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게 말해서 안 들으면 나도 어쩔 수 없지!'________유현진이 페이스북을 끄자마자 민경하에게서 연락이 왔다.'한밤중에 기분 나쁘게 왜 다들 연락하고 난리야?'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민경하의 연락을 무시했다.그녀는 민경하가 귀찮은 것이 아니라 강한서와 연관 된 말이 듣기 싫었을 뿐이다. 그녀는 강한서와 엮이기 싫었다.유현진이 전화를 받지 않으니 민경하는 쉴 새 없이 전화를 걸어왔다.보다 못한 간병인이 말했다. "현진 씨, 전화 받아봐요. 혹시라도 급한 일이면 어떡해요?""급한 일은 무슨."유현진은 입술을 삐죽거리더니 결국 전화를 받았다."사모님, 대표님 체온이 39도까지 올라갔어요. 집에 해열제 있어요?"유현진은 멈칫하더니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39도까지 올라갔는데 해열제가 뭔 도움이 되겠어요! 얼른 병원부터 데려가요!""대표님이 안 간다고 고집부리시니 저도 어쩔 수 없어요. 해열제라도 드시고 열 내려야죠. 게다가 아주머니까지 자르셔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저도 잘 몰라서 사모님한테 연락드리는 거예요."'열이 펄펄 나는데도 병원에 안 간다니 강한서 미쳤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강한서의 아버지도 처음에 고열에 시달리다 병원에 간 뒤로 병세가 심해져 세상을 떠났다. 아마 그때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강한서는 열만 나면 투정이 많아지고 약도 먹기 싫어하고 병원은 더더욱 가기 싫다며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그러니 유현진은 민경하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유현진은 입술을 한번 깨물더니 급히 말했다. "아래층 거실 테이블 서랍에 약상자가 있어요. 거기 보면 해열제 있을 거예요. 일단 하나 먹여보고 반 시간 뒤에도 열이 내려 안 가면 끌어서라도 병원 가세요!"민경하는 간결한 대답을 끝으로 급히 전화를 끊었다.유현진은 다른데 신경 팔 틈이 없이 병실에서 쉴 새 없이 갔다 왔다 하며 불안해했다.강한서가 마지막으로 열이 난건 작년이었다.때는 가을에 들어설 무렵이었다. 갑자기 날씨
유현진은 마음이 식어버렸다. 그녀는 그때부터 마음속에 강한서에 대한 화를 심었었다.강한서가 자기와 결혼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과 강한서의 마음속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은 유현진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린 유현진은 자신감이 가득해 결혼도 했으니 강한서도 마음속의 사람을 내보내고 자기를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다.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녀의 착각이었다. 강한서의 마음에는 늘 다른 여자가 있었고 유현진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다.38도가 조금 넘었을 때도 인사불성이었는데 이번에는 더 심하니 저번보다 더 상태가 좋지 않을 게 뻔하다. 아마도 상처가 덧나면서 염증으로 인한 발열 증세일 것이다.아무리 강한서를 원망한다 해도 그녀는 강한서가 아프길 원하지 않았다.잠깐의 생각을 마친 그녀는 간병인과 인사를 나누고 병원을 나섰다.전화를 끊고 민경하는 이내 해열제를 찾았다. 민경하는 물 한 컵을 들고 계단을 올랐다.강한서는 침대에 누워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은 보기에도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민경하는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대표님, 일단 약부터 드세요. 사모님이 그러는데 약 드시고 반 시간 뒤에 다시 체온을 재 보아서 열이 내리기 시작하면 병원에 안 가도 된대요."강한서는 힘겹게 눈을 뜨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전화하라고 그랬어요?"분명 화를 내는데 열이 나서 그런지 목소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어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민경하가 말했다. "해열제를 찾지 못해서요. 열이 이렇게나 나시는데."강한서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뭐래요?""그러니까... 약 꼭 드시게 하라고 그랬어요. 많이 걱정하시더라고요."강한서는 민경하의 어처구니없는 말을 믿을 리가 없었다.강한서는 한참 침묵하다가 차갑게 말했다. "나가보세요.""대표님, 약부터 드세요."강한서는 눈살을 찌푸리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가라고요!"민경하도 더는 말을 안 하고 해열제를 놓은 뒤 거실에서 나왔
유현진은 그 모습에 화나기도, 우습기도 했다.강한서의 모습은 마치 유현진이 어릴 때 집 앞에서 보았던 들고양이와 같았다.반년을 넘어 먹이를 주었는데 어느 날 집 문을 열다 실수로 들고양이의 머리를 발로 차버린 후로는 절대 자기를 못 만지게 했다.그녀가 손을 내밀 때마다 들고양이는 강한서처럼 머리를 돌려 피했다.유현진은 비록 들고양이는 못 잡았지만, 강한서를 상대하는 데는 방법이 있었다.그녀는 강한서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신발을 벗어 던지고 그의 몸을 타고 앉아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강한서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어쩔 바를 모르고 있다가 한참 뒤에야 바둥거렸다.평소 같으면 유현진의 힘으로는 강한서의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의 강한서는 도리어 아픈 고양이처럼 유현진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유현진은 손쉽게 강한서의 단추를 풀어버렸다."유현진, 당신 지금 뭐 하는 짓이야!"강한서는 화가 난 건지 몸이 불편해서인지 얼굴에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다가 목까지 빨개지기 시작했다.강한서의 허리에 올라탄 그녀는 갑자기 이 남자를 정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기분이 나쁘지 않았다.유현진은 체온계를 강한서의 겨드랑이에 넣고는 이불을 덮어주더니 인터넷에서 배운 애교스러운 말투로 강한서에게 말했다. "당신 몸을 못 본 것도 아닌데 부부끼리 왜 그래?"강한서는 화가 나 헛기침이 나왔다.유현진은 강한서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진정시켜 주었다. "당신이 내 앞에서 이렇게 다 벗고 있는 걸 내가 불쾌해하지 않는데 당신이 왜 투정이야."강한서가 뚜껑이 열릴 것 같은 기분에 유현진을 한바탕 혼내려고 입을 벌리는 순간, 유현진은 기회를 틈타 강한서의 입에 해열제를 밀어 넣고는 그의 턱을 받쳐 들었다. 약은 이내 목구멍으로 흘러 내려갔다.강한서는 워낙에 몸이 안 좋은 데다가 유현진의 시달림까지 받았는데 결국 한마디도 못 하고 웃고있는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어때, 안 쓰지?"강한서는 화가 나는데도 화가 나오지 않았다.강한서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 "쓴지 안 쓴지는 당신도 목구멍에 약 넣
강한서는 열이 펄펄 끓었다. 작은 움직임에도 헐떡거릴 정도였다. 그가 내쉬는 숨결도 뜨겁기 그지없었다.'병든 고양이가 따로 없는데 아직도 날뛰네.'유현진은 이 모습을 비웃고 싶었지만, 그녀가 만약 진짜로 비웃었을 땐 강한서가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에 생각을 접었다.'환자랑 다툴 거 뭐 있다고.'유현진은 한숨을 내쉬고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내가 잘못했어, 강 대표. 화내지 마, 열이 이렇게 끊는데 약도 안 먹고 병원도 안 가길래 내가 걱정해주는 거잖아.""날 그만 속여. 날 걱정한다면 두 날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은 건 어떻게 설명할 거야? 내가 어떻게 되기라도 하면 재산을 가로채 가려고 하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유현진, 이 세상에서 당신보다 거짓말을 잘하는 여자는 없을 거야!"'개자식, 아까는 자기밖에 모른다더니 이제는 거짓말쟁이라고? 아프지만 않았어도 발로 차버렸을 거야.'유현진은 그를 달래며 입을 열었다."만약 당신이 바보가 된다면 이혼하러 법정에 가도 나는 승산이 없어. 우리가 혼인신고하러 갔을때 생로병사를 막론하고 떠나지 않는다고 선서까지 했었는데 병에 걸렸다고 이혼하는건 말도 안되지."그 말에 강한서는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었는데 뒤이어 피도 눈물도 없는 유현진의 말이 들려왔다."적어도 2, 3년은 기다린 뒤에 그때까지도 완치 안 된다면 다시 이혼하지 뭐."강한서는 열이 하늘 끝까지 솟구쳤다.그는 그녀의 얼굴을 꼬집으면서 이를 악물고 말했다."꿈도 꾸지 마! 당신은 내가 낫길 바라지 않는 거잖아!"이혼을 생각도 하지 말라는 건지 아니면 재산을 탐내지 말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유현진도 이에 꼬치꼬치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강한서가 감기 때문에 정신이 온전치 않았기 때문이다.정신이 또렷할 땐 듣지 못했을 말이었기 때문이다.소리를 지른 강한서는 기침이 나왔다.유현진은 손을 뻗어 그의 등을 토닥이며 입을 열었다."나는 당연히 당신이 빨리 낫길 바라. 왜냐면 당신이 빨리 나아야 돈 많이 벌고, 돈 많이 벌어야 이혼하
그녀는 강한서가 일부러 집착하는 줄 알았으나 그녀의 오해였다. 왜냐하면 강한서는 이에"나도."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그럼, 당신이 먼저 가."유현진은 할 수 없이 먼저 가라고 말했다.강한서는 유현진에게서 손을 떼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일어서려는 그때 다리에 힘이 풀리며 꼬꾸라질 뻔했다.유현진은 민첩하게 그의 옷깃을 잡고 침대 방향으로 당겼다.그 급성 해열제의 약효는 엄청났다. 유현진도 예전에 한 번 먹었었던 적이 있었는데 먹자마자 잠이 몰려오고 사지에 힘이 풀렸다.강한서의 모습을 보아하니 약효가 제대로 올라온 듯싶었다."내려가서 민 실장님을 부를게."그녀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강한서는 그녀를 눌러 앉히며 말했다."가지 마!""나 혼자 당신을 부축하긴 어려워."강한서는 고집스러운 눈빛으로 얼굴이 시뻘게져서 한사코 민경하를 부르지 못하게 했다.유현진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녀는 강한서가 체면을 차리는 사람이라 민경하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면 자기의 카리스마 있는 이미지가 무너질까 봐 고집을 부리는 것으로 생각했다.그는 입을 벌려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날 부축해줘, 그러면 걸을 수 있어."강한서의 강경한 태도에 유현진 방법이 없어서 그를 부축하며 화장실로 갔다.화장실에 도착한 강한서는 그녀를 쫓아냈다.그녀는 원래 강한서가 화장실을 보는 것까지 도와주는 건 약간 어색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강한서는 나오지 않았다. 마침 그녀가 문을 두드리려고 한 순간 안에서 뭔가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유현진은 생각할 틈도 없이 않고 바로 문을 밀치며 들어갔다.강한서는 처참히 쓰러져있었고 사물함은 뒤집어 넘어져 물건들이 다 쏟아져 나와 있었다.그는 바지도 채 올려 입지 못한 상태였고 손과 바지엔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묻어있었다.그녀가 들어온 것을 본 강한서는 당황한 듯 급히 바지를 올리며 창백한 몰골로 호통을 쳤다."누가 당신보고 들어오래, 당장 나가!"유현진은 그 모습에 잠시 멈칫하다가 강한서
그녀는 상처를 붕대로 잘 감싼후 이미 잠들어있는 강한서를 발견했다.그녀는 약상자를 원래 위치에 돌려놓은뒤 잠시 생각한뒤 강한서의 곁에 누웠다.매 반시간마다 유현진은 일어나서 강한서의 체온을 쟀다. 새벽 두시가 될 즈음, 강한서의 체온은 드디어 38도로 내려왔다. 그녀는 한숨을 돌리고는 엄청난 졸림에 곁에서 잠에 들었다.그 다음날 강한서가 꺠어났을땐 몸은 훨씬 개운했다. 다만 어깨부분은 돌이 짓누르는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눈썹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그리고 어깨에 있는 무언가를 걷어내려고 했지만 그전에 유현진이 옆에서 자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머리속에서는 어제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들이 다시 생각났다.그는 유현진을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뻗어있는 팔은 천천히 움직여 그녀의 머리를 옆으로 옮겼다.어깨는 침자국으로 흥건했다, 강한서는 싫은 눈빛으로 유현진을 쳐다보고는 담요를 그녀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놓았다.유현진이 깨어났을땐 이미 점심이였다.강한서와 민경하는 이미 집을 떠난 후였다.(개자식, 온 밤동안 보살폈는데 고맙단 말 한마디도 없네.)그녀는 핸드폰을 들었다. 그제서야 차미주가 걸어온 몇 통의 전화를 발견하고는 급히 회신했다."너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는거야."차미주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난 또 니가 송민영 팬들한테 암살이라도 당한줄 알았네!""어제 저녁에 늦게 잤더니 지금 깨났어, 왜 그러는데? 전화를 왜이리 많이 했어?""페이스북 한번 봐봐.""페이스북은 왜?""한세정이 자신이 나오는 새 드라마를 홍보하는데, 기자가 물은 몇가지 물음에서 그 개년이 갑자기 널 까는거야, 네가 몸값을 억지로 올려서 고귀한척 한다고!"유현진은 눈썹을 찌푸리며 다급히 페이스북을 올랐다. 연예계뉴스에서 실검 1위가 바로 #한세정 선셋 스타# 이였다.그리고 바로 그 아래 기사의 제목은 #성우가 연기자 본인보다 더 극중 역할에 어울릴수 있을까?#그리고 이 두개의 기사는 서로와 대립되는 느낌이 났다.그녀가 기사를 클릭하자마자 차미주가 말한 그 동영상을 발견했다
"뭐라고?"차미주는 그녀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이에 유현진은"사실 유현아가 자주 쓰는 수법도 이럴땐 도움이 되네."차미주는 아직까지도 이 한마디의 의미를 추측하고있었다. 하지만 빠르게 그녀는 유현진의 반격을 볼수 있었다.반시간 후, 선셋 스타가 입장문을 발표했다."이 세상에서 똑바로 바라볼수 없는게 존재하는데 그중 태양을 빼면 남는건 사람마음뿐입니다."십분후 또 다시 한개의 메세지를 발표했다."모든 작업을 무기한 중지합니다."그리고 또 십분후 선셋 스타는 페이스북을 아이디를 로그아웃하며 완벽하게 은퇴를 선포했다.뒤이어 한 네티즌이 선셋 스타가 페이스북뿐만 아니라 모든 다른 커뮤니티 아이디까지 로그아웃을 한걸 발견했다.이에 얼마 지나지 않아 #선셋 스타 은퇴# 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검 1위에 올랐다.그녀는 한세정이 한 인터뷰에 대해 아무런 해명도 하지않았으며 네티즌들의 갖가지 의혹에도 대응하지 않았다.단 한마디 "똑바로 볼수 없는건 사람마음" 을 작별의 인사로 인터넷에서 은퇴를 결정했다.사실대로 말하면, 한세정은 이름을 말한적도 없고 그녀를 향한 실질적인 증거도 없었다, 그녀는 시간이 지나고 잠잠해지면 다시 이 업계에서 일을 받아 돈을 계속 벌수도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출연료가 적다고 남한테 피해주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한마디 훼방에 자기 밥그릇을 포기하는건 이치에 맞지 않았다.뒤이어 한 네티즌은 선셋 스타가 활동초기 더빙을 맡았던 아동독서를 가리키며 공익목적의 무료봉사임을 찾아내 밝혔다.아동독서뿐만 아니라 그녀는 여러차레 공익광고도 찍었었다, 맹인아동들을 위해 목소리선생님을 맡은적도 있었다.당연하게도 이것들은 출연료가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할 행동들은 아니였다.그다음 규선을 필두로 몇명의 성우계 대선배님들도 서로 나와서 선셋 스타를 옹호했다.거짓 소문에 대해 해명하기를, 성우의 출연료는 배우들의 출연료보다 훨씬 적고 1화에 몇만원 정도밖에 안할뿐만아니라 만약 발음이 부정확한 배우를 만날 경우엔 입모양을 맞춰 더빙하는데만 하루를
그녀는 유현진이 이걸 빌미로 선셋 스타 아이디를 로그아웃할줄은 생각도 못했다.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이 수법은 너무나도 교묘하고 수준이 높아서 한 쪽으론 자신을 완벽한 피해자로 위장하였고 또 한 쪽으론 전성기에 은퇴를 결정하며 그녀가 만들었던 인물은 팬들사이에서 길이길이 남게될 우상이 될것이 분명했다.우상이 다시 복귀했을때, 필히 또 한번의 바다폭풍을 몰고올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천만 팔로워의 아이디를 이렇게 깔끔하게 포기하는건 아쉬운감이 없지않아 있었다. 그녀라면 무조건 미련이 남았을거라고 생각했다.그녀는 문뜩 발견하기를 송민영의 행동과 그릇이 유현진에 비하면 발끝에도 못미친다고 생각했다. 강한서 그 개자식은 눈이 삐였는지 가만히 있는 백장미를 마다하고 똥을 좋아한다는 것에 그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한성 그룹.강한서는 연속으로 재채기를 했다.민경하는 급히 물 한잔을 떠오며"강 대표님, 잠시 쉬시는건 어떻습니까?"강한서는 미간을 손으로 집더니 이에 손사를 쳤다."커피 한잔 좀 타줄래?"민경하는 사무실에서 나오자 밖에서 계속 주시하고 있던 유현아는 바로 뒤를 쫓았다. 그리고는 우연히 민경하와 만난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민비서님, 우연이네요."민경하는 유현아와 몇번밖에 만나지 못했었기에 그녀와 친한 관계까진 아니였다, 그래서 이런 인사는 살짝 어색함이 없지 않았다.하지만 민경하는 예의를 차리며 이에 응했다."비서님은 형부님께 커피를 타드리는 중이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감사하지만 사양할게요. 강 대표님은 다른 사람이 자신 컵에 손대는걸 싫어하셔서."유현아의 손은 허공에서 멈췄다. 그리고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제가 언니한테서 들었는데 형부께서 결벽증이 있으시다고."민경하는 잠시 멈추고는 일깨워주는 어투로 말을 계속 이었다."아가씨, 여긴 회사예요. 강 대표님은 공과 사를 구분하는걸 좋아해요. 그래서 아가씨께서 호칭을 주의해주시길 바래요,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수도 있으니까요."민경서는 그 자리에서 그녀의 노림수를 간파했다. 이에 유현아는 화가 머리
염색은 한 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잘생긴 포즈로 거울 셀카를 찍은 진윤이 강한서에게 사진을 전송했다. [다시 시작.]강한서는 사진 속 검은 머리에 순해 보이는 젊은이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의 웃음소리에 읽던 책을 내려놓은 한현진이 고개를 돌려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왜?”강한서가 진윤의 셀카를 한현진에게 보여주었다. 한현진 역시 사진을 보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어쩐지 금발에 눈썹도 살짝 밀어버리는 스타일을 고집하더라니. 눈썹 피어싱까지 빼니까 그냥 아기였네. 너무 귀엽게 생겼잖아. 훈이보다 어려 보여.”강한서도 한현진을 따라 웃었다. “선배도 그렇잖아. 50살도 넘은 분이 아직도 30대처럼 보이니까. 성우가 처음 선배를 봤을 때 형이라고 불렀다가 예의 없다고 혼났어. 그러다 다른 애들도 형이라고 하니까 말이 없더라고.”그 장면을 상상한 한현진은 웃음을 멈추질 못했다. “역시 동안이 좋아. 50대가 되어서도 얼굴 하나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살 수 있잖아. 난 왜 동안이 아닐까?”그 말에 멈칫한 강한서가 한현진을 힐끔 쳐다보았다. “누구 마음을 사려고?”한현진이 눈웃음을 지었다. “강 대표님, 몇 십 년 후의 일도 미리 질투하실 거예요?”강한서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 정도는 아냐.”한현진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정말?”강한서가 확신에 찬 말투로 대답했다. “안 해, 질투.”예상 밖의 대답에 호기심이 불타오른 한현진이 물었다. 몇 십 년 후엔 사랑보다 정으로 사는 거라 신경 쓰지 않는 거야?”강한서가 대답했다. “그건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어.”“뭔데?”강한서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몸이 살아있는 한 그대들은 그저 첩에 불과해.”멍해졌던 한현진이 폭소를 터뜨렸다. 그녀는 강한서를 품에 안고 뽀뽀 세례를 날렸다. “진지한 얼굴로 실없는 농담을 던질 때 정말 귀여워 죽겠다니까.”강한서가 힐끔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이런 걸 바로 조강지처의 자신감이라고 하는 거야.”한
순간 불쾌한 기분에 빠진 진윤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아마추어 경기는 사석에서 주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전문적인 레이싱 경기도 아니었다. 오직 속도에서 주는 쾌락만을 추구하는 경기였다. 상금이 높은 만큼 위험부담도 컸다. 하지만 진윤이 경기에 참가한 것은 상금 때문이 아니었다. 돈 걱정 없이 산 진윤이 목숨 건 돈에 욕심낼 필요는 없었다. 그는 단지 경기의 주최 측에 F1 레전드 인물도 있다는 소식에 우승을 하면 그 사람과 만나 얘기를 나눌 기회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 참가한 것이었다. 진윤은 그의 팀원들 역시 레이싱에 대한 열정으로 함께 지금까지 뭉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자신을 무시하는 친구의 말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모든 사람이 진윤처럼 레이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프로 선수가 되길 꿈꾸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들이 사랑하는 것은 어쩌면 레이싱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지니고 있는 상금이라는 거대한 유혹일 수도 있었다. 팀원 중 위험한 내기 경기에 참석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진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경주마처럼 미친 듯이 산길을 휘저었다. 목숨을 내걸고 재벌들의 도박판에서 기꺼이 주사위가 되었다. 아차 하는 사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경기에서 이기면 그만큼 어마어마한 상금이 주어졌다. 불행히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고 해도 그의 가족들은 놀라운 액수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으니 위험을 감수하고 뛰어드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처음으로 팀원에게 그 얘기를 들었을 때의 진윤은 충격에 빠졌었다. 하지만 팀원들은 마치 일상적이 대화를 하듯 당연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때의 진윤은 그저 그들이 비슷한 일을 너무 많이 들은 탓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들은 그렇게 위험 부담마저도 부러웠었던 같았다. 팀원 중 대부분의 사람에게 레이싱은 그저 짧은 시간 사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도구에 불과했다. 뜬 눈으로 꿈을 꾸고 있는 진윤이야말로 그들에겐 이상한 인간
“아들. 네가 공부가 하고 싶다면 복수 전공이 아니라 10개 전공을 배우겠다고 해도 엄마는 찬성이야. 엄마 지금 너무 기뻐. 만약 농담하는 거라면 지금 당장 거짓말이었다고 얘기해. 안 그럼 엄마는 진심으로 받아들일 거야.”진윤이 웃으며 홍혜림의 팔을 끌어안았다. “엄마. 저도 형처럼 엄마의 자랑이면 안 돼요?”홍혜림이 진윤의 금발을 어루만졌다. “너도 예전엔 엄마의 자랑이었지. 금발로 염색한 후로는 자랑이 아니게 되었지만.”진윤: ...“그럼 다시 염색할게요.”홍혜림이 얼른 헤어숍 VIP카드를 건네며 말했다. “얼른 가. 여긴 새벽 12시가 되어야 영업이 끝나는 곳이야. 지금 가면 아직 시간 있어.”진윤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홍혜림이 얼마나 진윤의 금발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네, 네, 네. 지금 갈게요.”외투를 챙겨주며 문앞까지 배웅 나온 홍혜림이 진윤에게 물었다. “아들. 조금 전에 누구한테 들은 말 때문에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잖아. 그 분 너희 교수님이셔?”“우리 교수님은 아녜요. 하지만 좋은 스승님이긴 해요.”‘사기꾼이기도 해. 하지만 꽤 능력 있는 사기꾼.’홍혜림이 호기심에 가득 찬 말투로 물었다. “그 분 한 마디에 바로 생각이 바뀐 거야? 내가 너한테 얼마나 많이 얘기했었는데, 그땐 들은 척도 안 하더니.”진윤이 말했다. “절 데리고 20km를 뛰었어요. 자길 이기면 날 뉴벨리 팀에 입단시켜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나보다 10살이나 많아서 나이 많은 어르신한테 지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졌어요.”진윤이 창피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저보다 빨리 뛴 건 아니었어요. 제가 적을 만만하게 생각한 거죠. 하지만 무서운 사람이에요. 지독하게 강해서 무서운 사람. 그 사람은 못 해낼 일이 없는 것 같아요. 입단은 무슨, 그냥 그 기회를 벌어 저에게 설교를 하려던 것뿐이었어요.”“내가 공부에 전념할 수 있게 레이싱을 그만두게 하려고. 처음엔 엄마가 보낸 스파이인 줄 알았다니까요. 하지만
진윤에게 묻는 홍혜림은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얘기해. 엄마 괜찮아. 파산이라도 하지, 뭐. 돈은 없으면 다시 벌 수 있어. 아빠가 안 된다고 하면 쫓아내면 돼.’처음으로 느끼는 죄책감에 진윤은 고개를 숙였다. 홍혜림이 비록 관리를 잘 하긴 했지만 귀밑머리는 이미 하얀 서리가 내려있었다. 큰형은 어려서부터 얌전하고 말을 잘 듣는 아이라 부모님의 속을 썩인 적이 없었다. 유독 진윤이 고집을 부리며 걸음마를 뗄 때부터 뒤에서 마음을 졸이게 했다. 진윤의 수능성적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지금 그가 다니고 있는 대학교 전공은 전부 부모님이 수많은 돈을 들여 기획한 결과였다. 하지만 진윤은 본인이 좋아하지 않는 전공이라는 이유로 자포자기하며 지냈다. 부모님이 통제욕이 강하다는 것은 그저 진윤이 그들에게 씌워놓은 프레임에 불과했다. 정말 부모님의 통제 속에서 살아가는 친구들은 매일 모든 스케줄, 심지어 먹는 음식까지 전부 부모님에게 보고해야 했다. 그런 사람에 비하면 그의 부모님은 그저 애교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레이싱을 좋아하는 진윤이 못마땅했지만 그럼에도 그저 설득하는 것이 전부였다. 홍혜림은 단 한 번도 진윤의 레이싱 장비를 부순 적이 없었다. 매번 더는 새 장비를 사주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 다짐도 진윤의 애교 몇 번에 곧 무너지고 말았다. ‘언제까지 실망만 안겨드릴 순 없잖아. 나도 엄마의 자랑이 되어야지 않겠어?’“엄마. 저 복수 전공하고 싶어요. 전 레이싱이 좋아요. 도무지 포기가 안 돼요. 저 실력 그 정도 아닌 거 알아요. 하지만 자동차 관련한 전공을 배워보고 싶어요. 지금 전공은 절대, 두 번 다시는 F학점 받는 일 없을 거라 약속 드려요. 복수 전공하게 해주면 안 돼요?”홍혜림: ??“그거 말고 다른 건 없어?”진윤이 멍해졌다. “네?”홍혜림이 말했다. “네가 나에게 하려는 말이 그거야?”진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네. 그게 아니면요?”홍혜림: “사람을 치거나, 교통사고를 낸 게 아니고?”
눈에 띄게 변한 진윤의 모습을 홍혜림은 믿을 수가 없었다.집 바로 앞이 학교라 진윤은 기숙사 생활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집에 자주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다. 집에서 레이싱 게임을 할 때마다 부모님의 잔소리가 끊이질 않아 진윤은 큰형 아파트에 몰래 숨어있는 것을 좋아했다. 진윤의 큰형은 일 때문에 그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9살이나 더 많은 그의 형은 가끔 부모님보다 더 진윤을 아끼기도 했다. 심지어 가끔은 진윤의 편을 들어 그의 비밀을 지켜주기도 했다. 큰형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러니 제발 눈치껏 본가로 들어오라고 홍혜림은 몇 번이고 진윤에게 얘기했었다. 사실 예비 며느리는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 진윤을 본가로 불러들이는 이유는 진윤이 곁에 없으니 도무지 관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윤은 그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매번 홍혜림이 같은 얘기를 꺼낼 때마다 그는 두 귀를 닫고 못 듣는 척 연기했다. 하지만 이번엔 홍혜림이 먼저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진윤 스스로 본가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진윤에 홍혜림은 혹시 형제가 싸우기라도 한 걸까 전화를 했지만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말에 홍혜림은 생각했다. ‘이 자식 또 무슨 사고라도 치고 돌아와서 얌전한 척 연기하는 거 아냐?’‘교통사고라도 내서 배상해 줘야 하는 건가? 아니면 레이싱 카가 망가져서 새 차를 살 돈이 필요한 건가?’‘설마 사람을 친 건 아니겠지?’진윤이 집에서 열심히 공부할수록 홍혜림은 점점 더 사람을 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매일 밤 아무 일도 없는 척 진윤의 방 앞을 서성이며 생각했다. ‘먼저 잘못을 인정하면 요즘 얌전하게 지냈던 걸 정상참작해서 욕을 좀 덜해야겠어.’하지만 3일이 지나도록 진윤은 홍혜림을 부르지 않았다. ‘이상해.’‘너무 이상하잖아!’‘설마 사람을 친 것보다 더 큰 사고는 아니겠지?’‘대체 얼마를 배상해야 하는 거야?’1 주일이 지나자 더 이상 참지 못한 홍혜림은 진윤의
진윤: ...강한서가 진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싫다면서 현 상황을 바꿔보려고 하지도 않은 거야?”진윤: ...‘왜 선생님께 혼나는 기분이 드는 거지? 진지하게 핵심만 꼬집고 있잖아.’입을 달싹이던 진윤은 변명이라도 해보고 싶었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진윤은 그동안 어떻게 반항해야할지,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 강한서가 말했다. “네 인생은 네 거야. 네가 열심히 살든, 대충 살든 네 하루하루는 다름없이 흘러가고 있어. 네 태도에 따라 싫었던 그 경험들이 사라지지 않아. 단지 네가 싫다는 이유로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않고 대충 흘려보냈을 뿐 그것들은 계속 존재해.”“대충 공부해서 대충 졸업하면 또 대충 취직이나 하겠지. 아니면 아예 너희 회사로 입사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다음에? 그렇게 평생을 대충 흘려보낼 거야? 그게 네가 원하는 인생이야?”멍하니 강한서를 쳐다보던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아뇨.”부모님이 선택해준 전공이 싫어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얼른 졸업하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강한서의 말처럼 졸업 후엔? 전공에 맞는 직업을 찾아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갈까, 아니면 부모님 회사에 입사해 되는대로 살아갈까. 어떤 선택이든 그건 진윤이 원하는 인생은 아니었다. 4년이란 시간을 허무히 흘러 보내고 나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전 이미 3학년이에요. 전과를 하기엔 늦었잖아요. 이젠 뭘 하려고 너무 늦은 것 같아요.”속상한 듯 대답하는 진윤의 말에 한현진이 말했다. “진윤 씨는 완전 MZ세대잖아요. 이제 갓 이십 대 초반인데 뭘 해도 늦지 않은 나이예요. 너무 빨리 본인의 가능성을 단정 짓지 말아요. 60세에 대학생이 됐다는 기사 못 봤어요?”“진윤 씨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도 늦었다고 생각 안 하는데, 진윤 씨가 왜 겁을 내요?”“전...”입술을 달싹이던 진윤이 한참이 지나서야 한숨을 내뱉었다. “두 사람 문제아 갱생
진윤은 6분 차이로 강한서에게 패배했다. 그가 결승점에 도착했을 때, 강한서는 이미 안정적인 호흡을 되찾고 있었다. 결승점을 통과한 진윤은 다리가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려 했다. 강한서가 다가가 그런 진윤을 일으켜 세웠다. “서서 쉬다가 나중에 앉아.”말하며 물뚜껑을 따 진윤에게 건넸다. “천천히 마셔.”진윤은 이 상황이 창피하기 그지없었다. 처음엔 강한서를 얕보고 경기에 진 자신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챙겨주는 강한서를 보며 자신이 너무 유치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숨을 몰아쉬며 강한서가 내민 물을 받은 진윤은 아무 말 없이 꿀꺽꿀꺽 물을 삼켰다. 한현진이 강한서에게 또 물을 한 병 가져다주며 나지막이 물었다. “넌 괜찮아?”강한서가 머리를 가로 저었다. “괜찮아.”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비록 꾸준히 러닝을 하고 있었지만 하프 마라톤을 뛴 건 오랜만이었다.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진윤을 쳐다보았다. 충격이 꽤 컸는지 입술을 삐죽이고 있는 아이는 풀이 죽은 얼굴로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기대했던 것만큼 큰 실망이 안겨왔다. 진윤은 심지어 주호를 앞에 두고도 대화를 나눌 의욕조차 찾지 못했다. “가자. 쉬다가 같이 밥이나 먹어.”진윤이 시선을 올렸다. “이겼다고 저랑 축하라도 하시게요?”강한서가 웃으며 대답했다. “조 회장님 소개해줄게.”멈칫한 진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제가 졌잖아요.”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졌으니까 팀에 입단할 수는 없지만 소개는 받을 수 있잖아.”강한서가 말을 이었다. “아니면 소개받고 싶지 않은 거야?”“아뇨!”다급하게 대답하던 진윤이 곧 쑥스러운 듯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 뭐야... 형님 그 나이에 체력이 아직도 좋으시네요. 제가 졌어요. 인정해요. 형님이 이기셨어요.”진윤의 말에 강한서가 멈칫했다. “그 나이라니?”곧 불혹의 나이라고 대답하려던 진윤은 강한서 뒤에서 눈짓을 보내는 한현진의 모습에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아부했다.
한현진은 한참을 멍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그녀는 강한서에게 그날의 일에 관해 물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강한서는 본인 덕에 한현진이 월급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얘기하지 않았다. 그러니 한현진은 줄곧 월급을 전부 돌려받을 수 있었던 건 주최 측에서 한현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밝혀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보니 꽤 단순한 생각이었다. 모터쇼라는 큰 활동에 주최 측에서 안내 요원까지 신경 쓸 리가 없었다. 알바의 잘못이든 아니든, 그건 그들의 관심 밖의 얘기였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제일 간단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강한서였어... 강한서가...’“강한서 그 자식, 마음을 꼭꼭 숨기기도 했네. 이미 그때부터 눈 여겨 보고 있었던 거네요.”감탄하는 주한과 달리 한현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선배님, 강한서가 절 도와줬을 땐 아무런 사심도 없었을 거라고 전 생각해요. 그날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이 저든 아니든, 한서는 그렇게 했을 거예요.”당시 강한서는 한현진을 부르지도, 인사도 하지 않았었다. 심지어 시간이 흘러 한현진이 다시 그 얘기를 꺼냈지만 그는 여전히 솔직한 사실을 털어놓지 않았고 그 일을 핑계로 점수를 더 받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한현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강한서가 한현진을 도운 건 절대 사심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조한이 웃으며 말했다. “사심이 있었든 아니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어쨌든 두 사람 인연은 삼심할 매가 쇠줄로 꽉 묶어놓은 것 같네요. 인연이 깊어도 너무 깊어.”한현진도 그 말에 깊이 공감하는 바였다. 만약 한현진이 죽은 그 태아와 바뀌지 않았다면 그녀와 강한서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둘도 없는 사이였을 것이다. 바뀌었어도 결국은 돌고 돌아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하늘이 이어준 인연이 틀림없었다. 진윤은 빠른 속도로 첫 바퀴를 완주했다. 강한서는 진윤과 2km정도 뒤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바퀴부터 진윤의 속도는 점점 느려졌지만 강한서는 여전
조한이 선글라스를 벗자 지적인 이미지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입꼬리를 올려 씩 웃으며 말했다. “학교 다닐 땐 선배라고 부르더니 졸업하니까 회장님이야?”강한서가 한현진을 향해 설명했다. “대학원 선배님이셔. 같은 지도교수님이었거든.”한현진이 조한의 비위에 맞게 대답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역시, 제수씨가 한서보다 낫네.”한현진과 인사 몇 마디를 나눈 조한이 강한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넌 나이가 몇인데 어린애랑 따지고 그래?”강한서가 말했다. “선배보다는 어려요. 제 아내는 아직도 대학생 같다고 하던데요.”조한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제수씨가 아이 달래듯 잘 하나봐.”한현진: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진윤도 도착했다. 강한서가 승부를 인정하지 않을까 걱정된 그는 증인이 되어줄 친구 두 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기세등등하게 걸어오던 진윤은 한현진을 보더니 곧바로 우물쭈물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더니 조한을 발견하고는 말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진윤은 그제야 강한서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정말 날 뉴벨리 팀에 추천해줄 수 있나봐.’조한이 장난스러운 말투로 진윤을 응원했다. “청년, 저 자식을 쓰러뜨릴 수 있다면 내가 팀장 자리도 고민해볼게요.”한현진도 진윤을 향해 말했다. “파이팅! 결승점에서 기다릴게요.”두 사람의 응원에 후끈 달아오른 진윤은 마음속으로 각오를 다지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진윤에게 한현진과 조한은 그야말로 우주대스타였다. 그러니 그들의 응원은 그에게 흥분제와도 다를 바가 없었다. 이 경기에서 진다는 것은 자신의 우상 앞에서 망신을 당하는 일이었다. 준비 운동을 마치고 시작을 알리는 경보음이 울리자 진윤은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어린 나이라 그런지 폭발력이 대단했다. 그는 곧 강한서와 차이를 벌리며 앞서나갔다. 강한서는 진윤의 속도를 따라 빨리 달리지 않고 꾸준히 똑같은 페이스를 유지했다. 한현진은 망원경을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