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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화

Penulis: 온설
“사모님, 안에 계세요?”

연지수는 문득 누군가의 부름에 어렴풋이 눈을 떴다.

“사모님...”

문틈으로 들리는 그 목소리는 바로 기사 주민재였다.

“기사님.”

“정말 사모님이셨네요. 집에 안 보이시길래 가정부한테 물었더니 여기 갇혔다고 하더라고요. 좀 괜찮으세요?”

“살려주세요, 기사님...”

연지수는 이제 곧 쓰러질 것만 같았고 배를 갈기갈기 찢는 고통에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저 식은땀만 흘리면서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주민재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가슴이 바짝 조여왔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가 방법을 생각해볼게요.”

거대한 굉음과 함께 하늘에 먹장구름이 끼고 숨 막힐 듯한 압박감이 전해졌다. 곧이어 장대비가 쏟아지며 더 래원에 강풍이 휘몰아쳤다.

“왜 이렇게 막무가내에요? 피를 잔뜩 흘려놓고 대체 무슨 정신으로 물에 몸을 담갔냐고요? 팔은 또 쥐한테 물려서 엉망진창이네요. 본인을 좀 사랑해주고 보살펴주면 안 돼요?”

연지수는 자신을 향한 질책을 들으며 서서히 눈을 떴다.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은 바로 전에 그녀를 위해 병 치료해줬던 그 의사였다.

명찰을 확인한 후 연지수가 잔뜩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마워요, 선생님. 또 한 번 살려주셨네요.”

최수현은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그녀를 째려봤다.

“난 의사지 신선이 아니에요. 번마다 지수 씨를 살려줄 순 없다고요.”

“네, 이제 안 그럴게요.”

연지수가 천천히 대답했다.

그녀는 이혼하고 연성을 떠날 생각이다. 앞으로 더는 최수현을 귀찮게 굴 일은 없다.

한편 최수현은 주의사항을 다 말한 후 계속 구시렁대면서 병실을 나섰다.

주민재는 의사에게 고마움을 표하곤 연지수를 다독이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 태도에 너무 속상해하진 말아요. 지수 씨 데리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저 선생님이 응급실 의사를 모셔오고 간호사더러 예방접종을 얼른 해주라고 정신없이 다그쳤거든요. 꽤 좋은 분 같아 보여요.”

연지수는 절대 그런 적 없다고 머리를 내저었다.

어떤 이는 차가운 외모 속에 따뜻한 마음을 지녔고 또 어떤 이는 온화한 표정 속에 매정한 심보를 품었다. 그녀는 이제 그런 사람들을 딱 보면 분별할 줄 안다.

“고마워요, 기사님.”

주민재는 한숨을 내쉬었다.

“실은 사모님께 드릴 말씀이 있는데...”

“네, 편하게 말씀하세요.”

“혹시 대표님께서 줄곧 괴롭히고 있나요? 최근 2년 동안 사모님을 뵐 때마다 몸이 성한 데가 없어서... 대표님과 한번 얘기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연지수는 그가 뭘 말하려는지 너무 잘 안다.

“알아요, 기사님. 조만간 도현 씨랑 이혼할 거예요.”

주민재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이 몇 년간 대표님이 사모님을 향한 태도를 친히 지켜봐 왔기에 한숨만 저절로 새어 나왔다.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더 래원으로 데려다주실래요?”

“그렇지만 지금 몸 상태가...”

“괜찮아요.”

몰래 집을 떠난 사실을 배도현에게 들키면 주민재까지 힘들어질 테니까.

부부 사이의 일은 반드시 둘만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주민재가 연지수를 더 래원까지 바래다줬을 때 어느덧 날이 밝아졌다.

배도현이 미처 깨나지 않았고 그 틈에 연지수는 지하실로 돌아가 주민재더러 문을 잠가 달라고 부탁했다.

나머지 일은 그녀 스스로 알아서 하면 그만이다.

주민재가 난감해하고 있을 때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는 거야?”

배도현이 살벌한 한기를 내뿜으며 뒤에 서 있었다. 그녀는 재빨리 다가가 해명하려 했으나 이 남자가 계속 질문을 쏘아붙였다.

“누가 문 열어줬어?”

주민재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연지수가 앞으로 나섰다.

배도현은 부하 직원에게 늘 까다로운 법이다. 만약 주민재가 이실직고한다면 그녀 때문에 기사일까지 잘릴 게 뻔하다.

“감히 내 허락도 없이 제멋대로 도망쳐?”

곧이어 그의 시선이 주민재에게 넘어갔다.

“기사님이 왜 연지수를 도와주고 있는 거죠?”

주민재는 어두운 표정으로 황급히 해명했다.

“그런 게 아니라요, 대표님. 사모님 배도 아프시고 어젯밤에 쥐에게 물린 뒤 기절해버리셔서 마지못해 병원으로 모셔갔습니다.”

이에 배도현은 그녀의 팔을 감싼 붕대를 보면서 차갑게 말했다.

“얘는 입만 열면 거짓말이에요. 자살 시도도 모자라서 이제 쥐한테 물렸다고요? 이딴 애를 도와줄 거면 더는 우리 집안에서 일할 필요 없어요. 회사 가서 직접 사표 써요!”

“대표님.”

“됐어요!”

주민재는 허탈한 마음으로 자리를 떠나려 했다.

“기사님, 잠깐만요.”

이때 연지수가 그를 붙잡고 배도현에게 말했다.

“배 아파서 기절한 것도 사실이고 쥐한테 물린 것도 사실이지만 도망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때 마침 기사님이 저를 도와주셨어요. 이렇게 기사님 해고하면 안 돼요. 이럴 순 없다고요!”

본인 때문에 주민재까지 밥그릇을 잃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배도현은 그녀에게 바짝 다가와 두 눈을 빤히 쳐다보더니 섬뜩한 말투로 말했다.

“네가 뭔데? 배 속의 아이까지 이용하는 네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런 요구를 하는 거야?”

“그건...”

연지수는 목이 꽉 막혔다. 그녀는 배도현의 사랑스러운 동생 배아영에게 모함을 당했다. 이 사실까지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이대로 주민재가 해고되는 걸 지켜볼 수가 없었다.

“아이는 내가 포기한 게 아니라 배아영 씨가 가정부 안희정 아줌마랑 짜고 쳐서 매일 인삼을 빌미로 단삼차를 우려줘서 유산된 거예요. 그래서 임신할 때마다 아이를 지켜내지 못한 거라고요!”

“뭐라고요?”

별안간 문 앞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배아영은 부랴부랴 배도현에게 다가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오빠, 지수 씨 하는 말 듣지 말아요. 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해요? 줄곧 배씨 저택에서 지내고 더 래원은 거의 안 오는데, 게다가 안희정 아줌마랑 친하지도 않고 단삼이 뭔지도 모른다고요. 난 절대 그런 짓 할 리가 없어요.”

“아줌마가 이미 다 자백했어요.”

연지수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이에 배아영이 당황해하며 연신 고개를 내저었고 눈가에 눈물까지 맺혔다.

“그래요! 다 내 잘못이에요. 내가 아줌마 강요해서 지수 씨 해쳤어요. 나만 나쁜 년이네요. 나 때문에 오빠랑 지수 씨 감정에 금이 갔고요. 이제 그만 여길 떠날게요! 더는 찾아오는 일 없어요.”

말을 마친 배아영이 엉엉 울면서 자리를 떠났다.

“아영아.”

이때 배도현이 그녀를 잡아당기고 싸늘한 눈길로 연지수를 쳐다봤다.

“잘하는 짓이다!”

배아영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녀를 쳐다보았는데 이글거리는 눈빛에 가슴이 찔려서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이러지 말아요, 오빠. 다 내가 이기적이라 지수 씨 해치려고 든 거예요. 나 때문에 괜히 감정 상하지 말아요.”

의도적인 그녀의 말투에 연지수가 언성을 높였다.

“용쓰네요, 아영 씨. 애초에 아영 씨랑 아줌마가 짜고 쳐서 날 해친 거잖아요.”

“사모님, 대체 왜 그러세요? 자백이라니? 제가 언제 그런 말을 했나요?”

인기척 소리에 안희정이 달려 나와서 연지수를 저격하기 시작했다.

“저는 대표님 어릴 때부터 줄곧 이 집에서 일해온 사람이에요. 제가 대체 왜 대표님 아이를 해치겠어요? 네?”

안희정은 곧장 울상이 되었다.

“대표님, 사모님께서 이렇게까지 저를 모욕하시니 더는 남아있을 수 없겠네요. 이만 짐 싸서 나갈게요.”

안희정이 자리를 뜰 때 배아영도 일어나며 말했다.

“가요, 아줌마. 우린 어디까지나 남이잖아요. 지수 씨만 오빠 와이프죠 뭐.”

남이란 그 한 마디에 배도현이 발끈했다.

“나가, 연지수!”

그는 사악한 눈길로 연지수를 쳐다봤다.

“툭하면 거짓말에 자살로 협박하고 이제 아영이랑 아줌마까지 모함하려는 거야? 이럴 거면 이 집에서 나가 당장!”

기대에 찼던 연지수의 마음은 서서히 실망으로 뒤덮였다.

그녀는 턱을 치키고 가볍게 웃을 뿐 더는 해명하지 않았다.

그렇게 차분한 눈빛으로 지난 일을 깔끔하게 지워냈다.

“마음대로 생각해요.”

믿거나 말거나, 어떤 처벌을 주든 이제 더는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한없이 괴롭힘만 당하는 연지수를 보고 있자니 주민재는 도저히 내키지 않았다.

“대표님, 이대로 사모님 보내시면 안 돼요. 임신한 몸으로 어떻게 버티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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