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이 약 발라줘서 빨리 낫기라도 한 거야?"유현진의 머릿속은 온통 물음표들로 꽉 찼지만 묻지 않았다. 전화기 저편에서 강한서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바꿔 달래요? 멋대로 행동할 거에요?"유현진......민경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사모님 신경 쓰지 마세요. 대표님이 사모님에게 화내는 게 아니라 아침부터 안색이 좋지 않으셨어요. 열도 좀 나는 것 같아요. 모시고 병원에 가려 했는데 굳이 일 다 보시면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셔서요. 지금은 또 다친 곳이 아프셔서 화가 올라오는 것 같아요. 사모님 다른 일 없으시면 회사 한 번 들러주세요. 대표님이 약을 두고 오셨다네요.""뭔 쓸데없는 소리예요?" 강한서의 한마디는 유현진의 얼마 남지 않은 미안한 마음까지도 사라지게 했다.유현진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대표님 말투로 봐서는 아픈 곳이 전혀 없어 보이네요. 좋아졌으니 출근했겠죠. 대표님이 그렇게 나약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정말 아프다고 해도 여자들이 약 발라줬을 테니 난 빠지려고요. 대표님이 날 보면 안 아픈 데도 아플 테니까."민경하가 대답하기도 전에 유현진은 통화를 종료했다.민경하는 멍한 표정으로 강한서를 바라보았다. 강한서의 얼굴은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그는 헛기침하고는 유현진을 위해 한마디 했다. "사모님도 마침 화나는 일이 있나 봐요."강한서가 쌀쌀한 눈빛으로 민경하를 쏘아보자 민경하는 입을 꾹 다물었다.이때, 또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민경하는 휴대폰을 확인하고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어머님께서 전화 주셨네요."워낙 기분이 좋지 않았던 강한서는 신미정에게서 연락이 왔다는 말을 듣고 더 불쾌한 마음에 차갑게 말했다. "받지 마세요."민경하는 이내 벨 소리를 끄고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강한서는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장수미 씨 사직서는 아직이에요?"장수미는 장씨 아주머니의 본명이다.신미정이 이른 시간에 연락해 온 건 무조건 이 일 때문이다. 강한서가 전화를 받지 않았으니 그의 입지는 확고했다."인사팀에서
그녀는 당연히 듣기 싫은 욕지거리들을 보냈을 줄로만 알고 혹시나 사건에 도움이 될까 주강운에게 넘기려고 캡처 준비를 하려고 확인하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멈칫했다.송민영의 매니저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그녀에게 '보이스'에 출연하길 권했다.'보이스' 출연 거절을 한 지 얼마 안 돼서 이런 갠톡이 날라오다니, 소식이 빠르긴 정말 빠르다.유현진은 계속 아래로 보았다. 그쪽의 말로 인하면 그녀가 페이스북에서 '정상에서'의 배역을 스틸당했다는 글을 올린 뒤 네티즌들은 송민영에게 반감을 품게 되었지만, 이 또한 송민영 본인의 뜻이 아니었으니 송민영도 굳이 문제 삼지 않았다고 했다.'비밀의 연인'의 흥행 또한 두 사람이 합작한 결과이며 양측 모두에게 큰 의미가 있으므로 지나간 일은 뒤로하고 이번 예능 방송에 출연하길 바랐다.방송이 나갈 때는 제작직과 함께 그녀의 이름을 태그해 그녀의 인지도를 올리는 한편 두 사람의 불화설도 잠재우고 또 본인의 호감도를 올릴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윈윈이었다.하지만 부탁이라고 하기엔 미안한 감정 하나 들어있지 않는 오만한 말투였다.송민영의 매니저가 맞는지 아닌지를 막론하고 만약 그렇다고 해도 상대는 아마 유현진이 송민영의 덕을 보는 일이니, 감지덕지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유현진은 뭐라고 쏘아붙이려다가 다시 신중하게 생각하고 답장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송민영 씨의 호의에 감사드려요. 제작진의 섭외를 받았을 때 송민영 씨와 함께 같은 방송에 출연한다는 소식에 기대 많이 했었어요. 하지만 개인적인 사유로 이번 방송 녹화에는 함께하지 못하겠네요. 죄송하게 됐어요. 송민영 씨는 전 국민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기에 저도 부러운 건 사실이지만 제가 역량이 아직 부족하다 보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기에는 부족해요. 그래서 죄송하지만, 송민영 씨의 호의를 거절할게요. 그럼, 녹화 잘하시길 바랄게요."문자를 보내고 얼마 안 지나 상대에게서 답장이 왔다."얘기하세요. 얼마면 출연하실 건가요?"유현진은 차갑게 웃었다. '연기조차
'좋게 말해서 안 들으면 나도 어쩔 수 없지!'________유현진이 페이스북을 끄자마자 민경하에게서 연락이 왔다.'한밤중에 기분 나쁘게 왜 다들 연락하고 난리야?'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민경하의 연락을 무시했다.그녀는 민경하가 귀찮은 것이 아니라 강한서와 연관 된 말이 듣기 싫었을 뿐이다. 그녀는 강한서와 엮이기 싫었다.유현진이 전화를 받지 않으니 민경하는 쉴 새 없이 전화를 걸어왔다.보다 못한 간병인이 말했다. "현진 씨, 전화 받아봐요. 혹시라도 급한 일이면 어떡해요?""급한 일은 무슨."유현진은 입술을 삐죽거리더니 결국 전화를 받았다."사모님, 대표님 체온이 39도까지 올라갔어요. 집에 해열제 있어요?"유현진은 멈칫하더니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39도까지 올라갔는데 해열제가 뭔 도움이 되겠어요! 얼른 병원부터 데려가요!""대표님이 안 간다고 고집부리시니 저도 어쩔 수 없어요. 해열제라도 드시고 열 내려야죠. 게다가 아주머니까지 자르셔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저도 잘 몰라서 사모님한테 연락드리는 거예요."'열이 펄펄 나는데도 병원에 안 간다니 강한서 미쳤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강한서의 아버지도 처음에 고열에 시달리다 병원에 간 뒤로 병세가 심해져 세상을 떠났다. 아마 그때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강한서는 열만 나면 투정이 많아지고 약도 먹기 싫어하고 병원은 더더욱 가기 싫다며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그러니 유현진은 민경하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유현진은 입술을 한번 깨물더니 급히 말했다. "아래층 거실 테이블 서랍에 약상자가 있어요. 거기 보면 해열제 있을 거예요. 일단 하나 먹여보고 반 시간 뒤에도 열이 내려 안 가면 끌어서라도 병원 가세요!"민경하는 간결한 대답을 끝으로 급히 전화를 끊었다.유현진은 다른데 신경 팔 틈이 없이 병실에서 쉴 새 없이 갔다 왔다 하며 불안해했다.강한서가 마지막으로 열이 난건 작년이었다.때는 가을에 들어설 무렵이었다. 갑자기 날씨
유현진은 마음이 식어버렸다. 그녀는 그때부터 마음속에 강한서에 대한 화를 심었었다.강한서가 자기와 결혼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과 강한서의 마음속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은 유현진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린 유현진은 자신감이 가득해 결혼도 했으니 강한서도 마음속의 사람을 내보내고 자기를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다.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녀의 착각이었다. 강한서의 마음에는 늘 다른 여자가 있었고 유현진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다.38도가 조금 넘었을 때도 인사불성이었는데 이번에는 더 심하니 저번보다 더 상태가 좋지 않을 게 뻔하다. 아마도 상처가 덧나면서 염증으로 인한 발열 증세일 것이다.아무리 강한서를 원망한다 해도 그녀는 강한서가 아프길 원하지 않았다.잠깐의 생각을 마친 그녀는 간병인과 인사를 나누고 병원을 나섰다.전화를 끊고 민경하는 이내 해열제를 찾았다. 민경하는 물 한 컵을 들고 계단을 올랐다.강한서는 침대에 누워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은 보기에도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민경하는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대표님, 일단 약부터 드세요. 사모님이 그러는데 약 드시고 반 시간 뒤에 다시 체온을 재 보아서 열이 내리기 시작하면 병원에 안 가도 된대요."강한서는 힘겹게 눈을 뜨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전화하라고 그랬어요?"분명 화를 내는데 열이 나서 그런지 목소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어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민경하가 말했다. "해열제를 찾지 못해서요. 열이 이렇게나 나시는데."강한서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뭐래요?""그러니까... 약 꼭 드시게 하라고 그랬어요. 많이 걱정하시더라고요."강한서는 민경하의 어처구니없는 말을 믿을 리가 없었다.강한서는 한참 침묵하다가 차갑게 말했다. "나가보세요.""대표님, 약부터 드세요."강한서는 눈살을 찌푸리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가라고요!"민경하도 더는 말을 안 하고 해열제를 놓은 뒤 거실에서 나왔
유현진은 그 모습에 화나기도, 우습기도 했다.강한서의 모습은 마치 유현진이 어릴 때 집 앞에서 보았던 들고양이와 같았다.반년을 넘어 먹이를 주었는데 어느 날 집 문을 열다 실수로 들고양이의 머리를 발로 차버린 후로는 절대 자기를 못 만지게 했다.그녀가 손을 내밀 때마다 들고양이는 강한서처럼 머리를 돌려 피했다.유현진은 비록 들고양이는 못 잡았지만, 강한서를 상대하는 데는 방법이 있었다.그녀는 강한서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신발을 벗어 던지고 그의 몸을 타고 앉아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강한서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어쩔 바를 모르고 있다가 한참 뒤에야 바둥거렸다.평소 같으면 유현진의 힘으로는 강한서의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의 강한서는 도리어 아픈 고양이처럼 유현진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유현진은 손쉽게 강한서의 단추를 풀어버렸다."유현진, 당신 지금 뭐 하는 짓이야!"강한서는 화가 난 건지 몸이 불편해서인지 얼굴에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다가 목까지 빨개지기 시작했다.강한서의 허리에 올라탄 그녀는 갑자기 이 남자를 정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기분이 나쁘지 않았다.유현진은 체온계를 강한서의 겨드랑이에 넣고는 이불을 덮어주더니 인터넷에서 배운 애교스러운 말투로 강한서에게 말했다. "당신 몸을 못 본 것도 아닌데 부부끼리 왜 그래?"강한서는 화가 나 헛기침이 나왔다.유현진은 강한서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진정시켜 주었다. "당신이 내 앞에서 이렇게 다 벗고 있는 걸 내가 불쾌해하지 않는데 당신이 왜 투정이야."강한서가 뚜껑이 열릴 것 같은 기분에 유현진을 한바탕 혼내려고 입을 벌리는 순간, 유현진은 기회를 틈타 강한서의 입에 해열제를 밀어 넣고는 그의 턱을 받쳐 들었다. 약은 이내 목구멍으로 흘러 내려갔다.강한서는 워낙에 몸이 안 좋은 데다가 유현진의 시달림까지 받았는데 결국 한마디도 못 하고 웃고있는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어때, 안 쓰지?"강한서는 화가 나는데도 화가 나오지 않았다.강한서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 "쓴지 안 쓴지는 당신도 목구멍에 약 넣
강한서는 열이 펄펄 끓었다. 작은 움직임에도 헐떡거릴 정도였다. 그가 내쉬는 숨결도 뜨겁기 그지없었다.'병든 고양이가 따로 없는데 아직도 날뛰네.'유현진은 이 모습을 비웃고 싶었지만, 그녀가 만약 진짜로 비웃었을 땐 강한서가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에 생각을 접었다.'환자랑 다툴 거 뭐 있다고.'유현진은 한숨을 내쉬고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내가 잘못했어, 강 대표. 화내지 마, 열이 이렇게 끊는데 약도 안 먹고 병원도 안 가길래 내가 걱정해주는 거잖아.""날 그만 속여. 날 걱정한다면 두 날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은 건 어떻게 설명할 거야? 내가 어떻게 되기라도 하면 재산을 가로채 가려고 하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유현진, 이 세상에서 당신보다 거짓말을 잘하는 여자는 없을 거야!"'개자식, 아까는 자기밖에 모른다더니 이제는 거짓말쟁이라고? 아프지만 않았어도 발로 차버렸을 거야.'유현진은 그를 달래며 입을 열었다."만약 당신이 바보가 된다면 이혼하러 법정에 가도 나는 승산이 없어. 우리가 혼인신고하러 갔을때 생로병사를 막론하고 떠나지 않는다고 선서까지 했었는데 병에 걸렸다고 이혼하는건 말도 안되지."그 말에 강한서는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었는데 뒤이어 피도 눈물도 없는 유현진의 말이 들려왔다."적어도 2, 3년은 기다린 뒤에 그때까지도 완치 안 된다면 다시 이혼하지 뭐."강한서는 열이 하늘 끝까지 솟구쳤다.그는 그녀의 얼굴을 꼬집으면서 이를 악물고 말했다."꿈도 꾸지 마! 당신은 내가 낫길 바라지 않는 거잖아!"이혼을 생각도 하지 말라는 건지 아니면 재산을 탐내지 말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유현진도 이에 꼬치꼬치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강한서가 감기 때문에 정신이 온전치 않았기 때문이다.정신이 또렷할 땐 듣지 못했을 말이었기 때문이다.소리를 지른 강한서는 기침이 나왔다.유현진은 손을 뻗어 그의 등을 토닥이며 입을 열었다."나는 당연히 당신이 빨리 낫길 바라. 왜냐면 당신이 빨리 나아야 돈 많이 벌고, 돈 많이 벌어야 이혼하
그녀는 강한서가 일부러 집착하는 줄 알았으나 그녀의 오해였다. 왜냐하면 강한서는 이에"나도."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그럼, 당신이 먼저 가."유현진은 할 수 없이 먼저 가라고 말했다.강한서는 유현진에게서 손을 떼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일어서려는 그때 다리에 힘이 풀리며 꼬꾸라질 뻔했다.유현진은 민첩하게 그의 옷깃을 잡고 침대 방향으로 당겼다.그 급성 해열제의 약효는 엄청났다. 유현진도 예전에 한 번 먹었었던 적이 있었는데 먹자마자 잠이 몰려오고 사지에 힘이 풀렸다.강한서의 모습을 보아하니 약효가 제대로 올라온 듯싶었다."내려가서 민 실장님을 부를게."그녀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강한서는 그녀를 눌러 앉히며 말했다."가지 마!""나 혼자 당신을 부축하긴 어려워."강한서는 고집스러운 눈빛으로 얼굴이 시뻘게져서 한사코 민경하를 부르지 못하게 했다.유현진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녀는 강한서가 체면을 차리는 사람이라 민경하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면 자기의 카리스마 있는 이미지가 무너질까 봐 고집을 부리는 것으로 생각했다.그는 입을 벌려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날 부축해줘, 그러면 걸을 수 있어."강한서의 강경한 태도에 유현진 방법이 없어서 그를 부축하며 화장실로 갔다.화장실에 도착한 강한서는 그녀를 쫓아냈다.그녀는 원래 강한서가 화장실을 보는 것까지 도와주는 건 약간 어색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강한서는 나오지 않았다. 마침 그녀가 문을 두드리려고 한 순간 안에서 뭔가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유현진은 생각할 틈도 없이 않고 바로 문을 밀치며 들어갔다.강한서는 처참히 쓰러져있었고 사물함은 뒤집어 넘어져 물건들이 다 쏟아져 나와 있었다.그는 바지도 채 올려 입지 못한 상태였고 손과 바지엔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묻어있었다.그녀가 들어온 것을 본 강한서는 당황한 듯 급히 바지를 올리며 창백한 몰골로 호통을 쳤다."누가 당신보고 들어오래, 당장 나가!"유현진은 그 모습에 잠시 멈칫하다가 강한서
그녀는 상처를 붕대로 잘 감싼후 이미 잠들어있는 강한서를 발견했다.그녀는 약상자를 원래 위치에 돌려놓은뒤 잠시 생각한뒤 강한서의 곁에 누웠다.매 반시간마다 유현진은 일어나서 강한서의 체온을 쟀다. 새벽 두시가 될 즈음, 강한서의 체온은 드디어 38도로 내려왔다. 그녀는 한숨을 돌리고는 엄청난 졸림에 곁에서 잠에 들었다.그 다음날 강한서가 꺠어났을땐 몸은 훨씬 개운했다. 다만 어깨부분은 돌이 짓누르는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눈썹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그리고 어깨에 있는 무언가를 걷어내려고 했지만 그전에 유현진이 옆에서 자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머리속에서는 어제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들이 다시 생각났다.그는 유현진을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뻗어있는 팔은 천천히 움직여 그녀의 머리를 옆으로 옮겼다.어깨는 침자국으로 흥건했다, 강한서는 싫은 눈빛으로 유현진을 쳐다보고는 담요를 그녀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놓았다.유현진이 깨어났을땐 이미 점심이였다.강한서와 민경하는 이미 집을 떠난 후였다.(개자식, 온 밤동안 보살폈는데 고맙단 말 한마디도 없네.)그녀는 핸드폰을 들었다. 그제서야 차미주가 걸어온 몇 통의 전화를 발견하고는 급히 회신했다."너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는거야."차미주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난 또 니가 송민영 팬들한테 암살이라도 당한줄 알았네!""어제 저녁에 늦게 잤더니 지금 깨났어, 왜 그러는데? 전화를 왜이리 많이 했어?""페이스북 한번 봐봐.""페이스북은 왜?""한세정이 자신이 나오는 새 드라마를 홍보하는데, 기자가 물은 몇가지 물음에서 그 개년이 갑자기 널 까는거야, 네가 몸값을 억지로 올려서 고귀한척 한다고!"유현진은 눈썹을 찌푸리며 다급히 페이스북을 올랐다. 연예계뉴스에서 실검 1위가 바로 #한세정 선셋 스타# 이였다.그리고 바로 그 아래 기사의 제목은 #성우가 연기자 본인보다 더 극중 역할에 어울릴수 있을까?#그리고 이 두개의 기사는 서로와 대립되는 느낌이 났다.그녀가 기사를 클릭하자마자 차미주가 말한 그 동영상을 발견했다
대장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건 물론이죠. 이미 먼저 주혁 씨에게 연락했어요. 집에서 가족들과 상의한 후 곧바로 답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의 집안 사정으로 회사가 이렇게 좋은 혜택을 주는데 그가 신청하지 않겠어요? 절대 그럴 리 없죠.”원율은 잠시 담배를 피운 뒤 담배 끝을 비벼 끄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부서에도 더 전해야 하니까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대장님, 일 보세요.”원율을 보내고 나서 대장은 다시 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혁 씨, 가족이 두 명이니까 연간 십만 원도 안 되게 더 내면 돼. 한 달에 만 원도 안 되고 가족이 병원 갈 때 드는 비용은 전부 보장돼. 이 작은 돈 아끼려고 하지 말고 큰 기회를 놓치지 마.”주혁은 돈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싫어한 건 그 돈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족을 위한 보험에 가입하면 이번 주 금요일에 반드시 그들과 함께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다. 설령 병원이 서대금이 손수 준비한 곳이라 해도 그에게는 그 사실이 부담스럽고 꺼려지는 일이었다.대장은 계속해서 재촉하며 보험 가입 후의 이점을 설명했다. 결국 주혁은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럼 내 아내와 아들도 함께 가입시켜줘. 나중에 주민등록증 사진 보내줄게.”“알겠어. 잘 쉬고 빨리 회복해. 듣자 하니 곧 송가람 씨 밑에서 일하게 된다면서? 잘 됐어. 정해지면 꼭 한턱 쏴.”주혁은 송가람 밑에서 일하게 될 생각에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에 부드러운 감정이 스며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확정되면 한 번 쏠게.”최종적으로 제출된 명단에 주혁의 가족이 포함된 것을 확인한 한현진은 비로소 안심했다. 체크업은 금요일과 토요일로 이틀에 걸쳐 나뉘어 진행되었고 한현진은 주혁이 토요일에 가는 것을 일부러 확인한 후 같은 날에 병원을 가기로 했다.주혁은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왔다. 그의 아내는 평범한 주부였고 깔끔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한현진이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는 주혁
회의실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자 한현진은 물건을 정리한 뒤 아직 자리에 앉아 있는 서해금을 향해 파일을 들고 다가갔다. “아주머니, 방금 지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해금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가 직원들을 생각해서 한 거니까 당연히 지지해야지. 우리 모두 같은 회사에 있는 한 하나의 팀이니까.” 한현진도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주머니가 제가 먼저 조사를 했다고 문제 삼지 않으셔서 다행이에요. 그리고 집에 보내주신 곤약도 가람 씨 통해 잘 받았어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해금은 여유 있게 말했다. “가족끼리 서로 아끼는 거지. 너무 예의 차리지 마.”한현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 제가 회사에 온 이래로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쓰게 해드렸어요. 제가 성격이 직설적이고 고집도 세서 가끔 말이 거칠어질 때도 있어요. 그런데도 아주머니께서 항상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아빠한테 들었어요. 아주머니가 아빠한테 저를 칭찬해 주셨다고요. 그 말을 들으니 저도 마음이 무겁고 어쩌면 제가 너무 어리석게 행동했나 싶어요.”“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서해금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얘가 무슨 말이야. 어른이 아이와 다툴 일이 뭐가 있겠어? 현진아, 아주머니는 네 친엄마는 아니지만 너희 어머니와는 정말 소중한 친구였어. 네가 송씨 가문에 돌아올 수 있게 되어 아주머니는 그 누구보다 기뻐.” “지금 네가 집안에서 가람이랑 함께 지내는 걸 보니 젊은 시절 너희 어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가끔 떠올라. 우리가 반평생을 함께 지냈고 너희는 진짜 자매가 된 거지. 이것도 하나의 인연이란 거야.”한현진은 속으로 토할 뻔했다. ‘정말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고?’만약 당시 아이를 바꾼 일과 그녀 어머니의 죽음이 모두 바로 눈앞에 있는 이 온화하고 친절한 여자과 관련이 있었다는 여러 가지 증거들이 없다면 이렇게 진심 어린 말투를 들었을 때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
하지만 이 제안이 실행되면 소문이 돌아 사람들이 그것을 한현진 덕분이라고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서해금은 아마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서해금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안은 나쁘지 않지만 실비보험은 본래 회사가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기본적인 보장이기에 만약 직원들에게 요금을 부과하게 되면 일부 사람들은 이를 회사가 급여를 삭감하려는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직원들의 가족은 병원을 거의 가지 않아 이 비용이 꼭 필요한 지출은 아닐 수 있어요. 그런데 전액을 회사가 부담하게 된다면 일부 직원들이 가족을 허위로 신고해 다른 사람의 보험을 대신 받으려 할 가능성도 생길 수 있을 겁니다.”한현진은 그녀가 이렇게 말할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말하는 방식에 약간의 여유를 두었다. 서해금이 자신의 의문을 제기하자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직원들이 가족을 위한 보험을 구매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자발적입니다. 회사는 강제로 요구하지 않아요. 다만 구매의 문턱을 낮춰놓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원하는 사람은 구입하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추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말이에요.” “서 대표님 생각은 어떠신가요?”서해금은 입술을 꽉 다물고 잠시 침묵한 후 말문을 열었다. “현진 씨, 구입을 개방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쪽은 괜찮지만 보험사와의 협상이 필요해요. 어떤 보험사도 손해 보려고 하진 않잖아요.” 한현진이 살짝 웃으며 답했다. “보험사와의 협상은 제가 맡을게요. 지금 여쭤보는 건 서 대표님 개인의 의견이에요. 동의하시는지요?” 서해금은 당연히 반대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회의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반대한다고 말하면 그 소문이 바로 회사 전체에 퍼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가 그동안 쌓아온 직원들을 위하는 좋은 상사의 이미지가 무너질 게 뻔했다. 서해금은 절대 자기를 망칠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서해금은 잠시 침묵한 뒤
이틀 후 깔린느 정기 회의에서 서해금은 직원들의 건강검진을 언급하며 각 부서가 직원들의 시간을 조율하고 차례로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말했다. 말을 마친 후 시간을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그럼 특별한 사항 없으면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잠깐만요.” 한현진이 서해금의 말을 가로막았다. 모두가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서해금도 눈을 들어 한현진을 응시하며 여유 있게 말했다. “현진 씨, 더 지시할 거라도 있어요?” 한현진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지시라뇨. 이 자리에 계신 분들 모두 제 선배님들이세요. 업무적인 부분은 앞으로도 많이 배우고 의지해야 할 분들입니다. 다만 서 대표님께서 직원 건강검진에 대해 언급하신 걸 듣고 마침 오늘 회사 고위층 분들도 다 계셔서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어서요.” “서 대표님, 괜찮으실까요?”모두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한현진이 아마도 회사 관리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회사에 온 지 몇 달이 되었고 비록 진씨 가문 사모님 홍혜림을 중심으로 몇몇 고객을 끌어들였지만 서해금의 기반은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실력 차이가 매우 컸고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큰 진전이 없었으니 한현진은 분명히 조급할 것이다.서해금은 두 손을 가볍게 포개어 테이블에 놓고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정기 회의는 원래 경영진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어떤 의견이라도 편하게 말씀하세요. 좋은 제안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적극적으로 채택할 겁니다.” 그녀는 매우 너그러운 태도로 민주적인 자세를 보여주었고 이것이 바로 서해금이 이렇게 확고한 위치를 유지하는 이유였다. 회의에서 나온 의견과 제안은 결코 당면에서 거절하지 않으며 오히려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뒤에서는 다른 수단을 써서 상대를 밀어내는 법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는 데 그녀는 능숙했다.한현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 대표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직설적을 말
송가람은 급히 말을 이었다. [지금 저도 정확히 알 수가 없어요.] 그녀는 강한서보다 더 초조해했다. 황 닥터는 금지된 물품을 소지하고 있던 이유로 출국 금지 명령을 받았고 당분간 국내로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가 오지 않으면 강한서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는 분명히 모든 것을 기억해 낼 것이다. 송가람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한서 오빠, 저랑 같이 외국에 가서 교수님한테 진료받으러 갈래요? 그쪽에서 꼭 잘 봐주실 거예요.] 송가람은 더 이상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강한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가람아, 평소 같았으면 바로 갔겠지만 지금은 안 될 것 같아. 너도 알잖아. 요즘 한주시 상황이 얼마나 복잡한지. 난 지금 이곳을 떠날 수 없어. 정말 어쩔 수 없으면 여기서 다른 의사를 찾아서 진료를 받는 방법을 찾아볼게.][그럴 수는 없어요!] 송가람이 목소리를 높였다. 강한서는 잠시 멈칫했다. [왜 안 되지?] 송가람은 자신이 너무 지나치게 행동했다는 걸 깨닫고 잠시 말을 더듬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교수님은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뇌과학 전문가 중 한 분이세요. 국내 의사들하고는 비교도 안 되죠.]의사를 바꾸면 강한서가 예전에 사용한 약에 대해 물어볼 것이었고 그렇다면 그녀는 그것을 말해야 하므로 폭로될 위험이 있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었다. 강한서는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네.]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킨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그 약은 효과가 좋았어. 매번 먹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잡생각들이 사라졌거든.] [그런데 지금은 그 약이 다 떨어져서 최근에 다시 두통이 찾아왔어. 그 약만 있으면 황 닥터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텐데.]송가람의 눈이 번쩍였다. ‘맞다. 그 약이 있었지.’ 그녀는 속으로 들뜬 마음을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서 오빠,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하지만 이 보험은 직원 개인에게만 해당되며 가족은 이 보험을 가입할 수 없다. 지금 강한서의 의도는 이 혜택을 직원의 가족에게까지 확장하려는 것이다. 주혁은 집에 두 명의 환자가 있고 약을 자주 복용해야 한다. 만약 그가 회사의 이 선의를 거절한다면 그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 예전에 아들을 위해 인공 와우 이식 수술을 받을 돈을 마련하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직장을 잃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절대로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강한서의 개인적인 의도도 있었다. 이런 세심한 직원에 대한 배려는 점차 아래 직원들이 한현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위층은 작은 이익에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일반 직원들에게는 다르다. 대부분 사람들이 열심히 돈을 버는 이유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다. 그들 대부분은 삼십대에서 마흔다섯 사이로 이 나이대의 사람들은 부모님을 부양하고 자식들을 키워야 한다. 회사가 약속한 성과급 같은 허황한 말보다는 이런 쉽게 보상받을 수 있는 실비보험이 직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기 때문에 더욱 마음을 얻을 수 있다. 한현진은 마치 뭔가 깨달은 듯 강한서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이렇게 사람 마음을 얻는 거구나.” 강한서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사실 처음엔 이런 생각까지는 못 했어. 할머니가 병원에 갈 때는 항상 진씨 아저씨랑 같이 가서 내가 직접 겪을 일이 거의 없었거든. 이런 일도 거의 없었고.” “그런데 한 번은 민 실장이랑 같이 출장 가는 길이였어. 그때 민 실장 어머니께서 비를 맞으면서 우리를 마중 나왔는데 길이 미끄러워서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셨어. 가벼운 사고가 나이었고 수술이 필요한 정도로 심했었지.”“그때 민 실장한테 병원에 남아서 어머니를 돌보라고 하고 혼자 고객을 만나러 갔어. 며칠 만에 일을 마치고 병원에 들렀더니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이었어.” “그런데 입원부터 치료까지 전부 합쳐서 거의 천만 원 가까이 들었더라. 민 실장은 보험 청구를 했
강한서가 가식적인 말투로 말했다. “부탁할게. 나중에 내가 너랑 여정 씨에게 크게 한 턱 쏠게.”강한서에게 등을 돌린 신우가 손을 들어 중지를 내밀었다. 한현진이 강한서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신우 씨가 널 꽤 귀찮아하는 것 같아. 전에 여정 씨에게 신우 씨는 욕을 하지 않는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아닐 걸?”강한서가 헛소리를 지껄였다. “난 우리 사이가 좋다고 생각해. 봐봐, 지금 얼마나 열심히 우릴 도와주고 있어.”한현진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그래? 난 왜 신우 씨가 마지못해 하는 것 같지?’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이제 이런 일로 신우 씨 번거롭게 하지 말자. 우리 다른 방법 찾아보자. 언제까지 부탁할 순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도 계속 신우에게만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신우처럼 능력 있고 입도 무거운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현진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언제까지 신우에게 부탁할 수는 없었다. 신우의 할아버지가 위독하시기 때문에 지금은 삼촌들의 후계자 싸움이 가장 치열한 시기였다. 수많은 눈이 서로의 약점을 노리고 있었기에 신우의 처지 역시 살얼음판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그 어떤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 신씨 가문에서 요즘 경쟁이 제일 치열한 것이 바로 제일 많은 계약금이 걸린 프로젝트였다. 강한서는 이 기회를 빌려 신우에게 투자금을 보태 그동안 진 신세를 갚을 생각이었다. 그날 오후, 지문 대조 결과가 나왔다. 편지 봉투와 그림에는 한현진과 강한서의 지문을 제외한 세 사람의 지문이 있었다. 그 세 사람 중 한 명은 주혁의 아내였고 또 다른 사람은 주혁의 아들인 주지호였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지문 대조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또 다른 사람의 지문이었다. 그 결과에 한현진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이 정보를 따라 뭔가를 캐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겼지만 이렇게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사 결과는 결국 시스템에조차 등록되어 있
시원하게 욕을 날린 신우는 의리 있게 강한서의 부탁을 들어줬다.10여 년 전 주혁이 경찰서에 남겼던 지문을 받은 강한서는 곧 생체 인식 실험실에 보내 두 지문을 대조하도록 했다. 2시간도 지나지 않아 결과가 나왔다. 한지와 편지봉투에서는 주혁의 지문을 찾을 수 없었다. 그 결과에 한현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뭔가 착오가 있는 거 아냐? 그때 직접 손으로 나에게 건네줬었어. 심지어 장갑도 하지 않았는데, 지문이 안 나왔다고?”신우가 말했다. “여긴 여정이와 여정이 사수가 함께 만든 실험실이에요. 게다가 형사들과 자주 협력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지문 대조 시스템은 여길 따라올 곳이 없어요. 한 번도 틀린 적 없었어요.”신우의 말은 지문 대조 결과가 틀렸을 리가 없다는 얘기였다. 신우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냈다. 이제 막 담배 한 대를 꺼내려던 그때, 손에 들린 담배가 강한서의 손에 내쳐져 툭, 쓰레기통으로 떨어졌다. 신우: ???머리가 복잡했던 한현진은 두 사람을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왜 없는 거지?”여전히 오리무중에 빠진 한현진과 달리 강한서는 이미 눈치 채고 있은 듯 말했다. “혹시... 지금 그 사람은 애초부터 주혁이 아니었던 거야. 그래서 경찰에게 지문이 남아있을까 봐 그런 방법의 자신의 모든 지문을 지워버린 거야. 자신의 진짜 신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강한서의 추측에 한현진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떻게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그건 너무 많이 앞서간 거 아냐? 기사님은 가족도 있고 아이도 있어. 만약 정말 사람이 바뀐 거라면 가족들은 눈치 채야 하는 거 아냐?”“데가 이 세상에는 그렇게 똑같이 생긴 사람은 없어. 아무리 닮은 쌍둥이라고 해도 가족들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잖아.”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어쩌면 가족들은 원래 그 사람이 돌아오길 바라지 않을 수도 있지.”한현진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얼른 강한서에게 물었다.
“얼른 다시 가져와. 급히 쓸데가 있어.”강한서: ?“왜 그래?”한현진이 말했다. “전화로 얘기하긴 복잡한 일이야. 아무튼 얼른 전화해서 그림 다시 가져오라고 해. 만약 안 건드렸으면 못 건드리게ㅔ 하고 만약 꺼냈으면 얼른 다시 포장하라고 해. 내가 금방 갈게. 만나서 더 자세하게 얘기해 줄게.”강항서가 대답했다. “알겠어. 지금 당장 다시 가져올게.”한현진은 일찍 퇴근하고 집으로 향했다. 전화에서 한현진이 워낙 급하게 얘기한 탓에 강한서도 그녀가 걱정이라 손에 있던 일을 미리 마친 후 칼퇴근해 집으로 돌아왔다. 만나자마자 강한서를 본 한현진이 물었다. “기사님 아직 그림 안 넣었지?”강한서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네가 너무 일찍 얘기해서 넣지도 못한 상황이야. 네가 그림을 가진 후로 우리 두 사람을 제외하면 아무도 그림을 본 적이 없어.”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랍에서 일회용 장갑을 꺼내 낀 후 그림과 평지를 함께 꺼내 일회용 봉투에 넣었다. 한현진의 행동을 본 강한서의 눈가가 파를 뛰었다. “증거 수집해?”한현진은 봉토를 밀봉하며 말했다. “정말 증거가 될 수도 있어. 일단 가직해 둬.”“대체 무슨 일이야?”한현진이 장갑을 벗고 나서야 강한서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과 본인의 의심과 의혹을 얘기했다. “이번 주에 기사님께서 뭔가 사고를 친게 틀림없어. 그래서 재판장에서 지문 인식하는 걸 거부하는 거겠지. 만약 기사님이 전과범이고 회사에서 그 사람을 그대로 둔다면 기사님이 영향을 끼치는 것 나뿐만이 아니야. 그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내가 생각해봤는데 일단 지문을 수집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일단 고여정 씨께 이 사람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아봐. 그래야 만일이 사태에 대비를 하지.”한현진의 말을 들은 강한서가 의문을 제기했다. “주혁 씨의 지문은 이미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어. 무슨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신상 조회를 하면 바로 나올 텐데 지문을 지우는 게 무슨 소용 있어?”한현진이 멈칫했다. “없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