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한성우 취한 거 아냐?’그녀는 얼른 다시 새로고침을 눌렀다. 그러나 그 피드는 여전히 남아있었고, 아래에는 심지어 댓글이 잔뜩 달려있었다. 신우: 축하해. 이번엔 2개월 기록을 깰 수 있는 거야?주강운: 조금 의외네. 현진 씨가 두 사람 이어준 거야? 차미주 씨 좋은 분이야. 조준: 두 사람 친척 아니었어요?...유현진이 바득 이를 갈았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얘기하지 않다니, 그녀는 절친이 되어서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했다! ‘차미주 얘는 대체 뭐 하는 거야? 조준 씨한테 대시 중인 거 아니었어? 왜 한성우랑 사귀고 있는 거야?’그녀는 팩을 떼어내고 차미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색하게 침대 옆에 앉아있던 차미주는 휴대폰이 울리고 유현진의 번호가 액정에 뜨자 괜히 마음이 켕기는 기분이었다.끊어버릴 수도, 받을 수도 없었다. 개자식이 올린 인스타그램을 보고 그녀에게 전화해 물어보려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차미주는 이미 머리가 복잡하고 하나도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유현진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전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한성우는 움직이지 않는 차미주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받아줘?”차미주가 얼른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둘러서 잘 얘기해.”한성우가 통화 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받았다. 유현진의 목소리가 바로 전화너머로 들려왔다. “차미주! 너 나한테 설명해. 한성우 씨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거 무슨 말이야? 너희 둘 설마 무슨 게임을 하다 걸려서 올린 건 아니지?”그녀는 전에 분명 차미주를 떠본 적이 있었다. 그때 차미주는 분명 한성우에게 그런 마음이 없다고 했었는데, 갑자기 사귀기로 했다니 이상했다. “형수님, 상상력이 너무 풍부하시네요.”휴대폰 저편에서 들려온 것은 한성우의 목소리였다. “저희 정말 사귀고 있어요.”유현진: ...한성우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녀의 목소리가 바로 나긋해졌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전에 미주한테 아무 얘기도
그러더니 한성우는 차미주의 휴대폰을 꺼버렸다. 그에 차미주가 당황했다. “휴대폰은 왜 꺼?”한성우가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 “아니면 내 거기가 너 때문에 다쳐서 아마 평생 여자를 만질 수 없을지도 몰라서 네가 내 체면을 위해 여자친구 행세를 하는 거라고 얘기할래?”차미주: ...그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렇게 얘기한다고 안 했잖아. 현진이도 나 걱정돼서 그러지, 너한테 속을까 봐.”한성우는 실소가 터뜨렸다. “내가 널 뭘 속였는데?”차미주는 입을 뻐금거리더니 결국 닫아버렸다. 한성우가 칼을 그녀의 목에 대고 협박한 게 아니었다. 그녀가 먼저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여자친구 역할을 해주겠다고 제안한 것이었다. 모든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됐어. 그만 생각할래. 지금 중요한 건 한성우를 잘 간호하는 거야. 다 나으면 나도 더 이상 연기할 필요 없잖아?’그렇게 생각한 차미주는 더 이상 갈등하지 않았다. “그럼 내가 가서 입원 수속하고 올게.”한성우가 말했다. “입원 안 해. 집에 가서 치료할 거야.”‘장난해? 여긴 응급실이라 의사가 거짓말을 해줄 수 있지만 입원하면 회진을 돌기 때문에 진짜인지 가짜인지 바로 들통날 거야!’차미주는 의아해했다. “그렇게 심하게 다쳤는데, 입원을 안 해?”“내가 입원하면 그 자식들 분명 병문안 올 거야. 와서는 어디가 다쳤는지 물어볼 텐데, 난 침대에 엎드려서 걔들 놀림거림가 되고 싶지 않아.”차미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네 집에서 누가 약 발라줘?”한성우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의사를 집으로 부르면 돼.”그의 말에 차미주가 입을 닫았다. ‘역시 돈이 최고야, 의사도 부를 수 있고.’차미주가 멍때리고 있을 때, 한성우가 그녀의 손가락을 건드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도둑아, 나 배고파.”정신을 차린 차미주가 말했다. “뭐 먹고 싶어? 내려가서 사줄게.”“네가 외식하고 싶어?”그가 까탈스럽게 굴며 말했
차미주: ...‘내가 해준다고 했어?’그녀는 어이가 없었다. 성기능 손상은 남자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일 것이다. 특히 한성우 같은 바람둥이는 더욱. 하지만 어쩐지 그는 그 사실을 빨리 받아들이는 것 같을까?“너—”“나 먼저 엎드려 있을게. 너무 아파.”그는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조금만 더 있다가 가자.”의심을 품었던 차미주는 순간 다시 말을 삼켰다. 어쩌면 그녀의 착각일 수도 있었다. 한편,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긴 유현진은 화가 나서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었다. 그녀는 얼른 휴대폰을 들고 강한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사에서 회의하고 있던 강한서는 유현진에게서 전화가 오자 멈칫거리더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방금 말한 몇 가지 문제는 조금 더 토론해 보고 나중에 다시 얘기하죠."그러더니 그는 휴대폰을 들고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팀원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모두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민경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민 실장님, 오늘 저희 일찍 퇴근할 수 있는 건가요?”최근들어 이렇게 특별한 벨소리가 울릴 때면, 강한서는 유달리 관대해졌다. 퇴근을 일찍 시키는 것은 물론 가끔 팀원들에게 휴가도 주었다. 중요한 건 보너스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번 한 달은 그야말로 바캉스를 보내는 것 같았다. 그들과 같은 연구개발팀은 업계에서도 야근하지 않는 회사는 없을 정도였다. 왜냐면 실험 데이터는 일관되고 정확해야 하므로 데이터가 나왔다고 해서 모두 퇴근해버리면 실험 데이터를 누가 기록하겠는가? 또 실험실에 사람이 없는 동안, 누군가 데이터를 수정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니 연구개발의 중요한 시즌일수록 야근은 더욱 심해졌고 실험실도 24시간 내내 교대 근무를 해야 했다. 한밤중이라도 데이터가 나오면 한데 모여 대책 회의를 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지금은 그때와 확연히 비교되기 때문에 야근이 없는 생활은 천국과도 같았다. 특히 매번 강한서가 “자비를 베푸”
“대표님 현 여자친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네요. 전 사모님 너무 예쁘셨잖아요. 대표님은 그런 분과도 이혼하셨는데, 이번 여자친구는 얼마나 더 예쁘겠어요.”민경하의 신경이 그쪽으로 쏠렸지만, 그는 입을 열지는 않았다. “에이, 전 사실 대표님 전 아내분이 좋았어요. 두어 번밖에 못 뵀지만, 말씀을 너무 사람 기분 좋게 하시더라고요. 편하게 대해 주시기도 하고요. 길을 물으시고는 저한테 오렌지도 주셨는걸요. 웃을 때면... 세상에, 여자인 제가 봐도 얼굴이 빨개지던데요.”“듣기론 대표님과 이혼하시고 배우로 전향했다고 하더라고요. 최근엔 촬영하신 드라마가 방영된다고 하던데, 기대돼요. 그 얼굴로 연예계 쪽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건 정말 아까운 일이에요.”“대표님과 이혼한 뒤 혼외 자식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 같던데, 아무튼 좋지 않은 소문이 많이 돌더라고요. 하지만 한 번도 대표님이 사모님 나쁜 얘기를 하시는 건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대표님은 전남편으로서 그래도 꽤 괜찮은 것 같아요.”“얼마 전에 영화 촬영을 시작한 것 같던데, 어쩐 부자가 9999송이 파스텔 장미로 망고 모형을 만들어 축하 인사 겸 보냈다고 해요. 그때 실검에도 올랐었는데. 이혼하셔도 쫓아다니는 사람이 줄지 않네요. 이혼 후에도 각자 잘 지내시니까, 그것도 좋은 것 같아요.”얘기를 듣고 있는 민경하는 웃음이 났다. 만약 팀원들이 그 9999송이의 파스텔 장미가 바로 강한서가 보낸 것이라는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한편, 강한서는 사무실을 벗어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유현진이 다짜고짜 말했다. “강한서, 너 한성우 잘 지켜보라고 했더니, 대체 뭐 한 거야?”어리둥절한 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래?”유현진이 이를 악물었다. “한성우가 내 절친을 꼬드겨 갔다고!”“차미주?”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강한서가 물었다. “걔들이 왜?”“너 한성우 인스타그램 못 봤어? 미주랑 사귄다고 피드에 올렸잖아!”잠시 멍해졌던 강한서가 얼른 한
유현진은 “억지 부리지 마.”라는 한 마디에 신경을 곤두세웠다.그녀는 바로 표정을 굳히더니 말했다. “맞아, 내가 억지 부리는 거야. 우리가 처음 만났어? 아니잖아. 난 끝까지 억지 부릴테니까 잘 들어, 강한서. 한성우가 미주랑 헤어지지 않으면, 우리가 헤어지는 거야!”말을 마친 그녀는 강한서가 대답도 하기 전에 뚝 전화를 끊어버렸다. 강한서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바로 다시 전화하려던 그는 유현진이 마지막에 던진 한마디를 떠올렸다. 그 말이 너무 상처가 되었다. 헤어지자는 말을 유현진은 너무 쉽게 꺼냈다. 마치 이 연애가 그녀에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휴대폰을 움켜쥐던 강한서는 끝내 다시 전화하지 않고 어두워진 얼굴로 회의실로 돌아왔다. 팀원들이 아직 강한서와 그의 아름답던 전 부인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강한서라는 것을 확인한 그들은 얼른 입을 다물었다. 강한서는 잔뜩 굳은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그가 막 서류를 집어 드는데, 한 남자 직원이 입을 열었다. “대표님, 오늘 일찍 퇴근해도 될까요?”강한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류를 펼치며 물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남자 직원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저는 별일이 없지만, 대표님께서 일이 있으신 게 아닌가 해서요. 데이트가 있으면 저희도 덕을 좀 보고요.”강한서가 멈칫 행동을 멈추더니 고개를 들고 덤덤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덕?”그 눈빛에 민경하의 가슴이 “덜컹”하고 내려앉았다. 박진수는 강한서의 감정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사실 강한서도 그렇게 크게 티를 내지는 않았다. 동공의 움직임만이 그의 불쾌함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는 계속 웃으며 말했다. “일찍 퇴근하는 거 말이에요. 당연히 대표님 덕이죠.”민경하는 조금 처진 강한서의 눈을 보며 점점 더 자신의 판단을 확신했다. 민경하는 얼른 박진수를 제지하며 말했다.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데이터나 프로젝터에 연결해서 계속 분석하죠. 일찍 끝
말을 마친 강한서는 더는 그를 쳐다보지 않고 펜을 놓더니 고개를 들고 말했다. “계속하죠. 데이터는요?”박진수는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갈 수도, 남아있을 수도 없었다. 민경하가 헛기침하더니 남자 직원에게 말했다. “얼른 분석 결과를 프로젝터에 연결해요! 정말 내일 회사 옮기고 싶어요?”직원은 그제야 허둥지둥 자신의 컴퓨터를 프로젝터에 연결하고 말을 더듬으며 데이터를 분석했다. 강한서는 비록 냉정하고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말을 자르지는 않았다. 다들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강한서의 감정 기복은 정말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한편, 유현진은 전화를 끊고 후회 중이었다. 예전의 그녀는 이렇게 버릇처럼 헤어짐을 말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했다. 하지만 자신이 바로 그런 부류의 인간이 되어있었다. 그녀도 한성우가 헤어지고 말고는 강한서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정말이지 억지를 부리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 그녀가 먼저 사과를 하자니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적어도 강한서가 먼저 그녀에게 다가와야 했다. 그녀는 강한서가 전화하기를 기다렸지만, 1시간이 지나도 전화는커녕 문자도 없었다! 뒤척이던 유현진은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개자식! 나쁜 자식! 달래주면 뭐 죽냐?’‘전화가 오든 말든, 기대하지 않아!’그러곤 휴대폰에 충전기를 꽂아 한쪽으로 던져버리고 이불을 끌어와 뒤집어쓰고 잠이 들었다. 강한서의 회의는 2시간이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다들 자리를 비우자 강한서는 슈트 단추를 풀고 안경을 벗더니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앉았다. 그는 눈을 반쯤 감고 긴장을 풀었다. 민경하가 정리를 마치고 고개를 돌려 강한서를 쳐다보더니 물었다. “사모님이랑 싸우셨어요?”강한서가 눈을 뜨더니 말했다. “민 실장도 미리 쉬고 싶어요?”민경하가 작게 웃어버렸다. “통화로도 싸우는 게 가능해요?”안 그래도 답답하던 강한서는 민경하의 말에 참지 못하고 말했다. “현진이가 싸움을 걸었어
당황한 강한서가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끊겨버렸다. 유현진이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는 민경하를 쳐다보며 눈빛을 보냈다. ‘왜 민 실장이 얘기한 거랑 다르죠?’민경하가 헛기침을 했다. “방금 싸우셨을 때 바로 하셨어야 해요. 이미 두, 세 시간이나 지났으니 처음엔 조금 기분 나쁜 정도였겠지만 이젠 정말 화가 나셨겠죠. 그러니 전화를 받지 않는 것도 당연해요. 여자친구한테 사과할 땐, 절대 질질 끌면 안 돼요. 시간을 끌면 끌수록 여자들은 기다리고 싶지 않아 하거든요.”강한서: ...“그럼 어떡해요?”“내일 아침 데리러 가셔서, 만나서 얘기하세요.”강한서는 생각하더니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늦은 상태였고 전화로 제대로 얘기하지 못하면 또 화를 낼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유현진에게 10억을 보내면서 메시지를 작성했다. 「잘 자.」아직 강한서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던 유현진은 그의 계좌이체 내역을 보더니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100원을 송금하며 답장했다. 「잠이 안 와.」강한서는 또 얼른 10억을 보냈다. 「지금은?」유현진은 입술을 깨물고 웃음을 참으며 답장했다. 「조금 졸려.」강한서가 또 20억을 송금했다. 「이러면?」유현진이 답장했다. 「잠들었어. 건드리지 마.」강한서가 작게 웃었다. 민경하가 그에게 다가왔다. “사모님 답장하셨어요?”강한서는 휴대폰을 넣더니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민 실장 추측도 정확한 건 아니네요.”민경하: ???강한서가 태연하게 말했다. “민 실장이 말한 것보다 달래기 쉬워요.”민경하: ...“아, 맞다. 송민준 요즘 동향 살피라고 했던 건, 어떻게 됐어요?”정신을 차린 민경하가 말했다. “송 대표님 요즘 특별한 움직임은 없으세요. 일 하지 않으면 그냥 노세요. 확실히 요즘 사모님한테 많이 가시긴 하지만 오랫동안 계시지는 않고, 매번 물건을 주러 가세요.”“물건? 뭘 주는데요?”강한서가 잔뜩 경계했다. “보석?”“그건 아니고요, 전부 음
강한서는 움찔하며 행동을 멈추었다. 그의 얼굴이 점차 굳어졌다. 그는 그 사진을 들고 한참이나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사진 속 아이는 네, 다섯 살쯤 되어 보였고, 작은 치마를 입고는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비록 머리는 길었지만 모자에 달린 가발 같았다. 아이는 손에 핑크팬서를 안고 수영장 끝에 서 있었다. 수영장의 타일은 고대 격자 모양이었고 수영장에는 물을 뿜는 오리가 있었다. 멍해있던 강한서는 갑자기 이곳이 공원이라는 것을 기억해 냈다. 이곳은 예전 송씨 가문의 본가였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몇 번 간 적이 있었다. 송민준은 오리가 움직인다며 그를 속여 그에게 앉으라고 했다. 송민준의 말을 믿었던 그는 결국 앉자마자 바지가 다 젖도록 물을 맞아야 했다. ‘그 자식, 어렸을 때부터 은근히 나쁜 구석이 있었어.’사진 속의 “여자아이”는 유현진이 결혼하며 집으로 가져왔던 어린 시절의 사진과 거의 90% 비슷했다. 다만 그 찌푸린 미간에서 조금의 차이를 찾아볼 수 있었다. 왜냐면, 유현진은 사진 찍을 때 한 번도 미간을 찌푸린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든, 커서든 사진만 찍으면 콧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더라도 꼭 포즈를 취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이건 유현진일 리가 없었다. 강한서는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송민준의 이상했던 행동들을 반복해 떠올렸다. 그리고 송병천이 유현진을 향한 과분한 관심도 말이다. 그 하나하나를 손에 있는 산부인과 의료진의 정보와 연결하니, 하나의 추측이 머릿속에서 폭발하듯 떠올랐다. 그는 번쩍 눈을 뜨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어머니... 민준이 친어머니가 언제 난산으로 돌아가셨지?”민경하는 서류를 뒤로 넘기더니 고개를 들고 말했다. “97년 12월 20일이요.”말하던 민경하도 놀라더니 한참 후에야 말했다. “사모님 생일이랑 같네요?”유현진과 송민준은 어린 시절 사진이 닮아있었을 뿐만 아니라 송씨 가문의 세상을 뜬 막내딸의 생일과도 똑같았다. 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송씨 가문의 동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