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서는 비록 기억을 잃었어도 키스 실력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어색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강한서의 키스에 한현진은 온몸이 나른해지고 눈가도 촉촉하게 빛났다. “계속 욕할 거예요?”강한서는 한현진의 코끝을 살짝 누르고 있었다. 두 사람의 호흡이 공기 중에 섞여갔다. 한현진이 온몸에 힘이 쭉 빠졌지만 입으로는 절대 굴하지 않으며 말했다. “개자식.”강한서가 피식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의 가슴팍이 약간 흔들렸고 그의 눈빛엔 다정함이 담겨 있었다. 한현진의 심장이 가파르게 떨려왔다. 그녀는 주먹을 꽉 움켜쥐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의미예요?”이 키스가 어떤 의미냐는 뜻이었다. 강한서는 시선을 내려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조금 더 가까워지자면서요?”“...”한현진은 말문이 턱 막혔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강한서 씨는 누군가와 친해지려고 키스부터 해요?”강한서는 손을 뻗어 가볍게 한현진의 아랫배 위에 올렸다. “아이도 있는 사이니 진도를 조금 더 빼도 된다고 생각했죠.”한현진이 바득 이를 갈았다. “강한서 씨 논리대로라면 아이를 낳은 사이였으면 바로 잠자리부터 가져도 된다는 거네요?”강한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현진이 드디어 그가 말귀를 알아들었다고 생각할 때쯤,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쉽지만 임신했을 때 성관계를 가지면 자궁 수축이 올 수 있어요.”그 말에 한현진은 바로 그를 뻥 차버렸다. 강한서도 힘을 주고 있지 않았던 터라 한현진이 걷어차자 그는 그대로 소파의 한쪽에 앉아버렸다. 단추가 풀려 웃옷이 활짝 열린 채 강한서는 소파에 기대앉았다. 조명이 그의 라인이 선명한 근육을 비추며 섹시한 매력을 발산했다. 한현진은 방금 강한서의 유혹으로 널뛰는 심장을 어루만졌다. 그녀는 강한서를 노려보며 욕설을 지껄였다. “다 네가 문제야.”말하며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한 한현진은 잠시 후 해장국을 들고 돌아와 테이블 위에 올렸다. “술 냄새가 너무 심하잖아요. 먹고 가서 샤워해요. 본인 주량이 어
강한서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한현진이 컵을 강한서 앞으로 밀었다. “먹어봐요. 어젯밤에 도착한 건데, 어떤지 맛만 봐요.”강한서가 손을 들어 컵을 다시 한현진 쪽으로 밀었다. “혼자 먹어요.”한현진이 코웃음 치더니 그릇을 들고 과일 식초를 한 모금 마셨다. 그녀는 임신한 후 입맛이 조금 바뀌었다. 전과 달리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는 않고 오히려 시고 단 음식을 선호했다. 하지만 의사가 너무 단 디저트를 먹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며 임신 중 혈당 관리에 주의하라고 했었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몸무게를 관리해야만 태아가 너무 크지 않아 낳을 때 고생을 덜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단 음식을 먹을 수 없었던 한현진은 신맛이 강한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정인월을 친히 친구들에게 부탁해 단맛이 줄이고 과일 향은 진한 과일 식초를 만들었다. 오늘 처음 과일 식초 맛을 본 한현진의 입맛에도 딱 맞았다. 강한서가 신을 갈아신을 때 한현진이 또 그를 불러세웠다. “오빠가 내일 돌아온대요.”강한서가 멈칫하더니 물었다. “내일 언제요?”“오늘 저녁 비행기로 내일 아침에 도착한다고 하더라고요. 비행기에 타기 전에 연락한다고 했어요.”알겠다고 대답하던 강한서가 말을 이었다. “내일 같이 마중 나가요.”한현진이 눈을 예쁘게 휘며 웃었다. “그래요.”“오빠, 잠깐만.”강민서가 갑자기 위층에서 내려오며 강한서를 불렀다. 그녀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손에 들린 약병을 강한서에게 건넸다. “어제 가람 언니가 우리를 데려다주면서 오빠한테 전해달라고 한 거야.”한현진은 그 약병을 보며 또다시 머리가 아플 때마다 그 약을 먹던 강한서의 모습을 떠올렸다. ‘대체 무슨 약이길래 효과가 그렇게 빠른 거야. 게다가... 왜 약병엔 아무 글도 쓰여 있지 않은 거지?’약병을 건네받은 강한서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고맙다고 전해줘.”고개를 끄덕인 강민서가 다시 방으로 올라갔다. 한현진은 몸을 일으켜 넥타이를 들고 강한서 앞으로 다가갔다. 강한서가 손을 뻗어 넥타이를
한준웅과 한열이 또 싸웠다고 했다. 심지어 한열의 생일 당일 싸워 한열은 생일 케이크도 먹지 않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그는 한중웅의 카톡을 차단한 것은 물론 온 가족의 SNS를 차단해 버렸다. 차마 자존심을 버리고 직접 한열에서 물을 수 없었던 한준웅은 어쩔 수 없이 한현진을 떠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열에서 연락한 한현진은 그제야 한열이 “살의”의 제작발표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 가까운 곳이라 한현진은 한열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최대한 중간 다리 역할을 잘 해 부자 사이의 갈등을 풀어줘야 했다. 준비를 위해 막 2층으로 올라간 한현진은 베란다에서 통화 중인 강민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젯밤 만든 딸기 푸딩을 아직 강민서에게 주지 못한 것을 떠올린 한현진이 푸딩을 준비해 뒀다는 얘기를 전하려 강민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가까워진 한현진은 강민서의 통화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저도 이제야 기회를 잡았어요. 하지만 너무 티 나게 할 수는 없어요. 알잖아요. 한현진이 얼마나 약아빠진 사람인지. 너무 티 나게 굴면 의심할 거예요.”그녀의 말에 한현진이 어리둥절해졌다.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또 뭘 물은 것인지 강민서가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오빠는 한현진이 귀찮아 죽으려고 해요. 아침에 나갈 때도 또 싸웠다니까요. 한현진이 굳이 오빠 넥타이를 매주겠다고 해서 오빠가 역겹다며 밀어버려서 한현진이 울 뻔했다니까요. 그때 제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만 않았어도 촬영해서 보여줬을 텐데 아쉽네요. 오빠에게 들킬 것 같았거든요.”한현진의 표정이 의문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또 있어요. 오빠가 가람 언니와 데이트하고 돌아왔을 때 한현진의 표정이 얼마나 재밌는 줄 아세요? 오빠에게 화내고 난리를 쳤지만 오빠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니까요.”“네. 어제 가람 언니가 저희를 데려다줬어요. 오빠가 취해서 계속 가람 언니 이름을 불렀거든요. 한현진은 화가 나 미쳐 버리기 직전이었다니까요. 이런데도 아름드리에 계속 있다니, 뻔뻔하기도 하
“현진아, 나 곧 탑승해. 내일 아침 10시쯤에 도착할 것 같아. 짐이 많아서 더러 부쳤고 나머지는 내가 도착하면 가질 수 있을 거야.”송민준이 있는 곳의 바람 소리가 얼마나 큰지 수화기 너머로도 그 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한현진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그럼 비행기에서 쉬어요. 내일 데리러 갈게요.”알겠다고 대답한 송민준이 한현진의 이름을 불렀다. “현진아...”“왜요, 오빠?”그녀는 송민준이 할 말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던 송민준이 입을 열었다. “돌아가서 얘기하자. 전화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아.”“그래요.”전화를 끊은 한현진이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실었다. 송민준의 반응으로 보아 그쪽에서 당시의 일에 대한 단서를 찾은 것 같았다. 다만 어느 정도로 조사를 마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젠장.”차미주가 갑자기 비명을 내질렀다. 그에 깜짝 놀란 한현진이 말했다. “왜 그래?”차미주가 이마를 탁 치며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엄마를 차단하고 인스타 업로드한다는 걸 깜빡했어. 방금 내가 올린 인스타에 하트를 누르셨어.”한현진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엄마가 봐서는 안 되는 걸 올리기라도 한 거야?”차미주가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강한서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하겠다며? 넌 지금 술을 마실 수 없으니 당연히 나랑 개자식이 나서야지.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우리 100일 기념 파티에 참석할 인원을 모집한다는 피드를 올렸단 말이야.”눈이 휘둥그레진 한현진이 한참 만에야 대단하다며 엄지를 치켜올렸다. 차미주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람이 많을수록 강한서가 의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동료랑 친척들만 차단하고 엄마는 깜빡했어.”“아니, 그것보다.”한현진이 이마를 짚었다. “대체 누가 100일 기념 파티를 열어? 넌 강한서가 바보인 줄 알아?”차미주가 나지막이 말했다. “기억을 잃어도 그다지 똑똑해진 건 같지 않던데?”“...”두 사람이 얘기를 나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어이없어, 정말.’차미주와 한현진은 겨우 시간을 맞춰 “살의” 제작발표회 현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영화관의 구석에 앉아 MC가 배우와 제작진을 한 명씩 무대 위로 모시는 것을 보고 있었다. 신하리를 비롯한 주연 배우와 감독이 먼저 무대에 오르고 MC와 한참 인터뷰를 진행하고 나서야 한열이 도착했다. 한열은 아마 스케줄 때문에 이제야 현장에 도착한 것 같았다. 허둥지둥 무대 상영관으로 들어온 그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인기가 많은 그가 무대 위에 오르자 현장은 바로 함성으로 가득 찼다. 상영관의 절반 이상이 한열의 팬이었다. 그의 팬들 사이에 앉은 한현진과 차미주는 하마터면 팬들의 함성 때문에 고막이 터질 뻔한 경험을 해야만 했다. 한열은 블랙 수트에 얇은 흰색 티를 입고 있었다. 넓은 어깨와 긴 다리 덕분에 서 있기만 해도 만화의 캐릭터가 튀어나온 것 같았다. 정말이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외모였다. 영화 개봉을 홍보하기 위한 제작발표회였기에 인터뷰는 주로 영화 관련된 주제로 진행되었다. 인터뷰가 끝난 후엔 잠깐의 팬서비스 시간이 주어졌다. 한열이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잘생긴 외모뿐만 아니라 팬을 대하는 그의 태도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과 같은 팬서비스 시간엔 비록 사전 상의 없이 팬이 한열에게 달려들어 안겨도 그는 절대 얼굴을 찌푸리는 일이 없었다. 한현진은 전에 한열과 대사를 맞추며 나눴던 대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저 저 한 번 보겠다고 먼 곳도 마다하고 왔을 텐데, 제가 얼굴을 붉히면 그건 인간도 아닌 거죠. 제가 그렇게 좋은 사람도 아닌데 절 위해서 여기까지 와주셨잖아요. 그러니까 전 얼마든지 웃어줄 수 있어요.”팬을 대하는 태도로만 보면 한열은 흠잡을 데 없는 아이돌 그 자체였다. 그러니 그의 팬들이 한열이라면 껌뻑 죽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한현진이 사색에 잠겼을 때, 마침 한열이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한현진은 얼른 손에 들린 슬로건을 흔들었다. 한
한열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그는 신하리의 돌발 발언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기자는 한열에게서 뭐라도 건지려고 했지만 한열의 입은 무겁기만 했다. 그는 영화 관련 질문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기자는 어쩔 수 없이 대화의 주제를 영화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드디어 인터뷰가 끝이 났다. 한열은 한현진에게로 걸어와 말했다. “누나, 저 화장실 다녀와서 같이 밥 먹으러 가요.”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인을 받은 차미주가 한열을 향해 엄지를 척 치켜올렸다. “열이 동생 완전 멋져.”한열이 씩 웃더니 몸을 돌려 화장실로 향했다. 한현진과 차미주는 대기실에 앉아 무료하게 한열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후 대기실로 들어온 신하리가 두 사람에게 오렌지를 건네며 윙크를 날렸다. “제작발표회에서 주인공이 무대 아래에 관객으로 앉아계셨네요?”한현진이 미소 지으며 장난스레 말했다. “괜히 무대에 올랐다가 신하리 씨에게 가려질까 봐 그러죠.”신하리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말씀 예쁘게 하시네요. 둘레집은 왜 하차하셨어요?”한현진이 오렌지를 손에 들고 웃으며 말했다. “가업을 상속받으려고요.”잠시 할 말을 잃었던 신하리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다시 고민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대본이 정말 좋거든요.”신하리가 진지하게 한현진에게 제안했다. 신하리는 이제 이 정도 자리까지 올랐으니 그녀가 원하기만 한다면 좋은 대본을 얼마든지 가져올 수 있었다. 하지만 한현진은 달랐다. 이제 막 연예계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신인이라 그녀의 인지도를 높여 줄 좋은 대본이 필요했다. 한현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건강 때문에 잠시 촬영은 힘들어서요. 사실 그저 신하리 씨에게 역할을 넘기기만 한 건 아니에요. 저도 투자를 좀 했거든요.”신하리가 멈칫하더니 곧 웃으며 말했다. “제가 투자자님도 못 알아보고 실례했네요.”그러자 한현진도 신하리를 따라 웃었다. ‘신하리 씨 재밌는 사람이네.’신하리가 대기실에 들어온 지 얼마 되
“23번 유현진 씨, 가족분께 연락하셨나요?“이제 간호사가 몇 번째로 유현진을 재촉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휴대폰을 흘긋 확인해보았으나 강한서에게 건 전화는 여전히 응답이 없는 상태였다.한주시 북부 환형 육교에서 연속 차량 충돌 사고가 발생하며 버스 한 대가 옆으로 기울다 강에 빠져버렸다. 그로 인해 수십 명의 부상자가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그들의 가족들이 하나둘씩 병원에 도착했지만 오직 그녀의 남편은 늦도록 연락되지 않았다.처참했던 사고 현장이 여전히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사고 당시 느꼈던 공포보다 이 순간 밀려오는 서운함에 마음이 더 아팠다.“유현진 씨?”간호사의 부름에 유현진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녀의 셔츠는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는데 그 덕분에 새하얀 얼굴이 더 창백해 보였다. 그녀는 목소리가 갈라지고 몰골이 처참했으나 여전히 품위 있게 대답했다.“죄송합니다. 연락되지 않는 것을 보니 지금 좀 바쁜 것 같아요. 제가 직접 사인해도 될까요?”“안타깝지만 그럴 수 없어요. 만약 가족분께서 사인할 수 없다면 병원에 남아 좀 더 지켜봐야 할 거예요. 뇌진탕은 빠른 진단을 내릴 수 없으니까요. 병원에선 당신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해요.”유현진은 입술을 꾹 닫고 망설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제가 다시 전화를 걸어 볼게요.”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의료 기기를 담은 플라스틱 카트를 들고 지나가던 두 간호사를 만나자 그녀가 몸을 살짝 움직여 길을 비켜줬다. 그때, 간호사 중 한 명이 말했다.“16번 환자, 누군지 알아요?““아뇨. 누구죠?““송민영 몰라요? 엄청나게 유명해요! 얼마 전에 찍은 핫한 드라마 ’비밀의 연인‘에서 여주인공 역할을 맡은 분이에요.““저런! 그분, 많이 다치셨어요?““조금 늦게 오셨어요. 그리고 팔에 스친 상처가 있긴 한데 그때 이미 약간 아문 상태였어요. 하지만 연예인들 얼굴이 간판이잖아요. 당연히 우리 같은 일반인과 비길 수 없죠. 내가 만약 송민영과 같은 얼굴과 몸매
뜨거운 열기가 귓가에 뿜어지고 달아오른 체온까지 더해 유현진의 귓불을 뜨겁게 달구었다. 다만 그녀는 복부에 난 멍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며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다행히 불이 꺼져있어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그의 목젖에 키스했다. 강한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짙은 눈빛으로 머리를 숙이고 그녀의 목덜미를 한입 물었다. 곧이어 유현진이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나 오늘 배란기야, 할 때가 됐어.”강한서는 몸이 굳어지더니 눈가에 스친 욕망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살짝 분노에 찬 말투로 물었다.“네 머릿속엔 온통 이 생각뿐이야?”유현진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뜨거웠던 귓불도 서서히 열기가 식었다.“너희 엄마가 계속 날 다그치잖아.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닌데, 차라리 너 정자 기증할래? 그럼 내가 시험관시술 할게.”강한서가 비난 조로 되물었다.“엄마가 재촉한 게 아니라 네가 사모님 자리를 지키지 못할까 봐 아이라도 낳으려는 거 아니야?”유현진은 가슴을 후벼 파듯 아팠지만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옅은 미소만 지었다.“맞아, 네가 날 버리면 어떡해? 이렇게 해서라도 우리 둘 사이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야지.”강한서는 단추를 채우고 짜증 섞인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이런 데 신경 쓰지 마. 난 아이 안 가질 거야.”유현진의 미소 짓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그녀는 문밖을 나서려는 강한서를 불러세웠다.“강한서, 넌 대체 아이를 갖기 싫은 거야 아니면 내 아이를 갖기 싫은 거야?”강한서는 걸음을 멈추고 차갑게 쏘아붙였다.“뭐가 다른데?”유현진은 주먹을 꽉 쥐고 대답했다.“같은 뜻이라면 결혼도 아무 의미 없겠지. 이혼해 그냥.”“네 마음대로 해.”강한서는 이 한마디를 내뱉은 후 문을 박차고 나갔다.유현진은 베개를 문에 힘껏 내던졌고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다음 날 아침, 조깅을 마치고 돌아온 강한서는 식탁 앞에 앉아 메일을 확인했다.아침을 준비한 지 반나절이 됐지만 그는 도통 수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