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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화

Penulis: 온설
“아가씨, 어디 가시려고요?”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연지수는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망했다, 이제 끝장이야.’

야속한 운명을 탓하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그 사람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저는 여기 팔려왔어요. 제발 한 번만 아무것도 못 본 척하고 저 좀 도망치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사모님?”

순간 익숙하면서도 놀라움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지수는 고개를 번쩍 들고 그 사람을 쳐다보더니 충격을 금치 못했다.

“기사님!”

이때 요란스러운 걸음 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들려왔다.

주민재는 주위를 쭉 살펴보더니 연지수를 마차에 싣고 그 위에 돗자리를 깔아서 감쪽같이 가려주었다.

“민재 씨, 방금 도망쳐 나온 새색시 못 봤어요?”

“못 봤는데요. 저는 이제 막 시골에 내려와 밭갈이하려던 참이었어요.”

“보면 꼭 얘기해요. 4천만 원짜리 색시라 꼭 붙잡아와야 하거든요.”

인파가 멀어진 후 주민재는 마차를 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사모님, 어쩌다가 이곳까지 팔려온 거예요? 대표님은 아세요? 전화해서 여쭤봐야겠어요.”

그녀가 이 처지에 이르렀으니 오직 배도현만이 도와줄 수 있다.

통화가 연결되자 주민재는 휴대폰을 연지수에게 건넸다.

“누구세요?”

익숙하면서도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연지수는 마치 배도현의 싸늘한 시선이라도 마주한 것처럼 바짝 긴장했다.

“도현 씨...”

“친정에 보냈으면 제대로 반성하고 있을 것이지 뭣 하러 전화질이야?”

“고모랑 고모부가 저를 시골에 팔아버렸어요. 저 좀 구해주시면 안 될까요?”

“자살 협박이 안 먹히니 이제 와서 또 이런 거짓말이네? 어디로 팔려갔는데? 너 따위가 과연 얼마에 팔리겠어?”

배도현의 대답에 그녀의 모든 희망이 무너지고 마지막 남은 애원도 차마 입밖에 내뱉지 못했다.

그에게 연지수란 버러지에 불과하고 하찮으면서도 더러운 존재였다.

“별일 없으면 이만 끊어. 잘못 뉘우칠 때까지 얌전히 거기 있어.”

전화가 끊기자 그녀의 마음도 찬물을 끼얹은 듯 쓸쓸하게 식어내렸다.

보다 못한 주민재가 입을 열었다.

“대표님,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요? 사모님이 임신한 몸으로 저 인간들에게 잡히기만 하면 끝장날 거라고요.”

다만 연지수는 이제 철저히 절망 속에 빠져버렸다.

“기사님, 뒷산 절벽은 높이가 어떻게 돼요?”

이딴 식으로 능멸을 당할 바엔 깔끔하게 인생을 마감하는 게 나을 법했다.

“절대 어리석은 생각 하지 마세요, 사모님! 저 따라와요. 우리 함께 방법을 연구해서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요!”

...

3년이란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연지수는 마스크를 끼고 기차역 출구에 서서 낯설지만 더없이 익숙한 이 도시를 바라봤다.

“연지수 씨 맞으시죠? 저는 배도현 대표님 비서 윤정원이에요. 대표님께서 바쁘시다 보니 친히 저를 보내셨어요.”

맑은 목소리에 연지수도 사색에서 빠져나왔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윤정원과 함께 차에 탔다.

검은색 마이바흐가 그녀 앞에 멈춰 서고 윤정원이 차 문을 열어주었다.

“타세요, 사모님.”

“고마워요.”

그녀는 차 번호판을 흘겨보며 나직이 대답했다. 예전처럼 해맑은 목소리가 아닌 성숙하면서도 소외감이 드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더 래원에 들어선 순간 그녀는 많은 생각에 잠겼다. 익숙한 이 풍경이 마치 꿈만 같았다.

“다 왔습니다, 사모님.”

윤정원의 목소리에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차에서 내리고 윤정원의 도움도 마다한 채 스스로 캐리어를 두 개 끌고서 현관으로 들어갔다.

문 앞에 서서 이 갑갑한 별장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저절로 답답해지고 숨이 턱턱 막혔다.

“대표님께서 친히 분부하셨어요. 안방과 아영 씨 방 말고 다른 침실은 아무거나 골라 쓰셔도 됩니다.”

“괜찮아요, 저는 지하실에서 지내면 돼요.”

더 래원은 이제 그녀의 구역이 없다. 지하실이라도 지낼 수만 있다면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다.

윤정원은 더 말하려다가 단호한 그녀의 눈빛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가 떠난 후 연지수는 캐리어를 끌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이 몇 년간 그녀는 주민재와 함께 모텔에서도 지내봤고 다리 밑, 병원 복도 등 거의 안 머문 곳이 없으니 지붕이 있는 지하실은 비바람을 맞을 걱정이 없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짐 정리를 마친 후 그녀는 컵라면을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맨 북쪽에서 기차 타고 맨 남쪽까지 오느라 배가 엄청 고팠다.

뜨거운 물을 부을 때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연지수가 미처 고개를 돌리기 전에 상대가 먼저 그녀를 발견하고 입을 열었다.

“뭔 냄새야?”

중저음의 목소리에 연지수는 온몸이 굳어버렸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돌아서서 배도현을 쳐다봤다.

깔끔한 외모에 짙은 눈빛, 양미간에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고 이따금 소외감이 느껴졌다.

3년 만에 봤지만 그는 늘 여전했다. 차가운 포스를 내뿜으며 선뜻 다가설 수 없게 만들었다.

“연지수?”

배도현도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마스크가 얼굴을 반쯤 가렸지만 차분하면서도 짙은 두 눈동자가 그녀임을 말해줬다. 다만 전보다 훨씬 성숙한 모습이고 마치 딴 사람으로 바뀐 것만 같았다.

3년이란 세월을 매일이다시피 바삐 돌아쳤고 할아버지의 재촉이 없었다면 연지수의 존재까지 거의 잊을 뻔했다.

“그래요, 나예요.”

연지수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할아버지가 너 반성 다 했다길래 데려온 거야. 더는 실망시키지 마라. 안 그러면...”

“네, 그럴 일 없어요.”

연지수가 대뜸 그의 말을 잘랐다.

“할아버지 뵈러 온 거니 대표님 방해할 일은 없어요.”

이건 애초에 배도현이 원하는 철든 그녀의 모습이다. 하지만 정작 듣고 있자니 왜 이렇게 소외감만 느껴지는 걸까? 잇달아 말로 이루 설명할 수 없는 실망감까지 들었다.

“그럼 다행이고.”

배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방은 아영이가 원해서 줬어. 다른 방 아무거나 골라봐.”

“괜찮아요. 임시로 며칠 지내는 것뿐이니 어디든 다 돼요.”

배도현은 순순히 받아들이는 그녀의 태도에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곧이어 그녀의 손에 든 컵라면을 보고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이런 불량 식품은 집안에 들이지 말아줄래?”

그녀가 반박할 줄 알았는데 아무 말 없이 컵라면을 들고 자리를 떠나갔다.

“네.”

연지수는 곧게 지하실로 내려갔다.

이딴 저렴한 컵라면은 배도현의 주방을 더럽히는 음식인데 그걸 깜빡하다니.

그녀는 소홀한 저 자신을 탓했다.

한편 배도현은 제자리에 서서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표정이 서서히 차가워졌다.

전에는 고자질에 자살까지 마다하지 않더니 3년이 지난 지금, 고분고분 말만 잘 듣고 반박이라곤 일도 없는 그녀였다.

솜뭉치에 주먹을 내리꽂은 기분이 이런 걸까? 그는 도통 내키지 않았다.

침실에 들어간 배도현은 베란다의 다용도실에서 여자 옷이 들어찬 캐리어를 하나 꺼냈다.

그건 전에 연지수가 더 래원에 남기고 간 옷이다.

그녀가 떠난 후 배아영이 이 방을 워낙 탐내서 바로 내주었고 배도현은 그 뒤로 줄곧 서재에서 지냈다.

“이 옷들 지수 갖다 줘.”

배도현이 윤정원에게 옷을 내밀었다.

하지만 잠시 후 윤정원이 다시 캐리어를 끌고 방에 돌아왔다.

“왜? 싫대?”

“그게... 이 옷들은 전부 대표님이 사주신 거라 필요 없으시대요.”

배도현은 들끓던 분노가 마침내 폭발했다.

객실에 쳐들어갔지만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얘 어디 갔어?”

배도현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윤정원은 그의 눈치를 살피며 나직이 보고했다.

“사모님은... 지하실에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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