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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화

Penulis: 온설
“왔어요, 도현 씨?”

연지수는 겨우 일어나 앉았다. 이 남자를 보고 있으면 8년 전 그 일이 떠올라 자꾸만 죄책감이 든다.

한편 배도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침대 맡에 서서 빨갛게 물든 그녀의 붕대를 보더니 눈동자가 한없이 짙어졌다.

“지수야.”

싸늘한 말투에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왜 아직도 살아있냐?”

연지수는 그 순간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내가 그렇게 미워요?”

그를 위해 수없이 자살 시도를 했고 아이도 세 번이나 가졌었는데 이것만으론 부족한 걸까?

“그래, 미워.”

가라앉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연지수는 또다시 8년 전의 섬뜩한 기억이 떠올랐다.

피로 흥건한 화면이 뇌리를 스쳤고 그녀는 연신 고개를 내저으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런데 왜 2년 전에 나랑 결혼했어요?”

배도현은 그녀의 턱을 잡고 살벌한 기운을 내뿜었다.

“너희 집안에서 우리 가족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갔어. 이 결혼은 단지 네 아빠 대신 속죄하라는 뜻이야. 마땅히 네가 받아야 할 처벌이잖아. 안 그래?”

연지수는 가슴을 쿡쿡 찌르듯 아프고 그 아픔이 승화해서 헛웃음만 새어 나왔다.

사랑 때문에 결혼한 게 아니란 걸 진작 알았어야 했다.

누군가가 억울한 죽임을 당했으니 대역죄인이 된 그녀는 편하게 살아갈 자격이 없다.

“미안해요.”

연지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했다.

이에 배도현이 손을 내려놓고 그녀의 어깨를 꽉 잡았다. 두 눈동자가 음침하게 돌변하더니 그녀의 옷깃을 찢기 시작했다.

“미안하단 말도 너에겐 사치야!”

두 생명을 앗아간 그녀를 절대 용서할 수가 없다. 이건 당최 용서되는 일이 아니니까.

행여나 그녀가 도망칠까 봐 머리를 푹 숙이고 으스러지게 어깨를 부여잡았다. 곧이어 그녀의 입술과 볼, 목까지 깨물면서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연지수는 수동적으로 이 모든 걸 감내하면서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사색이 된 그녀는 시체처럼 침대에 멍하니 누워있었다.

아픔을 느낀 순간 이 남자의 배를 살짝 밀치면서 겨우 반항해보았다.

“안돼요. 오늘만은 제발 하지 말아요, 네?”

하지만 배도현은 그녀의 손을 가차 없이 내팽개쳤다.

“감히 거절해?”

저릿한 고통은 배를 타고 온몸에 퍼져 흘렀다. 기운이 쫙 빠진 그녀는 이 모든 걸 묵묵히 감내하는 수밖에 없었다.

또 아이를 잃으면 이제 그녀도 더는 살아갈 이유가 없다.

28층에서 뛰어내린다면 아마 응급조치도 필요 없겠지?

연지수가 두 눈을 질끈 감고 이 고통을 받아들이려고 할 때 휴대폰 소리가 울렸다.

배도현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진지한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그래, 아영아. 금방 갈게.”

연지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 벨 소리를 들은 순간 이 남자가 떠날 걸 짐작했으니까.

이 벨 소리는 배도현이 오직 배아영을 위해 설정한 소리였다.

언제 어디서든 벨 소리만 울리면 그녀에게 달려가는 배도현이다.

그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옷매무새를 정리한 후 침대를 힐긋 쳐다봤다.

사색이 된 연지수가 침대에 덩그러니 누운 채 팔과 몸 아래에 빨간 피로 물들었다.

노을이 드리운 얼굴은 하얀 피부가 유난히 더 눈부셨고 마치 백지장처럼 혈기라곤 없었다.

잠시 망설이던 배도현이 끝내 자리를 떠났다.

“대표님.”

방에서 나오자 마침 안희정과 마주쳤다.

“지수 몸이 불편하니 한약 좀 끓여와요.”

방안에서 그의 말을 들은 연지수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미소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렇게 쉽게 죽으면 재미없잖아요.”

“안 그래도 지금 막 인삼탕 드리려던 참이었어요. 사모님께서 2년 동안 매일 마시고 있거든요.”

“그래요.”

배도현은 알겠다고 대답한 후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곧이어 이상한 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여기 뭐 들어있어요?”

안희정은 그를 힐긋 쳐다보다가 재빨리 몸을 피했다.

“그냥 평범한...”

“솔직히 말해요!”

수상한 낌새를 느낀 배도현이 언성을 높였다.

이에 안희정은 가슴 찔린 듯 울상이 되어 말을 이어갔다.

“그게 실은... 제발 사모님 질책하지 마세요. 절대 일부러 그런 거 아니니까.”

배도현의 의심이 점점 커졌다.

“말해요 당장!”

“실은 인삼이 아니라 단삼이에요. 사모님께서 대표님과의 아이를 원치 않으셔서 일부러 단삼을 사 오라고 하셨거든요. 저더러 매일 이렇게 차를 우려달라고 하셨어요... 아이를 원치 않아서...”

배도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쩐지 자꾸 유산하더라니.

그녀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서 자책했고 빗속에서 넘어진 모습을 보곤 배아영을 홀로 남겨둔 채 집까지 보러 왔더니 이 모든 게 오지랖일 줄이야.

연지수 이 여자는 애초에 아이를 원치 않아서 의도적으로 단삼을 먹었다.

“연지수!”

그녀가 한창 배를 쓰다듬으며 아기가 무럭무럭 커가길 기도할 때 배도현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는 씩씩거리면서 침대 옆으로 다가와 매정하게 그녀를 잡아당기면서 질문을 쏘아붙였다.

“이거 뭐야?”

다짜고짜 팔을 잡힌 연지수는 아프기도 하고 그가 왜 이렇게 화났는지 몰라서 어리둥절해졌다.

“그냥 인삼차잖아요. 제가 매일 마시는...”

안희정은 이 차가 보혈작용을 해준다면서 빈혈기가 있는 그녀에게 매일 우려줬다.

다만 배도현의 얼굴이 한없이 음침해지더니 손에 든 인삼탕을 그녀의 얼굴에 가차 없이 쏟아붓고 컵을 바닥에 내던졌다.

유리 파편이 그녀의 발에 튕기고 얼굴은 불타오르듯 뜨거워졌다. 화들짝 놀란 연지수는 비명을 질렀다.

“왜 자꾸 유산하나 했더니, 일부러 단삼 먹고 제 새끼 죽인 거야? 너 진짜 독하다, 연지수!”

그녀는 미친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처참한 몰골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어서 그에게 해명해야만 하니까.

“아니에요, 그런 거. 단삼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다만 배도현은 그녀의 해명 따위 듣지도 않고 바로 옆으로 내팽개쳤다.

“끝까지 시치미 떼는 거야? 아줌마, 얘 당장 감금시켜요.”

연지수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얼른 그의 다리를 부둥켜안으며 간절하게 애원했다.

“제발 그러지 말아요, 도현 씨. 저 진짜 억울해요. 단삼인지 뭔지 전혀 몰랐다고요. 아줌마가 인삼이 몸에 좋다면서 먹으라길래 매일 챙겨 먹은 것뿐이에요.”

“아이고, 사모님, 무슨 그런 말씀을! 저따위 가정부가 무슨 돈으로 인삼을 사겠어요. 분명 사모님께서 단삼을 사 오라고 시키셨잖아요.”

말을 마친 안희정이 배도현을 힐긋 쳐다봤다.

“대표님, 저 꼭 믿어주셔야 해요. 제가 이 집안에서 머문 세월이 얼마인데 어떻게 그런 짓을 벌이겠어요?”

연지수는 그제야 알아챘다. 바로 이 단삼 때문에 습관적 유산을 하게 됐다.

그건 무려 혈액순환을 돋우는 약인데 배도현과 결혼한 2년 내내 별생각 없이 인삼탕이라 여기고 마셨으니...

“도현 씨, 나 믿어야 해요. 진짜 아무것도 몰랐어요. 아줌마가...”

그녀는 뻔뻔스럽게 거짓말하는 안희정 때문에 착잡해져서 목소리가 다 떨렸다.

“닥쳐!”

하지만 배도현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딴 변명 따위 집어치워.”

연지수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가정부의 말은 선뜻 믿으면서 그녀에게 기회조차 안 주는 이 남자, 더는 해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리 설명해도 들어주지 않는 남자였기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제 그녀가 바라는 건 단 하나, 제발 오늘 밤만 편히 쉬고 내일 다시 지하실에 내려가는 것이다.

그곳은 어두컴컴하고 축축해서 아이가 잘못될까 봐 너무 걱정됐다.

고민 끝에 연지수가 입을 열었다.

“이제 막 유산해서 몸이 허한데 오늘 밤만...”

“안돼!”

배도현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지금 당장 지하실로 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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