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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

Penulis: 온설
연지수는 멍하니 있다가 절망에 휩싸였던 눈빛이 생기가 돌더니 다시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아이?

이미 죽은 줄 알았는데 아이라고?

그녀는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아이는 무사해요. 아까 그분 지수 씨 남편이죠? 참 무심한 것 같던데, 안 그러면 뭣 하러 여러 번씩이나 유산하겠어요? 이제 자궁 내막까지 다 얇아져서 각별히 주의해야 해요. 제가 일단 비밀로 했는데 지수 씨에게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네요.”

연지수는 갑자기 마음이 약해지며 눈물이 앞을 가렸다.

“고마워요, 선생님.”

‘다행이야, 아이가 아직 살아있다니. 우리 아기가 살아있었어!’

그녀는 침대에서 내려와 의사의 극구 사양도 막론하고 기어코 큰절을 올렸다.

살아갈 희망을 심어준 정말 고마운 분이니까.

의사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 목숨은 구할 수 있어도 마음의 병은 치료할 수 없으니...

의사는 마지못해 그녀를 병실에 실어가고 절대적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연신 당부했다.

연지수는 병상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 흐르는 건 단연코 행복의 눈물이다.

그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려 귓불을 촉촉이 적셨다.

그녀는 귀를 쓰다듬으며 연신 흐느꼈다.

베개 밑에 숨겨둔 휴대폰을 꺼내 카톡을 열고 맨 위에 있는 프사를 한동안 쳐다봤다.

아빠가 늘 사용하시던 프사인데 어릴 적 그녀의 사진이었다. 이 몇 년간 줄곧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힘들 때마다 카톡으로 아빠에게 음성메시지를 보내곤 했었다.

8년이 지난 지금, 메시지가 어느덧 수천 개에 달했다.

비록 다 읽지 않은 메시지지만 그녀가 하소연할 데라곤 오직 여기뿐이다.

이 세상에서 아빠 말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사람은 없으니까.

[아빠, 나 또 임신했어요. 이번엔 반드시 지켜낼 거예요. 도현 씨가 죽이려고 해도 이 아이 꼭 낳을 거예요. 나중에 아이가 크거든 난 아빠 찾아갈래. 우리 부녀 지옥 가서 배씨 일가를 위해 속죄하며 살아요.]

연지수는 유산 방지 주사를 맞고 약까지 처방받은 후 기어코 병원을 떠났다.

의사는 마지못해 그녀에게 당부를 늘려놨다.

“집에 가서도 푹 잘 쉬어야 해요. 한 달 동안 화장실 가는 것 말곤 오직 침대에만 누워있어야 해요. 알겠죠?”

연지수는 고마움을 표한 뒤 약을 챙기고 병원을 나섰다.

관찰실을 지나갈 때 안에서 문득 화기애애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의사 선생님이 분명 말했잖아요. 단순한 심장 질환이라 걱정할 것 없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안절부절이에요? 나 때문에 회의까지 미루고 이리로 온 거예요?”

배아영이 해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아프다고 하는데 어떻게 안 와? 돌아가서 푹 쉬어야 해. 다 나을 때까지 학교 나갈 생각 마.”

이에 연지수는 저 자신이 너무 우스워졌다.

한때 배도현은 그녀에게도 똑같이 대했으니까.

다만 이제 그 상대가 배아영으로 바뀌었다.

연지수는 숨을 깊게 몰아쉬고 씁쓸한 마음을 뒤로한 채 병원을 나섰다.

“지수 씨?”

문득 배아영이 그녀를 발견하고 뒤에서 불렀다.

“여긴 어쩐 일이에요?”

머리를 돌리자 배아영과 배도현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연지수는 두 사람을 한참 바라보았다. 배도현이 배아영을 안고 있는 모습에 그녀는 저도 몰래 시선을 피했다.

“병 보이러 왔어요.”

“지수 씨처럼 건강한 사람이 무슨 병이 난다고 그래요? 나도 제발 그랬으면 좋겠는데 심장이 나빠서 오빠만 자꾸 걱정시키네요.”

말을 마친 배아영이 배도현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오빠, 이만 내려놔요. 지수 씨 아프다잖아요. 난 괜찮으니까 얼른 지수 씨한테 가봐요.”

“자살 소동일 뿐이야. 신경 안 써도 돼.”

이때 배도현이 차가운 시선으로 연지수의 손에 감싼 붕대를 보더니 살벌한 기운을 내뿜었다.

“헉!”

배아영은 비명을 지르면서 이제야 손목의 상처를 발견한 것처럼 연기했다.

“그럼 더 관심해줘야죠! 오빠 관심이 필요해서 그런 거잖아요. 오빠가 이렇게 나오면 자살 시도한 지수 씨만 무안해지잖아요.”

“아니!”

배도현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진짜 죽고 싶으면 병원 28층에서 뛰어내리면 그만이야. 응급조치도 필요 없어.”

연지수는 가슴이 꽉 막히고 더는 도망칠 곳도 없는 궁지에 몰린 기분이었다. 이런 본인이 한없이 무기력하고 우스울 따름이었다.

그녀는 머리를 들고 끝이 안 보이는 병원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저기서 뛰어내리면 어떻게 될까?

별안간 배가 아파서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고개를 내저었다.

‘난 죽어도 되지만 아이까지 힘들게 하면 안 돼!’

그녀는 배를 살짝 어루만지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대표님 말이 맞아요. 그 언젠가 한 번 고려해볼게요.”

이를 쭉 지켜보던 배아영이 눈알을 굴리더니 일부러 언성을 높였다.

“오빠는 참! 지수 씨 번마다 이러는 거 단지 장난일 뿐, 진짜 죽는 것도 아니잖아요. 뭘 또 이런 거로 정색해요, 지수 씨는?”

연지수는 떠보는 듯한 이 남자의 눈빛을 알아채고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

“아니, 이번엔 정말...”

다만 배도현이 가차없이 말을 잘랐다.

“제발 죽어, 그렇게 죽고 싶으면!”

말을 마친 후 배아영을 안고 자리를 떠나는 배도현이었다.

연지수는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쏟아지는 빗줄기에 머리가 흠뻑 젖었다.

이제 임신한 몸이니 근처 편의점에 가서 우산이라도 하나 챙겨야 할 듯싶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편의점으로 걸어갈 때 지하 차고에서 마이바흐가 나오더니 마침 기사 주민재가 그녀를 발견했다. 또한... 팔을 감싼 붕대까지 보게 되었고 더는 못 참겠던지 배도현에게 말을 꺼냈다.

“대표님, 사모님께서 다치신 것 같은데...”

하지만 배도현이 가차 없이 잘랐다.

“신경 꺼요!”

툭하면 자살로 협박하는 여자, 가련한 척하면서 용서를 비는 여자는 그의 차에 탈 자격이 없다.

주민재는 한숨을 내쉰 후 잠시 망설이다가 액셀을 밟았다.

그들의 차는 결국 멈추지 않고 연지수를 스쳐 지나갔다.

한편 연지수는 버스를 타면 승객들이 많아서 공간이 비좁아 피가 더 많이 흐를까 봐 아예 택시를 타고 더 래원으로 돌아왔다.

가정부 안희정은 그녀가 돌아오자 시계를 힐긋 보면서 불만을 늘어놓았다.

“사모님, 벌써 세 시간이나 지났어요. 대체 뭐하시다가 이제야 돌아온 거죠? 대표님께서 외출은 무조건 한 시간 이내로 해결하라고 하셨는데 이번엔 또 어디 다녀온 거예요? 말씀해보세요. 그래야 저도 대표님께 보고해드리죠.”

안 그래도 기분이 우울한 연지수는 망연한 눈길로 안희정을 쳐다봤다.

그녀는 배도현이 어릴 때부터 시중을 들어온 가정부인지라 이 집안에서 도우미 역할이라기보단 반은 시어머니에 가까웠다.

연지수는 외출할 때마다 그녀에게 보고하고 돌아오면 돌아왔다고 알려야 한다. 정해진 시간을 초과하면 안희정이 배도현에게 모조리 일러바쳐서 저녁에 이 남자의 질문 세례까지 당해야 한다.

이제 배 속의 아이를 생각하노라면 적어도 이 아이만큼은 본인처럼 이 집에 구속받아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이 섰다.

“자살 시도를 했다가 병원에서 응급조치를 받고 다시 살아났어요. 도현 씨도 이미 알고 있고요.”

안희정은 멍하니 넋 놓고 있다가 피로 물든 그녀의 붕대를 발견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사모님, 섣불리 죽을 생각 말아요! 사모님 아버지가 우리 배씨 일가에 천벌을 지었잖아요! 두 사람 목숨을 앗아갔는데 이렇게 쉽게 죽어버리면 안 되죠!”

연지수는 별안간 걸음을 멈췄다. 다시 발을 내디디려고 했으나 천근 무게가 되어 겨우 앞으로 나아갔다.

이어서 안희정도 방에 돌아가 문을 닫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영 씨, 연지수 씨가 손목을 그었는데 죽진 않았어요. 아, 알고 계셨네요. 아이는 죽었다고요? 너무 잘됐어요! 그럼 그건 계속 넣을까요 어떻게 할까요? 네, 알겠습니다.”

연지수의 침실은 2층 왼쪽 첫 방이다. 더 래원에서 가장 큰 침실이자 그녀와 배도현의 신혼 방이기도 하다.

유산방지 약은 옷장에 숨겨둔 채 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더니 스르륵 잠이 들었다.

다만 줄곧 악몽에 시달리느라 편히 쉬지는 못했다. 잠시 후 문이 닫히는 소리가 귀청이 째지게 들려왔다.

화들짝 놀란 그녀가 눈을 떴을 때 배도현의 음침한 눈빛을 마주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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