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는 돈을 받고 떨어져 나간 게 아니라 계속 제 남편과 연락을 주고받았더라고요. 제가 준 200억은 두 사람이 집을 사고 그 혼외 자식을 기르는 밑거름이 되었던 거예요. 더 어이없는 건 제 남편과 그 불륜녀가 자기 아들 생일 파티를 해줄 때마다 신미정 씨는 매년 선물을 보냈다는 거예요.”“제 남편은 멍청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이라 그 인간 머리로는 제 돈을 뜯어내려고 그런 방법을 생각해 내지도 못했을 거예요. 이건 전부 신미정 씨 그 똑똑한 머리를 잘 굴려 그 인간들은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를 주신 덕분이었죠. 그래서 저 같은 멍청이가 그 인간 혼외 자식을 기를 자금을 마련해 준 거고요.”“전 신미정을 씨를 제일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신미정 씨도 절 너무 아끼는 마음에 최선을 다해 제 남편이 바람피운 증거를 감춰 제가 그 멍청한 인간의 죗값을 대신 치르며 헌신하게 했죠.”“그런 건 다 참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인맥을 쌓기 위해 내 딸은 불구덩이에 집어넣진 말어야 했어요.”양시은은 말하며 신미정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올렸다. “당신도 딸이 있잖아. 어떻게 이렇게까지 악독하게 굴 수 있어!”말을 잇던 양시은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 깜빡했네. 당신 딸도 당신 눈엔 그다지 가치가 있는 건 아니었지. 본인이 며느리를 다치게 하고는 그걸 딸에게 누명을 씌웠잖아. 신미정 씨, 정말 비상계단에 CCTV가 없다고 생각해? 강씨 가문으로 돌아가 계속 사모님 행세를 하고 싶었어. 꿈 깨는 게 좋을 거야.”양시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동영상은 CCTV 화면으로 전환되었다. 비상계단에서 신미정은 기름통을 들고 계단 하나하나 기름을 바르고 있었다.또 다른 화면 역시 비상계단이었다. 강민서는 그녀가 말한 대로 봉투를 들고 비상계단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전화를 받은 강민서는 그제야 비상계단을 나섰다. 그 영상에 현장에 있던 하객들이 소란스러워졌다. 잔뜩 흥분한 차미주가 말했다. “양시은 씨 완전 나이스 샷. 어쩐지 이런 5성급 호텔
멈칫한 강민서가 고개를 돌려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강한서는 강민서에게 시선을 돌리지도 않은 채 덤덤하게 말했다. “전부 어머니 자업자득이야. 누구도 도울 수 없어.”누가 뭐라고 하든 강민서는 신미정 손에서 자란 아이였다. 한때는 신미정이 금이야 옥이야 아끼던 딸이었다. 비록 오늘 신미정이 한현진을 해친 죄를 강민서에게 뒤집어씌웠지만 강민서는 그럼에도 신미정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강민서는 강한서에게 도와달라고 사정해 보고 싶었다. 죗값을 치를 땐 치르더라도 사적으로 해결할 일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너무 창피한 일이었다. 하지만 강민서가 입을 열기도 전에 한성우가 말했다. “민서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어. 생각 똑바로 하는 게 좋을 거야. 네가 일어나서 아주머니를 도우면 너희 집안도 이 일에 연루되는 거야. 설사 나중에 너희 집안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도 그사이 겪게 될 여론의 풍파는 절대 가볍지 않을 거야.”한성우의 말에 강민서가 망설였다. 차미주도 옆에서 거들었다. “인간이 왜 그래요? 왜 따뜻하게 굴어야 할 땐 모질게 굴고, 독해져야 할 땐 성모 마리아라도 되는 듯 구는 거예요? 아까 저 여자가 죄를 뒤집어씌운 거로는 부족했어요? 정말 감옥에라도 처넣었어야 정신 차릴 거예요?”너무 직설적인 차미주의 말에 강민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주위를 둘러본 강민서는 누구도 나서서 신미정을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신미정은 사모님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인기와 명성은 별개였다. 다들 신미정을 떠받드는 건 그녀가 일 처리가 빠르고 인지상정이 바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녀가 강씨 가문의 며느리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실 신미정과 티타임을 즐기던 사람 중 다만 어떤 한 가지라도 신미정보다 나은 부분이 있는 사람은 그녀에게 은근히 눈치를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줄곧 안하무인에 콧대 높게 지내온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지면
신미정이 불효자식이라며 강민서를 욕하려는데 양시은이 다시 한번 그녀의 머리끄덩이를 잡았다. “전태평 개 같은 자식! 내가 몇 년 동안 뒷바라지하며 길을 닦아주지 않았다면 그 멍청한 머리로 오늘 그 자리까지 올라갔을 것 같아?”“그리고 당신도 마찬가지야.”양시은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회장님께서 수십 년을 데리고 있은 당신보다 손주며느리인 한현진 씨를 더 신뢰하시는 건 그분은 진작 당신이 돈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아무짝도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걸 아셨기 때문이야. 그런 당신이 강씨 가문을 손에 넣고 안주인이 되고 싶다고? 꿈 깨!”더 이상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던 강민서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오빠, 나 화장실 다녀올게.”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쯤 도착했겠지?’바로 그때,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다. 단상에서 벌어지고 있던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드디어 일단락되었다. 경찰은 다가와 두 사람을 떼어놓았다. 경찰을 본 신미정은 구세주라도 본 듯 양시은에게서 떨어지자마자 욕설을 내뱉었다. 그녀는 경찰에게 양시은의 행위는 고의 상해라며 고소할 것이니 당장 잡아가라며 소리 질렀다. “고의 상해?”양시은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우린 분명 쌍방 폭행이야.”말하며 그녀는 소매를 걷어 올려 방금 신미정에 의해 긁힌 팔뚝의 상처를 경찰에게 보여주었다. “형사님, 철저하게 조사해 주세요.”신미정이 버럭 화를 냈다. “이 미친 X이. 네가 먼저 때렸잖아.”양시은이 또 손을 올리려 하자 순간 놀란 신미정이 얼른 경찰 뒤로 몸을 숨겼다. 평소의 재벌 사모님다운 모습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경찰이 두 사람을 막으며 말했다. “저희 앞에서 손을 싸우려고 하시다니, 간도 크시네요.”제일 앞에 서 있던 경찰이 현장을 쓱 살피더니 생각했다. ‘어쩐지 신고자가 몇 명 데리고 출동하라고 하더라니. 현장이 이 지경이니 평소처럼 출동했다면 두 명으로는 어림도 없었겠네.’두 명의 젊은 경찰은 현장 질서를 유지하며 사건과 무관
신미정을 제압해 연행하려는데 검사가 걸어들어왔다. 현장으로 들어오는 검사를 보며 경찰들도 순간 멍해졌다. ‘새해부터 사건을 뺏으려는 거야?’검사와 얘기를 나눈 형사는 그제야 그들은 전태평의 일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틀 전, 양시은은 이미 전태평의 뇌물수수와 관련한 범죄 증거를 검찰에 제출했었다. 이틀 사이 검찰에서는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야근도 마다하지 않고 전태평의 사건에 매달렸다. 양시은이 제출한 증거가 전부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한 검찰은 바로 전태평을 체포했다. 검사를 본 전태평은 당장이라도 그 자리에 주저앉을 듯이 두려움에 떨었다. 겁에 질려 꼬리를 바싹 내린 강아지 같은 모습이었다. 그 멍청이는 다리가 떨려 제대로 걷지도 못해 검사와 그의 동료 두 명이 그를 둘러업고 조사실로 향했다. 양시은 곁을 지나치던 전태평은 드디어 정신을 차린 듯 그녀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시은아, 여보. 여보 살려줘. 나 감옥 못 가. 어머니 연세도 있으시고 고은이도 이제 막 대학 들어갔잖아. 내가 감옥에 가면 우리 애들은 어떡해. 전부 그 여자가 날 유혹한 탓이야. 그 여자가 임신해서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시은아, 시은아 나 좀 도와줘. 내가 앞으론 뭐든 네 말만 들을게. 시은아, 제발 부탁이야...”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장 비서 실장으로 승진해 의기양양하던 사람이 이젠 양시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물 콧물을 흘리고 있었다. 일말의 자존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양시은은 그 누구보다 평온한 마음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남자의 진면모를 알게 된 그 순간부터 양시은은 콩깍지를 벗고 현실을 직시했다. 전태평이 불륜을 저지르고도 양시은과 이혼하지 않은 건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당시 그의 처지에 양시은은 최선책이었을 뿐이었다. 내조를 잘할 뿐만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해 외조에도 애썼다. 그는 높은 곳에 올라 더 많은 선택지가 주어질 땐 아무런 미련도 없이 양시은을 버릴 생각이었다. 장씨 가문에서 정
멈칫, 행동을 멈췄던 차미주가 얼른 목소리를 높였다. “주 변호사님, 오셨어요?”한현진은 한입 베어 물던 사과를 한성우에게 던져 버리고는 얼른 다시 침대에 누워 허약한 척 연기했다. 그 모습에 한성우는 할 말을 잃었다. ‘연기력은 정말 흠잡을 데 없네.’그는 사과는 접시 위에 올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강운아, 안 갔어?”주강운이 걸어들어오며 침대에 누워 병약한 모습의 한현진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현진 씨 좀 보려고 왔어. 너희는 왜 현진 씨를 병원으로 모시지 않는 거야?”?“우리가 안 데려가는 게 아니라 여정 씨가 큰 문제는 없다고 해서 일단 지켜보는 중이야.”주강운은 말없이 침대맡으로 걸어가 나지막이 한현진을 불렀다. “현진 씨, 다친 덴 좀 어때요? 제가 병원에 데려다줄게요.”한현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 변호사님, 저는 괜찮아요. 여정 씨가 그저 찰과상이라고 했어요. 집에서 쉬면서 상처에 물 안 들어가게 조심하면 된대요. 너무 걱정되면 내일 가서 감사받으면 돼요.”잠시 말을 멈춘 한현진이 더 그럴듯하게 거짓말하기 위해 말을 이었다. “마침 내일 한서가 재검사를 받으러 가는 날이라 같이 가면 돼요.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어서 안 가려고요.”주강운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한현진의 머리와 다리에 감긴 붕대를 보며 나지막이 물었다. “정말 괜찮아요?”한현진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주 변호사님, 여정 씨 실력을 못 믿으시는 거예요?”주강운이 입술을 짓이겼다. 한 번 구겨진 그의 미간은 펴질 줄 몰랐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아주머니는 왜 그렇게까지 하신 걸까요? 현진 씨를 다치게 한 거로도 부족해 민서까지. 대체 동기가 뭐였을까요?”“그거야 당연히—”격분한 차미주가 막 입을 열려는데 누군가 그녀의 엉덩이를 꽉 움켜주었고 곧 그녀의 입에서는 돼지 멱 따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차미주는 빨개진 얼굴로 한성우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개자식, 이게 무슨 변태 같은 짓이야!”한성우가 무심하게 바지의 먼지를
한현진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에 등장하네.’뚜벅뚜벅 걸어온 강한서는 주강운과 한현진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그는 시선을 내려 주강운 손에 들린 부적을 바라보다 손을 뻗어 부적을 가져갔다. 강한서는 부적을 만지작거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렇게 영험한 부적이면 나중에 너도 인연을 만나게 해주는 부적 좀 써.”멈칫한 주강운이 고개를 들어 강한서와 시선을 맞췄다. 차미주는 한성우 품에 기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뭐 아주 아수라장이네. 이러다 싸우진 않겠지?’그녀는 강한서를 아직 제대로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한현진은 싸우는 건 젊은 친구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강한서는 초등학생처럼 싸우는 것보다 더 유치한 짓을 할 것이 분명했다. 한현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역시나 강한서는 손이 미끄러졌다. 그의 손에 있었던 부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테이블에 놓였던 컵으로 떨어져 물 위에 둥둥 떠다녔다. 깜짝 놀라던 강한서는 얼른 손을 넣어 부적을 주우려 했지만 당황한 나머지 부적을 물속에 더 깊이 담가버렸다. 그가 컵에서 꺼냈을 때 부적은 진작 물에 잔뜩 젖어 있었고 종이에 그려진 문양도 전부 번져버렸다. 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리고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 “부적이 물에 젖었는데 계속 평안을 지켜줄 수 있는 거야?”주먹을 꽉 움켜쥔 주강운이 부적을 몇 초간 빤히 쳐다보다 천천히 시선을 올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수신사에서는 일 년에 한 번만 치성드릴 수 있어. 많은 것을 빌면 효험이 없거든. 현진 씨는 네가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이루어졌잖아. 그리고 난 현진 씨의 평안을 바라는 부적을 가져왔으니 올해는 다른 부적은 받을 수 없어.”강한서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흥분한 차미주가 한성우의 옷깃을 꽉 잡았다. ‘강한서를 앞에 두고 현진이에게 마음을 표현하다니. 세상에. 너무 자극적인 스토리잖아.’한현진은 강한서 손에 들린 부적을 가져오더니 장난스레 말했다. “이 부적도 미리
‘그걸 깜빡했네.’보아하니 불 난 집에 부채질하러 가긴 그른 것 같았다. 아쉬워하던 한현진은 곧 다른 문제를 떠올렸다. “내가 다치지 않았으면 혹시 무죄로 석방되는 거야?”강한서는 한현진을 쳐다보지 않은 채 덤덤하게 대답했다. “호텔에서 방금 그 기름을 청소하던 직원분이 넘어져서 다치셨대요.”한현진이 멈칫했다. “직원이... 넘어져서 다쳤다고?”한현진을 힐끔 쳐다본 강한서가 말했다. “CCTV라도 보여줘요?”한현진이 입을 삐죽였다. “그냥 해본 얘기야.”강한서는 한현진이 손에 꼭 쥐고 있는 부적을 슬쩍 보더니 입술을 짓이겼다. “제 목에 물이 묻었어요.”그 말을 들은 한현진이 얼른 그의 목을 안고 있던 손을 바꾸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강한서가 또 입을 열었다. “손을 바꿔서 다른 쪽에도 똑같이 물을 묻히려고 그러는 거예요?”“...”“제 주머니에 넣어요.”강한서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럼 네 주머니도 젖잖아.”강한서가 말했다. “두꺼운 거 입어서 괜찮아요.”지극히 평온한 말투였다. 마치 그저 하는 말인 듯, 정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단순히 불편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한현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미 유치하게 굴었으니 또 질투하진 않겠지.’그렇게 생각한 한현진은 강한서의 말대로 부적을 그의 주머니에 넣었다. 차에 올라탄 강한서는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말하자 한현진이 물었다. “네 동생도 데리고 갈 거야?”강한서가 대답했다. “민 실장이 데려다줄 거예요.”“그럼 민 실장님께 우리도 데려가라고 하지, 왜 기사님까지 따로 불렀어?”강한서가 말했다. “불편해서요.”“불편할 게 뭐가 있어. 민 실장님이 우리를 처음 데리러 오는 것도 아니고.”한현진을 힐끔 쳐다본 강한서가 말했다. “민 실장은 아마 본인이 연애하는 모습을 자기 대표가 옆에 앉아 지켜보는 걸 좋아하지는 않을 거예요.”한현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충격적인 소식에 눈을 끔뻑거리던 한현진이 입술을 달싹이다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한현진은 강한서를 힐끔 쳐다보았다. 분노가 끓어올라 화를 내고 싶은 것이 분명했지만 기억 잃은 연기는 계속해야 했기에 참고 있는 것 같았다. 한참을 말이 없던 그가 드디어 한 마디 내뱉었다. “제가 죽었다고 생각했다면서 왜 환생석에 올라가 기도를 드렸던 거예요?”강한서에게 장난을 치려던 한현진은 그 말을 물으며 눈시울까지 붉히는 강한서가 너무 속상해 보여 마음이 약해졌다. ‘기억 잃은 척하고 싶으면 계속하라고 하지 뭐. 어떤 사정이 있든 무슨 이유든, 내가 받아주면 되니까. 무사히 돌아왔고 아직도 날 좋아하고 있는데, 하고 싶은 대로 놔두는 게 뭐 대수야? 굳이 놀리면서 힘들게 할 필요는 없잖아.’멍청한 강한서는 한현진의 말이라면 전부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한현진은 강한서의 눈을 마주 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난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 옆에 있는 건 싫어. 네가 없으면 그곳이 어디든, 내 곁에 누가 있든 난 똑같이 외로울 거야.”강한서가 멍하니 한현진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하얀 그의 피부가 점차 빨갛게 물들었다. 목에서부터 귓불까지 점점 더. 그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내리며 가볍게 목을 가다듬었다. “입만 번지르르해서는.”한현진이 웃으며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강한서는 감정을 숨길 줄 몰랐다. 특히 한현진과 관련된 일이라면 더 그랬다. 그러니 주강운처럼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어쩌면 진작 뭔가 알아차렸을지도 몰랐다. 오늘 밤 있었던 일 때문에 강한서의 계획이 차질이 생기지는 않았을지 걱정이었다. ‘주강운...’주강운에게는 확실히 이상한 부분이 많았다. 그들을 납치했던 납치범이 하필이면 주강운 의뢰인의 전남편이었고 또 마침 그와 갈등을 빚었었다. 그리고 그 범인이 하필이면 안면인식장애가 있어 강한서를 주강운으로 착각했다. 너무 많은 우연이 겹쳤다. 모든 것이 그럴듯했지만 여전히 이상한 느낌을 떨칠 수는 없었다. 강단해가 손을 쓴 것이라면 한현진은 그 동기를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