걸 보면. 게다가 강한서가 없는 틈을 타서. 혹시 강한서가 이혼 못할까 봐 그러는 거 아냐?"유현진은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