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서의 눈이 반짝였다."진짜요?"민경하도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강 대표님은 거짓말을 안 한단다."하지만 은서는 눈을 뒤집으며 입을 열었다."매번 보러올때마다 유 이모한테서 전화가 오면 항상 회사라고 거짓말하던데요?"민경하는 이에 할 말을 잃었다.(계집애, 속이기 쉽지 않네.)"저를 계속 숨기는 이유가 뭐예요? 누가보면 사생녀인줄 알겠어요."강한서는 은서를 힐끔 쳐다보더니 답했다."내가 이렇게 못 생긴 애를 낳을리가 없지."이에 은서도 할 말을 잃었다.간호사는 이 말을 듣고 웃음을 참을수가 없었다.이렇게 웃긴 부녀지간은 처음 봤었기 때문이였다."강 선생님, 이 팔찌를 잘 보관하세요. 최근에 병원에서 사람들 통제를 하고 있어서 이 팔찌를 끼고 있으면 경비의 통제를 받지 않을수 있을겁니다."강한서는 팔찌를 건네받은뒤 한마디 강조했다."저희는 부녀지간이 아닙니다.""네?"은서도 한 마디 거들었다."저희 아빠는 저렇게 저를 막 대하지 않으세요."이에 간호사도 할 말을 잃은듯 했다.아버지와 딸도 아닌데 입원할때 보호자명단에는 분명히 강한서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다.그리고는 두사람을 번갈아 살펴보더니 확실히 서로 닮은 구석도 없었다.하지만 성격하나는 엄청나게 비슷했다.하지만 간호사는 더 이상 묻지 않았고 대신에 이따가 해야될 검사에 대해서 설명한후 등기를 완료하고 떠났다.은서는 침대위에서 뒹굴기 시작했다. 뒹굴면서 한 편으론 한숨을 팍팍 내쉬었다. 강한서는 원래 아이패드로 메일을 검토하려고 했으나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다."개한테라도 물린거야?"은서는 그를 힐끔 쳐다봤다."저를 달래주면 어디 덧나요?"이에 강한서는"저번에 달랠땐 자기를 어린 애 취급하지 말라더니?"은서는 말문이 막혔다.은서는 침대위를 뒹굴다가 갑자기 질문을 날렸다."이 수술만 끝나면 이모를 만날수 있는거예요?"강한서는 답했다."네 표현 보고."은서는 벌떡 일어서며"강 삼촌, 저 다 나으면 이모 만나게 해줘요, 전에 같은 병실에 있었던 할머니
그녀는 어려보이는 의상을 입고 있었고 포니테일을 하고 있었다, 보기엔 스물살좌우 돼보였다.강한서는 물었다."의사 선생님은 뭐라 하셨지?""의사 선생님은 밥 다 먹은후에 한 번 더 측정하러 오겠다고 했어요. 내일 아침 공복 혈당이 어떤지 한 번 봐야겠다고 했어요."여자애는 숨을 고른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뭔가 사람이 힘이 없어 보였어요."강한서는 원래 그냥 돌려보낼려고 했으나 2일후의 수술을 다시 생각하더니 눈썹을 찡그리며 일어섰다."갑시다, 상태를 한 번 보죠."강한서가 떠나자마자 은서는 입을 삐죽 내밀면서 말했다."또 수작부리네, 맨날 머리가 아프지 않으면 열이 난다고 하지."이에 민경하는 작게 웃으며"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니?"은서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저도 인터넷 하거든요? 저 여자 팬들이 도대체 어떤 부분이 좋아서 팬이 된걸까요? 저렇게나 위선적인데.""저 사람은 네 목숨을 살릴수 있는 사람인데, 왜 그렇게 싫어하는거야?""그건 강 삼촌이 돈이 엄청 많기 떄문이잖아요, 돈을 안 줬더라면 절 구하려고 했을까요?"그들은 은서가 아직 세상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라 이런 일을 직접적으로 알려주진 않았었다.그 여자가 매번마다 삼촌이 불러서 헌혈을 할때, 계속 삼촌한테 보상을 요구해왔었다.한 번은 대본을 요구했고 한 번은 광고를 요구했고 다른 날은 차, 가방 같은걸 요구했었다.아무튼 한 번을 그냥 돌아가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녀는 강한서가 있을땐 은서한테 살갑게 대했고 없을땐 관심도 없는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비록 애들은 욕심에는 끝이 없다는 말을 모르겠지만 흐릿하게나마 송민영의 행동에서 불쾌함을 느낀게 분명했다.민경하는 웃기만 하고 말을 잇진 않았다.어린 아이들은 의외로 어른을 잘 파악하는 경향이 있었다.송민영의 관심이 진심인지 가짠지는 한 눈에 보아낼수 있었다.하지만 이번엔 그저 순조롭길 바랄뿐이였다.- - - -카운터에 도착한 유현진은 계좌를 확인했다, 이어서 하현주의 계좌엔 이미 돈이 없었
유현진의 얼굴은 험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유상수도 같은 생각이야?"백혜주는 이에 웃음을 지었다."내 뜻이 곧 그이의 뜻이지 않겠어? 아니면 왜 나한테 핸드폰을 빌려줬겠어?""그래, 네 아버지는 마음이 약해서 너랑 화해하고 싶어하시지, 그리고 하현주 의료 비용도 계속 부담하길 원하시고 근데 그 조건은 네 수중에 있는 모든 증거들을 넘기는거고 다시는 이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거야.""네 손안에 있는 증거들이 유용한지를 떠나서 쓸모 있다고 해도 자신의 손으로 지 애비를 감방에 처넣는 며느리를 강씨 가문에서 온전히 받아들일까?""정신 차려, 몇년이 지난 일이고 너희 부모는 이혼까지 했는데 지금와서 추궁하는게 뭔 의미가 있는데? 내가 딱 말할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여기서 그만두면 예전에 했던 짓을 모두 눈감아 줄테니 서로 윈윈 아니야?"그녀의 말투는 설이 되여 본가에 친척이 방문할때 제일 싫어하는 사람의 말투와 똑같았다. 말 매 한마디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오만이 느껴졌었다. 하지만 그녀는 말투보다 내뱉은 말이 더욱 역겹다고 생갃했다.유현진은 이를 악물며 화를 내며 꾸짖었다."꿈깨!""그럼 어쩔수 없지, 네 엄마 병원비는 이제부터 네가 알아서 해, 강씨 가문 사모님이나 되는데 그깟 돈은 아깝지 않겠지."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쪽에서 전화를 끊었다.주강운은 봉투를 들고 병원 로비에서 유현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현진이 표정이 별로 좋지 않은걸 발견하고는 앞으로 걸어가서 물었다."다 처리했어요?"유현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문을 열었다."주 변호사님, 유상수가 저의 엄마 병원비를 끊었어요, 아마도 이혼했다는 정보는 사실일거예요. 그 사람은 이미 다른 사람이랑 가정을 꾸린것 같아요. 그래서 이혼으로는 소송을 못 걸것 같은데...... 제가 엄마를 대신해서 법원에서 재산분할건으로 소송을 걸거예요."주강운은 눈썹이 찌푸려졌다."먼저 진정해요, 이럴때일수록 침착해야 해요. 제가 일단 아는 사람한테 물어볼게요, 분할이라해도
전화는 꽤 오랫동안 울렸지만 받는 사람은 없었다.그는 전화를 끊고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 저편에서 들려오는건 차디찬 기계음밖에 없었다."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되며, 통화료가 부과 됩니다......"유현진은 전화를 끊은후 핸드폰을 멀리 던져버린후 의자에 기대앉아서 손으로 눈을 가렸다.(강한서, 너는 왜 매 번마다, 내가 널 제일 필요로 할때만 곁에 없는거야......)A도시.강한서는 말로 표현할수 없는 꿈에 놀라 깨어났다. 그는 눈을 뜨고는 머리위 천장을 바라봤다. 옆에는 의자에 기대서 자고있는 민경하의 숨소리가 들려왔다.그는 잠에서 깨어난후 시간이 지나서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달았다.방금 그는 두 달전 한주시 북쪽에 있는 다리에서 연쇄추돌사고를 꿈꾸고 있었다.그는 유현진이 다리 위에서 차를 운전하고 있는걸 보고있었다. 앞 뒤는 모두 차에 가로막혀 있었고 신호등이 바뀌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한 대의 화물을 가득 실은 트럭이 통제를 잃은듯 그 차들을 향해 돌진을 해왔다.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 그 차들을 향해서.어떤 차는 가드레일을 들이밖고 다리밖으로 떨어졌으며 더 많은건 폐차가 된것마냥 찌그러진 차였다. 한 순간의 사고로 주위는 아비규환이였다.그는 유현진이 아직 뒤집어진 차에서 나오지 못한걸 발견했다. 그녀는 창문을 사이두고 피범벅이 된채로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그가 황급히 달려가려던 찰나 갑자기 차가 폭발했다. 맹렬한 불길은 삽시간에 유현진을 삼켰다,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걸 느끼는 동시에 꿈에서 깼다.(다행히도 꿈이네.)강한서는 태양혈을 문지르며 방금의 사고가 분명히 자신이 그곳에 간 적이 없었지만 생생하게 느껴진것에 의문을 품었다.차가 터지는 그 순간, 그는 온 몸에 식은땀이 흘렀다.강한서는 핸드폰을 꺼냈다.비행기를 타기전 그는 이미 전화 카드를 바꾸어 꼈었다.그래서 카톡은 재로그인 해달라는 소식이 계속 뜨고있었다.그는 로그인 할까말까 고민을 하는 도중
"낮에 한번 더 재촉했어요. 이미 시작했고, 이틀이면 된다고 했으니, 우리가 A시를 떠나기 전 완성할 수 있을 거예요."대표님은 한밤중에 자지 않고 저걸 고민하고 있었어?민경하는 요즘 들어 사랑에 빠진 보스의 모습이 왠지 낯설었다. 사모님이 고가교에서 교통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안 후로부터 대표님은 사모님을 각별히 신경 썼다. 강한서의 옆에서 다년 간 일해온 민경하는 강한서가 얼마나 감정에 느리고 차가운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을 키워준 신미정에게도 그렇게 큰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사모님과 관련된 일이라면, 지나가는 말 한마디라도 마음 속에 새겨넣었다. 예를 들면 육 억짜리 가방, 파티에서 잃어버린 귀걸이, 그리고 지금의 졸부 목걸이.대표님은 돈에 있어 사모님에게 지나치게 너그러웠다. 그는 말보다는 행동파였다. 하지만 사모님은 하필이면 감언이설에 약한 분이셨다. 한마디로 솜사탕같이 달콤하고 부드러운 사랑을 꿈꿨던 여인이 일밖에 모르는 오만하면서도 무뚝뚝한 남자를 만난 격이었다.생각해보면 참 재밌는 커플이었다. 두 사람 모두 외모가 워낙 클래스가 남다르다 보니 눈에 띄지 않는 게 더 어려웠다. 이튿날 아침, 유현진은 조씨 아주머니가 병원 부근에서 포장해온 음식으로 간단히 요기했다. 여덟 시 경에 의사가 회진을 왔다. 하현주의 체온은 여전히 높아지는 추세였다. 야간에 37.3도까지 내려갔던 체온이 다시 37.8도로 올라갔다. 의사는 반 시간에 한 번씩 체온을 측정하고, 계속하여 물리적인 수단으로 열을 내려보고, 점심 때까지 체온이 내려가지 않으면 약을 사용할 거라고 하였다. 유현진은 감사를 표하고 다시 분주해졌다. 열 내리기가 어젯밤보다도 어려웠다. 점심 때가 되니 38.1도까지 올라갔다. 유현진은 급하게 의사를 불렀다. 의사는 검사를 마치고 나서 하현주에게 해열제를 주입했다. 그리고는 계속하여 관찰하라고 당부했다. 유현진은 열이 나서 얼굴이 빨갛게 된 하현주의 얼굴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하현주는 엄
카드를 긁자 설비에서 알람이 울렸다. "이 카드도 동결됐어요."안색이 바뀐 유현진은 입술을 깨물면서 다른 카드를 건넸다. "이것도 동결됐네요."세 번째, 네 번째......마지막 카드까지 모두 동결 상태라는 소식을 전해듣자 유현진의 안색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그녀의 명의로 된 카드 모두 동결됐다. 강한서가 한 짓일까?아니다. 강한서가 그런 거라면 자신의 서브 카드만 동결하지, 자신의 카드를 동결할 리 없다. 그럼 누가 한 짓인가? 누가 타인의 명의로 된 카드까지 동결할 능력이 된단 말인가?머릿속으로 가능한 대상을 훑어본 그는 속으로 신미정을 지목했다."얼른 결제해요."뒤에서 줄을 서 있던 환자 가족들이 다시 한번 재촉했다. 유현진은 사과를 하고, 물건을 챙겨 자리를 냈다. 그녀는 급히 몇몇 은행에 전화로 문의했다. 그런데 하나같이 얼버무리면서 그저 누군가가 관련 자료를 제출하여 재산을 동결했고, 구체적으로 누군지는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알려줄 수 없다는 걸 보니 신미정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그는 주먹을 꾹 쥐더니 신미정의 번호를 눌렀다. 상대방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신미정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현진은 화를 억누르고 낮은 소리로 신미정을 불렀다. "어머님, 저예요."신미정이 아무런 감정 없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유현진이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 "저 방금 전에 병원비를 결제하려는데, 수납에서 제 카드가 동결됐다고 하더라고요.""그래."신미정은 담담하게 한마디 뱉더니 바로 인정했다."내가 그런 거야."유현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그러신 거예요?"신미정은 가볍게 웃더니 답했다. "한서가 출장갔다 돌아오면 어차피 너희 둘 이혼할 거잖아. 한서가 없는 틈을 타서 네가 재산 이전이라도 하면 어떡해. 내가 경각심을 가졌으니 망정이지 가만히 뒀다가는 큰일 날 뻔했잖아. 한서가 출장간지 얼마 됐다고 벌써부터 너의 엄마한테로 돈을 돌리려고 해? 너 우리 집안이 자선가라도 되는 줄
순간 유현진은 얼굴이 백지장이 되었다. 휴대폰을 들고 있던 손과 목소리는 떨고 있었지만 애써 차분하게 말했다."제가 금방 올라갈 테니 우선 의사 선생님을 불러줘요."하현주는 혈압이 갑자기 빠르게 내려가고, 심박수도 느려졌으며, 동공도 약간 확산 증상을 보였다. 엄청 안 좋은 조짐이었다. 의사는 검사하고 나서 약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하현주의 팔 혈관은 아주 뚜렷했다. 혈관벽이 한데 붙어서 간호사가 침을 몇 번이나 찔렀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하현주의 팔에 남은 침 자국들을 보자 유현진은 마음이 아파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현주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간호사가 와서 유현진에게 사인을 요구했다. 펜을 쥔 유현진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사인하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 수간호사는 사인을 마친 동의서를 건네받으면서 말했다."얼른 가서 병원비를 결제하세요. 1층에서 또 전화가 왔어요. 이러면 우리만 곤란해져요.""알겠어요. 우리 엄마 부탁해요."유현진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유현진은 대기실을 나오자마자 차미주에게 전화를 했다. 차미주는 어젯밤에 촬영팀을 따라다니느라 밤을 샜고, 아침 일곱 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유현진의 전화를 받을 때에는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가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전화를 받자 유현진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미주야, 너한테 지금 돈이 얼마나 있어? 나한테 육천 정도 빌려줄 수 있어?"차미주는 갑자기 이해가 안됐다. 유현진한테 육천이 없을 리가 없는데, 갑자기 왜 자신한테 돈을 빌리려고 하는지. 게다가 목소리도 이상했다. "무슨 일인데? 너 돈을 빌려서 뭐할려고?"차미주는 묻고 나서 이내 설명을 덧붙였다. "다른 뜻은 없고, 그저 물어보는 거야. 나 얼마 전에 저작권료를 받은 거 있는데 정기예금을 해놔서, 지금 이천 정도 끌어 모을 수 있어, 대체 무슨 일이야?""울 엄마가 지금 위독하셔. 그런데 카드를 사용할 수 없어......"유현진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유현진이 통곡하는 목
차미주는 엄마가 언제 이렇게 배포가 컸냐는 감탄을 할 틈도 없이 돈을 가지고 서둘러 병원으로 직행했다. 유현진은 차미주의 전화를 받고 병원 입구에서 기다렸다. 차미주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유현진의 가냘픈 체구가 시야에 들어왔다. 두 눈은 출혈됐고, 입술에도 핏기가 없었다. 평소에 에너지 충만하던 모습은 거의 사라지고 창백해서 투명해 보이기까지 했다. 인사말을 건넬 틈도 없이 차미주는 유현진의 팔을 잡고 가면서 말했다. "돈을 가져왔으니 우선 가서 병원비를 결제해."돈을 계좌에 입금하고 나서 유현진은 차미주를 데리고 윗층으로 올라갔다. 가는 내내 유현진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전화 속에서 대성통곡을 하면서 모든 나약함을 다 쏟아내어 껍데기만 남아있는 것 같았다. 대기실.차미주는 유현진에게 물을 건네면서 물었다. "어머님 들어가신 지 얼마나 됐어?"유현진은 물을 건네받으면서 잠긴 목소리로 답했다. "사오십 분 됐을 거야.""어머님 괜찮을 거야."차미주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물었다. "강한서는?"유현진의 눈빛이 더 어두워졌다. "출장 갔어."차미주는 화가 치밀었다."출장은 뭔 놈의 출장! 매번 필요한 순간에는 항상 없더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식!"유현진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차미주는 그제야 방금 전 유현진과의 대화 내용이 떠올랐다."너 전화에서 카드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했잖아. 어떻게 된 거야?"유현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한참 지나서 답했다. "한서 씨 어머니가 나한테 있는 모든 카드를 동결 신청해서 은행 카드로 결제가 안돼.""왜?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냐? 뭔 자격으로 그걸 동결해?""나랑 한서 씨가 이혼할 거라는 걸 알고 내가 재산 이전이라도 할까 봐 미리 손 쓴 거지."차미주는 어이가 없어서 한참 동안이나 아무 말도 못했다. "일부러 그런 거 아냐? 하필이면 너희 집에 일이 생길 때 이러는 걸 보면. 게다가 강한서가 없는 틈을 타서. 혹시 강한서가 이혼 못할까 봐 그러는 거 아냐?"유현진은
대장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건 물론이죠. 이미 먼저 주혁 씨에게 연락했어요. 집에서 가족들과 상의한 후 곧바로 답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의 집안 사정으로 회사가 이렇게 좋은 혜택을 주는데 그가 신청하지 않겠어요? 절대 그럴 리 없죠.”원율은 잠시 담배를 피운 뒤 담배 끝을 비벼 끄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부서에도 더 전해야 하니까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대장님, 일 보세요.”원율을 보내고 나서 대장은 다시 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혁 씨, 가족이 두 명이니까 연간 십만 원도 안 되게 더 내면 돼. 한 달에 만 원도 안 되고 가족이 병원 갈 때 드는 비용은 전부 보장돼. 이 작은 돈 아끼려고 하지 말고 큰 기회를 놓치지 마.”주혁은 돈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싫어한 건 그 돈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족을 위한 보험에 가입하면 이번 주 금요일에 반드시 그들과 함께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다. 설령 병원이 서대금이 손수 준비한 곳이라 해도 그에게는 그 사실이 부담스럽고 꺼려지는 일이었다.대장은 계속해서 재촉하며 보험 가입 후의 이점을 설명했다. 결국 주혁은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럼 내 아내와 아들도 함께 가입시켜줘. 나중에 주민등록증 사진 보내줄게.”“알겠어. 잘 쉬고 빨리 회복해. 듣자 하니 곧 송가람 씨 밑에서 일하게 된다면서? 잘 됐어. 정해지면 꼭 한턱 쏴.”주혁은 송가람 밑에서 일하게 될 생각에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에 부드러운 감정이 스며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확정되면 한 번 쏠게.”최종적으로 제출된 명단에 주혁의 가족이 포함된 것을 확인한 한현진은 비로소 안심했다. 체크업은 금요일과 토요일로 이틀에 걸쳐 나뉘어 진행되었고 한현진은 주혁이 토요일에 가는 것을 일부러 확인한 후 같은 날에 병원을 가기로 했다.주혁은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왔다. 그의 아내는 평범한 주부였고 깔끔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한현진이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는 주혁
회의실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자 한현진은 물건을 정리한 뒤 아직 자리에 앉아 있는 서해금을 향해 파일을 들고 다가갔다. “아주머니, 방금 지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해금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가 직원들을 생각해서 한 거니까 당연히 지지해야지. 우리 모두 같은 회사에 있는 한 하나의 팀이니까.” 한현진도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주머니가 제가 먼저 조사를 했다고 문제 삼지 않으셔서 다행이에요. 그리고 집에 보내주신 곤약도 가람 씨 통해 잘 받았어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해금은 여유 있게 말했다. “가족끼리 서로 아끼는 거지. 너무 예의 차리지 마.”한현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 제가 회사에 온 이래로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쓰게 해드렸어요. 제가 성격이 직설적이고 고집도 세서 가끔 말이 거칠어질 때도 있어요. 그런데도 아주머니께서 항상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아빠한테 들었어요. 아주머니가 아빠한테 저를 칭찬해 주셨다고요. 그 말을 들으니 저도 마음이 무겁고 어쩌면 제가 너무 어리석게 행동했나 싶어요.”“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서해금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얘가 무슨 말이야. 어른이 아이와 다툴 일이 뭐가 있겠어? 현진아, 아주머니는 네 친엄마는 아니지만 너희 어머니와는 정말 소중한 친구였어. 네가 송씨 가문에 돌아올 수 있게 되어 아주머니는 그 누구보다 기뻐.” “지금 네가 집안에서 가람이랑 함께 지내는 걸 보니 젊은 시절 너희 어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가끔 떠올라. 우리가 반평생을 함께 지냈고 너희는 진짜 자매가 된 거지. 이것도 하나의 인연이란 거야.”한현진은 속으로 토할 뻔했다. ‘정말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고?’만약 당시 아이를 바꾼 일과 그녀 어머니의 죽음이 모두 바로 눈앞에 있는 이 온화하고 친절한 여자과 관련이 있었다는 여러 가지 증거들이 없다면 이렇게 진심 어린 말투를 들었을 때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
하지만 이 제안이 실행되면 소문이 돌아 사람들이 그것을 한현진 덕분이라고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서해금은 아마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서해금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안은 나쁘지 않지만 실비보험은 본래 회사가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기본적인 보장이기에 만약 직원들에게 요금을 부과하게 되면 일부 사람들은 이를 회사가 급여를 삭감하려는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직원들의 가족은 병원을 거의 가지 않아 이 비용이 꼭 필요한 지출은 아닐 수 있어요. 그런데 전액을 회사가 부담하게 된다면 일부 직원들이 가족을 허위로 신고해 다른 사람의 보험을 대신 받으려 할 가능성도 생길 수 있을 겁니다.”한현진은 그녀가 이렇게 말할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말하는 방식에 약간의 여유를 두었다. 서해금이 자신의 의문을 제기하자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직원들이 가족을 위한 보험을 구매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자발적입니다. 회사는 강제로 요구하지 않아요. 다만 구매의 문턱을 낮춰놓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원하는 사람은 구입하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추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말이에요.” “서 대표님 생각은 어떠신가요?”서해금은 입술을 꽉 다물고 잠시 침묵한 후 말문을 열었다. “현진 씨, 구입을 개방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쪽은 괜찮지만 보험사와의 협상이 필요해요. 어떤 보험사도 손해 보려고 하진 않잖아요.” 한현진이 살짝 웃으며 답했다. “보험사와의 협상은 제가 맡을게요. 지금 여쭤보는 건 서 대표님 개인의 의견이에요. 동의하시는지요?” 서해금은 당연히 반대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회의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반대한다고 말하면 그 소문이 바로 회사 전체에 퍼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가 그동안 쌓아온 직원들을 위하는 좋은 상사의 이미지가 무너질 게 뻔했다. 서해금은 절대 자기를 망칠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서해금은 잠시 침묵한 뒤
이틀 후 깔린느 정기 회의에서 서해금은 직원들의 건강검진을 언급하며 각 부서가 직원들의 시간을 조율하고 차례로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말했다. 말을 마친 후 시간을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그럼 특별한 사항 없으면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잠깐만요.” 한현진이 서해금의 말을 가로막았다. 모두가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서해금도 눈을 들어 한현진을 응시하며 여유 있게 말했다. “현진 씨, 더 지시할 거라도 있어요?” 한현진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지시라뇨. 이 자리에 계신 분들 모두 제 선배님들이세요. 업무적인 부분은 앞으로도 많이 배우고 의지해야 할 분들입니다. 다만 서 대표님께서 직원 건강검진에 대해 언급하신 걸 듣고 마침 오늘 회사 고위층 분들도 다 계셔서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어서요.” “서 대표님, 괜찮으실까요?”모두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한현진이 아마도 회사 관리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회사에 온 지 몇 달이 되었고 비록 진씨 가문 사모님 홍혜림을 중심으로 몇몇 고객을 끌어들였지만 서해금의 기반은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실력 차이가 매우 컸고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큰 진전이 없었으니 한현진은 분명히 조급할 것이다.서해금은 두 손을 가볍게 포개어 테이블에 놓고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정기 회의는 원래 경영진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어떤 의견이라도 편하게 말씀하세요. 좋은 제안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적극적으로 채택할 겁니다.” 그녀는 매우 너그러운 태도로 민주적인 자세를 보여주었고 이것이 바로 서해금이 이렇게 확고한 위치를 유지하는 이유였다. 회의에서 나온 의견과 제안은 결코 당면에서 거절하지 않으며 오히려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뒤에서는 다른 수단을 써서 상대를 밀어내는 법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는 데 그녀는 능숙했다.한현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 대표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직설적을 말
송가람은 급히 말을 이었다. [지금 저도 정확히 알 수가 없어요.] 그녀는 강한서보다 더 초조해했다. 황 닥터는 금지된 물품을 소지하고 있던 이유로 출국 금지 명령을 받았고 당분간 국내로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가 오지 않으면 강한서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는 분명히 모든 것을 기억해 낼 것이다. 송가람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한서 오빠, 저랑 같이 외국에 가서 교수님한테 진료받으러 갈래요? 그쪽에서 꼭 잘 봐주실 거예요.] 송가람은 더 이상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강한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가람아, 평소 같았으면 바로 갔겠지만 지금은 안 될 것 같아. 너도 알잖아. 요즘 한주시 상황이 얼마나 복잡한지. 난 지금 이곳을 떠날 수 없어. 정말 어쩔 수 없으면 여기서 다른 의사를 찾아서 진료를 받는 방법을 찾아볼게.][그럴 수는 없어요!] 송가람이 목소리를 높였다. 강한서는 잠시 멈칫했다. [왜 안 되지?] 송가람은 자신이 너무 지나치게 행동했다는 걸 깨닫고 잠시 말을 더듬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교수님은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뇌과학 전문가 중 한 분이세요. 국내 의사들하고는 비교도 안 되죠.]의사를 바꾸면 강한서가 예전에 사용한 약에 대해 물어볼 것이었고 그렇다면 그녀는 그것을 말해야 하므로 폭로될 위험이 있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었다. 강한서는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네.]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킨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그 약은 효과가 좋았어. 매번 먹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잡생각들이 사라졌거든.] [그런데 지금은 그 약이 다 떨어져서 최근에 다시 두통이 찾아왔어. 그 약만 있으면 황 닥터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텐데.]송가람의 눈이 번쩍였다. ‘맞다. 그 약이 있었지.’ 그녀는 속으로 들뜬 마음을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서 오빠,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하지만 이 보험은 직원 개인에게만 해당되며 가족은 이 보험을 가입할 수 없다. 지금 강한서의 의도는 이 혜택을 직원의 가족에게까지 확장하려는 것이다. 주혁은 집에 두 명의 환자가 있고 약을 자주 복용해야 한다. 만약 그가 회사의 이 선의를 거절한다면 그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 예전에 아들을 위해 인공 와우 이식 수술을 받을 돈을 마련하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직장을 잃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절대로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강한서의 개인적인 의도도 있었다. 이런 세심한 직원에 대한 배려는 점차 아래 직원들이 한현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위층은 작은 이익에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일반 직원들에게는 다르다. 대부분 사람들이 열심히 돈을 버는 이유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다. 그들 대부분은 삼십대에서 마흔다섯 사이로 이 나이대의 사람들은 부모님을 부양하고 자식들을 키워야 한다. 회사가 약속한 성과급 같은 허황한 말보다는 이런 쉽게 보상받을 수 있는 실비보험이 직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기 때문에 더욱 마음을 얻을 수 있다. 한현진은 마치 뭔가 깨달은 듯 강한서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이렇게 사람 마음을 얻는 거구나.” 강한서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사실 처음엔 이런 생각까지는 못 했어. 할머니가 병원에 갈 때는 항상 진씨 아저씨랑 같이 가서 내가 직접 겪을 일이 거의 없었거든. 이런 일도 거의 없었고.” “그런데 한 번은 민 실장이랑 같이 출장 가는 길이였어. 그때 민 실장 어머니께서 비를 맞으면서 우리를 마중 나왔는데 길이 미끄러워서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셨어. 가벼운 사고가 나이었고 수술이 필요한 정도로 심했었지.”“그때 민 실장한테 병원에 남아서 어머니를 돌보라고 하고 혼자 고객을 만나러 갔어. 며칠 만에 일을 마치고 병원에 들렀더니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이었어.” “그런데 입원부터 치료까지 전부 합쳐서 거의 천만 원 가까이 들었더라. 민 실장은 보험 청구를 했
강한서가 가식적인 말투로 말했다. “부탁할게. 나중에 내가 너랑 여정 씨에게 크게 한 턱 쏠게.”강한서에게 등을 돌린 신우가 손을 들어 중지를 내밀었다. 한현진이 강한서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신우 씨가 널 꽤 귀찮아하는 것 같아. 전에 여정 씨에게 신우 씨는 욕을 하지 않는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아닐 걸?”강한서가 헛소리를 지껄였다. “난 우리 사이가 좋다고 생각해. 봐봐, 지금 얼마나 열심히 우릴 도와주고 있어.”한현진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그래? 난 왜 신우 씨가 마지못해 하는 것 같지?’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이제 이런 일로 신우 씨 번거롭게 하지 말자. 우리 다른 방법 찾아보자. 언제까지 부탁할 순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도 계속 신우에게만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신우처럼 능력 있고 입도 무거운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현진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언제까지 신우에게 부탁할 수는 없었다. 신우의 할아버지가 위독하시기 때문에 지금은 삼촌들의 후계자 싸움이 가장 치열한 시기였다. 수많은 눈이 서로의 약점을 노리고 있었기에 신우의 처지 역시 살얼음판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그 어떤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 신씨 가문에서 요즘 경쟁이 제일 치열한 것이 바로 제일 많은 계약금이 걸린 프로젝트였다. 강한서는 이 기회를 빌려 신우에게 투자금을 보태 그동안 진 신세를 갚을 생각이었다. 그날 오후, 지문 대조 결과가 나왔다. 편지 봉투와 그림에는 한현진과 강한서의 지문을 제외한 세 사람의 지문이 있었다. 그 세 사람 중 한 명은 주혁의 아내였고 또 다른 사람은 주혁의 아들인 주지호였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지문 대조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또 다른 사람의 지문이었다. 그 결과에 한현진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이 정보를 따라 뭔가를 캐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겼지만 이렇게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사 결과는 결국 시스템에조차 등록되어 있
시원하게 욕을 날린 신우는 의리 있게 강한서의 부탁을 들어줬다.10여 년 전 주혁이 경찰서에 남겼던 지문을 받은 강한서는 곧 생체 인식 실험실에 보내 두 지문을 대조하도록 했다. 2시간도 지나지 않아 결과가 나왔다. 한지와 편지봉투에서는 주혁의 지문을 찾을 수 없었다. 그 결과에 한현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뭔가 착오가 있는 거 아냐? 그때 직접 손으로 나에게 건네줬었어. 심지어 장갑도 하지 않았는데, 지문이 안 나왔다고?”신우가 말했다. “여긴 여정이와 여정이 사수가 함께 만든 실험실이에요. 게다가 형사들과 자주 협력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지문 대조 시스템은 여길 따라올 곳이 없어요. 한 번도 틀린 적 없었어요.”신우의 말은 지문 대조 결과가 틀렸을 리가 없다는 얘기였다. 신우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냈다. 이제 막 담배 한 대를 꺼내려던 그때, 손에 들린 담배가 강한서의 손에 내쳐져 툭, 쓰레기통으로 떨어졌다. 신우: ???머리가 복잡했던 한현진은 두 사람을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왜 없는 거지?”여전히 오리무중에 빠진 한현진과 달리 강한서는 이미 눈치 채고 있은 듯 말했다. “혹시... 지금 그 사람은 애초부터 주혁이 아니었던 거야. 그래서 경찰에게 지문이 남아있을까 봐 그런 방법의 자신의 모든 지문을 지워버린 거야. 자신의 진짜 신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강한서의 추측에 한현진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떻게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그건 너무 많이 앞서간 거 아냐? 기사님은 가족도 있고 아이도 있어. 만약 정말 사람이 바뀐 거라면 가족들은 눈치 채야 하는 거 아냐?”“데가 이 세상에는 그렇게 똑같이 생긴 사람은 없어. 아무리 닮은 쌍둥이라고 해도 가족들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잖아.”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어쩌면 가족들은 원래 그 사람이 돌아오길 바라지 않을 수도 있지.”한현진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얼른 강한서에게 물었다.
“얼른 다시 가져와. 급히 쓸데가 있어.”강한서: ?“왜 그래?”한현진이 말했다. “전화로 얘기하긴 복잡한 일이야. 아무튼 얼른 전화해서 그림 다시 가져오라고 해. 만약 안 건드렸으면 못 건드리게ㅔ 하고 만약 꺼냈으면 얼른 다시 포장하라고 해. 내가 금방 갈게. 만나서 더 자세하게 얘기해 줄게.”강항서가 대답했다. “알겠어. 지금 당장 다시 가져올게.”한현진은 일찍 퇴근하고 집으로 향했다. 전화에서 한현진이 워낙 급하게 얘기한 탓에 강한서도 그녀가 걱정이라 손에 있던 일을 미리 마친 후 칼퇴근해 집으로 돌아왔다. 만나자마자 강한서를 본 한현진이 물었다. “기사님 아직 그림 안 넣었지?”강한서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네가 너무 일찍 얘기해서 넣지도 못한 상황이야. 네가 그림을 가진 후로 우리 두 사람을 제외하면 아무도 그림을 본 적이 없어.”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랍에서 일회용 장갑을 꺼내 낀 후 그림과 평지를 함께 꺼내 일회용 봉투에 넣었다. 한현진의 행동을 본 강한서의 눈가가 파를 뛰었다. “증거 수집해?”한현진은 봉토를 밀봉하며 말했다. “정말 증거가 될 수도 있어. 일단 가직해 둬.”“대체 무슨 일이야?”한현진이 장갑을 벗고 나서야 강한서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과 본인의 의심과 의혹을 얘기했다. “이번 주에 기사님께서 뭔가 사고를 친게 틀림없어. 그래서 재판장에서 지문 인식하는 걸 거부하는 거겠지. 만약 기사님이 전과범이고 회사에서 그 사람을 그대로 둔다면 기사님이 영향을 끼치는 것 나뿐만이 아니야. 그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내가 생각해봤는데 일단 지문을 수집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일단 고여정 씨께 이 사람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아봐. 그래야 만일이 사태에 대비를 하지.”한현진의 말을 들은 강한서가 의문을 제기했다. “주혁 씨의 지문은 이미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어. 무슨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신상 조회를 하면 바로 나올 텐데 지문을 지우는 게 무슨 소용 있어?”한현진이 멈칫했다. “없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