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주: ??!!“이... 이렇게 빨리?”차미주는 전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머뭇거리며 말했다. “의사가 먼저 약물치료를 하자고 했잖아. 먼저 약물 치료해 보고 다시 생각해 보는 건 어때? 지금 먼저 이 얘기를 하는 건, 너무 비관적인 것 같아. 만약 치료가 되면?”한성우는 꽤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치료할 수 있는 거면, 의사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겠지.”그는 말을 잠시 멈추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너 혹시 내 여자친구 역할 한다고 한 거 후회해?”“아니...”차미주는 해명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변명하는 것 같았고, 그녀는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그... 그럼 네가 올려.”한서우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한성우는 피드를 편집하고는 잔뜩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차미주를 힐끔 보더니 헛기침하며 말했다. “손 줘 봐.”“왜?”차미주는 한성우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한성우는 자신의 큰손으로 차미주의 손을 잡은 뒤, 자신의 손가락을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끼워 깍지를 꼈다. 차미주가 멍해 있는 사이, 한성우는 이미 휴대폰으로 손깍지 낀 사진을 찍었다. 그러더니 한성우는 그녀의 손을 놓고 다시 피드에 올릴 글을 편집하고는 업로드했다. 막 샤워를 마친 유현진은 침대에 누워 팩을 하며 휴대폰을 옆에 두고 한 인터넷 사이트의 가쉽존에서 최근 올라온 연기에 관련된 예능에 나온 게스트와 심사위원들의 찌라시를 듣고 있었다. 이런 가쉽들을 올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입이 험했고, 그들은 이런 예능의 내막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아이돌이 이런 서바이벌에 참여하는 것은 도전을 해보기 위한 것이고, 스타의 2세가 참가하는 목적은 꼬리표를 떼기 위해서였다. 심사위원이 칭찬했던 사람들은 선택되지 못했고, 심사위원들이 혹평을 날렸던 사람들은 결국 제일 좋은 성적으로 다음 라운드로 진입했다. 더 이상 우려먹을 것이 없어지면 연애 예능으로 커플 케미를 만들었다. 유현진은 예능은 한 회도 보지 않으면서 이런
유현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한성우 취한 거 아냐?’그녀는 얼른 다시 새로고침을 눌렀다. 그러나 그 피드는 여전히 남아있었고, 아래에는 심지어 댓글이 잔뜩 달려있었다. 신우: 축하해. 이번엔 2개월 기록을 깰 수 있는 거야?주강운: 조금 의외네. 현진 씨가 두 사람 이어준 거야? 차미주 씨 좋은 분이야. 조준: 두 사람 친척 아니었어요?...유현진이 바득 이를 갈았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얘기하지 않다니, 그녀는 절친이 되어서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했다! ‘차미주 얘는 대체 뭐 하는 거야? 조준 씨한테 대시 중인 거 아니었어? 왜 한성우랑 사귀고 있는 거야?’그녀는 팩을 떼어내고 차미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색하게 침대 옆에 앉아있던 차미주는 휴대폰이 울리고 유현진의 번호가 액정에 뜨자 괜히 마음이 켕기는 기분이었다.끊어버릴 수도, 받을 수도 없었다. 개자식이 올린 인스타그램을 보고 그녀에게 전화해 물어보려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차미주는 이미 머리가 복잡하고 하나도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유현진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전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한성우는 움직이지 않는 차미주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받아줘?”차미주가 얼른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둘러서 잘 얘기해.”한성우가 통화 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받았다. 유현진의 목소리가 바로 전화너머로 들려왔다. “차미주! 너 나한테 설명해. 한성우 씨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거 무슨 말이야? 너희 둘 설마 무슨 게임을 하다 걸려서 올린 건 아니지?”그녀는 전에 분명 차미주를 떠본 적이 있었다. 그때 차미주는 분명 한성우에게 그런 마음이 없다고 했었는데, 갑자기 사귀기로 했다니 이상했다. “형수님, 상상력이 너무 풍부하시네요.”휴대폰 저편에서 들려온 것은 한성우의 목소리였다. “저희 정말 사귀고 있어요.”유현진: ...한성우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녀의 목소리가 바로 나긋해졌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전에 미주한테 아무 얘기도
그러더니 한성우는 차미주의 휴대폰을 꺼버렸다. 그에 차미주가 당황했다. “휴대폰은 왜 꺼?”한성우가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 “아니면 내 거기가 너 때문에 다쳐서 아마 평생 여자를 만질 수 없을지도 몰라서 네가 내 체면을 위해 여자친구 행세를 하는 거라고 얘기할래?”차미주: ...그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렇게 얘기한다고 안 했잖아. 현진이도 나 걱정돼서 그러지, 너한테 속을까 봐.”한성우는 실소가 터뜨렸다. “내가 널 뭘 속였는데?”차미주는 입을 뻐금거리더니 결국 닫아버렸다. 한성우가 칼을 그녀의 목에 대고 협박한 게 아니었다. 그녀가 먼저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여자친구 역할을 해주겠다고 제안한 것이었다. 모든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됐어. 그만 생각할래. 지금 중요한 건 한성우를 잘 간호하는 거야. 다 나으면 나도 더 이상 연기할 필요 없잖아?’그렇게 생각한 차미주는 더 이상 갈등하지 않았다. “그럼 내가 가서 입원 수속하고 올게.”한성우가 말했다. “입원 안 해. 집에 가서 치료할 거야.”‘장난해? 여긴 응급실이라 의사가 거짓말을 해줄 수 있지만 입원하면 회진을 돌기 때문에 진짜인지 가짜인지 바로 들통날 거야!’차미주는 의아해했다. “그렇게 심하게 다쳤는데, 입원을 안 해?”“내가 입원하면 그 자식들 분명 병문안 올 거야. 와서는 어디가 다쳤는지 물어볼 텐데, 난 침대에 엎드려서 걔들 놀림거림가 되고 싶지 않아.”차미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네 집에서 누가 약 발라줘?”한성우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의사를 집으로 부르면 돼.”그의 말에 차미주가 입을 닫았다. ‘역시 돈이 최고야, 의사도 부를 수 있고.’차미주가 멍때리고 있을 때, 한성우가 그녀의 손가락을 건드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도둑아, 나 배고파.”정신을 차린 차미주가 말했다. “뭐 먹고 싶어? 내려가서 사줄게.”“네가 외식하고 싶어?”그가 까탈스럽게 굴며 말했
차미주: ...‘내가 해준다고 했어?’그녀는 어이가 없었다. 성기능 손상은 남자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일 것이다. 특히 한성우 같은 바람둥이는 더욱. 하지만 어쩐지 그는 그 사실을 빨리 받아들이는 것 같을까?“너—”“나 먼저 엎드려 있을게. 너무 아파.”그는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조금만 더 있다가 가자.”의심을 품었던 차미주는 순간 다시 말을 삼켰다. 어쩌면 그녀의 착각일 수도 있었다. 한편,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긴 유현진은 화가 나서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었다. 그녀는 얼른 휴대폰을 들고 강한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사에서 회의하고 있던 강한서는 유현진에게서 전화가 오자 멈칫거리더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방금 말한 몇 가지 문제는 조금 더 토론해 보고 나중에 다시 얘기하죠."그러더니 그는 휴대폰을 들고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팀원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모두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민경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민 실장님, 오늘 저희 일찍 퇴근할 수 있는 건가요?”최근들어 이렇게 특별한 벨소리가 울릴 때면, 강한서는 유달리 관대해졌다. 퇴근을 일찍 시키는 것은 물론 가끔 팀원들에게 휴가도 주었다. 중요한 건 보너스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번 한 달은 그야말로 바캉스를 보내는 것 같았다. 그들과 같은 연구개발팀은 업계에서도 야근하지 않는 회사는 없을 정도였다. 왜냐면 실험 데이터는 일관되고 정확해야 하므로 데이터가 나왔다고 해서 모두 퇴근해버리면 실험 데이터를 누가 기록하겠는가? 또 실험실에 사람이 없는 동안, 누군가 데이터를 수정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니 연구개발의 중요한 시즌일수록 야근은 더욱 심해졌고 실험실도 24시간 내내 교대 근무를 해야 했다. 한밤중이라도 데이터가 나오면 한데 모여 대책 회의를 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지금은 그때와 확연히 비교되기 때문에 야근이 없는 생활은 천국과도 같았다. 특히 매번 강한서가 “자비를 베푸”
“대표님 현 여자친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네요. 전 사모님 너무 예쁘셨잖아요. 대표님은 그런 분과도 이혼하셨는데, 이번 여자친구는 얼마나 더 예쁘겠어요.”민경하의 신경이 그쪽으로 쏠렸지만, 그는 입을 열지는 않았다. “에이, 전 사실 대표님 전 아내분이 좋았어요. 두어 번밖에 못 뵀지만, 말씀을 너무 사람 기분 좋게 하시더라고요. 편하게 대해 주시기도 하고요. 길을 물으시고는 저한테 오렌지도 주셨는걸요. 웃을 때면... 세상에, 여자인 제가 봐도 얼굴이 빨개지던데요.”“듣기론 대표님과 이혼하시고 배우로 전향했다고 하더라고요. 최근엔 촬영하신 드라마가 방영된다고 하던데, 기대돼요. 그 얼굴로 연예계 쪽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건 정말 아까운 일이에요.”“대표님과 이혼한 뒤 혼외 자식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 같던데, 아무튼 좋지 않은 소문이 많이 돌더라고요. 하지만 한 번도 대표님이 사모님 나쁜 얘기를 하시는 건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대표님은 전남편으로서 그래도 꽤 괜찮은 것 같아요.”“얼마 전에 영화 촬영을 시작한 것 같던데, 어쩐 부자가 9999송이 파스텔 장미로 망고 모형을 만들어 축하 인사 겸 보냈다고 해요. 그때 실검에도 올랐었는데. 이혼하셔도 쫓아다니는 사람이 줄지 않네요. 이혼 후에도 각자 잘 지내시니까, 그것도 좋은 것 같아요.”얘기를 듣고 있는 민경하는 웃음이 났다. 만약 팀원들이 그 9999송이의 파스텔 장미가 바로 강한서가 보낸 것이라는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한편, 강한서는 사무실을 벗어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유현진이 다짜고짜 말했다. “강한서, 너 한성우 잘 지켜보라고 했더니, 대체 뭐 한 거야?”어리둥절한 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래?”유현진이 이를 악물었다. “한성우가 내 절친을 꼬드겨 갔다고!”“차미주?”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강한서가 물었다. “걔들이 왜?”“너 한성우 인스타그램 못 봤어? 미주랑 사귄다고 피드에 올렸잖아!”잠시 멍해졌던 강한서가 얼른 한
유현진은 “억지 부리지 마.”라는 한 마디에 신경을 곤두세웠다.그녀는 바로 표정을 굳히더니 말했다. “맞아, 내가 억지 부리는 거야. 우리가 처음 만났어? 아니잖아. 난 끝까지 억지 부릴테니까 잘 들어, 강한서. 한성우가 미주랑 헤어지지 않으면, 우리가 헤어지는 거야!”말을 마친 그녀는 강한서가 대답도 하기 전에 뚝 전화를 끊어버렸다. 강한서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바로 다시 전화하려던 그는 유현진이 마지막에 던진 한마디를 떠올렸다. 그 말이 너무 상처가 되었다. 헤어지자는 말을 유현진은 너무 쉽게 꺼냈다. 마치 이 연애가 그녀에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휴대폰을 움켜쥐던 강한서는 끝내 다시 전화하지 않고 어두워진 얼굴로 회의실로 돌아왔다. 팀원들이 아직 강한서와 그의 아름답던 전 부인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강한서라는 것을 확인한 그들은 얼른 입을 다물었다. 강한서는 잔뜩 굳은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그가 막 서류를 집어 드는데, 한 남자 직원이 입을 열었다. “대표님, 오늘 일찍 퇴근해도 될까요?”강한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류를 펼치며 물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남자 직원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저는 별일이 없지만, 대표님께서 일이 있으신 게 아닌가 해서요. 데이트가 있으면 저희도 덕을 좀 보고요.”강한서가 멈칫 행동을 멈추더니 고개를 들고 덤덤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덕?”그 눈빛에 민경하의 가슴이 “덜컹”하고 내려앉았다. 박진수는 강한서의 감정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사실 강한서도 그렇게 크게 티를 내지는 않았다. 동공의 움직임만이 그의 불쾌함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는 계속 웃으며 말했다. “일찍 퇴근하는 거 말이에요. 당연히 대표님 덕이죠.”민경하는 조금 처진 강한서의 눈을 보며 점점 더 자신의 판단을 확신했다. 민경하는 얼른 박진수를 제지하며 말했다.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데이터나 프로젝터에 연결해서 계속 분석하죠. 일찍 끝
말을 마친 강한서는 더는 그를 쳐다보지 않고 펜을 놓더니 고개를 들고 말했다. “계속하죠. 데이터는요?”박진수는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갈 수도, 남아있을 수도 없었다. 민경하가 헛기침하더니 남자 직원에게 말했다. “얼른 분석 결과를 프로젝터에 연결해요! 정말 내일 회사 옮기고 싶어요?”직원은 그제야 허둥지둥 자신의 컴퓨터를 프로젝터에 연결하고 말을 더듬으며 데이터를 분석했다. 강한서는 비록 냉정하고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말을 자르지는 않았다. 다들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강한서의 감정 기복은 정말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한편, 유현진은 전화를 끊고 후회 중이었다. 예전의 그녀는 이렇게 버릇처럼 헤어짐을 말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했다. 하지만 자신이 바로 그런 부류의 인간이 되어있었다. 그녀도 한성우가 헤어지고 말고는 강한서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정말이지 억지를 부리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 그녀가 먼저 사과를 하자니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적어도 강한서가 먼저 그녀에게 다가와야 했다. 그녀는 강한서가 전화하기를 기다렸지만, 1시간이 지나도 전화는커녕 문자도 없었다! 뒤척이던 유현진은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개자식! 나쁜 자식! 달래주면 뭐 죽냐?’‘전화가 오든 말든, 기대하지 않아!’그러곤 휴대폰에 충전기를 꽂아 한쪽으로 던져버리고 이불을 끌어와 뒤집어쓰고 잠이 들었다. 강한서의 회의는 2시간이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다들 자리를 비우자 강한서는 슈트 단추를 풀고 안경을 벗더니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앉았다. 그는 눈을 반쯤 감고 긴장을 풀었다. 민경하가 정리를 마치고 고개를 돌려 강한서를 쳐다보더니 물었다. “사모님이랑 싸우셨어요?”강한서가 눈을 뜨더니 말했다. “민 실장도 미리 쉬고 싶어요?”민경하가 작게 웃어버렸다. “통화로도 싸우는 게 가능해요?”안 그래도 답답하던 강한서는 민경하의 말에 참지 못하고 말했다. “현진이가 싸움을 걸었어
당황한 강한서가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끊겨버렸다. 유현진이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는 민경하를 쳐다보며 눈빛을 보냈다. ‘왜 민 실장이 얘기한 거랑 다르죠?’민경하가 헛기침을 했다. “방금 싸우셨을 때 바로 하셨어야 해요. 이미 두, 세 시간이나 지났으니 처음엔 조금 기분 나쁜 정도였겠지만 이젠 정말 화가 나셨겠죠. 그러니 전화를 받지 않는 것도 당연해요. 여자친구한테 사과할 땐, 절대 질질 끌면 안 돼요. 시간을 끌면 끌수록 여자들은 기다리고 싶지 않아 하거든요.”강한서: ...“그럼 어떡해요?”“내일 아침 데리러 가셔서, 만나서 얘기하세요.”강한서는 생각하더니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늦은 상태였고 전화로 제대로 얘기하지 못하면 또 화를 낼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유현진에게 10억을 보내면서 메시지를 작성했다. 「잘 자.」아직 강한서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던 유현진은 그의 계좌이체 내역을 보더니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100원을 송금하며 답장했다. 「잠이 안 와.」강한서는 또 얼른 10억을 보냈다. 「지금은?」유현진은 입술을 깨물고 웃음을 참으며 답장했다. 「조금 졸려.」강한서가 또 20억을 송금했다. 「이러면?」유현진이 답장했다. 「잠들었어. 건드리지 마.」강한서가 작게 웃었다. 민경하가 그에게 다가왔다. “사모님 답장하셨어요?”강한서는 휴대폰을 넣더니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민 실장 추측도 정확한 건 아니네요.”민경하: ???강한서가 태연하게 말했다. “민 실장이 말한 것보다 달래기 쉬워요.”민경하: ...“아, 맞다. 송민준 요즘 동향 살피라고 했던 건, 어떻게 됐어요?”정신을 차린 민경하가 말했다. “송 대표님 요즘 특별한 움직임은 없으세요. 일 하지 않으면 그냥 노세요. 확실히 요즘 사모님한테 많이 가시긴 하지만 오랫동안 계시지는 않고, 매번 물건을 주러 가세요.”“물건? 뭘 주는데요?”강한서가 잔뜩 경계했다. “보석?”“그건 아니고요, 전부 음
한현진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지난번 홍혜림 씨 사건이 있었을 때 왜 진윤 씨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키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거잖아.’순간 한현진은 뻘쭘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금 전화를 받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도 벙긋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윤의 말처럼 이건 정말 비열한 짓이었다. 유치한 강한서가 벌일 만한 일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강한서 본인 역시 이번 일은 너무 얍삽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다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 [정상에서]에서 지금 자체 테스트 중인 스킨 한 세트 줄게. 어때?”진윤이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스킨 세 세트?“강한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딜을 하는 걸 보니 그리 큰 상처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세 세트 전부 줄게.”진윤이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절판되어 더는 살 수 없는 게임 스킨과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신 중 아무리 바보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오해한 거라고 하죠.”말하며 한현진을 쳐다보던 진윤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현진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남자 때문에 손에 넣었던 트로피도 놓칠 수가 있어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결혼이 커리어 영향주지 않아. 이간질 하려고 하지 마.”“형님은 남자니까 당연히 영향을 안 받으시겠죠.”강한서에게 농락을 당한데다 하루아침에 구닥다리에게 여신을 뺐긴 진윤은 누구보다 빨리 흑화 했다.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잖아요. 어떤 유명한 감독이 임산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제일 예쁠 나이를 남편과 아이에게 바치면 나중에 아이가 클 때쯤엔 본인의 레전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요. 제가 다 아쉬워서 그래요. 너무 불공평해요.”비록 진윤은 그저 이간질을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현실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커리어엔 고난과 역경이
한현진: ?강한서가 들고 있던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것은 차미주의 목소리였다. “현진아! 너 내연녀가 되어버렸어. 게다가 그 상대가 네 사촌 동생이래.”강한서: ?강한서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그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전여친, 현여친이 뭐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게다가 이 목소리, 왜 이렇게 귀에 익은 거지?’“저... 저기 혹시 전화 잘못 하신 거 아녜요?”한현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곳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 현진 누나?”한현진이 멍해졌다. ‘날 알아?’“네. 제가 한현진이예요. 누구세요?”상대방은 말이 없었다. 그에게서는 그저 조금 흥분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강한서가 한현진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무슨 일이야?”진윤이 이를 악물었다. “방금 전화 받은 사람 누구예요!”강한서가 말했다. “내 와이프.”“그럴 리가 없어!”진윤이 바득 이를 갈았다. “이 사생팬 같은 아저씨가! 혹시 일부러 날 속이려고 옆에 성대모사하는 분이라고 모셔놓은 거 아녜요?”강한서가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너처럼 유치한 인간인 줄 알아? 그리고 현진이는 아무도 대체할 수 없어.”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거짓말 좀 그만 해요. 현진 누나는 지금 그 티베탄 마스티프와 데이트하는 중이라고요. 만약 누나가 정말 형님 와이프라면 형님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누나가 딴 남자와 데이트하는 걸 지켜볼 수 있어요?”더 이상 진윤을 대꾸하기 귀찮았던 강한서가 그에게 영상통화를 보냈다. 몇뿐 후, 휴대폰 화면으로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여신과 딱 붙어 앉아있는 전남편 형님을 확인한 진윤은 순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한현진은 휴대폰에 비춰진 진윤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진윤 씨가 강한서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 거야?’진윤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어댔다. “거짓말쟁이! 뻔뻔한 인간! 전
유난히 예쁘게 잘 나온 사진을 보며 한 현지는 신난 얼굴로 고개를 돌려 강한서에게 보여 주었다. 하지만 멍청하게 나온 것 같다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강한서는 굳이 자신이 찍겠다면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한현진이 눈을 실룩거렸다. “네가 사진을 찍겠다고? 168cm인 나를 138cm로 만들어 버리는 네가? 강 대표님 본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강한서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 실력이 그렇게 별로야?”한현진이 말했다. “쌀을 뿌린 휴대폰을 닭이 부리로 쪼아도 내가 찍은 것 보단 낫다고 할 수 있어.”왠지 수치를 당한 것 같은 기분에 강한서가 이를 악 물면 말했다. “그럼 난 왜 우리가 데이트했을 때 내가 찍어준 사진을 밤새도록 보고 있었던 거야?”강한서가 괜히 그 얘기를 꺼낸 탓에 잊혀 가던 한현진의 기억이 문득 돌아왔다.“사진을 보면서 넌 그저 사진을 찍을 줄 모르는 것뿐이라고 날 설득 하지 않는다면 호텔 앞에서 바로 너와 싸우 버릴 것 같았거든. 내 외모에, 감독님께서도 나에게 각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 하셨는데 넌 대체 어떻게 날 사실 눈으로 찍을 수 있었던 거야?”강한서: ...“사시눈... 처럼 나왔어?”한현진이 일을 악물었다. “내가 뛰어다니는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니까 유체 이탈한 것처럼 찍어줬잖아! 내가 피드를 업로드할 때 실수로 그 사진까지 넣었더니 애들이 나한테 대체 어디서 이런 심령사진을 찍었냐고 물었었어.”“...”활활 타오르던 강한서의 분노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어쩌다 가끔... 몇 십 장뿐이었잖아.”한현진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하.”뭔가를 말하려던 강한서가 고개를 숙이자 무릎 정도까지 오는 어린 아이가 옆에 쭈그려 앉아 불쌍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아저씨, 아직 더 놀 거예요? 저희 잠깐 놀게 해주시면 안 돼요?”강한서가 고개를 돌리자 뒤에는 어린 라이 대여섯 명이 줄을 서 있었다. 한현진: ...창피함에 고개
“하하하.”한현진이 마른 웃음을 지었다.“오빠. 제가 티슈 없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강한서가 눈을 씰룩였다. 그야말로 완벽한 핑계였다. 그는 입술을 달싹여 아내를 따라 염치 없이 말했다. “형님, 저도 없어요.”송민준이 가방과 티슈를 두 사람에게 던지며 강한서를 노려보았다. 탁, 소리와 함께 문이 닫겼다. 한현진: ...“오빠가 나한테 화 난 건 아니겠지?”강한서가 우울하게 말했다. “너보단 날 먼저 걱정해야 할 것 같아. 네 오빠가 아무리 너에게 화가 나도 결국은 나에게 그 화살이 돌아올 거야.”한현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마음이 좀 놓이네.”강한서: ?한현진이 그의 손을 잡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어차피 오빠가 널 탐탁지 않아 한게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 오늘 이 일로 크게 달라지진않을 거야.”“...”‘행복은 본인이 누리고 잘못은 내가 뒤집어쓰고. 정말 좋은 아내네.’강한서는 한현진을 데리고 호텔 라운지로 향했다. 입덧이 끝난 이후로 한현진의 식욕은 줄곧 안정적이었다. 매 끼니마다 많이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지만 배고픔도 빨리 찾아왔기에 하루에 몇 끼씩 먹어야 했다. 그 덕에 지금의 한현진은 송아지처럼 튼튼하기만 했다. 강한서는 임신한 한현진을 위해 오랫동안 공부했지만 한현진에게는 하나도 쓸모가 없었다. 그의 주변엔 임산부가 많이 없었지만 많은 아내들이 임신 후 남편을 괴롭힌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현진에겐 모든 임신의 호르몬 변화가 거짓말처럼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 의사는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큰 반응 없이 잘 먹고 잘 지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의사는 강한서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을 자주 다니며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면 된다고 했다. 한현진은 정서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조금 유치해지기도 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한현진은 강한서의 팔을 끌며 굳이 아이들의 흔들 목마에게 타게 해달라며 떼를 썼다.
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채영 언니.”문채영이 가방에서 포장한 선물 박스를 건넸다. “첫 만남이라 어떤 선물을 준비하면 좋을지 몰라 제가 직접 향낭을 만들었어요. 향 맡아봐요.”한현진이 조금 의외라는 듯 말했다. “언니도 조향하세요?”문채영이 미소 지었다. “제가 조향에 입문하게 된 것도 민준이 덕분이었어요. 전엔 이런 거 만드는 거 좋아했었거든요.”한현진은 다시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그녀는 조향하는 송민준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줄곧 송민준은 그쪽으론 취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송민준은 그 얘기를 꺼내는 것이 불쾌한 듯 담담하게 말했다. “주문부터 해. 배고파.”멈칫하던 문채영이 시선을 내려 눈에 맴도는 서운함을 숨겼다. 한현진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언니, 오랜만에 오셨을 텐데 오늘은 한주 음식으로 드시는 게 어때요?”문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요. 현진 씨가 먹고 싶은 거로 주문해요.”주문한 음식 서빙을 마치고 룸을 나서려는 종업원에게 송민준이 갑자기 말했다. “장어 국수도 주문할게요.”문채영이 힐끗 송민준을 쳐다보자 시선을 올린 그가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 말했다. “환영회에 국수가 빠질 수 없지.”‘그래, 환영회에 국수가 빠질 수 없다고 하는 건 그렇다고 쳐. 하지만 하고 많은 국수 중에 왜 하필 장어 국수야?’‘오빠가 장어 국수라고 말할 때 언니 표정을 보면 설마 두 사람 사이에 장어 국수와 관련된 스토리가 있었던 건가?’호기심이 활활 불타오른 한현진이 몰래 테이블 아래로 강한서의 손을 꼬집었다. 그러자 강한서는 그녀에게 새우를 발라 주었다. 한현진: ...강한서과 문채영은 너무 친한 사이였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한현진은 문채영의 외할머니와 강한서의 할머니가 먼 친척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워낙 촌수가 먼 사이라 피가 거의 섞이지 않은 가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알고 지낸지 한참 후에야 두 가문이 몇 세대 전에는 친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현진이 고개를 들자 옆에 서 있는 벤틀리가 보였다. 송민준이 운전석에 앉아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차창은 닫혀 있었으니 송민준은 당연히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강한서의 차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차를 세운지 한참이 지나도 두 사람이 모습을 보이지 않자 송민준은 강한서가 또 이상한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송민준의 목소리를 들은 강한서가 한현진의 손을 놓고 그녀의 옷을 정리하며 단정하게 자리에 앉았다. 민경하는 은연 중에 자신의 미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차에서 내린 송민준은 카키색의 캐주얼한 외투에 검정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평소 한열이 자주하던 헤어스타일과 비슷했고 선글라스를 콧등에 걸친 채 입술을 앙다물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넓은 어깨에 긴 다리의 그가 우뚝 서 있으니 카리스마와 매력이 흘러넘쳤다. 전엔 그가 한열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이런 차림에 선글라스까지 쓴 모습을 보니 만약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아마 그를 한열로 착각할 것도 같았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차에서 내린 한현진이 가방을 메고 송민준을 향해 걸어갔다. “오빠, 오늘 왜 이렇게 멋져요?”송민준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내가 언제 안 멋진 적이 있었어?”한현진이 눈웃음 지으며 말했다. “어떤 날이든 멋지긴 하죠. 그래서 언제 데뷔할 생각이요?”송민준이 한현진의 가방을 건네받으며 장난스레 말했다. “난 열이와 캐릭터가 너무 비슷해. 내가 데뷔하면 연예계에 걔 자리가 있긴 할 것 같아?”한현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송민준은 손을 들어 검지로 콧등에 걸린 선글라스를 아래로 내렸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강한서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쟨 차에서 뭐하는 거야?”“업무 통화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한현진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가자. 우린 먼저 올라가는 게 좋겠어. 혼자 미적거리라고 해.”룸에 도착하자 송민준은 그제야 물었다. “너희 두 사람, 대체 무슨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이렇
한현진이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강한서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마음 약해질 줄 알았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봐.”한현진이 말했다. “처음엔 마음이 약해졌는데 조금 전 불쾌한 일이 있었거든.”한현진은 간단하게 주혁이 무릎 꿇은 일을 서술했다. “난 사실 그렇게까지 화가 난 건 아니었어. 하지만 꿇어앉아 있는 기사님 모습을 본 순간 화가 치밀더라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러니까 날 강박하는 것 같았거든. 그래서 그 기회를 빌려 바로 전근시켰어.”한현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오는 길에 계속 마음이 불편했어. 내가 너무 극단적으로 처리한 건 아닌가 싶었거든. 기사님은 지금 아들에게 인공 달팽이관을 해줄 돈이 부족한 상황이거든. 전근하면 월급은 당연히 전보다 줄어들 텐데.”강한서가 한현진의 손등을 토닥였다.“인공 달팽이관은 보청기와 비슷한 거야. 생명과 직결된 문제도 아니니 돈이 부족하다고 해도 당장 급할 건 없어. 하지만 굳이 너를 속여 가며 부업을 하려고 했어. 난 그 부분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아.”멈칫한 한현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기사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야?”강한서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건 모르지.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무릎을 꿇고 자존심 따위는 쉽게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원하는 건 자신의 존엄보다 훨씬 더 소중한 걸 거야. 전근이 제일 좋은 선택이었어. 네가 그 사람을 곁에 두는 건 내가 불안해.”강한서는 한현진의 손을 잡으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 약해지지 마. 네가 마음 약해질 때마다 난 심장이 떨려.”“휴. 신세를 지기도 했고 기사님 집에는 장애인이 두 명이나 있잖아. 안타까워서 그러지. 내가 언제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약해지는거 봤어? 난 아주 독한 사람이라고.”강한서는 곧바로 태클을 걸었다. “강운이에겐 마음 약하게 굴었잖아.”지나간 이야기를 꺼내려는 강한서의 태도에 한현진이 얼른 입을 열었다. “그건 내가 불쌍해 보이는 주 변호사님 외모
한현진이 민경하를 살펴보았다. “그래 보이지는 않는데. 얼마 전 야근 때문에 피곤해서 그런 거 아냐? 신제품 발표회도 마무리 됐으니 이젠 좀 쉬게 해줘야지. 민 실장님이 쓰러지면 나중에 너만 고생할 거야.”강한서가 한현진에게 텀블러를 건넸다. “내가 부하 직원 생사도 나 몰라라 하는 그런 대표 같아? 민 실장이 쉬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지 휴가 줄 거야.”그 말에 민경하가 재빨리 대답했다. “괜찮아요, 사모님. 저 건강해요. 휴가 필요 없어요.”만약 평소였다면 휴가를 주겠다는 강한서의 말에 당연히 쉬겠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전 그 상황을 겪고 나니 지금의 민경하는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오늘 민경하가 강민서와 밤낚시를 약속했다는 것을 알게 된 강한서는 한현진과 통화할 때까지만 해도 그리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얼마나 갔을까, 강한서가 입을 열었다. “밤낚시... 몇 명이 가는 거예요?”민경하가 말했다. “밤낚시 모임이 있어요. 아마 20명 정도 있을 거예요. 다들 스케줄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을 땐 8명에서 10명 정도 모여요. 적을 땐 4, 5명이 만날 때도 있고요.”“그래요.”단답으로 대답한 강한서는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민경하에게 물었다. “밤새 낚시하면 피고하지 않아요?”민경하가 말했다. “텐트가 있어서 피곤하면 들어가서 쉬면 돼요.”강한서가 또 다시 “그래요”라며 단답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그가 또 물었다. “두 사람... 같은 텐트에서 자요?”“...”그 질문에 민경하는 바짝 긴장했다. 어쩐지 그 어떤 대답도 목숨을 걸기에 충분한 것 같았다. “4, 5명이면 텐트 2개를 사용해요. 피곤한 사람끼리 돌아가면서 쉬고요.”강한서는 더는 말이 없었다. 5분 후. “두 사람 같이 쉰 적 있어요?”“...”‘같이 잤냐고 묻는 일만 남았네.’민경하가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누워서 얘기만 좀 나눴어요.”“그래요.”10분 후. “얘기만 조금 나눈게 전부예요?”민
남자는 들고 있던 담배를 다 태울 때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서해금이 또 말을 이었다. “당신이 뿌리를 제대로 뽑지 못해 이렇게 큰 후환을 남기지만 않았다면 우리 가람이 처지도 지금처럼 어렵진 않았을 거야.”서해금이 말한 후환은 당연히 한현진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한현진 말이 나오자 남자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어두워졌다.그 여자 아이가 죽지 않았다는 일은 그 역시도 송씨 가문에서 한현진을 데려오기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다.당시 그 여자가 품에 안아 보여주던 여자 아이는 애초부터 송씨 가문의 딸이 아니었다. 그 여자는 다른 곳에서 죽은 아이를 안아와 한아람의 딸이라고 그를 속였던 것이다.친딸이 태어나는 모습도 두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 그는 곧 자신의 친딸에게 인생을 빼앗길 아이를 마주했다. 그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에 그는 심지어 아이를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그는 그저 아이의 죽음을 확인하기만 하면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포섭당한 사람 중 누군가가 마음이 약해졌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한현진이 죽지 않았으니 송씨 가문이나 한씨 가문에서는 기필코 당시 분만실에서 있었던 일을 밝히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 서해금은 일처리를 함에 있어서 화근을 남기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당시 그 일에 연루되어 있는 사람들은 이미 전부 죽거나 도망간 상태였기에 아무리 쥐 잡듯이 뒤져도 그 해의 진실은 알아내 수 없을 것이었다. “내가 뭐 도와줄까?”남자가 나지막이 물었다. “아니.”서해금이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한현진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아. 쓸데없는 짓해서 괜한 의심 사지 마. 걔는 걔 엄마랑 똑같아. 의리가 치명적인 약점이거든. 잠깐만 조용히 지내.”잠시 멈칫하던 서해금이 말을 이었다. “앞으로 내 지시 없이 함부로 회사에 나타나지 마. 회사는 여기저기 보는 눈이 많아. 조그만 실수라도 있었다간 우리 가족 전부 끝장이라고.”우리 가족이라는 두 단어에 남자는 그만 멍해졌다. 그의 눈빛이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반짝였다. 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