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싸웠어. 이혼하면 재산 분할도 해주기로 했는데, 내가 왜 싸워? 돈은 받아야지.”“너 그럼 지금 돌아가려고?”“오늘엔 병원에 가려고. 낮에 간병인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오늘 엄마가 또 반응을 보였대. 요즘 많이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 옆에서 얘기 많이 해드리려고. 혹시 더 일찍 깨어나실지도 모르잖아.”“내가 데려다줄게.”“아냐, 됐어. 차 불렀어.”유현진이 차미주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너도 일찍 쉬어.”하현주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차미주에게 얘기한 것처럼 반응을 보이는 일은 없었다. 유현진은 그저 그녀 옆에 있고 싶을 뿐이었다. 어렸을 때처럼, 엄마 옆에서라면 어떤 서러운 일이 있어도, 아무런 위로의 말이 없어도 마음만은 편할 수 있었다. 의사는 항상 그녀에게 어머니와 많은 얘기를 나누라고 했지만 워낙 어렸을 때부터 소통이 적었던 탓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유현진은 기억을 더듬어 이전의 일들을 얘기해 보고 싶었지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너무도 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녀가 애쓰는 모습을 보던 간병인은 웃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남편분 이야기를 하셔도 괜찮아요. 결혼생활 얘기도. 엄마는 딸의 행복에 관심이 많으니까.”“뭐, 특별히 할 얘기가 없어서요.”유현진의 입꼬리가 내려갔다.“사고만 나지 않았어도, 아마 그 사람이랑 결혼하는 일은 없었겠죠.”간병인도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유현진은 몸을 일으며 하현주가 갖고 있던 골동품인 카세트 라디오를 켰다. 하현주는 국악을 좋아해서 집에 많은 데이프를 모아놓고 있었다. 이 카세트 라디오도 모아 둔 테이프를 듣기 위해 산 것이었다. 의사가 하현주가 좋아하는 일을 더 많이 해서 자극을 줘야 한다고 얘기를 한 후부터 유현진은 집에서 물건들을 가져오기 시작했다.그녀는 아무 테이프나 골라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보호자용 침대에 누워 책상 위에 놓였던 잡지를 펼쳐들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이혼 후 전 남편의 아이를 가졌다” 였다.유현진은 아무
하현주가 보였던 두 번의 반응의 유일한 공통점은 카세트테이프를 듣고 있었다는 점이다. 의사는 이런 내용을 진료차트에 적으며 말했다. “카세트테이프 때문일 수 있습니다. 계속 같은 방법으로 자극을 줘보세요. 하지만 너무 오래 하지는 마시고요. 틀어놓고 반응을 잘 살피시고 반응이 있으면 바로 알려주세요.”“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의사가 병실을 나간 후, 유현진은 카세트테이프를 꺼내 보았다. 테이프가 워낙 오래되어 위의 글씨가 대부분 흐릿해 “국악의 대가” 라는 글씨만 희미하게 보였다. “언니, 지난번 엄마가 반응을 보였던 테이프, 어떤 건지 기억나세요?”“그건 기억이 잘 안 나요. 하지만 멜로디는 기억나요. 흥얼거려 볼게요.”기억난다는 간병인의 말에 유현진은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짧게 흥얼거린 간병인이 다급히 물었다.“어때요? 무슨 노래인지 알겠어요? 이 멜로디는 정확하게 기억해요.”유현진은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간병인이 말한 흥얼거림이란 진짜로 흥얼거림 그 자체였다. 가사 한 줄도 없이, 심지어 음정조차 맞지 않는 듯한 흥얼거림이었다. 하현주를 따라 들은 국악이 얼마인데, 전부는 아니지만 적어도 80% 이상은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간병인이 흥얼거린 멜로디로는 전혀 어떤 곡인지 알아낼 수 없었다. 자신감이 넘치는 간병인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던 유현진은 말했다.“들어본 적 없는 곡인 것 같아요.”간병인이 열정적으로 나섰다.“제가 제대로 못 했을 수도 있잖아요. 한 번 더 해볼게요.”“괜찮아요.”유현진은 테이프를 테이블 위로 올려놓고 고개를 돌려 간병인에게 말했다.“언니, 앞으로 이 테이프들을 순서대로 틀어줘요. 엄마가 반응을 보이는 것들로만 추려서, 그것만 들려드려요.”“네.”유현진은 간병인이 가져온 보호자용 침대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딱딱한 접이식 침대에 온몸이 아팠다. 이튿날 아침, 날이 완전히 밝기도 전에 잠에서 깨어났다. 아래층에서 간병인에게 줄 아침밥을 가져다주고, 몇 가지를 당부하고 나서야 택
유현진의 태도에 약간 초조해진 강한서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 친구는 핸드폰도 없어? 전화 한 통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전화하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우리 강 대표가 전화받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쁠까 봐 그러지, 너..."유현진은 잠깐 멈칫하다가 담담하게 말했다."떠나기 전에 나랑 인사할 시간도 없었잖아."강한서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이렇게 말했다."민영이가 다쳤어."유현진은 송민영이 다친 게 가슴 아픈 나머지 강한서가 아내인 자신한테 미리 말해줄 시간도 없이 바로 병원으로 뛰쳐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래?"유현진은 시선을 떨군 채로 태연하게 말했다."그래서 송민영은 죽었어?"유현진의 각박한 질문에 강한서는 눈살을 찌푸렸다."현진아, 넌 꼭 말을 그렇게 해야겠어?""그냥 해본 말에 왜 이렇게 긴장해? 내가 죽는다고 말했다고 진짜 죽는 것도 아니고."유현진은 이렇게 말하며 강한서를 지나쳐갔다. 강한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깐 쳐다보다가 성큼성큼 쫓아갔다.유현진은 소파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사과를 먹으면서 iPad를 봤다. 그녀는 휴대폰과 패드에서 같은 계정을 쓰고 있기에 모든 정보를 동기화할 수 있었다. 그래서 휴대폰이 고장 난 지금은 iPad를 볼 수밖에 없었다.유현진은 강한서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이메일을 확인했다.강한서는 소파 위에 있는 드레스를 만지작대면서 이렇게 물었다."이 드레스는 누가 선물한 거야?""호텔 매니저."강한서는 믿기지 않는다는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호텔 매니저가 왜 너한테 옷을 선물해?"유현진은 그의 질문에 대답하기도 귀찮았다. 강한서가 유현진한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더라면 직접 호텔에 가서 알아봤을 것이다. 그러면 그녀가 어젯밤 화장실에 갇혀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하지만 강한서는 알아볼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왜냐하면 유현진을 화장실에 가둔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여동생이었기 때문이다. 강한서가 강민서를 아끼는 정
준이는 우승마의 후손이었다. 우승마로서의 혈통에 새겨진 도도함으로 그는 이러한 서러움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채찍을 맞으면 맞을수록 더욱 난폭해져갔다.농장주는 녀석이 미쳤는 줄 알고 안락사를 시키려고 했다. 겨우 속박에서 벗어나 도망친 준이는 길가로 나와서 마구 뛰어다녔다.그때 정인월은 마침 차 안에 앉아 있었다. 녀석과 부딪칠까 봐 걱정되었던 정인월은 운전기사한테 차를 세우라고 했다.경찰은 재빨리 현장에 도착해서 마취총을 쏘았다. 몸이 통제력을 잃고 휘청거리는 와중에도 녀석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위태롭게 서 있었다. 그의 고집스러운 눈은 호시탐탐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었다.정인월은 녀석의 눈빛에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160만 원을 주고 농장주한테서 녀석을 사 왔다.사람들은 전문이도 길들이지 못한 녀석을 웬 할머니가 길들일 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인월이 녀석을 데리고 간 날, 녀석은 정인월을 한참 쳐다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얼굴을 비비적댔다.사람들은 전부 깜짝 놀랐지만 정인월은 그다지 놀란 모습이 아니었다. 그렇게 정인월은 신이 나서 녀석과 함께 귀국을 했다.어린 시절에 줄곧 채찍을 맞아서인지 준이는 낯선 사람들을 아주 경계했다. 온 집안에서 준이를 가까이할 수 있는 사람은 정인월을 제외하고 강한서 밖에 없었다. 정인월은 둘의 성격이 똑같이 괴팍하기 때문에 끼리끼리 놀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유현진은 그 말이 꽤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할머니, 저를 놀리지 마세요. 준이가 언제 저를 거들떠 본 적이나 있어요? 그 녀석은 제가 없어야 입맛이 더 좋을 거예요."정인월은 웃으면서 말했다."준이가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왜 네가 주는 음식을 먹겠어? 그 녀석은 민서가 주는 음식을 먹은 적이 없어. 그대로 다 토해내면 모를까."강민서가 준이의 토사물을 뒤집어쓴 장면을 상상하며 유현진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오늘 잠깐 왔다 가면 안 될까? 와서 점심도 먹고 준이랑 같이 뛰어놀기도 하면 얼마나 좋아.
넥타이를 매고 난 유현진은 손을 놓으면서 이렇게 말했다."자, 이 정도면 2000억의 가치를 발휘했겠지?"정신을 차린 강한서는 거울을 힐끗 보며 말했다."괜찮네."유현진은 입을 삐죽거리며 신발을 갈아 신고 작은 가방을 멘 채로 밖으로 나왔다.유현진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문 앞에 세워져 있는 벤츠를 발견했다. 정인월의 전속 기사인 진씨는 차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유현진을 발견한 진씨는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안녕하세요, 사모님. 저는 부인께서 사모님을 모셔오라고 해서 이렇게 오게 됐습니다."50대 아저씨한테 극존칭을 듣는 게 불편했던 유현진은 재빨리 대답했다."그럼 잘 부탁드려요, 아저씨."진씨는 유현진이 차에 오른 후에도 차를 돌리기만 했을 뿐 출발하지는 않았다. 유현진이 마침 그에게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물어보려고 할 때, 강한서가 걸어와서 차 문을 열고 올라탔다. 그러자 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이렇게 말했다."네 차는 어쩌고 이쪽으로 왔어? 할머니 집이랑 회사는 가는 길이 완전히 다르잖아.""내가 언제 회사로 간댔어?"강한서는 유현진을 힐끗 쳐다보고는 진씨한테 이렇게 말했다."아저씨, 출발하죠."유현진은 말문이 막혔다. 강한서도 함께 갈 줄 알았더라면 그녀는 가지 않겠다고 했을 것이다.'재수 없어!'유현진은 창문 쪽으로 옮겨 앉으며 강한서와 최대한 멀리 떨어졌다. 하지만 강한서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휴대폰 들고 타자를 했다. 휴대폰을 높게 든 탓에 유현진은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나쁜 놈! 네가 누구랑 문자를 하든 내 알 바는 아니지!'...주강운이 서재에서 자료를 찾고 있을 때 휴대폰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영상통화를 건 것을 보고 그는 일단 수락 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채로 하던 일을 계속했다."어머니, 무슨 일 있어요?""강운아, 이 치마 어때?"휴대폰을 힐끗 쳐다본 주강운은 영혼 없이 대답했다."예뻐요. 어머니랑 잘 어울려요."주강운의 어머니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
주강운은 침묵을 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계속해서 감탄을 했다."나는 왜 딸을 낳지 않았을까? 만약 딸이 있었더라면 한서를 사위로 삼았을 텐데."주강운은 참다못해 이렇게 말했다."한서는 이미 결혼했어요.""나도 알지. 근데 부인은 왜 한서같이 착한 애한테 그런 처를 찾아줬을까? 둘의 집안은 안 어울려도 너무 안 어울려.""고모랑 고모부는 집안이 그렇게 잘 어울리는데 왜 이혼을 했대요? 고모는 지금 어린 남자친구를 만나서 아주 즐겁게 잘 살고 있는 것 같던데요.""네 고모는 할아버지의 응석받이로 자랐어. 누가 그 성질을 감당하겠니?"주강운이 고모 얘기를 꺼내자 주강운의 어머니는 또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렇게 이어서 말했다."너도 언제 시간을 내서 인월 할머니를 만나러 가. 네가 외국에 있는 동안 부인은 줄곧 너를 걱정해 왔어. 돌아온 후에라도 자주 만나러 가야지."주강운은 머리를 끄덕였다."민서랑은 가끔 연락하고 있어?"어머니의 속셈을 알고 있는 주강운은 아예 대답을 피해버리고 말았다."제가 아직 할 일이 있어서 다음에 다시 얘기해요."주강운은 어머니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영상통화를 끊어버렸다.주강운은 인터넷에서 어머니가 입고 있던 치마의 가격을 알아봤다. 그 가격은 마침 주강운이 유현진한테 선물한 치마와 비슷했다.'유치한 놈.'...유현진과 강한서는 차로 이동하는 내내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강남대로까지 가고 나서야 강한서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아저씨, 저 앞에 있는 백화점에서 잠깐 세워줘요."진씨가 차를 세운 후, 강한서는 이렇게 말했다."내려""왜?""설마 빈손으로 찾아가게?""선물이라면 너 혼자서 사러 가도 되잖아."유현진은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리며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차에서 내려왔다.정인월의 손에서 자란 강한서는 정인월과 사이가 아주 좋았다. 그는 정인월의 말이라면 거의 다 따랐다, 정인월 때문에 송민영과 헤어질 정도로 말이다.정인월은 한주 강씨 가문에서 가장 대단한
유현진은 자신이 더 이상 한주 강씨 가문의 며느리가 아닐지라도 정인월은 존경할 만한 어른이라고 생각했다.반 시간 후, 유현진은 한가득 차버린 쇼핑 카트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강한서는 카트의 사정을 알기나 하는지 계속해서 물건들을 밀어 넣었다. 그는 마트에 와본 적 없거나, 혹은 스스로 물건을 사본 적 없거나 둘 중 하나인 게 분명했다.유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가 강한서가 견과류 두 상자를 집어넣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할머니께서 틀니로 잣을 드실 수 있다고 생각해?"강한서는 멈칫하면서 이렇게 말했다."마카다미아는 괜찮지 않을까?""할머니는 견과류를 좋아하지 않.으셔"유현진은 이렇게 말하며 강한서가 집어넣은 물건들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기 시작했다."이 디저트는 너무 달아. 넌 할머니한테 당뇨가 있다는 것도 몰라? 이런 디저트는 저당으로 사야 해! 그리고 이렇게 포장된 샥스핀은 쓰다 남은 것으로 만든 거라 할머니의 입맛에 맞을 리가 없어. 할머니는 이런 걸 더 좋아해. 하지만 유통기한이 3개월 밖에 안돼서 때가 되면 꼭 버려야 한다고 알려줘야 해. 할머니는 유통기한을 잘 안 보거든..."강한서를 머리를 숙이고 잔소리를 하고 있는 유현진을 바라봤다.유현진은 오랜만에 강한서와 이렇게 말을 늘어놓았다. 유현진이 가출한 2주 동안, 강한서는 갑자기 썰렁해진 집안이 아주 어색했다. 유현진이 바로 옆에서 잔소리를 하는 것을 들으니 그는 이상하게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말린 망고?"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너 설마 할머니한테 망고 알레르기가 있는 것도 몰라?"유현진이 말린 망고도 빼내려고 하자 강한서는 그녀를 가로막으며 말린 망고를 다시 카트 안으로 집어넣었다."이건 네 거야."이렇게 말한 강한서는 카트를 밀며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유현진은 넋이 나가버렸다. 한주 강씨 가문의 사람들한테는 유전적으로 망고 알레르기가 있었다. 강한서도 물론 예외가 아니었다.하지만 유현진은 망고를 아주 좋아했
정인월의 선물을 사고 나온 강한서는 화장실로 갔고 진씨는 차에 물건들을 싣기 시작했다.유현진은 원래 이 틈을 타서 휴대폰이나 보려고 했는데 주얼리 가게의 포스터에 시선을 뺏겨버리고 말았다. 포스터 속의 모델이 하고 있는 팔찌가 너무 예뻤던 것이다."혹시 마음에 드는 제품이 있으시면 들어와서 착용해 보세요. 가게 안에 예쁜 제품들이 아주 많아요."가게 직원은 아주 열정적이었다.강한서가 아직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은 것을 보고 유현진은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가게는 금방 문을 연 것 같았다. 어떤 직원은 부지런히 전시품을 교체하고 있었고 손님들은 이제야 슬슬 들어오기 시작했다.유현진은 바로 비취옥 코너로 가서 팔찌들을 살펴봤다. 그러자 직원 한 명이 뒤따라와서 이렇게 물었다."본인이 쓰실 건가요? 아니면 선물하실 건가요?"유현진은 진열장 안의 전시품들을 살펴보며 담담하게 말했다."그냥 구경하러 왔어요.""그럼 천천히 구경하세요. 궁금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시고요."한바탕 구경을 끝낸 후에도 포스터 속의 제품을 찾지 못한 유현진은 직원을 불러와서 이렇게 물었다."포스터 속의 모델이 하고 있는 팔찌는 어디에 있어요?""손님, 안목이 굉장히 좋으시네요. 그건 저희 가게의 신제품이에요. 품질이 아주 훌륭한 제품이라 파손이 생길까 봐 진열장 안에 넣지 않았어요.""잠깐 구경해도 될까요?""그럼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매니저님한테 신청을 해볼게요."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은 상자 하나를 들고 조심스럽게 걸어왔다.상자를 열자 벨벳 위에 놓인 비취옥 팔찌가 보였다. 비취옥은 아주 투명하고 영롱했고 색깔 분포도 균일했다.가게 직원은 장갑을 끼고 팔지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조명까지 켜고 유현진한테 구경을 시켜줬다.비취옥은 아주 섬세하게 만들어졌다. 비취옥 안에는 불순물과 균열이 없을 뿐만 아니라 색깔도 인공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자연의 색깔이었다. 전문가가 아닌 유현진은 여기까지만 알고 있었다."한 번 써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