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그녀는 송씨 가문에 요절한 막내딸이 있다는 사실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바닥에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당시 송씨 가문과 사이가 좋았던 몇몇 가문들뿐이었다. 민경하가 생각하더니 말했다. “사실 이것도 좋은 일이에요. 송 대표님이 대시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어요?”말하던 민경하가 멈칫하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럼, 송 대표님이 혹시 대표님이 전에 소개팅을 주선해 주신 것을 마음에 품고 계신건 아니겠죠? 그리고 루나로 사적인 복수를 하려고 송 대표님을 괴롭혔던 것도요.”강한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도 그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민경하는 남몰래 “쯧”하며 혀를 찼다. 삼각관계의 문제는 인제 걱정이 없었지만, 처남사이가 되기엔 이미 망한 것 같았다. 운이 나쁜 사람을 많이 만나봤지만 이렇게까지 나쁜 건 또 처음이었다. 이미 다 손에 넣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이제야 첫 난관을 해결했을 뿐이었고, 아직 보스는 뒤에 있었다. 강한서는 처남에게 미움을 샀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장인어른에게도 미움을 사게 되었다. 나이 지긋하게 드신 분을, 종아리 스트레칭 기구로 괴롭혔으니 말이다. 송씨 가문의 “여존남비”의 가족 특성상 유현진의 신분을 알았을 때부터 그는 이미 블랙리스트에 올랐을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그가 “주제도 모르고” 유현진과 이혼하면서 홀몸으로 그녀를 내보냈기 때문이었다. 강한서가 눈을 감았다. 기쁜 마음 반, 걱정되는 마음 반이었다. 유현진에게 자신 말고도 다른 가족이 생겨서 기뻤고, 어쩌면 이 결혼이 쉽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이었다. 민경하는 “동정”하는 표정을 짓더니 헛기침하며 “위로”했다. “괜찮아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면 되죠. 아직 기회는 있어요. 이번에 새로 명문가의 규수들 자료를 정리했는데, 꽤 괜찮아요. 만약 송 대표님께서 마음에 드시는 분이 있으면, 아마 마음을 푸실지도 몰라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꺼져요.”민경
차미주는 속으로 생각했다. ‘당연히 알지. 전 여친들 내가 일하면서 다 만나봤던 사람들이었어. 알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한성우랑 헤어졌는지도 알지.’그녀와 같은 대중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아무래도 업계의 이런 얘기였으니 당연했다. 차미주는 목을 가다듬더니 콩깍지가 씐 것처럼 말했다. “비록 연애 경험은 많지만, 한 번도 바람을 피우거나 양다리를 걸친 적은 없어. 남자잖아, 특히 걔처럼 성공한 사람을 여자들이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거니까.”유현진: ...‘얘가 내가 알던 순애보 맞아? 생각이 언제 이렇게 개방적으로 변했지?’유현진이 물었다. “너 전혀 신경 안 쓰여?”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려던 차미주는 어쩐지 그 말이 목에 턱 걸려 갑자기 말이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 아니라 한성우의 전 여자 친구들을 떠올리자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눈을 내리깔고 대답했다. “신경이 안 쓰인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언제까지 상대방의 과거에 얽매일 수는 없으니까. 내가 없었던 시간에, 내가 무슨 권리로 순정을 지키라고 하겠어. 한 사람을 좋아하면, 현재와 미래를 신경 써야 하는 거 아냐?”차미주의 말에 멍해진 유현진은 순간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강한서의 말이 맞았다. 감정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왈가왈부할 틈 같은 건 없었다. 좋은지 아닌지, 기쁜지 슬픈지는 당사자만 아는 것이었다. 그녀는 차미주가 상처를 받을까 걱정이었다. 하지만 연애라는 것은 원래 온갖 단계를 거쳐야 서로에 대해 더 잘 알아갈 수 있었다. 차미주가 만약 다른 사람과 연애한다고 해서 꼭 상처를 받지 않는 건 아니었다. 만약 어떻게든 상처받게 되는 거라면 한성우를 선택하는 것이 오히려 보험일 수도 있었다. 만약 한성우가 차미주에게 상처를 준다면 적어도 그녀가 강한서에게 한성우를 정리해 버리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유현진이 한숨을 내쉬더니 물
“...”한성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차라리 치질 치료하러 갔다고 하는 게 더 낫겠네.'“너 뭐 말실수하거나 그러진 않았지?”차미주는 코웃음을 쳤다.“네가 나한테 그렇게 당부를 했는데, 내가 정말로 말했겠어? 멍청이도 아니고.”한성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유현진 씨가 뭘 말했었는데?”그는 유현진이 아주 교활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어떻게든 차미주의 입을 열게 만들어 모든 사실을 알아내 버리게 될까 두려웠다. 심지어 차미주는 자신이 말해버렸다는 것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었다.“별말은 안 했어. 그냥 축하한대. 그리고 네가 날 괴롭힐 것 같으면 강한서를 시켜서 널 처리할 거래!”“...”한성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확실히 유현진이 할 것 같은 말이기도 했으니까.차미주가 말을 이었다.“어차피 우리는 정말로 사귀는 건 아니잖아. 넌 지금은 그냥 날 믿고 기대고 있는 처지인데, 네가 감히 날 괴롭힌다고?”한성우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꾹 참으며 진지하게 말했다.“나도 두려워서 정말로 사귀지는 못하지.”“...”차미주는 어이가 없었다.그녀는 갑자기 한성우가 한 말이 느끼하게 느껴졌다.“그리고 다른 말은 없었어? 우리 사이를 반대한다던가 그런?”정신이 든 차미주가 말했다.“그리고 너 같은 어장남과 절대 잠을 자지 말라고 하던데? 넌 전과가 많잖아. 그래서 네가 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할까 봐 자지 말라고 하더라고.”한성우의 입가가 바르르 떨려왔다. 그리고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반박했다.“현진 씨는 지금 내가 전에 적대감을 보였다는 이유로 복수를 하고 있는 거야. 일부러 그런 말을 하는 거라고.”“현진이는 그런 애가 아니야! 그리고 너한테 전과가 많은 건 사실이잖아, 안 그래?”“...”한성우는 할 말을 잃었다.아직 정식으로 사귀기도 전에 그는 이미 유현진을 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유현진은 조준보다 더 차미주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 유현진이 무엇이라고 하면 차미주는 바로 곧이곧대로 믿는 것이었다.한성우는 자신과 유
유현진은 다소 의외라고 생각했다.그녀는 강한서가 바로 사과를 할 줄은 몰랐다. 여하간에 이 일은 전부 강한서 탓이라고는 할 수 없었으니까.아마 누구라도 그녀의 무리한 요구를 들으면 반박할 것이었다.특히 강한서처럼 원칙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설마 나를 위해 자신의 원칙도 깨버린 거야?'유현진의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그녀는 헛기침하면서 말했다.“전부 네 탓은 아니야. 내 탓도 있었어. 다른 사람 사이에 우리가 끼어드는 건 아니지. 확실히 내가 했던 요구들이 너무하기도 했어.”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잘못을 반성하게 되었고 감정도 더 깊어지게 되었다. 모두가 즐거운... 그런 유현진이 원하던 결말이었다.그녀의 말에 강한서가 말했다.“나도 널 이해해. 넌 그때 급해서 머리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말을 내뱉은 거겠지. 이런 일엔 항상 감정이 먼저 앞서니까. 그래도 이런 습관은 좋지 않아, 고쳐야 해.”“...”유현진은 어이가 없었다.‘사과하던 게 아니었어? 지금 내 문제를 지적해 내는 거야?'강한서가 말을 이었다.“그리고 무슨 일만 있으면 헤어지자는 말은 하지 마. 그거 엄청 상처야.”확실히 그녀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고쳐야겠다며 인정했다.하지만 사과하러 온 강한서가 그녀의 문제만 따지고 드니 유현진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그래서 내가 또 뭘 고쳐 줬으면 하는데?”강한서가 멈칫했다.“다른 문제는 내가 참을 수 있으니까 안 고쳐도 돼.”유현진은 속으로 이를 뿌득 갈았다. 그녀는 떠보는 듯한 어투로 말했지만, 강한서가 정말로 그녀를 문제투성이로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저도 모르게 꽉 쥔 주먹과 ‘쿨한' 표정을 지으며 유현진이 입을 열었다.“괜찮아. 감정은 서로 알아가고 고쳐가고 존중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그러니까 말해 봐. 정말로 내 문제라고 생각되면 나도 허심하게 고칠 테니까.”강한서는 유현진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강한서는 그녀도 안 먹었다는 말에 바로 수긍하였다.그는 다정하게 물었다.“뭘 먹고 싶어?”유현진은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네가 봐서 아무거나 시켜줘. 네가 시킨 거라면 난 다 좋아.”강한서는 그녀의 다정한 말에 홀딱 넘어가 버렸고 얼른 그녀를 꼬옥 끌어안으면서 나직하게 말했다.“그럼 나 기다려. 바로 올 테니까.”“응응.”미소를 지으며 강한서를 문 앞까지 배웅하자마자 유현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경비실에 연락했다.연락을 받은 경비원은 나이가 아주 젊었고 유현진의 팬이기도 했다.“여보세요, 경비실이죠?”오민수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네, 유현진 씨.”유현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 저 그게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아침을 먹고 있던 오민수가 급히 말했다.“네네, 뭐든지 말씀하세요.”“최근에 사생팬이 저의 집까지 따라오게 되었더라고요. 아침마다 자꾸 꽃이나 음식을 문 앞에 가져다 놓더라고요. 아시잖아요. 우리 집에는 여자 둘이 산다는 것을. 너무 무서워서 그러는데 좀 어떻게 조치를 해주시면 안 될까요?”오민수가 바로 화를 내면서 말했다.“사생팬은 팬도 아닙니다. 그런 스토커잖아요. 제가 대신 신고해 드릴까요?”유현진의 눈썹이 꿈틀거리더니 급히 대답했다.“신고까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차피 저에게 어떤 피해를 준 건 아니라서요. 게다가 경찰이 오고 그 사람을 잡아가면 그 사람에게도 안 좋잖아요. 그냥 못 들어오게 막아주시기만 하면 돼요.”오민수가 말했다.“유현진 씨는 너무 착하네요. 그 사람이 스토킹을 했는데도 현진 씨는 그 사람의 앞날을 고려해 주시잖아요. 너무 마음이 착하네요. 그 사람 인상착의는 기억하세요?”켕기는 것이 있었던 유현진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키는 아주 크고 조금 잘생겼어요. 그리고 슈트를 입고 있었어요. 차 번호는 한 A8986이었어요.”오민수는 바로 수첩에 적어두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꼭 두 눈
강한서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여자가 화나지 않았다는 말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유현진이 ‘나 화 안 났어'라고 말했을 때부터 이미 그녀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는 뜻이었다.자아도취, 공짜를 좋아하고 훈남을 찾아보는 건 전부 작은 문제였다.뒤끝이 있는 성격만이 그녀의 진짜 문제였다.그녀에게 문제가 있어도 되고, 그녀도 본인의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강한서는 그걸 입 밖에 내지 말았어야 했다.특히 그녀가 웃으면서 이런 주제에 대해 말할 때는 더더욱 말해서는 안 되었다. 그녀는 그의 입으로 자신의 문제점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에게 만회할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그렇게 강한서는 그녀에게 속아 사실대로 전부 털어놓은 것이었다. 그걸 듣고도 유현진이 넘어가 주는 것이 이상한 것이었다.자신을 사생이라고 말해 경비원에게 쫓아내라고 했으니 강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경비원은 제자리에 우뚝 서 있는 그를 보며 계속 쫓아냈다.“뭘 멍하니 서 있어요? 얼른 차 빼세요.”정신이 든 강한서는 경비원을 훑어보며 말했다.“유현진 씨가 누구죠?”경비원은 그를 째려보았다.“뭘 모르는 척이에요? 여기까지 쫓아왔으면서, 유현진 씨가 누군지 모른다고요?”강한서가 담담하게 말했다.“쫓아왔다고요? 대체 유현진 씨가 누군데 그러는 거죠?'“모른 척 잡아떼도 소용없어요. 방금 제가 이미 CCTV를 돌려 보았거든요. 당신이 최근 며칠 동안 수시로 7동에 나타났을 뿐만 9층에 자주 가셨잖아요. 유현진 씨가 사는 9층에 말이에요.”강한서는 여전히 담담하게 말했다.“9층으로 간 건 902호에 사는 제 친구를 찾으러 온 겁니다. 거기 사는 한성우가 바로 제 친구이자, 여기 주민이거든요.”말을 하던 그는 휴대폰을 꺼내 클라우드 아파트 정보가 있는 앱을 켜곤 경비에게 건넸다.경비는 힐끔 쳐다보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뭐야, 정말로 클라우드 아파트 주민이잖아. 심지어 집 두 채에 상가 건물 세 개!'‘이게 다 얼마야? 몇백억은 족히 되겠네!'클라우드 주민은
그녀가 바로 전화를 끊어버리려던 순간, 강한서가 말했다.“끊지 마. 내 말끝까지 들어.”유현진은 멈칫했다.강한서가 나직하게 말했다.“이따 사람을 시켜 음식을 촬영장으로 보낼 거야. 먹고 촬영해. 난 다른 배우들이 몸매 관리를 어떻게 하든 상관 안 해. 네가 맡은 역할이 삐쩍 말라 죽어가는 캐릭터만 아니라면 공복으로 일하는 건 허락할 수 없어. 돈을 적게 벌어도 되니까 항상 몸 건강 챙겨줘.”그는 뜸을 들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난 너랑 수많은 사계절을 함께 보내고 싶고, 우리 둘 중 누구라도 아파서는 안 돼.”유현진은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그저... 강한서가 자신을 너무 봐주는 것 같았다.끝도 없이 봐주고 있었다.강한서는 그녀에게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녀는 경비에게 그를 내쫓으라고 말하기까지 했는데도 강한서는 그녀에게 밥을 잘 챙겨 먹으라면서 걱정하고 있었다.너무나 다정한 강한서에 그녀는 점점 더 억지를 부리게 된 것이었다...유현진이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녀는 바지에서 툭 뛰어나온 실밥을 잡아당기며 웅얼거렸다.“왜 화를 안 내?”강한서가 답했다.“뭐 처음에는 화가 났긴 했어. 하지만...”그는 뜸을 들였다.“네가 예쁘길 바라고, 또 내조 잘하길 바라면 그건 너무 욕심이잖아. 그냥 그렇게만 있어 주면 돼. 어차피 네 몸에 있는 영양분은 전부 미모에 갔으니까 머리가 다소 딸리는 건 정상이야.”다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던 유현진은 순간 그런 마음이 싹 사라지게 되었다.강한서 개자식은 예쁜 말을 하면서 그녀가 죄책감을 하고 있을 때마다 항상 그런 말로 ‘모욕'을 주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도 하마터면 정말로 속을 뻔했다!‘개자식! 나쁜 자식! 난 또 성격이 부드럽게 변한 줄 알았네! 아니지, 변한 건 맞지. 예전에 독사처럼 말을 내뱉진 않았으니까. 오히려 이젠 칭찬과 욕을 섞어서 한다는 게 맞지. 사악 게이지 max야.'유현진은 어두워진 얼굴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단 1초라
배 속에 아이를 지금 이 시기에 지우지 않으면 더는 지우기 힘들어질 것이었고 유도 분만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예전에 유서훈을 낳을 때도 대충 사립대병원을 찾아가 낳았고 혈액형 조작 같은 것이 아주 편리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해진 상황이었다.유상수는 이미 그녀를 국립대병원에 데려가 검진을 했기에 아이를 낳을 때도 그곳에서 낳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혈액형 부분에서 바로 들통나게 될 것이었다.유상수는 A형이고 그녀는 O형이었다. 그랬기에 절대 B형 아이가 나올 수 없었다.만약 이 아이를 낳는다면 아무리 멍청한 유상수라도 눈치채게 될 것이었다. 그러니 그녀는 초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유현아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유현아는 테이블 위에 그릇을 내려놓고 백혜주 옆으로 가 앉았다.“엄마, 몸 관리 잘해야 해요. 안 그러면 어떻게 그 여우 년이랑 싸울 힘이 나겠어요?”백혜주가 멈칫하더니 입을 열었다.“그 여우 년이 아이를 지운대?”“아니요!”유현아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저도 사람을 시켜서 그년을 끌고 가 몰래 지울 생각이었지만 아빠가 그년한테 경호원을 여럿을 붙여두어서 도저히 접근할 수가 없더라고요.”백혜주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유상수 이 개자식, 내가 그럴 줄 알았어!'“네 아빠는, 얼른 여기로 오시라고 해!”유현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여기 오셔도 소용이 없을 거예요. 그년이 남자아이를 가졌다고 하더라고요. 아직도 아빠 성질을 몰라요? 아빠가 어떻게 그 아이를 포기하시겠어요?”백혜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게 무슨 말이야? 남자아이라니?”유현아는 어두워진 얼굴로 말했다.“그년이 불법 산부인과로 가서 아이의 성별을 알아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지 않으면 아빠가 어떻게 갑자기 마음을 바꾸실 수 있었겠어요. 아이를 절대 지울 수 없다면서 경호원을 잔뜩 붙여 주었더라고요. 우리가 손을 댈까 봐 그런 거 아니겠어요? 엄마도 최근에 아빠가 엄마를 피하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백혜주의 표정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